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꽃미남을 찾아서 – 적벽의 꽃들, 궁극의 꽃미남 주유 편

생 텍쥐페리는 <어린왕자>에서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오아시스를 품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어떤 난세보다 치열했지만, 끝내 승자도 패자도 없었던 중국의 삼국시대는 그 어떤 태평성대보다 매력적인 영웅들과 탄탄하고 설득력 넘치는 구조 덕분에 소설로, 영화로, 드라마로, 만화로 그 외 수많은 유형의 창작물로 제작되어 우리 가까이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황제가 되고자 분연히 일어났으나 황제가 되지 못하고, 새로운 사직을 시작하려 했으나 이어가지 못했던 삼국 시대가 끝을 알 수 없는 매력으로 우리를 사로잡은 이유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감히 이상형이라고 칭할만한 보석 같은 인물들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 보석 중에서도 다이아몬드에 비유할만한 완벽한 사람이 있으니 바로 남자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자, 여자들에게는 시대를 초월한 로망의 대상인 주유 공근이다.

금도 세상은 온통 주유의 팬클럽으로 가득하다

서른 여섯 해의 짧은 생애였지만 한 일초도 허비하지 않은 주유(周瑜, 175~210)의 삶이 빚어낸 족적은 하나같이 올곧고 눈이 부실 따름이다. 단 세 줄로 요약된 사전 상의 평가조차 “중국 삼국(三國)의 하나인 오(吳)의 명신(名臣). 손견을 섬기다가 손견이 죽은 후 손책을 섬겨 양쯔강 하류지방을 평정하였다. 손책이 죽은 후는 그의 동생 손권을 섬겼다. 위(魏)의 조조(曹操)가 화북을 평정하고 진격해 오자 강화론자들을 누르고 촉(蜀)의 제갈공명과 함께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위군(魏軍)을 대파하였다.”라니 담백한 사실만 나열된 4개의 문장은 마치 골수 팬클럽 회장이 기록한 것처럼 칭찬 일색이다. 물론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800년 가까이 지난 현재에도 그의 팬클럽은 곳곳에서 “오직 주유”를 외치며 가열차게 가동 중이다. 역사를 되돌리고 되돌려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을 찾아보더라도 주유만한 인물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풀어야 할 숙제이자, 풀고 싶지 않은 희열이다.

일기일회(一期一會) - 일생에 단 한번뿐인 인연

만약 과학기술이 더욱 발전해 타임머신이라는 것이 생겨 투명인간이 되어 단순히 ‘관람’만을 하는 역사 여행이 가능해진다면 꼭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 바로 주유와 손책의 첫 만남이다. 풋풋하지만 이미 비상함을 드러냈던 10대 시절, 본디 수춘에 살고 있던 손책과 서현에 살고 있던 주유는 만나기 전부터 서로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있었다고 한다. 만나야 할 사람은 반드시 만나게 된다고 한나라의 17老제후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손견이 제후 연합군에 참여하면서 가족들을 서현으로 옮기며 주유와 손책은 운명의 첫 만남을 갖게 된다. 열 여섯, 이팔 청춘이었던 둘은 만나자마자 의기투합하여 친형제처럼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결국 손견이 거병한 후, 손책은 주유의 말에 따라 가족을 데리고 서현으로 이사하였고, 대대로 한나라의 고관을 배출한 명문가이자 부유한 집안 출신인 주유는, 손책 가족을 위해 집을 마련해주고 손책의 어머니를 자신의 어머니처럼 모시며 옆집에 나란히 살았다고 한다. 일생에 단 한번뿐인 인연이 있다면 바로 이런 만남이 아닐까 싶다. 오늘날로 보면 오우삼 감독과 주윤발의 만남이 이와 비슷할까. 부디 이런 아름다운 만남들이 많이 일어나 세상에 빛이 되는 커다란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기를 바랄 뿐이다.

오늘날에도 실현 불가능한 쿨한 정치를
태연자약하게 실현한 오나라의 멋진 정치가들


중국 10대 명장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주유는 그 자체로도 빛이 나지만, 절친한 친구이자 주군으로 섬긴 손책과 함께했기에 더욱 완벽할 수 있었다. 한나라가 유명무실 하다 보니 권력을 가진 자는 인재를 구하기 위해, 능력이 있는 자는 하루빨리 인정을 받고 안정된 생활을 보장 받기 위해 권모술수와 배신이 판을 치는 난세에 측은지심에 호소할 정도로 초라하지 않고, 눈살 찌푸려질 불필요한 화려함 없이 다만 반듯하게 목표를 향해 전진했음에도 젊음과 패기, 그리고 대의명분이 하나로 섞여 청아하고 아름다운 반란을 일으킨 것은 손책과 주유의 합작품인 오나라 뿐이다.

강동의 호랑이라 불리던 손견 문대가 어이없게 일찍 세상을 떠난 후, 고작 스물을 갓 넘긴 나이에 자칫 오합지졸로 전락해버릴 수 있었던 강남세력을 규합,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자신의 신념과 자리를 지키고 훌륭하게 결과로 만들어 낸 주유에게 연륜과 경험을 내세워 위협할 수 있는 세력은 오나라 안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이 또한 거짓되고 구린내 나는 정치적 술수나 동정심에 호소하는 궁상과 거리가 먼, 강남 오나라 대신들의 쿨한 면모였다.

