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제션 - Possessio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기네스 펠트로우가 나오는 영화라는 것,
그리고 대단히 정적인 영화일 것이라는 추측,
극장에서 상영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정보,
표지의 붉은 색이 맘에 썩 들었다는 취향,
이 네가지를 가지고 이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약간의 미스테리가 가미되었고 그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과정이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교차편집하는 기법으로 조명되었다.

이 영화는 영국을 배경으로 한다.
학자와 전통의 나라, 영국.
가장 중요한 소재는 현재 문학계에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계관시인 '랜돌프 애쉬'.
물론 픽션이다.

줄거리는 랜돌프 애쉬 100주년 기념 주간을 맞아 그에 관한 자료를
조사하던 미국계 학자 롤랜드 미첼(아론 에크하트 분)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아내에 대한 열정적 연시를 많이 남긴 낭만적인 애처가로 유명한 애쉬가 당시 진보적 페미니스트이며 레즈비언이었던 여류시인 크리스타벨 라모트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연서를 우연히 찾게된 것이다.

롤랜드는 애쉬와 크리스타벨의 관계에 대해 확실한 사료를 찾기 위해
크리스타벨을 연구하는 학자이자 그녀의 후손인 모드 베일리 박사(기네스 팰트로 분)를 만나게 된다. 롤랜드의 추리를 완전히 무시하던 모드는 빅토리아 시대의 두 시인들의 숨겨진 로맨스를 알게 되고, 그때부터
모드는 롤랜드와 함께 영국과 유럽 본토를 넘나들며 사실 확인을 위해
그들의 행적을 쫓다 결국 롤랜드와 사랑에 빠지고 그녀의 고조 할머니인
크리스타벨과 애쉬의 사랑을 증명하게 된다는 이야기.

중간 중간의 볼거리가 많으며 중요한 디테일들이 넘쳐난다.
영국의 풍광, 고성에서의 티 타임 - 홍차가 담긴 찻잔이 진짜 이뻤음.
역사에 대한 영국인의 오만한 자신감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들이 나온다.
미첼은 애쉬를 연구하는 박사의 연구 보조로 영국에 와서 공부하고
자료찾고 소위 각종 딱갈이를 하게 되는데 서점 주인을 비롯해 거의
모든 사람으로부터 기묘한 태도를 느끼게 된다. 일단, 미국인이라는 점에서 살짝쿵 무시한다. 왜 미국인이 영국에 와서 공부를 하는 것이지?
라는 듯한 태도. 미첼은 차츰 익숙해진다. 하지만 모 기분이 썩 좋진
않다. 책 한권을 빌릴래도 지도 교수가 누구인지를 밝혀야 하는
과정에서 미국인이라는 점은 아주 묘한 무시를 받는다.
씩 웃으며, "미국인은 영국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미첼의 표정에서
왠지 그 기분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하면 옳을까나.
시와 학문을 쫓아서 영국까지 왔건만 학생도 교수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에서 그는 자기를 밝혀야 할 때마다 껄쩍지근하다.
미국인인데다가...

롤랜드가 크리스타벨 라모트를 연구하는 베일리 박사를 역에서 만날 때
두번째로는 밝은 금발머리로 염색을 하고(기네스의 원래 머리색은 모르겠지만 여하간 영화에서 대단히 밝은 블론드로 나옴)나온 베일리 박사는
"모드?" 하고 묻는 롤랜드에게 "닥터 베일리"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박사다 이거다. 교수다 이거다. 연구보조랑은 다른.
그녀는 자신의 추리를 말하는 롤랜드에게 가차없이 말한다.
크리스타벨은 자신의 선조이며 그녀는 당시 그림을 그리는 연인이
있었고 레즈비언이었으며 애쉬와의 로맨스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딱 잘라 말하는 그녀는 그 사실에 놀라하는 롤랜드에게 대체 라모트에
대한 책을 읽기나 한 것이냐며 사전 조사의 빈약성을 추궁한다.
하지만 그의 열정적인 연구에 살며시 호기심을 표시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한 올의 흐트어짐도 없이 머리를 꽁꽁 묶어 올리고 나온다.
라모트와 애쉬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친해진 롤랜드가 왜 머리를 올리
느냐고 묻자 금발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모드 역시
그녀의 고조 할머니처럼 정신 없이 연구를 하고 롤랜드에게 빠지며
프랑스로 조사를 갔을 때는 바람 때문인듯 훨씬 자연스럽게 잔머리가
흐르는 머리로 바뀐다. 모~나중에는 롤랜드가 아예 풀어주지만.

