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잃어버린 꽃미남을 찾아서 - 온고지신(溫故知新) 편

일 년 중 딱 한번뿐인 장마가 올해는 조금 일찍 시작되었다. 덕분에 한여름 무더위도 훨씬 길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우산이라는 짐이 하나 더해짐으로써 훨씬 번거로워진 출퇴근 전쟁과 비온 후에 찾아오는 축축하고 후끈거리는 공기 때문에 불쾌지수가 저절로 상승하지만, “비의 계절”인 장마기간도 조금은 즐겁게 보내기 위해 약간의 낭만을 더해보고자 한다.

시대의 이슈메이커, 정지상(鄭知常)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새로운 해석에 해석을 거듭한 사극이 하나 둘, 등장하면서 옛날 옛적은 더 이상 고리타분한 것이 아니라 매력적인 배경이 될 수 있음을 대중에게 충분히 어필하고 있다. 항상 있어왔던 것에서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비가 오는 날 또한 마찬가지이다. 비가 오는 날은 흔하지만 화창한 날과는 또 다른 매력을 담뿍 가지고 있다. 오래 전 세상을 떠난 한 시인은 이별을 소제로 지은 한편의 시에서 잠시 비를 언급하였다. 그 시인의 이름은 정지상, 그가 이별의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담아낸 그 시의 제목은 ‘송인(送人)’이다. 고려시대의 정치인으로써 동북아시아의 국제정세가 민감하기 그지없던 당시, 상당히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던 정지상은 당대 최고의 이슈메이커였으며 동시에 뛰어난 시재(詩才)를 자랑하는 시인으로써 명성도 높아 후세에도 두고두고 회자되는 작품을 남겼다.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
大同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
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

비 개인 강둑에는 풀빛이 짙어 오는데,
남포에서 그대를 보내니 슬픈 노래가 나오네.
대동강 물은 언제나 마를 것인가.
해마다 이별의 눈물을 푸른 물결에 보태는데.  



천년을 관통하는 한 편의 시(詩)

한 편의 시가 수많은 시대와 시대를 거듭하며 사랑받으며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정말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반만년 역사 위에 오롯하게 생명력을 가지고 여전히 우리를 매혹시키는 정지상의 ‘송인(送人)’은 오늘날 감상하더라도 대중성과 작품성을 빈틈없이 갖추고 있어 앞으로 다시 시간이 얼마나 더 흐른다 하더라도 여전히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만한 고전 중의 메가 히트작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당대 관리로써의 정지상은 비록 정치적인 입장 때문에 세상을 떠났지만 시인으로써는 세월이 무색할 만큼 생생하게 살아남았다. 오늘날 매년 학생들은 국사책이 아니라 문학작품으로써 정지상을 대면한다. 특히 장마가 시작되면 더욱 정지상의 시(詩)가 생각난다. ‘송인(送人)’의 첫 구절에서 단 일곱 개의 문자로 표현한 풍경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가 말한 대로 비가 오고난 뒤의 온갖 식물들은 더욱 짙은 빛을 발한다. 이러한 감수성을 문자로 멋지게 남길 줄 알았던 조상을 가졌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공유할 수 있는 위대한 유산을 만끽하자

훌륭한 고전(古典)은 우리에게 남겨진 위대한 유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멋진 유산을 그 자체로 순수하게 즐기는 사람은 드물다. 학창시절 ‘입시’라는 압박 속에서 억지로 머릿속에 넣은 지식이었기 때문에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기억 속에서 자동 삭제되었기 때문일까? 하지만 종종 사회에 나와서 중고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고전들을 다시 볼 때면 반가우면서 생경한 느낌이 들곤 한다. 밑줄 치며 암기했던 시인의 감정, 시적 기교, 기승전결의 순서, 시대적 배경 등을 기억에서 사라지고 아련한 익숙함과 놀랍도록 새롭게 다만 사랑, 이별, 우정, 고독 등의 감정만이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물론 학교에서 배우는 문학작품은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만약 교과서를 통해 배우지 않았더라면, 평생을 살아가면서 고전(古典)을 접하지 못 할 수도 있다. 안타까운 것은 작품 자체만으로 충분히 흥미진진할 수 있는 고전(古典)에 대한 무심한 시선과 두껍고 딱딱한 선입견이다.

