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2년생 김지영 ㅣ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평점 :
인간이 첨으로 달나라에 발디뎠던 1969년, 그 해에 태어났었는데,
89학번인데, 그니까 재수한 89학번인건데 어느덧,
89년생들이, 말 그대로 어느덧, '서른 즈음'을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나이가 되어 있다는 거야. 어림해보니 아, 진짜 그러네. 뭐 그래봐야 그 간극이란 게 (고작 탁상달력 20개만 갈아치우면 되는) 시간 20여 년에 불과(?)한 거겠지만, 그러니까 그게, 그저 니!가 '쉰 즈음'이 되었다라는 의미 (아, 이거 참... --;;)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닌 걸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 '89'란 숫자 뒤에 붙는 접미어로서 '학번'과 '년생'이 자아내는 정서적 차이란 건,
걔네들에겐 '전설'일 김광석을,
대학로의 콘서트 장에서,
너 바로 앞에서 노래 부르는 그를,
넌 기억한다라거나, 그래서 니가,
그 노래를 걔네들보다 20년 쯤 먼저 부르기 시작했었다라는 것 같은
'경험적 정서'의 차이와,
생각해보니,
걔네들보다 처마신 소주가 적어도 2,000병은 더 넘을꺼 같다란,
뭐 이렇게 숫자로 표시될 수 있겠는,
그런 객관적 차이를 낳고, 더 나아가,
뭐라 표현할 수 없겠는, 위 두 차이를 훨씬 뛰어넘을 듯한,
뭔가 어마어마한 게 있을 꺼란 거의 확신을 낳기도 하지.
근데 문제는, 그게 단지, 그러니까 그게,
따지고 보면 고작(?) '정서적'으로만 그렇다,
도 아닌, 그럴 수도 있다...라는 거.
…………………………………………………………………………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약속이나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p132)
시작은 (제 기준에서 보아) 매우 진부합니다. "남동생과 남동생의 몫은 소중하고 귀해서 아무나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되고, 김지영 씨는 그 '아무'보다도 못한 존재인 듯 했다"(p25)란 푸념은 '아무' 누나나 다 해보았을 수 있을, 그만큼 수없이 들어본 푸념이지요. 이후 소설은 --- "가족을 부양할 능력과 의지가 전혀 없는"(p26) 할아버지에 대해, "계집질 안 하고, 마누라 때리지 않은 게 어디냐고, 그 정도면 괜찮은 남편이었다고 진심으로 생각"(p26)했었다는 김지영 씨의 할머니와,
"직장 생활이 원래 그런 건 줄"(p35) 알았었다고, "아들이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고, 그게 가족 모두의 성공과 행복이라고 생각하던 시절"(p35)을 "그때 여자들은 다 그러고 살았어"(p36)란 자위로 여전히 인내해내고 있으며, 그러하기에 김지영 씨가 어렸던 시절, "지금은, 돈 벌어서 너희들 학교 보내야 하니까. 다 그래. 요즘 애 엄마들은 다 이러고"(p36) 살아냈음을 자부심으로 여기고 있는 김지영 씨의 엄마를 등장시키며 전개됩니다. 그렇게,
그 다음 세대인 김지영 씨에게도 또한, 여자이기에 겪게되는 불합리들은 여전하거늘, 여자인 자신에게 건네어지는, 그 불합리들에 대한 설명과 위로들이란 게, --- 자신을 괴롭히는 남자 짝꿍에 대해, "괴롭히는 게 좋아하는 뜻"(p41)이란 기이한 해석을 가르쳐주는 담임 쌤으로부터, "남자애들이 원래 유치하다"(p38)란 언니의 말까지 모두, 뭔가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자발적으로 상황을 합리화하는 데에 익숙"(p26)해져 있는 그들로부터, 김지영 씨가 받았던 것은 그저,
"원래 그랬으니까"(p25)란, 뭔가 위로같으면서도 생각해보면 결국, 체념어린 인정(recognition)을 배워야 한다는 무언(silent)의 (아마도 작가는 이 부분에 '사회적'이란 접두어가 꼭 붙길 원할 듯 싶은) 강요, '체념의 세대간 이전(transfer)'에 대한 강요였었을 뿐인겁니다. 비록 --- 어린 김지영 씨에겐 단지, "괴롭히는 게 좋아하는 뜻"이란 게 이해되지 않았었을 뿐, "남자가 1번이고, 남자가 시작이고, 남자가 먼저인 것이 그냥 당연하고 자연스러웠"(p46)더랬었지만, 오래지 않아, 그렇게 시작되었었던,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가기'란 게, '똥이 무서워서 피하니, 더러우니까 피하지'란 비겁한 변명에의 일상적 익숙함을 장착하지 않고선 살아낼 수 없는 곳임을, 성인 김지영 씨는 이내 깨닫게도 되었던 거지요.
