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뀌고 나면 쏟아지곤 하는 각종 '비사秘史'류의 기사들을 읽어보면, 예를 들어 제가 지금 감상문을 작성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누군가들이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주고받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라는 걸 결코 헛된 상상이라고 할 수만은 없게 됩니다. 그러하기에 그러한 일들에 '비사秘史'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일테고, 많은 경우 이러한 '비사'들은 곧 수많은 '음모론陰謨論'의 탄생의 결정적 서막이 되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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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치가 많이 아픕니다. 게다가... 이유를 알 수 없이, (요즘 종종 말들 하는 '햄릿 증후군'이랄 것까지야 없겠지만) 암튼 어떤 책을 읽어야할지 고르는 것 또한 쉽지 않기만 한, 골랐다해도 몇 장 넘기지 못하고 덮어버리길 여러 번 했던 요즈음이기도 합니다. 사실 2015년의 독서는 호흡 긴, 그리고 뭔가 하나의 연속된 주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해보겠다란 연초의 결심이 있었습니다만 이래저래... 선뜻 두꺼운 책 혹은 시리즈 류의 책들은 잘 집어지지가 않네요. --- 인터넷으로 들여다보는 신문에서 요즘들어 '사드THAAD'라는 단어를 자주 보게 됩니다. 마침!!! 산책 차 들렀던 (저... 머리 식히러 서점 가는 남자입. ^^;;) 알라딘 중고서점에 김진명 작가의 이 책 「싸드 THAAD」가 있어, 대체 그게 뭐길래?하는 호기심에 사 읽어봤습니다. 글찮아두 골치 아픈데... 월간지나 100분 토론으로 그게 뭔지를 알아내는 것두 좀 그렇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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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소설은 무지하게 재미있게는 읽힙니다. 읽다보면 어느새100여 페이지가 훅 넘어가 있고 그렇더군요. 게다가 길지도 않아요. 맘만 먹는다면 퇴근 후, 막걸리 한두 통 비울 시간이면 다 읽어낼 수도 있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죠.
뭐... 어차피 전문적인 건 관심도 적거니와 관심을 가지려 해도 금새 막혀버립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한 인물이 설명해주고 있는 '싸드'의 정체를 인용해 보는 것으로도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메세지를 이해하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생각하기에 이 정도로만 '싸드란 게 과연 뭐길래?'의 의문을 풀어보기로 하죠. (이에 관한 좀 더 전문적 내용은 "THAAD, SM-3 미사일", 국제정치적 시각의 분석은 "사드 한반도 배치 논란" --- 물론 더 검색해보면 새로운 사실/이면을 알게 될 수도 있겠으나, 소설 「싸드」를 이해하기엔 이 두 개의 기사들만으로도 차고 넘친다 생각합니다.)
애초에 MD는 아무리 개량을 해도 요격 성공률 100퍼센트가 나올 수 없어요. …… 여하튼 MD는 한 가지 조건이 있어야만 제대로 기능할 수 있어요. …… MD를 살리려면 무조건 싸드를 한국에 배치해야만 해요. ……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은 중국을 적국으로 상정하고 전개되고 있어요. 겉으로는 북한 핵과 미사일을 들먹이지만 실제로는 중국이에요. 원래 MD는 중국의 미사일이 날아오면 태평양 상공에서 격추시키도록 되어 있었지만, 성공률이 너무 낮아 싸드를 중국에 가장 가깝게 배치해야만 MD가 살아요. …… 일단 이 싸드를 한국에 배치하면 대륙간탄도탄을 포함한 중국의 모든 미사일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어요. 발사하는 그 순간부터 레이더에 포착되어 선택적으로 어느 구간에서나 요격할 수 있으니까요. …… 북한에서 남한을 향해 쏘는 미사일은 고도가 높을 필요가 없어요. …… 싸드는 워낙 고성능이라 북한 핵 전용이라는 용도로만 모기에 딱 들어맞는 시스템은 아니에요.(pp209-210)
작가의 설명에 의하자면, 미국의 주장은 한 마디로 미국의 본토가 중국으로부터 (그리고 잠재적으로는 러시아까지도 포함) 미사일 공격을 받게 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싸드'의 한국내 배치가 필요하다라는 겁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중국은 그러하기에 한국 정부에 강력하게 이 싸드의 한국내 배치를 반대하고 있는 거구요. 이 때 중국이 내미는 협박용 카드는 '경제적 제재'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소설은 이를 "중국은 반드시 복수를 합니다"(p289)라는 시진핑 주석의 한 마디로 보여주고 있지요.
