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목건련의 교화 대상 역시 인간과 신, 착한 존재와 악한 존재의 경계를 늘 가뿐하게 넘나들었다. 뛰어난 신통력을 바탕으로 목건련은 천상에서는 제석천왕을 반성하게 만들고, 지옥에 가서는 죽은 어머니를 구제하고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죄를 범하고 산채로 지옥에 떨어진 제바달다를 구원했다. 목건련이 아니었다면 부처님의 제자 중 그 누가 기꺼이 그리고 단숨에 지옥까지 갈 수 있었겠는가. 게다가 온갖 세계의 말을 듣는데 걸림 없는 귀를 지닌 그는 다른 세계의 부처님의 말씀을 들으러 다녀온 적도 있었다.
 



자신의 숙명을 살펴 죽음을 결정하다
이미 죽은 자들까지도 구제하고 구원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목건련은 불법을 만나고 전하는 과정에서 실로 많은, 다양한 죽음을 접했다. 특히 그의 주변 여인들은 삶과 죽음이 기구한 경우가 많았다. 먼저 마음껏 풍요롭게 살았으나 죽어서 고통에 빠졌던 그의 어머니가 그랬고, 그가 구제하여 불법에 귀의하게 했던 여인은 각고의 수행 끝에 숙명통을 얻었으나 제바달다의 손에 맞아 숨졌다. 이런 과정들을 겪은 목건련이 본래 선량한 사람보다는 인간이든 귀신이든 괴로움에 처한 이들을 구제하고자 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의 이런 정신은 결국 그 자신의 열반으로 이어졌다.

일흔이 넘도록 왕성하게 활동하며 사람들을 교화하고 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모신 목건련은 많은 이들에게 경외의 대상이었지만 생각이 다른 외도들에게는 그만큼 미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일흔이 넘었을 무렵, 그는 어느 날 선정에 들어 자신의 숙명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전생의 업보가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업보를 알게 되면 끊을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증오하고 미워하는 사람들과의 인연이 삼세의 인과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들의 원한을 풀어주어야만 업장의 뿌리를 청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 자신이 이 생에서 이 업보를 끊지 않는다면, 그를 증오하고 미워한 사람들이 지옥에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지옥에 관해서 누구보다 해박한 경험과 지식을 갖춘 목건련은 마음을 정했고, 죽음을 아니 열반을 스스로 선택했다. 그는 호시탐탐 그를 없앨 기회를 노리는 외도들이 살고 있는 산 밑을 일부러 지나갔다. 말 그대로 죽기 위해 용을 쓰는 격이었다. 외도들은 목건련이 오는 것을 보고는 기다렸다는 것처럼 산 위에서 돌을 굴리기 시작했다. 목건련은 아무런 신통력을 발휘하지 않았고, 그들이 힘껏 굴리고 던지는 돌들을 맞으며 자신의 업에 맞섰고 삼매에 든 채로 열반했다. '신통력'에 의지하여 인과응보의 진리를 어기는 것은 불제자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 그는 열반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여준 것이었다.
 


궁극의 자비, 최초의 순교
목건련의 열반의 불교 역사상 최초의 순교이기도 했다. 빔비사라왕의 아들이자 마가다 국의 왕인 아사세사투 왕은 자신이 존경하던 목건련 존자의 죽음에 슬퍼했다. 동시에 인간의 눈으로 보았을 때 목건련의 시신은 너무나 처참했기 때문에 '누군가 그를 일부러 죽게 했다'는 사실이 왕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분노와 슬픔을 참을 길이 없었던 아사세사투 왕은 의심이 가는 외도들을 모두 잡아와서 모조리 죽이고자 했다.
여든이 다 된 나이에 거의 50년을 함께한 일흔의 제자를 잃은 부처님은 이 소식을 듣고는 아사세사투 왕을 찾아와 그들을 용서하라고 설법했다. 애틋한 제자를 떠나보낸 슬픔을 감추며 그것이 목건련의 숭고한 열반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라는 부처님의 간곡한 설법에 아사세사투왕은 간신히 분노를 누구러뜨렸다.

