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제션 - Possessio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기네스 펠트로우가 나오는 영화라는 것,
그리고 대단히 정적인 영화일 것이라는 추측,
극장에서 상영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정보,
표지의 붉은 색이 맘에 썩 들었다는 취향,
이 네가지를 가지고 이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약간의 미스테리가 가미되었고 그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과정이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교차편집하는 기법으로 조명되었다.

이 영화는 영국을 배경으로 한다.
학자와 전통의 나라, 영국.
가장 중요한 소재는 현재 문학계에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계관시인 '랜돌프 애쉬'.
물론 픽션이다.

줄거리는 랜돌프 애쉬 100주년 기념 주간을 맞아 그에 관한 자료를
조사하던 미국계 학자 롤랜드 미첼(아론 에크하트 분)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아내에 대한 열정적 연시를 많이 남긴 낭만적인 애처가로 유명한 애쉬가 당시 진보적 페미니스트이며 레즈비언이었던 여류시인 크리스타벨 라모트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연서를 우연히 찾게된 것이다.

롤랜드는 애쉬와 크리스타벨의 관계에 대해 확실한 사료를 찾기 위해
크리스타벨을 연구하는 학자이자 그녀의 후손인 모드 베일리 박사(기네스 팰트로 분)를 만나게 된다. 롤랜드의 추리를 완전히 무시하던 모드는 빅토리아 시대의 두 시인들의 숨겨진 로맨스를 알게 되고, 그때부터
모드는 롤랜드와 함께 영국과 유럽 본토를 넘나들며 사실 확인을 위해
그들의 행적을 쫓다 결국 롤랜드와 사랑에 빠지고 그녀의 고조 할머니인
크리스타벨과 애쉬의 사랑을 증명하게 된다는 이야기.

중간 중간의 볼거리가 많으며 중요한 디테일들이 넘쳐난다.
영국의 풍광, 고성에서의 티 타임 - 홍차가 담긴 찻잔이 진짜 이뻤음.
역사에 대한 영국인의 오만한 자신감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들이 나온다.
미첼은 애쉬를 연구하는 박사의 연구 보조로 영국에 와서 공부하고
자료찾고 소위 각종 딱갈이를 하게 되는데 서점 주인을 비롯해 거의
모든 사람으로부터 기묘한 태도를 느끼게 된다. 일단, 미국인이라는 점에서 살짝쿵 무시한다. 왜 미국인이 영국에 와서 공부를 하는 것이지?
라는 듯한 태도. 미첼은 차츰 익숙해진다. 하지만 모 기분이 썩 좋진
않다. 책 한권을 빌릴래도 지도 교수가 누구인지를 밝혀야 하는
과정에서 미국인이라는 점은 아주 묘한 무시를 받는다.
씩 웃으며, "미국인은 영국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미첼의 표정에서
왠지 그 기분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하면 옳을까나.
시와 학문을 쫓아서 영국까지 왔건만 학생도 교수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에서 그는 자기를 밝혀야 할 때마다 껄쩍지근하다.
미국인인데다가...

롤랜드가 크리스타벨 라모트를 연구하는 베일리 박사를 역에서 만날 때
두번째로는 밝은 금발머리로 염색을 하고(기네스의 원래 머리색은 모르겠지만 여하간 영화에서 대단히 밝은 블론드로 나옴)나온 베일리 박사는
"모드?" 하고 묻는 롤랜드에게 "닥터 베일리"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박사다 이거다. 교수다 이거다. 연구보조랑은 다른.
그녀는 자신의 추리를 말하는 롤랜드에게 가차없이 말한다.
크리스타벨은 자신의 선조이며 그녀는 당시 그림을 그리는 연인이
있었고 레즈비언이었으며 애쉬와의 로맨스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딱 잘라 말하는 그녀는 그 사실에 놀라하는 롤랜드에게 대체 라모트에
대한 책을 읽기나 한 것이냐며 사전 조사의 빈약성을 추궁한다.
하지만 그의 열정적인 연구에 살며시 호기심을 표시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한 올의 흐트어짐도 없이 머리를 꽁꽁 묶어 올리고 나온다.
라모트와 애쉬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친해진 롤랜드가 왜 머리를 올리
느냐고 묻자 금발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모드 역시
그녀의 고조 할머니처럼 정신 없이 연구를 하고 롤랜드에게 빠지며
프랑스로 조사를 갔을 때는 바람 때문인듯 훨씬 자연스럽게 잔머리가
흐르는 머리로 바뀐다. 모~나중에는 롤랜드가 아예 풀어주지만.