고전(古典)은 우리 조상의 생생히 살아 숨 쉬던 가장 뜨거운 시절의 한 조각

문학을 중시하는 나라답게 우리의 고전(古典)을 남긴 작가들 대부분은 정치인들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출퇴근 시간이 엄격한 중앙 정치인으로 살아가면서 권력이 있을 때 부귀영화를 축적하고, 그 부귀영화를 들키지 않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좌천되지 않기 위해 연줄을 만들고, 아부를 하며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살아갔다. 그러기 위해 때로는 정치적인 소용돌이에 거침없이 몸을 던지기도 하고, 스캔들에 휘말리기도 하고, 여자 문제로 골치를 앓기도 하고, 술에 취하기도 하고, 사랑에 몸을 던지기도 했다. 그러한 그들의 모습은 지금 우리와 조금도 다를 바 가 없다. 그들도 몸이 고된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숱한 야근도 불사하였을 것이다. 그러한 바쁜 일과 중에서도 승부근성을 불태우며 서로 문장을 겨루고 보다 좋은 작품을 남기려고 노력했던 열심과 최선의 아주 작은 결과물이 바로 고전(古典)이라는 이름으로 오늘날 남아있는 것이다.

우연하게, 혹은 의무적으로 우리 앞에 고전(古典)이 나타난다면 외면하거나 지루해하기보다는 살짝 흥미를 가져보는 것을 어떨까. 단지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 하나의 작품은 생명력을 갖게 되고 우리의 감성은 훨씬 씩씩해 질 수 있다. 이것은 또한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자신만의 기쁨이자 경쟁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먼저 긴 장마의 빈틈이 생길 때, 정지상의 ‘송인(送人)’을 감상하는 것이 그 작은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칼럼니스트 조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잃어버린 꽃미남을 찾아서 – 적벽의 꽃들, 궁극의 꽃미남 주유 편

생 텍쥐페리는 <어린왕자>에서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오아시스를 품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어떤 난세보다 치열했지만, 끝내 승자도 패자도 없었던 중국의 삼국시대는 그 어떤 태평성대보다 매력적인 영웅들과 탄탄하고 설득력 넘치는 구조 덕분에 소설로, 영화로, 드라마로, 만화로 그 외 수많은 유형의 창작물로 제작되어 우리 가까이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황제가 되고자 분연히 일어났으나 황제가 되지 못하고, 새로운 사직을 시작하려 했으나 이어가지 못했던 삼국 시대가 끝을 알 수 없는 매력으로 우리를 사로잡은 이유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감히 이상형이라고 칭할만한 보석 같은 인물들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 보석 중에서도 다이아몬드에 비유할만한 완벽한 사람이 있으니 바로 남자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자, 여자들에게는 시대를 초월한 로망의 대상인 주유 공근이다.

금도 세상은 온통 주유의 팬클럽으로 가득하다

서른 여섯 해의 짧은 생애였지만 한 일초도 허비하지 않은 주유(周瑜, 175~210)의 삶이 빚어낸 족적은 하나같이 올곧고 눈이 부실 따름이다. 단 세 줄로 요약된 사전 상의 평가조차 “중국 삼국(三國)의 하나인 오(吳)의 명신(名臣). 손견을 섬기다가 손견이 죽은 후 손책을 섬겨 양쯔강 하류지방을 평정하였다. 손책이 죽은 후는 그의 동생 손권을 섬겼다. 위(魏)의 조조(曹操)가 화북을 평정하고 진격해 오자 강화론자들을 누르고 촉(蜀)의 제갈공명과 함께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위군(魏軍)을 대파하였다.”라니 담백한 사실만 나열된 4개의 문장은 마치 골수 팬클럽 회장이 기록한 것처럼 칭찬 일색이다. 물론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800년 가까이 지난 현재에도 그의 팬클럽은 곳곳에서 “오직 주유”를 외치며 가열차게 가동 중이다. 역사를 되돌리고 되돌려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을 찾아보더라도 주유만한 인물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풀어야 할 숙제이자, 풀고 싶지 않은 희열이다.

