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꽃미남을 찾아서 – 삼국지 편

수많은 영웅호걸들의 이야기가 날실과 씨실처럼 촘촘하게 수놓아진 삼국지에서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남자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고한 명성을 누린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수경선생 사마휘(司馬徽)이다. 어지러운 난세에서 그는 어떤 세력에도 소속되지 않고 재야의 인재로 있었기 때문에 권모술수로부터 한 걸음 비껴간 학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가 양성한 후학들이 세상에 나아가 곧바로 뛰어난 자질을 발휘하였으며 그 제자들이 자신의 지예를 의탁한 인물이 바로 삼국지연의의 작가 나관중이 각별한 애정을 쏟은 유비였기 때문에 사마휘는 삼국지의 은근한 다크호스로 급부상한다. 스승의 날을 맞아, 삼국지에서 유일하게 ‘선생’이라는 칭호를 듣는 수경선생 사마휘를 통해 아버지 같은, 스승 같은 멘토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중년 남성의 매력을 알아보기로 하자. 
 

칼을 들지 않고, 지략을 꾸미지 않고
다만 사람을 보듬으며 시대의 흐름에 따르되 휩쓸리지 않다.

사마휘(司馬徽)는 도호가 수경(水鏡)선생이며 덕조(德操) 양양 영주 사람으로 삼국지 최고의 실용주의 추남이지 비운의 천재로 손꼽히는 방통과 최고의 신비주의 미남이자 자수성가의 대명사로 손꼽히는 공명의 스승이다. 채모(蔡瑁)에게 쫓겨서 도망쳐온 유비(劉備)와 교류를 하며 재사(才士)인 서서(徐庶)를 유비에게 추천하였고 제자인 제갈량과 방통을 복룡(伏龍)과 봉추(鳳雛)로 부르며 유비에게 이 둘 중 한 명만 얻어도 천하를 평정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 사람이다.

자신이 가르친 제자를 소개함에 있어서 한치의 부끄러움이 없었다는 점에서 그는 참으로 제자 복이 많은 사람이라 할 수 있고, 그런 스승을 만난 제자들 또한 스승 복이 많은 사제간이라고 할 수 있다. 2007년인 오늘날, 수경선생이 살았던 그 시대와의 공통점을 찾자면, 인재는 많으나 경기가 좋지 않아 정규직 채용을 하는 기업은 드물고 취업은 한없이 어려워 대학을 나온다 하더라도 직장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보다 훨씬, 고달프고 앞날이 투명하지 못한 시대에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스승과 제자로 만나 학문을 쌓으며 세상에 나아갈 준비를 시켰다는 점에서 진정한 스승으로써 수경선생의 훌륭함에 감탄한다. 또한 멸망의 기운을 온 몸으로 알 수 있었던 후한 말, 제자들을 한나라 관리로 키워낸 것이 아니라 유비를 만났을 때 그의 가능성을 보고는 비록 남루한 시작일지언정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확실하게 제자들(방통, 공명, 서서)의 구직을 책임졌다는 점에서 수경선생의 능력과 현실감각에 무릎을 친다.

시대에 방관한 듯 재야에 묻혀 후학을 양성하는 데 힘썼지만, 시대의 한 흐름을 당당히 이끌어 간 것은 수경선생의 제자들이다. 그들은 입사 후, 자신들을 추천한 스승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능력을 발휘했다는 점에서 그들은 모두 복 많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성과 인덕을 갖춘 미중년의 아름다움
세월이 흐르면 세월의 향기를 먹고 연륜과 지혜로움을 더하다

삼국지를 읽으면서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던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나이 들어가는 것을 고스란히 느껴야 할 때, 때로 낭비 없는 시간을 보내온 사람의 마지막 모습이 초라할까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경선생은 이런 걱정을 단번에 날려주었다. 장차 삼국지에서 큰 활약을 펼칠 쟁쟁한 제자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이 스승은 이미 등장과 함께 독자들의 머릿속에 중년 혹은 노인의 이미지로 고정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깨끗하고 단정하게 나이 들은 노학자의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노숙한 의상을 선보인 것은 오히려 수경선생의 제자 공명이었다. 후한 말의 앙드레 김처럼 눈부신 하얀 색 의상과 부채라는 소품으로 타 책사와 확실하게 구분되는 독보적인 패션감각을 자랑하며 젊은 나이에 자신만의 룩(Look)을 완성한 공명은 어쩌면 스승인 수경선생의 모습을 몹시 동경했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수경선생 밑에서 공명과 동문수학한 친구들은 집안 좋은 방통과 효자로 소문난 서서였으니 일찍 고아가 된 공명이 수경선생을 아버지처럼 생각한 나머지 나이에 비해 노숙해 보이는 패션은 수경선생에게서 살짝 빌려온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난세에도 고아한 학자의 모습을 유지했던 수경선생이나 칠십의 나이에도 말발굽과 함께 피어나는 모래먼지 속에서 무거운 갑옷과 투구를 걸치고 기꺼이 창과 검을 휘둘렀던 황충과 같은 미중년들이 균형을 잡아주었기 때문에 삼국지는 더욱 빛날 수 있었다. 특히 무인(武人)인 황충 장군은 아마 체지방 5%를 넘지 않은, 혈관마저 근육으로 빚어진 듯 단단하고 남성다운 몸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스승의 날, 감사의 마음을 마음껏 전해자

삼국지연의 소설 속에서, 역사 속에서 수경선생과 황충은 그저 자신의 위치를 지킨다. 하지만 그 존재만으로 삼국지에 무게를 실어준다. 조만간 스승의 날이다. 가슴 한 켠이 그리워하는 스승이 한 분이라도 있다면, 364일 가슴 속에서 묵묵히 나를 지켜주는 스승이 한 분이라도 계시다면, 5월 15일 하루쯤은 그분을 가슴에서 꺼내어 거침없이 달려가 큰 소리로 고마움과 그리움을 전하는 것이 어떨까.

글 : 칼럼니스트 조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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