그들의 조상인 크리스타벨과 애쉬의 사랑은 훨씬 어렵고 대담하다.
유명한 시인이었던 애쉬는 어느 파티에서 크리스타벨을 만나
대화를 한 뒤 그녀의 지성에 감탄한다. 그녀 역시 애쉬와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데 서로에 대한 호감으로 시작해 영혼과 지성을 교감하는
편지를 주고 받던 그들은 어느새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둘만의 교감을
하게 되고 그것은 사랑의 감정으로 발전한다.
훌륭하고 모범적인 가정에 완벽한 삶을 살던 애쉬
그리고 조용하게 살면서도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크리스타벨.
감정이 깊어지자 크리스타벨은 서신 교환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그간 오고간 편지를 돌려달라고 부탁한다.
"우리의 편지들만이라도 함께 있을 수 있도록"
오고 가는 그들의 서신은 완벽하게 로맨스 그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모르는 사랑을 시작하고 발전시킨 연인에게 질투를 감추지
못하며 불안해 하는 모드의 연인이자 동거인 ???.
그리고 직감적으로 남편의 변화를 알아챈 애쉬의 부인,
하지만 두 사람의 일상은 변함없이 흘러간다.
하지만 모드의 연인은 모드를 잃는 것이 두려워 서신 중단 요구 후에도
애쉬가 모드에게 계속 보낸 편지들을 감추었고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된 모드는 과감히 애쉬와 만나 여행을 떠난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서는 라모트와 애쉬.
서로의 손을 잡고 그 자리에 함께 있음을 꿈처럼 확인하는
라모트와 애쉬.
라모트는 생애서 그처럼 열정적으로 집중했던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들은 요크셔로 둘만의 여행을 떠난다.
기차에서 애쉬는 빅토리아 시대의 관습처럼 고급스러운 불륜인 듯
방을 어떻게 쓸것인지 묻는다. 라모트는 담담하게 대답한다.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요, 그러고 싶어서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닌가요?
당신은 나와 함께 있고 싶지 않은가요?"
기쁨에 차 반지를 보여주는 애쉬에게 라모트도 자신의 반지 낀 손을
보여준다. 그들의 결심은 서로를 결속시키는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열정은 소멸할 것이라고 말한 라모트는 그 열정을
실현하는 여행을 떠나 꿈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들의 자취는 라모트의 시를 통해 나타나고
라모트의 시는 모드의 목소리를 통해 되살아난다.
고성에서 라모트의 인형상자에 감추어진 편지들.
토마슨 폭포 뒤에 숨겨진 비밀 폭포.
그 모든 은유와 상징은 애쉬와의 사랑을 표현한 것이었다.
예정된 4주가 지나갈수록 오히려 불안하고 초조해 하는 것은 애쉬였다.
잘못된 선택이었다면 어쩌나 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그를 다정하게
위로하는 라모트.
"절대 후회하지 않으며 신에게 감사한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내 사랑"
그들이 보낸 시간의 기쁨을 시로 적은 뒤 찢어버리는 라모트.
너무 완전하게 표현해서 남길 수 없었던 그 시들을 적은 종이의 조각을 그녀는 기차에서 땅으로 뿌려
그들의 사랑이 땅에서 뿌리를 내리기를 기도한다.
역사와 기록에서 라모트는 그 여행 이후 사라졌다.
라모트는 프랑스로 갔을 것이라는 추리를 하는 롤랜드를 따라
모드와 롤랜드는 프랑스로 가고 그곳에서 그녀의 흔적을 찾는다.
그녀는 임신을 해서 프랑스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찾아오는 애쉬를
만나주지 않는다. 그리고 라모트의 연인은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애쉬는 그녀의 아이가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녀와 결별,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는데 그의 임종이 임박했을 때 라모트의 편지가
전달된다. 그녀에게는 딸이 있었다. 그들의 아이였다.
그 아이는 입양되어 자랐고 모드는 딸을 보기 위해 프랑스에 머물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사실을 알게된 모드는 고통스러워한다.
미혼모로서의 라모트의 절망 등을 상상하며 선조의 삶을 동경해온 것이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며 허망해한다.
그런 그녀에게 롤랜드는 당신의 그들의 자손이라며 자랑스러워하고.

마지막에 영화적 추리가 나온다.
애쉬는 우연히 라모트를 찾으러 가는 길에 한 소녀를 발견한다.
이름을 묻는 그에게, 이상한 이름이 하나 더 있다고 말하며
마이아 토마슨 베일리 라고 말하는 소녀,
애쉬는 쿵 하는 얼굴로 소녀를 바라보고 알아본다.
소녀가 그들의 딸이라는 것을.
소녀에게 꽃 왕관을 만들어 주고 머리카락을 얻어 간직한 뒤
이모에게 전하라며 서신을 건네는 애쉬.
소녀는 손가락을 걸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죽을 때까지 지속된다.

현대인인 모드와 롤랜드의 사랑은 더 이기적이다.
그들은 열정을 감추고 상처입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며 분투한다.
요크셔에서 서로에게 빠져 키스를 나누던 남녀는 잠시 서먹해지자
관계를 포기하며 말한다.
여자가 말한다.
"잠깐만요"
남자가 말한다.
"미안해요, 이게 아닌데..내게는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어요."
미안해 하지 말라고 확신을 주기 위해 여자가 말한다.
"이불을 걷기 위해서였어요"
하지만 여전히 망설이는 남자.
여자는 말한다.
"난...상관없어요"
남자는 "상관없어요?"라고 말한다,
냉정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스스로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의 그러한 벽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사라지고
둘은 점점 솔직해진다.

