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거의 모든 것을 선수에게 맡겨놓는 로이스터 감독의 야구를 좋아하는 팬이 있겠고, 거의 모든 것을 감독의 머릿속 구상대로 풀어나가는 김성근 감독의 야구를 좋아하는 팬도 있듯이 소설을 읽는 것에 있어서도 아기자기한/치밀한 스토리 자체를 즐기는 분이 있을 것이고, 혹은 스토리 자체보다는 그 스토리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무언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독자가 있을 수도 있겠지요. 모든 소설이 이 두가지의 분류로 나뉘어질 수 있는건 분명 아니겠습니다만 굳이 둘 중의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면 전 이 소설 「고백」을 후자, 즉 '스토리 자체보다는 그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다'라는 쪽으로 가져다 놓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굳이 반드시 딱 한 개의 단어로 소설을 표현해야한다면 ('아마 이 책을 읽은 대부분의 분들도 그러할 듯'... 이란 소망을 가져보며) '복수'라 말해야 겠네요.

 

.

.

.

 

분명 제가 사직을 결심한 것은 마나미의 죽음이 원인입니다. 하지만 만약 마나미의 죽음이 정말 사고였다면, 슬픔을 달래기 위해서도, 그리고 제가 저지른 죄를 반성하기 위해서도 교사직을 계속 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사직하는가? 마나미는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 우리 반 학생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입니다.

1학기 마지막 수업 시간에 학교를 그만 두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담임 선생님의 종례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일단 종례 마지막에 선생님의 입에서 나오는 (소설 「소문」에서 나왔던 '기나오싹'이란 말이 그야말로 딱! 들어맞는) 충격적인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자신의 지나온 삶 일부를 꺼내어놓는 그 여선생님의 말투는 (물론 번역가의 출중한 번역이 한 몫했음을 빼놓을 수는 없겠으나) 너무도 차분하고 공손해서 소설의 첫 시작부터 그 어투 자체에만으로도 흠뻑 빠져들게 만들어줍니다. 

 

간단하게 소설의 줄거리를 말하자면, 담임 선생님 유코의 딸 마나미가 수영장에 빠져 죽은 채로 발견되었고 경찰은 익사로 이 사건을 처리합니다. 하지만 유코는 자신이 맡고 있는 반 학생인 A와 B가 자신의 딸을 살해했다라고 반 학생들에게 말했고, 이어 여러 명의 화자를 통해 그 사건의 전모를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라 정리할 수 있겠네요. 그러니까... 이 소설에는 날카로운 추리도 없고, 그 흔한 경찰이나 형사 또는 변호사 그 누구도 등장하지 않는데다가 당사자를 포함한 여러 명의 화자를 통해 밝혀지는 사건의 전모라는 것도 사실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는 쉽게 알려지지만, 이러한 내용을 정작 유코 선생님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등에 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는 등 약간의 허술한 구석을 가지고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대단해!라 외칠 수 밖에 없는 건 바로...   

.

.

.

 

"라쇼몽"이란 제목으로 유명한 영화의 원작은 <덤불 속>이라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소설이지요. 어떤 한 사건에 대해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억하며, 또한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기억한다고 합니다. 그래 이처럼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놓고도 사람들이 각기 다르게 말하는 현상을 '라쇼몽 효과'라고도 한다더군요. 이 소설 「고백」 또한 이런 '기억의 주관성'을 다루고 있다라 말할 수 있을겁니다. '유코의 딸을 죽이려는 살의는 있었으나 직접 죽이지는 않은 A', 그리고 '살의는 없었으나 직접 죽이게 된 B', 그리고 그 'B의 헌신적인 엄마'가 가지고 있는 이 사건에 대한 기억과 판단은 모두 그렇게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남아있습니다. (제가 아는 단어의 한계때문에 '유리한'이라 썼습니다만, 뭔가... 이를 표현할 다른 더 적절한 단어가 분명 있을겁니다. --;;) 

 

<덤불 속>이란 짧은 소설은 그러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화자의 내면까지를 보여주지는 않았었지만, 이 소설은 그러한 기억들을 각 등장인물들이 가지게 된 근거를 낱낱이 보여주며, 그러한 기억들 자체가 결코 그들의 고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말해주고 있지요.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주관을 개입시키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역설적으로도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인 유코 선생님입니다. 그녀는 끝까지... '내 딸이 죽었고, A와 B가 범인이다'라는 지극히 객관적인 사실에만 충실한 인물로 남아있지요.

 

반 아이들이 모두 듣는 앞에서 말한 이유는, 어떤 의미로 가장 잔혹한 판단을 내릴 사람들 속에 두 사람을 던져넣고 싶었기 대문입니다. 비록 아무리 잔인한 아이라해도 어른들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보호해주니까요. …… 물론 두 사람이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같은 반 아이들에게 어떠한 처벌을 받는다 해도 제 마음이 풀리지는 않습니다. …… 모든 기억을 지워주는 복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복수'가 주제인 소설임에도 이 소설 속의 모든 복수는 완벽하게 성공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심지어 A의 복수는 아이러니하게도 A가 죽인 마나미의 엄마인 유코 선생님을 통해 실현되기도 하지요. 이처럼 (다시 한번 더!) '복수'가 핵심인 이야기의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복수가 다 실패로 돌아가며, 그런 주제의 소설이 왜 하필 <고백>이란 제목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제가 생각하는) 해답은 바로... "모든 기억을 지워주는 복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란 유코 선생님의 마지막 독백에서 찾을 수 있지않을까 싶네요.

 

 

소설 속 모든 복수가 실패했기 때문에 그들 자신의 원한이 풀리지 않은 것이 아니라, '성공한 복수라해도 그것이 아픈 기억 자체를 없애줄 수는 없다'라는 메세지, 이것이야말로... 「13계단」,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그리고 약간의 어거지까지 부려본다면 「뫼비우스의 띠」까지도 포함될)을 통해 작가들이 말해준 것들을 「고백」이란 이 소설이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해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어서 빨리 다음 페이지를 보고싶다란 생각을 가지게 했던 소설은 꽤 많았습니다.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다보니 어느 덧 토요일 밤을 지나 일요일 새벽이 된 적도 몇 번 있었었지요. 이 소설 「고백」은 그리 길지도 않은 소설입니다. 읽어내려가는 속도 또한 충분히 빠를 수 있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토요일 저녁에 읽기 시작한 이 소설을 (은근 책 빨리 읽는 제가) 끝내 주말에 마치지 못했던 건, 게다가 감상문조차 곧장 쓰지 못했었던건... 뭔가 다음에 전개될 스토리를 흡사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 같다라는 생각을 들게 했던, 실제 읽는 도중 숨이 막혀 잠시 책을 덮었어야 했기도 한, 이전엔 접해보지 못했던 경험때문이었다라 말할 수 밖엔 없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