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퀼트 - [할인행사]
조셀린 무어하우스 감독, 위노나 라이더 (Winona Ryder)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이제는
어떤 가치도 갖지 못한 채 급속하게 허물어져가는 진리의 전당,
대학에서 깨달은 최고의 이념이다.

이전에 보았을 때 아무 감흥이 없던 영화들을
20살이 넘어서 다시 보았을 때
미처 느끼지 못하고 보지 못했던 것을을 나는 보고 느낄 수 있었다.
그때는 그때 나름대로 보고 느낀 것이 충분했을텐데...
두번째로 영화를 보면서 영화의 상황을 지금 나의 상황과
거의 모든 것에 대입해내는 내 능력에 실은 내가 더 놀랬다.

대부분 다시보는 영화들은 흥행도 별로였고 그다지 재미가 있는 영화들도 아니다.
하지만 그런 영화에서 얻어내는 것들은 놀랍게도 너무도 중요한 삶의 진리였다.
그것을 깨달은 다음부터는 어떤 영화도 허투로 볼 수가 없었다.
<아메리칸 퀼트>도 그런 영화 중 한 편이다.
위노나 라이더가 분한 주인공 '핀'은 또 다른 나였다.
그녀는 대학원 논문 주제를 3번이나 바꾸면서 학문의 길은 연장한다.
생산활동은 하지 않고 내키는 대로 공부를 하면서
끊임없이 흥미로운 것들을 찾지만 모든 것에 끈기없이 권태를 느끼는 핀.
그녀는 세번째 선택한 주제를 가지고 논문을 완성하기 위해
남자친구와 잠시 떨어져 이모 할머니들이 있는 시골로 내려온다.
시골은 물론 남부이다.
영화속에서 미국은 지역 설정이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대학 이후 학문의 길을 연장하되 각종 학문을 한 학기 정도씩 수강하면서
전공을 바꾸어 가는 핀의 모습은 나의 이상이자 자아였다.
할 수만 있다면 나도 그렇게 살고 싶으니까.
내키는 대로, 그때 그때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핀이 내려간 시골 환경은 또 얼마나 나른하고 쾌적한가.
작은 마을이지만 과수원 비슷한 것도 있어 나무도 많고 따뜻하며
차를 타고 가면 수영장고 있고 산 뒤로 계곡도 있다.
집도 생활하기 아주 불편한 것은 아니다.
그런 곳에서 한달이고 1년이고 너무 오래는 아니더라도
머물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한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때부터 '핀'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대신해주는 사람이 된다.
대리만족! 간접경험

그녀가 세번째로 선택한 논문 주제가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여하튼 그녀는 낡은 타이프로 치고 또 친다.
할머니들이 다 자는 밤에 달랑 가운 하나만 입고서
어둠 속에서 탁탁탁 타이프를 치고
더우면 컵에 가득 담긴 얼음을 꺼내 아그작 씹어먹기도 하고
얼음으로 얼굴을 맛사지하며 식히기도 한다.
그리고 할머니들이 아침식사를 다 마친 후에야 겨우 일어나서
뒤늦게 커피를 마시고 휴식을 취한다.
해질녘의 오후에는 마당 정자에 앉아서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한다. 매우 편안한 자세로 마음대로 앉거나 누워서.
아..부러워라.

난 끈적거리는 습기가 일으키는 불쾌지수와 짜증을 동반하더라도
여름이 가지고 있는 그 따뜻한 색깔이 너무도 좋다.
해질녘은 주황색, 붉은 보라색 또 반대로 새벽녘의 서늘함...
그리고 보색을 이루는 나무들의 푸르죽죽함.
보기만 해도 싱그럽다.
땀 좀 나면 어떤가!
여하튼 지금 당장 내게 주어지지 않은 것들만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나는 순간 이상주의자가 된다.
돈 욕심도 사라지고 명예욕도 사라지고 자연인이 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저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는 생각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는 것이다.

그리고 핀은 자신에 비해서 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좀 딸리는 남자친구를
배신하고 살짝쿵 바람을 핀다.
핀에게는 오매불망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있다.
직업은 목수. 벌써 결혼 생각에 그녀의 서재와 작업실을 설계도면에
그려놓고 집을 구상중이다. 유후~건축가면 좋겠지만 그는 분명 목수다!
그런 그에게 짜증을 부려대는 핀.
그녀에게 나타난 남자는 시골에서는 보기 힘든 느끼함을 수반한 섹시가이.
어느 시골 구석에 가야 그런 넘이 숨어 있는지 경험상 도대체 알 수가 없지만
어쨌거나 영화니까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그는 재력도 좀 된다. 시골인만큼 부동산으로 승부한다.
놀랍게도 도시의 바람둘이를 능가하는 느끼함까지 가지고 있다.
오~핀은 자꾸 흔들린다. 결국 데이트를 약속하는 핀.
시골에서 부시시하게 있다가 오랫만에 머리와 옷에 힘을 준 그녀!
홍조 띤 얼굴로 저녁을 먹으며 이모 할머니들의 관심어린 시선을 한몸에 받는다.
하지만 갑작스레 약속을 취소되고 실망한 그녀는 집 밖으로 나간다.
어둠이 주는 서늘함에 몸을 맡기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선 한 흑인여자.
핀보다 나이가 많은 딸을 둔 그녀는 핀에게 충고한다.
'충동적인 행동은 후회만 남을 뿐이라고'
그 말에 핀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난 젊기 때문에 무모할 권리가 있어요'

무모할 권리를 주는 젊은.
그 말에 난 무릎을 치고 가슴을 쳤다.
그 대사 하나로 <아메리칸 퀼트>는 내게 잊지 못할 영화로 남는다.
그래, 젊다는 것은 무모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용서와 포용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황홀한 자유인가.

영화는 길고 지루하며 4명의 여인들의 과거와 현재가 계속 나와서
삶은 진리를 말하주고 있었지만 나에게 그다지 감흥은 없었다.
영화잡지라고는 <스크린>과 <로드쇼> 밖에 없던 시절,
아메리칸 퀼트의 스틸 사진(고작해야 2장)이 실린 잡지와
요정처럼 이쁘게 세트장 속에서 포즈를 취하던 위노나 라이더의
이미지 사진(고작해야 2장)이 실린 잡지를 번갈아 보면서
비주얼적인 것에 현혹되어 어쩔줄을 모르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예쁜 것에 약하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어떤 것이던 아름다움에 약하다.)
그런데 그 사진 뒤에 감추어진 영화를 처음 보고
어찌나 무덤덤하던지 실망을 살짝쿵 했었다.
그런데 5년이 지나 다시 본 영화 속에는 여지껏 보지 못했던
새로움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발견, 이것이 내게 영화를 보는 재미를 준다.
그래서 나는 재미없는 영화도 항상 본다.
비디오 가게에 친구나 가족과 같이가면 항상 빈축을 사지만
나는 꿋꿋하게 특히 드라마 장르의 재미없는 작품들을 꼭 보곤 한다.

<아메리칸 퀼트>
내게 작은 삶의 진리를 깨우쳐 주고 용기를 준 영화!
젊다는 것은 무모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아직 젊은 것이다.
젊기에 조금 무모하더라도 그것은 나의 정당한 권리이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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