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적으로 이곳의 허리케인 시즌은 4월에서 11월이다.


한해동안 크고작은 허리 케인이 Gulf of Mexico에서 생성되지만, 경험상 거대한 것들은 8월말에서 9월중순쯤 오는 것 같다. 

2017년 이곳을 물바다로 만들어버린 Harvey도 8월 말에 왔었다. 


재난으로 유명(?)한 이곳으로 이주 오기 전까지는, 나는 재난을 몰랐다. 

자연재해의 경험 없었다는 것을 재난을 겪고 나서야 비로서 깨닫게 되었다. 


2017년 8월. 4일간 밤낮 퍼붓는 비가 그렇게 무서운 것인지 처음 알았다. 3층짜리 아파트에서 2층에 살고 있는 나조차 2층이 잠길 수도 있는 상황에 1층에 사는 사람들은 밤새 잠을 못 이루고 밖에 나와 하염없이 내리는 비에 어찌 할 줄 모르고 정말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저런 모습이구나 싶었다. 이미 많은 곳들이 물에 잠겨서 보트나 헬리콥터를 타고 탈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 와중에 아파트 안에 있는 작은 호수도 눈앞에서 넘실넘실 거리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막을 방법은 없다. 비를 내리게 하는 방법은 있지만 내리는 비를 우회하거나 막을 수 없는 방법은 없었다. 그렇게 Harvey의 비 구름은 삶의 터전인 집과 상점을 물에 가둬 버렸다. 사방에 물로 가득차니 물이 빠져나가는 것만해도 짧게는 2~3일 길게는 한달까지 물이 빠지지 않는 곳이 있었다. 


재난의 시간은 비가 오는 시간만이 아니다. 

물이 잠긴 집을 공사하기 전 바닥을 뜯어내고 물건들을 치워주는 봉사를 하러 간 적이 있다. 

잠겼던 집에서 나는 악취는 상상을 초월했다. 마스크를 뚫고 흘러들어오는 지독한 냄새는 하우스가 밀집되어있는 커뮤티니 전체에서 나고 있었다. 재난에도 냄새가 있었다. 그리고 물에 잠기면 아무 건질 것이 없다는 말은 참말이었다. 어느 것 하나....심지어 사진 한장 조차도 남겨주지 않았다. 재난의 크기를 경험한 이들은 어쩌면 각자가 겪은 재난에서 비롯되어 이어지는 재난에 대비하는 자세로 계속 되어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하비의 재난 경험의 층위는 각자 다르겠지만, 적어도 며칠 밤낮 내리는 비의 공포는 공평하게 겪어냈다. 

그래서 재난에 대비하는 이 곳 사람들의 자세는 동일하게 재빠르고 겸손하다. 전기가 나갈 경우를 대비하며 비상식량을 사재기하고 모두 서로의 안전을 살핀다. 나도 어느새 그 대열에 끼어 환경에 적응 또는 극복해 나가고 있었다. 


몇 주전 Ida는 예상과 달리 텍사스가 아닌 뉴욕으로 보내고, 허리케인 Nicholas는 예상대로 이곳으로 왔다. 

바람이 거세지면서 전기가 나갔다 들어왔다를 반복하는 걸 보고서 어제 잠에 들었다. 새벽이 비가 많이 올거라는 예상에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하루밤 사이 물난리는 불가능하다 생각했다 (사실 뉴욕은 하룻밤일이었지만..) 


일어나자마자 창밖 물의 위치를 체크했다. 많이 오긴 왔다. 윗둥만 보이는 데크가 거의 잠겨 있었으니..

이렇게 하루만 더 오면 Harvey 상황이 되겠지만, 다행이도 Nicholas는 지나가고 있는 것 같다. 


재난조차도 추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허리케인이 이곳의 삶의 모습들 중에 빠질 수 없는 것중의 하나는 분명하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21-09-15 0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9-17 05: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1-09-15 07: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피해 없으셔서 다행이네요 ㅜㅜ 미국은 재난도 스케일이 크다느는 느낌이 듭니다 🙄

han22598 2021-09-17 05:25   좋아요 1 | URL
스케일 빼면 시체인 미국 ㅠㅠ.... 감당이 안되요..

mini74 2021-09-15 09: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별일 없으셔서 다행이에요. 안그래도 신문 등에 미국에 니컬러스? 로 홍수에 곳곳 정전이라고 하더라고요.모두들 큰 피해 없기를 바랍니다.

han22598 2021-09-17 05:33   좋아요 1 | URL
니컬러스님..텍사스를 넘어..저기 뉴올리언즈, 미시시피등..동쪽으로 이동하면서 피해를 주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점점 허리케인이 강력해진 이유가 기후 변화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오늘 뉴욕타임즈에 의하면) 그 이유가 두가지 이유가 있는데, 상승기온으로 인해서 점점 수분을 더 많이 품은 허리케인들이 만들어지고 (사실 최근 몇년간 오는 허리케인들이 바람보다는 많은 양의 비로 인한 피해가 더 심한 것 같아요), 그리고 허리케인 움직이는 속도가 떨어져서 오랫동안 머물면서 국지적(?)으로 비를 뿌리는 게 문제인데..이건 적도를 향해서 부는 바람이 약해졌기 때문이래요. 결국 이것도 적도와 북반부의 사이의 기온차가 점점 좁혀지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바람은 기온, 기압차로 인해서 발생).....기후변화로 인한 변화는 점점 심각해지고 그 영향이 우리 코 앞까지 온 것 같아요 ㅠㅠ

너무 갑자기 너무 주절주절..ㅠㅠ 거린 것 같아서 죄송해요.

라로 2021-09-15 13: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정말 재난이 점점 강도가 심해지는 것 같아요. 저희는 이제 막바지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고 있는데 제발 불이 안 나기만을 바라고 있어요. 여긴 불과 지진,,,비가 많이 부족한데 공평하게 나눠 내리면 얼마나 좋을까? 인생이 공평하지 않은 것처럼 자연도 그런 것 같아요.

han22598 2021-09-17 05:35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공평하게 비도 나눠갖고...사이좋게 지내면 좋을 텐데요.
엘에이쪽도 산불이 심한가요? 불 나면 공기도 많이 안 좋아질텐데..외출하실때 조심하세요^^

월천예진 2021-09-15 14: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소식 궁금했었는데 글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무사히 살아남으셔셔? 정말 다행입니다.!!! 대자연의 힘은 근접하기 어려운 그 무엇인듯 해요. 이런 순간이 올 때마다 인간은 더더 겸손해져야한다고 생각하지요. 무섭네요.

han22598 2021-09-17 05:38   좋아요 1 | URL
앗! 월천예진님 감사합니다.
지구가..많이 아픈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도 같이 이 지구에서 건강하고 안전하게 함께 살기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아요....

Jeremy 2021-09-17 11: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han22598 님, Texas 에 사시는군요.
제 서재 방문해서 댓글 달아주셔서 반갑습니다.
제 동생 가족이 Austin,Texas 에 살고 Florida 에 살고 있는 막내까지,
그래서 나름 미 전역의 자연재해에 걱정하는
그런 청개구리 아들과도 같은 심정으로 살고 있습니다.

han22598 2021-09-25 04:38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오스틴 지난주에도 다녀왔는데. 동생분이 제가 있는 곳보다 그래도 좋은 곳에 살고 계시네요 ㅎㅎ
맞아요. 미국은 자연재해에 자유롭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