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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마지막 밤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33
로랑 고데 지음, 이현희 옮김 / 민음사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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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기억을 지워주는 복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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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토 가나에 作, 「고백」에 나오는 주인공 유코의 독백입니다. 당시 저는 이 작품을 '성공한 복수라해도 그것이 아픈 기억 자체를 없애줄 수는 없다'라는 메세지로 읽었더랬고, 그러한 이해는 이후 '복수'에 관한 여타 소설들을 읽어본 후인 지금에도 저에게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 <그가 내 아이를 죽였고, 그래서 나도 그를 죽였다>라는 도식이 지니고 있는 '사형(私刑)'에 관한 옳고 그름에 대한 논쟁을 떠나, '복수'라는 행위는 어쨌든!!! 감정의 분풀이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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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그렇게 화가 난 채로 헤어진 것이다. …… 그리하여 죽음의 순간으로 몰아넣은 그의 분노를 도대체 무엇이 정당화해 줄 수 있을까? …… 인도 위에서든 구급차 안에서든 아들과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었더라면, 아빠가 여기 있고 너를 무척 사랑한다고, 아빠가 화냈던 건 이미 다 잊었고 아무 일도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었더라면. 피포는 침묵 속에서, 분노하는 아버지 곁에서 죽었다.(pp56-57)
아들의 손을 끌어잡고, 학교에 늦지않게 데려다 주기 위해, 조금만 천천히/쉬었다 가자는 아이의 애원을 무시한 채 발걸음을 재촉했던 마테오는 자신의 재촉으로 인해/탓에 '그 시각, 그 장소'에 도달했었고, 마침 '그 시각, 그 장소'에서 벌어졌었던 갱단들간의 총격전에 의해 아들 피포를 잃게 됩니다. 이후 마테오의 아내 줄리아나는 아들을 죽인 자에 대한 직접적인 '복수'를 마테오에게 원했더랬습니다만, 마테오는 그저 멍한 하루하루를 보낼 뿐이었었죠. 이런 마테오의 모습에 줄리아나는 '그들에게 닥친 재앙에 대해 그가 너무 빨리 체념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p70)를 느끼게 되었고, 결국 마테오를 떠나고 맙니다.
"내 아들을 돌려줘, 마테오. 내놓으라고.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적어도 내 아들을 죽인 놈이라도 데려오란 말이야!"(p71) …… "당신이 돌아오면 피로 얼룩진 옷을 내가 세탁해 줄게."(p84)
줄리아나가 그토록 '직접적 복수'에 집착했었던 이유를 독자는 알 수 없으나, 마테오는 그 복수가 최소한 '두 사람에게 아들을 돌려주지는 않겠지만, 어쩌면 다시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p72)라는 생각에 기어이 권총을 들고 죽은 아들의 복수를 하러 집을 나섭니다. 하지만/헌데!!!
'자신의 아이가 누군가에 의해 죽었다'와 같은 극단적 상황을 제외한, 그저 일반적인 '복수'(의 행위)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본다면, 「고백」에서 보여졌던 주인공 유코의 독백은, 비록 가슴은 아프지만 '복수'란 것이 내포하고 있는 (논리적) 한계로서의 허망함, 즉! 복수를 완결했다 하여 내게서 떠난 사람/무엇이 다시 되돌아오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말이 될 겁니다. 여기서!!! --- 죽은 피포의 아버지인 마테오는 (결과적으로는 어쨌든/어차피 단순한 감정적 분풀이에 그칠 수 밖에 없는) '복수'가 아닌, 사건의 근본적 해결을 시도하기로 마음을 바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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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로랑 고데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찾아낸 모티프를 바탕으로 소설적 허구 세계를 구축하는 정통 서사만을 고집'(p318)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이 작품 「세상의 마지막 밤」 역시 '독사에게 발목을 물려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찾아 지옥으로 떠난 그리스 신화 최고의 시인이자 악인(樂人) 오르페우스의 신화를 모티프로 했다'(p318)는군요. 그렇게...
