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슬립 - 전2권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이수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제발 이번엔 저를 읽어주세요!'라 외치는 듯 보이는 책장 속 책들 중 그냥... 손 가는대로 한 번 책을 집어보고 싶었었고, 그렇게 선택된 (또) 소설이 바로 이 「타임슬립」이었습니다. 작가 오기와라 히로시는 이미 「소문」을 통해 만나본 적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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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 속 문장이 이 작품의 줄거리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944년 9월 12일 첫 단독 비행을 하게 된 19세의 군인 이시바 고이치, 그리고... 2001년 9월 12일 어지러운 머리를 식히려 바다로 자신이 좋아하는 서핑을 하러나갔던 백수 오지마 겐타. 이 두 사람의 영혼이 갑자기 뒤바뀌게 됩니다. 그러니까 1944년의 고이치가 2001년을 살고 있는 겐타의 몸으로 들어왔고, 겐타의 영혼은 난데없이 1944년을 살고 있던 군인 고이치의 몸으로 가게 된 거지요.

 

각자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에 대한, 우리가 쉬이 예상할 수 있는 그런 일들이 벌어집니다. 주변 사람들 또한 그 두 당사자들 못지않게 당황하게 되지요. 여전히 현 상황을 정확히 감지해내지 못한 두 주인공은 각자가 처하게 된 상황을 예의 각자의 시대적 사고를 통해 판단해봅니다. 고이치는 적국의 스파이들이 자신으로부터 뭔가 군사기밀을 빼내려 위장 작전을 쓰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며, 겐타는 일반인을 상대로 한 몰래카메라 프로그램이 촬영중인 걸꺼라고 말이죠. 

 

허나 이런 착각도 머지않아 끝이 나게되고, 현대에서 과거로 간 겐타는 자신에게 '시간 이동'이 발생한 것 임을, 과거에서 현대로 온 고이치는 '차원이 다른 별세계'란 개념으로 서로가 처해 있는 상황을 정리하게 됩니다.   

 

아무도 다른 사람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만큼 똑같은 인간이 있다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닮은 것은 비단 얼굴만이 아닌 것 같았다. '이시바'라는 이름표가 붙은 옷도 신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겐타에게 꼭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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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쪽의 시대가 1944년이라는 것,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았던 고이치가 군인이었다라는 설정은 예의 일본의 패전이 이 소설에서 상당히 중요한 비중으로 다루어지게 됨을 암시해줍니다. 2001년에서 1944년으로 간 겐타는 이미, 1년 후면 일본이 이 전쟁에서 지게 된다는 것 알고 있지요. 즉, '이 상황이 어떠한 결말로 끝맺음 되는지는 이미 알고 있는 자'가 바라보는 그 결말로 가는 과정... 이 바로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그려내고자 하는 한 가지입니다.

 

허나... 저에게 더 무게감 있게 다가왔던 건, 또 다른 하나의 상황, 즉 '이 상황이 어떠한 결말로 끝맺음 되는지를 몰랐던 자'가 중간 과정이 생략된 채 그 결과, 게다가 그 내용마저도 자신이 꿈꾸었던 의도와 정반대의 것인 결과만을 보게 되었을 때의 장면이었습니다. 당시의 전쟁이 어떻게 시작된 것이며, 왜 미국과 영국이 적국이고 독일과 이탈리아가 동맹국인지조차 알지 못하지만 고이치는 이미 조국 일본을 위해 그 (이유도 모른채 싸워야하는) 전쟁에서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칠 것이다라 다짐하고 있는 열혈 애국청년이었습니다. 그 전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조국 일본을 구할 수 있는 것이고, 자신의 가족을 구할 수 있기도 한 것이라 굳게 믿고 있는 그에게 보여지는 2001년의 일본은 커다란 '배신'의 모습으로 다가왔지요.

 

50년 뒤의 일본은 너무 많은 물질과 욕심과 소리와 빛과 색의 세상이었다. 다들 자신의 모습을 봐달라고, 자신의 소리를 들어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겸허도 수치도 겸양도 규범도 안식도 없었다. …… 이것이 우리가 목숨 걸고 지키려고 애쓴 나라의 50년 뒤 모습이란 말인가. …… 이미 많은 군인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렸다. 그 존엄한 희생이 진정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였던가? 자신이 목숨을버리고 지키려는 조국이 이렇게 될 텐데?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말 그대로 끝맺음 지어지는 소설입니다.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영화 <Back to the future>와 동일한 상황이 등장하기도 하지요. "오늘이 행복하지 않은 당신에게 건네는 오기와라 히로시의 감동 역작"이란 출판사의 소개 문구에는 글쎄...의 의문부호를 붙이는 독자가 있을 법도 해보입니다. (저의 경우를 말하자면... '미지근한 물도 충분히 오랫동안 몸을 담그고 있으면 많은 아주 많은 땀을 나게 해준다'라 하고 싶. ^^하지만 그렇게 '배신감'으로 시작되었던 2001년의 삶을 열한 달간 보내었던 1944년의 고이치는 결국...

 

21세기의 일본의 스스로 무질서하게 타락하여 도의도 절도도 없어진 것을 알게 된다면, 미드웨이와 과달카날, 사이판 섬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영령들은 고이치가 그랬던 것처럼 분명 땅을 치고 한탄할 것이다. 하지만 전쟁에서 지면 멸망한다고 배운 조국은 어찌 된 일인지 오히려 더 잘 살고, 더 많은 물자와 정보와 편리함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이제 굶어 죽는 사람도, 전쟁으로 죽는 사람도 없다. 고이치에게는 살기 힘든 시대지만, 이 시대 사람들이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렇게 2001년의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지요. 물론 '어찌 된 일인지'의 표현에서 나타나듯 고이치가 완벽하게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을겁니다. 또한 그의 이해는 '굶어 죽는 사람도, 전쟁으로 죽는 사람도 없다'라는 지극히 고이치 자신의 이제까지의 삶 속 경험에만 그 판단 근거를 가지고 있는 수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제... 

 

이 똑같은 이야기의 소설을 우리나라의 역사를 바탕으로 써보는 상상을 해본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1944년 당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를 바칠 각오로 독립운동을 하였던 우리의 선조 중 한 분이 지금 2013년 1월 1일에 오셨고, 이후 열한 달의 2013년 삶을 살고 나신 후에 과연 그 선조께서도 고이치와 같은 수준에서라도 2013년의 우리들에 대한 '이해'를 하시게 될까요? 요 며칠 간 인터넷을 달구고 있는 '안녕들 하십니까?'의 인사를 2013년의 열한 달을 보낸 그 분에게 드린다면 과연 어떤 대답을 듣게 될까요?

 

이 소설... 이 저에게 던져준 새로운 궁금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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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가 아닌 'or'를 쓴 것은 작가 (혹은 번역가)의 실수가 아닐까? 했었더랬습니다. 책을 읽는 도중에도 말이죠. 헌데... 이 책을 다 읽고나니 작가(혹은 번역가)는 어쩌면 의도적으로 'or'를 쓴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의 과도한 추측일지도 모르겠지만... 암튼!!! 이 소설을 다 읽고나면 저 'or'란 단어가 단지 '또는'만을 의미하는 건 웬지 아닌것 같다는 느낌 받으실겁니다. 뭔가 제가 모르는 복선을 의미하는 건 아니야?하는 생각이 없어지질 않습니다.

