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마지막 밤 민음사 모던 클래식 33
로랑 고데 지음, 이현희 옮김 / 민음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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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억을 지워주는 복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미나토 가나에 作, 「고백」에 나오는 주인공 유코의 독백입니다. 당시 저는 이 작품을 '성공한 복수라해도 그것이 아픈 기억 자체를 없애줄 수는 없다'라는 메세지로 읽었더랬고, 그러한 이해는 이후 '복수'에 관한 여타 소설들을 읽어본 후인 지금에도 저에게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 <그가 내 아이를 죽였고, 그래서 나도 그를 죽였다>라는 도식이 지니고 있는 '사형(私刑)'에 관한 옳고 그름에 대한 논쟁을 떠나, '복수'라는 행위는 어쨌든!!! 감정의 분풀이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니까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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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그렇게 화가 난 채로 헤어진 것이다. …… 그리하여 죽음의 순간으로 몰아넣은 그의 분노를 도대체 무엇이 정당화해 줄 수 있을까? …… 인도 위에서든 구급차 안에서든 아들과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었더라면, 아빠가 여기 있고 너를 무척 사랑한다고, 아빠가 화냈던 건 이미 다 잊었고 아무 일도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었더라면. 피포는 침묵 속에서, 분노하는 아버지 곁에서 죽었다.(pp56-57)  

아들의 손을 끌어잡고, 학교에 늦지않게 데려다 주기 위해, 조금만 천천히/쉬었다 가자는 아이의 애원을 무시한 채 발걸음을 재촉했던 마테오는 자신의 재촉으로 인해/탓에 '그 시각, 그 장소'에 도달했었고, 마침 '그 시각, 그 장소'에서 벌어졌었던 갱단들간의 총격전에 의해 아들 피포를 잃게 됩니다. 이후 마테오의 아내 줄리아나는 아들을 죽인 자에 대한 직접적인 '복수'를 마테오에게 원했더랬습니다만, 마테오는 그저 멍한 하루하루를 보낼 뿐이었었죠.2 이런 마테오의 모습에 줄리아나는 '그들에게 닥친 재앙에 대해 그가 너무 빨리 체념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p70)를 느끼게 되었고, 결국 마테오를 떠나고 맙니다.


"내 아들을 돌려줘, 마테오. 내놓으라고.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적어도 내 아들을 죽인 놈이라도 데려오란 말이야!"(p71) …… "당신이 돌아오면 피로 얼룩진 옷을 내가 세탁해 줄게."(p84)

줄리아나가 그토록 '직접적 복수'에 집착했었던 이유를 독자는 알 수 없으나,3  마테오는 그 복수가 최소한 '두 사람에게 아들을 돌려주지는 않겠지만, 어쩌면 다시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p72)라는 생각에 기어이 권총을 들고 죽은 아들의 복수를 하러 집을 나섭니다. 하지만/헌데!!!

'자신의 아이가 누군가에 의해 죽었다'와 같은 극단적 상황을 제외한, 그저 일반적인 '복수'(의 행위)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본다면, 「고백」에서 보여졌던 주인공 유코의 독백은, 비록 가슴은 아프지만 '복수'란 것이 내포하고 있는 (논리적) 한계로서의 허망함, 즉! 복수를 완결했다 하여 내게서 떠난 사람/무엇이 다시 되돌아오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말이 될 겁니다. 여기서!!! --- 죽은 피포의 아버지인 마테오는 (결과적으로는 어쨌든/어차피 단순한 감정적 분풀이에 그칠 수 밖에 없는) '복수'가 아닌, 사건의 근본적 해결을 시도하기로 마음을 바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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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로랑 고데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찾아낸 모티프를 바탕으로 소설적 허구 세계를 구축하는 정통 서사만을 고집'(p318)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이 작품 「세상의 마지막 밤」 역시 '독사에게 발목을 물려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찾아 지옥으로 떠난 그리스 신화 최고의 시인이자 악인(樂人) 오르페우스의 신화를 모티프로 했다'(p318)는군요. 그렇게...

마테오는 (어떠어떠한 과정을 거쳐) 지옥으로 통하는 현실에 문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단순한 '복수'가 아닌 '사건의 근본적 해결'이 될) 아들 피포를 다시 이승으로 데려오기 위해 그 지옥의 문으로 직접 들어가기로 결심합니다.


 

"피포를 나에게 데려와." 그녀가 말했더랬다. 그는 분명히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더랬다. 그곳으로 내려갈 것. 아이를 만나 데려올 것. 아니면 적어도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다시 한 번 꼭 끌어안아 줄 것.(p187)

절대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어긴 오르페우스는 또다시 아내를 잃게 된다라 말하고 있는 신화와는 약간 다르게, 이 작품에서는 마테오가 아들 피포를 이승으로 되돌려보내는 대가로 자신이 지옥에 남아야 한다는 선택을 강요받지요. (사뭇... 나라도 당연히 그렇게 했었을꺼야!란 말을 쉽게 나오지 않게 만드는 설정의 부정(父情)입니다. --;;)


지옥을 탈출하는 데 성공한 이는 태초 이래 아무도 없었다.(p219) …… "(지옥의) 문은 너를 다시 내보내 주지 않을 것이다. 네가 영혼 하나를 가져왔으니 문은 그 대가로 생명을 요구한다."(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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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으로는 어떤 용어를 써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상당히 기피하는/좋아하지 않는 장르인 한 편의 '판타지 소설'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 이 소설은 결국! --- 일상적 의미의 '복수'라는 것이 마테오가 아닌 다시 살아돌아온 그의 아들 피포에 의해 훗날 완성이 되긴 합니다만, 그 복수 역시 '마테오-줄리아나-피포'로 이루어져있던 그 가정의 행복을 되돌려주지 못했으며, 그 뿐 아니라 더 피폐해진 결과만을 낳고 있다라는 걸 보여주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저의 개인적 취향이 분명하게 작용된 탓이겠지만) 사실 읽어내는 것 자체마저도 적잖이 지루했었었으며,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복수'라는 것의 의미 또한 별반 새로울 것이 없었었던, 그렇다고 작가의 표현력이 매력적이지도 못했던, 그냥 밍밍...한 작품일 뿐이었다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설에서 보여지고 있는 부성(父性)과 모성(母性)의 차이를 일반화시켜 받아들이기는 분명 무리겠지만, 저 역시 한 아들의 아버지이기에 (억지로라도) 저의 감정을 이입시켜본 채 읽었었던 다음의 구절만이 그나마 가슴 찡한 무엇을 안겨주었었다랄까요? 결국엔 그저... 이 소설엔, 저의 독해로는 잡아내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는가 보다라 자위/체념할 수 밖엔 없을 듯 합니다. --;;

얼굴을 맞댄 그들은 이제 두 번 다시는 서로의 곁에서 함께 살아가고 함께 늙어 갈 기쁨을 얻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한 사람이 언제나 부족할 것이고 그 부재더불어 살아가야 할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 그들은 그러므로 고작 육 년만 함께한 셈이었다. 서로에게 매료되었던, 서로 알고 지냈던, 서로 친해졌던, 서로 배움을 주고받았던 육 년, 육 년이라는 짧은 삶, 그리고 그 나머지, 나머지 모든 것은 빼앗겼다.(pp236-237)

 

 

 



 

  1. 그러하기에, 일단 하려고 맘먹었다면 '복수' 자체는 통쾌해야한다라 생각하는 겁니다.
  2. 마테오가 왜! 직접적 복수에 머뭇거렸었는지 저로서는 온전히 이해되지 않았습니다만, 결과적으로만 보자면 그가 "모든 기억을 지워주는 복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라 표현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3. 이런 경우, 복수하고 싶다는 마음이야 모든 부모들에게 다 생겨나는 것이겠지만, 왜! 다른 방법이 아닌 꼭 '직접적 복수'를 원했었던 걸까라는 의문에 대한 해답이 이끌어내어지는 과정을, 제 독해의 능력 이내에서는, 이 작품 속에서 찾아낼 수 없었다라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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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로 성장하는 아이 사춘기로 어긋나는 아이 - 아이의 사춘기가 두렵고 불안한 엄마를 위한 고민해결서
강금주 지음 / 북클라우드 / 201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중2병의 비밀」을 읽고 나서, 제가 그토록 그 책을 마음에 들어했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바로!!! --- 그 책의 저자와 저의 감성적 코드가 여러 면에서 참 잘 맞았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더군요. 이왕 발 내디딘 김에... 라며, (역시나 꽤나 오랫동안 책장에서 묵혀져 있었던) 또 한 권의 사춘기 청소년에 관한 책을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바로 이 책, 「사춘기로 성장하는 아이, 사춘기로 어긋나는 아이 : 아이의 사춘기가 두렵고 불안한 엄마를 위한 고민해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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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트 로데오(Goat Rodeo)는 조종사들의 용어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잘못되어 가고 있는 비상사태다. …… 슬픈 현실이지만, 오늘날 우리 가정도 고트 로데오다. …… 고트 로데오에 직면한 비행기를 구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사람뿐이다. 관제탑에서는 방향 제시 정도만 해줄 수 있을 뿐, 끝까지 조종간을 붙잡고 상황에 따라 실시간 결단을 내리고 움직여야 하는 단 한 사람은, 바로 그 비행기를 조종하고 있는 파일럿이다. 아이를 도울 수 있는 사람도 부모뿐이다.(pp4-7)   

<십대들의 쪽지>의 발행인인 저자가 보고 있는, 현재 우리나라의 십대를 둔 가정은 이처럼 '비상사태'입니다. '에이 설마!'란 반응이 즉시 튀어올랐던 저의 생각을 마치 읽고 있기라도 하듯, 저자는 '아이들의 문제는 많은 부분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발생'(p29)되기 때문에 가정이라는 특별한 집단의 구성원인 가족들에게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라 말해주고 있지요. --- "부모는 아이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못한 경우가 훨씬 더 많다."(p30)

요즘 아이들은, '접하는 정보의 양과 질, 그리고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p23)에 우리 부모 세대때보다 훨씬 더 빨리 사춘기를 맞이하게 된다고 합니다. 게다가 행동의 기준이 '해야 할 일'과 '옳은 일'에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재미있는 일', 그러니까 모든 선택의 기준이 철저하게 자신의 기분과 감정에 맞춰져 있다는 점 또한 우리 부모 세대의 사춘기와는 다른 점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아무리 '시대'와 '세대'가 바뀌었다 해도, 아이들은 아이들이죠. 저자는 '아이는 부모가 이끄는 대로 자라난다'(p105)라는 점을 강조하며 아이의 성장, 특히 '사춘기' 즈음의 교육에 있어 부모의 역할을 매우 중요시1하고 있습니다. --- ② '아이들은 부모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자란다'(p67)이란, 쉽게 말하자면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라는 거지요. 이 두 가지의 인용문에 대한 저의 생각/느낌을 간단히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자녀 앞에서 보여지는/보여주는 부모의 모든 언행들, 그리고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속뜻이 바로 자녀의 모습을 shaping 해간다라는 것이니, 자녀의 현재 모습이 잘못되었다라 생각한다면 그건 ('전적으로'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다해도) 거의 대부분이 그것을 잘못되었다라 생각하고 있는 부모의 책임이 되는 겁니다. 이를 쉬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이의 삐뚤어짐을 모두 학교나 교우관계 등의 탓으로 돌려버린다라면, 이는 부모 스스로 '면책의 특권'을 누리려 하는 것 밖엔 안되는 것이겠지요. --- 아직!까지는, 종원군에게서 소위 말하는 삐뚤어짐을 발견할 수는 없었으며, 그것이 예의 부모인 저희가 가족이라는 울타리 밖에서의 종원군의 모습을 알지 못함으로부터 오는 착각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다만! 그럴 수도 있다라는 마음의 준비만은 해야겠네요. 

