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꽃미남을 찾아서 - 온고지신(溫故知新) 편

일 년 중 딱 한번뿐인 장마가 올해는 조금 일찍 시작되었다. 덕분에 한여름 무더위도 훨씬 길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우산이라는 짐이 하나 더해짐으로써 훨씬 번거로워진 출퇴근 전쟁과 비온 후에 찾아오는 축축하고 후끈거리는 공기 때문에 불쾌지수가 저절로 상승하지만, “비의 계절”인 장마기간도 조금은 즐겁게 보내기 위해 약간의 낭만을 더해보고자 한다.

시대의 이슈메이커, 정지상(鄭知常)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새로운 해석에 해석을 거듭한 사극이 하나 둘, 등장하면서 옛날 옛적은 더 이상 고리타분한 것이 아니라 매력적인 배경이 될 수 있음을 대중에게 충분히 어필하고 있다. 항상 있어왔던 것에서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비가 오는 날 또한 마찬가지이다. 비가 오는 날은 흔하지만 화창한 날과는 또 다른 매력을 담뿍 가지고 있다. 오래 전 세상을 떠난 한 시인은 이별을 소제로 지은 한편의 시에서 잠시 비를 언급하였다. 그 시인의 이름은 정지상, 그가 이별의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담아낸 그 시의 제목은 ‘송인(送人)’이다. 고려시대의 정치인으로써 동북아시아의 국제정세가 민감하기 그지없던 당시, 상당히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던 정지상은 당대 최고의 이슈메이커였으며 동시에 뛰어난 시재(詩才)를 자랑하는 시인으로써 명성도 높아 후세에도 두고두고 회자되는 작품을 남겼다.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
大同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
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

비 개인 강둑에는 풀빛이 짙어 오는데,
남포에서 그대를 보내니 슬픈 노래가 나오네.
대동강 물은 언제나 마를 것인가.
해마다 이별의 눈물을 푸른 물결에 보태는데.  



천년을 관통하는 한 편의 시(詩)

한 편의 시가 수많은 시대와 시대를 거듭하며 사랑받으며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정말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반만년 역사 위에 오롯하게 생명력을 가지고 여전히 우리를 매혹시키는 정지상의 ‘송인(送人)’은 오늘날 감상하더라도 대중성과 작품성을 빈틈없이 갖추고 있어 앞으로 다시 시간이 얼마나 더 흐른다 하더라도 여전히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만한 고전 중의 메가 히트작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당대 관리로써의 정지상은 비록 정치적인 입장 때문에 세상을 떠났지만 시인으로써는 세월이 무색할 만큼 생생하게 살아남았다. 오늘날 매년 학생들은 국사책이 아니라 문학작품으로써 정지상을 대면한다. 특히 장마가 시작되면 더욱 정지상의 시(詩)가 생각난다. ‘송인(送人)’의 첫 구절에서 단 일곱 개의 문자로 표현한 풍경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가 말한 대로 비가 오고난 뒤의 온갖 식물들은 더욱 짙은 빛을 발한다. 이러한 감수성을 문자로 멋지게 남길 줄 알았던 조상을 가졌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공유할 수 있는 위대한 유산을 만끽하자

훌륭한 고전(古典)은 우리에게 남겨진 위대한 유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멋진 유산을 그 자체로 순수하게 즐기는 사람은 드물다. 학창시절 ‘입시’라는 압박 속에서 억지로 머릿속에 넣은 지식이었기 때문에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기억 속에서 자동 삭제되었기 때문일까? 하지만 종종 사회에 나와서 중고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고전들을 다시 볼 때면 반가우면서 생경한 느낌이 들곤 한다. 밑줄 치며 암기했던 시인의 감정, 시적 기교, 기승전결의 순서, 시대적 배경 등을 기억에서 사라지고 아련한 익숙함과 놀랍도록 새롭게 다만 사랑, 이별, 우정, 고독 등의 감정만이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물론 학교에서 배우는 문학작품은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만약 교과서를 통해 배우지 않았더라면, 평생을 살아가면서 고전(古典)을 접하지 못 할 수도 있다. 안타까운 것은 작품 자체만으로 충분히 흥미진진할 수 있는 고전(古典)에 대한 무심한 시선과 두껍고 딱딱한 선입견이다.

고전(古典)은 우리 조상의 생생히 살아 숨 쉬던 가장 뜨거운 시절의 한 조각

문학을 중시하는 나라답게 우리의 고전(古典)을 남긴 작가들 대부분은 정치인들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출퇴근 시간이 엄격한 중앙 정치인으로 살아가면서 권력이 있을 때 부귀영화를 축적하고, 그 부귀영화를 들키지 않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좌천되지 않기 위해 연줄을 만들고, 아부를 하며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살아갔다. 그러기 위해 때로는 정치적인 소용돌이에 거침없이 몸을 던지기도 하고, 스캔들에 휘말리기도 하고, 여자 문제로 골치를 앓기도 하고, 술에 취하기도 하고, 사랑에 몸을 던지기도 했다. 그러한 그들의 모습은 지금 우리와 조금도 다를 바 가 없다. 그들도 몸이 고된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숱한 야근도 불사하였을 것이다. 그러한 바쁜 일과 중에서도 승부근성을 불태우며 서로 문장을 겨루고 보다 좋은 작품을 남기려고 노력했던 열심과 최선의 아주 작은 결과물이 바로 고전(古典)이라는 이름으로 오늘날 남아있는 것이다.

우연하게, 혹은 의무적으로 우리 앞에 고전(古典)이 나타난다면 외면하거나 지루해하기보다는 살짝 흥미를 가져보는 것을 어떨까. 단지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 하나의 작품은 생명력을 갖게 되고 우리의 감성은 훨씬 씩씩해 질 수 있다. 이것은 또한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자신만의 기쁨이자 경쟁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먼저 긴 장마의 빈틈이 생길 때, 정지상의 ‘송인(送人)’을 감상하는 것이 그 작은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칼럼니스트 조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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