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전 세계의 신도들에게 가장 큰 축제이자 명절인 것처럼 불자들에도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날은 가장 큰 축제이자 명절이다. 사실 불교에서는 석가탄신일을 비롯한 5개의 큰 명절이 있다. 그것은 바로 부처님이 태어나신 날, 출가하신 날, 성도하신 날, 열반하신 날 그리고 백중(음력 7월 15일)이다. 그 중 백중은 부처님의 생애와 관련이 없는 유일한 명절인데 대신 부처님의 제자인 ‘목건련’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오르페우스, 아내를 위해 지옥에 다녀온 남편
동양 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지옥에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신화나 전설을 통해 심심찮게 발견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낭만적인 남자 오르페우스이다.
음악의 달인이었던 그는 사랑하는 여인 에우리디케를 만나 달콤한 신혼의 나날을 보내던 중 갑작스럽게 아내가 뱀에게 물려 세상을 떠나자 큰 슬픔에 빠졌다. 아내를 도저히 잊을 수 없었던 그는 결국 죽음의 세계인 지옥으로 가서 에우리디케를 다시 찾아오기로 결심했다. 어쩌면 그저 너무나 그리운 사람을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했을 뿐 되찾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는 생명이 없는, 죽은 자들이 있는 깊고 어두운 지하의 세계로 아내를 만나러 갔다.
지옥의 입구는 머리 셋이 달리 사나운 개가 지키고 있어 생명이 남아 있는 이 세상 사람이 생명을 다한 사람들만 있는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을 철저하게 경계했다. 오르페우스는 지옥의 문 앞에서 리라를 연주했다. 일찌감치 인간의 경계를 훨씬 뛰어넘고 신과 사람은 물론 산천초목과 공기까지도 사로잡은 바 있는 오르페우스의 혼신을 다한 연주에 으르렁거리던 개가 이빨을 감추고 얌전해졌다. 지옥의 입구를 지켜야 하는 임무를 잊은 개는 이 세상 사람인 오르페우스가 저 세상으로 걸어가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그 후로도 오르페우스는 지옥에 들어가서 그가 아내를 만나러 가는 것을 방해하는 무시무시한 존재들과 만날 때마다 연주를 해서 모든 관문을 통과하고 마침내 지옥의 왕과 여왕 앞에 서게 된다. 그때 그에게는 오직 아내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마음만 있을 뿐 두려움이라고는 한 조각도 없었다.
오르페우스는 감히 겁도 없이 망자의 세계에 제 발로 걸어 들어온 맹랑한 인간이었지만 그의 음악에 감동한 지옥의 왕과 여왕은 그를 손님으로 융숭하게 대접하였다. 그리고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와 함께 지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였다. 다만 에우리디케가 지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오르페우스가 반드시 지켜야 할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그것은 에우리디케는 오르페우스의 뒤를 따라 걸어갈 것이고, 두 사람이 지옥을 나가기 전까지 오르페우스는 절대 절대로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내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쁨에 오르페우스는 단박에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지상으로 돌아가는 길을 나섰다. 하지만 길을 걸을수록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가 과연 뒤에 있는지 궁금한 것을 참을 수가 없었고 결국 지옥을 벗어나기 직전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약속을 어긴 순간, 바로 오르페우스의 뒤를 따르던 에우리디케는 곧장 지옥으로 돌아가야 했다. 오르페우스는 결국 아내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을 다시 만났다는 것만 해도 커다란 성과였다. 하지만 죽은 아내와 함께 지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뜻밖의 행운 앞에서 그저 ‘얼굴 한 번 다시 보는 것’이었던 원래의 소원은 하찮을 수밖에 없었다. 아내를 되살릴 수 있는 기회를 눈앞에서 놓친 그는 더 큰 상실감에 빠졌지만 지옥의 왕과 여왕은 그에게 두 번째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결국 그는 목적을 이루고도 가장 슬픈 사나이가 되었다.