목건련의 뜻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부처님의 만류 덕분에 목숨을 건진 외도들은 용서를 빌며 죄를 뉘우쳤고 부처님께 귀의했다. 하지만 부처님은 새로 제자를 얻은 기쁨보다는 사랑하는 제자를 먼저 떠나보낸 애잔함이 더 컸다.

많은 제자들이 부처님께 목건련 존자가 신통력이 그렇게 뛰어났음에도 스스로의 죽음을 방어하지 못한 이유를 물을 때마다 부처님은 그의 열반이 지니는 의미를 말씀해주셨다. 이미 깨달은 이에게 나고 죽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목건련은 부처님 생전에 다른 제자들에게 여실하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목건련은 불법을 펴는 데 크게 이바지 했을 뿐 아니라 끝내 목숨마저 바쳤다는 것을 일러주시며 목건련의 자비가 얼마나 커다란 것인지를 말씀하셨다.

목건련이 열반한 뒤, 사리불은 부처님께 허락을 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열반에 들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곁에 없는 것에 대한 쓸쓸함을 감추지 않으셨던 부처님도 오래지 않아 반열반에 들으셨다. 너무나 아름답게 한 길을 걸어가던 커다란 스승과 빛나는 제자 둘은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아끼며 마지막을 맞았다. 다음 편에는 부처님이 반열반에 드신 후 불법을 계승한 가섭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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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통(神通)하다'는 의미는 단순히 '신통력이 있다'는 것만은 아니다. 목건련은 자신의 거침없는 신통력으로 수많은 일화를 남겼지만 그가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 불리는 진정한 이유는 신통을 넘어선, 보살과 같은 자비롭고 인간적인 면모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귀의 고통을 덜어주다
목건련의 구제 대상은 결코 인간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부처님이 천상의 신들로부터 정중한 초대를 받아 신들에게 설법을 하셨다면 목건련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하찮은 존재들, 인간보다도 못한 존재들을 놓치지 않았다.

한 번은 별들이 빛나는 아름다운 밤 맑고 깨끗한 강가강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선정에 들었을 때였다. 그런데 목건련의 눈에 한 무리의 아귀들이 들어왔다. 아귀들은 물을 한 모금 마시기 위해 강가를 서성이고 있었는데, 쇠몽둥이를 든 채 강을 지키는 귀신이 무서워서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선정에 든 상태에서 그들의 업보를 하나 하나 살펴본 목건련은 아귀들을 불렀다. 그리고 물었다.

"배 고프고 목마른 고통이 얼마나 심하냐?"

보는 사람마다 식겁을 하며 도망치기 바쁜 아귀들에게 그들의 고통에 대하여 물어봐 준 이가 있었겠는가.

목건련의 관심에 아귀들은 그의 곁에 다가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다고 하소연하였다. 목건련은 잠자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살펴보았던 인과를 말해주었다. 물을 마시지 못하는 고통을 호소하는 아귀는 전생에 점치는 일을 하며 거짓말로 남을 속이고 고통스럽게 하며 이익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날마다 들개에게 온몸을 뜯어먹혀 뼈가 드러나지만 바람을 쐬자마자 새로운 살이 돋아나 다시 뜯어먹힌다는 아귀는 전생에 온갖 짐승들을 잡아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목건련은 그들에게 각자의 잘못을 말해주고 참회하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목건련의 신통은 이처럼 아귀의 고통에 귀를 기울여 주고 또한 오롯한 진실로 뉘우침을 주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외도들을 제도하다
목건련의 신통력은 또한 빠르고 확실한 효과가 있었다. 한 번은 코살라국의 프세나짓 왕이 시원한 강가에서 큰 연회를 연 적이 있었다. 그 연회에는 왕족과 대신들이 모두 참석했을 뿐 아니라 부처님을 비롯하여 각 종교의 대표들과 바라문들을 초대한 실로 엄청난 자리였다. 초대받은 사람들은 모두 선착순으로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에 다들 앞다투어 빨리 도착하려고 했다.

