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주세요
쓰지 히토나리 지음, 양윤옥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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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 대신 "힘내지 않아도 좋아!"라고 말하기.


 

"꾸지람을 듣고 싶어하는 마음은 잘 알겠어.
때로는 그런 것도 필요하겠지.
그러나 냉정한 비판을 받는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네가 안고 있는 외로움에
서광이 비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
너무 힘을 내려고 애쓰는 바람에

네가 엉뚱한 길, 잘못된 세계로

빠져드는 것만 같아.
굳이 힘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잖니?
인간이란 실은

그렇게 힘을 내서 살 이유는 없어.
그렇게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거꾸로 힘이 나지. 몹쓸 사람들은 우리에게 지나치게 부담을 주는 그런 사람들이야.
힘을 내지 않아도 좋아.
자기 속도에 맞춰


그저 한발 한발 나아가면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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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대처,  

조용히 바보로 취급당하는 것을 선택했던 수상의 남편

 
수상이 된 후 마거릿의 권위적이고 독단적이며 주변을 배려할 줄 모르는 태도는 더욱 강해졌다. 그것은 ‘영국병’을 고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방편이기도 했지만 마거릿이 가진 원래 품성이기도 했다. 영국에 ‘영국병’이 있다면, ‘영국병’을 고치고자 했던 마거릿에게는 이른바 ‘대처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쌍벽을 이루는 성공 강박증이 있었다. 수상으로써 마거릿이 영국병을 매로 다스리는 수상이었다면, 남편으로서 데니스는 수상이자 아내인 마거릿의 ‘대처병’을 사랑으로 감싸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최초의 여성 수상과 그녀의 외로움을 위로한 남편 

 


마거릿은 자신이 성공한 것은 운이 아니라 철저하게 실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신분과 가난이라는 물리적인 어려움을 의지와 노력으로 이겨냈던 그녀는 조금이라도 자신의 기대보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보면 견디질 못하고 가차 없이 독설을 퍼부었다. 또한 그녀는 모든 스케줄은 하루에 네다섯 시간 취침이면 충분한 자신의 체력에 맞췄고 부하직원들을 매우 엄격하게 대했다. 피곤에 찌든 보좌관들은 남몰래 치를 떨면서도 감히 그녀 앞에서 대놓고 불만을 표현하지 못했다.
사실 마거릿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수상이었고 그래서 경직되고 침체된 영국 사회에 많은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으며 도저히 실현할 수 없을 것만 같던 일들을 현실로 만들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의견을 포용하거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화 등으로 풀어가기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관철시키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비난도 많이 받았다. 여당으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얻는 것도 아니었고 그녀와 대립한 야당은 정치적인 사안 외에 마거릿의 목소리, 말 한마디, 목소리, 표정 하나, 가벼운 동작 하나하나에 대한 꼬투리를 붙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워낙 씩씩하고 강한 정신력을 지닌 마거릿이었지만 호의적인 시선보다 적대적인 시선이 압도적인 가운데 항상 긴장 상태로 지내다 보니 성취감이나 뿌듯함을 느끼기가 쉽지 않았다. 데니스는 그런 외롭고 고독한 마거릿을 아는 유일한 친구이자 가족이며 보호자였다.

그는 아내의 꿈과 능력이 세상과 조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갖 소음들 중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를 구분할 수 있었고, 자신이 마거릿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이며 그때가 언제인지를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재주가 있었다. 데니스는 마거릿에게 용기가 필요할 때는 진심을 다해 그녀가 세상에 둘도 없는 지도자라고 말해주었으며 침묵이 필요할 때는 입을 다물었고, 위로가 필요할 땐 묵묵히 그녀의 곁을 지키며 따뜻하게 위로해 주었다.

