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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시간 2008-2013
이명박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자신의 어린 시절과 성장 과정에 관해 서술하고 있는 1장으로 시작하여, 총 12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는 책입니다. 이후 <집권기의 국내상황 - 대미외교 - 대중외교 - 대북정책 - 대일외교 - 기타국들과의 외교 - FTA를 비롯한 국제외교의 성과 - 4대강 사업을 비롯한 녹색성장 관련 - 집권기에 시행되었던 각종 정책들에 대한 설명 - 문화와 과학분야 - 기타 등등>으로 정리할 수 있는, 그 구성만 놓고본다면 매우 깔끔!한 목차를 가지고 있기도 하지요.
일단! 이 책은 무엇보다 물 흐르듯 아주 잘 읽힙니다. 딱히 막히는 부분도 없거니와 그냥 술술술, 진짜로 술을 마시면서도 읽을 수 있을만큼 말이죠. 이게 물론 대필 작가의 능력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제 생각을 솔직하게 밝혀보라 한다면, 이 책엔 '(진지한 의미로서의) 철학'이란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 전 사실 당시의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찍었더랬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었었겠지만, '철학은 있지만 능력은 없었다라 느껴졌던' 전임 대통령에 대한 반동에서였다랄까요? '철학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능력은 있어보이는' 대통령이 필요하다라는, 한 마디로 '거꾸로 가보기'란 이유가 가장 컸었기 때문이었죠. 뭐 이 분이 대통령이 된 게 저의 한 표 덕분은 아니겠습니다만, 어쨌든 그렇게 5년을 흘러보내고 나니 능력의 부재보다 철학의 부재가 훨씬 더 무서운 것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었으며, 이는 곧 그 '5년 전 저의 한 표'를 결국엔 스스로 탓하도록 만들어주기도 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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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만 보고 달려온 사람이 뒤를 돌아보았다. 이 책은 나의 대통령 시절 이야기다. 내가 이끈 정부와 정책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사실 중심으로 씌어졌지만 내 삶의 궤적을 따라 내 생각들이 배어 있다. …… 그리하여 이 책은 이 시대 한국인 모두의 살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p4)
「대통령의 시간 : 2008-2013」이란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개인 이명박의 '자서전'이 아닌 대통령 이명박의 '회고록'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개인사에 대한 잡다한 이야기들까지를 보지는 않아도 된다라는 장점이 있겠습니다만, 이 분 당췌... 뭔 하고싶은 이야기가 그리도 많으셨는지 거의 800페이지에 달하는 '회고록'을 써내셨네요. 헌데 말입니다...
제 핸드폰엔 3,000여곡의 노래들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관심있는 가수들의 신곡은 일단 저장해놓았다가 이후 들어보곤 안좋으면 지우고 하면서 그렇게 계속 리스트를 갱신을 해가지요. 여기서! ---- 예를 들어, 제가 Pink Floyd의 노래를 지우고, 그 다음에 재생된 EXID의 노래는 지우지 않았다해서 그것이 Pink Floyd를 EXID보다 못한 아티스트라 평가하는 건 절대 아니다라는 거지요. 심지어 Pink Floyd의 노래는 고작 두 곡뿐인데 비해 (발표한 앨범 숫자도 훨씬 적은) EXID의 노래를 다섯 곡이나 저장해놓고 있다는 사실 역시 제가 Pink Floyd보다 EXID를 더 좋아한다!라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되어주지도 못하는 겁니다. 이처럼!!! 저의 특정 행동이 제 개인적인 취향의 전반적인 양태를 대변하고 있다라 말할 수는 없는 겁니다. 그런데!!! --- 이 책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 이 분은 (크게 보아) 이 두 가지를 그냥 막 동일시하고 계시지요.
