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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슬립 - 전2권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이수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제발 이번엔 저를 읽어주세요!'라 외치는 듯 보이는 책장 속 책들 중 그냥... 손 가는대로 한 번 책을 집어보고 싶었었고, 그렇게 선택된 (또) 소설이 바로 이 「타임슬립」이었습니다. 작가 오기와라 히로시는 이미 「소문」을 통해 만나본 적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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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 속 문장이 이 작품의 줄거리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944년 9월 12일 첫 단독 비행을 하게 된 19세의 군인 이시바 고이치, 그리고... 2001년 9월 12일 어지러운 머리를 식히려 바다로 자신이 좋아하는 서핑을 하러나갔던 백수 오지마 겐타. 이 두 사람의 영혼이 갑자기 뒤바뀌게 됩니다. 그러니까 1944년의 고이치가 2001년을 살고 있는 겐타의 몸으로 들어왔고, 겐타의 영혼은 난데없이 1944년을 살고 있던 군인 고이치의 몸으로 가게 된 거지요.
각자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에 대한, 우리가 쉬이 예상할 수 있는 그런 일들이 벌어집니다. 주변 사람들 또한 그 두 당사자들 못지않게 당황하게 되지요. 여전히 현 상황을 정확히 감지해내지 못한 두 주인공은 각자가 처하게 된 상황을 예의 각자의 시대적 사고를 통해 판단해봅니다. 고이치는 적국의 스파이들이 자신으로부터 뭔가 군사기밀을 빼내려 위장 작전을 쓰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며, 겐타는 일반인을 상대로 한 몰래카메라 프로그램이 촬영중인 걸꺼라고 말이죠.
허나 이런 착각도 머지않아 끝이 나게되고, 현대에서 과거로 간 겐타는 자신에게 '시간 이동'이 발생한 것 임을, 과거에서 현대로 온 고이치는 '차원이 다른 별세계'란 개념으로 서로가 처해 있는 상황을 정리하게 됩니다.
아무도 다른 사람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만큼 똑같은 인간이 있다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닮은 것은 비단 얼굴만이 아닌 것 같았다. '이시바'라는 이름표가 붙은 옷도 신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겐타에게 꼭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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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쪽의 시대가 1944년이라는 것,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았던 고이치가 군인이었다라는 설정은 예의 일본의 패전이 이 소설에서 상당히 중요한 비중으로 다루어지게 됨을 암시해줍니다. 2001년에서 1944년으로 간 겐타는 이미, 1년 후면 일본이 이 전쟁에서 지게 된다는 것 알고 있지요. 즉, '이 상황이 어떠한 결말로 끝맺음 되는지는 이미 알고 있는 자'가 바라보는 그 결말로 가는 과정... 이 바로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그려내고자 하는 한 가지입니다.
허나... 저에게 더 무게감 있게 다가왔던 건, 또 다른 하나의 상황, 즉 '이 상황이 어떠한 결말로 끝맺음 되는지를 몰랐던 자'가 중간 과정이 생략된 채 그 결과, 게다가 그 내용마저도 자신이 꿈꾸었던 의도와 정반대의 것인 결과만을 보게 되었을 때의 장면이었습니다. 당시의 전쟁이 어떻게 시작된 것이며, 왜 미국과 영국이 적국이고 독일과 이탈리아가 동맹국인지조차 알지 못하지만 고이치는 이미 조국 일본을 위해 그 (이유도 모른채 싸워야하는) 전쟁에서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칠 것이다라 다짐하고 있는 열혈 애국청년이었습니다. 그 전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조국 일본을 구할 수 있는 것이고, 자신의 가족을 구할 수 있기도 한 것이라 굳게 믿고 있는 그에게 보여지는 2001년의 일본은 커다란 '배신'의 모습으로 다가왔지요.