다우닝가의 안주인에서 퍼스트 젠틀맨으로

또한 데니스는 유머감각과 여유, 배려와 사교성이 부족하여 비난받는 마거릿을 위해 다우닝가 10번지 수상 관저의 ‘안주인’ 노릇을 자처하며 그녀에게 부족한 부분을 소리 없이 채워주었다. 종종 마거릿이 각료들을 집으로 초대하면 데니스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부인들과 응접실에서 어울렸다. 그리고 마거릿과 그녀들의 남편인 각료들이 회의를 하는 동안 차를 마시기도 하고 다양한 화제로 담소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록 살뜰하게 대접했다.

수상으로써 마거릿은 ‘사교적 모임’과 ‘회의’를 가리지 않고 어떤 자리에서든 한 번 정치 이야기를 시작하면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토론을 하는, 한마디로 다른 사람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상사였다. 따라서 데니스의 이러한 배려는 ‘사적인 초대라고 해놓고 남편들을 붙들고 정치 이야기를 끝도 없이 계속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여자 수상’에 대한 부인들의 불만을 해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그는 마거릿이 바쁠 때면 그녀를 대신하여 수상 관저를 직접 방문하는 사람들을 만나주곤 했다. 데니스는 단지 의례적으로 그들을 만나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수상에게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듣고 자세히 기록했다가 나중에 마거릿에게 전달한 후 그녀의 결정이나 대답을 다시 전해주곤 했다. 이러한 행동은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거만하다는 수상의 이미지를 향상시키는 데 무척 큰 효과가 있었다.

데니스에게 이런 일을 해달라고 부탁한 것은 마거릿도 그녀의 내각 참모들도 아니었다. 이것은 순전히 ‘다우닝가의 안주인’을 자처한 데니스가 알아서 찾아낸 역할이었다. 이처럼 데니스는 마거릿이 수상으로 재임했던 11 년 동안 묵묵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외조를 계속했다. 이런 그에게 사람들은 영부인을 뜻하는 퍼스트레이디(First Lady)의 의미를 정중하게 담은 ‘퍼스트 젠틀맨(First Gentleman)’이라는 칭호를 선물했다. 그 후 데니스는 이상적인 정치가의 남편을 칭하는 롤 모델이자 대명사로 알려지게 되었다.

박수칠 때 떠난 명예로운 퇴임

1990년 11월 20일, 마거릿은 보수당 당수를 결정하는 투표에서 과반수 이하의 표를 얻어 패배했다. 재투표를 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국민들 사이에서는 물론 보수당 내에서도 그녀를 비난하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을 때였다. 마거릿은 남편에게 조언을 구했다. 1959년 마거릿이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30년 넘도록 정치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드러낸 적이 없는 데니스였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는 마거릿에게 명예로운 퇴임을 하기 바란다고 대답했다. 데니스의 말은 마거릿에게 남편의 조언인 동시에 국민의 의견이었다. 마거릿은 데니스의 의견에 순순히 따랐다.

이틀 후인 1990년 11월 22일 아침, 마거릿은 뉴스를 통해 당의 앞날과 융합을 위해 사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녀의 선택은 그동안 그녀에게 반발하던 많은 사람들에게서 존경을 이끌어냈다. 국민들은 11년간 누려온 절대적인 권력을 포기할 줄 아는 마거릿의 용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언론 역시 그녀에게 호의적이었다. 물러서야 할 때를 정확하게 알고 실천한 사람에게만 주어질 수 있는 명예로운 퇴임이었다. 1991년 5월, 여왕 알현을 마치고 나온 마거릿은 눈가가 붉게 물든 채 수상 관저를 떠났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데니스는 그녀의 곁을 지켰다.
 
