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 천 개의 유혹 - 욕망이 만든 뜻밖의 세계사
에이자 레이든 지음, 이가영 옮김 / 다른 / 201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경제원론>을 배우는 경제학과 1학년생이 감히 의심의 여지조차 가져볼 수 없는, 심지어 의심의 여지를 가지고 있어서도 안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라는 명제입니다. 정말로 인간의 욕망은 무한한 걸까요? 

2015년 "올해의 딱 한 권"으로 꼽았을만큼 저를 감동시켜주었던 책, 「고로지 영감의 뒷마무리」이라 해도, ('무한'은 고사하고!) 그 책을 1,000권 씩이나 갖고 싶다란 욕망을 가지고 있진 않습니다.1 물론! 1,000권의 (각기 다른) 책을 (마음대로 선택하여) 갖고 싶다란 욕망이 실제로 제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심지어 훨씬 더 많은 책들을 갖고 싶다란 욕망이 제 마음 속에 실재(實在)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란 명제의 실례(實例)가 될 수 없다라는 것 역시 인정할 수 밖엔 없습니다. 그럼 뭔거죠?

"인간이 갖는 구체적인 욕망은 그 양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2"라는 주장에 더해, 결국 '무한'이란 단어는 '욕망의 다양성'을 수식하는 단어일 수 밖에 없으며, 그리하여! 그 욕망의 다양성을 모두, 또한 거의 완벽하게 해결해낼 수 있는 유일한 재화인 '화폐'에 대한 욕망만이 '무한'한 것이다란 결론이 도출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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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모습과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재난도 이주도 전쟁도 제국도 왕도 예언자도 아닌 ①아름다움을 향한 욕망이다. 개개인을 움직이는 이 욕망은 나아가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 ②세계사는 욕망의 역사다.(p17) …… 이 책은 욕망과 소유, 갈망과 탐욕에 대한 이야기다. … 욕망이라는 창을 통해 역사를 들여다보고 ③수요와 희소성의 경제가 만들어 낸 놀라운 결과물을 살펴보려는 시도다(p19) ……이 책은 욕망의 역사를 기술한 보고서다. 또한 욕망과 세계사를 바꾼 능력에 관한 이야기다.(p21)

당연히! 인류의 역사 전체를 '욕망의 역사'라고만은 한정지을 수 없다라 생각합니다...만, 이 책은 예의 (시험을 코앞에 두고 있는 수험생들에게 초단기 찍기 강의를 위해 만들어진 교재마냥) '세계사는 욕망의 역사다'란 저자의 주장에만​ 걸맞는 역사 속 8개의 장면들을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특정 렌즈를 통해서만 세상을 기술하는 것이 매우 위험한 시도라 생각하고, 실제 매우 꺼려하는 타입의 책이기도 합니디만, 이 책에만큼은 그 모든 이전의 생각들을 전부 버려버리게 됩니다. 누군가 만약 (타인과의 지적대화를 위해서건, 스스로의 지적소양을 기르고 싶어서건) '넓고 얕은 지식'을 얻고자 한다면, 지금 당장 서점으로 가 「보석 천 개의 유혹」을 집어들고 계산대에 올려놓으라고, 그리고 다 읽고나면 '넓고 얕은 지식'이란 것이 과연 어떤 것이며, 얼마나 유쾌한 독서를 통해 그것을 내 안에 쌓아갈 수 있는가를 알게 될꺼라 말할 수 있을만큼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암튼!

위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대상은 ① 보석(아름다움), ②역사, 그리고 ③경제(학)으로 나뉠 수 있습니다. 시카고 대학에서 고대사와 물리학을 공부했으며, 현재 보석 회사의 수석 디자이너이고, 한 때 경매회사의 부서장을 지내기도 했었다라는 저자의 이력을 한 치의 오차 없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지요. 그러하기에/이처럼 이 책은 위의 세 측면 모두를 아울러 읽어내어도, 혹은 특정 분야 - 제 경우엔 (배운 게 도둑질 뿐인지라) 유난스레 '경제(학)'이 등장하는 부분 - 에 더 집중해 읽어낸다 하여도 모두 만족하게 될꺼라 확신합니다. 그리고/그렇게 --- 경제(학)이란 측면에 유난스레 집중하여 읽어낸 이의 감상문은 이러...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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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의 가격을 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아름다움이나 크기, 품질이 아니라 희소성이다. … ①보석의 가치는 우리에게 소수만 가지고 있거나 아무도 가지지 못한 물건을 (나는) 가지고 있다는 도취감을 준다는 데 있다.(p28) …… 희소성 효과의 흥미로운 점은 ②실제로 물건이 부족하지 않아도 그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p38) …… (이러한 희소성 효과로 인해) 단순히 어떤 물건을 못 가질 수도 있다는 생각보다 ③내가 못 가진 물건을 다른 사람은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우리의 이성을 더 마비시키는 듯하다.(p39)