그렇게 배우고 컸다. 조심하라고, 옷을 잘 챙겨 입고, 몸가짐을 단정히 하라고. 위험한 길, 위험한 시간, 위험한 사람은 알아서 피하라고. 못 알아보고 못 피한 사람이 잘못이라고. (p68)
·
·
·
육아와 직장 생활을 병행할 자신이 없었다. (p136) …… 김지영 씨가 능력이 없거나 성실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되었다. (p145)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가기'에 쏟아지고 있는 모든 (이 표현이 좀 심하다면, '거의 모든', '아주 많은') 부조리와 불합리가 '사회로부터의 뿌리깊은 구조적 차별' 때문,이라고, 즉, "능력이 없거나 성실하지 않은 것도 아닌" 김지영 씨가 육아와 직장 생활의 병행에 두려움을 느끼게 된 것이, 그녀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작가는 명백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데올로기가 최고의 수준으로 성립하는 것은 명시적인 형식을 갖추었을 때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것을 불변의 진리로 받아들여 마음 속에 내면화할 때다."
- 류동민 著, 「일하기 전엔 몰랐던 것들」중 pp 37~38, 웅진지식하우스 刊, 2013.
| |
'우리는 당신의 행복에 관심이 없다'란 문구를, 현대 사회의 지극한 이기주의를 대변하는 것이 아닌, --- ① 타인의 행복에 관심을 가질만한 시간적·정신적 여유가 없다구요,란 피로감으로 이해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할 수도 있겠는, 더 나아가 어쩌면, ②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없기에, 어차피 내 몫이 될 수 없을, 당신의 '행복'에 관심을 두고싶지 않네요~란 애처로움으로 읽어야 맞는 것일 지도 모르겠는 현실이기에,
"기득권이 없는 이들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크게 부대끼지 않으면서 적당히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의자놀이'로 표현되는) 불가피한 게임의 룰을 받아들여 재빨리 적응하는 것이다." - 류동민, 위의 책 p43.
자본주의 하 노동계층이, 징병제 하의 대한민국 남성이, 현 입시제도 하의 대한민국 고삐리들이 해야 하는, 할 수 있는 최상의 전략이란 게 각각 --- 자신의 착취를 가속화하는 노동자, 비상식적 관행과 제도에 남들보다 빨리 적응하는 군바리, 가능하면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위해 10대로서의 일상을 포기(!)한 고삐리가 될 것을 강
|
|
요받게 되고, 결국엔 개인의 취업 문제에 대해서도 스스로에게 "우린 스카이가 아니니까"(p95)란 질책을 하는 것으로 끝맺음하라고, 능력이 떨어지는 남자 직원이 능력이 뛰어난 여자 직원을 앞질러 가는 것에 대해서도 그건 '효율과 합리'의 결과인 것이라 이해하도록 스스로를 세뇌시키라고 강요하고 있다라는 걸, 이 소설 속 김지영 씨를 통해 우리는 보게 됩니다.
