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 생명체를 찾아서 과학과 사회 2
프랑수아 롤랭 지음, 김성희 옮김 / 알마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외계지성체의 방문과 인류종말의 문제에 관하여」가 ('외계 생명체란 게 어딘가에 있기는 할 꺼야' 수준의 독자였던 제가) 선뜻 받아들이기엔 지나치게 앞서 나간/쇼킹했던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었다라면, 이 책 「외계 생명체를 찾아서 그와는 완전히 반대로, 우주과학자에 의해 쓰여진, 그야말로 과학적 시선에서 단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은, 객관적 사실에 대한 서술들만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이는 곧 --- 그 내용이 (뭔가 너무 뻔한 그리고 딱딱한 이야기로 읽혔다라는 점에서) 그리 흥미롭지는 않았다라는 거지요.


………………………………………………………………………

​자연과학자답게 저자 프랑수아 롤랭은 우선 '생명체란 무엇인가? 생명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라는 매우 기본적인, 하지만 우리가 쉬이 간과하고 있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개체가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환경과 함께 물질·에너지를 교환하고 번식하며 자연 선택에 따라 그 종(種)이 진화할 때 그 개체를 두고 살아 있다고 말한다.(p57)

'생명'이라는 것에의 자연과학의 정의(定義)는 이처럼 뭔가 복잡하더군요. 하지만! 이 복잡한 설정의 정의에도 한계랄까, 문제랄까하는 것이 있습니다. 현재의 우리에게 확실한 실례(實例)로 주어져 있는 생명체라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지구 생명체밖에 없기에, 외계 생물학에서 사용가능한 '생명의 정의' 역시 어쩔 수 없이 지구 생명체를 기준으로 삼을 수 밖엔 없다라는 점이 바로 그것이지요. 본문 속에서 보여지는 이러한 아쉬움을 보완해주려는 듯, 그 한계에 대한 --- 앞서 읽었던 「외계지성체의 방문과 인류종말의 문제에 관하여」의 감상문에서 제가 "우리가 이 광활한 우주의 수도 없이 많은 행성체들에 굳이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 생명체'와 비슷한 생체구조를 지닌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완전히 다른 환경에 적합한, 완전히 다른 차원의 생명체가 존재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라 적었었다라는 것에 한 번쯤은 은근 우쭐!해봐도 될만한 --- 서술이 이 책의 <해제>에 등장하고 있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유일한 생명체는 지구 생물이기 때문에 외계의 생명체도 지구의 생명체와 같은 생물학적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 아래 그들에게도 우리의 생물학을 적용해왔다. 이 가정이 옳았는지 아닌지 또한 밝혀질 것이다. 우주 어느 곳에 산소 대신 암모니아를 호흡한다거나 물대신 술을 마신다거나(꺄오!) 광물을 먹고 산다거나 하는 생물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pp10-11)

이러한 보충 설명이 있긴하지만 안타깝게도(?) --- 과학자에 의해 쓰여진 이 책(의 본문)은 예의, 이러한 가능성을 일단은 배제한 채, 온전히 '확실하게 밝혀진 것'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은 채 쓰여져 있습니다. 저자 역시 이러한 질문을 던져보고는 있습니다만, 그 해답에 이르러서는 예의 현재까지 밝혀진 과학의 테두리를 정확하게 지켜내고 있다라는 거지요.


외계 생명체도 상당한 다양성을 보일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1 그처럼 다양하더라도, 지구 생명체의 세포에 해당하는 공통된 단위는 외계 생명체에게도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분자 차원은 어떨까?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는 … 액체 상태 물에서의 탄소의 화학에 기초하고 있다. 생명체가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상상해볼 수 있을까?(p101) …… 외계 생물학자들은 외계 생명체가 (지구 생명체와 동일하게) 탄소에 기초하고 액체 상태의 물을 사용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p104)

 

·

·

·

​비가 온 다음 날, 온갖 쓰레기로 가득차 있는 드럼통에 고여 있는 약간의 물 속에 수많은 올챙이들(같이 생긴)이 헤엄치고 있는 걸 보며, 정말로 '생명'이란 신기해 죽겠는 거구나란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개구리가 낳은 것이라고 밖엔 결론지을 수 없겠지만, 공장 지대의 도로가에 놓여 있는 드럼통에 난데 없이 개구리가 나타나 그 낮지 않은 높이를 점프해 올라가 산란을 했을 것이다란 추측이 여전히 선뜻 믿기 어려운 건 사실이지요.) 이와 똑같은 구조의 논리로 --- (예의, 외계 생명체 역시 지구 생명체와 동일한 생체 구조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전제 아래에서) 저자 역시 외계 생명체, 그것도 지성을 갖춘 외계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다라는 것에는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습니다만,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지도/는 않습니다. (이 상호배타적인 서술은 '매우 희박'이라는 표현과 '매우 높다'라는 상반된 의미의 표현이 동시에 쓰여지고 있는 다음의 인용에서 극명하게 보여지고 있지요. 아래의 서술은 사실 '외계 생명체는 지구 생명체와 동일한 생체 구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라는 전제를 포기할 때에만 동시에 성립가능해지는게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기는 합니다. 어쨌든! 아래의 서술을 좀 더 명확하고 간단하게 표현해낸 것이 바로 "증거의 부재가 곧 부재의 증거는 아니다"라는 칼 세이건의 표현이라 생각됩니다.)

지구에 생명체가 출현하여 우리가 가장 발전된 생명체라고 (조금은 지나치게 자주) 생각하는 인간으로 진화할 때까지 일어난 일이 외계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결론지어 말할 수는 없다. 지구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결과를 낳기 위해 필요한 모든 과정이 일어날 가능성은 아마도 매우 희박할 것이다. 그러나 드레이크의 공식2에서처럼 우주의 광대함과 우주에 존재하는 별의 수를 적용했을 때 그 답이 제로는 아닐 것으로 생각된다. 우주에서 유일하게 생각을 하는 존재가 우리 인간만이 아닐 가능성은 매우 높다.(p123)

………………………………………………………………………

외계인은 분명 존재하며, 이미 그들와 인간 사이의 혼혈(hybrid) 뿐 아니라 인간의 외양와 비슷한 2차 혼혈종(hubrid)까지 우리 속에 침투·정착해 있을 것이다라 (과감히!) 주장했던 「외계지성체의 방문과 인류종말의 문제에 관하여」와는 달리, 이 책은 '태양계에서 기술적으로 진보한 지적 생명체가 살고 있는 행성은 지구가 유일한 것으로 보인다'(p130)라는, 사뭇 이 책을 펼치기 전 이 책에 대해 가졌었던 (뭔가 또 다른 쇼킹함을 바래었던) 저의 기대에는 부합하지 않는 실망스러운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실망은 사실 '이 책은 외계 생명체에 관한 과학 연구 분야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기술한 것이다'(p20)라는 책의 목적을 제가 이해하지 못한 채 단지 '외계 생명체를 찾아서'라는 제목에 혹해 선택했던 저의 판단 미스로부터 기인된 것이기도 하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연구는 무엇보다도 우리 지구를 더 잘 이해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바라건데 우리가 지구를 지키도록 도와줄 수도 있을 것이다."(p22)


라는 저자의 일성은 또한 --- 앞서 읽었던 「외계지성체의 방문과 인류종말의 문제에 관하여」가 보여주었던 결론과도 결국엔 일맥상통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인류보다 월등한 문명을 지닌 외계인의 침공에 의해 우리 지구가 멸망하게 될 확률3보다는 확실히!!! (「캡틴 선더볼트」에서도 볼 수 있었듯!) 우리 인간들 스스로에 의해 이 지구가 멸망하게 될 확률4이 훨씬 더 높은 건, 아무래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테니까 말이죠.  


