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불이 열반한지 일주일 뒤에 사리불의 어머니와 마을 사람들은 그의 유해를 다비하였다. 쿤티 사미는 사리불의 유골을 가지고 베르바나(죽림정사)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난에게 가서 사리불이 열반에 든 모든 과정들을 이야기하였다. 쿤티 사미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난은 정신없이 눈물을 흘렸다.


비구들아, 너희는 내 아들의 이 고귀한 주검을 보아라.
이윽고 쿤티 사미가 이야기를 마치자 아난은 눈물 젖은 얼굴로 부처님께 가서 사리불의 열반을 이야기 하였다. 부처님은 아난이 지나치게 슬퍼하는 것을 알고는 물었다.

“아난, 너는 무엇을 그렇게 걱정하고 있느냐? 사리불은 나의 가르침을 따라 생사를 초월한 최상의 경지에 들어 열반한 것이다. 그러니 슬퍼하지 말라.”

그러나 부처님의 말씀이 끝난 후에도 아난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다시 물어보셨다.
“사리불은 내가 설한 모든 가르침과 진리를 체득하고 아무것도 뒤에 남김이 없이 열반에 들었는가?”
부처님의 물음에 아난은 간신히 흐느낌을 멈추고 대답하였다.

“아니옵니다. 존자 사리불은 계율을 잘 지키고, 그 지혜는 헤아릴 수 없으며, 능히 많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능히 소욕지족한 분으로 실로 훌륭히 정진하고, 정견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고, 또 갈 길을 비추고, 환희하고 찬탄하여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난은 다시 눈물이 쏟아져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러자 부처님은 묵묵히 아난의 말을 기다리셨다. 잠시 후, 아난은 슬픔에 겨운 목소리로 다시 대답하였다.

“그러나 그 사리불은 지금 가고 없습니다. 저는 법을 위하여, 또 법을 받을 사람들을 생각하여 근심하고 있사옵니다.”

부처님은 아난을 위해 모든 것은 무상한 것이며 사리불이 없더라도 사리불이 지키고 가르친 법(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님을 설해 주셨다. 그리고 쿤티 사미가 가지고 온 사리불의 유골을 오른 손에 들고 비구들을 향해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이 유골은 수일 전까지 중생을 위하여 법을 설하고 가르침을 베푼, 지혜가 가장 뛰어난 사리불의 유골이다. 그는 조금도 모자람이 없이 여래와 같이 법을 설하여 펴고 너희 무리를 이끌었다. 그의 지혜는 광대무변하여 여래 이외에는 겨눌 자가 없었다. 그는 실로 깊이 법을 깨닫고 탐욕을 끊고 취하지도 않으며 오직 법을 위하여 정진하는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았다. 또한 그는 적정을 즐겼으며 이를 위하여 훌륭히 정진하였다.
그는 법을 구함에 용맹하였고 결코 게으르지 않았다. 그는 싸움을 기뻐하지 않았고 능히 악을 피하고 항상 선정을 닦아 해탈을 얻었다. 그가 있는 곳에는 항상 복이 충만하고 능히 외도의 그릇됨을 제거하고 정법을 가르쳤다. 비구들아, 너희는 내 아들의 이 고귀한 주검을 보아라.”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대중들이 사리불의 유골에 절을 하였다. 사리불의 유골을 전해 받은 부처님께서 성인(聖人)을 장사지내는 법을 알려주셨고 이에 수닷타 장자는 탑을 세워 사리불의 유골을 간직했다. 그로부터 200년 후, 인도를 최초로 통일한 아쇼카 대왕은 기원정사에 들러 사리불의 탑에 공양하고 10만금을 희사하였다.


다음 생의 모델, 사리불과 나와의 인연
10대 제자 이야기를 쓰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바로 엄마와의 대화였다. 무남독녀 외동딸로 자란 엄마는 결혼 후, 누구도 강요한 사람이 없는데도 아들 낳기를 소망했다. 그런데 딸을 연달아 셋을 낳았다. 그리고 9년 만에 드디어 막내 겸 장남으로 아들을 낳자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했다. 하지만 아들을 낳았다고 해서,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쁘다고 해서 세상살이와 살림살이가 단박에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들을 낳았다고 엄마를 칭찬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자식 넷을 키우기에도 분주했을 뿐 아니라 아빠는 장남이었기 때문에 온갖 집안일들로 하루 24시간이 모자랐다. 그래서 엄마는 늘 자기 자신이 없었다. 그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수 십 년을 살았다. 글을 쓰느라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엄마를 가만히 ‘관찰’하던 어느 날, 나는 여전히 집안일을 하느라 바쁜 엄마를 향해 나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말했다.