 

마지막에 초강력 펀치로 마무리 지어주었던 「소문」관 달리, 별 무거운 이야기도 없는 이 소설... 여러가지로 은근 애간장 좀 태우네요. ^^;;

 

 

Quiz : 이 소설을 읽는 도중... 이 책의 내용과 비슷할 듯 하니 한 번 비교해보면 재밌겠다!란 생각이 들었던 소설을 지금 읽고 있습니다. 뭘...까요? 

 

 

 

(읽어 본) 작가 오기와라 히로시의 다른 책   

 - 「소문」 : '기나오싹'이라는 조어에 대한 그야말로 기나오싹한 원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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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와 거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8
마크 트웨인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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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똑같이 생긴 두 사내아이가 같은 날 태어났는데, 한 명은 온 국민이 그의 탄생을 기다리던 왕자였으며, 또 한 명은 가족들조차 그의 탄생을 반가와하지 않는 거지의 아들이었다. 우연히 옷을 바꿔 입은 그 둘은 서로의 똑같은 모습에 놀라워하다가 무슨 연유에선지 암튼 거지가 왕자가 되고, 왕자는 거지가 되어 살다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원래 각자의 자리로 되돌아가게 된다. 끝!

 

제가 아는 <왕자와 거지>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오기와라 히로시의 소설 「타임슬립」을 읽다보니 자연스레 잊혀져있던 이 <왕자와 거지> 이야기가 떠오르더군요. 「타임슬립」이 시간을 초월한 운명의 뒤바뀜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제 기억 속의 「왕자와 거지」는 공간을 통한 운명의 뒤바뀜이었으니깐요. 마침 집에 어린이용 <왕자와 거지>가 있길래, 종원군에게도 그 책을 읽어보라 했습니다. 다 읽고나서 아빠랑 그 이야기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좀 나눠볼까... 했(었었건만 그 자식은 몇십 분만에 다 읽어버리더군요. 그리고 써놓은 독후감이라는게 '나 같으면 옥새 찾는 것을 도와주지 않고 계속 왕자로 살고싶어 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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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등장하는 왕자는 16세기 중반 영국의 왕이었던 헨리 8세의 아들인 에드워드 6세입니다1. 소설의 배경이 되는 당시의 영국은 인클로져 운동으로 인해 도시로 몰려든 농노들과 자영농들로 인해 도시부랑자가 넘쳐나는 시기였다고 합니다. 이처럼 넘쳐나는 도시부랑자들로 골치를 썩던 당시 영국은 어쩔 수 없이 빈민구제를 위한 정책을 시행하게 되는데, 이는 사실 '구제'에 목적이 있었다기보다는 도시부랑자들 중 노동할 수 있는 자들을 골라내 일하게 하고, 일할 수 없는 부랑자들은 도시의 치안과 환경을 위해 격리수용하는 데 더 큰 목적을 두고 있었다고 하네요(헨리 8세 당시엔 구걸할 수 있는 허가증이 있어야만 길에서 구걸을 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 소설에 각주로 나오기도 합니다). 또한 헨리 8세는 '가장 영국적인 절대군주제 왕의 심볼'로 역사에 기록될 만큼 강력한 왕권을 휘둘렀는데, 그의 여러 정책들 중 이 소설에서는 그가 수도원을 해산시키고 수도원의 모든 재산을 국고로 귀속시켰었던 것이 소설의 구성에 나름 한 구석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와 있기도 하지요. (이상은 네이버 검색 결과를 인용 · 정리한 겁니다) 

 

소설의 기본 골격은 제가 어릴 적 읽었었었던, 그리고 종원군이 지난 주말 읽었었었던 동화 버젼 <왕자와 거지>와 별 차이는 없습니다. 하지만 짧디 짧은 동화 속 이야기의 원본이 무려 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으로 묶여나오게 되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겠지요. 바로... 작가 마트 트웨인이 표현해 낸 '16세기 중반 영국의 기괴한(!) 사회상에 대해 매우 꼼꼼한 풍자'가 동화 버젼의 <왕자와 거지>에는 모두 생략되어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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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계사에서 가장 재미있게 여기는 점은 그 모든 사건이 실제로 발생했다는 것이다. 기이하기 짝이 없는 그 모든 일이 당신과 내가 살아 있는 것처럼 엄연한 현실로 존재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신기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렇게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은 꾸며 낸 이야기보다 더 흥미로워서 절로 경탄을 자아낸다.

'역사'란 것을 공부하면서 느끼게 되는 점을 아마 위의 세 문장보다 더 정확히 표현하고 있는 문구를 다시 만나게 되기는 힘들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마치 소설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들이, 설마 아무리 옛날이라고해도 사람이 어찌 그런 생각과 행동을 할 수가... 하는 모든 것들이 그 순간에는 '엄연한 현실'이었다라는 거, 저자의 말대로 '사람들의 생각은 서서히 바뀌며 스스로는 이를 감지하기 어렵다'라고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느낀 가장 커다란 한가지를 꼽으라면 역사란 건 어쩌면 지금 우리가 당연하다라고 믿고 있는 것들이 옛날의 어느 날 당시에는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었었으며, 그처럼 당연하지 않게 여겨지던 당연한 것들이 결국 '당연한 것'으로 사회 구성원들에게 받아들여져가는 일 과정이 아닐까하는 새로운 깨달음인듯 싶네요.

「곰브리치 세계사」를 읽고 제가 썼던 감상문의 일부입니다. 역사학자인 곰브리치조차 '기이하기 짝이 없는 그 모든 일'이라 표현했었던 것들이 이 소설에도 아주 많이 등장하지요. ---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도둑으로 잡혀간 거지가 되어있는 왕자를 재판하는 재판정에서 왕자가 훔친 자신이 샀던 새끼 돼지의 가격이 3만 8천원이라 증언하는 여인은, 당시 1만 3천5백원 이상의 물건을 훔친 사람은 무조건 교수형에 처해진다는 법조문을 듣고는 오히려 그 돼지의 가격이 사실은 8천원이었다라고 거짓 증언을 하고맙니다. 아무리 자신의 물건을 훔친 도둑이었지만 그런 사소한 일로 어린 아이를 교수형에 처하게 할 수는 없었던거지요. 헌데 그 후... 재판정 밖으로 나간 그 여인을 포졸 하나가 따라가서는 그 돼지를 8천원에 자신에게 팔라고 강요합니다. '미쳤냐! 당연히 이건 3만 8천원에 산 것이다'라 말하는 여인에게 포졸은 그럼 당신을 거짓증언죄로 다시 재판정으로 끌고가겠다 협박하여 결국 그 돼지를 8천원만 지불하여 자신의 손에 넣게되지요. 이 장면을 또 엿본 (왕자의 보디가드격이었던) 마일스 헨든은 그 포졸에게 당신이 여인을 협박하여 돼지를 갈취한 죄는 산 채로 죄인을 끓는 물에 넣었다 뺐다하는 벌로 다스려지는 죄라고, 프랑스 같으면 산 채로 끓는 기름에 튀겨죽이는 형벌을 받게되는 죄라고 협박하여 그것을 묵인해주는 댓가로 왕자를 탈출할 수 있게도 해줍니다. (그야말로 허를 찌르는 역전의 연속이지요!) 