※함께 읽어보면 좋을 책들 :

- 최준식 · 지영해 共著, 외계지성체의 방문과 인류종말의 문제에 관하여

- 피에르 불 作, 혹성탈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외계지성체의 방문과 인류종말의 문제에 관하여 - 대답 없는 우주에 대답을 던지는 두 지성 간의 대화
최준식.지영해 지음 / 김영사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정도되면 믿을 수 있을지 따지는 단계를 훌쩍 넘어서 버린 것 같습니다.(p135) …… 이 동네는 어차피 상상력이 많이 필요한 곳이라 용을 쓰면서 상상을 해봅니다.(p176)

이화여자대학의 교수인 저자조차 자신들이 나누고 있는 토론의 내용에 대해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을 정도니, 저같은 일반 독자로서는 그야말로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는 책입니다. 또 다른 저자인 지영해 교수가 '외계인의 지구인 피랍 사건에 관한 세계적인 권위자'라는데, 대체 이런 학문 분야가 있었던 거야!라 놀랄 수 밖엔 없는 거지요.1 헌데 말입니다! --- 이 두 분, 정말 진지하게 '외계인'에 대한 토론을 나눕니다. '자신이 지성인이라면 UFO 현상을 연구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그런 현상이 무엇인지 알려고는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p15)라며 말이죠.

·

·

·

 

'외계인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을 해보죠. 당연히 이 책의 두 저자는 외계인의 존재를 기정 사실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인간 이외의 지성체가 그 어느 곳에든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건 거의 필연적으로 종교관과도 관계되겠지만, 그렇다해도 하나님께서 인간만을 창조하셨다고 믿어야 할 근거는 없으니까요.

 

외계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의 99.9퍼센트는 관련된 데이터에 대한 지식이나 분석 없이 하나의 '믿음'의 차원에서 즉각적으로 '외계인은 없다'라는 결론으로 점프를 합니다. 그것은 그저 그런 존재는 있을 수없다는 현재의 과학적 패러다임의 입장을 다시 한 번 반복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하나의 합리적 판단으로부터 도출된 입장이 아니라, 하나의 맹목적 믿음의 입장인 것입니다.(p47)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의 생명체가, 그 불가능이라 말해질 수 있는 확률로 그들의 생존에 적합한 환경을 지닌 지구 상에 살고 있다라는 것 자체가 신의 존재와 그에 의한 창조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근거라고 창조과학은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건 너무도 빈약한 논리이지요. 그들은 지구가 보여주고 있는 모든 조건들이 인간을 비롯한 여타 생명체들의 생존을 위해 기가 막히게 셋팅되어 있다라 말합니다만, 오히려 이걸 거꾸로 보는, 그러니까 그러한 조건들에 맞게 생존할 수 있었던, 그리하여 지금까지 생존해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을 비롯한 여태 생명체라는 논리가 훨씬! 더 설득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좀 더 확장시켜본다 심지어 --- 우리가 이 광활한 우주의 수도 없이 많은 행성체들에 굳이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 생명체'과 비슷한 생체구조를 지닌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완전히 다른 환경에 적합한, 완전히 다른 차원의 생명체가 존재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암튼!!!


지영해 교수의 세부 전공인 '피랍 체험 연구'가 가지는 의의를 이 책은 --- 직접 외계인을 만나고 UFO를 타보는 것이 외계인의 존재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될 것이나 그것이 불가능하므로, 외계인의 우주선에 다녀왔다는 사람들2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외계 생명체를 이해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3 그렇다면 대체 외계인들은 왜! 지구를 방문하는 이며, 또 무슨 이유로 지구인을 납치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 이 책은 "UFO는 왜 나타나는가? → 인간을 납치하기 위해 → 왜 인간을 납치하는가? → 인간 연구, 생체실험 및 혼혈종 생산을 위해 → 왜 인간을 연구하고 생체실험을 하고 혼혈종을 생산하는가? → 인간과 비슷한 종을 만들기 위해 → 왜 인간과 비슷한 종을 만드는가? → 인간 사회에 스며들기 위해'(pp 91-92)라는, 그야말로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던 논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걸 그냥 따라보기로 한다해도 곧이어 '대체 왜! 인간 사회에 스며들려하는가?'라는 의문이 자연스레 생겨나게 되지요.

20세기 들어서 빈번히 인간에게 나타나는 이유는 인류의 존재를 끝장낼 수 있는 두 가지 위협, 즉 핵전쟁의 위험성과 지구환경 파괴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p198) …… 인류 전체가 자멸할 상황에 다다르니까 외계인들이 나선 것이라는 이야기죠.(p207) …… 외계인의 출현은 결국 인간이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니까 외계인들이 직접 개입하는 것이라고 봅니다.(p233)

지영해 교수는 아예 '외계인의 지구 관리'라는 표현까지 쓰고 있기도 합니다. 그들의 목적이 지구 자체의 공간을 탐하는 건 아니며, 단지 지구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적합한 형태의 인종에 의한 지구의 존속을 원한다라는 거지요. 그럼 대체 외계인들이 왜 그토록 지구의 존속을 중요시 하는걸까요? --- 외계인들이 존재하고 있는 공간 역시 지구의 환경 변화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그들이 지구의 존속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고 저자들은 말합니다. : "인간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이 이제 그들의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4"(p207) 


·

·

·

 

새로운 지식과의 만남이 아무리 종종 견디어내기 쉽지않은 충격을 요구한다해도, 이 책에 담겨 있는 저자들의 주장은 이제까지의 그 어떤 충격보다 훨씬 더 놀랄만한 것이었습니다. --- 외계인과 인간 사이의 혼혈종(hybrid), 그리고 그 '혼혈종과 인간 사이의 2차 교배를 통해 외계인 유전자를 갖고 있지만 좀 더 인간에 가까운 2차 혼혈종5'(p91)이 인간 사회에 비밀리에 침투, 정착해왔다는 주장이나, 더 나아가 '현재 우리 인류도 이전 단계의 인류에서 외계인의 개입에 의해 출현한 존재'(p100)일 수도 있다라는 가설같은 건 창조론 뿐 아니라 진화론마저도 흔들어놓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 책은 이처럼 정말로 믿기 힘든 내용들을 담고 있기는 합니다만!

일반 독자들이 가질만한 질문들에 대해 답을 하는 형식의 이 책에서 두 저자의 논리 전개방식만큼은 (그 내용에의 동의 여부를 떠나)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견고하며 흔들림이 없습니다. '외계생명체가 존재할 것이다'라는 것에는 동의를 하고 있었던, 하지만 그 수준을 뛰어넘는 이 책 속의 당혹스런 주장들을 처음 접하는 저조차도 다 읽고나니,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이것을 차마 긍정이라 하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부정하지는 못하겠음'의 수준에까지는 옮겨놓았을 만큼 말이죠. 예를 들어 --- UFO의 출현과 사라짐을 인간의 현재 과학의 수준으로는 이해/설명할 수 없지만, 이에 대해서도 최준식 교수는 다음과 같은 예시를 통해, 이해/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존재를 부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는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 2차원에 사는 개미가 있다고 하지요. 2차원은 면만 있는 세계입니다. 부피가 없지요. 그런게 그 개미에게 3차원에 사는 우리가 다른 개미 한 마리를 가져다놓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원래 개미에게는 우리가 갖다놓은 개미가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보일 겁니다. 그 개미가 한 차원 높은 세계에서 왔기 때문이지요. 얼마 후 우리가 다시 그 개미를 들어올리면 원래 개미에게는 그 개미가 갑자가 사라진 것처럼 보일 겁니다. 그 개미가 한 차원 높은 세계로 갔기 때문이지요. 이런 맥락에서, 외계인들은 우리보다 높은 차원에서 온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이들을 단순히 우리보다 물질적인 과학이 뛰어난 존재로 보기보다는 영적으로 완전히 한 단계 넘어간 존재로 보자는 것입니다.(p144)

………………………………………………………………………


한국 정부는 아직 UFO에까지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습니다. …… 지금 한국 사회는 무상급식 같은 일차원적 문제를 가지고 공방하는 수준에 있습니다. UFO문제처럼 초세간적인 데에 관심을 가질 만한 수준이 못됩니다.(pp281-282)

