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왕위에 오른 소백은 자신이 왕위를 계승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포숙아를 재상에 임명했다. 그러자 포숙아는 극구 거절하며 활을 쏘아 소백을 죽이려 했던 관중을 재상에 천거했다. 소백이 거절하자 포숙아가 말했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있어서 신은 결코 관중을 따를 수 없습니다. 그는 너그럽고 인자하며 충실하고 진실할 뿐 아니라 국가의 제반 제도를 규범화하고 제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군대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에게는 이런 능력들이 구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반드시 관중을 재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군주인 소백에게 그를 죽으려 했던 관중을 이토록 적극적으로 추대하다니 실로 목숨을 건 천거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결국 진심을 다해 호소하는 포숙아의 마음과 원한에 연연하지 않은 채 인재를 등용할 줄 알았던 소백의 멋진 결단력이 더해져 관중은 완전히 바뀐 삶을 살게 되었다. 죽을 날을 기다리는 죄수에서 제나라의 재상이 된 것이다. 관중이 재상이 되자 포숙아는 기꺼이 그의 밑에서 일하기를 자청했다. 이는 패배자가 재상이 되고 승리자가 재상의 비서가 된, 실로 파격적인 인사 조치였다.


함께 있을 때 더욱 빛났던 남자들
포숙아는 관중의 능력이 어떤 자리에서 가장 빛나게 발휘될 수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고 그런 관중을 위해 또 관중과 함께 일할 때 자신이 해야 할 일과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완벽하게 마음이 맞는 두 사람이 힘을 합쳐 국사를 돌보니 제나라는 점차 강성해졌다.

이 부분을 볼 때면 동시에 귀의를 했을때 비구들에게 사리불을 생모(生母)로, 목건련을 양모(養母)로 여기라 하셨던 부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기쁘게 받아들였던 목건련의 마음이 자꾸만 생각난다. 그는 아마도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면서 사리불이 자신보다 지혜롭다는 것을, 사리불의 역할과 자신의 역할이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지 않았을까.

사리불과 목건련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출중한 수행자이자 부처님의 제자이지만 확실히 차이는 경전 속에서 보면 이들을 대하는 부처님의 태도는 확실하게 다르다. 사리불은 결단코 자랑스럽고 사랑하며 대견한 부처님의 수제자요, 장남이라면 목건련은 분명 신통력이 뛰어나며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을 많이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존재감 자체로 보면 사리불을 훌륭하게 보좌해주며 교단을 이끄는 역할이다. 부처님의 수많은 제자들 중 딱 사리불과 목건련 두 사람만 놓고 본다면 누가 봐도 목건련은 주연이 아닌 조연인 셈이다.

같이 출가하여 같이 수행하였고, ‘신통력’이라는 시각적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사람들을 제도할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칭찬 받지도 못했던 목건련이 그와 반대로 ‘칭찬 덩어리’인 사리불을 한시도 질투하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놀랍다.


나를 낳은 부모님보다 나를 알아준 것은 오직 한 사람
사리불이 목건련과 함께 44년간 교단을 이끌며 수많은 외도들로 득실거리는 곳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연꽃처럼 오롯하고 아름답게 수호했던 것처럼 관중 또한 포숙아와 함께 40년간 재상을 지내며 제나라를 춘추시대 최고의 강대국으로 이끌었으며 소백(훗날 환공)을 패자로 만들었다. 또한 관중 자신도 춘추전국 시대 가장 현명했던 재상으로 널리 인정을 받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마침내 포숙아가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관중은 그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그리고는 “나를 낳은 것은 부모님이시지만 나를 알아준 것은 오직 포숙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 한 마디 또한 사리불과 목건련의 이야기와 닮아 있다.

목건련은 사리불이 어머니와 유난히 각별하고도 좋은 인연을 지녔던 것과 정 반대였다. 목건련의 어머니는 그토록 출중한 자식을 둔 부모치고 정말 특출 난 사람이었다. 사리불의 어머니는 장수(長壽)하여 사리불의 열반을 손수 준비해주고, 아들로부터 마지막 법문을 듣고 깨달음을 얻지만 목건련의 어머니는 악업을 끝도 없이 지어 아들보다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은 물로 죽어서 아귀도에 떨어진다. 그 어머니를 구제하기 위한 목건련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인데 이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두 사람의 부모님은 인품이나 선근의 차이가 혁혁하다.