사실 이게 꼭 이명박 전 대통령만의 잘못이라 말할 수는 없다 생각합니다. 뭔 왕조시대도 아닌 것이, 대통령이 뭐라 말 한 마디라도 하면 대학교수건 정치인 출신이건 죄다 그 한 마디를 받아적기 위해 쩔쩔매고, 대통령의 말엔 무조건 자동모드로 고개를 끄덕이고들 하는 '한국적 대통령의 문화'란 것이 하루이틀 전의 이야기는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 책의 내용, 그러니까 이명박 전 대통령의 주장에선 --- 자신의 개인사적인 경험/기억을 너무도 나이브하게 국가 통치에 직접적으로 연결시켰다라는 걸 심지어 '자랑스럽게' 서술하고 있는 용기마저를 보게 됩니다. 게다가 그런 용기는 결국 이 회고록 속 이야기들이 '이 시대 한국인 모두의 살아가는 이야기'이기도하다,란 (이 시대 한국인 그 누구의 동의도 받지 않은) 서술까지를 이끌어내고도 있지요. (이걸 저와 이명박 전 대통령 사이에 철학의 다름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둘 중 누군가에겐... 철학이 아예 없기 때문이라고 볼 수 밖엔 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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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을 때, 나는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권력 다툼에서 벗어나 국민을 섬겨야 한다. 현안에 빠져 정신없더라도 미래를 내다보아야 한다. …… 깨끗한 정치를 넘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해야 한다.(p6)
제가 개인적으로 대통령을 직접 만나볼 기회는 (당연히!) 없었었지만, 그 주변의 인물들이 제 앞에서 보여주었던 행동들은 절대!' 국민을 섬기고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해야 한다'라 말하는 대통령의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었더랬습니다. 하지만... 백 번 양보해 그것이 대통령 본인의 행동은 아니었으니 그렇다 넘어간다 하더라도 '미래를 내다보아야 한다'라는 대통령 본인의 말만큼은 여전히 지켜지지 않았다라 생각합니다. 그러한 제 판단의 근거는...
"과거 산업화시대의 개발마인드로는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p97) --- 본인 스스로 이렇게 적어놓으시고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은 또 '공공 부문에서의 생산적 인프라 투자'(p8)이라 발언하고 있습니다. 순전히 당신 편의대로의 분류인거죠. 그러면서 책의 초반(p54)과 후반(p571) 두 번에 걸쳐 이 '4대강 사업'을 멀게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이나 포항종합제철 건립, 가깝게는 KTX나 인천공항의 건립, 청계천 복원사업 등과 동등하게 비교하며 이러한 사업들 역시 당시엔 극심한 반대를 겪었었지만 지금엔 모두 성공적인 사업이라 평가받는 것처럼 '4대강 사업' 역시 올바른 역사의 평가를 위해서는 좀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라는 논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건 아니죠. '시대'가 바뀌었고 '세대'마저도 또한 바뀌었습니다!!! 본인의 표현을 그대로 가져다 써봐도 "과거 산업화시대의 개발마인드로는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니까요!!!
대통령이 되었을 때, 나는 열과 성을 다해 일하리라 다짐했다. …… 정말이지 쉬지 않고 뛰었고 신나게 일했다. 다 잘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우리는 많은 일들을 해냈다.(p6) …… 열심히 일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다.(p10)
식사를 초대한 자리에서의 인사말도 이제는 더 이상 '많이 드세요'가 아닌, '맛있게 드세요'로 변해있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 이 분은 여전히! '많이 드세요'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신거죠. --- 지금의 '시대'와 '세대'에게 '많은 일들'을 '열심히' 했다라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당연히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받아 마땅하다라 생각하고 있는 분이 직전 우리나라의 대통령이었다라는 게, 이처럼 시대에 걸맞는 철학의 '부재'를 부지불식간에 떳떳하게 드러내놓고 있는 분이 우리나라의 대통령이었다라는 게, 좀 과격하게 말해보자면 참으로 창피한/졸라 쪽팔린 겁니다. 물론!!! 이 책에서 이 분은 '많은 일들' 뿐 아니라 '무슨 일을 어떻게 해내었다'라는 것에도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듯, 이 분이 개인 이명박과 대통령이라는 국가기관으로서의 이명박을 내내 혼동하고 계신다라는 게 문제인겁니다. ---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들을 이 책의 처음에 배치해놓은 것도, 단순히 그것이 시간의 순서를 따랐기 때문이 아닌, 그 때의 몇몇 경험들이 이후 (잊혀지지도 않고) 내내 자신의 대통령 시절 정책들과 행위들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라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었다라는 걸, (그렇지 않다라 말하는) 측근의 주장과는 달리, 쉽게 눈치챌 수 있기 때문이지요.