'아이들은 부모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자란다'(p67)라는 말은 문득 '아이는 부모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자크 라캉의 말을 떠올리게도 해줍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다'가 아닌, '부모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나 또한 그것을 원한다'라는 도식이 ​아이의 머리 속에 자리잡게 된다라는 것이지요. 이는 아이의 잘못들이 부모의 책임이라는 말과는 또 다른 각도에서 자녀교육에 있어서 부모의 역할을 생각해보게 해줍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현재 교육현실을 대입시켜 보자면, 라캉의 말에는 '어쩔 수 없이!'라는 말이 추가되어야 할 것 같네요. (사실... 이 '어쩔 수 없이'는 아이 뿐 아니라 부모에게도 또한 적용된다 생각합니다.)


(저 또한 '아니그러하다'라 말할 수는 없는) 아이에게 지금의 모습/성취보다 더 높은 목표를 제시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가 자극을 받아 더 높은 곳에 이르게 될 수 있는 일종의 동기 부여다라는 부모의 생각은 전적으로 부모의 입장에서만 본 시각이며, '부모의 욕망을 어쩔 수 없이 욕망하게 된'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좌절의 기회가 될 확률이 훨씬 더 높다라 저자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부모의 그런 (교육적으로는 잘못된) 동기 부여가 없어도, 아이들에게는 본능적으로 '더 잘하고 싶은 욕구'가 내재되어 있으며, 부모가 정작 해야할 일은 그러한 아이의 욕구가 현실화될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것에 그쳐야 한다2라는 것이지요. 


아이는 오늘 가장 예쁘고, 오늘 보여주는 모습이 아이의 진짜 모습이다. 비록 그 모습이 자신이 꿈꾸고 계획하는 아이의 모습이 아니라도 인정해야 한다. 아이의 미래 모습만 꿈꾸지 말고, 아이의 오늘 모습을 보고 즐겨야 한다. …… 지금 아이의 모습도 몇 년 후에 돌이켜보면 너무 아름답고 총명한 모습일지 모른다. …… 아이는 부모의 인정과 격려를 통해 긍정적인 모습으로 성장해 가는 법이다.(pp 152-153)  

저자가 말하고 있는 여기까지를 읽어보면 뭔가 상황이 심하게 꼬이고 꼬여있는 듯 느껴지기만 합니다. 저자 또한 이를 인정하고 있지요. 헌데, 이렇게 꼬인 듯 보이는 이유는 (저자가 정리를 잘 해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십대 아이의 문제 자체에 정해진 규칙과 답이 없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결국!!! --- 자신의 자녀이기 때문에, 사춘기 자녀의 모든 문제의 해결은 부모에게 달려 있을 수 밖엔 없습니다. 이 책은 이렇게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돌아보는 것'에 핵심적인 포인트를 두고 쓰여져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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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화의 중요성 : "오늘날 십대 문제가 제아무리 복잡해 보여도 해법은 단순하다. 결국 아이와의 대화다."(p221) >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돌아보는 것' --- 결국엔 대화입니다. 저자는 '아이의 말을 잘 들어주기만해도 사춘기 아이 문제의 80%는 해결된다'(p16)라 말하고 있지요. 헌데!!! (제 생각에 특히나 저희처럼 첫째이자 하나 뿐인 아이들 둔) 부모들은 그들 역시 '부모됨'이라는 역할을 난생 처음으로 겪어가고 있기에, 어떻게 아이의 말을 들어주어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저자가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자신들이 듣고자 하는 대답을 이끌어내기 위한 질문을 하고, 끝내 그 '듣고자 했던 대답'을 들어주는 것을 '아이와의 대화'라 착각하게 되지요. 저자는 이에 대해, 부모에게도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말해주고 있습니다. --- 애초부터 답이 없는 것이 사춘기 십대의 문제이므로, 부모와 자녀간의 '대화'라는 기본으로부터 그 해법을 찾아나가야 하며, 적어도 그 '대화'의 방법/과정에는 답이 있다라는 것이지요.


아이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아이가 말하는 동안 나의 관심과 마음을 온전히 집중한다는 것이다. …… 부모가  말을 많이 하면 할수록 아이의 마음에 어떤 생각이 꿈틀대고 있는지, 목표가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힘들어 하는지 들을 수 없다. 아이가 이렇게 바뀌었으면 좋겠다, 아이가 이렇게 자랐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이 있다면 우선 아이의 말부터 들어야 한다. …… 아이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먼저 아이의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난 너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너를 판단하기 위해서 너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너를 돕고 싶어서 관심을 갖는 거야'라는 믿음을 아이에게 줘야 한다.(pp16-18) …… 십대는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자신도 자기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본인들도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든 게 답답하다. 아이들은 자기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듣고 이해해주며, 그것에서 한 걸음 나아가 방향 제시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p56)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부모와 자식간의 대화의 FM은 이러합니다... 만! 현실에서의 부모들은 '아이가 뭔가 잘못한 일이 있을 때'(p55)에야 비로소 대화의 시간을 갖지요. 대화가 시작되는 원인이 이러하니, 대화의 내용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대화를 하자고 아이를 앉혀놓고는 일단 화부터 내기 마련이지요. 그러고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비난과 지적과 질타를 아이에게 한참을 쏟아붓고 나서 "너도 할 말이 있으면 해봐"라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애가 할 말이 있겠으며, 설혹 할 말이 있다해도 말하고나 싶겠습니까? --- '아이와 대화를 한다는 것은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뜻이다. 아이가 문제를 보일 때는 먼저 아이에게 왜 그랬는지 물어봐야 한다. …… 그 다음이 부모 차례다. 따끔하게 가르쳐야 할 것이 있으면 아이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훈에 마지막에 이야기를 하는 게 좋다.'(p123) --- 하지만 종원군의 부모인 저희 부부 역시 지적/훈육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아이의 해명을 듣는 것이 제대로 된 순서라 생각해 왔었습니다. 심지어 때때로는 아이의 해명이라는 단계를 생략시켜 버렸던 경우도 있었었지요. --;;


저자는 (위와 같은 순서의 문제 뿐 아니라) 아이를 훈육하는 말을 할 때에도 또한 ​부모가 반드시 명심해야할 것이 있음을 알려줍니다.

비난이나 판단하는 말은 아이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마음을 꼭 닫게 할 뿐이다.(p77)

똑같은 잘못이라도, 그것이 옆집 아이에 의해 저질러 졌다면 차마 하지 못할 비난 어린 질타를, 그것이 내 아이에 의해 저질러진 경우엔 내가 내 아이의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서슴없이 내 아이에게 퍼붓곤 합니다.3 이것도 문제이지만, 그러면서도 부모가 그러한 행동에 일말의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다라는 게 더 큰 문제라 저자는 지적해주고 있습니다. --- 맞아요! 제가 그랬었거든요. --;;

​아이의 잘못이 '실수나 실패'로부터 기인된 것이라면 과감하게 그러한 실수나 실패조차 축하해주어야 한다라고 이 책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 '우리나라 아이들의 큰 비극은 실수하거나 실패할 수 있는 기회조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p107)이라 지적하고도 있습니다만, 그러한 기회가 어쩌다 주어졌었더라도 혹여라도 실패로 귀결되는 결과를 보이게 될 때, 부모로부터 쏟아질 비난과 질책에 미리! 아이들이 겁을 먹고 있다는 거지요. --- (이제라도 이걸 알았다면) 어렸을 때의 경험으로부터 이미 학습되어 있는 실패/실수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시켜줄 수 있는 사람 역시 부모 밖에는 없습니다. : '부모는 그럴 때를 위해 존재한다. 아이과 끝까지 달려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아이가 출발선에서 너무 오랫동안 머뭇거리지 않도록, 신호탄에 맞춰 출발선을 뛰쳐나갈 수 있도록 엉덩이를 때려줄 수는 있다.(p111) …… 아이들은 실수나 실패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십대는 실패할 권리가 있다. 백 번, 이백 번 실패하고 실수해도 괜찮다. 그리고 그럴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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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사춘기 십대'의 문제에 있어서 너무 부모의 책임만 이야기하는 것 같죠? --- 제 생각엔 부모의 책임이 너무도 큰데, 그에 비해 부모들이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저자가 이처럼 그 부분에 대해 강조를 해놓은 것이라 봅니다. 하지만!!! 저자는 아이들에게 주어져야 할 당연한 훈육/교육에 대해서도 적잖은 지면을 할해하고 있으며, 보는 각도에 따라선 이 부분이 진정! 저자가 이 책을 통해 하고자 했던 말이 아닐까라 이해될 수도 있을 듯 하지요.



<훈육/제재의 중요성 : "적절한 체벌은 용서보다 강하다."(p139) >

아이들은 애정으로 자라지 규칙으로 자라지 않으며, 금기에 의해 도덕성이 육성되지 않는다라는 것, 커갈수록 자율성을 더 주어야지 통제가 더 커져서는 안 된다.

「중2병의 비밀」에 나왔던 구절입니다. 정서적으로야 충분히 감동적이며, 최소한 이 구절을 읽는 순간에만큼은 자동모드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었더랬죠. 하지만! 이내 현실 속 내 아들의 모습을 보자면 (다시 한 번 더) 자동모드로 '공부할 땐 책상위 정리 먼저 하고 시작해라 / 공부할 땐 항상 바른 자세로 앉아서 해라 / 주일날 TV 프로그램은 무엇이든 단 하나만 볼 수 있다 / 주중엔 집에 들어오는 순간 핸드폰은 엄마에게 반납해라 …… '등등의 규칙과 금기과 통제가 없이는 당췌 이 녀석의 중학생 생활이 제대로 굴러가지 못할 것 같다는 강한! 압박을 받게 됩니다. 아!!! 대체 부모는 어찌해야하는 거냐구요!!!