게다가 미국 남자의 원본 훔치기 작전~
작은 자료 하나에도 민감하게 박물관의 수순을 밟은 영국인과 달리
불같은 추진력으로 원본을 살짝 훔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롤랜드.
나중에 모드도 이것을 써먹는다. 프랑스에서..ㅋㅋㅋ
그녀와의 오해로 헤어진 후에 집에서 모드의 주민등록증을 꺼내
보는 롤랜드. 사진 한장이라도 가지고 싶어 그녀의 주민등록증을
슬쩍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집에 꽃과 새로운 자료를 들고
방문한 그는 또다시 슬쩍 그녀의 주민등록증을 원상태에 복귀시킨다.
그런 미국인다운 융통성이 아주 맘에 들었음.
그리고 롤랜드가 지도 교수에게 모드를 소개하며
"닥터 베일리"라고 하자 모드는 스스로 "모드"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그들이 라모트와 애쉬의 로맨스를 추적하며 달라진 모습들이
서서히 나타나는 것이다.
이를테면 닥테 베일리가 모드로, 쫑여맨 머리에서 자연스런 스탈로.
그런 사소하고 섬세한 감정의 결이 매우 잘 살아있는 영화였다.
개인적으로는 많은 영감을 받은 영화였음.
선조들과 달리 현대는 남녀의 경제적 신분이 바뀌었음.
남자가 능력도 없고 가난하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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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인 맨하탄 (1disc) - 할인행사
웨인 왕 감독, 제니퍼 로페즈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러브 인 맨하탄>

제니퍼 로페즈, 랄프 파인즈 주연
웨인 왕 감독(조이 럭 클럽과 스모크를 만든 감독)

음...뭔가 괜찮은 작품하나 나오지 않을까? 모~보면 알겠지.
연인들 가득한 시사회장에 홀로 외롭게 앉아서 산타페를 홀짝거리며
영화를 보았다.

제니퍼 로페즈는 자신의 혈통을 살려 라틴계 이민 2세대로 등장,
엄마와 아들, 이렇게 셋이 가난한 동네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녀의 아들도 그녀도 무지하게 씩씩하고 긍정적이다.
버스를 타고 등교&출근을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그래서 보는 이에게
활기를 준다. 비록 이혼하고 무심한 남편에게 화나는 일이 무지 많지만
아들이 너무 똑똑해서 행복한(엄마가 되면 다 그럴까?) 제니퍼 로페즈는 호텔에서 메이드로 일한다. 제니퍼 로페즈야 완벽한 드림을 일군 여인이지만 실상 빈곤 국가의 이민 2세대들이 미국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흑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3D 업종.가정부나 요리사 등이며 메이드는 그래도 양호한 편이다.

직장 내에는 그녀의 단짝 친구들이 있다. 그녀까지 한 4명.
물불을 가리지 않고 서로를 돕는 4인방 중 제니퍼는 당연히 봉황이다.
인물이나 야심 정도에서...왜? 주인공이니까.
메이드 복이 헐렁할 정도로 살을 쑥 뺀(엉덩이조차 좀 작아진 것 같았다)
제니퍼 로페즈는 출근해서 메이드 매니저 자리가 비워진 것을 알게 된다.
당연히 그 자리를 원하지만 여러가지 문제로 망설인다. 그런 그녀를 위해
친구들이 나서고 제니퍼는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꼭 그 자리에 가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제니퍼의 아들은 어린 정치가 지망생으로 1970년대 역사를 배운 뒤
'닉슨'에 푹 빠져 있다. 하지만 여름 내내 준비한 연설을 무대 공포증으로 망치고 만다. 실망에 빠진 아들을 위로하는 제니퍼. 의기소침한 아들을 위해 호텔에서 하루를 보내기(제니퍼는 일하고 아들은 여기 저기서 노는 거지, 방 쓰고 룸서비스 하는 게 아니야요)로 한 모자!
여전히 우울해 하는 아들을 보면서 안 떨어지는 걸음으로 일하러 가는 제니퍼. 그날 그 호텔에 묶으러 온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랄프 파인즈. 그는 아버지에 이어서 정치를 하는 "상원의원"으로 선거차 맨하탄에 온 것이다. 하원도 아니고 상원이라...민주주의가 우리나라보다 100년 이상 앞섰을 뿐 아니라 국제 사회의 절대강자인 미국이니 정치가의 끗발도 우리나라랑 수준이 다르다. 어쨌든 그는 거의 왕자다. 대를 이은 정치가 집안이면 거의 로열 패밀리. 벌써 그에게는 그보다 더 그의 이력을 신경쓰며 챙기는 동창 친구도 있다. 정치인이 주인공일 때 반드시 등장하는 심복이자 부하인 친구...음...게다가 이 남자 매력적인 외모로 거의 모든 가십란을 장식한다. 정작 본인은 무심하지만 (완벽한 왕자 조건)

요 남자가 강아지를 산책시키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제니퍼의 아들과 만난다. 꼬맹이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이 꼬마 정치가 지망생은 척척 묻도 대답한다. "보수당인가요? 난 당신을 알아요" 등등
보좌관은 긴장하며 "어느 파에서 보냈지, 누가 시켰어?" 등등을 물어
웃음을 자아낸다. 여차저차 해서 죽이 맞은 두 사람은 보좌관을 따돌리고 소년을 따라 스위트 룸으로 간다.
소년이 엄마가 거기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남자는 당연히 투숙객인줄 알지만 사실 그날 제니퍼의 담당 구역이 스위트 룸이었다. 그 시간 친구와 룸 청소를 하던 제니퍼는 반납을 부탁한 랄프 로렌 옷을 입어 보네 마네 다투고 있었다. 물론 소년이 랄프를 데리고 들어 왔을 때 제니퍼는 그 옷을 입고 있어서 남자에게 완벽한 착각을 하게 하지만. 친구의 전폭적인 연기와 지지로 남자와 공원을 산책하게 된 세 사람. 모 약간의 실수들이 있다. 제니퍼의 옷에 영수증이 달려 있다거나..등등 메이드의 머리 모양도 옷이 좋으니 날개가 되는 것 같았다. 여하튼 두 사람은 엄청 삐리리~를 느끼고 남자는 소년의 의기소침한 마음을 풀어주기까지 한다.
고맙게시리~