1992년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마거릿의 공을 인정해 그녀에게 여남작 작위를 수여했다. 마거릿이 남작이 되면서 남편인 데니스 또한 자연히 준 남작이 되었다. 마거릿이 정치가가 된 이후 데니스에게 무언가를 준 것은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죽음 그리고 홀로 남겨진 마거릿

명예로운 퇴임 이후 마거릿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녀는 매우 사소한 일에도 겁을 먹고 움츠러들었고 지독한 상실감과 허무함에 시달렸다. 30년이 훨씬 넘도록 취미도 휴식도 없이 오로지 ‘정치’라는 한 길만 전력질주해온 결과였다. 데니스는 우울증에 빠진 아내를 살뜰하게 보살폈다. 그녀가 수상이든 아니든, 권력이 있든 없든 언제나 그녀의 편이었던 데니스가 곁에 있는 한 마거릿은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영원할 수는 없었다. 2003년 데니스는 췌장암 및 심장병으로 88세에 세상을 떠났다. 마거릿은 큰 충격을 받았다. 남편을 먼저 보낸 마거릿은 외롭고 쓸쓸한 노년을 보내야 했다. 데니스 외에는 마음을 나눌 친구 한 명조차 없던 마거릿은 그가 곁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차츰 치매 증상을 보였다. 마거릿과 데니스의 딸 캐럴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와의 대화를 담은 자신의 비망록을 책으로 냈다. 딸과 대화를 하던 중 마거릿은 몇 번이나 남편의 안부를 물어보았다. 캐럴은 그때마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말해주어야 했다. 그때마다 마거릿은 슬픈 표정을 지었다.

만약 데니스가 마거릿보다 오래 살았다면 어땠을까. 그가 마거릿을 마지막까지 돌보았다면 그녀가 치매라는 사실은 세상에 결코 드러나지 않은 채 죽는 날까지 ‘수상’이자 ‘여남작’다운 품위를 지켰을지도 모른다. 


칼럼니스트 조민기
gorah9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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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니스 대처,   
조용히 바보로 취급당하는 것을 선택했던 수상의 남편

언젠가 마거릿은 한 인터뷰에서 “나는 운이 좋았습니다. 충실한 비서를 두었으니까요. 나는 데니스의 재력 덕분에 정치를 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은 옳았다. 처음에는 재력으로 아내가 꿈을 실현하는 것을 도왔던 데니스는 점차 정치가로서 마거릿의 입지가 넓어질수록 그녀의 충실한 비서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마거릿의 심신을 세심하게 보살피면서도 정치에 대해서는 최대한 말을 아꼈다.

재력을 갖춘 충실한 비서

아내의 ‘공무’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나 의견을 낸 적이 거의 없는 것으로 잘 알려진 데니스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던 것은 1971년 마거릿이 교육장관으로 재임 중일 때였다. 당시 마거릿은 노후 학교 건물의 개선과 의무 교육 기간 연장을 위한 예산 마련을 위해 그때까지 7세~11세의 초등학생에게 무료로 제공되던 급식 우유를 유료화했다. 그녀의 결정은 곧 사회 전체에 엄청난 반발을 일으켰고 언론은 그녀를 ‘우유 도둑’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며 강하게 비난했다. 또 유력한 잡지는 마거릿을 ‘영국에서 가장 인기 없는 여성’으로 선정했고, 이를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마거릿이 학교에서 연설을 하던 도중에 학생들 태반이 나가버리거나 야유와 고함을 질러대기도 했다.

어떠한 반대가 있더라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던 마거릿도 이때만큼은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 데니스는 너무나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사임을 권했다. 그것은 정치적인 발언이라기보다는 남편으로서 그녀를 염려하는 마음에서 한 말이었다. 하지만 마거릿의 반응은 보통의 여자들과 완전히 달랐다. 사임을 권하는 데니스 말을 듣자 마거릿은 눈물을 멈추고 새삼 승부욕에 불타올랐다.

데니스의 사임 권유는 ‘힘들면 언제라도 사임을 해도 되는 든든한 가족’이 곁에 있다는 사실을 마거릿에게 확실하게 가르쳐준 것이었다. 이를 깨달은 마거릿은 더 이상 언론이나 대중의 태도에 상처받지 않을 용기가 생겼다. 결국 그녀는 열정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으며 동시에 정치적 ‘위기’도 극복했다.