 

 

 

 

내 가족이 더 이상 영국에 살지 않는 것에 대해 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다네! 어디 한 곳 비난할 데가 없는 우리 어머니는 아픈 사람들을 간호하면서 연명을 하려고 하셨지. 그런데 어느 날 병자 하나가 죽었어. 의사들이 원인을 알아내지 못하자 졸지에 우리 어머니는 마녀로 몰려 불에 타 돌아가셨어. …… 그게 영국 법이야! …… 우리 어머니를 지옥 같은 영국에서 건져 준 자비로운 영국 법을 위하여 건배!

또한 소설은 거지가 되어있는 왕자가 부랑인들의 집단에 속해 있는 동안, 왕자의 자리에서는 결코 알 수 없었던 이런 '지옥같은 영국'의 불합리함들을 하나하나씩 배워가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었던 그 '기록되어있는 역사'를 작가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꼬집어주고 있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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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타임슬립」에서 1944년에서 2001년의 일본으로 오게된 고이치는 오로지 '애국심'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은 다시 1944년으로 반드시 돌아가야한다라고 생각합니다 (2001년에서 1944년으로 간 겐타는 말할 것도 없지요). 하지만 2001년의 삶을 열한 달 정도 살아가게 된 고이치는 점차... 만일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다시 1944년으로 돌아갈 수 없다라면 차라리 2001년에 능동적으로 적응해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 있다라 생각하게 되지요(물론 그 가장 커다란 이유는 자신의 동정을 앗아간(?) 미나미라는 (사실은 겐타의) 여자친구때문이기는 합니다만...).

 

이 소설 「왕자와 거지」에서도 위와 똑같은 일이 주인공 중 하나인 거지 톰의 마음속에서 일어납니다(겐타와 마찬가지로 다시 자신의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왕자의 심정은 역시 따로 말할 것도 없겠고). 「타임슬립」의 고이치와 같은 역할인 거지 톰이 자신이 태어난 열악한 주변 환경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애초엔 다음과 같았었지요. 

 

그러나 어린 톰은 그렇게 불행하지 않았다. 고생을 하면서도 그것이 고생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펄코트에 살고 있는 사내아이들이라면 예외 없이 누구나 그런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톰은 그런 생활이 자연스럽고 편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인생은 원래 이런 것'이라 생각했었다라는 겁니다. 허나 그 '원래 그랬던 인생'이 180도 바뀌어 처음엔 두렵고 어색하고 불편하기만했던 왕궁에서의 왕자로서의 생활에 점차 익숙해지자, 자신은 진짜 왕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는 걸 포기하고 작은 것에서부터 하나하나씩 진짜 왕자처럼 행동하게 됩니다(물론 고이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과정에 톰의 '고의'가 작용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를 생각하며 가슴 아파한 적이 있었다. 궁전에 들어온 처음 얼마 동안은 낮이고 밤이고 행방불명된 왕자 생각으로 고통스러웠고, 왕자가 하루빨리 돌아와 타고난 권리와 영광을 되찾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왕자가 나타나지 않자 톰의 마음은 새로 맛보게 되는 황홀한 경험에 점점 몰두하게 되었다. 행방불명된 왕자에 대한 기억도 머릿속에서 점점 희미하게 사라지다시피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아주 가끔 왕자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면 톰은 왕자를 반갑지 않는 유령처럼 여겼다. 왕자는 톰에게 죄의식과 수치심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 (또한) 식구들이 어느 날 누더기 옷과 더러운 차림으로 나타나서 자기한테 입이라도 맞추면 하루아침에 굴러떨어지는 신세가 될 것이라도 생각하니 온몸이 다 부들부들 떨렸다. …… 톰은 (왕자로서의 생활이 어느덧) 만족스러웠고, 심지어는 기쁘기까지 했다. …… (급기야 대관식 전날의 행렬에서 감동을 받고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참으로 가치가 있는 일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왕이 되고 한 나라의 우상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하루 아침에 그야말로 '인생 역전'의 로또를 맞게된 생활에 점차 적응하고, 심지어는 그것을 즐기게까지 된 톰과 (여전히 다른 의미이겠지만) 비슷한 과정을 거쳐 거지 생활을 하고 있는 왕자 또한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하루하루의 삶에 나름대로의 최면으로 적응해가며 이러저러한 생각으로 자신의 현 처지를 자신 스스로에게 이해시키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 과정 속에서 단지 침례교 신자라는 이유로 자신에게 친절했더 두 여인이 화형 당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게된 왕자는 이후 틈나는 대로 자신이 왕자의 자리에 있었을때엔 결코 만날 일 없었던 사회의 하층민인 죄수들에게 여러 질문을 던짐으로서 뒷날 자신이 왕의 자리에 되돌아갔을 때, 이러한 불합리한 점들을 고치리라 마음먹게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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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슬립」에서 1944년으로 가버린 겐타가 자신은 반드시 2001년으로 되돌아가야한다라 마음먹는 이유는, 물론 1944년의 군인으로서의 생활이 힘들어서였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 하나를 꼽으라면 역시 자신의 여친인 미나미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인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그 욕망은 여하한 경우에도 사그라들지 않지요. 하지만 2001년의 생활에 점차 적응해가는 1944년으로부터 온 고이치에게는 다시 돌아가야한다는 (오로지 애국심으로부터 발현된) 욕망이 없어지지는 않으나 점차 그 강도는 분명 사그라들게 됩니다. 이 소설 「왕자와 거지」에서도 이러한 심리의 변화는 예의 똑.같이 왕자와 거지에게도 나타나지요. 소설의 결말인 다시 왕자와 거지가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게 되는 계기를 작가 마크 트웨인은 '어머니와 아들간의 사랑'으로 잡고 있는데, 그 심경의 변화가 소설에는 너무도 짧은 시간에 일어난 것으로 묘사되어있어 약간 아쉽기는 했으나, 그 설정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을겁니다. 톰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오펄코트에서의 삶으로부터 가지게 되었던 '인생은 원래 그런 것' 이란 마음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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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옛날에 지혜로운 사람들, 많이 배운 학식 있는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믿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이 이야기를 사랑하고 철석같이 믿은 사람들은 배우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단순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② 이 집에서 함께한 식사는 신분의 높고 낮음을 양쪽 모두에서 접어 두었다는 데 그 특징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특혜를 받고 있는 양쪽 모두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 착한 여주인은 부랑아한테 그토록 자신을 낮추어 관대하게 친절을 베푼 것이 너무 대견스러워 온종일 행복했다. 한편, 왕은 왕대로 보잘 것 없는 시골 여편네한테 왕다운 겸손함을 보였기 때문에 마찬가지도 가슴이 뿌듯했다.

작가 마크 트웨인이 어떠한 뜻으로 ①과 같은 서술로 이 소설을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쩌면... 이 소설은 자신이 속한 위치가 그 어느 곳이건 내가 속해있지 않은/못한 곳에의 막연한 동경같은 것이 누구에게나 있으며, 그 '누구에게나'는 최상류층인 왕자에게도 있었었음을, 그러나 역시!!! 그러한 동경을 가장 많이, 또한 절실히 그려보는 계층은 어쩔 수 없이 '배우지 못한, 그리고 단순한'... 그러하기에 가난한 이들이었음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었나라... 감히 내집어보게됩니다. 숲 속의 헛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난 아침에 만났던 여자아이들의 집에서 따뜻한 저녁 한끼를 얻어먹게 된 왕자는 예의 그 집에 머무는 내내 자신이 영국의 왕이라 말을 하고, 그 아이들의 엄마는 왕자를 미친 아이쯤으로 생각하지만 겉으로는 그 왕자의 말들을 모두 믿어주는 척 합니다. 그 결과는... ②에서와 같이 양쪽 모두에게 행복과 뿌듯함을 선사해주게 되지요. 2013년을 살아가고 있는 종원군마저도... '나같으면 계속 왕자로 살고싶어했을 것이다'란 독후감을 썼듯이, 어쩌다 가끔은 몇십 억짜리 로또에 당첨된 후를 상상해보는 저 또한... 마크 트웨인이 말했던 '배우지 못한 그리고 단순한 사람들'의 부류에서 어쩔 수 없이 벗어날 수 없는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게도 되더군요.