돌아오자 지배인이 제니퍼를 부른다. 잔뜩 긴장한 제니퍼.
알고 보니 매니저 승진이었다. 일주일간의 교육이 끝나면...
서류 접수를 안한 제니퍼 대신 친구가 접수를 시킨 것이다.
화를 내는 제니퍼에게 친구가 말한다.
"이건 기회야. 나한테 화내지마. 우리는 엄마들처럼 살지 말아야지
노후를 생각해"
그건 정말 아주 중요한 기회였던 것이다. 하지만 고 중요한 시점에
일에 집중을 못하게 하고 이중생활을 하게 만드는 남자가 등장한거지.

이런저런 오해와 에피소드 끝에 남자는 제니퍼를 파티에 초대하고
친구들인 호텔 종업원들의 도움을 받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최고로 치장한 제니퍼는 롤스로이스를 타고 파티에 간다. 그리고 다시 만날 수 없다고 말을 하지만...그날 삐리리~하고 사실도 말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 삐리리~를 한 곳이 바로 그녀의 직장이자 그가 투숙한 호텔.
결국 꼬리를 잡히고 만 제니퍼 쫒겨난다. 승진을 코앞에 두고,,,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한참을 밖에서 울다가 집에 돌아온 제니퍼를 조용히 위로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숙제를 하는 아들. 자신의 상황을 언급하기 싫어 밥 먹을까? 뭐 먹을까 하고 끊임없이 종알거리는 제니퍼에게 무조건 예스하는 아들..
하지만 제니퍼의 엄마는 만반의 잔소리를 준비하고 자신을 보지도 않는 딸에게 마침내 말한다. "내 말 좀 들을래?"
제니퍼의 대답 "아니, 목욕이나 할래"
하지만 엄마가 누군가~목욕탕까지 따라와 잔소리를 퍼붓고 결국 두 모녀는 아들을 방에 가라고 한뒤 대판 한다. 다시 가정부로 직업을 찾아 주겠다는 엄마에게 대들다가 "그래, 엄마 난 최고의 가정부야. 하지만 내 직업은 내가 찾을께, 다시 메이드로 시작해 매니저가 될 거야"

남자의 생활도 엉망이었다. 메이드와의 스캔들은 연일 신문에 발표되고..오해하고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 겨울이 되자 그가 다시 선거를 위해 돌아오고 그녀는 다른 호텔에서 메이드로 일한다. 그가 맨하탄에 온 것을 아는 아들은 어떻게든 그를 만나고 싶어 엄마의 의사를 떠보지만 대답은 뻔~하지. 안돼~
아들은 엄마 몰래 학교를 빠지고 그가 인터뷰하는 곳을 찾아간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을 받는다고 할 때 뿅~ 나타난다. 영화니까.
"거짓말 해도 악의가 아니었고 뉘우치면 용서받아야 돼요. 안그럼 정치인들은 숨도 못쉴 테니까요."
눈빛으로 상황 파악 완료된 두 남자는 제니퍼를 찾아 뛴다.
보좌관과 기자들도 같이 뛴다.
마침내 만난 두 사람은 다시 시작하며 키스를 한다.
결혼으로 골인은 아니지만 잡지 표지가 계속 나와 그들의 소식을 전한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1년 후 여전한 그들"
"새로운 유형의 매니저 등장"
등등

너무 뻔한 이야기를 너무 요즘 스타일과 성격에 맞추어 했다.
건질 거 하나 제니퍼와 엄마의 싸움.
모녀관계란 참...그런 거 같다. 자식과 엄마는 다른 걸까.
자신의 아들에게 무한 관대하고 아들은 엄마를 감싼다.
그런데 막상 제니퍼의 엄마는 제니퍼를 늘 핀잔한다.
왜 그럴까?

두번째 궁금한 점.
제니퍼는 참 노력하는 스타인데 무지 섹쉬한 걸로 성공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도저히 섹시 만땅 스타로 안 나온다.
입술도 늘 흐린 것만 바르고 똑부러지고 가난하지만 씩씩한 여자로 주로 나온다. 이미지나 상상과 달리...이런 배우들이 있다.
고소영이도 싸가지 없는 인상과 달리 착한 여자 역을 주로 한다.
오히려 심은하가 악녀 비스무리한 거 다했다. 둘이 라이벌이었을 때.
리브 타일러도 이건 착하다 못해 순둥이다...
그런 여자들이 있다. 악녀의 이미지를 가지고 사진을 찍고
천사의 이미지를 가지고 영화를 찍는다.

그게 참...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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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퀼트 - [할인행사]
조셀린 무어하우스 감독, 위노나 라이더 (Winona Ryder)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이제는
어떤 가치도 갖지 못한 채 급속하게 허물어져가는 진리의 전당,
대학에서 깨달은 최고의 이념이다.