나는 여러 나라의 정상들와 가진 격의 없는 대화 속에서 고심하고 있던 중요 사안을 꺼내 뜻밖의 성과를 거둔 경우가 많았다. 여기에는 과거 기업에서 일할 때 실무적으로 불가능한 일들을 상대방 CEO와 만나 신뢰와 진정성으로 설득하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p194)
(최소한 정치인으로 변신한) 이후 이 책에 등장하는 본인에 대한 자화자찬은, 저라면 도저히 오글거려서 써내지 못했었을, 상당히 높은 수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각국 정상들에게 보여주었던 '신뢰와 진정성'은 가히 '데우스 엑스 마키나'급의 능력을 보여준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요. 그로 말미암아, (무려! 각각 공화당과 민주당 출신인) 부시와 오바마 대통령 둘 다와도 '형제의 정'을 나누어 결국 그들 모두로부터 '이명박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하라'라는, 그야말로 세상이 깜짝! 놀랄 수준의 파격적인 해피엔딩을 이끌어 내었으며, 인도네시아의 유도유노 대통령, 카자흐스탄의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등 수많은 국가 정상들과도 변함없는, 심지언 폭탄주까지 돌려마시는 '형제의 정'을 나누었었고, 멕시코의 펠레페 칼데론 대통령과는 단박에 '친구(amigo)'를 먹기도 했었던, UAE의 모하메드 왕세제와의 사이에서도 이 전 대통령의 '신뢰와 진정성' 덕분에 불가능에 가까웠다는 원전수주를 결국엔 역전시켜 이루어내는 쾌거를 가져왔다고도 쓰여 있습니다. 가히 마법이라 불러도 될만한 '신뢰와 진정성'이지요. 하지만, 그 백미(白眉)는 단연코!!!
'한-EU FTA'가 이탈리아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하고 있을 때, (별책의 표현을 빌어보자면, "술 몇 잔 하고 잡담 비슷한 걸 하게 됐'던 자리에서) "EU - KOREA FTA OK?"(p479)라는 의도적인 쉬운 영어 한 마디로 이탈리아 총리의 마음을 바꾸어내었다라는 의미를 심하게 풍겨내고 있는 장면이지요. 이 서술로만 본다면 우리나라와 이탈리아 외교·통상 공무원들은 다 잡아 족쳐야 되는 겁니다. 아님 앞으로 외교의 난제는 '술 몇 잔 하며 잡담 비슷한 걸'로 풀어내라란 지침을 내리던가. (이 부분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편리한 상황인식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습니다. 자신의 '판단'과 실제의 '사실/상황'과 항상 일치되는 건 아닐텐데, 최소한 이 책에 등장하고 있는 부분들에서만큼은 이 둘을 항상 일치시켜내고 있지요. --- '나는 이탈리아가 한-EU FTA에 대한 입장을 바꾸는 데 베를루스코니가 자국 정부 내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볼가 강변의 만찬에서 베를루니코니가 내게 한 약속이 마지막 빗장을 푸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p479))
이처럼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뒤섞임에서도 보여지는 자화자찬은, 뭐 그야말로 그치지 않고 이 책 내내 등장하고 있습니다만, 다음에 인용해 놓은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의 발언은, 이것이 혹시 북한 정권의 통치자에게 행해졌던 것이 아닐까하는 의구심까지를 불러일으켜 주는 수준입니다.
"한국 국민들이 잘 알지 못하는 사실 한 가지는 한국의 국제적인 명성이 대통령님 지도력하에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크게 높아진 것에 대해 한국 국민들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p170)
이처럼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성공적 결과들과 그 뒷 이야기들만을 밝히고 있습니다만!!! --- 그 누구든 가져볼 수 있을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의문은 이에 대해, 그 반대급부로서 우리가 그들에게 내어주었어야했던 건 정말 하나도 없었을까?라는 질문을 떠올려줍니다. 만약! 이 책에 등장하는 상대국 정상의 회고록이 나온다면, 그리고 거기에 혹시라도 한국과의 외교 비사가 적혀진다면 과연... 그들은 (특히나 '술 몇 잔 하며 잡담 비슷한 걸'했었던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총리!) 어떻게 서술하고 있을까요.