 ​【 가상(假像)가치 】

경제학에서의 '가치(價値, value)'는 핵심정리하듯 단순하게 정의해낼 수 없는 개념입니다. 단순하게만 봐도 마르크스 경제학의 '노동가치설'과 신고전파 경제학의 '효용가치설'는 각기 객관적 가치와 주관적 가치라는 면에서 극명하게 대비되고 있지요.3 이 책은 기존 경제학 교과서 - 노동가치, 효용가치 등 - 에서완 다른 시각에선 배울 수 없었던, '가상가치'라는 새로운 시선의 가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비싼 보석은 일반적으로, 옷장 깊은 곳의 보석함에 담겨져 매우 중요한/기념할만한/차려입어야하는 날 등에만 주인의 몸에 걸쳐지지요.4 반면 그리 비싸지 않은 손목시계는 시계줄에 땀이 베는 여름에도 여전히 주인의 손목에 차여질 뿐 아니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주인의 시선을 받습니다. 손목시계는 소중히 간직되어지고 있는 보석을 부러워하지만, 보석 역시 손목시계를 부러워하지요. 1년에 열 번이 채 되지않는 횟수로만 주인에게 사랑을 받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말입니다. 그런데! --- 보석의 객관적 가치(가격)는 물론, 주관적 가치(소중하게 생각하는 주인의 마음)는 손목시계완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높습니다. 이건 노동가치의 측면에서나 효용가치의 시각에서나 모두 동일하지요. 일견 당연한 부등식으로 보여질 수 있으나, 생각해보면 이상할 수도 있습니다. 대체 보석은 왜? 손목시계보다 비교할 수 없을만큼 높은 가치를 부여받는 것일까요?5 


저자는 이를 '가상가치'라는 개념을 통해 명쾌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이 '가상가치'를 이해하기 위해 저자는 우선 '지위적 재화 positional goods'라는 개념을 선보여 줍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지위적 재화… 공급량과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이 얼마나 가지고 싶어 하느냐에 따라 일부 또는 전체 가치가 결정되는 상품이다.(p67) …… 흔히 '지위적 성격 positionality'을 가졌다고 일컬어지는 지위적 재화는 꼭 필요하거나 특별한 기능이 있다기보다는 단순히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싶어 하기 때문에 가치 있는 물건으로 여겨진다. 즉 지위적 재화는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상대적인' 기준으로 가치가 평가되는 상품이다. 보석은 대부분 지위적 재화에 속한다.(p71) ……  다이아몬드는 수가 적어서 '더' 가치 있는 것이 아니다. 수로만 따지면 다이아몬드는 너무 많아서 '아무 가치가 없어야 한다6'. 다이아몬드 반지는 지위적 재화의 전형이다. 다이아몬드 반지가 가진 기능은 남이 가진 다이아몬드와 비교해 자신의 더 우월한 지위를 보여주는 것 외에는 전혀 없다. 다이아몬드의 가치는 그 자체의 가치나 객관적인 기준이 아닌 소유자가 속한 그룹의 다른 사람들이 가진 다이아몬드와 비교했을 때 얼마나 큰지, 얼마나 더 비싼지에 따라서만 결정된다.(p72)  … 우리는 친구가 가진 2캐럿짜리 다이아몬드를 보기 전까지만 내가 가진 1캐럿짜리 다이아몬드에 만족한다. 친구의 다이아몬드를 보는 순간 내가 가진 다이아몬드의 가치는 폭락한다. 지위적 재화의 신기한 작용 가운데 하나는 우리로 하여금 동료집단이나 더 높은 지위의 사람이 가진 물건이 '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것이다.(p179)

결국! (소유자/사용자가) 보석에 대해 평가하는 '가치'란 대부분 (효용가치에서의 주관성보다 훨씬 더 강한) 주관적인 관념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7인데,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독점 회사"(p70)의 신화를 써낸 <드비어스 De Beers >의 창립자 세실 로즈와 2대 경영자 오펜하이머가 어떤 방식으로 이 "보석의 실제 가치는 곧 우리가 상상해낸 가상 가치"(p29)란 점을 이용했었는가를 읽고나면 이내 --- 이 책의 원제(原題)가 왜 "stoned8"인가를 알 수 있게 되며, 그로부터 이 책에 대한 유일한 아쉬움9을 느껴보게 됩니다.  