 

 

 

 

 

 

 

 왕은 밤 동안에는 꿈속에서 이 모든 괴로움을 잊고 다시 왕좌에 올라 나라를 다스렸다.

 ……

 물론 이런 상태로 잠에서 깨어난다는 것이 무척 괴로웠다.

 

 

  

 

 

  

우리가 꾸는 모든 꿈들.이란게 설령... 깨고난 후 괴로움을 주는 꿈이라 할지라도 말이죠.

 

 

 

비록... 사람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나, 처한 환경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미친 놈' 취급을 받게 될 수도, 혹은 '마법의 능력'을 지난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 이 소설을 (정말 멋지게, 그리고 매우 꼼꼼한 각주를 통해 역사적 배경을 훌륭하게 설명해주신) 옮긴이의 말 한 마디, "본질이 아니라 외견에 따라 사람의 신분이 뒤바뀔 수 있다면 신분을 둘러싼 인간의 제도란 한낱 신기루처럼 부질없는 것이 된다. 바꾸어 말해서 카스트 제도나 왕권 같은 것은 그저 인류가 만들어 낸 인위적인 제도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는 작가 마크 트웨인이 지금으로부터 무려 130여년 전에 썼던 이 소설이 (비록 요즈음의 소설들처럼 아기자기한 읽는 재미나, 허를 찌르는 반전 등이 없다하더라도) 여전히 지금도 우리에게 읽혀질 이유가 충분히 있음을 스스로 말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 More "Food for Thought"  

오기와라 히로시 作, 타임슬립 : 공간이 아닌 시간 사이의 뒤바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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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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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거의 모든 것을 선수에게 맡겨놓는 로이스터 감독의 야구를 좋아하는 팬이 있겠고, 거의 모든 것을 감독의 머릿속 구상대로 풀어나가는 김성근 감독의 야구를 좋아하는 팬도 있듯이 소설을 읽는 것에 있어서도 아기자기한/치밀한 스토리 자체를 즐기는 분이 있을 것이고, 혹은 스토리 자체보다는 그 스토리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무언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독자가 있을 수도 있겠지요. 모든 소설이 이 두가지의 분류로 나뉘어질 수 있는건 분명 아니겠습니다만 굳이 둘 중의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면 전 이 소설 「고백」을 후자, 즉 '스토리 자체보다는 그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다'라는 쪽으로 가져다 놓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굳이 반드시 딱 한 개의 단어로 소설을 표현해야한다면 ('아마 이 책을 읽은 대부분의 분들도 그러할 듯'... 이란 소망을 가져보며) '복수'라 말해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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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제가 사직을 결심한 것은 마나미의 죽음이 원인입니다. 하지만 만약 마나미의 죽음이 정말 사고였다면, 슬픔을 달래기 위해서도, 그리고 제가 저지른 죄를 반성하기 위해서도 교사직을 계속 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사직하는가? 마나미는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 우리 반 학생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입니다.

1학기 마지막 수업 시간에 학교를 그만 두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담임 선생님의 종례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일단 종례 마지막에 선생님의 입에서 나오는 (소설 「소문」에서 나왔던 '기나오싹'이란 말이 그야말로 딱! 들어맞는) 충격적인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자신의 지나온 삶 일부를 꺼내어놓는 그 여선생님의 말투는 (물론 번역가의 출중한 번역이 한 몫했음을 빼놓을 수는 없겠으나) 너무도 차분하고 공손해서 소설의 첫 시작부터 그 어투 자체에만으로도 흠뻑 빠져들게 만들어줍니다. 

 

간단하게 소설의 줄거리를 말하자면, 담임 선생님 유코의 딸 마나미가 수영장에 빠져 죽은 채로 발견되었고 경찰은 익사로 이 사건을 처리합니다. 하지만 유코는 자신이 맡고 있는 반 학생인 A와 B가 자신의 딸을 살해했다라고 반 학생들에게 말했고, 이어 여러 명의 화자를 통해 그 사건의 전모를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라 정리할 수 있겠네요. 그러니까... 이 소설에는 날카로운 추리도 없고, 그 흔한 경찰이나 형사 또는 변호사 그 누구도 등장하지 않는데다가 당사자를 포함한 여러 명의 화자를 통해 밝혀지는 사건의 전모라는 것도 사실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는 쉽게 알려지지만, 이러한 내용을 정작 유코 선생님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등에 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는 등 약간의 허술한 구석을 가지고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대단해!라 외칠 수 밖에 없는 건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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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몽"이란 제목으로 유명한 영화의 원작은 <덤불 속>이라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소설이지요. 어떤 한 사건에 대해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억하며, 또한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기억한다고 합니다. 그래 이처럼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놓고도 사람들이 각기 다르게 말하는 현상을 '라쇼몽 효과'라고도 한다더군요. 이 소설 「고백」 또한 이런 '기억의 주관성'을 다루고 있다라 말할 수 있을겁니다. '유코의 딸을 죽이려는 살의는 있었으나 직접 죽이지는 않은 A', 그리고 '살의는 없었으나 직접 죽이게 된 B', 그리고 그 'B의 헌신적인 엄마'가 가지고 있는 이 사건에 대한 기억과 판단은 모두 그렇게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남아있습니다. (제가 아는 단어의 한계때문에 '유리한'이라 썼습니다만, 뭔가... 이를 표현할 다른 더 적절한 단어가 분명 있을겁니다. --;;) 

 

<덤불 속>이란 짧은 소설은 그러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화자의 내면까지를 보여주지는 않았었지만, 이 소설은 그러한 기억들을 각 등장인물들이 가지게 된 근거를 낱낱이 보여주며, 그러한 기억들 자체가 결코 그들의 고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말해주고 있지요.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주관을 개입시키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역설적으로도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인 유코 선생님입니다. 그녀는 끝까지... '내 딸이 죽었고, A와 B가 범인이다'라는 지극히 객관적인 사실에만 충실한 인물로 남아있지요.

 

반 아이들이 모두 듣는 앞에서 말한 이유는, 어떤 의미로 가장 잔혹한 판단을 내릴 사람들 속에 두 사람을 던져넣고 싶었기 대문입니다. 비록 아무리 잔인한 아이라해도 어른들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보호해주니까요. …… 물론 두 사람이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같은 반 아이들에게 어떠한 처벌을 받는다 해도 제 마음이 풀리지는 않습니다. …… 모든 기억을 지워주는 복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복수'가 주제인 소설임에도 이 소설 속의 모든 복수는 완벽하게 성공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심지어 A의 복수는 아이러니하게도 A가 죽인 마나미의 엄마인 유코 선생님을 통해 실현되기도 하지요. 이처럼 (다시 한번 더!) '복수'가 핵심인 이야기의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복수가 다 실패로 돌아가며, 그런 주제의 소설이 왜 하필 <고백>이란 제목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제가 생각하는) 해답은 바로... "모든 기억을 지워주는 복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란 유코 선생님의 마지막 독백에서 찾을 수 있지않을까 싶네요.