50년 뒤의 일본은 너무 많은 물질과 욕심과 소리와 빛과 색의 세상이었다. 다들 자신의 모습을 봐달라고, 자신의 소리를 들어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겸허도 수치도 겸양도 규범도 안식도 없었다. …… 이것이 우리가 목숨 걸고 지키려고 애쓴 나라의 50년 뒤 모습이란 말인가. …… 이미 많은 군인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렸다. 그 존엄한 희생이 진정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였던가? 자신이 목숨을버리고 지키려는 조국이 이렇게 될 텐데?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말 그대로 끝맺음 지어지는 소설입니다.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영화 <Back to the future>와 동일한 상황이 등장하기도 하지요. "오늘이 행복하지 않은 당신에게 건네는 오기와라 히로시의 감동 역작"이란 출판사의 소개 문구에는 글쎄...의 의문부호를 붙이는 독자가 있을 법도 해보입니다. (저의 경우를 말하자면... '미지근한 물도 충분히 오랫동안 몸을 담그고 있으면 많은 아주 많은 땀을 나게 해준다'라 하고 싶. ^^) 하지만 그렇게 '배신감'으로 시작되었던 2001년의 삶을 열한 달간 보내었던 1944년의 고이치는 결국...
21세기의 일본의 스스로 무질서하게 타락하여 도의도 절도도 없어진 것을 알게 된다면, 미드웨이와 과달카날, 사이판 섬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영령들은 고이치가 그랬던 것처럼 분명 땅을 치고 한탄할 것이다. 하지만 전쟁에서 지면 멸망한다고 배운 조국은 어찌 된 일인지 오히려 더 잘 살고, 더 많은 물자와 정보와 편리함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이제 굶어 죽는 사람도, 전쟁으로 죽는 사람도 없다. 고이치에게는 살기 힘든 시대지만, 이 시대 사람들이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렇게 2001년의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지요. 물론 '어찌 된 일인지'의 표현에서 나타나듯 고이치가 완벽하게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을겁니다. 또한 그의 이해는 '굶어 죽는 사람도, 전쟁으로 죽는 사람도 없다'라는 지극히 고이치 자신의 이제까지의 삶 속 경험에만 그 판단 근거를 가지고 있는 수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제...
이 똑같은 이야기의 소설을 우리나라의 역사를 바탕으로 써보는 상상을 해본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1944년 당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를 바칠 각오로 독립운동을 하였던 우리의 선조 중 한 분이 지금 2013년 1월 1일에 오셨고, 이후 열한 달의 2013년 삶을 살고 나신 후에 과연 그 선조께서도 고이치와 같은 수준에서라도 2013년의 우리들에 대한 '이해'를 하시게 될까요? 요 며칠 간 인터넷을 달구고 있는 '안녕들 하십니까?'의 인사를 2013년의 열한 달을 보낸 그 분에게 드린다면 과연 어떤 대답을 듣게 될까요?
이 소설... 이 저에게 던져준 새로운 궁금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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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가 아닌 'or'를 쓴 것은 작가 (혹은 번역가)의 실수가 아닐까? 했었더랬습니다. 책을 읽는 도중에도 말이죠. 헌데... 이 책을 다 읽고나니 작가(혹은 번역가)는 어쩌면 의도적으로 'or'를 쓴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의 과도한 추측일지도 모르겠지만... 암튼!!! 이 소설을 다 읽고나면 저 'or'란 단어가 단지 '또는'만을 의미하는 건 웬지 아닌것 같다는 느낌 받으실겁니다. 뭔가 제가 모르는 복선을 의미하는 건 아니야?하는 생각이 없어지질 않습니다.
마지막에 초강력 펀치로 마무리 지어주었던 「소문」관 달리, 별 무거운 이야기도 없는 이 소설... 여러가지로 은근 애간장 좀 태우네요. ^^;;
Quiz : 이 소설을 읽는 도중... 이 책의 내용과 비슷할 듯 하니 한 번 비교해보면 재밌겠다!란 생각이 들었던 소설을 지금 읽고 있습니다. 뭘...까요?
★ (읽어 본) 작가 오기와라 히로시의 다른 책
- 「소문」 : '기나오싹'이라는 조어에 대한 그야말로 기나오싹한 원빤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