물론! 「중2병의 비밀」의 저자와 이 책의 저자가 완전히 다른 말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 책의 저자 역시,「중2병의 비밀」 저자가 언급했었던 '헛똑똑이 부모 증후군'과 유사한 언급을 하고 있거든요.


지나치게 엄격한 부모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은 부모의 감정과 자존심, 혹은 교육관에 빠져 아이의 감정을 무시하기 쉽다는 점이다. 아이에게 엄격하게 요구하는 것들이 부모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것은 아닌지 늘 되돌아봐야 한다. 엄격한 규칙을 정하고 요구하는 것은 아이에게 꼭 필요한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결코 부모가 안심하거나 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엄격한 규칙이 더 교육적이라는 공식은 없다. 엄격함과 유연함이 균형을 이뤄야 하고, 엄격함 속에서도 아이의 감정 흐름을 살필 줄 아는 섬세함이 있어야 한다. …… 관대함이 없는 엄격함은 아무런 혜택이 없다. 엄격함의 폐해는 규칙 없는 관대함과 다를 바가 없다.(p85) 

그러함... 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저자는 자녀에게 엄격함이 반드시 필요하다라는 걸 한층 더 강조하여 말해주고 있습니다. --- 저자는 '아이의 인격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알아서 절제하고 선택하는 자유를 주는 부모는 열린 부모가 아니다'(p81)라 단언하고 있지요. 그건 교육적 선택이 아니라 무책임한 방임이며, 훗날 그러한 방임으로 초래된 대가는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너무도 크다는 겁니다.

 

아이를 정말 사랑한다면 옳고 그름을 가르쳐야 한다. 넘어서는 안 되는 선과 손해를 보더라도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가르쳐야 한다. 그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 나는 혼내고 가르치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심각한 아동 학대라고 생각한다. 그건 부모가 편하자고 아이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 가르쳐야 할 때 가르치지 않는 것은 아이 인생에 부모가 모르고 저지르는 범죄행위와도 같다.(pp 97-98)

시각에 따라서는 이 책의 기조를 '엄격한 훈육'으로 볼 수도 있다라 언급했었었지요. --- 저자의 주장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 보자면 요즘의 십대들에게는 '권위에 대한 순종을 배울 기회가 없'(p61)었다라는 것이고, 저 개인적으로는 이하 펼쳐지는 교육방식에 전적인 공감을 했더랬습니다. ('말 안듣는 애들은 일단 패놓고 가르치기 시작해야 한다'식의 교육을 받았었던 저이기에, 은연중에 저에게도 이러한 방식에 대한 선호가 내재되어 있을 수도 있... --;;) 


저자의 이 주장을 제가 편집하여 설명하는 것보다는 직접적인 서술들을 소개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고, 혹여라도 생길 지 모를 '의미의 왜곡'을 막아준다라 생각하기에, 이하에선 이 책에 나와 있는 관련 주장들을 그저 인용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날!... 로 먹고, 뭐 그러려는 건 절대 아니에요.^^;;)


아이는 도자기와 같다. 부모가 정성껏 주무르고 어루만지고 다듬는 대로 모양이 완성된다. …… 아이는 부모가 이끄는 대로 자라난다.(p105)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기 전까지는 부모의 엄격한 통제가 어느 정도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사춘기가 시작되면 부모의 기준에 근거한 엄격함은 유효 기간이 지난 패스워드가 되어 버린다. 더 이상 아이를 움직일 수 없다. 오히려 부모가 아이를 꼼짝 못하네 누르면 누를수록 튕겨 나간다. 그리고 한 번 튕겨 나가면 더 멀리 빠르게 달아난다.(pp83-84)

아이가 십대가 되기 전에 생활의 작은 규칙들과 질서를 훈련시키면, 이후 부모와 십대 자녀는 모두 사는 게 편해진다. 그런데 아이를 가르치고 훈련시키지 않았으면서 부모는 바라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다고 아이에게 화를 낸다.(p95)

아이들이 선생님과 부모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은 무섭게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아이들을 지금과 같은 무질서의 혼돈에 빠뜨린 것은 결국 권위를 포기해 버린 어른들이다.(p38)

아이가 어렸을 때는 부모가 적당히 구속할 필요가 있다. 엄마가 자녀는 훈련시키는 것은 간섭이 아니라 도움을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p229)

● 부모가 강하게 훈련을 시키면 아이는 부모를 따라오게 되어 있다(p260)

아이가 알아서 자제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은 미끄러운 내리막길에 아이를 세워두고 미끄러지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아이가 바르게 서 있기를 바란다면 그런 환경으로 옮겨줘야 한다. 평평한 길에 두면 아이는 미끄러질 리가 없다.(p268)

● 아이가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뜻이고, 결국 그 일을 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아이에게 자율권을 주고 스스로 알아서 하는 자기 주도 학습을 요구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모든 아이들은 공부 대신 다른 일을 할 수 있는기회가 주어진다면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달려 나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p228)

교육에서 용서는 큰 힘을 갖지만, 아이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용서의 힘보다 '체벌의 규칙'이다.(p141)

……………………………………………………………

 

   
 

"Winning isn't everything, but wanting to win is."

(이기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이기기를 원하는 것은 중요하다.)

 
   

 

서울 포스코센터를 방문한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이 사진 찍어 자신의 SNS에 올려 화제가 되었었던 문구라네요. --- 이제까지 저 스스로는, 종원군의 부모로서 내 아이에게 (그 상대가 자신이건 성적이건 뭐였건) '이겨내라'라는 말/격려/채근만 했었었지, 정작 '왜 항상 이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내 아이의 마음 속에 '이기고 싶다라는 바람(願)'이 생겨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주지 않았었다라는 심한 반성을 하게 만들어 줍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중2병의 비밀」과 마찬가지로 --- '부모는 믿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p302)이 되어야 한다라는 결론을 내려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제가 수도 없이 다시 읽고 다짐하고 반성하게 될 이 감상문의 마지막 역시... 그러한 말을 전해주고 있는 저자의 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더! 이 책의 저자 분께도 '이 책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란 똑같은 인사말을 전해드리고 싶네요.


​십대는 아무리 거칠어도 십대다. 내 아이다. 십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불안을 걷어내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자. 부모는 내 아이의 인생에서 닫힌 문을 열 수 있는 마스터키를 이미 손에 쥐고 있다. 너무 당황하고 두려워서 손에 들고 있는 마스터키를 보지 못하고 무조건 집 밖에서 답을 찾으려고 뛰쳐나가지 않기를 바란다. 진정한 부모는 아이가 어떤 문제를 일으켜도 바로잡기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믿고 기다릴 줄 아는 '농부'와 같은 사람이다.(p304)



이제까지 제가 써왔던 독서 감상문들이, 그 시작은 내용과 인상(印象)의 기록을 위함이었었으나 점차 '타인에게 보여지는/주는' 글로 변해왔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만! 앞서의 책 「중2병의 비밀」과, 특히!나 이 책 「사춘기로 성장하는 아이, 사춘기로 어긋나는 아이」의 감상문은 (물론, 종원군과 비슷한 나이의 부모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의도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거의 전적으로 --- 저 스스로 두고두고 다시 읽고, 다짐하고 그리고 또 다시 읽고 반성하며 고쳐 나가려는 생각으로 쓰여진 것이기에, 많이 길어진 글이 되었으며, 과도할 정도로 책으로부터의 인용이 많을 수 밖에 없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읽어 본) 사춘기 자녀에 대한 이해/교육에 도움이 되는 책.

- 전지은(글) · 이혜조(만화) 共著, 「Why? : 사춘기와 성

- 김현수 著, 「중2병의 비밀


 

 

 

 

 

 

 



 

  1. '부모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아이는 사춘기를 통해 성장할 수도, 엇나갈 수도 있다. …… 아이가 보이는 대부분의 문제는, 사실 어쩔 수 없이 부모에게서 비롯된다. ……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내 아이의 문제는 결국 부모인 나의 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pp14-15)
  2. '눈앞에 장애물이 나타났을 때 부모는 그것을 해결사처럼 나서서 처리해줄 게 아니라, 아이 스스로 그것을 넘을 수 있게 기다려줘야 한다. …… 부모는 아이의 장애물 제거반이나 사고 처리반이 아니다. 아이가 장애물 앞에서 좌절하고 쓰러져 있을 때 그것을 극복하고 계속 전진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도와주는 사람일 뿐이다.'(p87)
  3. '십대들은 부모의 사랑이 가장 필요한 시기에 그 사랑을 못 느끼고 있다. 부모의 무심한 말과 습관적인 행동을 통해 사랑이 아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고 있는 것이다.'(p57) ……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을 사랑한다면서 말을 왜 그렇게 함부로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 아이들이 부모에게 원하는 것을 따뜻한 말 한 마디다.'(pp7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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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병의 비밀 - 초등4~중3 학부모와 교사를 위한 '요즘 사춘기' 설명서
김현수 지음 / 덴스토리(Denstory)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아! 이 책 읽고 싶다'란 생각이 든 책을 곧바로 주문하는 경우도 아~주 가끔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뭔 묵은지나 삼합용 홍어회 만드는 것도 아니면서) 일단은 장바구니1에서 한동안 묵히는 과정을 겪곤 하는 게 일반적 패턴입니다. (사실 이 '묵히는 과정'에서 삭제되는 책도 꽤 많긴 해요.) 그러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대충 묶어서 (그래야 추가 마일리지를 받을 수 있는) 5만원(을 갓 넘긴) 이상으로 주문해놓고는, 다시 한 번 더 한동안... 책장에서 묵혀놓고 나서야 읽게되는 게 저의 독서이지요. 하지만!!! --- 「중2병의 비밀 : 초등4 ~ 중3 학부모와 교사를 위한 '요즘 사춘기' 설명서」는 이 책을 알게되고, 간략한 내용을 살펴 보고나자마자 곧바로 주문을 할 수밖에 없었던, 무척! 특별한 책이었더랬습니다. 다름 아닌... 종원군이 올해 중학생이 되었다라는 이유 때문이었죠. 그렇게, '사랑스럽던 내 아이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란, 사뭇 마음 시리게 하는 문구가 쓰여져 있는 표지를 한 책이 도착해 그 첫 페이지를 넘겨보았었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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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중학생이 된다는 것은 이별을 시작한다는 것입니다."(p8)

 
   

 

제 생각엔 그저 은근, 혹자에 따라서는 지나칠 정도라 말해지기도 하는 감성적 면면을 가지고 있는 저에게, 게다가 (평균보다 늦은 나이에 낳은 첫째이자) 하나 뿐인 아들 녀석이 이제 막 중학생이 되어 이 책을 주문해 받아 펼친 저에게, 이런 가슴 저며오는 말을 해주며 시작하고 있는겁니다. 아! 대체 뭐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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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준비하며, 그 지역에 대한 안내가 담겨져 있는 가이드 북을 보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가이드 북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지요. 가이드 북은 어디까지나 여행을 가는 것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지, 정작 여행은 떠나지 않고 가이드 북만 줄창 읽어댄다라는 건 아무런 소용이 없으니까요. --- 제가, 통칭 '자기계발서'로 분류될 수 있는 책들을 좋아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기에 단 한 권도 읽어보지 않은 이유는 '안다는 것''행동하는/행동할 수 있는 것'과는 분명 커다란 차이가 있다라고, 아니, 마치 가이드 북만 읽어본 것과 실제로 여행을 다녀온 것의 차이와도 같은 아예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게 좋은 거다'란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에 따라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안목/능력'은 그렇게 책 몇 권 읽는다고 없던 게 불쑥! 생겨나는 건 아니잖습니까.2 (자기계발서는 딱! 목차만 읽어보면 끝!이라 전 생각해요. --;;) 헌데 말입니다!!!