자화자찬 뿐만 아니라, (앞서 한-EU FTA 타결과정에서 보여졌던) 상황의 이해에 있어 오직 자신의 생각대로만 해석해내는 점도 한 국가의 정상으로서는 부적절한 면이라 생각합니다...만! 이 분은 예의 자신의 판단을 곧바로 사실/진실인 양 받아들였었던 걸 사뭇 자랑스럽게 중국과의 외교에서도 다시 한 번 더 기술해놓고 있으시지요. '지난 수십 년간'의 생각이 자신의 '신뢰와 진정성' 어린 말 몇 마디로 손쉽게 바뀌었다는 뉘앙스로 말입니다. --- "2008년 취임 초에 중국을 방문했을 당시만 해도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미동맹은 냉전의 잔재'라고 폄훼했다. 한·미 동맹을 위협으로 간주하는 것은 지난 수십 년간 중국이 갖고 있던 생각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한·미 동맹을 강화하면서도 한·중 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점을 설득하자 중국이 이를 어느 정도 받아들인 게 아닌가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중국 지도부는 한·미 동맹을 아직도 불편하게 여길지언정 그 존재를 기정사실로 인정하게 됐다. 한·중 관계의 가장 큰 난관에 대한 중국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나는 이를 중국의 의미 있는 변화로 받아들였다."(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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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이 책엔, 이전 정권들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내용들 또한 당연히! 담겨져 있습니다. 그 내용들의 정치적 함의까지야 제가 알 수 없지만 ---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전임 정권들을 은근히 비판하고 있는 서술들은 바로 직전 대통령이 지금 써낼 수 있는 글은 아니라 저 또한 생각하게 되더군요. 정상회담의 대가로 북한이 상당량의 경제지원을 요구했다라는 부분에서 써놓은 "여전히 북한은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p331)라는 서술이나, "구걸하는 형식의 정상회담은 안 된다. 무력 도발에 화해를 구실로 물적 지원을 해서도 안 된다"(p370)와 같은 구절은 아예 대놓고 이전 정권에서는 그러한 지원이 있었었으며 그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었다란 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밖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전임 정부의 PSI 참여 유보는 북핵 문제에 대한 우리의 주도권을 상실하는 또 하나의 계기로 작용한 것이다. 나는 취임 전부터 한국은 PSI에 가입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p317)
이러한 서술을, 과연 지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살아계시다 해도 쓸 수 있었을까하는 진한 의구심을 가져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허긴 뭐... (현재의 살아있는 권력인) 박근혜 대통령의 후보시절도 까고 있는 마당에 그걸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지만서도... --;; (이와 관련하여서는, 2007년 대선후보 당선 후 김수환 추기경을 만났을 때 김 추기경께서 "이 후보께서 그렇게 공격을 받으면서도 상대를 공격하지 않고 참는 모습을 보며 많이 놀랐습니다. 그런 경우에 처했다면 나도 가만있기 힘들었을 것입니다."(pp101-102)와 같은 부분은 대표적이죠. 대놓고 까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자신의 손에는 피 한방울 튀지 않게하며 은근히 돌려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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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영향력은 둘 다 타인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다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거나 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영향력은 상황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고 하지, 상황 그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
얼마 전에 읽었던 모이제스 나임 著, 「권력의 종말」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 대통령직에서 물러남으로써 '전직'이 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겐 이제 과거와 같은 '권력'은 없습니다만, 이 분은 이 책을 통해 최소한 자신의 '영향력'은 여전히 살아있다라는 메시지를 세상에 보이고 싶었던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자신의 재임기간 중에도 여전히 살아있음을 못내 참을 수 없었던 본인이 어느새 이젠 그러한 '전임으로서의 영향력'을 그리워하게 되었다라는 거지요. 하지만!!! 여기서 이 분은 여전히 --- '영향력'이라는 건 '상황에 대한 인식'만을 바꿀 수 있을 뿐, '상황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라는 걸 알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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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모든 정책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최소한! 이 책에 서술되어 있는 바의 '대북 정책'의 방향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거기에 더해 --- 사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지나칠 정도로 '불운했었다'라고 생각했었고, 이 책을 읽기 전까지도 일정 부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었기도 한 저입니다. 광우병 사태야 그렇다쳐도 세계금융위기나 일본의 쓰나미 등 같은 외부적 충격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는 전혀 제어할 수 없는 외부적인 요인들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저의 생각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현 정부의 가장 큰 불운일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현 정부의 허물을 모두 덮어버리는 편리한 핑곗거리가 될 수도 있다."라는 지적 앞에선 (이 회고록을 읽고 나니 비로소) 그 어떤 대꾸를 할 수가 없게만 됩니다.