목건련, 어머니를 위해 지옥에 다녀온 아들
오르페우스가 지옥을 무사히 다녀올 수 있었던 이유가 인간의 경지를 훨씬 뛰어넘은 그의 연주실력 때문이었던 것처럼 목건련이 지옥을 다녀올 수 있었던 이유는 이승과 저승, 천상을 마음대로 오고갈 수 있었던 그의 신통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처럼 뛰어난 신통력을 좀처럼 발휘하지 못한 순간도 있었다. 그 대상은 바로 어머니였다.
오르페우스처럼 아내를 보기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목건련 역시 한 여자를 위해 지옥을 찾았다. 그녀는 다름 아닌 그의 어머니였다. 목건련은 평소 가족에 대한 말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늘 간직하고 있었다. 아마도 외아들이었기에 더했을 것이다. 출가 후, 한참이 지나고 나서 그는 문득 자신의 어머니가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여 신통을 발휘해 이 세상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하지만 도저히 찾을 길이 없었다. 그는 천상과 지옥도 모두 살펴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아귀지옥에서 어머니를 찾을 수 있었다.
이미 죽었기 때문에 죽을 수도 없는 영혼들이 모여 살아서 지은 죄의 과보에 따라 죽음보다 괴로움을 겪어야 하는 곳, 지옥. 아무리 먹어도 늘 배가 고픈 벌을 받아야 하는 영혼들이 모여 있는 아귀지옥에 도착한 목건련은 한쪽에서 흉측한 모습으로 고통 받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했다.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처럼 뼈가 튀어나온 앙상한 몸과 당장이라도 바삭거리는 소리가 날 것처럼 마르고 자글거리는 살가죽이 도저히 인간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 비참한 형상에 목건련은 가슴이 찍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살아서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어머니는 눈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아들을 알아보지도 못한 채 입 안 가득 음식을 쑤셔 넣을 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음식을 입에 넣어도 목구멍이 바늘보다 가늘어 삼킬 수가 없었다. 그러니 아무리 먹어도 계속 배가 고플 수밖에 없었다. 본래 효성이 지극했던 목건련은 신통력을 발휘하여 온갖 음식을 마련해 어머니 앞에 다시 나타났다. 아들조차 알아보지 못했던 여인은 음식을 보자마자 달려들어 허겁지겁 게걸스럽게 움켜쥐고는 입 속으로 쑤셔 넣기 시작했다. 그러나 음식들은 여인의 입에 닿기가 무섭게 순식간에 타올라 새카만 재로 변했다. 여인은 다시 배고픔에 고통스러워했다.
목건련은 과연 자신의 어머니가 살아서 어떤 죄를 지었기에 이런 벌을 받는지 알기 위해 신통력으로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았지만 슬픔이 앞섰기 때문인지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결국 목건련은 자신보다 더욱 커다란 신통력과 지혜를 모두 갖추신 단 한 명에게 그의 고민을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곧바로 스승인 부처님을 찾아간 목건련은 무릎을 꿇고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며 어머니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 자비로써 말씀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목건련의 말을 들은 부처님은 과연 유능하고 사랑스러운 제자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며 잠시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부처님의 얼굴에서 근심어린 기색을 발견한 목건련은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거듭 간청하였다. 이윽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목건련아, 너무 서러워하지 말거라. 너의 신통력은 변함이 없다. 다만 네가 친족의 정(情) 때문에 네 어미 과보의 인과(因果)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너의 어미는 이 세상에 있을 적에 출가 사문을 비방하였을 뿐 아니라 미신을 믿어 축생을 함부로 죽여 귀신에게 바치고 바른 인과의 도리를 믿지 않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이웃의 많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끌어 들였다. 그리하여 지금 아귀지옥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에게 어미의 잘못을 들은 목건련은 목이 메었다. 그토록 크나큰 잘못을 저지른 어머니를 과연 구할 방법이 있을지조차 알 수 없어 슬픔은 점점 더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