이 책은 '좋은 게 좋은 거다'란 말을 하고 있는 책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그럼 대체 뭐가 좋은 것인지'를 분별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지도 않은, (이렇게 표현해도 될 지 모르겠습니다만) 부모3로서 자식이 생각하는 '좋은 것'을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을, 그리고 그 마음가짐을 대체 왜! 가져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는 책이었으며, 거의 모든 내용... 이라 말해도 될만큼 한 단락 한 단락이 저에게 공감반성다짐, 뭐 암튼 참으로 많은 (가르침이라기보다는) 깨우침을 주었더랬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나서, 제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의 각도 뿐만 아니라 시선 자체도 완전히 달라졌을 정도로 말이죠. (워낙에 공감하는 심정으로 읽었던 책인지라, 이하 본문이건 각주에건 저의 표현보다는 책 속 저자의 표현이 더 많아졌음을 사후적으로 써놓습니다 .)

● 요즘 중학생들은 말끝에 욕이 아니라 욕 끝에 말입니다.

● 요즘 중학생들은 공부 중 게임이 아니라 게임 중 공부입니다.

● 요즘 중학생들은 결석이 아니라 휴가입니다.

● 요즘 중학생들은 화나게 만들어놓고 정작 자기가 성질부립니다.

● 요즘 중학생들은 놀아놓고 즐겼다고 합니다.

● 요즘 중학생들은 무엇이든 네 자로 말하기보다는 무조건 두 자로 말하기를 좋아해서 여차하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습니다.(pp164-165)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요즘 중학생'들에게서 볼 수 있다는 특징들의 중 몇 가지입니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종원군이기에, 위의 특징들을 아직까지는 녀석으로부터 (최소한 가정 생활 내에서는) 발견할 수 없습니다만, 예전에 지하철에서 보았었었던, 암튼 모든 대화를 일단 '아~ 씨발 존나'로 시작했었던 여중생들의 모습이나, 친구와 마주앉아 떡볶이 먹으면서조차도 (역시나 '씨발 존나'를 접두어로 하는 대화와 함께) 접시에 코박아댈 듯 핸드폰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던 남학생들을 보았던 경험들만으로도 위의 묘사들이 현실과 그다지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더군요. --- 네!!! 이 책은 비록 '중2병4'이라는, 일종의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되어 있는 현상을 그 제목으로 내세우고는 있습니다만, 전반적으로 '중학생 자녀를 둔 부모를 향한'(p263) 전반적인 조언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은 행동으로서의 처방전을 제시하는 책은 아닙니다. …… 저는 이 책에서 아이들의 심정을 공유하고 이해하는 것, 그리고 서로 격려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가짐 을 갖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p272)

 

………………………………………………………………

'우리 땐 지금보다 훨씬 더 못한 상황에서도 공부 잘만 했었었다, 요즘 애들은 당췌 부모한테 감사할 줄을 몰라요. 그냥 뭐든 부족함 없이 받으며 생활하니까 정작 학생의 본분이 뭔지조차 모르고 있단 말이야.' --- 물론 모든 부모가 다 해당되는 건 아니겠지만, 이것이 소위 말하는 기성세대의 '요즘 아이들'을 향한 흔한 시선임을 부인할 수는 없는 말입니다. 하지만 전 (그리고 아마도 제 아내는) 종원군의 부(모)로서의 내가 최소한 저 정도의 범주에까지는 들지 않는다라 생각했었었지요. '우리는 나름 종원이를 그의 입장에서 많이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으며, 실제로 많이 이해하고 있다'라 믿어왔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종원군에게 참으로 오래전부터 지겹도록 반복해 이야기해 왔던 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해야할 것들을 모두 다 한 다음에 하고 싶은 것을 해라'이지요. 얼마 전까지도 전... 지극히 당연하다라 생각하는 저의 이 말에 어떠한 오류나 부당함도 없다라 생각했더랬습니다. 헌데 말이죠 --- 아이가 중학생이 되었고, 녀석의 중학교 생활을 유심히 살펴보니 '요즘 중학생'에겐 그 '해야할 것들'이란 게 너무도 많더군요. 그렇~게 유난스런 사교육을 시키는 것도 아닌데(라고 저희 부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 중학생이 되었으면 초등학생 때 마냥 숙제만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복습도 좀 해야지?라 말해주고 종원군의 생활을 함께 해보니 - 종원군이 책상에서 뭔가를 하는 동안, 그리고 그것을 끝마칠 때까지는 저도 함께 마주 앉아 책을 읽습니다. 학기 초인 아직!까지는요... ^^;; - 이건 당췌... 그 '해야할 것들'이라는 게 제가 봐도 끝이 보이질 않는 겁니다. (뭔 교내 대회/행사는 입학하자마자 그리도 많은건지요. --;;) 그러니 당연히!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이 아예 존재할 수조차 없게 되지요. 그처럼...

알게 모르게, 방향과 표현만 달랐지 저 역시 종원군에게 '학생의 본분이 뭔지부터 알아야 한다' 류의 메시지를 그렇게 연신 전달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란 생각을 어렴풋이 하고 있던 요즈음 읽게 된 --- 이 책의 저자는 바로 그것이 '헛똑똑이 부모 증후군'의 전형적인 증상들이며, 모두들 그렇게 행동하고 있으면서도, 또한 대부분 '나만은 결코 아니다'라 갖고 있기도 한 착각을 저 역시... 최소한 그 일부5는 온전히 가진 채 나의 아이에게도 강요하고 있었더란 걸 깨닫게 해주는 겁니다.


정서적 차가움 : 양육의 큰 원칙이 정서적 공감에 있기보다 능력을 키우는 데 맞춰져 있었습니다. 따뜻함이 결여된 양육이라고 할까요?

엄격한 도덕성 : 부모님들 모두 도덕적으로 휼륭한 분들이고 그래서 자녀에게도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것. 그러다 보니 늘 잔소리가 많았고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잘못을 숨기기에 급급했고 그러다 보니 거짓말이 늘었습니다. 혼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자라다가 크면서는 아예 대들게 됩니다.

지나친 체면 의식 : 자녀들의 성적이 자신의 자존감과 비례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 자녀들에게도 늘 남들이 어떻게 보는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아이들은 어렸을 때는 이런 거짓된 모습에 순응하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반항하기 시작합니다. 왜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주지 않느냐고 말입니다.(pp6-7)

저자는 이에 대해, 우리 부모가 살았던 때와 자녀들이 중학생이 되어 살고 있는 지금은 '세대'뿐 아니라 '시대'도 엄연히 바뀌어 있다라는 걸 분명히 인식하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일부를 제외한 (저도 포함된) 요즘 시대 중학생들의 부모 대부분은 여전히 자신들 '시대'의 렌즈로만 자녀들을 이해하려 하다보니 두 가지의 전혀 다른 '시대와 세대'간의 충돌이 불가피해진다라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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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은 지금 우리가 중학생이던 시절보다 더 힘든 중학생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회가 그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이 아이들은 외롭습니다. 중2병이라고 회자되는 말 뒤에는 아이들의 외로움6이 있습니다. …… 핸드폰과 애완동물을 가장 갖고 싶다는 중학생들의 소망 목록7만 보아도 그들이 얼마나 외로운지 알 수 있습니다.(p9)

이제까지 책으로 읽었었던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그 어떤 '조언'들을 뛰어넘는 엄청난 부끄러움과 찌릿함을 제게 주었던 문장입니다. --- 집에서 내 아이에게 '아빠는 종원이를 너무너무 사랑한다. 그리고 우리 종원이는 뭐든 잘해낼 수 있을꺼라 믿어요'라는 말을 수도 없이 반복했었던 저였기에, 내 아이만큼은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 확신해왔었었거늘, 저자는 부모의 이런 말 역시 아이의 외로움을 더해주면 더해주었지 결코 치유해주지는 못한다8라 말하고 있기 때문이었죠.


아이들은 애정으로 자라지 규칙으로 자라지 않으며, 금기에 의해 도덕성이 육성되지 않는다라는 것, 커갈수록 자율성을 더 주어야지 통제가 더 커져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이 아들이 내 아들이지, 부모의 마음 속에 있는 착하디착하고 순종적인 수도원의 수련생이 내 아들은 아니라는 것을 중학생의 부모는 반드시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라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 아이를 향한 애정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표현의 방식은 초등학생 때와 중학생 때가 엄연히 달라져야 한다라는 걸 저자는 특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15세. 이때는 부모를 과감하게 떠나기 시작하는 인식의 전환기입니다. ……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다른 모델에게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떠나기 위해서, 왜 떠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부모에게 퍼붓기 시작하는 것9입니다. 이 기간을 견뎌주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p155)

'외로움'을 주제로 하여 아이들의 여러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제가 가장 감동스럽게 그리고 가장 많은 메모를 하며 읽었었던 장(章)은 <존중받지 못할 때의 외로움>이었습니다. 중학생이 될 무렵의 아이를 이해하는 것에, 부모의 자격으로서 저에게 참 많은 부족함이 있었었구나를 느끼게 해준 부분이었죠.


저자는 영국의 정신분석가 비온(Bion)의 말을 빌어, '아이들이 자신의 나쁜 것, 버릴 것을 부모에게 퍼부으면 부모는 그것을 받아주는'(p155) 일종의 수용체, 즉 담아주는 그릇(container)의 역할을 해야 한다라 말해주고 있습니다. 쉬운 말로 부모가 쓰레기통이 되어주라는 거지요. --- '아이들이 퍼붓는 쓰레기들을 받아주고 스스로 비워내야 합니다. 이것을 아이에게 되돌려주면 아이는 자신을 다시 그 쓰레기들로 채우게 됩니다. 그 수고가 부모가 되는 과정입니다.(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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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로 먹고 뭐 그러려는 의도는 전혀 없지만) 이 책의 감상문을 적어내는 것에는, 그리고! 이 책을 저처럼 중학생 자녀를 둔 부모님께 소개하는 것에는 저의 말보다 이 책에 적혀 있는 다음 몇 마디의 구절들이 훨씬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로... 아이들을 향한 부모 스스로의 다짐에 관한 글들입니다.