 

 

소설 속 모든 복수가 실패했기 때문에 그들 자신의 원한이 풀리지 않은 것이 아니라, '성공한 복수라해도 그것이 아픈 기억 자체를 없애줄 수는 없다'라는 메세지, 이것이야말로... 「13계단」,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그리고 약간의 어거지까지 부려본다면 「뫼비우스의 띠」까지도 포함될)을 통해 작가들이 말해준 것들을 「고백」이란 이 소설이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해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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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너무 재미있어서 어서 빨리 다음 페이지를 보고싶다란 생각을 가지게 했던 소설은 꽤 많았습니다.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다보니 어느 덧 토요일 밤을 지나 일요일 새벽이 된 적도 몇 번 있었었지요. 이 소설 「고백」은 그리 길지도 않은 소설입니다. 읽어내려가는 속도 또한 충분히 빠를 수 있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토요일 저녁에 읽기 시작한 이 소설을 (은근 책 빨리 읽는 제가) 끝내 주말에 마치지 못했던 건, 게다가 감상문조차 곧장 쓰지 못했었던건... 뭔가 다음에 전개될 스토리를 흡사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 같다라는 생각을 들게 했던, 실제 읽는 도중 숨이 막혀 잠시 책을 덮었어야 했기도 한, 이전엔 접해보지 못했던 경험때문이었다라 말할 수 밖엔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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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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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참으로 난감한 질문이지요. "로또만이 살 길이다."란 로또가게의 문구를 사진찍어 보내어준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말이 가슴에 와닿는 사람에게 이 질문은 그야말로 생존!과 관련된 매우 처절한 것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때의 '어떻게'란 바로 그 '살(수 있는)길' 즉 '삶의 수단'을 말하는 것일테니까요. 나와 내 가족의 생존을 위한 수단이 바닥 난 상태에서 과연 난 '어떻게 살 것인가'란 질문은 어쩌면... 죽음.을 앞에 둔 그 마지막 자문이 될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허나 이때의 '어떻게'가 삶의 수단은 이미 해결된 사람이 가져보는, '삶의 방식'을 논하는 것이라 한다면 이 질문이 지닌 처절함은 아무래도 전자의 그것에는 미치지 못할겁니다. 그 어떤 것도 사람의 생존을 뛰어 넘을 수는 없는거니까요.

 

작년... '제가 저에게 주는 생일선물'로 꽤나 값나가는 헤드폰을 하나 샀었었지요. 올해도... 그 '제가 저에게 주는 생일선물'로 들고다니는 헤드폰 앰프를 하나 사주(?)었습니다. 이 앰프를 같이 제공된 두개의 고무밴드로 핸드폰에 묶어(?) 쓰는 건데, 생각해보니... 사실 이를 위해 지불한 가격의 대부분은 그 앰프 본체를 위한 것이었겠지만, 이 사소한 고무 밴드가 없어지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만약 서비스센타에도 재고가 없다한다면) 그 부속품의 부재로 인해 본체의 사용이 불가해지는 상황이 생길수도 있겠더군요. 유시민의 신간!!!이기에 그 내용이, 제목이 무엇이었던 구매했었을 겁니다만, 더군다나 50대 중반의 그가 말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니요!!! 예약판매로 사두긴 했었습니다만, 선뜻... 이 책을 꺼내어 읽을 용기가 사뭇 나질 않더군요. 혹여라도... 이제껏 제가 살아왔던,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갈 방법이 그에 의해 잘못된 것이었슴이라도 밝혀질까봐서 말이죠. '어떻게' 살아왔던 이미 살아온 것이고, 또한 '어떻게'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기에, 사실 타인이 말하는 삶의 '어떻게'에 그다지 커다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혹여라도... 분실될 지 모를 고무밴드를 미리 사놓는 것 마냥 무언가... 내 삶의 본체를 위해서라면 그 부속품이 잘못되어, 혹은 분실되어 본체를 무용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기에, 과감히!!! 유시민이 말하는 그 '어떻게'를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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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관통한 목표와 원칙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무엇이었는지, 내 삶을 지배한 감정과 욕망은 어떤 것이었는지, 과연 나는 내게 맞는 삶을 살았는지 살펴보는 일이 앞으로도 짧지 않은 시간을 더 살게 될 내 자신에게만큼은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누군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 혹시 참고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역시 유시민은 저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 책은 삶의 수단으로서가 아닌 삶의 방식으로서의 '어떻게'를 이야기하고 있지요. 이 책의 제목은 '크라잉 넛'이 몇년 전에 쓴 책과 동일하더군요. 그래서인지 크라잉 넛에 관한 이야기로 책은 시작됩니다.(..만 딱히 자연스런 연관성을 와닿지 않.--;;)

 

책 제목과 동일한 <어떻게 살 것인가>의 1부는 그야말로 '삶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J.S.Mill 의 자유론에서 따온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방식이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다." 이 한마디가 어쩌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사실... 1부의 내용은 충분히 미루어 짐작 가능한, 또한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법한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소신껏 인생을 사는 것이다. …… 그러나 좋아하는 일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포기하고 산다면, 그 인생은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없다." 뭐... 깔끔한 문장으로 만들어낼 수 없을 뿐이지 이런 생각은 누구나 다 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이 책의 저자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겠지만, 다름아닌 유시민이었기에 이러한 당연한 말이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와 같이 현실에서는 삶의 수단.과 결부되어 (유시민 스스로의 표현대로라면) 먹물들.이 책으로 써내는 것과는 사뭇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라는 것까지를 짚어주기를 바래었었습니다만, 아마도 유시민이 이 책을 통해 진정 말하고자하는 바가 1부에 있지 않았었슴을 미리 암시라도 하듯 끝끝.내... "무엇이든 좋아하는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일을 하면서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 나는 그것이 품위 있는 인생, 존엄한 삶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와 같은 말의 반복만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 말이 형편없는 말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 책의 저자가 유시민임!!!을 비추어보았을때 아쉽다라는 거죠.)

 

"만약 지금까지 살아온 그대로 계속해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이미 훌륭한 인생이다." - 얼마전 썼었던 포스트에 등장했던, 저의 오래전 고백을 이 책에서 다시금 떠올려보게 해주는 문구였습니다만, 개인적인 견해로 전... 이 말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이 말은 단지 동전의 한쪽 면만을 보고 있다라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이제껏 살아온대로 앞으로도 살고 싶다'란 소망(?)은 자신의 과거가 만족스러웠고 훌륭했었다 자평할 수 있을때에도 물론 생길 수 있겠지만, 또한 앞으로의 삶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할 때에도 똑같은 말을 사람은 하게될 수 있기때문이지요. 앞으로 난 무엇을 해보고 싶다!!!란 새로운 꿈의 생성이 아닌, 그저 살아왔던 것 자체가 소망이 되는 '꿈의 포기'이거나 '현상 유지에의 자신없는 바래어 봄'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슴을 저자는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이건 아마도... 유시민의 남은 삶이 그 스스로 보았을 때 예측가능하다라 생각되었기에 그랬을꺼라 생각해보는 것으로 그 아쉬움을 접기로 했습니다. 다시한번... 그저 누구도 아닌 유시민!!!이 쓴 책이기에 가져보는 아쉬움.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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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존엄과 인생의 품격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죄악과 비천함에서 자기를 지키는 것만으로는 훌륭한 것은 아니다. 무엇이 되든, 무엇을 이루든, '자기 결정권' 또는 '자유의지'를 적극적으로 행사해 기쁨과 자부심을 느끼는 인생을 살아야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 (이때 말하는) '자기 결정권'이란 스스로 설계한 삶을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의지미여 권리이다.