 ​【 환상 혹은 착각 】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일정의 배냥 여행중 "들렀던") 로마에서 기어코 '진실의 입'이라 불리우는 사자의 입구멍 속에 손을 넣고 찍은 24년 전 제 모습의 사진을 생각해보면, 드라마 속 여배우가 좋아했었다라는 지극히 단순한 이유때문에 6천 명이 떼로 몰려와 한 자리에서 치킨과 맥주를 마시며 "내가 전지현이 된 것 같아요!'라 환호하는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다'라 차마 말할 수 없게 됩니다. (그나마 그들은 전지현이 나온 드라마라도 봤다지만, 전 '진실의 입'이 유명해진 영화조차 못 보고 손을 넣었었으니 말이죠. --;;)  이렇게 --- '추억'이란 것이 단순히 '기억'라 불리는 것과 다른 점은 바로 '기억'에 '특정한 스토리가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듯, 단순히 치맥을 즐긴다라는 행위와 '내가 좋아하는 여배우 전지현이 드라마 속에서 자주 먹었다'라는 특정 스토리가 곁들여져 있을 때의 치맥은 그로부터 느끼게 되는 만족감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달라지게 되지요. 바로 이 사실!을, 지금 2016년이 아닌 1888년에 이용해 낸 사람이 바로 세실 로즈였었던 겁니다.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행복을 돈으로 살 방법이 적어도 두 가지는 있다. 물건을 사면 짧은 시간 동안 행복해질 수 있지만, 이 행복은 빠르게 시들해진다. 반면 '경험'을 사면 조금 더 오래가는 행복을 살 수 있다. …… 단순히 비싼 물건은 금전적인 행복을 잠시 느끼게 해 줄 뿐이다. 하지만 무형의 경험을 유형으로 만들어주는 물건인 기념품은 계속 되새길 수 있는 행복한 감정을 만들어낸다.(pp304-305)

네! 평생 몇 번 펼치지도 않는 결혼식 사진이 그 후회의 반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상품으로 팔리고 있는 이유는, 중국에서도 즐길 수 있는 한국 브랜드의 치킨이 굳이 한국에서의 경험에 넣어져야 하는 것 역시 그것들이 바로 '무형의 경험을 유형으로 만들어주는 기념품'이기 때문인 것이겠지요. 이는 바로! --- 노동가치설이나 효용가치설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의 가치창출을 이야기해주고 있는 겁니다.

만일 한 사람이 어떤 물건을 가지고 싶어 하도록 만들었다면, 그 물건은 그 사람에게 가치 있는 물건이 된 것이다. 그러니 '모든 사람'이 어떤 물건을 가지고 싶어하도록 만들 수 있다면, 모든 사람이 가치를 인정하는 실제로 가치 있는 물건을 만들 수 있다. …… 드비어스는 '욕망'을 만들었다. … (그리고) 이 욕망은 실제로 가치를 만들어냈다.(p103) 

경제학은 (욕망의 다양함이 만들어내는) '수요'와 (욕망의 무한함과 대비되는 '자원의 희소성'이 만들어내는) '공급'이 재화의 시장가치를 결정한다라 말해줍니다. 이 때 만약! --- 특정 재화에 더 이상 '희소성'이 적용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였다면, 즉 다이아몬드의 공급이 (그 수요에 비해) 너무나 많아졌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드비어스의 창립자인) 세실 로즈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이아몬드를 희귀하다고 착각하게 하는"(p73) 방법으로, 2대 경영자인 오펜하이머는 한 발 더 나아가 사람들에게 "다이아몬드가 꼭 '필요하다'는 환상"(p76)을 가지게 함으로써, 다이아몬드를 "가치가 영원히 떨어지지 않는 상품"(p75)로 만들어내었습니다. 이처럼 --- "사실 엄청나게 압축된 석탄의 한 종류일 뿐"(p77)인 다이아몬드에 일종의 '환상' (예를 들어, "A Diamond is Forever!'10라는 문구가 새겨진 케이스에 담겨 있는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는 약혼반지)을 결부시킴으로써, 드비어스는 다이아몬드라는 보석을 "다이아몬드라는 개념"(p79)으로 변형시켜 변치않는 가치를 창출해 내었다라 저자는 설명해주고 있습니다.11 