하지만 마거릿은 나중에 인터뷰할 기회가 생기자 자신이 이처럼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고향 그랜섬과 아버지의 가르침 덕분이라고 말하며 데니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정치가 아내를 위해 이른 은퇴를 결심하다

1975년 마거릿은 일생일대의 기회를 얻었다. 그것은 바로 보수당의 당수가 될 수 있는 기회였다. 유력한 후보자이자 마거릿의 친구였던 키스 조지프가 그녀에게 입후보를 포기하겠다는 뜻을 전달한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마거릿은 아무에게도, 심지어 데니스를 비롯한 다른 가족에게도 상의하지 않고 당수 선거에 입후보하겠다고 결심했다. 결심은 혼자 했지만 두 번에 걸친 선거운동은 가족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첫 번째 투표일인 1975년 2월 4일 아침, 마거릿은 선거 전략의 하나로 자신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해 자택으로 찾아온 기자들 앞에서 데니스를 위해 주방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가정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대중들에게 가정을 소중히 하는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후 선거 기간 동안 마거릿이 실제로 주방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일은 두 번 다시없을 것을 알면서도 데니스는 승리를 위한 아내의 계획에 기꺼이 동참했다.

첫 번째 투표에서 마거릿은 가장 많은 표를 얻었지만 과반수가 넘지 않아 투표는 무효가 됐다. 두 번째 투표는 일주일 후인 2월 11일로 정해졌다. 마거릿은 이 일주일간 수많은 의원들과 점심, 저녁 식사를 함께하며 맹렬하게 선거 유세에 돌입했다. 그리고 마침내 최초의 여성 당수가 되었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쉰 살이었다. 당연히 가정은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보수당의 당수가 된 마거릿의 활동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어졌으며 행동 하나 하나가 화제가 되었다. 마거릿이 당수 선거에 한창이던 당시 런던대학에서 졸업시험이 한창이던 딸 캐럴의 사생활조차 매스컴에 수시로 공개되곤 했다. 이 때문에 캐럴은 졸업 후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자신이 ‘당수의 딸’이 아닌 ‘캐럴 대처’로 인정받을 수 있는 직장을 찾아 호주 라디오 방송국의 리포터로 취직했다.

반면 어머니가 ‘마거릿 대처’임을 적극 활용하며 부모에게 의지하고자 했던 아들 마크는 학업도 지지부진했을 뿐 아니라 그가 ‘마거릿 대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이용하고자 한 사람들에게 휘말려 마거릿의 경력에 흠집이 날 만한 온갖 골칫거리를 만들어내곤 했다.

승승장구하는 아내와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자식들을 지켜보면서 그때까지 사업에 종사하던 데니스는 은퇴를 결심했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수십 년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꾸려온 가문의 사업이었지만 혹시라도 자신이 하는 일에 문제나 말썽이 생겼을 경우 ‘공인’의 자리에 있는 마거릿에게 화살이 돌아갈 것을 염려해서였다. 은퇴하기엔 조금 이른 예순의 나이였지만 데니스는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골프와 술, 담배 등으로 소일하며 영국을 위해 너무나 바쁜 아내의 곁을 조용히 그리고 충성스럽게 지켰다.

바보 취급당하는 것을 기꺼이 선택한 수상의 남편
 

4년 후인 1979년 5월, 총선거가 치러졌다. 투표일 다음날 새벽 세 시, 데니스는 아내와 함께 보수당 본부를 찾았다. 그리고 아내가 영국 최초로 수상이 되는 기쁨을 함께했다. 이번에도 마거릿은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승리 연설에서 “내 정치적 스승은 아버지였다.”라고 거듭 말했다.

물질적, 심리적, 경제적으로 30년 가까이 아내를 지지하고 응원했던 데니스의 이름은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한 마거릿의 행동과 발언은 데니스와 남은 가족들의 존재를 점점 희미하게 만들었지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 ‘그림자’ 역할을 그 누구보다 우아하고 완벽하게 해냈다.