제가 느끼는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책에 제목과 정반대의 뜻을 지닌 이 책의 2부 <어떻게 죽을 것인가>였었습니다. 위의 말을 뒤집어보면,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는 삶은 훌륭하지 못한, 한발 더 나아가 그러하니 굳이 살아야할 이유가 없는!의 답을 끄집어낼 수도 있겠지요. 그러하기에... 유시민은 '삶'의 반대어인 '죽음'에 대해서도 '어떻게 살!것인가'를 위해 반드시 생각해보아야한다 말하고 있습니다.

 

"왜 자살하지 않느냐"고 카뮈는 물었다. 그냥 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사는 이유를 찾으라는 것이다. 예의... 예전에 이 블로그에서 했던 말의 반복입니다만, '인간시대'류의 TV프로그램에 나오는 가슴 아픈 이야기들을 볼때면, 저렇게라도 사람은 정말 살아야하는 걸까?와 같은 의문을 가졌었던 저에게, 젊은 시절 결혼해 함께 보낸 날이 고작 한달도 채 안되는 남편이 갑작스런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었슴에도 그의 곁을 평생 지켜온 80대 할머니의 사연을 보면서는 저 할머니에게 '산다는 것'이란 도대체 무엇이었나.란 생각을 했었었던 저에게 유시민은 그 누구도 해줄 수 없을 것 같은 아주 독하디 독한 대답을 건네어줍니다.

 

● '왜 자살하지 않는가?' 까뮈의 질문에 나는 대답한다. 가슴이 설레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있다.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너무 좋아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뛰어오를 것 같은 일이 있다. 누군가 못 견디게 그리워지는 시간이 있다.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어 미안한 사람들이 있다. 설렘과 황홀, 그리움, 사랑의 느낌... 이런 것들이 살아 있음을 기쁘게 만든다.

물론... 그의 첫 대답은 사뭇 로맨틱하다고도 느껴질만큼 평범(?)합니다만, '이 자식을 두고 내가 어떻게 죽어'라 절규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그저 로맨틱하게만은 받아들여지지도 않지요. 허나 이 책의 가장 커다란 독자층이 (어쩌면)젊은 세대이겠기에 유시민은 이러한 이유를 자살하지 않는 그 첫번째 이유로 들고 있는듯 보입니다. "젊은이들에게는 죽음이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삶이 유한하다는 것은 알지만 아직은 살 날이 무한정 남아 있는 것만 같다. 사실 청년들에게 시간은 아직 '희소한 자원'이 아니다. 조금쯤은 낭비해도 괜찮다. 방황과 시행착오를 겪어도 될 만큼의 여유가 있다. 이것을 가리켜 '청춘의 특권'이라고 한다." 저에게도 대학 학부 4년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었던 시절이 있었듯, 또한... 40대 중반이 된 지금에도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새벽까지의 과음이 가능할 것이라 느껴지기에 삶은 '유한하지만 지금은 무한한듯 느껴지는 것'으로 느껴지는 것인지도, 또한 그러하기에... '오늘은 나의 남아 있는 삶 중 가장 젊은 날'이란 싸이의 노랫말이 비록 나에게서 '청춘의 특권'은 사라졌을지언정 어쨌든!!! 가장 젊은 날.을 살고 있는 이 특권의 소중함은 앞으로도 여하한 이유를 대어서라도 잃고 싶지 않아하겠지요.

 

"죽을 용기가 있다면 그걸로 살아볼 일이지!" 그러나 자살을 용기로만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삶도 용기만 있다고 해서 마냥 잘 살아지는 것이 아니다. 사는 데도 죽는 데도 다른 것이 있어야 한다. 삶의 그리고 죽음의 의미에 대한 확신이다. 그것이 없으면 삶도 죽음도 주체적 선택일 수 없다. 삶은 습관이고 죽음은 패배일 뿐이다.

주체적이지 못한 삶과 죽음에의 결정을 이처럼 '습관이고 패배'라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유시민 밖엔 없을꺼란 생각을 다시한번 가져보게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중단시킬 수 있는 선택권은 주어져야 한다'란 경제학적 논리도 결국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이란 가정에 위배되기에 현실에서 지탄(?)받는 행위가 되는 것이듯, 대한민국에서 사는 40대 중반의 저에게 과연 '삶'이란 습관 이외에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나란, 예전 '인간극장'을 보며 그들.을 향해 가졌었던 의문이 기실... 나 스스로.에게 먼저 던졌어야 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해줍니다. 가족에의 사랑... 만이 이 '습관'이 지속되는 이유라는 것 말고는 사실... 다른 이유를 찾아볼 수 없는 저를 보게된 순간, '아... 이 사람 너무 독하다!'란 생각이 들더군요. 허나... 좋은 약은 어쨌든! 쓴 법. --;;

 

이어 그는 최초의 안락사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삼페드로란 인물의 이야기를 하며 '살아야하는 이유' 그리고 '죽을 수 있는 선택'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젏은 시절, 불의의 사고로 사지마비가 된 삼페드로는 자신이 살아야할 이유를 찾지 못해 자신의 삶을 마감하고자 했습니다만, 사지마비인 그가 자살을 할 수 있는 방법은 그저 굶어 죽는 것 뿐이었기에 죽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자신 스스로의 의지가 담기지 않아서 거부, 타인에게 약을 사다달라해 먹고 죽는다면 그 사람을 자살방조죄류의 죄인으로 만들 수 있기에 또한 거부, 하여 그는 마침내 법원에 "기쁨이 사라지고 오로지 벗어날 수 없는 고통만 남은 상황에서, 그 고통을 견디면서 삶을 이어나가는 데 스스로 아무 의미도 부여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이 자유의지에 따라 죽은 권리를 인정해 달라."는 안락사의 권리를 주장하는 탄원서를 내게 되지요. 유시민은 똑같은 사지마비임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스티븐 호킹의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지만, 결국은... 삶의 지속여부는 본인 스스로에게 맡겨져야 한다.란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

 

 

어느 선전에... '유병장수 시대'란 말이 나오더군요. 그렇죠. 의학기술의 발달은 심각하지 않은 병 한두개쯤은 그저 몸에 달고 있어도 삶을 유지하는 데 커다란 방해가 되지 않게 만들어주었기도 합니다만, 몸의 병이 아닌 '도대체 이 삶을 지속해야할 이유가 무엇'인지를 찾지 못한 사람에게는 '아프니까 청춘'이고, '멈추니까 보이더라'란 위로들은 그 어떤 도움도 될 수 없는, 그야말로 '먹물들'의 그 잘난 힐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더군요. 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가 어찌어찌해도 결국엔 어쩔.수 없는 사회구조적 문제로 인해 닥친 삶의 고통을 받고 있는 이에게 그 개인.을 향한 힐링.이란 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좀 심하게 말하자면 그건... 일종의 조롱.일 뿐이죠.