중학생 시기에 부모가 필요한 것은 아이에게 젖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내와 대화, 자립을 돕기 위해서입니다.(p188)


부모는 아이를 끊임없이 살피면서 지원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기름이 떨어질 때는 주유소가 되어주어야 하고, 햇살이 너무 강할 때는 그늘이 되어주고, 또 태풍이나 해일을 막아주기도 해야 합니다. 가정으로부터의 독립이 있기 전까지 말입니다.(p190)

수많은 정신분석가들은 말합니다. 아이들의 감정을 받아주고 그냥 소화하라고 말입니다. 아이들이 나쁜 감정을 내뱉으면 되받아쳐 돌려주지 말고 부모가 수용해서 처리하면 된다고 말입니다. 아이가 속이 안 좋아서 토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부모가 화를 내면서 "아니 이게 나한테 토해? 나도 너에게 토해주마" 이럴 부모는 안 계시지요. 아이가 마음으로 토하는 것을 부모는 받아주고 치워주고 소화가 잘 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유 없는 화, 과장된 짜증, 침울한 태도는 마음의 구토와 마음의 소화불량일 뿐입니다.(p191)


자녀를 이해하는 것이 단지 인내심을 발휘해야만 하는 고달픈 과정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자녀를 이해하는 것은 나를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고 나의 '부모됨'을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고 요즘 시대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시대의 세대의 차이에서 오는 변화를 이해하기도 하는 종합 이해 세트입니다. 우리를 성숙하게 만드는 과정이지요.(p176)

………………………………………………………………


문학도 아니요, 역사나 경제학 혹은 진화론처럼 제가 지식을 얻기 위해 펼쳐든 책도 아니었습니다만... 책 속에 담겨져 있는 누군가의 (현실적) 조언이 이토록 제 마음에 와닿는다라는 걸 아마도 처음 느꼈던 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 "중2병 현상은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입니다. …… 해결이 먼저가 아닙니다. 해결이 먼저도 아닙니다. 이해가 먼저입니다. 이해해야 제대로 된 해결책도 찾을 수 있습니다.(p265-266) (이처럼 끝까지... 저의 글 대신 책 속의 글로 이 책을 소개하게만 되네요. 굳이 꼭! 그렇게 하고 싶기도 하구요.)

종원이의 마음 속을 들여다볼 수 없으니 그 녀석의 의견은 차치해낸다면 아직까지는, 최소한 사춘기로부터 발생되는 문제는 없는 듯 보이는 저희 가정입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저에게 앞으로 생겨날 아이의 모든 변화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혹여라도 녀석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저의 언행을 미리미리 예방할 수 있도록 도와준 참으로 고마운 책이었습니다. --- 중학생이 되어 아이에게서 나타나는 여러가지 변화들 : 혼자 있고 싶어 할 때가 생긴다든가 혹은 우울해 하는 순간들 모두가 다 아이의 독립과 성숙을 위한 과정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저자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저... 우리, 부모는 나의 아이가 그런 과정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무엇!보다 잘 기다려주면 된다라 말해 주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인지... "자녀가 중학생이 된다는 것은 이별을 시작한다는 것입니다"란 (뭔가 가슴을 후벼파는 듯한 분위기의) 부제를 가진 프롤로그로 시작되었던 이 책의 마지막은 --- "자녀가 중학생이 된다는 것은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는 것입니다"(그래도 나름 희망에 젖어볼 여지를 마련해 주고있는) 에필로그로 마무리되고 있답니다.


자!!! 이제 저에겐 '(배워서) 알게 된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만 남았습니다. 비록 '안다는 것''행동하는/행동할 수 있는 것'과는 분명 커다란 차이가 있다라 말 하긴 했지만, 내 아이의 장래를 위한 것이기에 '행동하는/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쥐어짜서라도 내야 하는 게 바로 부모가 아니겠습니까. --- (부제에 나와있는 것과같이 '초등학교 4학년에서 중학교 3학년'까지는 자신 없습니다만) 적어도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2학년'까지의 자녀를 둔 부모님들께는 반드시! 그리고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다라는 주제 넘는 권유와 함께, 이 책에 나오는, 제 맘에 콕!하고 와 닿았던, 종교를 떠나 모든 부모님들이 과연 부모의 역할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새겨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이 느껴졌었던, 작가 칼릴 지브란의 말을 재인용하는 것으로 이 (날로 먹은 듯한 --;;) 감상문을 끝맺도록 하겠습니다. 오랫만에... 한 독자로서 책의 저자에게 '이 책을 써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란 마음을 가지게 되었던, 여러 가지 면에서 참 많이 배우고 깨닫게 되었었던... 그런 독서였었었네요.


   
 

자녀를 우리에게 보낸 분은 신이고,

우리는 그 자녀가 멀리 잘 날아갈 수 있는 좋은 활이 되면 된다.(p181)

 
   




(읽어 본) 사춘기 자녀에 대한 이해/교육에 도움이 되는 책.

- 전지은(글) · 이혜조(만화) 共著, 「Why? : 사춘기와 성

'내가 아는'... 모든 이들에게 반드시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지금 이 블로그에 와있는 당신에게도 여하한 구실로라도 '나를 아는'... 이란 형용사를 붙여 꼭 한번 읽어보시라 말하고 싶은 책들의 제목 앞에 ★표시를 붙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표시이겠지만 가끔은... 타인의 주관을 한번쯤 믿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더군요. ^^


 

 

 

 



 

  1. 이 포스트를 올리는 현재, 알라딘의 제 장바구니엔 총 31권의 책들이 담겨져 있네요.
  2. '실현가능성(affordability)'와 '획득가능성(feasibility)' 모두 혹은 둘 중 하나의 기준으로 볼 때 말입니다.
  3. 다만, 이 책에서는 '부모의 세대'를 '경제적인 자수성가를 이뤄야 했던 새마을정신 세대'로 보고 있는데, 이는 지금의 중학생 부모들과는 좀 차이가 있는 설정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4. "<중2병>이란 단어는 일본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의 말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회자된 중2병의 특징은 우리나라 아이들의 말로 하면 '허세 쩌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pp27-28)
  5. 다른 두 가지는 사실 딱히 그다지 강하게 표현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만, '엄격한 도덕성' 부분에서는 위의 말, "해야할 것들을 모두 다 한 다음에 하고 싶은 것을 해라"라는 말에서도 보이듯, 제가 지금 종원군의 나이 때에는 하지 못했었던 것임에도, 오로지 지금 마흔일곱의 나이가 되어 있는 저의 가치관에서 생성되는 명제를 초등학생 때부터 무조건 받아들여야하는 당위로 주입시켰다라는 건 차마/결코 부인하지는 못하겠습니다. --;;
  6. 저자는 '외로워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p135)이란 표현을 쓰고 있기도 합니다.
  7. "중학생이 되면서 사춘기가 시작되고 할 말이 많아진 아이들. 부모는 더 이상 그 모든 주제의 대화 상대가 될 수 없고 아이들은 다른 누군가를 필요로 합니다. 사람이 없으면 다른 무엇인가라도 필요로 하게 됩니다."(p40)
  8. "아이들은 혼자라는 것을 외로워하기도 하지만 부모와 공생하거나 의존하는 상태를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낍니다. 그러니까 외롭지만 혼자인 셈이지요. …… "나에게는 너밖에 없다." 이 말이 어느 순간 자녀에게 사랑을 증명하는 말로 들리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을 아실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p37)
  9. "아마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을 전후해서 많은 아이들이 부모에 대한 복종적인 순응을부터 자체 졸업식을 하는 것 같습니다. …… 이제 감언이설, 협박, 뇌물 등 과거 초등학생 시절 다양하게 활용하던 의사소통 기술이 먹히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머리가 컸다' 이거지요. …… 부모를 향한 이상화와 존경, 이것도 끝입니다. ……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부모의 훈육적 주장에 순진한 복종을 하던 시대는 끝난 겁니다."(pp147-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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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입은 남자
이상훈 지음 / 박하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역사를 읽고 쓰는 행위는 일종의 '게임'이다. …… 역사적 상상력이 동원된 게임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상상 게임'이라 불릴 만하다. '상상 게임'을 하는 데는 팩션이 빠질 수 없다. 내가 말하는 팩션은 사실과 허구를 적당히 버무리는 것이 아니다. 허구라 해도 역사적 상상이 빚어낸 허구라 하겠다. …… 역사적 지식을 통해 얻어진 상상이 개입된 허구는 말 그대로의 허구가 절대 아니다. …… 이 경우의 허구란 깨진 청자 조각과 조각 사이를 이어주는 접착제 같은 것, 달아난 부분을 메워 항아리의 원형을 보여주는 보철 같은 것이다. 

- 백승종 著,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 중.

사학자에겐 역사적 상상력보다는 역사적 사실이 훨씬 더 중요하겠지요. 그러하기에 사학자에게 '상상'이란 기껏해야 접착제의 역할만이 될 뿐입니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이라는 엄격함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소설가에게 '역사적 상상'이란 단순한 접착제가 아닌, 깨어진 청자 조각들보다 훨씬 더 많이 사용되어지기도 하는 주재료가 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비록 그 접착제의 사용이 그처럼 과다하더라도, 반드시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충분히 수긍될 수 있다면 그것이 비난의 원인이 되지는 않을 테구요. 


비록 일부는 상상력으로 채워진 픽션이지만 이 소설은 이렇게 명백한 사실들의 연결고리 속에 탄생했다. 모든 이야기의 원형들이 역사적인 근거 속에서 태어났다.(p519)

누군가가 펼쳐놓는 "역사에 대한 상상"을 들여다보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기도 합니다만, 그 상상이 충분한 논리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한낱 억지스러운 헛소리로만 들릴 뿐입니다. 하지만! --- "역사란 우연을 가장하여 때론 치밀한 각본을 만들어내기도 한단 말이야"(p265)라는 소설 속 한 등장인물의 말처럼, 이 책 「한복 입은 남자」는 단지 몇 조각의 청자 조각들만을 가지고, 작가가 아주 작정하고 엄청난 양의 접착제를 사용해 완성해낸 작품임에도, 그 흐름을 따라 읽어가다보면 억지스럽다란 생각이 거의 들지 않습니다. 작가는 아예 독자로 하여금 자신이 사용한 접착제가 청자의 주재료일 수도 있다는 착각까지를 주고싶어 하는 듯 보이기도 하지요. 헌... 데!!!