그들의 조상인 크리스타벨과 애쉬의 사랑은 훨씬 어렵고 대담하다.
유명한 시인이었던 애쉬는 어느 파티에서 크리스타벨을 만나
대화를 한 뒤 그녀의 지성에 감탄한다. 그녀 역시 애쉬와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데 서로에 대한 호감으로 시작해 영혼과 지성을 교감하는
편지를 주고 받던 그들은 어느새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둘만의 교감을
하게 되고 그것은 사랑의 감정으로 발전한다.
훌륭하고 모범적인 가정에 완벽한 삶을 살던 애쉬
그리고 조용하게 살면서도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크리스타벨.
감정이 깊어지자 크리스타벨은 서신 교환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그간 오고간 편지를 돌려달라고 부탁한다.
"우리의 편지들만이라도 함께 있을 수 있도록"
오고 가는 그들의 서신은 완벽하게 로맨스 그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모르는 사랑을 시작하고 발전시킨 연인에게 질투를 감추지
못하며 불안해 하는 모드의 연인이자 동거인 ???.
그리고 직감적으로 남편의 변화를 알아챈 애쉬의 부인,
하지만 두 사람의 일상은 변함없이 흘러간다.
하지만 모드의 연인은 모드를 잃는 것이 두려워 서신 중단 요구 후에도
애쉬가 모드에게 계속 보낸 편지들을 감추었고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된 모드는 과감히 애쉬와 만나 여행을 떠난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서는 라모트와 애쉬.
서로의 손을 잡고 그 자리에 함께 있음을 꿈처럼 확인하는
라모트와 애쉬.
라모트는 생애서 그처럼 열정적으로 집중했던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들은 요크셔로 둘만의 여행을 떠난다.
기차에서 애쉬는 빅토리아 시대의 관습처럼 고급스러운 불륜인 듯
방을 어떻게 쓸것인지 묻는다. 라모트는 담담하게 대답한다.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요, 그러고 싶어서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닌가요?
당신은 나와 함께 있고 싶지 않은가요?"
기쁨에 차 반지를 보여주는 애쉬에게 라모트도 자신의 반지 낀 손을
보여준다. 그들의 결심은 서로를 결속시키는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열정은 소멸할 것이라고 말한 라모트는 그 열정을
실현하는 여행을 떠나 꿈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들의 자취는 라모트의 시를 통해 나타나고
라모트의 시는 모드의 목소리를 통해 되살아난다.
고성에서 라모트의 인형상자에 감추어진 편지들.
토마슨 폭포 뒤에 숨겨진 비밀 폭포.
그 모든 은유와 상징은 애쉬와의 사랑을 표현한 것이었다.
예정된 4주가 지나갈수록 오히려 불안하고 초조해 하는 것은 애쉬였다.
잘못된 선택이었다면 어쩌나 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그를 다정하게
위로하는 라모트.
"절대 후회하지 않으며 신에게 감사한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내 사랑"
그들이 보낸 시간의 기쁨을 시로 적은 뒤 찢어버리는 라모트.
너무 완전하게 표현해서 남길 수 없었던 그 시들을 적은 종이의 조각을 그녀는 기차에서 땅으로 뿌려
그들의 사랑이 땅에서 뿌리를 내리기를 기도한다.
역사와 기록에서 라모트는 그 여행 이후 사라졌다.
라모트는 프랑스로 갔을 것이라는 추리를 하는 롤랜드를 따라
모드와 롤랜드는 프랑스로 가고 그곳에서 그녀의 흔적을 찾는다.
그녀는 임신을 해서 프랑스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찾아오는 애쉬를
만나주지 않는다. 그리고 라모트의 연인은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애쉬는 그녀의 아이가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녀와 결별,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는데 그의 임종이 임박했을 때 라모트의 편지가
전달된다. 그녀에게는 딸이 있었다. 그들의 아이였다.
그 아이는 입양되어 자랐고 모드는 딸을 보기 위해 프랑스에 머물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사실을 알게된 모드는 고통스러워한다.
미혼모로서의 라모트의 절망 등을 상상하며 선조의 삶을 동경해온 것이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며 허망해한다.
그런 그녀에게 롤랜드는 당신의 그들의 자손이라며 자랑스러워하고.

마지막에 영화적 추리가 나온다.
애쉬는 우연히 라모트를 찾으러 가는 길에 한 소녀를 발견한다.
이름을 묻는 그에게, 이상한 이름이 하나 더 있다고 말하며
마이아 토마슨 베일리 라고 말하는 소녀,
애쉬는 쿵 하는 얼굴로 소녀를 바라보고 알아본다.
소녀가 그들의 딸이라는 것을.
소녀에게 꽃 왕관을 만들어 주고 머리카락을 얻어 간직한 뒤
이모에게 전하라며 서신을 건네는 애쉬.
소녀는 손가락을 걸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죽을 때까지 지속된다.

현대인인 모드와 롤랜드의 사랑은 더 이기적이다.
그들은 열정을 감추고 상처입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며 분투한다.
요크셔에서 서로에게 빠져 키스를 나누던 남녀는 잠시 서먹해지자
관계를 포기하며 말한다.
여자가 말한다.
"잠깐만요"
남자가 말한다.
"미안해요, 이게 아닌데..내게는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어요."
미안해 하지 말라고 확신을 주기 위해 여자가 말한다.
"이불을 걷기 위해서였어요"
하지만 여전히 망설이는 남자.
여자는 말한다.
"난...상관없어요"
남자는 "상관없어요?"라고 말한다,
냉정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스스로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의 그러한 벽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사라지고
둘은 점점 솔직해진다.

게다가 미국 남자의 원본 훔치기 작전~
작은 자료 하나에도 민감하게 박물관의 수순을 밟은 영국인과 달리
불같은 추진력으로 원본을 살짝 훔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롤랜드.
나중에 모드도 이것을 써먹는다. 프랑스에서..ㅋㅋㅋ
그녀와의 오해로 헤어진 후에 집에서 모드의 주민등록증을 꺼내
보는 롤랜드. 사진 한장이라도 가지고 싶어 그녀의 주민등록증을
슬쩍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집에 꽃과 새로운 자료를 들고
방문한 그는 또다시 슬쩍 그녀의 주민등록증을 원상태에 복귀시킨다.
그런 미국인다운 융통성이 아주 맘에 들었음.
그리고 롤랜드가 지도 교수에게 모드를 소개하며
"닥터 베일리"라고 하자 모드는 스스로 "모드"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그들이 라모트와 애쉬의 로맨스를 추적하며 달라진 모습들이
서서히 나타나는 것이다.
이를테면 닥테 베일리가 모드로, 쫑여맨 머리에서 자연스런 스탈로.
그런 사소하고 섬세한 감정의 결이 매우 잘 살아있는 영화였다.
개인적으로는 많은 영감을 받은 영화였음.
선조들과 달리 현대는 남녀의 경제적 신분이 바뀌었음.
남자가 능력도 없고 가난하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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