마테오는 (어떠어떠한 과정을 거쳐) 지옥으로 통하는 현실에 문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단순한 '복수'가 아닌 '사건의 근본적 해결'이 될) 아들 피포를 다시 이승으로 데려오기 위해 그 지옥의 문으로 직접 들어가기로 결심합니다.
"피포를 나에게 데려와." 그녀가 말했더랬다. 그는 분명히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더랬다. 그곳으로 내려갈 것. 아이를 만나 데려올 것. 아니면 적어도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다시 한 번 꼭 끌어안아 줄 것.(p187)
절대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어긴 오르페우스는 또다시 아내를 잃게 된다라 말하고 있는 신화와는 약간 다르게, 이 작품에서는 마테오가 아들 피포를 이승으로 되돌려보내는 대가로 자신이 지옥에 남아야 한다는 선택을 강요받지요. (사뭇... 나라도 당연히 그렇게 했었을꺼야!란 말을 쉽게 나오지 않게 만드는 설정의 부정(父情)입니다. --;;)
지옥을 탈출하는 데 성공한 이는 태초 이래 아무도 없었다.(p219) …… "(지옥의) 문은 너를 다시 내보내 주지 않을 것이다. 네가 영혼 하나를 가져왔으니 문은 그 대가로 생명을 요구한다."(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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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으로는 어떤 용어를 써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상당히 기피하는/좋아하지 않는 장르인 한 편의 '판타지 소설'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 이 소설은 결국! --- 일상적 의미의 '복수'라는 것이 마테오가 아닌 다시 살아돌아온 그의 아들 피포에 의해 훗날 완성이 되긴 합니다만, 그 복수 역시 '마테오-줄리아나-피포'로 이루어져있던 그 가정의 행복을 되돌려주지 못했으며, 그 뿐 아니라 더 피폐해진 결과만을 낳고 있다라는 걸 보여주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저의 개인적 취향이 분명하게 작용된 탓이겠지만) 사실 읽어내는 것 자체마저도 적잖이 지루했었었으며,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복수'라는 것의 의미 또한 별반 새로울 것이 없었었던, 그렇다고 작가의 표현력이 매력적이지도 못했던, 그냥 밍밍...한 작품일 뿐이었다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설에서 보여지고 있는 부성(父性)과 모성(母性)의 차이를 일반화시켜 받아들이기는 분명 무리겠지만, 저 역시 한 아들의 아버지이기에 (억지로라도) 저의 감정을 이입시켜본 채 읽었었던 다음의 구절만이 그나마 가슴 찡한 무엇을 안겨주었었다랄까요? 결국엔 그저... 이 소설엔, 저의 독해로는 잡아내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는가 보다라 자위/체념할 수 밖엔 없을 듯 합니다. --;;
얼굴을 맞댄 그들은 이제 두 번 다시는 서로의 곁에서 함께 살아가고 함께 늙어 갈 기쁨을 얻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한 사람이 언제나 부족할 것이고 그 부재와 더불어 살아가야 할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 그들은 그러므로 고작 육 년만 함께한 셈이었다. 서로에게 매료되었던, 서로 알고 지냈던, 서로 친해졌던, 서로 배움을 주고받았던 육 년, 육 년이라는 짧은 삶, 그리고 그 나머지, 나머지 모든 것은 빼앗겼다.(pp236-237)
- 그러하기에, 일단 하려고 맘먹었다면 '복수' 자체는 통쾌해야한다라 생각하는 겁니다.
- 마테오가 왜! 직접적 복수에 머뭇거렸었는지 저로서는 온전히 이해되지 않았습니다만, 결과적으로만 보자면 그가 "모든 기억을 지워주는 복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라 표현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 이런 경우, 복수하고 싶다는 마음이야 모든 부모들에게 다 생겨나는 것이겠지만, 왜! 다른 방법이 아닌 꼭 '직접적 복수'를 원했었던 걸까라는 의문에 대한 해답이 이끌어내어지는 과정을, 제 독해의 능력 이내에서는, 이 작품 속에서 찾아낼 수 없었다라는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