이전에 보았을 때 아무 감흥이 없던 영화들을
20살이 넘어서 다시 보았을 때
미처 느끼지 못하고 보지 못했던 것을을 나는 보고 느낄 수 있었다.
그때는 그때 나름대로 보고 느낀 것이 충분했을텐데...
두번째로 영화를 보면서 영화의 상황을 지금 나의 상황과
거의 모든 것에 대입해내는 내 능력에 실은 내가 더 놀랬다.

대부분 다시보는 영화들은 흥행도 별로였고 그다지 재미가 있는 영화들도 아니다.
하지만 그런 영화에서 얻어내는 것들은 놀랍게도 너무도 중요한 삶의 진리였다.
그것을 깨달은 다음부터는 어떤 영화도 허투로 볼 수가 없었다.
<아메리칸 퀼트>도 그런 영화 중 한 편이다.
위노나 라이더가 분한 주인공 '핀'은 또 다른 나였다.
그녀는 대학원 논문 주제를 3번이나 바꾸면서 학문의 길은 연장한다.
생산활동은 하지 않고 내키는 대로 공부를 하면서
끊임없이 흥미로운 것들을 찾지만 모든 것에 끈기없이 권태를 느끼는 핀.
그녀는 세번째 선택한 주제를 가지고 논문을 완성하기 위해
남자친구와 잠시 떨어져 이모 할머니들이 있는 시골로 내려온다.
시골은 물론 남부이다.
영화속에서 미국은 지역 설정이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대학 이후 학문의 길을 연장하되 각종 학문을 한 학기 정도씩 수강하면서
전공을 바꾸어 가는 핀의 모습은 나의 이상이자 자아였다.
할 수만 있다면 나도 그렇게 살고 싶으니까.
내키는 대로, 그때 그때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핀이 내려간 시골 환경은 또 얼마나 나른하고 쾌적한가.
작은 마을이지만 과수원 비슷한 것도 있어 나무도 많고 따뜻하며
차를 타고 가면 수영장고 있고 산 뒤로 계곡도 있다.
집도 생활하기 아주 불편한 것은 아니다.
그런 곳에서 한달이고 1년이고 너무 오래는 아니더라도
머물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한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때부터 '핀'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대신해주는 사람이 된다.
대리만족! 간접경험

그녀가 세번째로 선택한 논문 주제가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여하튼 그녀는 낡은 타이프로 치고 또 친다.
할머니들이 다 자는 밤에 달랑 가운 하나만 입고서
어둠 속에서 탁탁탁 타이프를 치고
더우면 컵에 가득 담긴 얼음을 꺼내 아그작 씹어먹기도 하고
얼음으로 얼굴을 맛사지하며 식히기도 한다.
그리고 할머니들이 아침식사를 다 마친 후에야 겨우 일어나서
뒤늦게 커피를 마시고 휴식을 취한다.
해질녘의 오후에는 마당 정자에 앉아서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한다. 매우 편안한 자세로 마음대로 앉거나 누워서.
아..부러워라.

난 끈적거리는 습기가 일으키는 불쾌지수와 짜증을 동반하더라도
여름이 가지고 있는 그 따뜻한 색깔이 너무도 좋다.
해질녘은 주황색, 붉은 보라색 또 반대로 새벽녘의 서늘함...
그리고 보색을 이루는 나무들의 푸르죽죽함.
보기만 해도 싱그럽다.
땀 좀 나면 어떤가!
여하튼 지금 당장 내게 주어지지 않은 것들만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나는 순간 이상주의자가 된다.
돈 욕심도 사라지고 명예욕도 사라지고 자연인이 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저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는 생각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는 것이다.

그리고 핀은 자신에 비해서 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좀 딸리는 남자친구를
배신하고 살짝쿵 바람을 핀다.
핀에게는 오매불망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있다.
직업은 목수. 벌써 결혼 생각에 그녀의 서재와 작업실을 설계도면에
그려놓고 집을 구상중이다. 유후~건축가면 좋겠지만 그는 분명 목수다!
그런 그에게 짜증을 부려대는 핀.
그녀에게 나타난 남자는 시골에서는 보기 힘든 느끼함을 수반한 섹시가이.
어느 시골 구석에 가야 그런 넘이 숨어 있는지 경험상 도대체 알 수가 없지만
어쨌거나 영화니까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그는 재력도 좀 된다. 시골인만큼 부동산으로 승부한다.
놀랍게도 도시의 바람둘이를 능가하는 느끼함까지 가지고 있다.
오~핀은 자꾸 흔들린다. 결국 데이트를 약속하는 핀.
시골에서 부시시하게 있다가 오랫만에 머리와 옷에 힘을 준 그녀!
홍조 띤 얼굴로 저녁을 먹으며 이모 할머니들의 관심어린 시선을 한몸에 받는다.
하지만 갑작스레 약속을 취소되고 실망한 그녀는 집 밖으로 나간다.
어둠이 주는 서늘함에 몸을 맡기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선 한 흑인여자.
핀보다 나이가 많은 딸을 둔 그녀는 핀에게 충고한다.
'충동적인 행동은 후회만 남을 뿐이라고'
그 말에 핀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난 젊기 때문에 무모할 권리가 있어요'

무모할 권리를 주는 젊은.
그 말에 난 무릎을 치고 가슴을 쳤다.
그 대사 하나로 <아메리칸 퀼트>는 내게 잊지 못할 영화로 남는다.
그래, 젊다는 것은 무모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용서와 포용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황홀한 자유인가.

