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흘러 사리불도 어느 덧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그동안 아들처럼 각별하게 사랑했던 라훌라도 세상을 떠났고, 평생을 함께했던 친구 목건련도 세상을 떠났다. 사리불은 이미 세속의 감정을 떠난 아라한이었지만 이 두 사람의 죽음은 그에게 큰 슬픔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이제 여든이 된 부처님께서는 스스로를 ‘낡은 수레를 임시방편으로 수리하여 사용하는 것이나 다름없음’이라 말씀하시며 깨달음 이후 45번째의 여름 안거를 마치시자 열반을 준비하셨다. 사리불은 상수 제자로써 스승 부처님의 열반에 앞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 홀로 깊은 선정에 들었다.


부처님에 앞서 열반할 것을 청하다
좌선을 한 채 깊은 선정에 들었던 사리불은 참선을 마친 뒤 예로부터 모든 부처님의 상수(上首) 제자들은 스승에 앞서 열반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머지않아 열반에 들 스승을 떠올리며 자신이 먼저 열반에 들 것을 결심했다. 결심을 마친 사리불은 부처님께 가서 무릎을 꿇고 말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열반에 들겠사오니, 부디 제 청을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사리불의 마음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부처님은 입을 열어 깨달음 이후 44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함께 늙은, 맏아들처럼 아꼈던 사리불에게 물었다. 육신의 덧없음을 잘 알면서도 열반에 들 것을 청하는 듬직한 제자의 청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 쓸쓸했다.

“어찌하여 그렇게 열반을 서두르는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스승의 물음에 사리불은 진심을 다해 대답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가까운 장래에 열반에 드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세존께서 열반에 드시는 것을 지켜볼 수 없습니다. 또한 세존께서 누차 말씀하셨듯이 과거의 부처님의 높은 제자는 반드시 부처님 앞에서 열반에 들었습니다. 부처님의 상수(上首) 제자인 저는 이제 열반에 들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결심을 부디 거두어 주십시오.”

사리불이 말을 마치자 부처님은 그의 주름진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참으로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그리고 믿음직스러운 제자였다. 그의 결심이 확고하다는 것을 아신 부처님은 다시 사리불에게 물어보셨다. 아까와는 다른, 사리불의 청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이 담긴 질문이었다.

“그대는 능히 열반의 때를 알고 있구나. 어느 곳에서 열반에 들겠는가?”

그러자 사리불이 대답했다.

“고향에 아직 어머니가 살아 계십니다. 고향에 돌아가 어머니를 뵈옵고 제가 태어난 그 방에서 열반에 들겠습니다.”

출중한 바라문 출신답게 사리불은 고향의 자랑이었으며, 그의 집에는 그가 태어난 방이 출가하긴 했으나 언젠가 귀향할 그를 위해 비워진 상태로 있었다. 그것은 그의 어머니의 뜻이기도 했다. 사리불은 그런 어머니의 뜻을 알았기에 열반할 곳으로 자신의 집, 자신이 태어난 방을 선택한 것이었다.


베르바나(죽림정사)에서의 마지막 설법
사리불이 열반에 들을 자리가 평온함을 아신 부처님은 더 이상 그를 말리지 않았다. 다만 그에게 마지막 설법을 할 것을 청하셨다.

“기특하구나. 사리불이여, 그대는 나의 제자 가운데 가장 뛰어난 제자였다. 열반에 들기 전 승가의 비구들에게 마지막 설법을 하여라.”

부처님의 마음을 알아차린 아난은 산중의 모든 비구들을 모이게 하였다. 비구들은 사리불의 마지막 설법을 듣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비구들이 모두 모이자 사리불은 단정한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을 향해 경건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래 전부터 어떻게 하면 부처님을 만날 수 있어 그와 함께 살 수 있는가 생각하여 왔습니다. 이제 저의 염원이 이루어져 이승에서 부처님을 만나게 된 것은 이 위에 더 없는 기쁨이옵니다. 그리고 저와 같이 어리석은 자도 부처님의 여러 가지 가르침을 받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감사할 길이 없는 기쁨이옵니다.

지금 저에게는 이승을 떠나야 할 때가 다가왔습니다. 저는 멀지 않아 사바세계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재한 경지에 들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무거운 짐을 버린 사람과 같이 오체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늘과 땅 위에서 가장 높으신 세존이시여, 이것이 세존에게 바치는 저의 마지막 인사이옵니다.”

사리불은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고 처음 제자가 되기 위해 부처님을 찾아왔을 때 했던 예를 지켜 스승의 발아래 오체를 굽혀 절하였다. 사리불이 설법을 하고 부처님께 예를 표하는 내내 엄숙하고도 감동적인 침묵이 부처님과 사리불 그리고 비구들을 감쌌다. 절을 마친 사리불은 조용히 일어나 부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뒷걸음으로 물러갔다. 부처님은 말없이 열반을 위해 떠나는 제자를 전송했다.
사리불이 떠난 뒤, 자신의 거처로 돌아와 선정에 들어간 부처님도 수 십 년간 교단을 지키며 자신과 함께 늙어간 제자를 그리워했다. 비록 깨달음을 얻었으나 부처님 또한 인간의 감정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세속에서 얻은 아들이자 자신의 제자로 출가하여 아라한이 된 라훌라도 세상을 떠났고, 더할 나위 없는 신통력을 지녔으나 이를 자랑하지 않고 필요한 순간에만 사용하며 교단을 든든하게 지켜 주었단 목건련도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제 사리불마저 곁에 없다는 생각에 부처님은 쓸쓸함을 느꼈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별
비구들은 사리불을 따라 움직이며 향을 피우거나 꽃을 들어 그를 전송했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 중에는 슬픔을 참지 못해 소리 죽여 흐느끼며 눈물을 흘리는 자들도 있었다. 조용하지만 장엄한 그 행렬은 베르바나(죽림정사) 입구까지 계속되었다. 하지만 사리불은 베르바나(죽림정사)의 입구에 이루자 발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쿤티 사미만 남고 모두 돌아가 주십시오. 돌아가 수행에 정진하여 고뇌의 경지를 벗어나도록 힘쓰시오. 부처님께서 이승에 오시는 일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또한 사람으로 태어나 믿음을 얻고 출가하여 여래의 법을 들을 수 있는 것은 부처님의 출현보다 더 얻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 귀한 기회를 얻은 여러분께서 부디 한층 더 정진할 것을 저는 떠나면서 다시 부탁합니다.”

사리불이 말을 마치자 비구들은 새삼 이것이 사리불과의 마지막 만남이라는 것을 느꼈다. 40년이 넘는 기나긴 시간동안 언제나 함께하며 지혜롭게 온갖 위기를 극복하며 교단을 이끌어주던 사리불을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생각하자 참을 수 없는 슬픔이 찾아왔다. 한 비구가 입을 열었다.

“사리불 존자, 당신은 어찌하여 그렇게 빨리, 굳이 서둘러 열반에 들고자 합니까?”

사리불은 자신의 열반에 슬픔과 쓸쓸함을 느끼는 그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열반을 위해 떠나기 전, 그는 눈물로 자신을 배웅하는 교단의 형제들을 다정하게 위로하며 말했다.

“형제들이여, 마음 아파하지 마십시오. 제행은 무상합니다. 수미산도 언젠가 먼 훗날에는 깎이고 허물어질 것입니다. 수미산에 비하면 한 알의 겨자씨보다 보잘 것 없는 사리불의 육체가 없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열반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영원히 돌아가고 싶은 적정의 세계입니다.” 
 
글 : 조민기(작가) gora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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