만약 “나를 낳은 것은 부모님이시지만 나를 알아준 것은 오직 포숙아 뿐이다.”라는 관중의 말을 목건련이 들었더라면 그도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낳은 것은 부모님이시지만 나를 알아준 것은 오직 사리불 뿐이다.”라고 외쳤을지도 모른다.

목건련의 출가와 수행, 귀의에는 늘 사리불이 함께했다. 아니 사리불이 가는 곳에 목건련이 늘 함께했다고도 할 수 있다. 아마도 목건련의 부모는 절대 이해하지 못했던 그가 가고픈 곳, 하고픈 일을 사리불만큼은 알고 있었고, 목건련이 용기를 내어 스스로 원하는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함께 가자고 손을 내밀어 준 것이 아닐까 싶다. 또한 그것이 이들의 우정이 아름다운 이유일 것이다.

부처님을 만나 수제자가 되고 또 아라한이 되었지만 부모를 비롯하여 피할 수 없는 업을 지니고 태어나 그것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열반을 이룬 목건련의 진짜 이야기는 다음 회부터 시작된다. 
 
 
글 : 조민기(작가) gora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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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불과 함께 부처님의 상수제자였으며 평생을 함께한 도반으로써 죽는 날까지 남달리 아름다운 우정을 보여주었던 목건련(Maudgalyāyana)을 생각할 때면 항상 함께 떠오르는 인물들이 있다. 유백아와 종자기, 관중과 포숙아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들 역시 사리불과 목건련에 비하여 결코 뒤지지 않는 드라마틱한 사연과 깊은 우정을 보여주었다. 인과(因果)를 생각했을 때 혹시라도 이들이 전생의 인연이 있지 않을까 싶었으나 아쉽게도 이들은 활동한 시기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억지로 엮어보려던 마음을 접고 나자 새로운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활동시기가 아닌 활동분야였다. 유백아와 종자기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활약하였고, 관중과 포숙아는 사회정치 분야에서 활약을 하였다. 그러고 보면 사리불과 목건련은 종교철학 분야에서 활약한 우정의 대표주자인 셈이다. 기원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오직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이처럼 고매한 분야에서 우정이 피어났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 깊은 일이다.

목건련은 사리불과 어려서부터 친구였다. 두 사람은 함께 출가하여 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수행하다가 길에서 부처님의 제자인 아사지 비구를 만난 사리불의 권유를 받고 동시에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출가에서 귀의까지의 일련의 과정은 사리불의 이야기에 거의 다 나와 있다. 따라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기 보다는 목건련과 사리불의 이야기와 닮은, 멋진 남자들의 이야기를 살짝 엿보면서 ‘우정’의 의미를 음미해보도록 하자.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주인공, 관중과 포숙아
관중(管中)과 포숙아(鮑叔牙)는 기원전 7세기 춘추전국 시대 사람이다.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어울려 지냈는데 특히 포숙아가 먼저 관중의 현명함과 뛰어남을 알았다고 한다. 역사적 기록을 보았을 때 관중은 확실히 비상한 두뇌와 재주를 타고나긴 했으나 몹시 빈곤한 집안의 자제였던 것 같다. 커서 두 사람은 친구 사이는 물론 친족 사이에서도 피하는 것이 좋다는 동업을 했다. 동업은 물론 시작부터 불안했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했던 관중은 포숙아보다 출자금을 적게 냈다. 그러나 출자금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사를 통해 생긴 이익은 항상 똑같이 나눴고 심지어 포숙아는 관중에게 모자라지 않는지를 묻기도 했다.

이런 배려 속에서도 관중의 가난함은 좀처럼 좋아지지 않았고 이런 일들이 오래되고 계속되며 잦아지자 관중은 포숙아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한 방’을 터트리기 위해 몇 번이나 사업을 벌였다가 망하기를 되풀이했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과 한탕주의는 참으로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사이임이 확실하다. 게다가 그 ‘한 방’을 위한 투자금 대부분은 포숙아의 돈이었다, 하지만 포숙아는 번번이 투자금을 날리면서도 한 번도 관중을 원망하지 않았다.

사실 친구 사이의 우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절대 돈거래만은 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간관계에 있어서 ‘돈’에 대한 문제는 매우 민감하다. 매번 일방적으로 당하면서도 ‘다만 운이 따르지 않았을 뿐’이라며 친구 관중을 믿어주는 포숙아의 행동에 관중의 가족들은 얼마나 민망했으며, 포숙아의 가족들은 얼마나 얄밉고 짜증이 났을까.


