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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차린 밥상 - 소설로 맛보는 음식 인문학 여행
정혜경 지음 / 드루 / 2024년 6월
평점 :
눈길이 머무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말이 있잖아요.
똑같은 소설을 읽어도 사람마다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서 흥미로운 것 같아요. 소설 속 음식,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느라 크게 주목하지 않았는데 바로 그 음식에서 역사, 문화, 시대상을 이야기하는 저자의 관점이 새롭게 느껴졌어요. 무엇보다도 저자가 선정한 소설들은 한국인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명작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좋았네요. 《문학이 차린 밥상》은 '소설로 맛보는 음식 인문학 여행' 책이에요.
"나는 소설책을 좋아한다. 어린 시절부터 가장 좋아했던 것이 바로 소설책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소설은 나에게 가장 좋은 선생님이었다. 그렇지만 영양학 선생으로 평생을 살았으니 소설 읽기는 단지 나에게 취미 정도로 여겨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소설은 나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인간의 삶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소설이라고 하듯 소설 속에는 인생이, 철학이, 인간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내가 늘 추구하는 음식 문화가 거기에 생생하게 있었다." (5p)
이 책에서 다루는 문학 작품들은 최명희 작가님의 《혼불》, 박완서 작가님의 《미망》, 박경리 작가님의 《토지》, 이상 작가님의 《날개》, 《지팡이 역사》, 《어리석은 석반》, 《권태》, 《산촌여정》, 《H형에게》, 심훈 작가님의 《상록수》, 판소리 다섯 마당 《춘향전》, 《심청전》, 《흥보전》, 《토끼전》, 《적벽가》예요. 널리 알려진 작품들이지만 저자는 각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음식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혼불》에서는 조선 시대 명문가의 죽 만드는 풍습과 전통이 고스란히 재현되어 있고, 거멍굴 천민들의 일상 밥상과 춘궁기 음식, 산후 조리로 구하여 먹는 민간 음식 풍속이 잘 드러나 있어서, 제목 그대로 한국인의 혼을 잘 드러내는 소설이라고 설명해주네요. 그림으로 구현된 《혼불》의 밥상을 보면, 아픈 이들의 속을 달래주는 치유의 음식인 흰죽, 임산부를 위한 보양식인 가물치 고음, 전주의 상징 식재료로 만든 콩나물무침과 청포묵, 잔치음식에 늘 등장하는 고소한 전과 화양적, 구황 식재료인 쑥으로 만든 쑥턱, 풍류 음식인 국화주와 화전이 차려져 있어요. 음식 이야기라고 하면 대부분 식재료와 레시피를 떠올리는데, 《문학이 차린 밥상》은 음식을 매개로 하여 더 깊숙히 탐구해온 음식 문화와 역사를 재조명하고 있어요. 원래도 한식을 좋아했지만 훌륭한 문학 작품을 통해 우리의 음식 문화를 알게 되니 더욱 애정이 커졌어요. 소설 속에서 인생, 사람, 한식 문화, 그리고 한국인의 정체성을 배운 저자의 공부 결과물이라는 이 책 덕분에 특별하고도 맛있는 인문학 수업을 받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