엄청나게 많은 돈을 소유하고 있다라는 사실이 자동적으로 그 사람의 전체적인 '수준'이 높다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건 국가의 차원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지요. 한 사회의 문화 수준이 오로지 경제적인 잣대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다시 말해 '돈 많은 국가'와 '선진국'이라는 단어는 분명 다른 차원의 의미라는 것이며, 이러한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학문의 영역'이라 생각합니다. 소위 '초선진국 학문'이라는 분야가 분명히 있으며, 이러한 학문에의 관심이라는 게 단지 '돈이 많다'라는 것만으로 발생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보아, 비록 정부 차원의 연구는 전혀 진행되고 있지 않다지만, "대답 없는 우주에 대답을 던지는 두 지성간의 대화"라는 기막히게 멋진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이, 우리나라 학자들에 의해 쓰여졌고, 우리나라에 출간되었다라는 사실만으로도, 맨날 1인당 GNP가 몇만 달러를 넘었느니 마느니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나라의 사회·문화적 수준이 자부심을 가져도 될만큼 올라섰다라는 걸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 책 속에 담겨져 있는 주장들이 모두 사실일 꺼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추측이고 가설일 뿐이지요. 하지만!!! --- 사뭇 황당한 이러한 주장들로부터 나는 과연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것이며, 더 근본적으로는 이러한 주장들에 대해 아예 관심을 끊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기는 한 것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지영해 교수의 다음 발언은 훨씬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대답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정말 외계인들이 UFO를 타고 우리에게 오고 있느냐, 혹은 외계인이 정말 인간을 납치하여 혼혈종을 만들고 있느냐 하는 문제는 어떤 사건이 정말 일어나고 있느냐 하는 단순한 질문이 아닙니다. 세계를 보는 패러다임의 문제입니다.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설명이 안 되는 현상들이 너무 많을 때, 또 지속적으로 반복될 때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다시 살펴봐야 합니다.

그리하여... ​어쩌다보니 이 여름의 한복판은 이처럼 외계인에 관한 책들을 몇 권 더 읽어보는 것으로 보내게 될 듯. ^^;;



 

 

 

 

 



 

  1. 이러한 반응을 예상했던 듯 --- 이화여대 교수인 최준식은 옥스포드 대학의 교수인 지영해의 이력을 소개하며, "그의 UFO 연구가 …… 서구 지성사에 훤한 최고급의 학자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다."(p24)라 덧붙이고 있습니다.
  2. 'UFO 피랍 체험…을 한 사람은 벌써 수천수만에 달합니다.'(p33)
  3. '외계인의 마음과 그들의 출현 목적, 그들이 온 세계를 알 수 있는 방법은 피랍 현상 연구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p40)
  4. 이 한 문장이 이 책의 핵심 메세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자들은 지구가 머지않아 멸망할 수 밖에 없다라 주장하고 있거든요.
  5. 데이비드 제이컵스 교수는 인간과 거의 생김새가 같은 이들에게 하이브리드(hybrid)와는 차별되는 '휴브리드(hubrid)'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p91)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붉은돼지 2015-08-01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내용이로군요....
초고대문명 외계인 개입설 이런 것도 재미있죠^^

가살가죽 2015-08-02 13:49   좋아요 0 | URL
그에 관련된 내용도 약간이지만 이 책에 나옵니다.

이 책... 상당히 쇼킹하게 흥미로와요. ^^
 
캡틴 선더볼트 1
아베 가즈시게.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민음사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세상에 태어나, 아주 작은 것으로나마 이 세상을 변화시켰다라면 그 인생은 성공한 것'... 이라고 어느 유명인이 말했(다고 라디오에서 들었!)다더군요 이 기준에 비추어보아 지금까지로 한정지어 본 제 인생은 성공일까, 아님 실패일까?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 '내가 만들어낸 세상의 변화'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지 않으나, 이 세상에 종원군(이라는 새로운 생명)을 태어나게는 했으니, 그 녀석이 (더 길게는 저의 손주 중 누군가가) 훗날 혹여라도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킨다라면, 그 변화의 실현을 가능케 한 '근원적인 시작'의 자격으로 '내 인생은 성공이었구나'라는 결론을, 그렇게 매우 매우 사후(事後)적으로나마 부여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아직까지는 --;;) 해볼 수는 있지 않겠느냐라는, 뭐 겸손도 아니며 그렇다고 제 삶을 '실패의 완료형'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아닌, 그런 대답을 해야하지 않을까 싶거... 늘!

그처럼 '아주 작은 변화'조차 만들어냈다라 말하지 못하는 '나'에게 어느 날 --- '나의 결심'만이 이 세상을 멸망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상황이 생겨난다면? 거기에 더해, 그 결심의 실천은 현재 내가 처해 있는 각종 어려움들까지도 말끔하게 해결해줄 수 있다라는 현실적 매력까지 가지고 있다라면? 그렇다면 '나'는 과연 그 (위험한) 일에 뛰어들게 될/수 있... 을까요?

뭔가, 짬뽕국물에 간짜장을 말아놓은 듯한, 현실의 나에게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상황 속에 '나'를 주인공으로 대입시켜보는 것이, 우리가 소설을 읽으면서 얻을 수 있는 (오락의 기능이 강조된) 하나의 효용이 될 수 있다라면 --- 네! 「캡틴 선더볼트」라는 만화적 제목에서도 보여지듯 이 소설은, 등장인물들 스스로조차 믿지 못할만큼의 비현실적인 상상을 읽는 이로 하여금 한바탕 펼쳐볼 수 있게 해줍니다. 그것도... 덥고 습해 죽겠는 이 시점에 읽기 딱! 좋을만큼 재미있게 말이죠.


이건 또 무슨 전위 예술 무대란 말인가. 이노하라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중심지에서 떨어진, 한적한 주유소에서 한밤중 택시가 전복되고 운전수가 거품을 물고 쓰러진 가운데 일본도(日本刀)를 든 외국인이 스마트폰으로 말을 걸고 있다. 평범한 가장이었던 자신이 처한 현실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1권, p91) …… 하지만 믿기 힘든 일들은 어제오늘 발에 채일 만큼 발생했고, 현재도 1초가 멀다하고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카기 슌과의 감동적인 조우도 그냥 그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1권, p109)

………………………………………………………………………………………


'무라카미 병'이라는, 치사율 70%의 무시무시한 전염병을 기본 소재로 하고 있는 이 소설은, 아직 완전히 끝났다!라 말할 수 없는, 얼마 전까지만해도 온 나라를 뒤숭숭하게 했던 '메르스'라는, (이게 존재한지는 오래되었다 할지라도, 일반인들에게는 일종의 '신종 질병'으로 받아들여지는)  전염병을 겪었던 대한민국에 두 발을 딛고 사는 저(뿐만 아니라 이 소설을 읽어본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순간순간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하는 장면들을 적잖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독감으로 연간 10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뉴스에 나도 사람들은 별로 주목하지 않지만, 신종 플루로 단 한 명이 사망했다고만 해도 큰 난리가 나거든. 사람을의 관심과 공포는 기사의 분량에 영향을 받고 뉴스 기사는 새로움과 희소성에 영향을 받 …… (1권, p216)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게다가/심지어 이는 질병 뿐만이 아닌 사회의 일반현상에도 또한 그대로 적용된다라고도 생각합니다. (새로움과 희소성이라는 측면에서보자면 새롭지도 희소하지도 않은) 운전자의 단순 과실로 발생한 고속버스 추락으로 인해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교통사고보다는, 최고급 승용차 속에서 중년 남성과 미모의 젊은 여성이 벌거벗고 숨진 채 발견된 (그야말로 새롭기와 희소함에 있어 더할 나위 없을) 사건이 더 많은 후속기사들과 세간의 입방아에 훨씬 더 자주 그리고 오랫동안 오르내릴테니까 말이죠. 그렇다면... 이런 대중들이 보여주는 관심의 쏠림 현상은 정녕 욕을 먹어야만 하는 걸까요?    

"야구에는 역전이 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는 그런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2권, p230)

​바로 전에 읽었던 「이케아 옷장에 갇힌 인도 고행자의 신기한 여행」의 감상문 마지막에도 썼었던, 우리의 일상엔 그와 같은 '신기한'이란 형용사를 붙일만한 일들이 거의 생겨나지 않는다라는 걸, 이 소설은 위와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역전(逆轉)이 없는 (내) 삶의 중간에 마주치는 (타인의 삶에 발생된) --- 캐내고 들억봐야 별다른 역전/반전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고속버스 사고보다는, 뭔가 역전/반전에 역전/반전을 거듭하는 상황이 펼쳐질 듯한 승용차 속 두 남녀의 사건이 대중의 관심을 더 많이 받게 되는 이유는, 그리하여 이러한 관심의 쏠림을 사실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라 말하는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건 아닐까요?  