가시밭길 정치인생을 비단길로 바꾼 우정
그 후 관중은 세 차례 벼슬길에 올랐는데 세 번 모두 파직되었다. 타고난 빈곤한 환경과 사업의 실패, 계속되는 해고 및 막막한 취업까지 이정도 되면 아무리 어린 시절 총명했다 하더라도, 아무리 운이 따르지 않는다 하더라도 인생의 실패자라 할만하다. 하지만 포숙아는 매번 파직될 때마다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이라며 관중을 위로했다. 이 인생의 실패자가 파직 후 향한 곳은 전쟁터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이 일어났던 춘추전국 시대에 관직에서 쫓겨난,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가난한 남자가 갈 곳은 군대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관중은 이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목숨을 아꼈던, 언젠가 올 기회를 여전히 기다리던 그는 세 번 참전했다가 세 번 모두 도망하였다. 이 질긴 버러지 같은 관중의 삶을 사람들이 욕하자 포숙아는 그를 감싸며 ‘보살펴야 할 늙은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라고 변호했다. 그처럼 잦은 전쟁 속에서 포악한 정치가 계속되자 관중과 포숙아는 결국 각자 다른 사람을 섬기게 되었고 다른 나라로 가서 살게 되었다.
그러던 중, 제나라의 왕이 피살되자 관중이 소흘이라는 사람과 함께 섬기던 왕자 규와 포숙아가 섬기던 소백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달려오다가 만나고야 말았다. 관중은 자신의 주군인 왕자 규를 한시라도 빨리 왕위에 올리기 위해 거침없이 소백에게 화살을 쏘았다. 하지만 화살은 소백의 허리띠를 맞췄을 뿐 목숨을 빼앗지는 못했다. 그러나 소백은 계락을 써 마치 죽은 것처럼 꾸민 채 관중 일행의 움직임을 늦추고는 재빨리 제나라로 가서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리고는 대대적으로 군사를 몰고 와 관중과 왕자 규의 세력을 단숨에 제압하였다. 왕자 규는 크게 패하여 노나라로 돌아갔으나 죽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왕자 규의 죽음을 본 소흘은 자살을 선택했다. 관중 역시 책임을 져야 했으나 죽기를 바라지 않아 옥에 갇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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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불이 열반한지 일주일 뒤에 사리불의 어머니와 마을 사람들은 그의 유해를 다비하였다. 쿤티 사미는 사리불의 유골을 가지고 베르바나(죽림정사)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난에게 가서 사리불이 열반에 든 모든 과정들을 이야기하였다. 쿤티 사미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난은 정신없이 눈물을 흘렸다.


비구들아, 너희는 내 아들의 이 고귀한 주검을 보아라.
이윽고 쿤티 사미가 이야기를 마치자 아난은 눈물 젖은 얼굴로 부처님께 가서 사리불의 열반을 이야기 하였다. 부처님은 아난이 지나치게 슬퍼하는 것을 알고는 물었다.

“아난, 너는 무엇을 그렇게 걱정하고 있느냐? 사리불은 나의 가르침을 따라 생사를 초월한 최상의 경지에 들어 열반한 것이다. 그러니 슬퍼하지 말라.”

그러나 부처님의 말씀이 끝난 후에도 아난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다시 물어보셨다.
“사리불은 내가 설한 모든 가르침과 진리를 체득하고 아무것도 뒤에 남김이 없이 열반에 들었는가?”
부처님의 물음에 아난은 간신히 흐느낌을 멈추고 대답하였다.

“아니옵니다. 존자 사리불은 계율을 잘 지키고, 그 지혜는 헤아릴 수 없으며, 능히 많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능히 소욕지족한 분으로 실로 훌륭히 정진하고, 정견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고, 또 갈 길을 비추고, 환희하고 찬탄하여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난은 다시 눈물이 쏟아져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러자 부처님은 묵묵히 아난의 말을 기다리셨다. 잠시 후, 아난은 슬픔에 겨운 목소리로 다시 대답하였다.

“그러나 그 사리불은 지금 가고 없습니다. 저는 법을 위하여, 또 법을 받을 사람들을 생각하여 근심하고 있사옵니다.”