개표 당일 새벽 다섯 시, 자택으로 돌아온 데니스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마거릿은 너무 흥분하여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여왕의 비서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잠시 후, 가족들은 여왕을 알현하기 위해 버킹엄 궁으로 갈 채비를 했다. 좋은 날이었지만 기쁨보다는 긴장과 흥분으로 팽팽해진 공기를 완화하기 위해 데니스는 “자동차가 부서질지도 몰라.”라고 농담을 했다. 그러자 마거릿은 “그땐 걸으면 돼요.”라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마거릿의 칼 같은 성격을 보여주는 이 일화는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는데, 여기서도 데니스는 아내의 캐릭터를 빛나게 해주는 ‘조연’ 역할을 하고 있다. 데니스는 이처럼 마거릿에게 인간미를 더해주곤 했다. 영국의 수상이라는 최고의 위치에 오른 정치가의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서 데니스의 처신은 지나칠 정도로 모범적이었다. 그는 마거릿이 수상의 자리에 있었던 11년 동안 혹시라도 마거릿이 자신으로 인해 구설수에 오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단 한 번의 인터뷰도 하지 않은 현명한 남편이었다.

칼럼니스트 조민기 gorah9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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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로병사(生老病死)를 비롯하여 모든 번뇌와 집착, 괴로움을 떠난 아라한이었지만 목건련 역시 한 어미의 아들이었다. 본디 효자(孝子)인 그는 어머니가 죽어서 지옥에 떨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웠다. 게다가 뛰어난 신통력을 갖춘 바람에 어머니가 지옥에서 고통 받는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고 그 고통의 원인까지도 한 치의 가감도 없이 스승인 부처님께 들었다. 그의 어머니가 아귀지옥에서 고통 받는 것은 정확한 인과(因果)였고 과보였다.


지옥에서 어머니를 구원한 아들 그리고 우란분절의 기원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도저히 그는 어머니의 고통을 지켜보고 있을 수가 없던 목건련은 부처님께 어머니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여쭈어보았다. 하지만 대답은 절망적이었다.

“목건련아, 네 어미의 죄는 너무 크고 무거워서 네가 어떤 신통력이 있다 하더라도 결코 대신하거나 구제할 수 없을 것이다. 너의 효심(孝心)이 아무리 넘친다 하여도 삼보(부처님(佛)과 부처님의 가르침(法)과 부처님의 제자인 승려(僧)를 일컫는 말)를 비방한 어미의 죄는 어찌할 수 없다. 그러나......”

가슴이 아프고 목이 메여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목건련이 ‘그러나’라는 부처님의 목소리를 듣자 갑자기 얼굴을 번쩍 들고 부처님을 바라보았다.

“네가 너무나 측은하여 내가 한 가지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

과연 목건련은 부처님의 상수제자였다. 부처님은 자신이 각별하게 아끼는 제자가 청한 도움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면 그가 아마도 평생을 짊어지고 갈지 모를 슬픔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시방(十方)의 출가 대중들에게 지성으로 공양을 하라. 그러면 삼보에 공양한 공덕의 힘으로 네 어미의 죄가 가벼워져서 아귀지옥은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아귀지옥을 면할 수 있다는 부처님의 말씀에 절망으로 가득했던 목건련의 눈이 작게나마 희망을 찾은 듯 빛나기 시작했다.

“그럼 언제 어떤 방법으로 대중공양을 올라면 되겠습니까?”