이래서 여자는 안 된다는 비아냥이 돌아왔다. 선배는 여자를 자꾸 안 되게 만드니까 이러는 거라고 대답했다. (p98)
그러나,
…………………………………………………………………………
"늘 신중하고 정직하게 선택하고, 그 선택에 최선을 다하는 김지영 씨에게 정당한 보상과 응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다양한 기회와 선택지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p177)
- <작가의 말> 중.
작가의 위와 같은 바람(願)은 절대적으로 당연한 것이라고 저 역시 백번이라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낮 시간 강좌들은 대부분 취미반이거나 독서, 논술, 역사지도사 같은 어린이 대상 강사 자격증 준비반이었다. 여유가 있으면 취미 생활을 하고, 여유가 없으면 내 애든 남의 애든 가르치라는 건가.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관심사와 재능까지 제한받는 기분이었다. (p163)
자신의 관심사와 재능이 향하는 것들이 아니라 하여, '독서, 논술, 역사지도사와 같은 어린이 대상 강사 자격증 준비반'에 대해 위와 같은 국외자적, 좀 더 심하게 표현해보자면 신경질적 반응을 보내는 김지영 씨가 과연,
"우리는 모두가 노동자이며 동시에 소비자이기도 합니다. 24시간 휴일도 없이 철야로 일하는 대형 마트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지를 비판하기에 앞서, 대형 마트들로 하여금 그러한 영업방식을 택하도록 한 요인은 다름 아닌 더욱 싸고 편하게 장을 보려는 소비자의 욕구였으며, 역설적으로 임금 수준이 낮고 작업 조건이 좋지 못한 어려운 처지의 노동자들에게 그처럼 24시간 영업하는 대형 마트가 필요하다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지요."
자신의 필요성이 생기기 이전까지의 김지영 씨가 과연, '24시간 휴일도 없이 철야로 일하는 대형 마트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지'에 대해서도 "정당한 보상과 응원이 필요하다, 더 다양한 기회와 선택지가 주어져야 한다"라고 생각했었을까, "여유가 없으면 내 애든 남의 애들 가르치라는 건가"란 그녀의 신경질이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정당한 보상과 응원, 더 다양한 기회와 선택지'를 향한 조롱일 수 있다라는 걸 한번 쯤 생각이나 해보았을까,하는 의문을 끝내 지워낼 수 없기에, 그러한 의문에 긍정의 답을 떠올릴 수 없기에 결국 --- 김지영 씨에게 건네어져야 할 위로같은 건 없어야도 된다, 심지어 없어야 한다,를 선택하게 됩니다.
·
·
·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약속이나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p132)
반도체와 자동차, 핸드폰을 수출하는 대한민국 무역의 특징이란 게 여전히, '가공무역'이란 단어로 설명되어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당연히! --- 이처럼 세상은 참 많이 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일 수 밖에 없는 건 예의 안타깝고, 서글프며 분노할 만한 일입니다만 적어도, "소외를 이야기하고 그 극복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속한 그 작은 집단 속에서 (또) 소외집단을 만드는 모순"이 해결되지 않고선 결코 이 세상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란 주장에 고개를 가로저을 수는 없지 않을까요? 그러하기에,
(노랫말도 노벨문학상을 받음에, 이 작품에 대해 이게 문학일까?란 의문을 가져보는 69년생이 '뭐 저런~'의 눈길을 받는 것 역시 전혀 이상한 게 아닌 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리하여 작품의 형식에 대한 불만은 차치해버린다 하더라도) 소설 속 김지영 씨에 대해 "보편적인 모습"이란 표현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 역시 도저히 버릴 수가 없습니다. 이건,
"진공상태이던 우주를 불법들이 가득 채워버렸다면 사소한 불법 하나를 이 세계에 보태봐야 불법의 총량에는 거의 변화가 없을 것이다."
- 손아람 作, 「소수의견」중 p68, 들녘 刊, 2010.
에서 의미되는 바의 '사소함'을 우리가 기꺼이 용인해주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로 인함이지요.