부처님은 아난을 위해 모든 것은 무상한 것이며 사리불이 없더라도 사리불이 지키고 가르친 법(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님을 설해 주셨다. 그리고 쿤티 사미가 가지고 온 사리불의 유골을 오른 손에 들고 비구들을 향해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이 유골은 수일 전까지 중생을 위하여 법을 설하고 가르침을 베푼, 지혜가 가장 뛰어난 사리불의 유골이다. 그는 조금도 모자람이 없이 여래와 같이 법을 설하여 펴고 너희 무리를 이끌었다. 그의 지혜는 광대무변하여 여래 이외에는 겨눌 자가 없었다. 그는 실로 깊이 법을 깨닫고 탐욕을 끊고 취하지도 않으며 오직 법을 위하여 정진하는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았다. 또한 그는 적정을 즐겼으며 이를 위하여 훌륭히 정진하였다.
그는 법을 구함에 용맹하였고 결코 게으르지 않았다. 그는 싸움을 기뻐하지 않았고 능히 악을 피하고 항상 선정을 닦아 해탈을 얻었다. 그가 있는 곳에는 항상 복이 충만하고 능히 외도의 그릇됨을 제거하고 정법을 가르쳤다. 비구들아, 너희는 내 아들의 이 고귀한 주검을 보아라.”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대중들이 사리불의 유골에 절을 하였다. 사리불의 유골을 전해 받은 부처님께서 성인(聖人)을 장사지내는 법을 알려주셨고 이에 수닷타 장자는 탑을 세워 사리불의 유골을 간직했다. 그로부터 200년 후, 인도를 최초로 통일한 아쇼카 대왕은 기원정사에 들러 사리불의 탑에 공양하고 10만금을 희사하였다.


다음 생의 모델, 사리불과 나와의 인연
10대 제자 이야기를 쓰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바로 엄마와의 대화였다. 무남독녀 외동딸로 자란 엄마는 결혼 후, 누구도 강요한 사람이 없는데도 아들 낳기를 소망했다. 그런데 딸을 연달아 셋을 낳았다. 그리고 9년 만에 드디어 막내 겸 장남으로 아들을 낳자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했다. 하지만 아들을 낳았다고 해서,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쁘다고 해서 세상살이와 살림살이가 단박에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들을 낳았다고 엄마를 칭찬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자식 넷을 키우기에도 분주했을 뿐 아니라 아빠는 장남이었기 때문에 온갖 집안일들로 하루 24시간이 모자랐다. 그래서 엄마는 늘 자기 자신이 없었다. 그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수 십 년을 살았다. 글을 쓰느라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엄마를 가만히 ‘관찰’하던 어느 날, 나는 여전히 집안일을 하느라 바쁜 엄마를 향해 나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말했다.

“엄마, 내가 만약 다시 태어나면 엄마의 남편으로 태어날게. 그래서 엄마가 바라는 거, 듣고 싶은 말, 정말 원하는 거 다 해줄게. 그리고 충분히 칭찬도 해주고 늘 표현해줄게. 맛있으면 맛있다, 예쁠 땐 예쁘다, 잘했을 땐 잘했다, 사랑스러울 땐 사랑한다! 이렇게!”

마음과 표현이 늘 어긋나는 아빠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온 것이었다. 엄마는 나의 말을 듣고는 가만히 웃기만 했다. 그리고 또 많은 시간이 흘렀다. 엄마와 함께 불교 공부를 하러 다니면서 나는 예전에 엄마에게 했던 말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엄마의 남편으로 태어나겠다고 약속하긴 했지만 난 남자로 태어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날 문득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다시 태어나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묻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엄마에게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처음이었다는 것을.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는 사실 엄마가 우리를 키우면서 수십, 수 백 번도 더 했던 질문이었다. 묻고 나서 나 스스로도 놀라고 있을 때, 엄마는 더 놀라운 대답을 했다.

“엄마는 다시 태어나면 큰 스님이 되고 싶어. 좋은 집안에서 꼭 장남으로 태어나서 머리도 좋고, 목소리도 좋고, 잘 생기고, 키도 크고 모든 조건이 훌륭한 그런 남자로, 장남으로 태어나서 공부도 실컷 많이 해보고 젊지만 저만하면 참 훌륭하다 하는 소리를 듣는 그런 남자일 때 출가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부처님 말씀을 전하고 또 실천해서 큰 스님이 되고 싶어.”