이 작품을 다 읽고난 후, 다시 되돌아보는 시점에서도 과연 그러한 생각들 - 억지스럽지 않다 & 착각하게 된다 - 이 유효하게 남아있게 되었을까요? --- 작가가 이 소설에서 사용한 몇 조각의 청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① 루벤스의 그림 <한복 입은 남자>

이 소설은 루벤스의 그림 <한복 입은 남자>라는 그림에 대한 의문으로 그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기록에 의거, 그림 속 주인공이 노예상인에 의해 유럽으로 팔려간 안토니오 꼬레아라는 어린 소년이다란 것이 이제까지의 정설이었지요. 여기서! 소설 속 주인공은 다음과 같은 의문으로부터 자신만의 가설을 세워보게 됩니다.


노예로 팔려가는 와중에 안토니오 꼬레아가 어른의 의복을 소지하고 다녔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가설이지만, 임진왜란 때 조선 사람이 서양으로 건너간 게 아니라 조선 초기에 누군가 서양으로 건너갔고, 그 후손 중에 하나가 선조의 옷을 입고 루벤스 그림의 모델이 되었을 확률이 높았다. 루벤스의 그림 모델은 안토니오 꼬레아가 아니라 제3의 인물인 것이다.(p19)


② 다빈치의 비행기 설계도

다빈치의 스케치 중 많은 것들이 전대의 것을 확장하거나, 중국에서 건너간 물건들을 통해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주장이 있다. 비행기라고 해서 그러지 않았으리란 보장이 없겠지. 비행기를 직접 만들었거나 만드는 법을 알고 있던 누군가가 유럽으로 건너가 다빈치에게 그 설계도를 보여주지 않았을까? 그게 만약 조선에서 건너간 사람이라면 <한복 입은 남자>가 품고 있는 복식이나 배 그림에 대한 의문이 일시에 풀리게 된다. 임진왜란 이전에, 적어도 50년, 혹은 100년 전에 누군가 또 한 사람의 조선인이 서양 땅을 밟은 게 틀림없다.(p28)

 

③ 역사에서 사라진 장영실

세종 연간에 승승장구했던 장영실도 말로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뛰어난 손재주로 세종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그도 세종대왕의 가마를 잘못 설계했다는 죄를 뒤집어쓰고 파면을 당했다고 조선왕조실록은 전하고 있다. 가마 사건 이후 장영실은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세종 24년인 1442년 3월에 일어난 일이었다.(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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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진석의 의문은 루벤스의 그림 <한복 입은 남자>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만, 이내 장영실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차 설계도의 유사점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그러다 문득 장영실이라는 천재 과학자의 실종에 주목하게 되지요. --- 얼핏 보면 별다른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 세 가지의 청자 조각들은 엘레나라는 여인의 등장과 그녀가 건네준 한 권의 고서(古書)로 인해 서로 이어지게 됩니다.


강배라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그 고서를 번역해 본 결과, 1443년부터 (이탈리아에서) 쓰여지기 시작한 그 비망록의 저자가 다름아닌 장영실이었다라는 걸 알게 됩니다. 1443년은 바로 장영실이 가마 사건으로 궁에서 쫒겨난 이듬해였지요. 하지만!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비망록의 저자가 장영실이라 해도, 과연 그 시대에 그가 어떻게 그 먼 곳인 이탈리아까지 갈 수 있었느냐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습니다. 여기서 --- 장영실과 이탈리아, 그리고 훗날 레오나르도 다빈치까지 이어지는 연결의 핵심 고리로 바로 명나라의 정화 대장이 등장하지요.

조선왕조실록엔 장영실이 명나라에 여러 번 갔다는 기록에 나와 있는 걸 보면 그 당시 명나라의 유명인사였던 정화 대장과 접촉했을 개연성도 충분하고...(p352) 

소설 속 주인공 진석은 마치, 이 소설의 작가가 그러했었을 것처럼, 정화 대장과 장영실,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상대적 나이가 맞아야 함을 다시 고민합니다만 이 역시... 역사적 사실과 추론에 근거해 보면 어렵지 않게 풀립니다. --- 1459년 어느 늦가을, 동양과 서양의 두 천재가 만났을 당시, 장영실은 50대 후반이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7살의 꼬마였었다란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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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 대장과 장영실의 관계가 급속히 가까와질 수 있었던 이유로 저자는 두 사람간의 여러 공통점을 들고 있습니다.


두 사람 다 노비 출신인데다가 조상이 귀화인이다. …… 둘 다 노비의 신분에서 세종과 영락제의 총애를 받으면서 승승장구하다가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미스터리로 남은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 둘의 인생이 닮아도 너무나 닮아 있다. 이것이 역사의 필연일까?(pp267-268)

작가는 이러한 '역사의 필연'이라는 장치를 장영실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만남에 다시 한번 사용하고 있습니다. 노예 신분이었었기에 신분제의 사슬에 얽매인 어린 시절을 보낼 수밖에 없었었던 영실에게,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는 다빈치가 단지 서자(庶子)라는 이유로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자신의 그러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주었다라는 거지요. --- "동양이고 서양이고 어찌하여 신분제란 것이 있어 앞길이 창창한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가."(p434)

 

​다빈치의 스승으로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렀고, 영실의 가르침을 받은 다빈치는 천문과 기계설계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지식을 가지게(p436)됩니다. 한 마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거의 모든 것을 장영실로부터 배웠었다라는, 사뭇 소설이니까나 가능한 파격적 주장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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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읽어가는 동안에는 거부감이 별로 들지 않는, 상당히 재미있는 역사적 상상이 펼쳐지고 있는 한 편의 소설이었습니다. 만만치 않는 두께임에도 술술 읽혀나가기도 했구요. 다만!!! 이 소설을 다 읽고 다시 한 번 되돌아 짚어보니 문득... 


● 역사에 대한 상상은 과연 그 한계가 어디까지여야하나에 대한 의문을 이 소설은 남겨주고 있습니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몇몇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자신의 상상'을 '개연성'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 의미의 '개연성'과 일치시키려면, 사소한 것에까지도 좀 더 신경을 썼었어야 한다라 생각합니다. 전체적인 구도야 작가의 유쾌하고 통 큰 상상력이라 재미나게 받아들여지지만, 소설 속 몇몇 사소한 부분들에서의 과도함은 자칫 전체적인 구도까지도 코믹한 판타지 소설스럽게 만들 여지를 가지고 있다 보여지기 때문이지요. --- 장영실의 뛰어난 재능과 그의 발명품들에 대해서는 상상의 부분이라 할 수 없겠습니다만, 이탈리아의 '피자'가 '동래파전'에서 비롯된 것임을 암시하는 부분1에서는 웃지않고 넘어갈 수가 없더군요. 이런 사소한 건 그저 작가의 유머코드라 넘겨버린다 해도, 작가가 이 작품에 대해  독자들이 진지하게 이 소설의 스토리를 이해해주길 바래었었다라면 (비록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뛰어난 두뇌를 언급하는 걸 잊지는 않고 있습니다만) 거의 모든 다빈치의 업적들이 장영실의 가르침 덕분이었다라는 해석이나, 심지어 "다빈치가 유럽에서 최초로 산수화를 그린 일은 단순한 우연에 불과하지 않은 것이었다. 다빈치는 장영실을 만난 게 분명했다"(p479)와 같은 부분은 결단코!!! 들어가서는 안 될 사족같은 부분이었다라 생각합니다. 소설 속 한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서양 중심의 역사 해석을 비판하고 있으면서도 저자 역시 뭔가 복수의 한풀이라도 하듯, 장영실의 공간을 너무도 확대시켜 놓는, 그 반대의 시각 - 사뭇 국수주의적이라 보여질 수도 있는 - 을 굳이 감추려고 하지도 않고 있다2라는 거지요.

영실은 물시계를 비롯하여 해와 달, 별자리를 이용한 천문 관측 방법, 화약을 이용한 총포 등의 성능 개량 방법을 알려주어 로마 기술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 장영실에 관한 소문이 구라파의 과학자들 사이에서 퍼지면서 로마의 내로라하는 천문학가와 과학자들이 영실을 찾았다.(pp401-402)

심지어 장영실이 교황 앞에서 '지구는 둥글다'란 발언을 하여 교황청의 미움을 사게 되는 부분도 나오는데, 작가가 이 부분을 장영실과 다빈치와의 만남을 가능케 하는 일 도구로만 사용하였다라 보기엔 할애해놓은 분량도 길거니와 그것이 반드시 필요한 장치도 아니기에, 역시나 작가의 과도한 반발이라고 밖에는 보여지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사족스런 부분을 하나 더 추가하자면 --- '이루어질 수 없는 로맨스' 하나 정도는 반드시 삽입시켜야한다라는 것이 소설을 쓰는 작가들의 강박관념인 양, 이 소설에도 장영실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한 여인과, 장영실이 다가갈 수 없는 또 다른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전자의 경우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수준으로, 게다가 소설에서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후자의 경우는 이에 대한 작가의 상상은 좀 과했다란 생각을 주지요. 아무리 2015년을 살아가고 있는 작가의 상상력이라 할지라도 기본적인 면들은 해당 시대의 사고를 분명 공유하고 있어야함에도 불구하고 '노비와 공주'간의 러브라인이란 건 당췌... 이해할 수가 없지요. 좀 심하게 말해보자면 '애국심' '연정(戀情)'을 작가가 도통 구분하지 않은 채, 막 자기 맘대로 가져다 섞어쓰고 있다고나 할까요?