일기일회(一期一會) - 일생에 단 한번뿐인 인연

만약 과학기술이 더욱 발전해 타임머신이라는 것이 생겨 투명인간이 되어 단순히 ‘관람’만을 하는 역사 여행이 가능해진다면 꼭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 바로 주유와 손책의 첫 만남이다. 풋풋하지만 이미 비상함을 드러냈던 10대 시절, 본디 수춘에 살고 있던 손책과 서현에 살고 있던 주유는 만나기 전부터 서로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있었다고 한다. 만나야 할 사람은 반드시 만나게 된다고 한나라의 17老제후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손견이 제후 연합군에 참여하면서 가족들을 서현으로 옮기며 주유와 손책은 운명의 첫 만남을 갖게 된다. 열 여섯, 이팔 청춘이었던 둘은 만나자마자 의기투합하여 친형제처럼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결국 손견이 거병한 후, 손책은 주유의 말에 따라 가족을 데리고 서현으로 이사하였고, 대대로 한나라의 고관을 배출한 명문가이자 부유한 집안 출신인 주유는, 손책 가족을 위해 집을 마련해주고 손책의 어머니를 자신의 어머니처럼 모시며 옆집에 나란히 살았다고 한다. 일생에 단 한번뿐인 인연이 있다면 바로 이런 만남이 아닐까 싶다. 오늘날로 보면 오우삼 감독과 주윤발의 만남이 이와 비슷할까. 부디 이런 아름다운 만남들이 많이 일어나 세상에 빛이 되는 커다란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기를 바랄 뿐이다.

오늘날에도 실현 불가능한 쿨한 정치를
태연자약하게 실현한 오나라의 멋진 정치가들


중국 10대 명장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주유는 그 자체로도 빛이 나지만, 절친한 친구이자 주군으로 섬긴 손책과 함께했기에 더욱 완벽할 수 있었다. 한나라가 유명무실 하다 보니 권력을 가진 자는 인재를 구하기 위해, 능력이 있는 자는 하루빨리 인정을 받고 안정된 생활을 보장 받기 위해 권모술수와 배신이 판을 치는 난세에 측은지심에 호소할 정도로 초라하지 않고, 눈살 찌푸려질 불필요한 화려함 없이 다만 반듯하게 목표를 향해 전진했음에도 젊음과 패기, 그리고 대의명분이 하나로 섞여 청아하고 아름다운 반란을 일으킨 것은 손책과 주유의 합작품인 오나라 뿐이다.

강동의 호랑이라 불리던 손견 문대가 어이없게 일찍 세상을 떠난 후, 고작 스물을 갓 넘긴 나이에 자칫 오합지졸로 전락해버릴 수 있었던 강남세력을 규합,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자신의 신념과 자리를 지키고 훌륭하게 결과로 만들어 낸 주유에게 연륜과 경험을 내세워 위협할 수 있는 세력은 오나라 안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이 또한 거짓되고 구린내 나는 정치적 술수나 동정심에 호소하는 궁상과 거리가 먼, 강남 오나라 대신들의 쿨한 면모였다.