엄마의 장래희망 아니 내생의 희망을 듣는 것은 매우 묘한 기분이었다. 동시에 안심했다. 엄마가 남자로 태어나길 희망하니 내가 남자로 태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그래서 기분 좋게 다시 약속했다.

“여자로 태어날 생각은 없어?”

엄마는 단호한 얼굴로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결혼할 생각도 없고?”

엄마는 당연하다는 듯 머리를 가로로 크게 저었다. 두 번이나 확실하게 확인을 하고 나자 마음이 놓였다. 나는 신이 나서 말했다.

“정말이지? 그럼 내가 다음 생에는 꼭 엄마의 엄마로 태어날게. 그래서 아주 공들여서 태교도 하고, 정성껏 길러줄게. 이번에 엄마의 딸로 태어나서 자라본 경험이 있으니 그건 잘할 자신이 있어. 그러니까 꼭 내 아들로, 장남으로 태어나. 약속하자.”

“그래 약속하자!”

엄마는 웃는 얼굴로 눈물을 글썽이며 소리 높여 대답했다. 나는 그 후로 과연 다음 생에 엄마와 다시 만날 땐 어떤 모자(母子)가 되어야 할지 항상 고민했다. 그러던 중 경전 공부를 하면서 십대제자와 만나게 되었고, 사리불의 이야기를 읽었을 때 무릎을 쳤다. 바로 내가, 나와 엄마가 다음 생에 되고 싶은 모델이 2500여 년 전에 이미 있었던 것이다.

오늘도 엄마와 나는 다음 생에 사리와 사리불과 같은 모자(母子)가 되기 위해서 노력한다. 바라는 것이 있기에 더욱 기쁘고 행복하게, 다시 태어나기 위해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게 된다. 바르고 건강한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엄마와 나의 작은 욕심이 인연이 되어 경전 속 꽃미남들을 발굴하겠다는 서원을 세웠고, 꽃미남 10대제자를 알게 되면서 언젠가 글로 쓰겠다는 보다 구체적인 서원을 세웠고, 마침내 미디어 조계사에 연재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경전 속 꽃미남, 10대 제자 이야기의 첫 주인공은 사리불이 되었다. 다음 편에는 사리불의 평생지기 친구이며 부처님께 함께 귀의했으며 교단 최초로 외도들의 손에 목숨을 잃은 순교자 목건련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글 : 조민기(작가) gora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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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별의 말을 마친 사리불은 쿤티 사미 한 명을 데리고 어머니가 살고 있는 고향을 향해 떠났다. 그동안 사리불을 사모하며 존경해온 비구들이 뒤를 따르려 했지만 사리불은 정진에 방해가 되는 그런 미련을 기뻐하지 않았다. 결국 남은 사람들은 죽림정사 입구에서 사리불과 쿤티 사미가 떠나는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는 것으로 이승에서의 마지막 이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귀향 그리고 어머니와 아들
베르바나(죽림정사)에서 나온 사리불은 쿤티 사미 한 명만을 데리고 고향으로 향했다. 수도 라자가하(왕사성) 근처에 있는 그의 고향에는 100살이 다 되어가는 어머니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를 떠올리며 늙고 지친 다리를 움직였다. 마침내 고향 마을 근처에 도착한 사리불은 잠시 쉬기 위해 나무 아래 앉았다. 쿤티 사미는 묵묵히 사리불의 곁을 지켰다.
그 때 그곳을 지나가던 한 젊은이가 사리불을 보고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사리불의 고향은 그의 아버지가 다스리는 마을이었고, 사리불이 외삼촌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들과 함께 부처님께 귀의한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일이었기 때문에 고향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마침 그에게 인사를 건넨 젊은이는 바로 사리불의 친조카인 우파알리푸타였다.
사리불은 조카를 불러 자신의 어머니가 집에 계신지, 건강하신지 물어본 뒤 먼저 가서 자신이 태어난 방을 치워 놓아 달라는 말을 전해줄 것을 부탁했다. 우파알리푸타는 존경하며 우러러보던 백부가 고향에 돌아온 것이 기뻐 얼른 집으로 뛰어갔다. 하지만 그는 사리불이 왜 고향에 돌아왔는지는 알지 못했다. 한편 100살이 다 되어가는 사리불의 어머니는 우파알리푸타의 말을 듣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손수 아들의 방에 들어가 청소를 하였다. 그러자 집안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서로 도와 어느덧 방은 금세 깨끗하게 정리 되었다.
해가 질 무렵 마침내 사리불이 집 안에 들어왔다. 태어나서부터 줄곧 너무나 총명하고 출중하여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장남이 출가를 하겠다고 했을 때, 사리불의 어머니는 눈앞이 캄캄했지만 그 후에도 줄곧 사리불이 태어나고 자란 방을 비워두고 있었다. 어머니의 눈에 사리불은 깨달음을 얻은 아라한이기에 앞서 손수 낳아 기른 아들이었다.