연회에 가기 위해서는 강을 건너야 했는데 물이 불어 쉽게 건너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부처님과 제자들도 강가에 도착했다. 강물이 불어난 것을 본 목건련은 신통력으로 칠보로 된 화려한 다리를 놓아 부처님이 건너시도록 했다. 하지만 목건련이 다리를 놓자마자 기다렸다는 것처럼 다른 외도들과 바라문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부처님과 제자들은 뒤로 밀렸다.

목건련은 다리를 거두는 대신 그들이 다리에 오르도록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그들이 강 중간쯤 갔을 때 다리가 스스로 없어지도록 했다. 그렇게 부처님과 제자들을 밀치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리를 건너려던 사람들이 모두 강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부처님과 제자들이 다리를 다시 건넜다. 그리고 물에 빠진 외도들을 건져내도록 지시했다.

다리를 놓고, 다리를 건너기까지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프세나짓 왕의 연회에 도착했을 때 부처님의 위엄은 그 자체로 가장 압도적일 수 밖에 없었다. 각 종교의 대표들과 바라문들이 자신들의 이기심을 고스란히 보여준 셈이었으며 온몸이 완전히 젖은 상태였으니 사람들의 존경은 자연히 부처님을 향하게 되었다. 그 결과 자리에서 부처님께 귀의한 사람이 수없이 많았으며 외도와 바라문, 부처님을 공평하게 존중하던 프세나짓 왕에게도 확실하고 강력한 인상을 남기게 되었다.


연화색 비구니의 귀의
목건련이 제도한 특별한 인물 중에는 연화색 비구니가 있다. 부처님께 귀의하기 전 아름다움을 무기로 아무런 죄책감 없이 태연자약하게 몸을 팔던 그녀는 본디 외도들의 청탁을 받고 목건련에게 접근했었다. 신통력이 뛰어난 목건련은 외도들에게 두려움과 존경의 대상이자 절대적인 미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목건련이 보여준 신통력 때문에 많은 외도들이 불법에 단숨에 귀의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들 때문에 증오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그의 신통력이 두려워 함부로 보복을 하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생각 끝에 미색이 뛰어난 몸 파는 여인에게 그를 유혹할 것을 사주한 것이다.

평소 목건련이 다니던 길을 미리 눈여겨 보던 여인은 대담한 차림새와 노골적인 눈빛을 보내며 그에게 접근했다. 목건련은 발걸음을 잠시 멈춘 채 흔들림 없는 담담한 눈으로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치 들여다 본 것처럼 그녀의 속셈을 차근차근 읊었다. 목건련이 입을 열 때마다 여인의 얼굴은 창피함으로 굳어졌으나 마지막까지 자신의 소임을 잃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목건련의 눈빛은 단호했고 여인의 잘못된 생각과 태도를 정확하게 짚어주었다.

마침내 여인은 괴롭고 수치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며 자신이 이런 생활을 하게 된 이유를 말하며 눈물지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도대체 어떤 과보가 있었기에 이런 기구한 삶을 살고 있는지, 지금의 삶으로부터 얻을 과보는 무엇인지 물었다. 여인의 고통을 알아본 목건련은 더이상 그녀를 다그치지 않았다. 그 대신 언젠가 스스로 알게 될 날이 있을 것이라고 위로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주었다.

부끄러움을 깨달은 여인은 부처님을 뵙길 바라면서도 자신의 비천한 삶이 옳지 못한 것을 알고 망설였다.

그러자 목건련은 그녀을 데리고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갔다. 부처님은 여인을 받아주었다. 여인은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머리를 깎고 수행에 매달렸다. 때때로 괴로움을 참을 수 없을 때면 부처님이나 목건련에게 자신의 인과를 말해달라고 했으나 두 분은 머리를 저으며 스스로 깨닫는 날이 올 것이라고만 말했다.