"싸드를 받으시면 중국은 맨 먼저 한국을 때려야 합니다. 우리는 엑스밴드 레이더를 파괴하기 위해 싸드 기지를 공격할 겁니다."(p290)
- 시진핑 주석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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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라는 건,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뜻처럼 철저히 감추어져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그 음모에 직접 관여하고 있지 않는 한, 겉으로 보이는 것만 알 수 있지, 그 실제적인 내막은 결코 알 수가 없지요. 작가 김진명은 작가로서의 상상력을 발휘해 그 '감추어진 내막'의 일 가능성에 대해, 그것도 (제 생각에는) 가장 극단적인 상황을 상정하여 이 소설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 '이것은 팩트다!'라는 띠지의 문구는 그저. '극단적인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는 사람의 심리'를 이용하는 마케팅의 일환일 뿐, 역설적으로! 이 소설의 내용이 정말로 사실일 가능성은 그만큼 적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게 옳은 듯 보인다라는 거지요. 하지만!!!
최소한 경제적인 면에서는 조금씩이나마 균형축이 뭔가 움직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현실 하에서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하는 전쟁을 일으켜 이 불편한 상황을 단번에 역전시켜버리려는 생각을 (현실로 옮길지도 모른다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해볼 수는 있다라는 가정, 하지만! --- 그렇다면 과연 미국은 어떠한 방법으로 중국과의 전쟁을 촉발시키려 할 것인가에 관한 이 소설의 전개는 이를 단순히 '작가적 상상력'이라고만 돌려버리기엔... 언뜻! 충분히 현실적으로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소설을 읽어가는 와중에만큼은 갖게 해주기도 하더군요. (뭐... 이런 게 '음모론'에 빠져들게 되는 흔한 시작이겠죠?)
작가가 제시하고 있는 한 가지는, 미국이 북한을 건드림으로써 중국과의 일전(一戰)을 시작한다라는 것입니다. --- 2013년 3월 25일자 <Foreign Policy>에 실렸던 기사를 보면, 중국은 북한이 붕괴되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란 내용이 있는데, 그 이유로 이러저러한 것들이 거론되고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건 바로 '중국이 미국과 직접적으로 마주보며 대립하길 원하지는 않는다'라는 것이었었죠. ("북한에 대한 다섯가지 오해들" 참조) 소설 속 미국 군사 전문가의 입을 빌어 보여지고 있는 작가 김진명의 시각은 이와는 좀 달라, 중국 지도부가 자신들의 체제 유지를 위해 북한의 붕괴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 북한이 공격당하면 중국이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사정이 있어. 센카쿠는 참을 수 있어도 북한이 공격당하는 건 못 참는 거지. …… 그건 천안문이요. 중국은 기본적으로 공산독재 국가요. 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건 민중의 봉기지. 민주화를 요구하는 민중 봉기. 지난 천안문사태 때 공산당 정권은 죽다 살았소. …… 지금 중국은 온 사방이 비민주 국가로 둘러싸여 있소. 그러나 북한이 붕괴하면 중국은 세계에서 민주화 봉기를 가장 잘 일으키는 나라와 국경을 마주하게 되는 거요.(pp281-283)