삼국지의 하이라이트 적벽대전, 적벽대전의 불꽃 같은 남자 주유
적벽대전이 삼국지에 남긴 의미, 바로 자연스러운 신구(新舊) 세대교체


<삼국지연의>의 작가 나관중은 객관성을 포기했다는 판단이 들 정도로 완벽하게 촉한을 편애하는 작품을 세상에 내 놓았지만, 진정한 영웅들은 어떠한 각색에도 언젠가는 진가를 발휘하게 되어있다. 삼국지 최고의 하이라이트인 적벽대전은 강북을 제패한 조조가 여세를 몰아 강남의 오나라까지 토벌하여 단숨에 중원을 통일하려고 일으킨 역사적인 전투이다. 손책과 함께 비상하던 시절부터 유비와 조조를 차례로 공격하여 천하를 통일하려는 큰 뜻을 품었던 주유에게 적벽대전은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뜻을 펼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손책과 함께 이루지 못한 천하통일의 꿈을 이룰 기회가 오자 주유는 오나라의 대신 대부분이 화친을 원하는 분위기에서 조조의 대군에 맞설 것을 주장한다. 주유의 주장은 오나라 대신 대부분의 주장보다 강했다. 게다가 무모한 주장이었다고 생각하기에 주유가 제시한 근거 - 조조의 병사들이 수전에 능숙하지 못하고 먼 거리를 왔기에 피로하며, 풍토병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 는 충분한 설득력이 있었으며 이에 따른 계책과 준비는 철저했다. 전쟁이 결정되자 오나라에서는 일말의 소란 없이 전쟁 준비에 집중한다. 노장 황개는 스스로 스파이를 자처, 늙은 몸에 매 타작을 견뎌내며 조조 군을 교란시켰고 결국 준비된 승자 주유의 모든 예상과 계략은 적벽대전을 전체를 관통하며 적중, 눈부신 승리를 거둔다. 소설에서는 주유와 공명의 무언 대결인 손바닥 뒤집기를 통한 화공(火攻)법과 머리를 풀고 제사를 지내는 고난도의 퍼포먼스를 통해 한겨울에 동남풍을 일으킨 공명의 불가사의한 신통력이 적벽의 승패를 결정했다고 구구절절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적벽대전은 누가 뭐라고 해도 조조와 주유의 싸움이었다. 적벽대전을 통해 조조는 강남의 새파란 인재들에게 대패하여 도주하였고, 중반을 넘어선 삼국지는 신구 세력을 적절하게, 매우 성공적으로 교차할 수 있었다.

부러움과 시샘의 시선조차 허락하지 않는 완벽한 삶

"하늘은 어찌 이 주유를 지상에 낳으시고, 다시 또 제갈량을 낳으셨단 말인가!"라는 말과 함께 피를 토한 뒤 얼마 되지 않아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설 속 주유의 죽음은 적벽대전을 통해 제갈공명이라는 후발주자를 위한 작가의 탁월한 연출이자 제갈공명의 라이벌인 주유에 대한 작가 나관중의 유치한 안티 활동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사실 그대로의 주유를 사랑했다. 믿을만한 기록이 말해주기를, 주유는 젊었을 때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미주랑(美周郞)이라는 애칭으로 불릴 정도로 뛰어난 용모의 소유자였으며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술자리에서 음악을 듣다가 연주가 조금이라도 틀리면 잘못 연주한 악사 쪽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연주가 틀리면 주유가 뒤돌아본다''는 말을 유행시켰다고 한다. 그런 주유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그의 친구이자 주군인 손책이다. 주유의 팬클럽 회장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주유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깊었던 손책은 “주유는 좋은 술과 같아 함께 있으면 그 향가가 사람을 취하게 만든다”는 엄청난 어록을 남겼다. 세상에서 주군으로부터 이러한 칭찬을 받는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신하가 몇이나 될까.

실존했지만, 창조된 것보다 더 이상적인 군신관계를 형성한 손책과 주유는 현실에서도 다시 보기 어려운 정말 멋진 남자들이다. 손책의 주유사랑 어록은 만화 <창천항로>에서도 다루어 지는데, 작가가 묘사한 상황은 가슴 벅찰 만큼 멋지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손책의 아들이 주유와 손책이 국사를 의논하는 자리에 다가오자 주유는 “소주공, 제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고 손책의 아이에게 깍듯하게 묻는다. 그러자 손책은 아이를 무릎에 앉히며 “주유는 좋은 술과 같은 사내다. 부자 2대가 함께 취해보자.”라고 말한다. 생애 자신을 알아주는 친구가 단 한명만 있어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건만, 새삼 주유라는 남자의 완벽함에 부러움을 넘어 경탄하게 된다.

아름다운 사람, 주유가 소중한 이유

타고난 출신과 외모, 스스로 선택한 대업의 길, 젊은 정치가로써 내부는 물론 백성들에게도 사랑과 존경을, 선망과 신뢰의 시선을 듬뿍 받은 깨끗한 삶, 절세 미녀와의 로맨스와 결혼, 최고의 전투에서의 승리 등등 공과 사가 모두 완벽한 주유의 삶은 궤적을 되돌아 볼수록 한숨이 나올 만큼 완벽하다. 18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주유가 더 오래 살았다면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라는 상상의 여지를 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정말 신이 내린 완벽한 사람이다. 매번 그리고 새삼 주유가 사람들을 사로잡는 이유는 우리는 공인으로써 주유와 같은 사람을 마음속으로 항상 원하고 있지만 그런 사람은 아무리 기다려도 좀처럼 없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조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좋은 인연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잃어버린 꽃미남을 찾아서 - 적벽의 꽃들