·

·

·

​'당분간은 가볍게 읽어낼 수 있는 독서를 하고 싶다'라는 저의 바램을 기가 막히게 이루어준, 두 권으로 되어 있기는 하나, 4-5시간 정도만 계속 앉아있을 수만 있다면 다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게 전개되는, 여름이면 신문 지상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휴가지에 가지고 갈'류에 한 자리를 내어주기에 전혀 모자람 없는 소설이었습니다. 머릴 쓸 것도 없고, 복잡한 추리를 요구하지도 않는, 저처럼 노트북 펼쳐놓고 중요 문장들을 타이핑해가며 읽지 않아도 될... 걍 '악을 무찔러내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인 이 소설에는 그.런.데. 말이죠!!!


결코 가벼이 볼 수 없는 문장들이 간헐적으로, 헌데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등장하고 있었습니다. ​이 소설을 읽고 쓰는 감상문을, 소설의 줄거리에 대한 것으로 쓰기보다는 그 문장들을 옮겨놓는 것이 훨씬! 더 의미 있겠다란 생각을 하게 해주었을만큼 말이죠.

"일이 터졌을 때,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선택을 해야만 돼. 대책을 세우든, 아무것도 안 하고 어떻게 되나 지켜보든.(1권,p88) …… (일반적으로는) 하고 나서 욕먹느니 아무 짓 안하고 모르는 척하는 게 나아."(1권, p98) ---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저자 아툴 가완디는 현대의 의사들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환자에게 그 어떤 치료를 하더라도 그를 되살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안했다'라는 사후적 비난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라는 증거로(남겨놓기 위해) 아무 의미없는 과잉치료를 행한다라 쓰고 있었습니다만... 우리가 현실에서 보곤하는 장면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혹은 정말로 어찌해야할 지 모르는 것인지 파악이 되지 않는 (상징적 표현으로서의) '칼을 쥐고 있는' 자들인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그럼에도 (스스로는 억울하다라 말하는) '그들' 역시 이렇게 항변을 하곤 합니다. '썅! 우리도 칼을 휘두르긴 했다구! 근데, 휘두른 방향이 잘못되었을 수는 있어.'    


"사람은 자랑거리가 있으면 어떻게든 보이고자 하는 성질이 있다. …… 이 세상의 시장 원리도, 인간의 행동도 '남에게 자랑하고 싶다'라는 욕구에서 생기는 것이 아닐까."(1권,p135) ---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러하기에 이 '사회'라는 곳에서 제가 만나보게 되는 사람들의 누적숫자가 쌓여갈수록, 점점 더 확신을 가지게 되는 몇몇 생각들이 있지요. 예를 들어, 'Veblen effect'라든가, 'Snob effect', 'Bandwagon effect'등처럼 정통 경제학의 이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들이 바로 그러한 것들에 속해 있거늘, 이 소설은 그러한 점들을 위처럼 간단하게 정리해주고 있더군요. (마침!!! 요즘의 제가 지겹게 겪고 있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징그러울 정도로... --;;)


"인생을 살면서 즐거운 일은 불법이거나 반도덕적이거나 혹은 살찌기 쉬운 일이다."(1권, p372) --- 'If anything can go wrong, it will,' 머피의 법칙의 원문은 이처럼 간단합니다만, 이로부터의 응용은 그야말로 '발에 채일 정도로' 많지요.1 이 소설에 등장하는 버젼의 위 머피의 법칙 역시... 저 개인적으로는 부인할 수 없다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이 또한... 현실에서는 행할 수 없는/행해서는 안 된다라 스스로를 옥죄고 있는 '즐거운/불법적인/비도덕적인' 일들이 (자유롭게!) 펼쳐지고 있는 '소설'이라는 문학장르의 생명력이 절대!로 꺼질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될테구 말이죠. 


"힘을 내야지, 하는 소리와 함께 그런데 언제까지,하고 묻는 날카로운 소리가 마음속을 울렸다. 나는 언제까지 힘을 내야 하는 걸까?"(1권, pp385-386) --- 힘들어 하고 있는 이에게, '조금만 더 힘을 내봐'라는 누군가의 위로가 사실은 가장 잔인한 말이라 생각한다라 여러 번 적었었던 저로서는 ... 위의 표현을 읽는 순간 '지금 이 순간엔 소주!'라 외치고 싶었었더랬습니다. 49.195Km를 내내 뛰어야 하는 마라톤보다도, 끝이 없는 길을 걷는/걸어야 한다라는 것이 훨씬 더 고통스러운 일이잖... 아요. --;;


"오랜 세월, 온 국민이 존재하지도 않는 것에 이리저리 휘둘려 온 것이지. 그렇기 때문에 기관 관계자들은 대동단결해서 은폐 공작을 반복적으로 펴 온 거고."(2권, p141) --- 일본 작가가 쓴, 가벼운 오락 소설에 등장하는 문구, 그저 그 뿐... 인걸로 하기로 하죠.


"가이노이드 지방에 주목하라! …… 여자의 가슴과 엉덩이, 허벅지를 구성하는 가이노이드 지방은 여자들만의 것이며, 욕망에 불타는 수컷들로서는 그것에 안달할 수밖에 없다."(1권, p7) --- ​에 또, 뭐... '안달할 수밖에 없다'라 잖아요. 말 그대로 수컷들로서는 눈에 보이는 가이노이드 지방에, 그야말로 '주목하는 것'이외의 선택의 여지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니까요!!! (다만! 이 ⑥번을 ③번과 결합시키려하는 게 문제일 뿐이지. --;;) 

………………………………………………………………………………………

진짜로 가벼운 오락 소설인 작품입니다.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던 인물들이, 일단(一團)의 '히어로들'이 된 듯 무려! 온 인류를 구해낸다는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그런 줄거리를 적어놓는 것으로 이 작품에 대한 감상문을 쓰고 싶지는 않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분명 가지고 있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그러하여!!! --- 이 <파워 레인저>스런 제목의 소설에, (너무도 흔히 쓰여지고 있으며, 저 역시 자주 쓰고있는) '공감'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해준 모종의 장치, 어쩌면 이 소설을 존재하게 한 원동력이라고도 생각되는/표현될 수 있겠는 한 문장을 적어놓는 것으로, 하지만/또한 그 '공감'와 '원동력'에 대한 일언반구 역시 전혀 쓰지 않는 것으로, 줄거리에 대한 언급 없는 '소설에의 감상문'을 마무리 짓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 아닐까 싶네요. (암튼 뭐... 이 문장에 여전히 순간적으로나마 마음이 찡~해졌던 걸 보면 저... 아직은 좀 젊.은.가. 봅! ^^;;)


 

   
 

"무난하게 사는 게 행복한 거냐?"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케아 옷장에 갇힌 인도 고행자의 신기한 여행
로맹 퓌에르톨라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삶의 진정한 가치를 찾아가는 유쾌한 로드 소설!"

 

 

 

 

 

 

이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책의 뒷표지에 쓰여져 있는 이 짧은 문구에, 확실히 고개를 끄덕이게는 됩니다... 만! 솔직이 말해 이 마지막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모두가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더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끝이 좋으면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다 잊혀진다'라는 말처럼, 이 길지않은 소설의 마지막 순간은 그 과정에서 가졌었던 이런저런 불만들을 사뭇 그야말로 '깨끗이' 지워내주더군요. 저만의 느낌일지도 모르겠으나, 줄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상큼한 결말이 아닐까 싶었다랄까요?   