    

​다이아몬드 반지는 모든 사람이 언젠가 사거나 받기를 '고대하는' 단 하나의 보석이다. …… 이런 사고는 누군가 우리에게 '심은' 것일 뿐 우리가 스스로 해낸 생각은 아니다. …… 사실 다이아몬드가 약혼반지라는 개념은 드비어스가 … 지난 80년 동안 신중하게 가꿔온 의도적인 마케팅 전략에 불과하다. …… 드비어스는 바로 '우리'를 조종했다.(p81) …… 세계에서 가장 단단한 것은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우리의 생각이다.(p100)

​그렇다면 정녕!우리는 이처럼 '조종'당하고 '심어진' 가치만을 좇고 있는, 말하자면 '수동적인 욕망'만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과연? 



【 배고픔 그리고 배아픔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이렇지 않나. 자기 행복을 아끼다 못해 어디 깊은 곳에 꽁꽁 싸 놓지. 그리고 자기 행복이 아닌 남의 불행을 원동력 삼아 하루하루를 버티는 거야." - 장강명 著, 「한국이 싫어서」중  pp185-186.

작가 장강명은 분명 오해하고 있는 겁니다. 이건 한국 사람만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며, 근자에 나타난 현대적 특성도 아닌 그냥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선천적으로 지니고 태어난 저울을 이용해 세상을 판단한다. 이 저울의 균형이 흐트러지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지나치게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히 신기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잘못됐다는 인상을 준다.(p211)

무언가가 도덕적으로 잘못되었다라는 판단은 단순히 판단의 차원에서만 멈추지 않습니다. (저자는 '프랑스 혁명'의 발발 원인을 이것으로 설명하고 있기도 합니다.12'배고픔'이 해결되고 나니 '배아픔'을 느낀다라 말할 수도 있겠으나, 분명! 배고픔과 배아픔이 순차적이기만 한 감정이 아닌, 그 반대의 순서로 발생되어질 수도 있는 감정이라는 것이지요.13 그리고 그 결과는 바로 --- "언제나 그렇듯 사람들의 인식이 모든 것을 결정했다."(p302)14


이처럼 '배고픔'과 '배아픔'을 이야기하다보면 자연스레 그리고 당연히 마르크스 경제학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 책에서 보여지는 마르크스 경제학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최소한 저자가 이 책에서 내내 보여내고 있는 관점에서 보자면 지극히 합리적이며 날카롭기도 하지요. --- "더 공평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이론을 연구했"(p317)던 마르크스의 경제학은 이론의 구조적인 면에서도 일단, "'어떻게'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을지보다, '왜' 그런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는지에 더 관심이 많았다"(p317)라는 점에서 근본적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라고,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점은 바로!

 

마르스크 이론의 핵심 주장은  가난이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옳은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은 다이아몬드 같은 지위적 사치재에만 들어맞을 뿐, 난방 같은 비지위적 필수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없으면, 즉 옆 사람보다 가난한 사람이 없으면 모두 행복할 거라고 믿었다. 아무도 상대적인 가난을 겪지 않으려면, 즉 아무도 '가난하지 느끼지 않으려면' 다른 사람들보다 돈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없어야 했다. 즉 모두가 완전히 같은 양의 재산을 가져야만 했다. 마르크스는 이런 사회를 단일 계급 사회라고 불렀다. 그리고 단일계급사회를 달성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유재산의 철폐라고 믿었다. 마르크스의 유토피아에 사는 사람들은 사유재산을 소유할 수 없었다. …… 사업체를 운영하고 노동 생산물을 만들어낼 사람은 필요했지만, 일단 노동이 끝나고 나면 생산물을 모두 정부가 소유한 다음 똑같이 분배해야 했다. 이 이론은 부(富)가 한 명이 얻으면 한 명이 잃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는 것을 간과했다. 가치는 증가할 수 있다. 일부 지식재산권처럼 아무런 물리적인 투입이 없어도 가치가 생겨나는 경우도 있고 나무 조각으로 의자를 만들 때처럼 노동을 통해 가치가 증가할 때도 있다. 이는 자본주의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사실이다. 불행하게도 마르크스는 상대적 빈곤 이론을 펴면서 너무 적게 가진 사람이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옆 사람이 '너무 많이' 가진 것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의 이론은 결국 악의적 부러움을 '합리화'하는 것이었다. 악의적 부러움의 결과는 당연히 파괴적일 수밖게 없었다.(p318)