● 중국이라는 나라는 기본적으로 특징적 모순이 있소. 변방의 수많은 소수민족과 압도적인 인구수라는 대단히 통제하기 힘든 요소를, 공산독재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국민을 통제해야만 가능한 이념으로 붙들고 있단 말이오. 게다가 겉으로는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척까지 하고 있지. 언제 터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폭탄을 들고 있는 셈이요. …… 그 폭탄은 여태껏 중국 정부가 보여온 강력한 이미지로 지탱되고 있소. 그런데 중국 정부가 반세기를 형제처럼 지내온 북한을 포기한다? 그러면 그 폭탄은 즉시 터지는 거요. 소수민족들은 죄다 독립을 부르짖으며 떨어져 나가고 민중들은 자유를 외치며 봉기해요. 공산당 정권은 그 순간 끝이오. 그게 그들이 베이징을 폭격당해도 참을 수 있지만 북한을 공격당하는 건 견디지 못하는 이유요.(pp283-284) …… 겉으로 봐서는 미국에게 북한의 핵 개발은 치킨게임 같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오. 거래란 말이오.(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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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도 언급했지만, 일단! 재미있게 술술 읽히는 이 소설은 이러한 복잡한 국제정치의 이면을 한 연구원의 죽음을 조사해가는 과정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록 그 추리 과정에서의 우연/비약이라든가, 혹은 어느정도 억지스러운 면이 적잖이 보여진다라 말할 수도 있습니다만, 일단!!! --- 이 작품을 '추리 소설'로 분류하지 않을 거라면 굳이 그러한 구성상의 아쉬움들을 문제 삼는다는 건 좀 과한 채찍질이 아닐까라는, 작가를 위한 변명을 해보기는 하겠습니다. 오히려/다만!!!
(싸드의 한국내 배치를) 받으면 중국을 잃고 안 받으면 미국을 잃을 가능성이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의 선택이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를 나는 독자들과 같이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이다.(p8)
물론! 이 소설이 가장 극단적인 경우를 상정해보고 있는 그저 하나의 '작가적 상상의 결과물'일지라 하더라도라는, 위에 인용해 놓은, '독자들과 같이 생각해 보고 싶'다라는 작가 스스로 내비친 의도와는 달리, 시작부터 "미국은 전쟁을 필요로 하는 나라다!"(p5)라는 폴 크루그먼 교수의 발언에 너무도 과도한 집착을 하여, 결국 "싸드는 전쟁입니다."(p350)란 단언(斷言)으로 마무리지어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지극히 극단적인) 상상을 심지어 나름 합리적/현실적인 듯 보이도록 포장해냈다라는 비판은 (저도 포함되어 있는, 보수적 사고/가치관의 독자들로부터는 최소한)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것이라 보입니다.
하나 더! 이 소설에서 가장 미스테리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 김윤후 변호사의 마지막 말과 행동 또한 지나친 단순화의 결과가 아닌가하는 진한 아쉬움을 줍니다. --- 물론 개인마다 어떤 한 현실을 목도하고 느끼는 바의 강도와 파장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겠지만, "중국은 망해야 하는 나라다.(p344)"라 서슴없이 말하는 그의 중국에 대한 격정적 비난, 그리고 그에 반하여 "지구상에 한국을 위해 1조 달러의 돈과 6만 명의 생명, 30만 명의 부상병을 각오하는 나라가 미국 외에 또 있나?(p344)"라는 미국에 대한 지나친 호의적 시선은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라면 아직은 여전히) 보수적이라 말할 수 밖에 없는 저의 시각에서조차 선뜻 이해하기 쉽지는 않더군요.