………………………………………………………………………………

얼핏!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심지어 표지색마저도) 비슷해보이는, 하지만 읽어가다보면 일견.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어렵지 않게 떠올리게도 되는 형식과 내용의, 또한 주제의 일부만 보자면 델핀 쿨랭의 「웰컴, 삼바」와도 통하는 소설입니다. 그렇게 복잡할 듯 하나! --- (그리 무겁지는 않은 내용과 주제의 책일 것같다는 짐작에 맞게) 이 이야기는 다음의 두 줄, 더 간단하게는 굵게 표시되어있는 네 개의 키워드로 거의 모든 것이 표현될 수 있기도 하지요.


파텔은 가만 생각해 보니 여행 내내 자신에게 운이 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아흐레 동안 놀라운 여행을 했다. 그에게 이 세상엔 다른 것들이 존재하며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 바뀔 수 있음을 가르쳐준 내면 여행 …… (p260)

​·

·

·

(제가 열광하는 코드인) <총알탄 사나이>류의 유머와, 거기에 더해진 때로는 자연스런, 하지만 거개는 좀 억지스런 작위들이 연결되어가는 동안, 주인공 파텔이 자신의 고국인 인도에서 출발해 '프랑스 - 영국 - 스페인 - 이탈리아 - 리비아 - 프랑스'를 (「80일간의 세계일주」의 주인공 포그 씨처럼! '여행'이 아닌) '방문'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우선! 주인공 파텔이란 작자가 어떤 인물인지 볼까요?

그는 자신을 '직업적 고행자'라 스스로 소개합니다. 하지만! 여기서의 '고행자'란 우리가 예상하는, 뭔가 종교적으로 득도(得道)의 경지에 이르른 신비스런 인물이 아닌 --- "본모습과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건 파텔의 직업이기도 했다."(p13) / "파텔은 라자스탄 전체에서 …… 갖가지 눈속임으로 꽤 유명인사였다."(p16) 등으로 표현되고 있는, 그러니까 '통증 따위 느끼지 않는 척하는'(p49)것만이 거의 유일한 직업적 능력/밑천이 되는, 그리하여 결국 '진실을 말하지 않고 거짓말을 둘러대는 것'이 두 번째 천성이나 다름없는 것이 되어 있는, 한 마디로 사기꾼이었지요. 게다가! 그런 그가, 프랑스의 파리에 있는 IKEA 매장으로, (매트리스가 아닌!) '못으로 되어 있는 침대'를 사러 온 것 역시 그런 '사기'의 일 과정이었던 것이구요.

………………………………………………………………………………

 

비록! 파텔이 프랑스에 밀입국한 것은 아니었으나, 어찌어찌하여 그는 '수단'에서 온 밀입국자들과 한동안 길을 같이 하게 되는데, 이 때! 지중해의 '못사는 쪽'에 속하는 나라인 수단에서 온 '비라지'라는 이름의 밀입국자가 털어놓은 이야기로부터 파텔이 받게 되는 '전기적 충격'은, 훗날 그의 생(生)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수단 출신의 비라지는 소위 '잘사는 나라'에서 인생 역전 기회를 잡기 위해 가족들을 남겨둔 채 먼 길을 떠나온 것이었다. 그가 밀입국자 신세가 된 건 빈곤과 기아가 쌍둥이 질병처럼 싹이 터서 모든 것을 부패시키고 황폐하게 파괴해 버리는 별 볼일 없는 곳에서 태어났다는 점뿐이었다.(p80)

인도 출신인 파텔 역시 불행한 삶을 살아왔었거늘, 비라지의 신세 한탄으로부터 '자신이 태어나서 살던 곳보다 훨씬 암울하고 음험한 곳이 있음'(p83)을 새로이 알게 되었던겁니다1...만! 더 중요한 배움은 파텔이 그 반대 방향으로의 대칭 역시 알게 되었다라는 것이지요.

파텔은 잠시 눈앞에서 유리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닫히는 광경을 관찰했다. …… 파텔의 현대 기술의 보석이라 생각했던 인공적인 것들이 유럽 사람들에게는 한낱 보잘것없는 조형물일 뿐이며, 아무도 자동 유리문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p20)


웬만큼 진보했다고 하는 모든 기술마술과 구별하는 게 불가능하지. …… 나한테는 평범한 것들이 너에게는 마술 같아 보인다는 말이지. 모든 건 네가 살고 있는 사회의 기술 수준에 달려 있단 말이기도 하고.(pp 20-21) 

·

·

·


 

1998년, 난생 처음으로 "그런 곳"엘 가보았었던, 그렇게 저희 부부의 신혼 첫 가구들의 100%를 샀었었던 IKEA는 (이미 당시의) 스웨덴이나 유럽, 그리고 미국인들에게는 그저 평범한, 실용적인 가구를 살 수 있는 장소였었을지 모르나, 저희 부부에게는 정.말.로! (소설 속에서 파텔이 느꼈던 놀라움과 동일한) 뭔가 마술과도 같은 그런 환희를 주었더랬습니다. 놀라웠던 다양함 뿐 아니라, 넉넉할 수 없는 유학생 부부에게는 과분하기까지한 가구들이었으니까요. 헌데 말이죠! --- IKEA에서 팔고 있는 소품들이며 가구가, 이제는 그렇게 매력적으로만 보이지는 않는겁니다. 이게 뭐, 당시와 지금의 제 주머니 사정이 달라져서 그런 게 절대 아니라! (IKEA라는 세계를 난생 처음 접했던) 당시의 저에게 오로지 '마술'로만 보였던 것들이,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저 조금 특이한/지극히 서양적인 발상의 '기술'에 불과하다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인겁니다.2 (그런 점에서 --- 이 소설이 굳이 IKEA라는 브랜드를 사용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점, '누군가에게는 평범함이고, 누군가에게는 마술과도 같아보이는 것'으로 상징되어지기에 가장 알맞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잠깐!

알게 되었기 때문... 인거라구요?


음... 사실 이건 변명에 불과합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알게 되었기 때문'이 아닌, '잊었기 때문'이라 말해야 하는 게 맞으니까요. 1998년의 제 통장잔고를, 1998년에 처음으로 가보았던 그 넓디 넓었던 IKEA 매장에 첫 발을 내디었었을 때의 떨림을, 그렇게 만나보았던 (너무 거창한 표현인듯도 싶지만) 새로운 세계를, 거기에 더해 1998년 그토록 힘들게 조립해냈던 침대에서의 첫 밤을 --- 그 모든 순간들을 어느덧 잊어버렸기에, 지금의 IKEA 제품들에 대해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니까요.


·

·

·


이 유쾌하게 읽히는 소설은 "이 세상엔 다른 것들이 존재하며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 바뀔 수 있음을 가르쳐준 내면 여행(p260)"이란 구절 그대로! 그 두 가지의 '알게 됨'을 주인공 파텔이 얻게 되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인도'라는 나라를 과연 중간적인 위치에 놓을 수 있느냐에의 동의 여부를 떠나) 파텔은 난생 처음으로 자신보다 더 불행한 (국가 출신의) 누군가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라는 걸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에게 동정의 마음을 갖게 되지요. --- 나보다 불행한 누군가의 존재를 통해 '그래도 나는 행복한 거야!'라는 걸 느끼는 건 매우 잔인한 사고방식일 뿐 아니라, 심지어 '천박한3'이라는 단어마저 쓰여져야 마땅하다라 생각합니다.4 하지만! 파텔은, 자신보다 더 행복한 누군가들은 (한국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하고 있는 듯) 그에게 천박하고 잔인하게 행동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불행한 처지의 누군가들에게 결코 천박하게 행동하지 않았던 겁니다.5 파텔의 이러한 반응은 '다른 것이 존재함'을 알게 된 것에의 일반적 반응과는 분명 차이가 있지요. 하지만, 더 중요한 '알게 됨'은 바로!

 p239부터 시작되고 있는, 파텔 스스로 털어놓는 그의 성장기는 그 이전까지의 부분들과 이 소설의 분위기와 성격을 확연히 달라지게 해주고 있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이 소설의 핵심6이 시작되고 있다라 생각합니다.


