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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 Blu ㅣ 냉정과 열정 사이
쓰지 히토나리 지음, 양억관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냉정과 열정사이 - 블루목차
1. 인형의 다리
2. 5 월
3. 조용한 호흡
4. 가을 바람
5. 회색 그림자
6. 인생이란
7. 과거의 목소리, 미래의 목소리
8. 엷은 핑크 빛 기억
9. 인연의 사슬
10. 푸른 그림자
11. 3 월
12. 석 양
13. 새로운 백년
이 책은 참...냉정한 주인공들과 어울리지 않게
닭살스러운 라디오 광고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 뒤 한번 읽어 보려고 학교 도서관에 갈 때마다 찾았지만
번번이 대여중이곤 했다.
결국엔 반납한 책들이 그득 쌓인 책수레에서 간신히 발견한 <Blue>편을 먼저 읽게 되었다.
반질반질하게 닳아있는 겉장과 달리 침한방울 묻지 않은 속지들..
책을 읽는 사람이 어떤 심정으로 이 책을 대했는지 알 것 같았다.
책을 빌려 읽게 되면 이런 점이 종종 느껴질 때가 있다.
원래 일본 문학을 즐기거나 관심이 있지는 않았다.
종종 역사책을 읽다보면 의외로 중국사와 한국사의 장편들이
일본 작가들의 것이여서 놀란 적은 많았지만...
특히 두명의 무라카미가 한국 문학계와 출판계에서 돌풍을 일으킬 적에도
그려려니 했다.
국내 현대 문학에도 무관심한 내가 일본의 현대 문학을 읽기에는
궁금한 역사가 너무 많았달까.
여하튼 쓰지 히토나리 쓰고 양억관 번역을 해서 소담출판사 출간한 <냉정과 열정 사이 Blue>는
내가 처음으로 읽은 일본 현대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대여하기가 너무 어려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숨박꼭질 끝에
간신히 손에 넣은 진부한 연애 스토리처럼
마침내 손에 넣은 책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갈아타기를 잊어버릴 정도로
단숨에 읽은 기억이 난다.
먼저 이 소설은 두 남녀의 연애담이다.
소설의 배경은 이탈리아이고 남자와 여자는 일본인이다.
남자의 이름은 준세이.
그는 미술복원사의 일을 하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티치아노, 미켈란젤로 거론하는 것만으로 숨막히는 대가들의 땅인 이탈리아만큼 고미술복원이라는 직업이 멋있는 곳이 또 있을까.
하지만 마냥 감탄을 하기에는 고미술복원이라는 그의 직업은 의미심장하다.
최고의 솜씨를 자랑하는 그의 복원능력은 잃었던 첫사랑을 다시 찾고 싶어하는 그의 내면을 형상화한 직업일 것이다.
건조한 듯 부드러운 히토나리의 문체는 준세이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다.
하얀 우유가 오랜 시간 상온에 있으면 위에 얇은 점막이 생긴다.
그 점막을 걷으면 희고 부드러운 우유가 그대로 있는 것이다.
준세이는 지난 사랑을 얇은 점막으로 가린 채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한 사람이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일단 준세이가 부러운 점 하나,
그는 매우 정적이고 관계가 단절되거나 단편적인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스스로 그 일을 좋아하며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타국에서 살면서 의사소통의 문제가 전혀 없으며 정확하게 등장하지는 않지만 빵빵한 집안으로 인해 재정적인 문제도 없다.
준세이는 10년 전 일본에서 대학을 다닐 때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공평하고 균등한 사랑...
그는 언제나 침착하고 자존심 강한 아오이와 만나 불 같은 사랑을 나눈다. 젊었지만, 너무도 젊었지만 그들이 나눈 것은 불장난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비록 그 풋풋함이 유치하더라도 그것은 사랑이었다.
준세이가 아오이을 항상 몰래 관찰하는 부분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준세이는 아버지와는 사이가 썩 좋지 않다.
어린 시절의 문제도 있고 동양에서는 흔히 있는 부자간의 갈등이다. 그는 대신 할아버지와 오히려 친구처럼 지낸다. 준세이는 어느날 아오이가 임신을 했지만 혼자 아이를 지운 것을 알게된다. 크게 상처입은 그는 아오이에게 이별을 말하고 그들은 헤어진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는 현재 이탈리아에서 고미술복원사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일상은 어찌나 담담하고 평범한지 모른다. 그는 항상 아오이를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은 너무 일상적이라 조금도 애절하거나 가슴 떨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는 것처럼 아주 평범한 일인 것이다.
그는 미술복원일에 사고가 생겨 일본으로 돌아 갔다가 대학시절의 한 친구를 만나 아오이가 왜 그 당시 아이를 지울 수 밖에 없었는지 이야기를 듣는다. 너무 허무하게도 아버지가 몰래 그녀를 찾아왔던 것, 진부하기 짝이 없는 구성이었다. 하지만 어수룩하고 단순한 준세이는 그 말에 심하게 동요하며 바로 사과의 편지를 보낸다. 친구에게서 알아낸 아오이의 주소로.
친구는 아오이가 미국인과 함께 살고 있다고 했지만 준세이는 그저 편지를 보낸다.
이런 점이 바로 준세이의 매력이랄까.
아주 단순한 점. 솔직한 점. 두 가지를 생각하지 않는 점.
그리고 그는 10년전의 약속을 기억하고 피렌체의 두오모로 간다. 20살에 사랑했던 그들은 10년 후, 아오이가 30살이 되는 날 그곳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었다.
그는 그곳에서 아오이를 만난다.
그리고 3일간 꿈같은 사랑을 나눈다.
헤어졌던 것도, 시간이 주는 어색함도 없이 그 열정 그대로 그들은 사랑을 한다. 하루 이틀이 지나자 두 사람은 서로 불안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3일이 되는 날, 아오이가 먼저 돌아갈 것을 말한다.
준세이는 잡지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그는 아오이가 탄 기차보다 먼저 밀라노에 가기 위해 달려간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니까.
계속 생각했다.
처음에는 도대체 아오이는 누구일까. 누구길래 준세이가 이토록 사랑할까. 생각했지만
읽을 수록 나는 블루는 준세이의 입장에서 써 내려간 글이었지만 아오이는 어떤 여성일까가 궁금했다. 누구길래 그녀는 준세이를 사랑할까가 더 궁금해진 것이다.
잔잔하고 고른 문장의 소설을 혼자서 숨가쁘게 읽으며 로사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블루는 로사를 읽기 위한 준비운동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