 

<어떻게 죽을 것인가> 부분으로부터의 상처가 잊혀지지 않아서였을까요? 없어도 되지 않았을까.싶은 부분들의 3부와 4부에 이어, 유시민은 다시 한번... 죽음.을 이야기 합니다.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지 않을 수 있다면... 유시민은, 이 책에서 처음 접해본 '생전 장례식'이란 단어를 통해, 즐거움으로 그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라 쓰고 있지요. 개인적으로 누군가에게 감사함을 표시한 적은 많이 있었습니다만, 그 모두!!!를 떠올려보며 적어본 것은 석사논문에 실린 감사의 글이 그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유시민은... 책의 마지막에서 자신의 '생전 장례식'에 초대할 사람들과 그 이유를 열거하며 저에게도 한번.쯤... 그런 시간을 다시 가져보아라.라 말해주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삶은 고작해야 3개월 뿐입니다'란 의사의 선고를 들었다면 그 남은 3개월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지고 오래전에 친구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전... 그냥 그 순간 죽어버리는 게 최선이 아닐까싶다.란 말을 했었었지요. 삶의 마지막이 정해져 있는 그 '삶'을 산다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며, 그렇게 하루하루 지워져가는 달력의 매일매일을 지켜보아야하는 고통을 굳이 감내하여야할까.싶은 이유에서였지요. 삶보단... 죽음.에 대한 더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해준 이 책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고나니... 생각의 재정리가 한번쯤은 필요하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유시민의 말대로 '삶은 저의 의지로 주어진 것이 아니지만, 죽음은... 저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 생의 마지막 의지의 모습이 어떠해야할 것인가... 하는 생각 말이죠. 어쨌든... 읽으면서 은근 마음이 연신 무거워지는 책이었습니다만, 예의... 유시민은 그러한 생각을 가졌을지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멋진 조언으로 이 책의 마무리를 짓고 있지요. 이 분... 왜 이제.서야 좋아하게 된 걸까요. --;;

 

 

더 진지하게 죽음을 생각할수록 삶은 더 큰 축복으로 다가온다. 죽음이 가까이 온 만큼 남은 시간이 더 귀하게 느껴진다.  삶은 준비 없이 맞았지만, 죽음만큼은 잘 준비해서 임하고 싶다. 애통함을 되도록 적게 남기는 죽음, 마지막 순간 자신의 인생을 기꺼이 긍정할 수 있는 죽음, 이런 것이 좋은 죽음이라고 믿는다. 주어진 삶을 제대로 살면서 잘 준비해야 그런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때가 되면 나는, 그렇게 웃으며 지구 행성을 떠나고 싶다. - <현명하게 지구를 떠나는 방법> 중.

 

 

 

★ More 'Food for Thought' 

- 한윤형 외 共著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 자신이 원하는, 자신이 즐길 수 있는 것이 '삶의 수단'이 되었을 때 그것이 유시민이 말하는 행복한 삶이 아닐 수도 있슴을 우리나라의 현실을 통해 보여주는, 그 어떤 사회학자나 경제학자가 쓴 글보다 넘칠만큼의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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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 - 서울대 송호근 교수가 그린 이 시대 50대의 인생 보고서
송호근 지음 / 이와우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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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송호근 교수가 그린 이 시대 50대 인생 보고서 "란 부제에도 나타나 있듯이, 이 책은 아직!!!은 40대 중반인 제가 읽고 싶어.란 생각이 들만한 책은 아니었습니다만 제목에 들어있는 '운다'란 단어가... 저로 하여금 기어이 이 책을 사게 만들어주더군요.

 

 

'운다'... 란 단어가 나에게 언제 있었었던가.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어릴 적의 울음.이 아닌 스스로의 슬픔때문에 심하게 울었었던 그 첫 기억은 대학에 떨어지고 맞이했던 고등학교 졸업식이 끝나고서였었더군요. 여의도 한강변에 앉아 참 많이 울었더랬지요. 생각해보면 그때의 울음은 오로지 대학을 떨어졌다는 인생 최초의 좌절로 인한 슬픔.때문만이 아닌 무언가 서러움에 북받혔던 울음이었던 듯 합니다. 두번째의 커다란 울음은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였었고, 가장 마지막의 큰 울음은 셋째 외삼촌께서 돌아가셨을 때였었지요. 헌데... 그 이후, 영화 속 슬픈 장면에서 찔끔.나오는 눈물말고, 눈에 티눈이 들어갔다거나 하품을 길게 하고 난 후에 나오는 눈물.말고 진정 슬프거나 서러워 울었던 적이 있기나 했었던가.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막 울고 싶을 때가 분명 있기는 한데, 울 수가 없다거나 아니면 우는 방법을 잊기라도 한건 아닌지, 혹 내게 눈물이 남아있지 않은건 아닌지... 하는 생각에, 또한 이 책이 말하고 있는 50대.란 것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책을 사게 되었었던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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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죽음을 맞이해야하는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라면, 이 책은 '1955년-63년 사이에 태어난 戰後 세대'로 정의되는 우리나라의 베이비부머들이 '어떻게' 살아왔으며 현재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956년생인 저자는 자신도 응당 그 베이비부머 세대이며, "남들이 부러워 하는 서울대학교 교수도 당신과 똑같이 교육·주택·생활비·노후 문제에 직면하고 있으며, 해결책과 자원도 그리 풍부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이 책을 썼으며, 그러므로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동일 세대의 '연대감 확인을 통한 공감과 위로'라 밝히고 있지요. 그럼 40대 중반인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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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저녁 대학 서점을 들렀다가 이달의 문제작 코너에 전시되어 있는 유학 시절 절친한 벗이 쓴 책을 발견한 나는 한참을 망연자실한 채로 서 있어야 했다. 절친은 벌써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유명 사회학 교수가 되어 있었다. '난 뭐지?' 이 질문이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우물 한 개구리가 따로 없었다. 농사 짓기, 집 만들기, 이사하기, 자식 키우기, 대학의 잡일 하기, 사회적 요청에 부응하기, 가족 일 관리하기에 유효한 시간을 쏟고나서 '난 뭐지?'라고 반문할 자격이 있는가, 너는? 그렇게 호통을 쳐보기도 했지만 자격지심과 열등감을 쉽게 소멸되지 않았다. 허섭스레 살기, 나는 그런 걸 생산하느라고 20년을 동분서주한 것이다! ... 허무였다, 내가 만난 것은.