​"마하라자 궁전 사람들을 방법을 가리지 않고 즐겁게 하는 것이 제 임무였죠. 그 시절에 전 거짓과 위선, 속임수 속에서 살았습니다."(p242)

IKEA라는 브랜드가 저에게는 '잊었기 때문'이라는 걸 알려주었다라면, 이 소설의 주인공 파텔에게는 '알게 되었기 때문' 선사해주었던 것이며, 이는 다름아닌! --- 이제까지의 자신의 삶이 '정상이 아니었다'라는 걸 깨닫게 해준 차원이 아니라, 아예 '정상과 비정상'이 따로이 존재하고 있었다라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했던 그가, 그의 지나온 삶이 매우 '비정상'이었었다라는 걸 알게 되었다라는, 그리하여 새로이 '정상적인 삶'의 트랙 위로 올라갈 수 있게 된, 즉! '다른 사람으로 바뀔 수 있음'을 몸소 실천에 옮길 수 있게 되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기에, 독자를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상큼'한 기분을 가지게 될 수 있는 겁니다. (소설 속에서 파텔이 이제까지 자신이 살아왔던 그 '비정상의 삶'을, 그러한 삶을 살 수 밖에 없게 해준 자신의 출생 환경을 결코 원망하지 않는다라는 것 역시 그러한 '상큼함'에 적잖은 일조를 했지요.)


………………………………………………………………………………


파텔은 정말이지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는 다른 곳,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했다. …… 죄 없고 정직한, 정상적인 삶을 살 것이다.(p251) 

아주 오래 전, 마이클 더글라스 주연의 <The Game>이라는 영화를 본 후, 조교수에게 '이런 스토리를 한국에서 자라난 사람에게선 절대 나올 수 없을꺼야!'라 말했더랬습니다. 이는 물론 (한국인이 저이기에) 자기비하가 아닌, 그 영화가 보여주었던 기발함을 한국의 주입식 교육을 받은 '뇌'는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라는 의미였었었거늘 ---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라는 이 소설의 결말 역시, 한국적 상황에서는 사뭇 쉬이 떠오르지 않는 설정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더군요. 지금의 대한민국에 이런 '새로운 삶'이란 것이 일반적으로 보아 '허(許)해지고 있다'라 말할 수는 없다... 라 저는 생각하기에 말이죠. --;;


러시아 목각 인형 마트로시카처럼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기를 갈망했던 그는 유럽을 종횡무진 누비며 DJ, 작곡가, 어학 교사, 통 번역가, 항공기 승무원, 서커스단 소속 마술가, 슬롯머신 청소원 등 여러 직업에 종사했다. 현재는 국경 담당 경찰로 근무하며 문서 위조를 가려내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 <작가 소개> 중

작가의 현 직업이 이 소설을 쓸 수 있게 해준 커다란 계기였다라 하는데, 한 사람이 이러한 다양함을 경험7할 수 있는 확률이, 우리가 살고있는 대한민국에서는 거의 0%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그러하기에 --- 이 소설의 결말인 '새로운 삶의 시작'이란 발상이, 사뭇 '상큼하게'라 느꼈던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의 일상에도 종종 이와 같은 '신기한'이라는 단어가 쓰여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바램이 문득!!! 

※ 함께 읽어보면 좋을 책들 :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  「80일간의 세계일주」  ·  「웰컴, 삼바


 

 

 

 

 

 

 

 

 

 

 

 

 



 

  1. 비라지의 삶에 대해 파텔이 과도할 정도의 놀라움을 받게 된다는 이 설정에 대해 지나친 과장이라 볼 수도 있겠으나, 이건... 독자가 그저 가벼이 읽어주길 바라는 소설일테니, 그렇게까지 냉정하게 대하지 않아도 될 듯 싶기도 합니다.
  2. 이런 IKEA의 특이한/재미난/알고보면 좀 열받게되는 마케팅은 이 책에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1만 5천개의 못으로 이루어져 있는 안락한 침대'의 가격이, 단지 '200의 못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아주 위험한 침대'의 가격보다 훨씬 비싸지요. 왜 그런지는... IKEA 가구를 한 번이라도 사본 분은 단번에 알아채실 듯.
  3. 이와 관련하여 --- 우리나라 사람들이 확실히! 동남아권에서 온 (주로 3D 업종 노동자들인) 외국인들에게는 지나친/건방진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라는 걸 부인해서는 안된다/할 수 없다라 생각합니다. 이는 진중권이 말했던 '한국의 천민성'의 일환인, 예의 그의 조국의 GNP를 곧 그의 인격과 동일시해버리는 (천민적일 뿐 아니라) 단순함으로부터 기인되고 있는 것이지요.
  4. 이러한 발상은 현실에도 존재하는데 --- '연평해전' 당시, 우리 정부는 우리의 피해보다 북한군의 피해가 더 크다라는 점을 유독 강조했었었지요. '나는 네 대를 맞았지만, 걔네들은 한 열 대쯤 맞은 거 같다'라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건지. --;;
  5.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점은 --- 서유럽의 국가들이 보이지 않게 지니고 있는 타인종에 대한 차별을, 작가 스스로 반성하고 있다라 볼 수도 있다라 생각됩니다만, 이러한 설정을 차마 서유럽인이 지니고 있는 우월감의 표현이라 볼 수는 없지 않을까 싶네요.
  6. 더불어, 파텔에게 작가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해준 그의 짧은 소설 역시 매우 인상적입니다. 이 소설은 두 가지 버젼의 결말을 가지게 되는데, 저 개인적으로는 첫 번째 결말이 훨씬 더 맘에 드네요. 그게 이 소설의 주제와도 들어맞구요.
  7. 제 기억에... 「어떤 소송」의 작가, 율리 체 역시 불가능해보일 정도의 다양한 직업을 가졌던 걸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들의 천국 (반양장) 문학과지성사 이청준 전집 11
이청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92년 어느 날의 저에겐, '3층짜리 햄버거'를 앞에 놓고 '난생 처음 마주친 이 괴물을 대체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라 고민했던 순간이 있었더랬습니다. 가능한 한 입을 크게 벌려 한 입에 한 번 넣어보지 뭐!란 청춘의 객기는 바~로 (추접했고 지저분의 극치였었던) 실패를 맛보아야 했었었지요. 하지만!!! --- 2015년의 청춘들은 아마도 눈앞의 '3층짜리 햄버거'를 그리 먹어보려는 생각을 아예 가져보지도 않을 겁니다. 그걸 '학습'이라 부르건, '발전'이라 부르건, 어쨌든 사람의 생각이란 그렇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되는 것이니까요.


·

·

·

그 내용을 알지 못한다해도, 「당신들의 천국」이란 이 작품의 제목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매우 상당한 정도의) 시니컬한 느낌을 제게 주어었더랬습니다.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니들끼리의 무엇'이라는 의미였었다고나 할까요? 그러했기에 --- (이 작품의 유명세를 익히 들어보기는 했었었던) 저로서는 (뿐만 아니라 아마도 이 책을 집어든 누구든) '당신들'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또한 '천국'이란 단어가 이 소설에서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인지에 대해 당연히 독서의 중점을 둔 채 읽기를 시작하게 되었더랬지요.

………………………………………………………………………

어느 한 소설 작품을 다 읽고나서, 그 줄거리를 되짚어보자라면 대부분 (언뜻 '이상하다'라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책의 분량과는 상관없이 매우 간단히 요약되곤 합니다. 이 작품 역시 줄거리 자체만을 따놓고 보자면 그리 특별하지도, 복잡하지도 않아요. 대략 --- "조백헌이라는 인물이 나환자들이 모여 있는 소록도의 병원 원장으로 취임해 왔으며, 섬사람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엔 그 결실을 보지 못하고 떠나게 된다"라는 것쯤일 뿐입니다. 헌데 말이죠!!!

시니컬한 느낌의 제목에서부터 시작해, 그야말로 너무도 많은 은유/상징과 그를 설명해주고 있는 직설화법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야기인 이 작품을 읽고 나니, '은유/상징'라는 것이, 이 작품에서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독자에게 어쩌면 '착각' 혹은 '오해'로까지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 문학에 관한 교육을 받지 않은 자로서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작품의 상당 분량을 옮겨적어가며, 그 부분부분들에 대한 '작가의 은유'에 대한 저의 해석을 함께 적어놓았었거늘,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다시 한 번 그 '해석들'을 처음부터 읽어 보니 절반 이상에 대해, 저 스스로 했었던 해석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고쳐쓰게, 심지어는 틀렸거나 그 반대의 해석을 하게도 되더군요. 그런 저의 오독(誤讀)은 심지어! 등장인물들의 '직설화법'에까지도 있지 뭡니까. --;;

·

·

·


"모든 독자는 자신의 일상적인 경험과 상상력에 기초해 문학작품을 읽는다. …… (또한) 모든 독자는 문학작품에서 자기가 일상에서 느껴온 것들을 찾고 싶어 한다. …… 만약 이 작품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였다면, 분명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어떤 생각과 감정을 일깨웠기 때문일 것이다."