영화는 길고 지루하며 4명의 여인들의 과거와 현재가 계속 나와서
삶은 진리를 말하주고 있었지만 나에게 그다지 감흥은 없었다.
영화잡지라고는 <스크린>과 <로드쇼> 밖에 없던 시절,
아메리칸 퀼트의 스틸 사진(고작해야 2장)이 실린 잡지와
요정처럼 이쁘게 세트장 속에서 포즈를 취하던 위노나 라이더의
이미지 사진(고작해야 2장)이 실린 잡지를 번갈아 보면서
비주얼적인 것에 현혹되어 어쩔줄을 모르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예쁜 것에 약하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어떤 것이던 아름다움에 약하다.)
그런데 그 사진 뒤에 감추어진 영화를 처음 보고
어찌나 무덤덤하던지 실망을 살짝쿵 했었다.
그런데 5년이 지나 다시 본 영화 속에는 여지껏 보지 못했던
새로움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발견, 이것이 내게 영화를 보는 재미를 준다.
그래서 나는 재미없는 영화도 항상 본다.
비디오 가게에 친구나 가족과 같이가면 항상 빈축을 사지만
나는 꿋꿋하게 특히 드라마 장르의 재미없는 작품들을 꼭 보곤 한다.

<아메리칸 퀼트>
내게 작은 삶의 진리를 깨우쳐 주고 용기를 준 영화!
젊다는 것은 무모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아직 젊은 것이다.
젊기에 조금 무모하더라도 그것은 나의 정당한 권리이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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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 Rosso 냉정과 열정 사이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장을 넘길 수록 숨이 가빠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던 블루.
이유는 간단했다. 어서 읽고 로사를 읽고 싶어서.
도서관에서 예약 신청까지 하고 마침내 로사를 읽었을 때
난 온 몸에서 힘이 빠지고 말았다. 기대 이상이었다.

블루에서 멀쩡한 허우대를 가진 준세이가 그토록이나 사랑하던 여자,
아오이는 너무도 조용하게 등장했다.

Rosso의 목차 앞장에 나타난 글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녀를 매우 고깝게 보았을지도 모른다.

"아가타 쥰세이는 나의 모든 것이었다
..중략...
만약 어딘가에서 쥰세이가 죽는다면, 나는 아마 알 수 있으리라.
아무리 먼 곳이라도, 두 번 다시 만나는 일이 없어도.."

그녀가 털어놓은 이 말로서 나는 그녀가 아무리 담담하고 침착하더라도
그 안에 들어있는 깊고 연약한 사랑을 알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후 세상의 색을 읽어버린 여자 아오이의 생활이 정적인 모노톤으로 에쿠니 가오리 특유의 무심한듯하면서도 절절한 문체로 쓰여있다. 읽고 있으면 아오이의 감정이 손에 잡힐 것 같다.

한 사람의 시각에서 쓰여진 것이 아닌, 두 사람의 관점에서 각각 다르게 느껴지는 사랑의 감정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점에서 냉정과 열정사이는 연인들의 심정을 가장 독특하고 진솔하게 이야기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를 그토록이나 사랑하는 그들은 이해와 대화의 단절로 헤어진다. 정말 간단하고 평범한 이유로. 부모의 반대와 오해. 60년대 신파?

하지만 사랑 이후 두 사람의 삶의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서서히 중독이 되어간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원치않았던 이별후에 너무나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삶을 시작한 여자 아오이는 단조롭고 고요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삶은 앤티크 샾에서 주 3회 아르바이트를 하며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고, 그녀를 너무나도 사랑하며 탄탄한 허벅지가 매력적인 마빈에게 맛사지를 받으며 느긋하게 목욕을 하것이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녀의 삶이 어찌나 단조로운지 소소한 일상인, 매일 먹은 좋은 음식과 좋은 와인 하나 하나까지도 우리는 다 알 수 있다.
그녀를 너무나 사랑하는 남자, 마빈. 하지만 마빈은 외국인이다. 따라서 동서양의 만남, 결혼이 아닌 동거는 매우 비도덕적으로 보여질 수 있다. 아오이의 냉정하고 침착함은 이 모든 것을 한마디 설명없이 정당화시키지만.
책을 읽는 동안 내가 마치 아오이가 된듯 매우 침착하게 읽을수 있었다. 현재의 삶을 만족해 하면서도 뭔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아오이의 마음을 반영하는듯한 깊게 관계하기를 꺼려하는 듯한 문체, 에쿠니 가오리는 내용보다도 더욱 건조한 문체로 아오이를 표현하지만 거기서 오히려 더 큰 여운이 생긴다. 아오이는 종종 요리를 하는 것을 좋아하고, 설겆이 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아마도 딱 그만큼 마빈을 좋아할 것이다. 때때로 아오이는 마빈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느끼지만 결코 표현하지 않는다.
내가 만약 남자라면 그런 아오이를 사랑하기는 힘들것 같다. 하지만 일단 그녀에게 마음을 주면 어쩔 수없이 빠질 것만 같다. 그녀의 쿨한 성격이 너무나 멋지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여자로서 아오이에게 푹 빠졌다.

집에서나 아르바이트에서나 항상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 아오이에게 마빈이 묻는다. 당신은 책을 좋아하는데 왜 사서 읽지는 않느냐고.

"저는 책을 읽고 싶을 뿐이지 소유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

마빈과 함께 살고있는 아오이의 생활 자체를 대변하는 말이다.