저자의 이 주장을 평가하거나 반박할 만한 마르크스 경제학에 대한 지식이 저에게는 없기에, 단정적인 무언가를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각주3>에서 보여지고 있는 '현실적이지 않은'의 의미에서) 현 세기를 설명해내는 데 있어서 '노동가치설'이 지닐 수 밖게 없는 한계만큼은 명확하게 설명해주고 있다라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 '보석'으로 대변되고 있는 '지위적 재화'의 가치가 창출되는 과정은 분명, '노동가치설'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며15, "악의 없는 부러움과 악의적 부러움이 함께 피운 독이 든 꽃"(p325)인 공산주의 체제가 '실패'라는 현실적 평가를 받게 된 근본적 원인이 "지위적 가치의 기능이 결여됐기 때문"(p328)이라는 저자의 결론에는 (최소한 이 책을 줄줄 읽어가다보면) 반박할 수 없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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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공언'(?)했듯, 오로지 경제학의 관점에서만 써본 이 책에 대한 감상문이었습니다만, 당연히! 이 책은 나머지 두 개의 측면에서도 충분히 유쾌하고 유익한 지식을 선사해주고 있습니다. "유럽인이 본질적으로 더 우월하므로 남북 아메리카 원주민 같은 열등한 인종을 지배하고 노예로 삼을 수 있는 '자연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p127)던 콜롬버스가 아메리카에서 기념되어지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과정도, 마리 앙투아네트를 "보호자 없이 신용카드만 손에 쥔 불행한 십대 소녀"(p170)로 표현하며, 그녀에 대한 기존의 잘못된 인식들을 알려주는 부분도, 또한 대영제국(Great Britain)의 기원이 "자매 사이에 벌어진 평범한 집안싸움에서 시작됐다"(p225)라는 걸 알아가는 과정은 그저 '유쾌하고 유익하다'라는 표현만으로는 분명 모든 것을 담아내지 못한다라 생각합니다.

​내가 세계사에서 가장 재미있게 여기는 점은 그 모든 사건이 실제로 발생했다는 것이다. 기이하기 짝이 없는 그 모든 일이 당신과 내가 살아 있는 것처럼 엄연한 현실로 존재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신기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렇게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은 꾸며 낸 이야기보다 더 흥미로워서 절로 경탄을 자아낸다.

- 에른스트 H. 곰브리치 著, 「곰브리치 세계사」중. 비룡소 刊, 2010. 

이 책을 검색해보니, 의외로 이에 대한 감상문이 거의 없더군요. 이토록 '흥미로워서 절로 경탄을 자아'내는 책이 그토록 읽혀지지 않았다라는 점에 외려 '절로 경탄을 자아'내게 됩니다.  이 책은 진심! (서점 <미스터 버티고> 사장님의 표현을 빌어)  "이런 책은 정말로 잘 팔려야 한다"라 말하고 싶고,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세종대왕님스런 표현을 써보자면) "이런 책은 정말로 널리 읽혀야 한다"라 권하고 싶네요. 머지않아 꼭! 저와는 다른 시선에서 읽어내고 쓴 다른 분의 감상문을 읽어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내가 아는' 모든 이들에게 반드시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지금 이 블로그에 와있는 당신에게도 여하한 구실로라도 '나를 아는' 이란 형용사를 붙여 꼭 한번 읽어보시라 말하고 싶은 책들의 제목 앞에 ★표시를 붙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표시이겠지만 가끔은... 타인의 주관을 한번쯤 믿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더군요.  


 