- 「허삼관 매혈기」 한국어판 개정판 서문 중 작가 위화의 글

소설 작품을 읽을 때면 항상 제 머리속에 (굳이 떠올리려 하지 않아도) 떠올려져 있곤 하는 글귀입니다. 읽은 소설들에서/로부터 (공감이었건 반감이 되었건간에) 일종의 기시감(旣視感)같은 느낌을 받았을때면 예의 작가 위화가 말했던 바로 그 '자신의 일상적인 경험과 상상력'의 작용이 있었었음을 깨닫게 되었었기에, 저에게는  뭐랄까 하나의 '공리(公理)'처럼 각인되어 있는 구절이어 왔습니다만, 이 작품 「당시들의 천국」을 읽으면서는/읽고 난 지금에는, 작가 위화가 말하고자 했던 맥락이 단지 '개인적인' 경험과 상상력 뿐만이 아닌, '사회적인' 경험과 상상력에서까지도 확장될 수 있다는/여실히 작동하게 된다라는 걸 새롭게 깨닫게 됩니다. --- 그 단적인 일례로,


 

"혁명이 있고 나서 병원은 한동안 원장이 없이 운영되어오고 있었다."(p9)


(1974년 - 1975년에 연재되었었으며) 1976년 (단행본으로) 발간되었던 이 작품 속에 실려 있는 이 한 문장은 --- 비록 그 시기에 태어나는 있었으나, '사회적으로도/까지 살고 있었다'라고는 말할 수 없을 저에게조차, 이 작품 속 사건들과 등장인물들의 언행을 이해해감에 있어 (직접적 경험이 아닌, 공식적·비공식적 교육을 통해 얻어진) 예의 그 '사회적인' 간접 경험과 상상력을 작동시키게만 되었다라는 걸 들 수 있지요.

그다지 깊지도 넓지도 못한, 저의 역사에 대한 지식과 그로부터의 깨달음은, 소설 속의 '주정수 원장'이라는 인물을 어쩔 수 없이 '박정희 대통령'과 연결짓게만 해줍니다.1 그 뿐만이 아니에요. 간호부장 '사토' 역시 예의 '사회적인 경험과 상상력'의 힘을 기어이 빌리도록 하여 특정 인물을 떠올려 주기도 합니다. 심지어! 이 소설에의 독해에 약간의 오바를 허(許)해주기만 한다면 '반공의식 고취2'와 '새마을 운동3'에까지도 연결시킬 수 있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 (단지) 이러한 설정의 절묘함들로 인하여 이 작품이 소위 말해지는 유명세라는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일까요? 

(예의 결코 전문적일 수 없는, 오로지 저 개인만의 '해석'일 수도, 혹은! '오해/착각'일 수도 있음을 미리 밝히며) 이 소설에서 보여지고 있는 수많은 '은유'들이, 발표된 지 어느덧 40여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게다가 '사회적으로는 당시를 살고 있지 못했었던' 저에게까지도 공식적·비공식적 가르침으로부터의 기억을 끝내 끄집어내게 해준 결정적 힘! 그것이 바로 --- 이 소설이야말로, 지나치게/별 고민 없이 선정되고 남발되고 있(다고 확신하게만 되)는 수많은 '반드시 읽어야 하는'류의 타이틀을 지닐만한 진정한 자격이 있는, 흔치 않은 소설이라 단정짓게까지되는 점이라고 생각되어지는 겁니다. 


·

·

·


플라톤 옹께서 제창하셨다는 '철인'이라는 개념 역시, 지금의 기준에서 하나하나 뜯어보자면 예의 '독재자'라는 개념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을진데, 그러한 '독재자'라는 단어 앞에 아무리 '최상(最上)4'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한들, 독재자는 여전히 '독재자'라는 개념을 벗어날 수가 없는겁니다. 백 번을 양보하여, 상대적 평가라는 미명하에 독재자를 이처럼 '상-중-하'로 나눌 수 있다 한들 --- 그 어느 독재자라도 '국민을 위하여!'라는 구호를 부르짖지 않는 독재자는 없습니다. 김일성이나 김정일 마저도 '고깃국에 쌀밥!'이라는 (지금 우리의 기준에서 보자면 너무도 단순하고 소박하기만 한) 애민(愛民)의 명분을 갖고 있었잖습니까.


이 소설에 기술되고 있는 '주정수 원장'이라는 인물을 통해 작가 이청준은 그러한 독재를, '신랄'이라는 단어가 지닐 수 있는 극한의 지점까지를 독자가 느낄 수 있도록 비판하고 있습니다. '풍자'가 아닌 '은유'로써5, 그리고 종국에 가서는 예의 직설화법으로 표현되고 있음은 물론이고 말이죠.


주정수 시대에도 명분이나 동기에 잘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 문제는 오히려 그 명분의 지나친 완벽성6, 명분이 너무도 훌륭했기 때문이 아무도 그 명분엔 입을 열어 말을 할 수 없었던 명분의 독점성이었다. 게다가 명분이라는 건 언제가 힘있는 자의 차지였다. 주정수는 최고최선의 명분을 그 혼자 독차지해버리고 있었다. 그 주정수의 명분 앞에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자신을 주장할 자신의 명분을 따로 지닐 수가 없었다.(p175)

이승만이 끝내 반쪽짜리 한반도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도, 합법적이지 않는 방식으로 탈취한 권력으로 결국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박정희가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그 권력의 정점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분의 (정황상으로는 '비극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수도 있는) 죽음에 '대다수'라 표현해도 무방할 숫자의 국민들의 진심으로 오열을 했었던 것도 모두 따지고 보면 --- 그들이 내세웠던 '최고최선의 명분7'에 오랫동안 길들여진 피지배층들이 어느덧! '자신들만의 명분'이라는 것을 아예 잊었고 또한 잃어버렸기 때문에, 심지어 다시 그것을 가지려는 의지마저도 사라져버렸었기에 생겨날 수 있었던, 그야말로 '기이한'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얼마든지 설명 가능한' 현상들임을 작가 이청준은 이처럼 절묘!한 은유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이처럼 (선의의 독재자건 악만이 가득차 있는 독재자건) 자신이 내세운 명분만이 최고이고 최선이라는 사상 주입에 일단 성공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굳이 더 이상 엑셀레이터를 밟지 않아도 차는 거침없이 전진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 이 소설에 '너무도 많은 은유'가 있다 앞서 적었었는데, 여기서 '많은'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그 '은유'의 숫자가 많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뭇 이 작품에 '무섭다'라는 표현을 쓰게도 될만큼) 넓은 범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을 표현하고 있기도 합니다.

