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사이 - Rosso 냉정과 열정 사이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장을 넘길 수록 숨이 가빠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던 블루.
이유는 간단했다. 어서 읽고 로사를 읽고 싶어서.
도서관에서 예약 신청까지 하고 마침내 로사를 읽었을 때
난 온 몸에서 힘이 빠지고 말았다. 기대 이상이었다.

블루에서 멀쩡한 허우대를 가진 준세이가 그토록이나 사랑하던 여자,
아오이는 너무도 조용하게 등장했다.

Rosso의 목차 앞장에 나타난 글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녀를 매우 고깝게 보았을지도 모른다.

"아가타 쥰세이는 나의 모든 것이었다
..중략...
만약 어딘가에서 쥰세이가 죽는다면, 나는 아마 알 수 있으리라.
아무리 먼 곳이라도, 두 번 다시 만나는 일이 없어도.."

그녀가 털어놓은 이 말로서 나는 그녀가 아무리 담담하고 침착하더라도
그 안에 들어있는 깊고 연약한 사랑을 알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후 세상의 색을 읽어버린 여자 아오이의 생활이 정적인 모노톤으로 에쿠니 가오리 특유의 무심한듯하면서도 절절한 문체로 쓰여있다. 읽고 있으면 아오이의 감정이 손에 잡힐 것 같다.

한 사람의 시각에서 쓰여진 것이 아닌, 두 사람의 관점에서 각각 다르게 느껴지는 사랑의 감정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점에서 냉정과 열정사이는 연인들의 심정을 가장 독특하고 진솔하게 이야기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를 그토록이나 사랑하는 그들은 이해와 대화의 단절로 헤어진다. 정말 간단하고 평범한 이유로. 부모의 반대와 오해. 60년대 신파?

하지만 사랑 이후 두 사람의 삶의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서서히 중독이 되어간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원치않았던 이별후에 너무나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삶을 시작한 여자 아오이는 단조롭고 고요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삶은 앤티크 샾에서 주 3회 아르바이트를 하며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고, 그녀를 너무나도 사랑하며 탄탄한 허벅지가 매력적인 마빈에게 맛사지를 받으며 느긋하게 목욕을 하것이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녀의 삶이 어찌나 단조로운지 소소한 일상인, 매일 먹은 좋은 음식과 좋은 와인 하나 하나까지도 우리는 다 알 수 있다.
그녀를 너무나 사랑하는 남자, 마빈. 하지만 마빈은 외국인이다. 따라서 동서양의 만남, 결혼이 아닌 동거는 매우 비도덕적으로 보여질 수 있다. 아오이의 냉정하고 침착함은 이 모든 것을 한마디 설명없이 정당화시키지만.
책을 읽는 동안 내가 마치 아오이가 된듯 매우 침착하게 읽을수 있었다. 현재의 삶을 만족해 하면서도 뭔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아오이의 마음을 반영하는듯한 깊게 관계하기를 꺼려하는 듯한 문체, 에쿠니 가오리는 내용보다도 더욱 건조한 문체로 아오이를 표현하지만 거기서 오히려 더 큰 여운이 생긴다. 아오이는 종종 요리를 하는 것을 좋아하고, 설겆이 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아마도 딱 그만큼 마빈을 좋아할 것이다. 때때로 아오이는 마빈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느끼지만 결코 표현하지 않는다.
내가 만약 남자라면 그런 아오이를 사랑하기는 힘들것 같다. 하지만 일단 그녀에게 마음을 주면 어쩔 수없이 빠질 것만 같다. 그녀의 쿨한 성격이 너무나 멋지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여자로서 아오이에게 푹 빠졌다.

집에서나 아르바이트에서나 항상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 아오이에게 마빈이 묻는다. 당신은 책을 좋아하는데 왜 사서 읽지는 않느냐고.

"저는 책을 읽고 싶을 뿐이지 소유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

마빈과 함께 살고있는 아오이의 생활 자체를 대변하는 말이다.