● 비슷한 이야기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좀 더 심각한 문제점일 수 있는 점은 바로 장영실이라는 인물에 대한 작가의 과도한 영웅화입니다. --- 그가 분명 천재적인 과학자였었음까지를 부인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만, 그 인물에 대한 평가는 객관적 사실을 접한 각 개인의 몫이어야 하지, 누군가의 '교육'이나 '권유'에 의해 생성되어야 하는 건 아니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고 훌륭한 인물이라 생각하게 되는 건 그 분들의 업적에 대해 스스로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지, 교과서에 '우리는 세종 대왕을 존경해야한다'라 쓰여져 있었기 때문이 아니지요. 헌데!!! 작가는 (여기는 군대의 사상교재가 아닌,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고 있는 '소설'이라는 장(場)임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장영실이란 인물에 대해 '존경'을 해야하고 '재평가'를 해야한다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구조가 "명백한 사실들의 연결고리 속에 탄생했고, 모든 이야기의 원형들이 역사적인 근거 속에서 태어났다"라는 것에 지나치게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보니, 저자는 장영실이 로마에 간 것이 유럽에 종교개혁을 일어나게 한 결정적 원인이었다라는 이야기까지를 써놓으며 "이것이 역사적으로 단지 우연에 불과하단 말인가?"(p471)이란 과한 오바를 보여주다가 결국엔 "우리는 이때까지 무엇을 했단 말인가? 이런 천재를 우리 후손은 어떻게 잊어버렸단 말인가?"(p472)로 끝맺음하며, 우리 스스로를 자책하게 만들고 있지요. --- 작가는 정녕 이 작품이 계도의 목적을 지닌 일 도구로 사용되어지길 바랬던 걸까요? 이 작품을 독자가 그렇게 심각하게 읽어야만 하는 건가요? (좀 더 쎄게 나가보자면, <작가의 말> 말미에 나와 있는 "우리는 우리의 역사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는가? 지금 교과서에서 배우는 그 짧은 단면들이 우리 역사인가?"(p520) 부분은 사뭇 작가의 오만으로 보여질 수도 있다 생각합니다. --- 자... 대체 작가의 이 질문들에 뭐라 대답해야 하는 건가요? 작가의 소위 말하는 '문제의식'이란 것에 '문제'가 있다라 말하는 게 아닙니다. '과거가 남겨주는 교훈'을 일깨우는 역사 소설이 아닌, 새롭고 신기한 상상력을 펼쳐보이는 판타지스러운 소설의 말미가 왜 이렇게 갑자기 무섭게 돌변했느냐라는 거지요. 이건 흡사! 소설 「싸드」를 읽고, 그 내용에 홀딱 빠져 '미제국주의자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자!'라 광화문 한복판에서 소리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반응 아닐까요? 근데 그걸... 작가 스스로 하고 있다라는 게 더 웃긴다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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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이 이야기를,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같은 음모론으로 끌고 가려는 듯한 작가의 의도가 소설의 결말 부분에 너무도 티나게 보여지고 있다라는 아쉬움 또한 있기도 했었습니다만, 그거야 작가의 바램이 그렇다라 할 수 있다라 해도 --- 역사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이 아무리 사학자의 그것보다 훨씬 더 자유스러울 수 있다해도 "이것은 역사적 가정이 아니라 사실일 수도 있다!"(p516)라는 작가의 말은 끝내... 작가 자신의 마음 속에만 담아두었더라면 훨씬 더 이 소설을 '한 편의 재미있는 소설'로 기억하게 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은 소설이며, 오로지 소설로만 읽혀야 한다3"란 작가 김훈의 당당한 선언이 결코 제가 읽어본 그의 작품들 - 「남한산성」, 「칼의 노래- 이 소설이라 하여 그들에 대한 평가를 가볍게 만들지 못했다라는 걸 --- 이 작품 「한복 입은 남자」의 작가는 독자들에 대한 믿음, 결국엔 자신의 작품에 대한 확신이 작가 김훈처럼 강하지는 못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실례(實例)가 아닐까 싶습니다. 뭐... 그런 게 작가의 (소위 말하는) '클래스'란 걸까요?

 

 

※ 실재로 존재했었던 우리의 역사에 개입된 저자/작가의 상상들.

- 안소영 著, 「책만 보는 바보

- 백승종 著,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

- 이문열 作, 시인(詩人)

- 문영숙 作, 「에네껜 아이들

- 손정미 作, 「왕경(王京)

- 김훈 作, 「남한산성」 · 「칼의 노래

- 김진명 作, 싸드(THAAD)

 


 






 

  1. 파전을 발음하기가 힘들어서 그녀는 항상 파전을 파자라고 불렀다.(p448)
  2. 「한복 입은 남자」의 작가는 이러한 사고방식 - 서양은 이성적, 합리적이고, 따라서 과학에 의해 대표되며, 동양은 감정적, 비합리적이며, 따라서 예술에서나 자기 거처를 찾을 수 있다 - 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수동적 모방자로서의 동양의 이미지를 전격적으로 뒤바꾸어 놓고자 한다.(p524)
  3. 「남한산성」의 '일러두기' 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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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드 THAAD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정권이 바뀌고 나면 쏟아지곤 하는 각종 '비사秘史'류의 기사들을 읽어보면, 예를 들어 제가 지금 감상문을 작성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누군가들이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주고받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라는 걸 결코 헛된 상상이라고 할 수만은 없게 됩니다. 그러하기에 그러한 일들에 '비사秘史'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일테고, 많은 경우 이러한 '비사'들은 곧 수많은 '음모론陰謨論'의 탄생의 결정적 서막이 되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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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치가 많이 아픕니다. 게다가... 이유를 알 수 없이, (요즘 종종 말들 하는 '햄릿 증후군'이랄 것까지야 없겠지만) 암튼 어떤 책을 읽어야할지 고르는 것 또한 쉽지 않기만 한, 골랐다해도 몇 장 넘기지 못하고 덮어버리길 여러 번 했던 요즈음이기도 합니다. 사실 2015년의 독서는 호흡 긴, 그리고 뭔가 하나의 연속된 주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해보겠다란 연초의 결심이 있었습니다만 이래저래... 선뜻 두꺼운 책 혹은 시리즈 류의 책들은 잘 집어지지가 않네요. --- 인터넷으로 들여다보는 신문에서 요즘들어 '사드THAAD1'라는 단어를 자주 보게 됩니다. 마침!!! 산책 차 들렀던 (저... 머리 식히러 서점 가는 남자입. ^^;;) 알라딘 중고서점에 김진명 작가의 이 책 「싸드 THAAD」가 있어, 대체 그게 뭐길래?하는 호기심에 사 읽어봤습니다. 글찮아두 골치 아픈데... 월간지나 100분 토론으로 그게 뭔지를 알아내는 것두 좀 그렇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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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소설은 무지하게 재미있게는 읽힙니다. 읽다보면  어느새100여 페이지가 훅 넘어가 있고 그렇더군요. 게다가 길지도 않아요. 맘만 먹는다면 퇴근 후, 막걸리 한두 통 비울 시간이면 다 읽어낼 수도 있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죠.


뭐... 어차피 전문적인 건 관심도 적거니와 관심을 가지려 해도 금새 막혀버립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한 인물이 설명해주고 있는 '싸드'의 정체를 인용해 보는 것으로도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메세지를 이해하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생각하기에 이 정도로만 '싸드란 게 과연 뭐길래?'의 의문을 풀어보기로 하죠. (이에 관한 좀 더 전문적 내용은 "THAAD, SM-3 미사일", 국제정치적 시각의 분석은 "사드 한반도 배치 논란" --- 물론 더 검색해보면 새로운 사실/이면을 알게 될 수도 있겠으나, 소설 「싸드」를 이해하기엔 이 두 개의 기사들만으로도 차고 넘친다 생각합니다.)


애초에 MD2는 아무리 개량을 해도 요격 성공률 100퍼센트가 나올 수 없어요. …… 여하튼 MD는 한 가지 조건이 있어야만 제대로 기능할 수 있어요. …… MD를 살리려면 무조건 싸드를 한국에 배치해야만 해요. ……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은 중국을 적국으로 상정하고 전개되고 있어요. 겉으로는 북한 핵과 미사일을 들먹이지만 실제로는 중국이에요. 원래 MD는 중국의 미사일이 날아오면 태평양 상공에서 격추시키도록 되어 있었지만, 성공률이 너무 낮아 싸드를 중국에 가장 가깝게 배치해야만 MD가 살아요. …… 일단 이 싸드를 한국에 배치하면 대륙간탄도탄을 포함한 중국의 모든 미사일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어요. 발사하는 그 순간부터 레이더에 포착되어 선택적으로 어느 구간에서나 요격할 수 있으니까요. …… 북한에서 남한을 향해 쏘는 미사일은 고도가 높을 필요가 없어요. …… 싸드는 워낙 고성능이라 북한 핵 전용이라는 용도로만 모기에 딱 들어맞는 시스템은 아니에요.(pp209-210) 

작가의 설명에 의하자면, 미국의 주장은 한 마디로 미국의 본토가 중국으로부터 (그리고 잠재적으로는 러시아까지도 포함) 미사일 공격을 받게 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싸드'의 한국내 배치가 필요하다라는 겁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중국은 그러하기에 한국 정부에 강력하게 이 싸드의 한국내 배치를 반대하고 있는 거구요.3 이 때 중국이 내미는 협박용 카드는 '경제적 제재'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소설은 이를 "중국은 반드시 복수를 합니다"(p289)라는 시진핑 주석의 한 마디로 보여주고 있지요.


"싸드를 받으시면 중국은 맨 먼저 한국을 때려야 합니다. 우리는 엑스밴드 레이더를 파괴하기 위해 싸드 기지를 공격할 겁니다."(p290)

- 시진핑 주석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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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라는 건,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뜻처럼 철저히 감추어져 있기 마련입니다.4 그러니 그 음모에 직접 관여하고 있지 않는 한, 겉으로 보이는 것만 알 수 있지, 그 실제적인 내막은 결코 알 수가 없지요. 작가 김진명은 작가로서의 상상력을 발휘해 그 '감추어진 내막'의 일 가능성에 대해, 그것도 (제 생각에는) 가장 극단적인 상황을 상정하여 이 소설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 '이것은 팩트다!'라는 띠지의 문구는 그저. '극단적인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는 사람의 심리'를 이용하는 마케팅의 일환일 뿐, 역설적으로! 이 소설의 내용이 정말로 사실일 가능성은 그만큼 적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게 옳은 듯 보인다라는 거지요. 하지만!!!


최소한 경제적인 면에서는 조금씩이나마 균형축이 뭔가 움직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현실 하에서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하는 전쟁을 일으켜 이 불편한 상황을 단번에 역전시켜버리려는 생각(현실로 옮길지도 모른다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해볼 수는 있다라는 가정, 하지만! --- 그렇다면 과연 미국은 어떠한 방법으로 중국과의 전쟁을 촉발시키려 할 것인가에 관한 이 소설의 전개는 이를 단순히 '작가적 상상력'이라고만 돌려버리기엔... 언뜻! 충분히 현실적으로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소설을 읽어가는 와중에만큼은 갖게 해주기도 하더군요. (뭐... 이런 게 '음모론'에 빠져들게 되는 흔한 시작이겠죠?)