결국 10년 째 되던 해, 여인은 자신의 과보를 볼 수 있었다. 연화색 비구니라는 이름을 가진 이 여인은 그렇게 숙명통을 얻었다. 그리고 제바달다가 교단을 분열시키고 부처님의 해치려고 할 때 그를 찾아가 꾸짖다가 그의 손에 숨을 거두었다. 몸 파는 여인이 아닌 거룩한 부처님의 제자로써 세상을 떠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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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다시 태어나지 않기로 했다 - 붓다를 만난 여인들
조민기 지음, 견동한 그림 / 조계종출판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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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 신선하다! 게다가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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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십대제자 - 경전 속 꽃미남 찾기
조민기 지음 / 맑은소리맑은나라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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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 동안 기다려온 책입니다. 읽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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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제자라고 하여 모두 사리불이나 목건련, 마하가섭처럼 세세생생의 인연과 훌륭한 자질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특히 6군 비구라 불리는 일련의 비구들은 서로 모여 수행과는 어긋난 일을 골라하곤 했다. 이들의 행동과 그에 대한 결과로 인하여 ‘비구로써 해서는 안 될 일’들이 ‘계율’로 정해지게 되었다.

아난으로부터 발우 공양을 받다
이 6군 비구들이 어느 날 탁발에 필요한 발우를 수집하는데 집착하기 시작했다. 당시 발우는 크게 쇠로 만든 것과 옹기로 만든 것 두 종류가 있었고, 모양이며 색깔 등이 각각 조금씩 달랐다. 이 6군 비구들이 날마다 이 발우를 종류별로 모으는 데 여념이 없었다. 출가자에게 사유재산이란 있을 수 없었고, 탁발과 걸식으로만 생활하는 교단에서 취미삼아 발우를 모으는 것은 수행자의 정신과 거리가 멀었다. 결국 부처님께서는 발우를 비롯하여 재물을 모으는 것을 금하는 계율을 정하셨고, 이를 어길 시에는 교단에서 내쫓도록 했다.

바로 이 시기에 아난은 지극히 귀한 소마국 발우를 구하게 되었다. 그는 이 발우를 받자 마하가섭에게 선물하였다. 이 사실을 아신 부처님께서는 곧바로 마하가섭을 불러 아난이 선물한 귀한 발우를 ‘발우가 없는’ 다른 사람에게 주라고 분부하셨다. 소마국 발우처럼 귀하지는 않지만 마하가섭에게는 이미 쓰고 있는 발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난으로써는 부처님의 뒤를 이을 마하가섭에게 그에 마땅한 좋은, 존귀한 발우를 선물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발우를 계기로 부처님께서는 계율의 엄격함을 공고히 알리는데 활용하셨다. 마하가섭은 두말없이 부처님의 분부에 따랐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는 평생 두타수행을 하며 고행과 무소유를 몸소 실천하였으니 실로 그 스승에 그 제자라고 할 수 있다.


이심전심(以心傳心)과 마하가섭의 미친 존재감
마하가섭은 부처님을 대신하여 재가 신도들에게 설법을 하기도 하고, 부처님이 자리를 비우셨을 때 주지 소임을 맡기도 했지만 주로 홀로 수행하기를 좋아했다. 사리불과 목건련은 부처님을 살뜰하게 모시며 교단을 지도했고, 부처님은 몸소 많은 일들을 직접 결정하시며 교단의 화합과 계율을 만들며 기틀을 잡았다. 이 과정에서 마하가섭은 등장하지 않을 때가 많다. 왜냐하면 그는 베르바나(죽림정사)나 아나타핀디카(기원정사) 같이 많은 이들이 머무는 곳에 있지 않고 홀로 숲이나 무덤 사이, 나무 아래 등에서 수행을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하가섭에 대한 부처님의 신임은 두터웠고, 사리불과 목건련은 아무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는데 그는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에 부처님을 대신하여 교단을 이끌어 갈 인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은 부처님과 마하가섭 사이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사리불과 목건련 역시 말하지 않아도 부처님의 마음을 알았으며 그것을 헤아려 실천했던 것이다. 부처님이 직접 교단을 지도하시는 한, 자잘한 일에는 일체 상관을 하지 않았기에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마하가섭의 말은 천금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또한 마하가섭이 대중들이 많은 곳에 함께하지 않았다고 해서 존재감이 미약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미친 존재감을 증명하는 일화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염화미소(拈華微笑)이다. 부처님이 설법을 듣기 위해 구름 같이 많은 사람들이 영축산에서 모였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부처님은 입을 열지 않으셨다. 그러다 문득 옆에 있던 연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이시니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이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데 저 뒷줄에 있던 마하가섭이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이에 부처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마주 미소 지으며 드디어 입을 열고 말씀하셨다.