좀 지난 이야기이지만 오우삼 감독의 신작 <적벽>의 캐스팅이 발표되었다. 삼국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주유 역할을 맡은 사람은 양조위. 연기력은 물론 이미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과 장예모 감독의 <영웅> 등을 통해서 사극에 등장했을 때의 비주얼까지 훌륭하게 소화한 양조위이기에 주유를 연기하기에 비록 나이가 좀 많기는 하지만 팬들은 즐겁게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주유의 유일한 라이벌, 제갈공명은 장예모 감독의 <연인>에서 자유로운 영혼의 무사를 연기했던 금성무(가네시로 다케시)이다. 마지막 적벽의 주 무대인 오나라의 군주, 손권을 연기하는 사람은 <와호장룡>의 마적 두목으로 이름을 알린 장첸으로 그는 김기덕 감독의 <숨>에서 주인공을 연기하기도 했다. 이렇게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적벽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전, 적벽에 함께 있었으면 정말 훈훈했을 한 명의 안타까운 꽃미남을 소개하고자 한다.

화려한 등장과 눈부신 필로그라피 - 진정한 스타 손책

이번에 소개할 미남은 지난 회에 소개했던 손견 문대의 장남, 손책 백부이다. 적벽대전이 시작하기 전, 고작 26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손책은 짧은 생애에 시간 활용의 극치를 보여준 경제형 리더였으며 모든 전장에서 스스로 솔선수범한 멋진 남자였다. 그가 단신으로 일으킨 (吳)라는 이름을 가진 나라는 중국 역사에서 두 번이나 유명세를 떨쳤다. 비록 다른 시대였지만 같은 국명(國名)을 가진 다른 오(吳)나라를 잠깐 소개하자면 먼저 춘추시대 12 열국 시대이다. 당시 오(吳)나라의 군주인 부차는 라이벌인 월(越)나라에서 미인계로 보낸 아름다운 여인 서시를 진심으로 사랑한 나머지 꽤 로맨틱하게 멸망, 많은 사가들과 작가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리고 두번째가 바로 삼국지의 오(吳)나라이다. 맨주먹으로 강남 세력을 규합, 오(吳)나라의 기틀을 만들고 군주의 자리에 오른 손책은 주유, 태사자 등 미모와 실력을 동시에 겸비한 용장들을 거느리고 빠른 시간 내에 강남을 삼국지의 중심으로 부각시킨 인물이다. 또한 자칫 소홀하기 쉬운 로맨스 부분에서도 막강한 힘을 발휘한 매력남이기도 한다.

적에서 아군으로 - 태사자와의 만남

때는 바야흐로 흥평(興平)2년(195년) 양주(陽州) 신정산에서 손책(孫策)이 강남을 제패하는 과정에서 양주의 유요(劉繇)를 공격할 당시 손책(孫策)과 태사자(太史慈)가 만났다. 태사자는 그때 유요의 부장으로 있었는데 영웅이 영웅을 만나자 호기가 생겼는지 유요에게 손책을 이번 기회에 생포하라는 명령을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이때 일기토를 벌인 두 사람은 결국 비긴 채로 물러나게 된다. 하지만 훗날 손책에게 항복한 태사자는 손책과의 약속을 지켜 3천 여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돌아왔다. 수많은 전쟁으로 가득한 삼국지이지만, 의외로 젊고 잘 생긴 꽃미남의 1:1 결전은 드물다. 많은 폐인들을 양성할 정도로 팬들을 열광시키고 있는 코헤이의 진삼국무쌍을 모르고 삼국지를 읽는다 하더라도 젊은 강동의 제왕 손책과 젊고 강한 무사 태사자의 만남은 정말 반가운 마음이 불쑥 들 정도로 아름다운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태사자는 후에 적벽대전의 주역이 된다.