이와 관련하여, 김윤후 변호사의 옛 동료였자 사건의 해결에 결정적 실마리를 제공하는 로엔트리 변호사라는 인물 역시 매우 흥미롭습니다. --- 미국은 겉으로는 '정의'를 내세우며, 뒤로는 실리를 챙기고 있다라는 비판을 많이 받지요. 어쩌면! 작품 속 로엔트리 변호사가 그러한 미국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미국이 내세우는 '정의'에 대놓고 맞짱 뜰 배짱/힘도 없거니와 선뜻 반박할 수 있는 대응논리조차 만들어내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지요. 로엔트리 변호사를 '미국'이라는 '슈퍼 파워'로 치환시켜본다면, 그에 대한 김윤후 변호사의 마지막 질타 역시, 현실에서와 마찬가지로 논리적으로나 소설 속 이야기의 맥락에서조차 (최소한 저에게는) 언뜻 이해되지 않기도 했습니다. 작가의 고민이... 많이 부족했던 건 아닌가 싶은 부분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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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그래도 골치아픈 일 많은데, 이 '사드'라는 문제에까지 저의 고민을 할애할 여력은 전혀 없습니다. 어쩌면 그럴 의지조차 없을지도 모르구요. 이런 저의 생각에 '너 세상 참 편하게 사는구나'란, 혹시나 제가 들을 지 모를 비판이 주어진다면 --- 그런 일들을 전문적으로 골치아파해하며 해결해내라고 우리가 선거를 하고, 세금을 내 '공무원'이란 직업을 만들어 놓은 거 아니냐란 답을 하고 싶습니다. 게다가 그러한 일들의 해결과정에 일반 국민들의 생각은 전혀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데, 해봐야... 뭐하겠습니까. 다만!!!
이처럼 세상은 다종다양한 사고를 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러한 사고의 표현엔 자유가 주어져 있기에, 김진명이라는 작가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바탕으로 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대한 자신만의 시나리오를 이처럼 써놓은 것입니다. --- 인터넷으로 본 오늘의 뉴스에서도 '싸드의 한국내 배치'에 관한 논란을 다룬 기사들이 여전히 눈에 띕니다. 이 소설과 연관지어 그 기사들을 읽어보니, 이래저래... 지금 박근혜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건 「상실의 시대」에 나왔던, 에우리피데스의 연극 속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정책들에 대한 호불호를, 찬반을, 심지어 애정의 강약마저도 모두 떠나 어.쨌.든! 현재 우리나라를 대표하고 있는 국가기관으로서의 대통령에게, 또한 자연인의 개인에게도 --- 국민으로서 가져야하는 최소 한도의 애정의 극대치가 지금의 제 수준에서는 딱! 여기까지 뿐입니다. 물론! 이건... '국가에 대한 애정'과는 완전히 다른 별개의 것이기도 하구요.)
자 자!!! 이런 민감하고 중요한 시사적 이슈를 재빨리 집어내어 한 편의 소설로 써낸 김진명 작가의 작가적 감각/역량에 (감탄과 아쉬움이 섞여 있는) 박수를 보내게는 되지만, 소설은 단지 소설로만 읽읍시다!란 말 또한 이 작품을 읽고 쓴 감상문의 마지막엔 반드시 빼놓지 않고 적어놓고 싶습니다. 이 소설을 읽고... 반미(反美)의 또 다른 가지를 만들어낸다라든가, 소설 속 음모론을 현실에 대입시켜보려는 독자의 상상은 진짜!로... 오바일 겁니다. 이 소설은 그저... '골치 아플 때 읽으면/읽어도 잼난다' 정도로만 해두는 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네요.
※ 이 소설의 중간중간에는 <태프트 리포트>라는 제목으로 미국의 시각(이란 형식을 띤 작가의 시선)에서 바라본 한국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평이 나오는데, 저 개인적으로 문재인 의원이나 안철수 의원에 관한 부분은 시덥지/미덥지 않았습니다만, 맨 처음에 등장하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에 관한 부분은, 그 내용의 사실여부를 떠나 정말로 흥미진진했었습니다. 역시... '비사/음모론'이란 건 접하게 될 때마다 야릇!한 재미를 주기는 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