목건련이 물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출가 사문들이 하안거를 마치고 자유스러운 수행에 들어가는 음력 보름 7월 15일에 진수성찬과 그 해에 농사지은 신선한 햇과일들을 마련하여 정성껏 공양하면, 그 공덕으로 인해 일곱 생 동안의 선친과 현세의 부모들이 모두 재앙에서 벗어난다. 뿐만 아니라 현세의 부모들은 모든 액난(厄難)에서 벗어나 장수와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앞으로 너의 어미를 위해 7월 보름, 출가 대중에게 공양하도록 하여라.”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목건련은 매우 기뻐하였다. 그리고 7월 보름이 되었을 때, 잊지 않고 지극한 정성을 다해 과일과 음식을 마련하여 시방(十方)의 출가 대중들과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다. 그러자 그날로 목건련의 어머니는 아귀지옥에서 벗어났다. 아귀지옥에서 벗어났을 뿐 당장 천상에 간 것은 아니었지만 목건련은 그것만으로도 부처님께 크게 감사하였다. 그리고 매년 7월 보름날마다 대중공양을 올렸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날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지옥에 떨어진 조상들의 천도를 기원하고 살아있는 부모의 복덕을 기원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또한 권장하였다.

이것이 바로 불교의 5대 명절 중 하나인 백중, 즉 우란분재(盂蘭盆齋-산스크리트어 ullambana를 한역한 것. 원래 뜻은 거꾸로 매달린 것을 풀어놓는다는 뜻으로 거꾸로 매달리는 것 같은 고통으로부터 죽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행하는 천도재(薦度齋)를 말한다)의 유래이다.


효(孝), 종교를 뛰어넘어 아시아를 관통하는 대중적인 정서
지금도 음력 7월 15일에는 불자들은 천도재(薦度齋)를 올리고 대중공양을 한다. 목건련과 그의 어머니의 이야기가 기록된 우란분경(盂蘭盆經)은 중국에서 찬술되어 지금까지도 널리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목건련의 효심은 유교(儒敎)와도 상통하여 중국과 한국에서 불교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데 많은 공헌을 하였다.

또한 불교를 국교로 삼았던 신라나 고려시대의 경우 우란분절은 국가적인 행사이기도 했으며 유학(儒學)을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했던 조선시대에도 석가탄신일 연등일(음력 4월 8일)과 더불어 2대 명절로 자리 잡았다. 태어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식이다. 그리고 부모님께 효도를 다하지 못했다는 후회는 시공을 초월하여 자식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감정이다. 목건련이 죽은 어머니를 지옥에서 구해내는 이야기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은 어렵고 난해한 경전 가운데에서 국가와 민족의 차이, 신분과 빈부의 차이, 남녀노소의 차이를 뛰어넘어 가장 대중적으로 다가온다.

목건련은 10대 제자 중에서도 출중하게 지혜롭고 자질이 훌륭하며 신통력까지 갖추어 우리에게 너무나 멀게만 인식될 수 있는 존재이다. 하지만 이토록 인간적인 정서와 감수성을 가지고 있으며, 측은한 한 명의 아들이 되어 부처님의 지혜를 구하고 또 마침내 실천했다는 점에서 그는 누구보다 친근한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자신이 어머니를 구원했던 방법을 기꺼이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방안이 우리가 실천하기에 결코 어렵지 않다는 점에서 고상하게만 여겨질 수 있는 아라한이라는 존재와 불법의 오묘함에 위력적인 대중성과 친화력을 부여한다.


오르페우스와 목건련
오르페우스는 세상을 떠난 에우리디케를 찾아 지옥에 가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아내를 지옥에서 데리고 나오는데 실패했다. 하지만 실패함으로써 그의 사랑은 전설이 되었다. 목건련 또한 어머니를 찾아 지옥에 가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토록 엄청난 신통력을 지니고도 고통 받는 어머니가 살아서 어떤 죄를 지었는지 찾는 데에는 실패한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목건련은 부처님의 위신력을 증명한다. 그의 어머니의 과보는 살아서 부처님과 그의 제자들을 비방한 것이었다. 따라서 부처님만이 그녀를 구제할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섯 가지 신통력을 부족함 없이 구족하고도 스승의 위신력을 한껏 드높이고, 신통력으로도 구제할 수 없던 어머니를 ‘특정한 날 출가사문에게 지극한 정성으로 대중공양을 올리는’ 순수한 노력으로 구원하였으며 ‘효(孝)’라는,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날까지도 가장 대중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이야기’의 주인공인 그는 단순한 신통력이 아닌 다양한 의미에서 부처님의 제자들 가운데 진정한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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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전 세계의 신도들에게 가장 큰 축제이자 명절인 것처럼 불자들에도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날은 가장 큰 축제이자 명절이다. 사실 불교에서는 석가탄신일을 비롯한 5개의 큰 명절이 있다. 그것은 바로 부처님이 태어나신 날, 출가하신 날, 성도하신 날, 열반하신 날 그리고 백중(음력 7월 15일)이다. 그 중 백중은 부처님의 생애와 관련이 없는 유일한 명절인데 대신 부처님의 제자인 ‘목건련’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오르페우스, 아내를 위해 지옥에 다녀온 남편
동양 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지옥에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신화나 전설을 통해 심심찮게 발견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낭만적인 남자 오르페우스이다.