작가가 제시하고 있는 한 가지는, 미국이 북한을 건드림으로써 중국과의 일전(一戰)을 시작한다라는 것입니다. --- 2013년 3월 25일자 <Foreign Policy>에 실렸던 기사를 보면, 중국은 북한이 붕괴되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란 내용이 있는데, 그 이유로 이러저러한 것들이 거론되고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건 바로 '중국이 미국과 직접적으로 마주보며 대립하길 원하지는 않는다'라는 것이었었죠. ("북한에 대한 다섯가지 오해들" 참조) 소설 속 미국 군사 전문가의 입을 빌어 보여지고 있는 작가 김진명의 시각은 이와는 좀 달라, 중국 지도부가 자신들의 체제 유지를 위해 북한의 붕괴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 북한이 공격당하면 중국이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사정이 있어. 센카쿠는 참을 수 있어도 북한이 공격당하는 건 못 참는 거지. …… 그건 천안문이요. 중국은 기본적으로 공산독재 국가요. 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건 민중의 봉기지. 민주화를 요구하는 민중 봉기. 지난 천안문사태 때 공산당 정권은 죽다 살았소. …… 지금 중국은 온 사방이 비민주 국가로 둘러싸여 있소. 그러나 북한이 붕괴하면 중국은 세계에서 민주화 봉기를 가장 잘 일으키는 나라와 국경을 마주하게 되는 거요.(pp281-283)

● ​중국이라는 나라는 기본적으로 특징적 모순이 있소. 변방의 수많은 소수민족과 압도적인 인구수라는 대단히 통제하기 힘든 요소를, 공산독재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국민을 통제해야만 가능한 이념으로 붙들고 있단 말이오. 게다가 겉으로는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척까지 하고 있지. 언제 터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폭탄을 들고 있는 셈이요. …… 그 폭탄은 여태껏 중국 정부가 보여온 강력한 이미지로 지탱되고 있소. 그런데 중국 정부가 반세기를 형제처럼 지내온 북한을 포기한다? 그러면 그 폭탄은 즉시 터지는 거요. 소수민족들은 죄다 독립을 부르짖으며 떨어져 나가고 민중들은 자유를 외치며 봉기해요. 공산당 정권은 그 순간 끝이오. 그게 그들이 베이징을 폭격당해도 참을 수 있지만 북한을 공격당하는 건 견디지 못하는 이유요.(pp283-284) …… 겉으로 봐서는 미국에게 북한의 핵 개발은 치킨게임 같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오. 거래란 말이오.(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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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도 언급했지만, 일단! 재미있게 술술 읽히는 이 소설은 이러한 복잡한 국제정치의 이면을 한 연구원의 죽음을 조사해가는 과정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록 그 추리 과정에서의 우연/비약이라든가, 혹은 어느정도 억지스러운 면이 적잖이 보여진다5라 말할 수도 있습니다만, 일단!!! --- 이 작품을 '추리 소설'로 분류하지 않을 거라면 굳이 그러한 구성상의 아쉬움들을 문제 삼는다는 건 좀 과한 채찍질이 아닐까라는, 작가를 위한 변명을 해보기는 하겠습니다. 오히려/다만!!!


(싸드의 한국내 배치를) 받으면 중국을 잃고 안 받으면 미국을 잃을 가능성이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의 선택이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를 나는 독자들과 같이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이다.(p8)

물론! 이 소설이 가장 극단적인 경우를 상정해보고 있는 그저 하나의 '작가적 상상의 결과물'일지라 하더라도라는, 위에 인용해 놓은, '독자들과 같이 생각해 보고 싶'다라는 작가 스스로 내비친 의도와는 달리, 시작부터 "미국은 전쟁을 필요로 하는 나라다!"(p5)라는 폴 크루그먼 교수의 발언에 너무도 과도한 집착을 하여, 결국 "싸드는 전쟁입니다."(p350)란 단언(斷言)으로 마무리지어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지극히 극단적인) 상상을 심지어 나름 합리적/현실적인 듯 보이도록 포장해냈다라는 비판은 (저도 포함되어 있는, 보수적 사고/가치관의 독자들로부터는 최소한)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것이라 보입니다.6 

하나 더! 이 소설에서 가장 미스테리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 김윤후 변호사의 마지막 말과 행동7 또한 지나친 단순화의 결과가 아닌가하는 진한 아쉬움을 줍니다. --- 물론 개인마다 어떤 한 현실을 목도하고 느끼는 바의 강도와 파장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겠지만, "중국은 망해야 하는 나라다.(p344)"라 서슴없이 말하는 그의 중국에 대한 격정적 비난, 그리고 그에 반하여 "지구상에 한국을 위해 1조 달러의 돈과 6만 명의 생명, 30만 명의 부상병을 각오하는 나라가 미국 외에 또 있나?(p344)"라는 미국에 대한 지나친 호의적 시선은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라면 아직은 여전히) 보수적이라 말할 수 밖에 없는 저의 시각에서조차 선뜻 이해하기 쉽지는 않더군요.

이와 관련하여, 김윤후 변호사의 옛 동료였자 사건의 해결에 결정적 실마리를 제공하는 로엔트리 변호사라는 인물 역시 매우 흥미롭습니다. --- 미국은 겉으로는 '정의'를 내세우며, 뒤로는 실리를 챙기고 있다라는 비판을 많이 받지요. 어쩌면! 작품 속 로엔트리 변호사가 그러한 미국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미국이 내세우는 '정의'에 대놓고 맞짱 뜰 배짱/힘도 없거니와 선뜻 반박할 수 있는 대응논리조차 만들어내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지요. 로엔트리 변호사를 '미국'이라는 '슈퍼 파워'로 치환시켜본다면, 그에 대한 김윤후 변호사의 마지막 질타 역시, 현실에서와 마찬가지로 논리적으로나 소설 속 이야기의 맥락에서조차 (최소한 저에게는) 언뜻 이해되지 않기도 했습니다. 작가의 고민이... 많이 부족했던 건 아닌가 싶은 부분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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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그래도 골치아픈 일 많은데, 이 '사드'라는 문제에까지 저의 고민을 할애할 여력은 전혀 없습니다. 어쩌면 그럴 의지조차 없을지도 모르구요. 이런 저의 생각에 '너 세상 참 편하게 사는구나'란, 혹시나 제가 들을 지 모를 비판이 주어진다면 --- 그런 일들을 전문적으로 골치아파해하며 해결해내라고 우리가 선거를 하고, 세금을 내 '공무원'이란 직업을 만들어 놓은 거 아니냐란 답을 하고 싶습니다. 게다가 그러한 일들의 해결과정에 일반 국민들의 생각은 전혀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데, 해봐야... 뭐하겠습니까. 다만!!!


이처럼 세상은 다종다양한 사고를 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러한 사고의 표현엔 자유가 주어져 있기에, 김진명이라는 작가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바탕으로 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대한 자신만의 시나리오를 이처럼 써놓은 것입니다. --- 인터넷으로 본 오늘의 뉴스에서도 '싸드의 한국내 배치'에 관한 논란을 다룬 기사들이 여전히 눈에 띕니다. 이 소설과 연관지어 그 기사들을 읽어보니, 이래저래... 지금 박근혜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건 「상실의 시대」에 나왔던, 에우리피데스의 연극 속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정책들에 대한 호불호를, 찬반을, 심지어 애정의 강약마저도 모두 떠나 어.쨌.든! 현재 우리나라를 대표하고 있는 국가기관으로서의 대통령에게, 또한 자연인의 개인에게도 --- 국민으로서 가져야하는 최소 한도의 애정의 극대치가 지금의 제 수준에서는 딱! 여기까지 뿐입니다. 물론! 이건... '국가에 대한 애정'과는 완전히 다른 별개의 것이기도 하구요.)  

자 자!!! 이런 민감하고 중요한 시사적 이슈를 재빨리 집어내어 한 편의 소설로 써낸8 김진명 작가의 작가적 감각/역량에 (감탄과 아쉬움이 섞여 있는) 박수를 보내게는 되지만, 소설은 단지 소설로만 읽읍시다!란 말 또한 이 작품을 읽고 쓴 감상문의 마지막엔 반드시 빼놓지 않고 적어놓고 싶습니다. 이 소설을 읽고... 반미(反美)의 또 다른 가지를 만들어낸다라든가, 소설 속 음모론을 현실에 대입시켜보려는 독자의 상상은 진짜!로... 오바일 겁니다. 이 소설은 그저... '골치 아플 때 읽으면/읽어도 잼난다' 정도로만 해두는 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네요.



※ 이 소설의 중간중간에는 <태프트 리포트>라는 제목으로 미국의 시각(이란 형식을 띤 작가의 시선)에서 바라본 한국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평이 나오는데, 저 개인적으로 문재인 의원이나 안철수 의원에 관한 부분은 시덥지/미덥지 않았습니다만, 맨 처음에 등장하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에 관한 부분은, 그 내용의 사실여부를 떠나 정말로 흥미진진했었습니다. 역시... '비사/음모론'이란 건 접하게 될 때마다 야릇!한 재미를 주기는 하네요. ^^;;  



※ 실재로 존재했었던 우리의 역사에 개입된 저자/작가의 상상들.

- 안소영 著, 「책만 보는 바보

- 백승종 著,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

- 이문열 作, 시인(詩人)

- 문영숙 作, 「에네껜 아이들

- 손정미 作, 「왕경(王京)

- 김훈 作, 「남한산성」 · 「칼의 노래

 

 

 

 

 



 

  1.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missile'의 약자. 미국의 군사기지를 공격하는 적의 중거리미사일을 격추시킬 목적으로 제작된 공중방어시스템이다. 1991년 걸프전 당시 이라크의 스커드미사일 공격에 대한 방어망체제의 구축 요청에 따라 개발되었다. 1992년부터 개발이 완성되기까지 THAAD 개발에 40억달러가 투입되었다. 1999년 시험발사가 거듭 실패하자 돈만 들어가는 무용한 시스템이라며 의회의 공격에 직면하였다. THAAD 개발을 맡은 록히드마틴사는 1998년 3월 6번째 시험발사에 실패, 국방부에 1500만 달러의 벌금을 물어야 하였다. 결국 1999년 6월 처음으로 미사일 요격에 성공하였다. THAAD는 지상 배치이동형으로, 패트리어트미사일보다 상층권에서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고, 속도와 정확성도 높다. 패트리어트도 요격 미사일이지만, 저고도 요격용이라는 점과 목표 미사일을 바로 타격하지 않고 접근 후 자체 폭발로 요격효과를 거둔다는 점에서 THAAD와 다르다. -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2. 'Missile Defense'의 약자. 미국 본토가 대륙간 탄도미사일로부터 공격을 받을 경우 고성능 요격미사일을 발사해 요격함으로써 미국 본토 전체를 방어한다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 전략. - 출처 : 네이버 <두산백과>
  3. 현실에서는 미국과 중국 모두 이 두가지 속내를 최소한 겉으로는 말하고 있지 않지요. 서로 딴 이유를 대며 말싸움을 하고 있고, 정작 그 판이 깔릴 곳인 우리나라는 그 사이에서 죽도 밥도 못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4. 이렇게 써놓고 보니, 두 가지의 해석이 가능도 해지는군요. ^^;;
  5. 사실 전투모드로 읽어가면서 작정하고 집어내보면 엄청나게 나오긴 할겁니다.
  6. 이런 시나리오를 썼다는 것 자체를 비난해서는 안되겠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처럼 포장해 낸 비판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가치관에 따라선 얼마든지 가능하다 생각합니다.
  7. 이 부분이 소설의 전체적 결말이기도 하기에 더더욱 의아했었고, 결과적으로 이것이 이 작품에 대한 만족도를 많이 갉아먹게 되었지요.
  8. 반면, 이러한 '시의성'이 일종의 독으로 작용된 면이 커보이기도 합니다. 뭔가 '이때다!'싶게 이 작품을 세상에 내놓아야만 한다라는 조바심이 이 소설의 결말을 많이 망친 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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