납치에서 사랑으로 - 이교 자매와의 만남

삼국지를 통털어 가장 로맨틱한 장면을 꼽자면, 손책과 주유가 강남 최고의 미녀 자매인 대교와 소교 자매와 합동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일 것이다. 정말 훈훈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손책이 그녀를 얻기까지 ''납치''라는 조금은 재미난 방법이 사용되었는데 이조차 손책의 생애를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일화로 남는다. 이교자매와 손책, 주유의 합동 결혼은 오늘날로 보면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 데이비드 베컴과 빅토리아 베컴 등의 셀레브리티의 유명세와 절대 뒤지지 않을 정도의 화제를 모은 결혼이었다. 여기서 손책 어록이 나오는데 대교와 소교를 각각 아내로 맞아 오나라로 오면서 손책은 절친한 친구 주유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공근(주유의 자), 우리 아내들은 고향을 떠나서 슬프겠지만, 그런 것쯤은 우리 같은 신랑을 얻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스물 네살에 결혼한 손책은 2년후 세상을 떠나고 말지만, 삼국지 최고의 로맨틱가이의 영예를 주고 싶다.

강동의 호랑이 손견과 아버지를 닮아 조금은 오만했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남자, 손책의 짧은 생애의 뒤를 이은 것은 손권이다. 이후 손권은 오나라의 군주로 적벽대전을 기점으로 삼국지에 비틀림없이 깨끗한 한 획을 그으며 요절이라는 가문의 운명을 벗어나 오래도록 장수한다.

글 : 칼럼니스트 조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능력, 그것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힘이다” 

 

잃어버린 꽃미남을 찾아서 – 삼국지 편

곱디고운 미소년에서 근육질의 미중년까지 다양한 매력을 뽐내는 꽃미남들로 가득한 삼국지에서 가장 전설적인 외모의 소유자는 바로 방통 사원이다. 그는 스승으로부터 천재라고 인정받은 실력을 드러내기에 앞서, 외모 덕분에 굉장한 유명세를 떨친다. 그의 외모가 얼마나 대단한가 하면, 방통의 외모는 비위 좋기로 유명한 유비 현덕조차 고개를 돌리고, 무려 주유의 시신을 거두어 오나라에 갔음에도 손권이 기겁을 하고 결국 채용하지 않았다는 일화를 남겼을 정도이다. 방통을 보고 있자면 사회생활에 있어 외모가 중요한 것은 18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록새록 느낄 수 있다. 실력을 갖춘 인재의 중요성과 필요성이 ‘태평성대’보다 월등히 높았던 ‘난세’라는 치열한 시대를 살았음에도 수많은 편견의 벽에 부딪혔던 남자, 방통만의 미덕을 한번쯤 이야기하고 싶다.

압도적으로 불리한 비주얼을 극복한 완소남, 방통
작사(作家)가 부각시킨 추남, 사가(史家)가 배려한 천재

삼국지 정사 <방통전>을 보면 그의 외모가 한 줄로 표현되어 있는데 ''소년 시절에는 소박하고 노둔했으므로 그를 높이 평가하는 자가 없었다.'' 라는 내용이다. 기록한 사람이 굉장히 단어를 신중하게 고려하여 선택한 것을 느낄 수 있는 평가이다. 하지만 사실을 기록한 사가(史家)가 아닌 사실을 바탕으로 허구를 만들어 내는 작가(作家)의 표현은 전혀 다르다. 삼국지연의에서 방통에 대한 묘사는 정성이 느껴질 정도로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까만 눈썹이 보기 싫게 붙어있고, 얼굴이 검고, 덕지덕지하며, 수염이 볼품이 없으며, 키마저 난쟁이처럼 작았다.”는, 작가(作家)의 주관이 지독할 정도로 고스란히 드러난 방통의 외모에 대한 묘사는 수 백년을 지나 오늘날 독자들에게도 마음 깊은 곳에서 불쾌감을 일으킬 정도로 강렬하다. 2줄이 미처 넘지 않는, 이 묘사와 못생긴 얼굴 덕분에 방통이 겪었던 일련에 에피소드들은 방통이라는 남자를 삼국지 전체를 관통하는 최고 추남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압도적으로 부족한 비쥬얼에도 불구하고 많은 독자들의 사랑과 안타까움을 한 몸에 받은 이유에서 방통의 진짜 미덕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기회 앞에서 굴욕조차 즐길 줄 아는 남자,
단 한 명의 안티도 없는, 무적(無敵)의 인간관계 방통