음악의 달인이었던 그는 사랑하는 여인 에우리디케를 만나 달콤한 신혼의 나날을 보내던 중 갑작스럽게 아내가 뱀에게 물려 세상을 떠나자 큰 슬픔에 빠졌다. 아내를 도저히 잊을 수 없었던 그는 결국 죽음의 세계인 지옥으로 가서 에우리디케를 다시 찾아오기로 결심했다. 어쩌면 그저 너무나 그리운 사람을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했을 뿐 되찾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는 생명이 없는, 죽은 자들이 있는 깊고 어두운 지하의 세계로 아내를 만나러 갔다.

지옥의 입구는 머리 셋이 달리 사나운 개가 지키고 있어 생명이 남아 있는 이 세상 사람이 생명을 다한 사람들만 있는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을 철저하게 경계했다. 오르페우스는 지옥의 문 앞에서 리라를 연주했다. 일찌감치 인간의 경계를 훨씬 뛰어넘고 신과 사람은 물론 산천초목과 공기까지도 사로잡은 바 있는 오르페우스의 혼신을 다한 연주에 으르렁거리던 개가 이빨을 감추고 얌전해졌다. 지옥의 입구를 지켜야 하는 임무를 잊은 개는 이 세상 사람인 오르페우스가 저 세상으로 걸어가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그 후로도 오르페우스는 지옥에 들어가서 그가 아내를 만나러 가는 것을 방해하는 무시무시한 존재들과 만날 때마다 연주를 해서 모든 관문을 통과하고 마침내 지옥의 왕과 여왕 앞에 서게 된다. 그때 그에게는 오직 아내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마음만 있을 뿐 두려움이라고는 한 조각도 없었다.

오르페우스는 감히 겁도 없이 망자의 세계에 제 발로 걸어 들어온 맹랑한 인간이었지만 그의 음악에 감동한 지옥의 왕과 여왕은 그를 손님으로 융숭하게 대접하였다. 그리고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와 함께 지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였다. 다만 에우리디케가 지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오르페우스가 반드시 지켜야 할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에우리디케는 오르페우스의 뒤를 따라 걸어갈 것이고, 두 사람이 지옥을 나가기 전까지 오르페우스는 절대 절대로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내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쁨에 오르페우스는 단박에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지상으로 돌아가는 길을 나섰다. 하지만 길을 걸을수록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가 과연 뒤에 있는지 궁금한 것을 참을 수가 없었고 결국 지옥을 벗어나기 직전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약속을 어긴 순간, 바로 오르페우스의 뒤를 따르던 에우리디케는 곧장 지옥으로 돌아가야 했다. 오르페우스는 결국 아내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을 다시 만났다는 것만 해도 커다란 성과였다. 하지만 죽은 아내와 함께 지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뜻밖의 행운 앞에서 그저 ‘얼굴 한 번 다시 보는 것’이었던 원래의 소원은 하찮을 수밖에 없었다. 아내를 되살릴 수 있는 기회를 눈앞에서 놓친 그는 더 큰 상실감에 빠졌지만 지옥의 왕과 여왕은 그에게 두 번째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결국 그는 목적을 이루고도 가장 슬픈 사나이가 되었다.