회고록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인생역전과 성취를 기록하는 것이다. 설혹 실패가 있다 해도 그 실패를 바탕으로 다시 도전해 성공한 것을 남기고 싶어 한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더구나 회고록은 자신의 실패와 잘못을 반성하는 '참회록'이 아니지 않은가. …… 이념과 노선에 반대할 수는 있다. 그분들의 대통령 시절 행적과 정책에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그들의 인생이 유난히 치열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 그러니 이명박 대통령의 회고록은 <대통령의 시간>도 어느 정도의 자랑과 합리화는 불가피한 것이라는 점을 독자들이 널리 헤아려주기 바라는 마음이다.(「오늘 대통령에게 깨졌다」, pp 23-24)
'무엇보다 자화자찬을 경계했다(p784) …… 회고는 반성이다. 지난 일은 언제나 부족하다(786)'란 이명박 전 대통령 스스로의 고백관 달리, 그를 모셨던 참모로서 이 회고록을 읽어봐도 지나친 '자화자찬'의 향기를 지울 수는 없었었나봅니다. 그래서인지 김두우 전 홍보수석은 위의 인용글에서처럼 '회고록이 참회록은 아니지 않은가'란 기묘한 논리를 앞세워, 이 책에 담겨져 있는 끊임없는 자화자찬을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기인되는 '불가피한 것'이라 정당화시켜내려 하고 있지요. (곧이어 김두우 전 홍보수석은 다시 한 번 더 --- "사람은 일이 벌어졌을 때는 후회도 하고 반성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합리화를 하게 마련이다. 그래야 견딜 수 있다."(p25)라 서술하고 있는데, 이게 변명인지 구걸인지 저의 독해로는 명쾌한 구분이 되질 않습니다. 암튼! 임기 끝낸 아랫사람에게 못할 짓 시키고 계신 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게도 되는 장면이긴 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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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비교적 이른 시기에 성공을 거두었고, 그 성공이 이후에도 지속된 사람에겐 아무래도 (자신의 주장보다) '타인의 의견을 더 많이 존중'해주려는 의식이 그렇지 못한 평균적 사람들보다는 약할 수밖엔 없기 마련이라 생각합니다. 그러하기에 그 자체를 탓할 수는 없겠지만 ---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엔 (완곡하게 표현해보자면) 자신이' 타인의 의견을 비교적 덜 존중한다'라는 인식 자체가 아예 없으신 건 아닐까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된 독서였습니다. 비록!!! 별책부록에서 김두우 전 홍보수석이 그 점에 대해 '그건 오해다!'라 구구절절이 써내고 있긴 합니다만, 저의 독해에선 그것이 오히려 '실제로는/도 그러하기에... --;;' 라는 것의 반증으로만 읽혀지는 이유를, 정치적 성향을 완전히 떠나! 저 스스로도 당췌 알 수가 없기만 합니다.