이상주의자보다는 지독한 현실주의자들로 가득한 삼국지에서 방통은 자기 자신을 어필함에 있어 현실주의와 이상주의를 절묘하게 혼합하는 신공을 발휘한다. 일찌감치 빼어난 실력과 천재성을 발휘했던 이 남자는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파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승인 수경선생을 비롯하여 유비가 목을 메고 매달린 제갈공명까지 유비에게 방통을 추천하고 더 중요한 일을 맡길 것을 끊임없이 제안한다. 그러나 수경선생의 극찬의 추천서와 공명의 추천에도 불구하고 방통은 면접에서 단지 외모 때문에 유비에게 냉랭한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방통이 이것을 이 부분에서 어느 정도 초연했다는 점이다. 오랜 세월 자신의 실력과 외모에 대한 누구보다 냉정하고 명확한 스스로의 판단이 있었기 때문에 방통은 냉정을 유지했던 것이다. 거창하게 형제의 연을 맺고 단체 활동을 하는 유비 삼형제나 형제보다 끈끈한 관계를 자랑하는 오나라의 손씨 집안에서 자신이 주유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는 현실은 파악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실력, 그것은 불가능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이다.

오늘날 연예계에서 방통과 닮은꼴은 사람을 찾자면 장동건을 제치고 여자들이 뽑은 최고의 완소남 1위를 차지한 국민 MC 유재석이 떠오른다. 국민MC 유재석은 현재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비인기 프로그램을 비롯하여 정말 다양한 역할을 요구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해왔다. 그를 줄곧 따라다니는 “메뚜기”라는 별명은 데뷔 시절 그가 스스로를 희화하는 개그를 선보이며 직접 메뚜기로 분장을 하고 카메라 앞에 섰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개그맨이면서 슬랩스틱 코미디와 라이브 공연에 약했던 그는 오랜 시간 자신만의 내공을 쌓으며 4천만 시청자를 사로잡는 최고의 MC가 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방통은 그 천재성에 어울리게 너무나 일찍 죽음을 맞이하여 기대했던 활약을 펼치지는 못하지만, 짧은 등장에도 불구하고 삼국지라는 꽃밭을 더욱 향기롭게 만들어주었다.

글 : 칼럼니스트 조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잃어버린 꽃미남을 찾아서 – 삼국지 편

수많은 영웅호걸들의 이야기가 날실과 씨실처럼 촘촘하게 수놓아진 삼국지에서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남자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고한 명성을 누린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수경선생 사마휘(司馬徽)이다. 어지러운 난세에서 그는 어떤 세력에도 소속되지 않고 재야의 인재로 있었기 때문에 권모술수로부터 한 걸음 비껴간 학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가 양성한 후학들이 세상에 나아가 곧바로 뛰어난 자질을 발휘하였으며 그 제자들이 자신의 지예를 의탁한 인물이 바로 삼국지연의의 작가 나관중이 각별한 애정을 쏟은 유비였기 때문에 사마휘는 삼국지의 은근한 다크호스로 급부상한다. 스승의 날을 맞아, 삼국지에서 유일하게 ‘선생’이라는 칭호를 듣는 수경선생 사마휘를 통해 아버지 같은, 스승 같은 멘토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중년 남성의 매력을 알아보기로 하자. 
 

칼을 들지 않고, 지략을 꾸미지 않고
다만 사람을 보듬으며 시대의 흐름에 따르되 휩쓸리지 않다.

사마휘(司馬徽)는 도호가 수경(水鏡)선생이며 덕조(德操) 양양 영주 사람으로 삼국지 최고의 실용주의 추남이지 비운의 천재로 손꼽히는 방통과 최고의 신비주의 미남이자 자수성가의 대명사로 손꼽히는 공명의 스승이다. 채모(蔡瑁)에게 쫓겨서 도망쳐온 유비(劉備)와 교류를 하며 재사(才士)인 서서(徐庶)를 유비에게 추천하였고 제자인 제갈량과 방통을 복룡(伏龍)과 봉추(鳳雛)로 부르며 유비에게 이 둘 중 한 명만 얻어도 천하를 평정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 사람이다.