마빈을 아는 모든 사람은, 심지어 아오이의 절친한 친구조차도 평온한 그들의 사이 중간에 아오이에게 수시로 이야기한다. 마빈은 진심이라고. 그렇다면 아오이는 진심이 아닌가? 밖에서 보기에도 안에서 느끼기에도 아오이는 완전히 소유할 수 없는 여자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그들의 불안하지만 안정적이고 유쾌한 일상.
맛좋은 와인과 좋은 식사, 좋은 목욕탕과 좋은 그릇, 좋은 아파트와 어려운 청소를 맡아 하는 아주머니가 일주일에 한번씩 방문하는 안정된 삶을 보장해주는 마빈과의 동거 이전, 스무살의 아오이는 쥰세이와 격렬한 사랑을 나누었다. 그녀는 어느날 한통의 편지를 받으면서 쿨했던 아오이의 일상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마빈이 잠든 밤, 그녀는 참지 못하고 일본으로 전화를 한다. 준세이가 받는다. 하지만 아오이는 아무말도 못하고 잘못 것었다고 말한 뒤 그냥 끊어버린다. 전화기에 녹음된 빗소리를 듣고 밀라노의 날씨를 확인한 준세이는 그녀가 아오이임을 확신한다.

사랑하고 헤어진 뒤 같은 시간, 다른 삶을 살아간 두 사람 준세이와 아오이. 준세이를 그렇게나 애태운 그녀는 책이 거의 반이 지나도록 준세이를 언급하거나 떠올리지 않는다. 다만 그녀가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현재의 생활이다. 너무도 침착하고 조용한 그녀의 생활, 자신의 생활을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는 마치 다른이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처럼 자신의 삶은 관조한다. 그녀가 과연 10년 전 준세이의 아이를 가졌던 아오이가 맞는 것일까. 준세이의 수업이 끝나길 기다리던 그녀가 맞는 거일까.

어쨌거나 26,27,28? 이던가...
3년을 함께 살았던 마빈과의 생활은 어느날 준세이에게서 날아온
편지 한장으로 작게 균형이 흔들리다가 결국에는 깨지고 만다.
흥분하고 슬퍼하다가 돌아와 달라고 자신의 사랑과 기다림을 말하는 마빈과 달리
아오이는 마빈의 집을 나와 작은 아파트를 얻고 아르바이트 시간을 늘리고
조금 작은 욕조에서 목욕을 하고 머그잔에 와인을 마시며 다시 고요하게
자신의 일상을 만들어 간다.
대단히 현명하고 지해로우며 쿨하고 모든 것이 부러운 여자다.
그리고 촉촉한 듯 메마른 아오이의 가슴에는 열정도 있다.
30살 생일날, 끝까지 망설이기는 하지만 결국 정신없이 피렌체로 달려가
두오모에 오르는 그녀, 그곳에서 준세이와 다시 만난다.
약속을 잊지 않고 나와준 첫사랑이 있는 삶은 결코 단조롭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사랑과 이별, 재회를 넘어서 나는 생활이 바쁘고 정신없을 때면
로사의 아오이를 떠올리는 버릇이 생겼다.
종종 도서관에서 몇번을 더 대여해 읽던 나는 마침내 책을 구입했다.
너무 피곤하고 지칠때 로사를 펴고 느리게 펼쳐지는 아오이의 일상을 따라간다.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고, 맛사지를 받고, 목욕을 하고, 책을 읽고, 늦잠을 자고, 요리를 하고, 일을 하고, 설겆이를 하는 그녀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도 느긋하고 쿨한 그녀가 된 것 같다.

"아이를 지워" 이말을 듣는 것이 미리 두려워 차라리
"왜 그랬어"라는 말을 택하고 차이는 것을 선택한 아오이.
상처받기가 두려워 먼저 상처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소소하면서
큰 감동을 준다. 다시만난 준세이에게도 결코 "마빈과 헤어졌다"고 말하지 않는 아오이. '너 때문이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너뿐인걸' 이말을 하지 못한다. 거절이 두렵과 준세이가 느낄 부담이 싫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30이 된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할 일만 남지 않았을까.
배경은 이탈리아다, 결혼이 뭐 대수인가. 사랑하면 그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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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 Blu 냉정과 열정 사이
쓰지 히토나리 지음, 양억관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냉정과 열정사이 - 블루목차
1. 인형의 다리
2. 5 월
3. 조용한 호흡
4. 가을 바람
5. 회색 그림자
6. 인생이란
7. 과거의 목소리, 미래의 목소리
8. 엷은 핑크 빛 기억
9. 인연의 사슬
10. 푸른 그림자
11. 3 월
12. 석 양
13. 새로운 백년



이 책은 참...냉정한 주인공들과 어울리지 않게
닭살스러운 라디오 광고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 뒤 한번 읽어 보려고 학교 도서관에 갈 때마다 찾았지만
번번이 대여중이곤 했다.
결국엔 반납한 책들이 그득 쌓인 책수레에서 간신히 발견한 <Blue>편을 먼저 읽게 되었다.
반질반질하게 닳아있는 겉장과 달리 침한방울 묻지 않은 속지들..
책을 읽는 사람이 어떤 심정으로 이 책을 대했는지 알 것 같았다.
책을 빌려 읽게 되면 이런 점이 종종 느껴질 때가 있다.