  1. 경제학은 이에 대해 '한계 효용은 체감한다'라는 이론으로 친절히 설명해주고 있지요.
  2. 홍기빈 著,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책세상 刊, 2001.
  3. 마르크스 경제학자인 류동민 교수조차 '군대 훈련 중에 피는 한 개비 담배'의 가치를 과연 노동가치설이 온전히 설명해낼 수 있을까,란 의구심을 한때 가졌었다 말하기도 했듯, '노동가치설'이 (2016년에서의) 현실적이지 않은 면이 분명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 '노동가치설'은 반드시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또 다른 의미의) '현실적 필요성'을 가지고 있다라 생각합니다.
  4. "보석의 가장 본질적인 기능은 빛나고 눈에 띄는 외양으로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끌고 이를 오랫동안 붙잡아두는 데 있다. 보석은 아름다움을 더해주기도 하고 부와 권력을 내보이기도 한다."(pp408-409)
  5. 물론, 경제학 교과서에서도 '물과 다이아몬드의 역설'이란 제목으로 이에 대해 설명해주고는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그 원인은 '희소성의 차이'때문이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 "1872년부터 남아프리카에서 '매년' 백만 캐럿의 다이몬드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 다이아몬드는 흔해졌다."(pp72-73)
  6. 여기서 유의할 점은, 저자가 이 책에서 오로지 소유자/사용자의 관점만을 고려하는 '가상가치'의 측면에서만 '가치'를 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 다이아몬드를 생산하는 데 있어, 아동 노동이라든가 여타 비인간적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라는 점 등은 고려하고 있지 않지요. 그런 점을 들어 이 책을 비난하는 의견에 전 동의할 수 없습니다. 아이폰을 만지작 거리고, 호텔 일식당에서 근사한 저녁을 먹을 때마다 그 기저에 깔려 있는 '(폭스콘과 어부들의) 노동'을 매번 떠올려야 한다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백과사전도 아니며, 인권보고서는 더더욱 아니니까요.
  7. "가치는 물론 변치 않는 수요공급 법칙에 따라 정해지지만, 어떤 물건이 희소하다는 믿음에 의해 일그러진 우리의 가치 관념에도 크게 영향받는다."(p64) …… "예나 지금이나 보석이 가진 가치의 90퍼센트는 사람이 만들어낸 가상 가치다."(p90)
  8. "If someone is stoned, ①they are very drunk. ② heavily affected by drugs." - 「Collins Cobuild English Language Dictionary」
  9.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과 비교해, 「보석 천 개의 유혹」이란 국문 제목은 단지 '아쉽다'라 표현하는 것조차 아쉬울 정도로 잘못 붙여졌다라 생각합니다.
  10. 최근엔 까르띠에 역시 'Diamonds are a girl's best friend'란 문구를 사용해 광고를 하고 있더군요.
  11. 사실 이게 막 새롭고 한 설명은 아니지요. 우리가 'Starbucks'에서 마시는 것이 단순한 커피가 아닌 '스타벅스 커피'이 듯. 허나 무서운 건 드비어스가 이러한 마케팅을 펼치기 시작했던 것이 1888년이었다라는 사실.
  12. "내가 '따라잡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 때, 사람들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흉내 내던 귀족들처럼 행동한다. … 하지만 상대방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 확실치 않거나 아예 경쟁할 수 없을 만큼 격차가 벌어지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더 악랄한 방법을 써서 수준을 맞추고자 한다. 다른 사람이 가진 유리한 위치를 빼앗고자 하는 악의적 부러움이 생기는 것이다. 내가 갖는 것만큼 좋진 않겠지만, 어쨌든 수준이 같아지는 건 맞다."(p205)
  13. 저자는 이 책에서 '배고픔'을 자신에게는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있는 것을 순수하게 가지고 싶어하는 마음인 '악의 없는 부러움'으로, '배아픔'을 자기도 가지고 싶다기보다는 상대방이 잃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마음인 '악의적 부러움'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pp203-204)
  14. "도둑질과 보석을 가지려는 욕망, 그에 따른 저주에 대한 이야기가 흔한 이유는 과도하게 집중된 부를 볼 때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반영해주기 때문이다. 한 손에 쥘 수 있는 큰 재산인 보석이야말로 과도하게 쏠린 부의 상징이다. 저주받은 다이아몬드에 대한 이야기는 권선징악을 다루기 때문에 모두 비슷한 전개를 따를 수밖ㅇ에 없다. 사람들은 그토록 아름답고 값진 물건을 한 사람이 배타적으로 소유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증거는 없지만, 엄청난 부를 소유한 대가로 불가사의한 위험이 따라올 거라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이아몬드에 얽힌 저주를 지어내서라도 불공평한 부의 분배를 설명하고자 한다."(pp218-219)
  15. '효용가치설' 역시 한계가 있긴 하나, 해석에 따라선 일정 부분을 설명해낼 수도 있다라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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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05-23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에서 이끌려서 읽고 싶은 책으로 찜하였다가 좋은 리뷰를 만나게 되어 횡재한 기분이 드는군요. 암튼. 매력적인 책인가 봐요! ^^

가살가죽 2016-05-24 19:12   좋아요 0 | URL
누구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