“어머니”

자신을 부르는 아들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사리불의 어머니는 목이 메었다.

“잘 돌아왔다. 아들아”

간신히 아들의 이름을 부른 사리불의 어머니는 그를 곧 방으로 안내했다. 사리불이 태어났던 바로 그 방이었다.

어머니, 저는 조용히 열반에 들기 위하여 돌아왔습니다.
사리불은 발을 씻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간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기침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쇄약해진 사리불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깜짝 놀랐지만 쿤티 사미는 침착하게 사리불을 간호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100살이 다 된 늙은 어머니 역시 놀라움에 앞서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일흔을 바라보는 늙은 아들의 등을 두드리며 어루만져 주었다.

“아들아, 괴롭지 않느냐?”

“이제 괜찮습니다. 이것은 육신의 괴로움일 뿐 저에게는 괴로운 것도 두려운 것도 없습니다. 저의 스승은 부처님이십니다. 그분의 가르침을 받은 저는 생사의 고해에서 해탈하고 있답니다.”

사리불은 한결 편안한 얼굴로 대답했다. 사리불의 어머니는 조용히 아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사리불은 계속하여 말했다.

“부처님의 모든 높은 제자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전에 열반에 들게 되어 있답니다.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어머니, 저는 열반에 들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무런 걱정도 마십시오. 인간은 누구나 죽습니다. 모든 괴로움에서 해탈하여 열반에 드는 자만큼 행복한 사람은 없답니다.”

바라문 중에서도 뛰어난 논사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또 그 아버지를 이길 만큼 뛰어난 학식과 언변을 지닌 남편과 결혼하였으며, 또한 하나같이 뛰어난 여덟 명의 아들을 낳아서 키운 사리불의 어머니는 매우 총명한 여자였다. 또한 나이가 들어서도 그 총명함이 조금도 시들지 않았다. 그녀는 곧 아들의 말을 이해하였다. 그리고는 슬픔을 억누르며 맑은 얼굴과 담담한 목소리로 아들에게 말했다.

“참으로 너의 말과 같다. 미혹함이 없이 열반에 들 수 있는 자는 행복한 사람이니라. 이 어미는 네가 적정 속에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말을 마친 사리불의 어머니는 방에서 나왔다. 홀로 남은 사리불은 마음으로부터 어머니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그러나 사리불의 어머니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자마자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아들의 말처럼 한때 새처럼 푸르고 아름답다 칭송받았던 그녀의 눈은 여전히 아름다움이 남아있긴 하지만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모든 것은 무상했다. 그것을 알면서도 주름진 그녀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것은 깨달음조차 어찌할 수 없는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고향에서의 마지막 설법과 열반
사리불의 고향은 사리불의 아버지가 다스리는 곳이었고, 사리불이 출가한 이후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그들은 사리불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에게 설법을 듣고 싶어 하였다. 하지만 사리불의 건강을 염려한 쿤티 사미는 사리불에게 사람들이 설법을 기다린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은 채 사리불이 기척을 내기를 기다렸다.

뒤늦게 사리불이 고향에 돌아와 열반에 들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아사세삿투왕 또한 찾아와 사리불의 마지막 설법을 듣고자 하였다. 밤이 늦도록 기다렸지만 사리불의 방에서는 아무 기척이 없자 사람들은 하나 둘 사리불과의 만남을 단념하였다.
새벽 무렵, 사리불이 쿤티 사미를 불렀다.

“누가 온 것 같구나.”