원래 일본 문학을 즐기거나 관심이 있지는 않았다.
종종 역사책을 읽다보면 의외로 중국사와 한국사의 장편들이
일본 작가들의 것이여서 놀란 적은 많았지만...
특히 두명의 무라카미가 한국 문학계와 출판계에서 돌풍을 일으킬 적에도
그려려니 했다.
국내 현대 문학에도 무관심한 내가 일본의 현대 문학을 읽기에는
궁금한 역사가 너무 많았달까.
여하튼 쓰지 히토나리 쓰고 양억관 번역을 해서 소담출판사 출간한 <냉정과 열정 사이 Blue>는
내가 처음으로 읽은 일본 현대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대여하기가 너무 어려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숨박꼭질 끝에
간신히 손에 넣은 진부한 연애 스토리처럼
마침내 손에 넣은 책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갈아타기를 잊어버릴 정도로
단숨에 읽은 기억이 난다.

먼저 이 소설은 두 남녀의 연애담이다.
소설의 배경은 이탈리아이고 남자와 여자는 일본인이다.
남자의 이름은 준세이.
그는 미술복원사의 일을 하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티치아노, 미켈란젤로 거론하는 것만으로 숨막히는 대가들의 땅인 이탈리아만큼 고미술복원이라는 직업이 멋있는 곳이 또 있을까.
하지만 마냥 감탄을 하기에는 고미술복원이라는 그의 직업은 의미심장하다.
최고의 솜씨를 자랑하는 그의 복원능력은 잃었던 첫사랑을 다시 찾고 싶어하는 그의 내면을 형상화한 직업일 것이다.

건조한 듯 부드러운 히토나리의 문체는 준세이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다.
하얀 우유가 오랜 시간 상온에 있으면 위에 얇은 점막이 생긴다.
그 점막을 걷으면 희고 부드러운 우유가 그대로 있는 것이다.
준세이는 지난 사랑을 얇은 점막으로 가린 채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한 사람이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일단 준세이가 부러운 점 하나,
그는 매우 정적이고 관계가 단절되거나 단편적인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스스로 그 일을 좋아하며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타국에서 살면서 의사소통의 문제가 전혀 없으며 정확하게 등장하지는 않지만 빵빵한 집안으로 인해 재정적인 문제도 없다.
준세이는 10년 전 일본에서 대학을 다닐 때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공평하고 균등한 사랑...
그는 언제나 침착하고 자존심 강한 아오이와 만나 불 같은 사랑을 나눈다. 젊었지만, 너무도 젊었지만 그들이 나눈 것은 불장난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비록 그 풋풋함이 유치하더라도 그것은 사랑이었다.
준세이가 아오이을 항상 몰래 관찰하는 부분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준세이는 아버지와는 사이가 썩 좋지 않다.
어린 시절의 문제도 있고 동양에서는 흔히 있는 부자간의 갈등이다. 그는 대신 할아버지와 오히려 친구처럼 지낸다. 준세이는 어느날 아오이가 임신을 했지만 혼자 아이를 지운 것을 알게된다. 크게 상처입은 그는 아오이에게 이별을 말하고 그들은 헤어진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는 현재 이탈리아에서 고미술복원사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일상은 어찌나 담담하고 평범한지 모른다. 그는 항상 아오이를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은 너무 일상적이라 조금도 애절하거나 가슴 떨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는 것처럼 아주 평범한 일인 것이다.

그는 미술복원일에 사고가 생겨 일본으로 돌아 갔다가 대학시절의 한 친구를 만나 아오이가 왜 그 당시 아이를 지울 수 밖에 없었는지 이야기를 듣는다. 너무 허무하게도 아버지가 몰래 그녀를 찾아왔던 것, 진부하기 짝이 없는 구성이었다. 하지만 어수룩하고 단순한 준세이는 그 말에 심하게 동요하며 바로 사과의 편지를 보낸다. 친구에게서 알아낸 아오이의 주소로.
친구는 아오이가 미국인과 함께 살고 있다고 했지만 준세이는 그저 편지를 보낸다.
이런 점이 바로 준세이의 매력이랄까.
아주 단순한 점. 솔직한 점. 두 가지를 생각하지 않는 점.

그리고 그는 10년전의 약속을 기억하고 피렌체의 두오모로 간다. 20살에 사랑했던 그들은 10년 후, 아오이가 30살이 되는 날 그곳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었다.
그는 그곳에서 아오이를 만난다.
그리고 3일간 꿈같은 사랑을 나눈다.
헤어졌던 것도, 시간이 주는 어색함도 없이 그 열정 그대로 그들은 사랑을 한다. 하루 이틀이 지나자 두 사람은 서로 불안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3일이 되는 날, 아오이가 먼저 돌아갈 것을 말한다.
준세이는 잡지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그는 아오이가 탄 기차보다 먼저 밀라노에 가기 위해 달려간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니까.

계속 생각했다.
처음에는 도대체 아오이는 누구일까. 누구길래 준세이가 이토록 사랑할까. 생각했지만
읽을 수록 나는 블루는 준세이의 입장에서 써 내려간 글이었지만 아오이는 어떤 여성일까가 궁금했다. 누구길래 그녀는 준세이를 사랑할까가 더 궁금해진 것이다.
잔잔하고 고른 문장의 소설을 혼자서 숨가쁘게 읽으며 로사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블루는 로사를 읽기 위한 준비운동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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