“나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이 있는데 이를 마하가섭에게 전하노라”

이로부터 말없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지극히 우아하고 신비로우며 철학적인 ‘텔레파시’를 이르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는 말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한 번의 미소로 마하가섭의 존재감은 영원불멸의 것이 되었고 이 미소로 말미암아 그는 선종(禪宗)의 시조(始祖)로도 자리매김하였다. 마하가섭의 미친 존재감을 전하는 것은 이 뿐이 아니다.


마하가섭을 향한 부처님의 사랑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 전, 교단 내에서 마하가섭의 권위를 확실하게 세워놓기 위해 하신 일들을 살펴보면 독재자가 권력을 세습하기 위해 기반을 닦아놓은 것만큼이나 효과적이다. 공공연하게 마하가섭을 편애하는 부처님의 말씀과 행동은 자애롭기 그지없으나 그만큼 절대적이다. 두타수행과 무기한 잠적이라는 마하가섭의 특기는 때로 그의 존재감을 화려하게 부각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여기에 가장 훌륭한 조력자가 있었으니 바로 부처님이시다.

제자와 신도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경우 짝사랑하듯 부처님‘을’ 애틋하게 존경하고 보고 싶어 한다. 그런데 마하가섭은 이 관계를 반대로 하여 긴장감을 높인다. 그리하여 이런 배경이 탄생한다. 어느 때에 부처님이 못 본 지 오래 된 마하가섭이 너무나 그리워 마음으로 그를 불렀다. 이미 영축산에서도 텔레파시가 통했던 두 분이 아니던가. 마하가섭은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으나 당장에 부처님의 부름을 알아차리고는 그대로 스승을 향해 달려간다. 스승과 제자라는 사실을 빼고 보면 이런 러브스토리가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처님‘이’ 그를 보고 싶어 하셨다는 것이다. 이것부터가 벌써 교단에서 그의 위상이 얼마나 특별한지, 부처님이 그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를 알려준다.

부름을 받은 마하가섭은 자신의 남루한 차림새도, 길게 자란 머리와 수염도 전혀 개의치 않고 부처님을 향해 달려온다. 규율에 맞춰 교단에서 단정하게 수행을 하며 규칙적으로 생활을 하던 ‘정상적인’ 비구들은 웬 걸인이 부처님을 향해 달려오는 것을 보고는 길을 막는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미소를 지으며 걸인을 향해 손짓을 하고는 그가 다가오자 앉아 계시던 자리의 반을 내준다. 마치 잃어버린 아들을 찾은 듯, 귀한 손님을 대접하듯 걸인을 맞이하는 부처님을 보면서 그때서야 비구들은 그가 ‘두타제일(頭陀第一)’로 이름 높은 마하가섭임을 깨닫는다. 얼마나 효과적인 컴백인가. 비구들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는 것에는 이미 성공했다.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부처님의 말씀이 더해진다.

“마하가섭은 광대무변한 위엄과 덕을 갖추었으며 나와 비슷한 수도의 과정을 거쳐 혼자서라도 충분히 아라한과를 증득할 수 있느니라.”

마하가섭이 어떤 존재인지를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는 부처님의 말씀은 2500년이 지난 지금 보더라도 손발이 오글거릴 정도이다. 이처럼 마하가섭과 부처님은 죽이 잘 맞았다. 마하가섭은 결코 스스로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서두르지 않았고 침묵을 충분히 활용하였다. 그것이 어떠한 말보다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영축산에서도 미소 한 번으로 수많은 대중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알리지 않았던가.

하지만 마하가섭이 침묵을 즐긴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다만 침묵해야 할 때를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침묵의 힘이 있었기에 훗날 마하가섭이 입을 열었을 때 그의 말은 천금의 효과를 지닐 수 있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마하가섭의 말은 한 마디 한 마디가 실로 사자의 포효처럼 커다란 울림이 되어 교단을 지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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