세상은 저절로 바뀌지 않습니다. 세상이 바뀌지 않은 건, 내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고, 당신도 또한 바뀌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정당한 보상과 응원, 더 다양한 기회와 선택지'는 '늘 신중하고 정직하게 선택하고, 그 선택에 최선을 다하는' 김지영 씨에게(도 주어져야하겠지만, 김지영 씨에게)만 주어져야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 대한민국의 여성에게(도 주어져야하겠지만, 여성에게)만 주어져야 하는 것도 아니지요. 그건, 43년생의 제 엄마에게도, 69년생인 저에게도 주어져야 하며, 2002년생 종원군에게도 역시 예외없이 주어져야 하는 겁니다.
소설이 이야기하고 있는 불합리와 차별은, 굳이 --- 82년생 여성 김지영 씨에게뿐 아니라, 당연히 82년생 남성 김지영 씨에게도 다른 모습으로 가해지고 있음을 굳이, 애써 외면하고 있는 듯한 이 작품이, 뿐만 아니라 도무지 동의해낼 수 없겠는 보편성에만 초점을 맞춘 이 작품이 그래서 전 당췌... --;; (참고로 전, feminism에도 관심없고, manism에도 관심없는 남자입.)
- 사실 시작만 진부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내용이, 심지어 마무리마저도 진부합니다. 게다가 퇴사한 회사의 여자화장실에 몰카가 있었다는 내용같은 건, 너무도 뻔한 목적을 가지고 삽입되었다라는 게 확연하게 느껴지기도 하죠. 이런 진부함을 '보편성'이란 단어로 포장하는 것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습니다.
- "관습은 매사에 우리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특히 복종의 의무를 알게 하는 데 가장 큰 효력을 발휘한다. …… 관습은 우리가 굴종을 거부감 없이 삼키게 함으로써 더 이상 굴종의 독으로부터 쓴맛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 에티엔 드 라 보에시 著, 「자발적 복종」 중 p70, 생각정원 刊, 2015.
- "처음에는 강요에 의해 힘에 눌려 복종하지만 그 다음 세대들은 자유를 전혀 보지 못했고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어떤 후회도 유감도 없이 앞선 세대들이 강제적으로 해야만 했던 일들을 자발적으로 행한다.(p68) …… 멍에를 지고 태어나 노예 상태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은 사람들은 전 세대가 어떤 삶을 누렸는지 알지 못하고 그들이 태어난 대로 사는 것에 만족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재산, 어떤 권리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선 더 이상 생각도 하지 않고 출생 당시부터 주어진 삶의 조건을 자연스러운 상태로 여기게 된다." -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위의 책 p69.
- "못 버틸 직원이 버틸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보다, 버틸 직원을 더 키우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게 대표의 판단이다."(p123)
- 류동민, 위의 책을 읽고 쓴 감상문 중.
- "김지영 씨는 10년 만에 다시 진로를 고민했따다 10년 전에는 적성과 흥미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훨씬 더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야 했다. 최우선 조건은 지원이를 최대한 자신이 돌볼 수 있을 것. 도우미를 따로 고용하지 않고 어린이집에만 보내고도 일할 수 있을 것. …… 김지영 씨는 앞을 시간과 조건이 맞는 아르바이트 자리가 생기면 업종에 관계없이 무조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pp162~163)
- 초등학교 5학년 사회 교과서.
- 김형민 作, 「썸데이 서울」중, 아웃사이더 刊, 2003.
- "작가는 신작 <82년생 김지영>에서 30대를 살고 있는 한국 여성들의 보편적인 일상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 온라인 서점 알라딘의 책소개 중.
- 또한 이건, 요즈음의 장관 인사를 보면서도 예의 갖게 되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경우에 따라, 시기에 따라, 경중에 따라 용인과 처단이 결정된다면 그건 더 이상 법(law)이 아닌게 되지요. 디케의 눈은 더 이상 가려져 있지 않은 건가요?
- '82년생 김지영'이란 존재가 여성만을 상징한다라는 건 누구나 다 알 수 있지요.
- <각주 9>.
- "The unilaterla law which states men are superior to women." - Urban diction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