그러자 쿤티 사미는 아사세삿투왕을 비롯하여 촌장과 마을 사람들이 설법을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자 사리불은 그들의 청을 수락하며 자신의 방으로 모셔오라고 말했다. 쿤티 사미는 사리불의 뜻이 진정인지 거듭 물어본 뒤 사람들에게 가서 사리불의 뜻을 전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기뻐하며 조용히 사리불이 태어난, 이제 곧 사리불이 열반하게 될 방으로 갔다.
사람들이 오자 사리불은 단정하게 앉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야기 한 뒤 자신이 곧 열반을 할 것이며, 열반은 안정된 적정(寂靜)의 세계임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열반의 깨우침을 가르쳐주신 것 또한 부처님의 덕임을 말한 뒤 설법을 마쳤다. 열반을 앞두고도 진정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펴는 사리불을 보며 사람들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숭고하고도 신성한 감격에 쌓은 채 사리불에게 절을 하고 방에서 나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후, 사리불은 잠시 괴로움을 겪었다. 그러나 잠시 후, 오른쪽으로 누운 채 선정에 들어가자마자 곧 열반에 들었다. 쿤티 사미는 사리불의 열반을 확인한 후 사리불의 어머니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녀는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한편 성자의 아름답고도 숭고한 죽음에 감동하였다. 그리고 머지않아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을 기쁘게 맞이할 가르침을 얻었다.  
 
 
 
글 : 조민기(작가) gora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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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사리불도 어느 덧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그동안 아들처럼 각별하게 사랑했던 라훌라도 세상을 떠났고, 평생을 함께했던 친구 목건련도 세상을 떠났다. 사리불은 이미 세속의 감정을 떠난 아라한이었지만 이 두 사람의 죽음은 그에게 큰 슬픔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이제 여든이 된 부처님께서는 스스로를 ‘낡은 수레를 임시방편으로 수리하여 사용하는 것이나 다름없음’이라 말씀하시며 깨달음 이후 45번째의 여름 안거를 마치시자 열반을 준비하셨다. 사리불은 상수 제자로써 스승 부처님의 열반에 앞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 홀로 깊은 선정에 들었다.


부처님에 앞서 열반할 것을 청하다
좌선을 한 채 깊은 선정에 들었던 사리불은 참선을 마친 뒤 예로부터 모든 부처님의 상수(上首) 제자들은 스승에 앞서 열반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머지않아 열반에 들 스승을 떠올리며 자신이 먼저 열반에 들 것을 결심했다. 결심을 마친 사리불은 부처님께 가서 무릎을 꿇고 말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열반에 들겠사오니, 부디 제 청을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사리불의 마음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부처님은 입을 열어 깨달음 이후 44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함께 늙은, 맏아들처럼 아꼈던 사리불에게 물었다. 육신의 덧없음을 잘 알면서도 열반에 들 것을 청하는 듬직한 제자의 청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 쓸쓸했다.

“어찌하여 그렇게 열반을 서두르는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스승의 물음에 사리불은 진심을 다해 대답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가까운 장래에 열반에 드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세존께서 열반에 드시는 것을 지켜볼 수 없습니다. 또한 세존께서 누차 말씀하셨듯이 과거의 부처님의 높은 제자는 반드시 부처님 앞에서 열반에 들었습니다. 부처님의 상수(上首) 제자인 저는 이제 열반에 들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결심을 부디 거두어 주십시오.”

사리불이 말을 마치자 부처님은 그의 주름진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참으로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그리고 믿음직스러운 제자였다. 그의 결심이 확고하다는 것을 아신 부처님은 다시 사리불에게 물어보셨다. 아까와는 다른, 사리불의 청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이 담긴 질문이었다.

“그대는 능히 열반의 때를 알고 있구나. 어느 곳에서 열반에 들겠는가?”

그러자 사리불이 대답했다.

“고향에 아직 어머니가 살아 계십니다. 고향에 돌아가 어머니를 뵈옵고 제가 태어난 그 방에서 열반에 들겠습니다.”

출중한 바라문 출신답게 사리불은 고향의 자랑이었으며, 그의 집에는 그가 태어난 방이 출가하긴 했으나 언젠가 귀향할 그를 위해 비워진 상태로 있었다. 그것은 그의 어머니의 뜻이기도 했다. 사리불은 그런 어머니의 뜻을 알았기에 열반할 곳으로 자신의 집, 자신이 태어난 방을 선택한 것이었다.


베르바나(죽림정사)에서의 마지막 설법
사리불이 열반에 들을 자리가 평온함을 아신 부처님은 더 이상 그를 말리지 않았다. 다만 그에게 마지막 설법을 할 것을 청하셨다.