광주의 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하셨다는 말이라는, "욕을 하려면 제대로 알고 해야 한다"(p128)이란 책 속의 표현처럼, 이 책을 읽어보지 않고 그저 한 개인, 그리고 국가기관이었던 때의 행적들만으로 이 책 자체마저도 비난하는 건 옳지 않다 생각합니다. --- 뭔 이유에선진 모르겠지만, 출간 이후부터 내내 이 책이 읽고 싶었었고, 마침!!! 알라딘에서 북파우치를 주는 이벤트도 있고, 출판사에서 시행하는 이벤트 - 독후감을 응모하여 수상자에겐 상금과 함께 이 전 대통령과의 식사자리를 가지는 부상 - 도 있고해, 미루어놓기만 했던 이 책을 구매해 읽어보았습니다...만!!! 너무 두꺼워 그 북파우치엔 들어가지도 않을 뿐 아니라, 다 읽고 나니, 그리고 이렇게 감상문을 써가다 보니 이건 도저히... 출판사에 '응모'의 글로 보낼 수는 없겠다/보내고 싶지도 않다란 생각이, 백 만에 하나라도 행여! 온갖 행운들이 스스로 작동되어 제 글이 당선된다 해도, '이 분'과 한 테이블에 앉아 어떤 이야기를 하게될지, 하고 싶을지, 듣게 될지... 에 대한 궁금증이 모두 다 사라져버렸다란 결론만이 남겨지네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기-승-전-자화자찬'으로 이어지는 내용의 '(참회록이 아니라는) 회고록'을 다 읽고 나니, 이제야 새삼 이준구 교수님의 다음 옛 글이 절절히/가슴에 와 닿게 읽혀집니다. '아! 옛날이여~'란 말이 때론 이렇게 긍정적으로 인식되어질... 수도 있는거였군요. --;;
"사람은 실패를 통해 배워나가는 법입니다. 그러나 실패를 통해 무언가 배울 수 있으려면 실패를 인정하는 겸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실패를 실패로 인정하지 않고 성공이라 우기는 사람은 아무것도 배울 수 없습니다. 누가 보아도 지난 1년 동안의 현 정부는 결코 성공작이라고 말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정부와 정부를 편드는 사람은 이를 선선히 인정하려들지 않습니다. 바로 이 점이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입니다." - 이준구 著, 「쿠오바디스 한국경제」 중 pp 324-325.
-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 책 전반에 걸쳐 '실용주의'를 내세우고 있습니다만, 이건 제가 의미하고자 하는 '진지한 의미로서의 철학'은 아닙니다.
- 이하의 표기에선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 쓰겠습니다. 지지하건 반대하건 적어도 대통령이었던 분에 대한 호칭에는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어야 할 테니까요.
- 「오늘 대통령에게 깨졌다」란 제목의 별책엔 이마저도 많이 줄여놓은 것이란 말이 나옵니다. '대통령의 인간적인 측면'을 거의 모두 배제되었다라는데, 이 '인간적인 측면'이란 것의 정의(definition)에 대해 저와 (별책부록의 저자인) 김두우 전 홍보수석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생각합니다. 그래 별책부록을 마련했고, 여기에 '대통령의 인간적인 측면'을 담았다라는 건데,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그런 사소한 에피소드들에 과연 '인간적인 측면'이란 타이틀을 붙일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전 동의하지 못하겠더군요. 마치 '재래시장에 가면 사람냄새가 나서 좋다'라는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표현과 같다고나 할까요?
- 별책에서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저의 독해로는 이건 사후적으로 만들어낸 변명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 "아무리 정책 위주의 회고록이라 해도 '인간 이명박'이 드러나지 않으면 매력이 덜하게 마련이다. …… 이번 회고록은 대통령 재임 중의 정책을 위주로 했기 때문에 굳이 라이프 스토리를 넣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었다. …… 주변의 젊은 세대 중에는 이명박 대통령을 소위 '금 숟가락 물고 태어난' 재벌 2세쯤으로 여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 처절한 가난 속에서 풀빵장수, 뻥튀기 장수와 과일장수를 하면서 야간고등학교를 다녔고, 이태원 시장에서 환경미화를 하면서 번 돈으로 대학을 다녀야 했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오늘 대통령에게 깨졌다」, pp26-27)
- 「오늘 대통령에게 깨졌다」, p66
- 이외에도 UAE이 모하메드 왕세제가 이 대통령의 퇴임을 앞두고 시점에서 했다는 말인 "대통령님을 알게 된 것 자체가 저의 개인적인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일 중의 하나입니다."(p529)라는 표현 역시, 이 회고록을 아랍어로 자신있게 번역할 수 있을지를 의심하게만 해주지요.
- 고든 브라운 총리는 이 말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하며, 자신이 다음 날 있을 '글로벌인재포럼 2012'의 기조연설에서 이 이야기를 할 것이라 했다합니다. 그리고 고든 총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한국인의 역량은 세계인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한국은 ……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고 생각한다."(p170) 이 발언에 과연 이명박 대통령 개인에 대한 부분이 어디에 들어있는지 전 모르겠습니다. 즉! 공개된 발언과 공개되지 않은 발언에 너무도 심각한 수준차가 있다는 거죠.
- 이준구 著, 「쿠오바디스 한국경제」, p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