“엄마, 내가 만약 다시 태어나면 엄마의 남편으로 태어날게. 그래서 엄마가 바라는 거, 듣고 싶은 말, 정말 원하는 거 다 해줄게. 그리고 충분히 칭찬도 해주고 늘 표현해줄게. 맛있으면 맛있다, 예쁠 땐 예쁘다, 잘했을 땐 잘했다, 사랑스러울 땐 사랑한다! 이렇게!”

마음과 표현이 늘 어긋나는 아빠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온 것이었다. 엄마는 나의 말을 듣고는 가만히 웃기만 했다. 그리고 또 많은 시간이 흘렀다. 엄마와 함께 불교 공부를 하러 다니면서 나는 예전에 엄마에게 했던 말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엄마의 남편으로 태어나겠다고 약속하긴 했지만 난 남자로 태어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날 문득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다시 태어나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묻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엄마에게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처음이었다는 것을.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는 사실 엄마가 우리를 키우면서 수십, 수 백 번도 더 했던 질문이었다. 묻고 나서 나 스스로도 놀라고 있을 때, 엄마는 더 놀라운 대답을 했다.

“엄마는 다시 태어나면 큰 스님이 되고 싶어. 좋은 집안에서 꼭 장남으로 태어나서 머리도 좋고, 목소리도 좋고, 잘 생기고, 키도 크고 모든 조건이 훌륭한 그런 남자로, 장남으로 태어나서 공부도 실컷 많이 해보고 젊지만 저만하면 참 훌륭하다 하는 소리를 듣는 그런 남자일 때 출가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부처님 말씀을 전하고 또 실천해서 큰 스님이 되고 싶어.”

엄마의 장래희망 아니 내생의 희망을 듣는 것은 매우 묘한 기분이었다. 동시에 안심했다. 엄마가 남자로 태어나길 희망하니 내가 남자로 태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그래서 기분 좋게 다시 약속했다.

“여자로 태어날 생각은 없어?”

엄마는 단호한 얼굴로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결혼할 생각도 없고?”

엄마는 당연하다는 듯 머리를 가로로 크게 저었다. 두 번이나 확실하게 확인을 하고 나자 마음이 놓였다. 나는 신이 나서 말했다.

“정말이지? 그럼 내가 다음 생에는 꼭 엄마의 엄마로 태어날게. 그래서 아주 공들여서 태교도 하고, 정성껏 길러줄게. 이번에 엄마의 딸로 태어나서 자라본 경험이 있으니 그건 잘할 자신이 있어. 그러니까 꼭 내 아들로, 장남으로 태어나. 약속하자.”

“그래 약속하자!”

엄마는 웃는 얼굴로 눈물을 글썽이며 소리 높여 대답했다. 나는 그 후로 과연 다음 생에 엄마와 다시 만날 땐 어떤 모자(母子)가 되어야 할지 항상 고민했다. 그러던 중 경전 공부를 하면서 십대제자와 만나게 되었고, 사리불의 이야기를 읽었을 때 무릎을 쳤다. 바로 내가, 나와 엄마가 다음 생에 되고 싶은 모델이 2500여 년 전에 이미 있었던 것이다.

오늘도 엄마와 나는 다음 생에 사리와 사리불과 같은 모자(母子)가 되기 위해서 노력한다. 바라는 것이 있기에 더욱 기쁘고 행복하게, 다시 태어나기 위해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게 된다. 바르고 건강한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엄마와 나의 작은 욕심이 인연이 되어 경전 속 꽃미남들을 발굴하겠다는 서원을 세웠고, 꽃미남 10대제자를 알게 되면서 언젠가 글로 쓰겠다는 보다 구체적인 서원을 세웠고, 마침내 미디어 조계사에 연재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경전 속 꽃미남, 10대 제자 이야기의 첫 주인공은 사리불이 되었다. 다음 편에는 사리불의 평생지기 친구이며 부처님께 함께 귀의했으며 교단 최초로 외도들의 손에 목숨을 잃은 순교자 목건련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글 : 조민기(작가) gora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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