목건련, 어머니를 위해 지옥에 다녀온 아들
오르페우스가 지옥을 무사히 다녀올 수 있었던 이유가 인간의 경지를 훨씬 뛰어넘은 그의 연주실력 때문이었던 것처럼 목건련이 지옥을 다녀올 수 있었던 이유는 이승과 저승, 천상을 마음대로 오고갈 수 있었던 그의 신통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처럼 뛰어난 신통력을 좀처럼 발휘하지 못한 순간도 있었다. 그 대상은 바로 어머니였다.

오르페우스처럼 아내를 보기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목건련 역시 한 여자를 위해 지옥을 찾았다. 그녀는 다름 아닌 그의 어머니였다. 목건련은 평소 가족에 대한 말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늘 간직하고 있었다. 아마도 외아들이었기에 더했을 것이다. 출가 후, 한참이 지나고 나서 그는 문득 자신의 어머니가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여 신통을 발휘해 이 세상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하지만 도저히 찾을 길이 없었다. 그는 천상과 지옥도 모두 살펴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아귀지옥에서 어머니를 찾을 수 있었다.

이미 죽었기 때문에 죽을 수도 없는 영혼들이 모여 살아서 지은 죄의 과보에 따라 죽음보다 괴로움을 겪어야 하는 곳, 지옥. 아무리 먹어도 늘 배가 고픈 벌을 받아야 하는 영혼들이 모여 있는 아귀지옥에 도착한 목건련은 한쪽에서 흉측한 모습으로 고통 받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했다.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처럼 뼈가 튀어나온 앙상한 몸과 당장이라도 바삭거리는 소리가 날 것처럼 마르고 자글거리는 살가죽이 도저히 인간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 비참한 형상에 목건련은 가슴이 찍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살아서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어머니는 눈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아들을 알아보지도 못한 채 입 안 가득 음식을 쑤셔 넣을 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음식을 입에 넣어도 목구멍이 바늘보다 가늘어 삼킬 수가 없었다. 그러니 아무리 먹어도 계속 배가 고플 수밖에 없었다. 본래 효성이 지극했던 목건련은 신통력을 발휘하여 온갖 음식을 마련해 어머니 앞에 다시 나타났다. 아들조차 알아보지 못했던 여인은 음식을 보자마자 달려들어 허겁지겁 게걸스럽게 움켜쥐고는 입 속으로 쑤셔 넣기 시작했다. 그러나 음식들은 여인의 입에 닿기가 무섭게 순식간에 타올라 새카만 재로 변했다. 여인은 다시 배고픔에 고통스러워했다.

목건련은 과연 자신의 어머니가 살아서 어떤 죄를 지었기에 이런 벌을 받는지 알기 위해 신통력으로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았지만 슬픔이 앞섰기 때문인지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결국 목건련은 자신보다 더욱 커다란 신통력과 지혜를 모두 갖추신 단 한 명에게 그의 고민을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곧바로 스승인 부처님을 찾아간 목건련은 무릎을 꿇고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며 어머니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 자비로써 말씀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목건련의 말을 들은 부처님은 과연 유능하고 사랑스러운 제자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며 잠시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부처님의 얼굴에서 근심어린 기색을 발견한 목건련은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거듭 간청하였다. 이윽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목건련아, 너무 서러워하지 말거라. 너의 신통력은 변함이 없다. 다만 네가 친족의 정(情) 때문에 네 어미 과보의 인과(因果)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너의 어미는 이 세상에 있을 적에 출가 사문을 비방하였을 뿐 아니라 미신을 믿어 축생을 함부로 죽여 귀신에게 바치고 바른 인과의 도리를 믿지 않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이웃의 많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끌어 들였다. 그리하여 지금 아귀지옥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에게 어미의 잘못을 들은 목건련은 목이 메었다. 그토록 크나큰 잘못을 저지른 어머니를 과연 구할 방법이 있을지조차 알 수 없어 슬픔은 점점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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