마빈을 아는 모든 사람은, 심지어 아오이의 절친한 친구조차도 평온한 그들의 사이 중간에 아오이에게 수시로 이야기한다. 마빈은 진심이라고. 그렇다면 아오이는 진심이 아닌가? 밖에서 보기에도 안에서 느끼기에도 아오이는 완전히 소유할 수 없는 여자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그들의 불안하지만 안정적이고 유쾌한 일상.
맛좋은 와인과 좋은 식사, 좋은 목욕탕과 좋은 그릇, 좋은 아파트와 어려운 청소를 맡아 하는 아주머니가 일주일에 한번씩 방문하는 안정된 삶을 보장해주는 마빈과의 동거 이전, 스무살의 아오이는 쥰세이와 격렬한 사랑을 나누었다. 그녀는 어느날 한통의 편지를 받으면서 쿨했던 아오이의 일상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마빈이 잠든 밤, 그녀는 참지 못하고 일본으로 전화를 한다. 준세이가 받는다. 하지만 아오이는 아무말도 못하고 잘못 것었다고 말한 뒤 그냥 끊어버린다. 전화기에 녹음된 빗소리를 듣고 밀라노의 날씨를 확인한 준세이는 그녀가 아오이임을 확신한다.

사랑하고 헤어진 뒤 같은 시간, 다른 삶을 살아간 두 사람 준세이와 아오이. 준세이를 그렇게나 애태운 그녀는 책이 거의 반이 지나도록 준세이를 언급하거나 떠올리지 않는다. 다만 그녀가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현재의 생활이다. 너무도 침착하고 조용한 그녀의 생활, 자신의 생활을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는 마치 다른이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처럼 자신의 삶은 관조한다. 그녀가 과연 10년 전 준세이의 아이를 가졌던 아오이가 맞는 것일까. 준세이의 수업이 끝나길 기다리던 그녀가 맞는 거일까.

어쨌거나 26,27,28? 이던가...
3년을 함께 살았던 마빈과의 생활은 어느날 준세이에게서 날아온
편지 한장으로 작게 균형이 흔들리다가 결국에는 깨지고 만다.
흥분하고 슬퍼하다가 돌아와 달라고 자신의 사랑과 기다림을 말하는 마빈과 달리
아오이는 마빈의 집을 나와 작은 아파트를 얻고 아르바이트 시간을 늘리고
조금 작은 욕조에서 목욕을 하고 머그잔에 와인을 마시며 다시 고요하게
자신의 일상을 만들어 간다.
대단히 현명하고 지해로우며 쿨하고 모든 것이 부러운 여자다.
그리고 촉촉한 듯 메마른 아오이의 가슴에는 열정도 있다.
30살 생일날, 끝까지 망설이기는 하지만 결국 정신없이 피렌체로 달려가
두오모에 오르는 그녀, 그곳에서 준세이와 다시 만난다.
약속을 잊지 않고 나와준 첫사랑이 있는 삶은 결코 단조롭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사랑과 이별, 재회를 넘어서 나는 생활이 바쁘고 정신없을 때면
로사의 아오이를 떠올리는 버릇이 생겼다.
종종 도서관에서 몇번을 더 대여해 읽던 나는 마침내 책을 구입했다.
너무 피곤하고 지칠때 로사를 펴고 느리게 펼쳐지는 아오이의 일상을 따라간다.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고, 맛사지를 받고, 목욕을 하고, 책을 읽고, 늦잠을 자고, 요리를 하고, 일을 하고, 설겆이를 하는 그녀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도 느긋하고 쿨한 그녀가 된 것 같다.

"아이를 지워" 이말을 듣는 것이 미리 두려워 차라리
"왜 그랬어"라는 말을 택하고 차이는 것을 선택한 아오이.
상처받기가 두려워 먼저 상처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소소하면서
큰 감동을 준다. 다시만난 준세이에게도 결코 "마빈과 헤어졌다"고 말하지 않는 아오이. '너 때문이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너뿐인걸' 이말을 하지 못한다. 거절이 두렵과 준세이가 느낄 부담이 싫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30이 된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할 일만 남지 않았을까.
배경은 이탈리아다, 결혼이 뭐 대수인가. 사랑하면 그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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