“기특하구나. 사리불이여, 그대는 나의 제자 가운데 가장 뛰어난 제자였다. 열반에 들기 전 승가의 비구들에게 마지막 설법을 하여라.”

부처님의 마음을 알아차린 아난은 산중의 모든 비구들을 모이게 하였다. 비구들은 사리불의 마지막 설법을 듣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비구들이 모두 모이자 사리불은 단정한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을 향해 경건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래 전부터 어떻게 하면 부처님을 만날 수 있어 그와 함께 살 수 있는가 생각하여 왔습니다. 이제 저의 염원이 이루어져 이승에서 부처님을 만나게 된 것은 이 위에 더 없는 기쁨이옵니다. 그리고 저와 같이 어리석은 자도 부처님의 여러 가지 가르침을 받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감사할 길이 없는 기쁨이옵니다.

지금 저에게는 이승을 떠나야 할 때가 다가왔습니다. 저는 멀지 않아 사바세계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재한 경지에 들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무거운 짐을 버린 사람과 같이 오체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늘과 땅 위에서 가장 높으신 세존이시여, 이것이 세존에게 바치는 저의 마지막 인사이옵니다.”

사리불은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고 처음 제자가 되기 위해 부처님을 찾아왔을 때 했던 예를 지켜 스승의 발아래 오체를 굽혀 절하였다. 사리불이 설법을 하고 부처님께 예를 표하는 내내 엄숙하고도 감동적인 침묵이 부처님과 사리불 그리고 비구들을 감쌌다. 절을 마친 사리불은 조용히 일어나 부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뒷걸음으로 물러갔다. 부처님은 말없이 열반을 위해 떠나는 제자를 전송했다.
사리불이 떠난 뒤, 자신의 거처로 돌아와 선정에 들어간 부처님도 수 십 년간 교단을 지키며 자신과 함께 늙어간 제자를 그리워했다. 비록 깨달음을 얻었으나 부처님 또한 인간의 감정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세속에서 얻은 아들이자 자신의 제자로 출가하여 아라한이 된 라훌라도 세상을 떠났고, 더할 나위 없는 신통력을 지녔으나 이를 자랑하지 않고 필요한 순간에만 사용하며 교단을 든든하게 지켜 주었단 목건련도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제 사리불마저 곁에 없다는 생각에 부처님은 쓸쓸함을 느꼈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별
비구들은 사리불을 따라 움직이며 향을 피우거나 꽃을 들어 그를 전송했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 중에는 슬픔을 참지 못해 소리 죽여 흐느끼며 눈물을 흘리는 자들도 있었다. 조용하지만 장엄한 그 행렬은 베르바나(죽림정사) 입구까지 계속되었다. 하지만 사리불은 베르바나(죽림정사)의 입구에 이루자 발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쿤티 사미만 남고 모두 돌아가 주십시오. 돌아가 수행에 정진하여 고뇌의 경지를 벗어나도록 힘쓰시오. 부처님께서 이승에 오시는 일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또한 사람으로 태어나 믿음을 얻고 출가하여 여래의 법을 들을 수 있는 것은 부처님의 출현보다 더 얻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 귀한 기회를 얻은 여러분께서 부디 한층 더 정진할 것을 저는 떠나면서 다시 부탁합니다.”

사리불이 말을 마치자 비구들은 새삼 이것이 사리불과의 마지막 만남이라는 것을 느꼈다. 40년이 넘는 기나긴 시간동안 언제나 함께하며 지혜롭게 온갖 위기를 극복하며 교단을 이끌어주던 사리불을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생각하자 참을 수 없는 슬픔이 찾아왔다. 한 비구가 입을 열었다.

“사리불 존자, 당신은 어찌하여 그렇게 빨리, 굳이 서둘러 열반에 들고자 합니까?”

사리불은 자신의 열반에 슬픔과 쓸쓸함을 느끼는 그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열반을 위해 떠나기 전, 그는 눈물로 자신을 배웅하는 교단의 형제들을 다정하게 위로하며 말했다.

“형제들이여, 마음 아파하지 마십시오. 제행은 무상합니다. 수미산도 언젠가 먼 훗날에는 깎이고 허물어질 것입니다. 수미산에 비하면 한 알의 겨자씨보다 보잘 것 없는 사리불의 육체가 없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열반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영원히 돌아가고 싶은 적정의 세계입니다.” 
 
글 : 조민기(작가) gora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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