예전 언젠가... 저와 대학원 생활을 같이 했던 친구가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썼던 논문을 잠깐 읽어볼 일이 있었었지요. 대학원 시절엔... 같이 공부하고 문제 풀고 그랬던 그 친구의 논문을 그새 몇 년이 지나고나니... 도대체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더군요. 그렇게... 그와 저 사이엔 넘을 수 없는 '언어/지식의 장벽'이 새로이 생겨나 있슴을 알고 상당히 우울.해했었었지요. '어떻게'든... 이제까지 다 살아.는 왔는데, 제 아무리 그 '어떻게'에 우열이 매겨질 수 없다라 스스로 위로를 해봐도 웬지 나의 '어떻게'는 그저 초라해보이고 그의 '어떻게'는 한없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있고... 한 우울함 말이죠. 아무리 저의 '어떻게'가 저자와 마찬가지로 회사일하고, 자식 키우고, 엄마 모시고 등등등, 저 또한 응당 하였어야 할 나름의 가치를 지닌 일들을 하면서 살아왔건만, 왜 나의 '어떻게'는 그들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이렇게 초라.해보이기만 하는걸까. 뭐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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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자신이 대학 2학년때 산업화 현장과 노동자들의 실태 조사를 위해 만났던 월급여 6-7만원의 '공돌이와 공순이들'(저자의 표현입니다)이 다름아닌 지금의 베이비부머 세대들이며, "하춘화와 나훈아, 남진의 노래가 포장마차와 주점에서 자주 흘러나왔다. 송창식과 윤형주, 양희은의 노래가 각광을 받았던 캠퍼스와는 대조적이었다."를 통해 대부분이 대학진학을 할 수 없었었던 당시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나오는 유시민의 고백과도 또한 일치하는데, 유시민은 구로공단에서 야학을 가르칠때 구로공단과 같은 시각 이화여대 앞의 전혀 다른 풍경을 이야기하며 풍경뿐이 아니라 구로공단과 이대앞의 비슷한 또래 여성들의 표정마저도 많이 달랐다라고 쓰고 있지요. 헌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여대생들의 재잘대는 웃음꽃'을 저 또한 그 나이때엔 가졌었습니다만, '퇴근 후 피곤에 쩌든 구로공단 공순이들의 표정'또한 지금의 제가 가지고 있는, 그야말로 동세대에서만의 차이가 아닌 시계열적 차이.를 보이는 나의 삶도 무엇이 다를까... 싶은 생각도 들더군요. 삶은... 원래 이렇게 갈수록 더 힘들.어지기만 하는건가요?

 

 

직장을 떠나는 것은 치열한 시간, 치열한 인생을 기억 저편에 갈무리하는 것이다. 당시에는 사회관계를 확장하느라고 동분서주했지만 이제는 고립을 피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초라한 자신을 발견한다. 30년 동분서주하면서 고립,고독을 쫒아낸 탓이다. 친숙하지 않았던 탓이다. ……… 평생 일에 헌신했던 베이비부머들은 놀 줄을 모른다. 실제로 퇴직자들은 정말 할 일 없이 '텔레비전 시청'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비중이 16.2퍼센트로 가장 높았다. 그 다음이 낮잠(6.5%), 등산(6.0%) 친구 만나기 혹은 동호회 참석(5.5%), 산책(5.4%)등이었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베이비부머 세대가 위로는 유교사상에 깃들어있는 부모 세대를 '모셔야'하는, 아래로는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더 이상은 자신들의 부양을 기대해볼 수 없는 자식 세대를 '부양해야'하는, 그렇게 중간에 '끼인 세대'라 말하고 있습니다. "농촌에서 보낸 유년 시절, 공단과 도시로 이주한 청년 시절, 고성장 시대의 날개를 부여잡고 악착같이 가정을 일구려고 안간힘을 쓰던 중년 시절, 그리고 꿈을 키우는 가족들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도 없는 결의와 각오를 하는..." 우리나라의 베이비부머 세대는 여전히 부모에게 의지하지않으며 성장해왔으나, 자신들의 자식들에게는 무엇이든 다 해주어야한다는 무모한 의무감을 갖고 있다고도 말하고 있지요.

 

이처럼 윗 세대와 아랫세대 모두에게 의무감을 짊어지고 있는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점차 퇴직.의 나이가 다가오면서 '퇴직 후 사회 관계의 소멸'이라는 것이 가져다주는 '그간의 정체성'을 부숴버리는 자신만의 허무감을 받게 되는데, 이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하라는 긍정적 신호라 해석하며 일정 기간 '정체성 수리 중'이란 팻말을 자신의 뇌 속에 걸어놓는 시간, 즉 여행이나 취미활동들을 갖길 권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자는 이에 대해 자신처럼 자유직업에 속하는 사람들이 이것이 훨씬 수월하다라는 걸 인정하고는 있습니다만, 과연... '나에게는?'이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을 때 그저 친한 친구와 술이나 한잔.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것이 떠오르지 않는 저같은 사람에게 이러한 처방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궁금하더군요.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바로 직전에 읽었던 유시민의 책과 확연한 차이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대학 교수가 쓴 글은 제 아무리 일반 대중을 염두로 씌어졌다해도 벗어날 수 없는 고유의 틀이 있지요. 저자는 때때로... 대놓고(?) 사회학과 대학교수에 의해 씌여진 글임을 보여주는데, 이래저래... 읽는 이의 시선이 그리 편하지는 않더군요.)

 

저자는 이처럼 은퇴 시기를 맞이한 동 세대의 베이비부머들에게 정신적·심리적 독립을 하라 말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선 '죽음, 일, 취미' 의 세가지 필수요건을 충족시켜야한다 말하고 있지요. 즉, 죽음을 대비하고, 무언가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동인을 찾아야하며 노후를 위로해 줄 그 어떤 취미.를 가져라 말이죠. 헌데 이는 유시민이 말한 행복한 삶을 위한 조건인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가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단지 이 책의 저자는 은퇴후의 일. - 친구를 만난다거나 여행을 다닌다거나 - 이라 표현했지만 유시민은 이를 '연대'라 칭했다라는 것 말고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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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만에 모두 읽었을 정도로 뭐 그리 깊은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은 아닙니다. 그리 두껍지도 않고 말이죠. 또한 그러.하기에 그만큼 아~하고 와닿는 무언가도 많지 않습니다만, 제 삶이 여하히 흘러간다면 저 또한 언젠간 50대가 될 것이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게될 날이 올 것이며 매일 야구타령만 하고 있는 종원군도 대학을 보내.야하고 그의 결혼도 또한, 그리고 저희 부부의 노후도 또한 '걱정거리'가 되어 제 앞에 놓이게 될 날이 있겠지요. 그런 점에서 그러한 과정을 먼저 거쳐간 이들의 모습을 보며 '나의 죽음'이전에 '나의 노후'에 대한 준비도 필요함을 느꼈다랄까... 뭐 이 정도쯤의 소득이 있는 독서였다 할 수 있겠네요.

 

유시민의 책이 일견 이상적인 '일 개인'의 삶에 관한 이야기라면, 송호근의 책은 특정 세대의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유시민이 '습관'이라고 표현했던 삶이 베이비부머라는 특정 세대의 현실에선 '소리내어 울 수 조차 없는 그 무엇'이 되기도 하더군요. 허나 본인 스스로 밝혔듯,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서울대학교 교수'인 저자는 현 시대의 50대들이 '소리내어 우는 방법'을 혹 잊은건 아닐까.하는데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건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남아있기도 하지요.

 

문득... '살아간다'라는 것에서, '시간이 흐른다'라는 것으로, 그리곤 종국엔 '늙.는.다.'가 되는 과정이 참으로 슬프.기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게 되는 책이었습니다. 여하히 꾸며보려하더라도... '늙는다'라는 건 슬픈 일일수 밖엔 없겠지요. 그나마!!! '오늘이 내게 남아있는 날의 가장 젊은 날'이란 노랫말이 유난히도 위로가 되어주는 듯 하네요. '갱남 스타일'의 싸이가... 저에게 이렇게 위로가 되어줄 줄이야. --;;

 

 

 

 

★ More 'Food for Thought' 

- 유시민 著  「어떻게 살 것인가」  : '삶의 방식'으로서의 '어떻게'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으나, 어쩌면... '죽음'이란 것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필요로 함을 일깨워주는 것이 아닐까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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