삼국지의 하이라이트 적벽대전, 적벽대전의 불꽃 같은 남자 주유
적벽대전이 삼국지에 남긴 의미, 바로 자연스러운 신구(新舊) 세대교체


<삼국지연의>의 작가 나관중은 객관성을 포기했다는 판단이 들 정도로 완벽하게 촉한을 편애하는 작품을 세상에 내 놓았지만, 진정한 영웅들은 어떠한 각색에도 언젠가는 진가를 발휘하게 되어있다. 삼국지 최고의 하이라이트인 적벽대전은 강북을 제패한 조조가 여세를 몰아 강남의 오나라까지 토벌하여 단숨에 중원을 통일하려고 일으킨 역사적인 전투이다. 손책과 함께 비상하던 시절부터 유비와 조조를 차례로 공격하여 천하를 통일하려는 큰 뜻을 품었던 주유에게 적벽대전은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뜻을 펼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손책과 함께 이루지 못한 천하통일의 꿈을 이룰 기회가 오자 주유는 오나라의 대신 대부분이 화친을 원하는 분위기에서 조조의 대군에 맞설 것을 주장한다. 주유의 주장은 오나라 대신 대부분의 주장보다 강했다. 게다가 무모한 주장이었다고 생각하기에 주유가 제시한 근거 - 조조의 병사들이 수전에 능숙하지 못하고 먼 거리를 왔기에 피로하며, 풍토병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 는 충분한 설득력이 있었으며 이에 따른 계책과 준비는 철저했다. 전쟁이 결정되자 오나라에서는 일말의 소란 없이 전쟁 준비에 집중한다. 노장 황개는 스스로 스파이를 자처, 늙은 몸에 매 타작을 견뎌내며 조조 군을 교란시켰고 결국 준비된 승자 주유의 모든 예상과 계략은 적벽대전을 전체를 관통하며 적중, 눈부신 승리를 거둔다. 소설에서는 주유와 공명의 무언 대결인 손바닥 뒤집기를 통한 화공(火攻)법과 머리를 풀고 제사를 지내는 고난도의 퍼포먼스를 통해 한겨울에 동남풍을 일으킨 공명의 불가사의한 신통력이 적벽의 승패를 결정했다고 구구절절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적벽대전은 누가 뭐라고 해도 조조와 주유의 싸움이었다. 적벽대전을 통해 조조는 강남의 새파란 인재들에게 대패하여 도주하였고, 중반을 넘어선 삼국지는 신구 세력을 적절하게, 매우 성공적으로 교차할 수 있었다.

부러움과 시샘의 시선조차 허락하지 않는 완벽한 삶

"하늘은 어찌 이 주유를 지상에 낳으시고, 다시 또 제갈량을 낳으셨단 말인가!"라는 말과 함께 피를 토한 뒤 얼마 되지 않아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설 속 주유의 죽음은 적벽대전을 통해 제갈공명이라는 후발주자를 위한 작가의 탁월한 연출이자 제갈공명의 라이벌인 주유에 대한 작가 나관중의 유치한 안티 활동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사실 그대로의 주유를 사랑했다. 믿을만한 기록이 말해주기를, 주유는 젊었을 때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미주랑(美周郞)이라는 애칭으로 불릴 정도로 뛰어난 용모의 소유자였으며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술자리에서 음악을 듣다가 연주가 조금이라도 틀리면 잘못 연주한 악사 쪽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연주가 틀리면 주유가 뒤돌아본다''는 말을 유행시켰다고 한다. 그런 주유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그의 친구이자 주군인 손책이다. 주유의 팬클럽 회장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주유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깊었던 손책은 “주유는 좋은 술과 같아 함께 있으면 그 향가가 사람을 취하게 만든다”는 엄청난 어록을 남겼다. 세상에서 주군으로부터 이러한 칭찬을 받는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신하가 몇이나 될까.

실존했지만, 창조된 것보다 더 이상적인 군신관계를 형성한 손책과 주유는 현실에서도 다시 보기 어려운 정말 멋진 남자들이다. 손책의 주유사랑 어록은 만화 <창천항로>에서도 다루어 지는데, 작가가 묘사한 상황은 가슴 벅찰 만큼 멋지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손책의 아들이 주유와 손책이 국사를 의논하는 자리에 다가오자 주유는 “소주공, 제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고 손책의 아이에게 깍듯하게 묻는다. 그러자 손책은 아이를 무릎에 앉히며 “주유는 좋은 술과 같은 사내다. 부자 2대가 함께 취해보자.”라고 말한다. 생애 자신을 알아주는 친구가 단 한명만 있어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건만, 새삼 주유라는 남자의 완벽함에 부러움을 넘어 경탄하게 된다.

아름다운 사람, 주유가 소중한 이유

타고난 출신과 외모, 스스로 선택한 대업의 길, 젊은 정치가로써 내부는 물론 백성들에게도 사랑과 존경을, 선망과 신뢰의 시선을 듬뿍 받은 깨끗한 삶, 절세 미녀와의 로맨스와 결혼, 최고의 전투에서의 승리 등등 공과 사가 모두 완벽한 주유의 삶은 궤적을 되돌아 볼수록 한숨이 나올 만큼 완벽하다. 18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주유가 더 오래 살았다면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라는 상상의 여지를 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정말 신이 내린 완벽한 사람이다. 매번 그리고 새삼 주유가 사람들을 사로잡는 이유는 우리는 공인으로써 주유와 같은 사람을 마음속으로 항상 원하고 있지만 그런 사람은 아무리 기다려도 좀처럼 없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조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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