자신이 가르친 제자를 소개함에 있어서 한치의 부끄러움이 없었다는 점에서 그는 참으로 제자 복이 많은 사람이라 할 수 있고, 그런 스승을 만난 제자들 또한 스승 복이 많은 사제간이라고 할 수 있다. 2007년인 오늘날, 수경선생이 살았던 그 시대와의 공통점을 찾자면, 인재는 많으나 경기가 좋지 않아 정규직 채용을 하는 기업은 드물고 취업은 한없이 어려워 대학을 나온다 하더라도 직장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보다 훨씬, 고달프고 앞날이 투명하지 못한 시대에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스승과 제자로 만나 학문을 쌓으며 세상에 나아갈 준비를 시켰다는 점에서 진정한 스승으로써 수경선생의 훌륭함에 감탄한다. 또한 멸망의 기운을 온 몸으로 알 수 있었던 후한 말, 제자들을 한나라 관리로 키워낸 것이 아니라 유비를 만났을 때 그의 가능성을 보고는 비록 남루한 시작일지언정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확실하게 제자들(방통, 공명, 서서)의 구직을 책임졌다는 점에서 수경선생의 능력과 현실감각에 무릎을 친다.

시대에 방관한 듯 재야에 묻혀 후학을 양성하는 데 힘썼지만, 시대의 한 흐름을 당당히 이끌어 간 것은 수경선생의 제자들이다. 그들은 입사 후, 자신들을 추천한 스승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능력을 발휘했다는 점에서 그들은 모두 복 많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성과 인덕을 갖춘 미중년의 아름다움
세월이 흐르면 세월의 향기를 먹고 연륜과 지혜로움을 더하다

삼국지를 읽으면서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던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나이 들어가는 것을 고스란히 느껴야 할 때, 때로 낭비 없는 시간을 보내온 사람의 마지막 모습이 초라할까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경선생은 이런 걱정을 단번에 날려주었다. 장차 삼국지에서 큰 활약을 펼칠 쟁쟁한 제자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이 스승은 이미 등장과 함께 독자들의 머릿속에 중년 혹은 노인의 이미지로 고정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깨끗하고 단정하게 나이 들은 노학자의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노숙한 의상을 선보인 것은 오히려 수경선생의 제자 공명이었다. 후한 말의 앙드레 김처럼 눈부신 하얀 색 의상과 부채라는 소품으로 타 책사와 확실하게 구분되는 독보적인 패션감각을 자랑하며 젊은 나이에 자신만의 룩(Look)을 완성한 공명은 어쩌면 스승인 수경선생의 모습을 몹시 동경했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수경선생 밑에서 공명과 동문수학한 친구들은 집안 좋은 방통과 효자로 소문난 서서였으니 일찍 고아가 된 공명이 수경선생을 아버지처럼 생각한 나머지 나이에 비해 노숙해 보이는 패션은 수경선생에게서 살짝 빌려온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난세에도 고아한 학자의 모습을 유지했던 수경선생이나 칠십의 나이에도 말발굽과 함께 피어나는 모래먼지 속에서 무거운 갑옷과 투구를 걸치고 기꺼이 창과 검을 휘둘렀던 황충과 같은 미중년들이 균형을 잡아주었기 때문에 삼국지는 더욱 빛날 수 있었다. 특히 무인(武人)인 황충 장군은 아마 체지방 5%를 넘지 않은, 혈관마저 근육으로 빚어진 듯 단단하고 남성다운 몸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스승의 날, 감사의 마음을 마음껏 전해자

삼국지연의 소설 속에서, 역사 속에서 수경선생과 황충은 그저 자신의 위치를 지킨다. 하지만 그 존재만으로 삼국지에 무게를 실어준다. 조만간 스승의 날이다. 가슴 한 켠이 그리워하는 스승이 한 분이라도 있다면, 364일 가슴 속에서 묵묵히 나를 지켜주는 스승이 한 분이라도 계시다면, 5월 15일 하루쯤은 그분을 가슴에서 꺼내어 거침없이 달려가 큰 소리로 고마움과 그리움을 전하는 것이 어떨까.

글 : 칼럼니스트 조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