주정수는 그의 낙원이 자랑스러웠다. 자신이 이룩한 섬을 보고 감동하는 사람들을 보자 그는 다시 한 번 벅찬 보람을 느꼈다. 그는 이제 이 낙원 건설 사업에 마지막 마무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원이 있어야 했다. 가엾은 환자들이 남은 여생을 편히 쉬다갈 공원을 만들어야 했다. 그는 곧 계획을 세우고 일을 시작했다. 이젠 설득이고 뭐고 필요가 없었다. 모두가 원생들을 위한 일이었다. 그들을 위한 일에 일일이 구차스런 설득을 벌일 필요가 없었다 . 지금까지 이룩해놓은 모든 작업 결과가 주정수 자신뿐 아니라 섬을 다녀갔거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을 한결같이 감동시키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옳았다는 생각이었다.(pp176-177)

​'힘'으로 뒷받침되는 권력을 지닌 독재자가, 일단 자신의 명분을 피지배계층에게 '최고최선'으로 주입시키는 데 성공했다면 --- 그 명분을 앞세운 그 어떤 일도 모두 다 '피지배계층'을 위한 것이 되며, 그러하기에 그것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게 된다는 겁니다. 독재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 마디로 죽여주는 거죠. 하지만, 이에 대해 작가는 --- 권력을 가진 자만을 비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단순하게 표현해 보자면) '선의의 권력자'가 '명분을 독점한 독재자'로 변화되는 과정이 오로지! 그 권력자 개인의 탓만이 아닌, 어쩌면! 그의 지배를 받고 있는 피지배계층에게도 묻지 않을 수 없는 잘못이 있다라는 포인트를 빼놓지 않고 있습니다.8 --- (독재자가 만들어 놓은 상황인) 더 이상 밟지 않아도 전진하는 자동차에, 그 자동차에 맞서 세우려하는 노력 대신 어느덧... (그의 지배를 받는 피지배층의 일부9가) 알아서 연료까지도 끊임없이 채워넣는다라는 거지요.10 

​"배반과 굴종을 익히다 못해, 이번에는 그들 스스로가 먼저 배반의 음모를 꾸미고, 마침내는 그것이 함부로 감행되던 또 하나의 배반의 현장이 그곳이었다."(p119)


'주정수 원장'이라는 과거의 인물을 통해 작가가 '독재자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 했다라면, (책을 읽어가며 내내 가졌었던 의문, '조백헌 원장의 본심은 과연 어떤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알게 된 지금 시점에서 보아) '조백헌 원장'이라는 현재의 인물을 통해선, '독재자'라는 개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결국엔) '통치체제의 정당성'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려했었다라는 생각을 하게만 됩니다. 그렇게!!! --- (현실적으로 이러한 통치자가 정녕 존재할 수 있겠느냐의 여부를 떠나) 그의 명분과 진의(眞意)가 일치할 뿐 아니라, 그 둘이 정녕 지선(至善)이기까지 한 통치자가 등장하여 '독재자의 타락'이라는 문제가 해결되었다 할 때, 그 '타락하지 않은' 통치자는 과연 여하의 '통치체제'하에서도 자신의 명분과 진의를 왜곡없이 피지배계층에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그 반대의 방향으로) 피지배계층은 자신들을 다스리고 있는 '선의의 독재자'의 명분과 진의를 역시나 왜곡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를 작가 이청준은 작품의 후반부에 대두시켜 놓습니다.


주정수는 공원 시설을 훼손할 염려가 있다 하여 원생들 마음대로 공원 지역을 출입하는 것을 금지했다. 공원을 언제가 깨끗히 단장시켜놓고, 섬을 찾아오는 손님만 있으면 어김없이 그곳으로 데리고 가서 이 섬에 건설한 그 자랑스런 원생들의 낙원을 증거해 보였다. 도대체 모든 것이 배반의 연속이었다. 자신들의 낙원을 꾸미기 싫어 목숨을 내걸고 바다고 뛰어드는 사람들의 행적으로부터, 원생들의 휴식과 위안을 위해 만들어진 공원이 오히려 그것을 누릴 사람들에게 모셔지고 있는 데게 이르기까지 어느 한 가지도 배반 아닌 일이 없었다. …… 공원은 원생들을 위해 원생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정수와 섬을 다녀간 엉뚱한 구경꾼들의 것이었다. …… 그들의 이기적인 소문 속에만 소록도의 천국은 존재하고 있었다.(p179)

소록도의 나환자들이 조백헌 원장의 취임 일성(一聲)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은, 이미 그들에겐 그들의 오랫동안의 과거를 통해 쌓여져 온 위와 같은 유형의 원장들이, 그 중에서도 '주정수'라는 원장의 기억이, 그리고 자신들의 과오에 대한 아픔11이 너무도 강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던 겁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조백헌 원장은 소록도 어떡해서든 주민들을 설득해내려 노력합니다만...

명분은 믿을 것이 못 되었다. 섬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 문제는 명분이 아니라 그것을 갖게 되는 과정이었다. 명분이 과정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명분이 제물을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 천국이 무엇인가. 천국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마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스스로 구하고, 즐겁게 봉사하며, 그 천국을 위한 봉사를 추회하지 말아야 진짜 천국을 얻을 수 있었다. …… 명분만으로 그를 믿을 수가 있을까.(p180)

………………………………………………………………………

이제 소설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선의의) 명분을 주민들에게 어떡해서든 이해시키려는 주정수 원장과, 나름의 이유로 여전히 주정수 원장을 믿지 못하는 소록도 주민들간의 간극이 --- 보통의 소설이라면 이 간극의 봉합을 결말로 삼으며 끝맺음을 하게 될 듯 하거늘, 진심! 대단한 이 작품은 그 간극이 결국엔 봉합되지 못하는 것으로, 하지만! ①왜 그처럼 봉합되지 못했으며, 봉합될 수 있는 단초마저 존재할 수 없었는가,12 ②그렇다면 어떻게하면 봉합될 수 있을 것인가13에 대한, 예의 대한민국의 정치·사회적인 시대상을 아니떠올릴 수 없게 해주며 이야기의 마무리를 짓고 있지요. 이에 대해서는 각기, 소설 속 이상욱 과장의 편지 중 일부를 발췌하여 옮겨놓는 것으로 대신할까 합니다. (제 감상문이 원래 그렇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이건) 지나치게 긴 인용이란 염려가 있기는 합니다만, 이 글을 읽고 가지게 된 저의 생각을 이 글보다 더 잘 정리해낼 능력이 없기에, 이것이 가장 좋은 그리고 옳바른 설명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솔직하게 말해 머리가 잘 안돌기도 합... --;;)


원장님께서는 … 저들에게 그냥 인간의 천국을 지어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문둥이의 천국을 지으려 하고 계십니다.(p450) …… 원장님의 천국 계획은 처음부터 이 나라의 나환자를 한데 모으려는 것이었습니다.(p454) …… 울타리가 둘러쳐진 천국이 진짜 천국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문둥이를 위한 문둥이만의 천국을 꾸미시려는 원장님의 의지 바로 그것 속에 이미 그 보이지 않는 철조망은 마련되고 있습니다.(p455)

원생들은 참으로 환자다운 환자가 되어갈수록, 그리고 그들의 천국이 자랑스러워지면 자랑스러워질수록 아무도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뛰어넘으려 하지 않는 울타리보다도 더 높고 안전한 울타리는 없을 것입니다.14 하지만 그렇게 해서 원장님께서 이 섬 위에 세우고 계신 천국이란 어떤 것입니까. 환자다운 환자들에게만 천국일 수 있는 천국, 환자로서의 불행을 수락하는 체념 위에서라야 비로소 천국일 수 있는 천국, 오직 그런 뜻의 천국일 뿐이었습니다.15 원장님의 천국이 섬사람들에게도 천국일 수 있는 것은 원장님의 천국의 윤리에 섬사람들의 생각이나 욕망이 스스로 한정당하고 익숙해지기 시작할 때뿐이었습니다.16 다스리고 다스림을 받는 일이 짐승의 굴레처럼 다스림이 편할 때 다스림을 받는 것도 편해지는 이치의 비밀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족할 수만 있는 일이라면 하루빨리 섬사람들은 …… 원장님의 천국에 익숙해져야 할는지도 모릅니다.(pp463-464) …… 다스리는 자의 선의나 정의와는 상관없이 그의 지배권이 어디에서 연유했든 그것만은 끝끝내 절대 전제가 되어 있는 한17, 다스림을 받는 쪽은 항상 감당해낼 수 없는 상황 자체의 압력 때문에 스스로가 무력해져버리기 때입니다.18(pp465-466) …… 지배자가 최초에는 아무리 성실한 인간성과 선의의 명분을 지닌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그 갇힌 인간의 무리가 아무리 그들의 지배자를 바로 경계한다 하더라도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가 다 함께 그들을 가두고 있는 울타리에 대한 깊은 각성에 도달하지 못하는 한, 다스리는 자는 결국 그의 무리를 일방적으로 조작해나가게 마련이며, 다스림을 당하는 자들 또한 다스리는 자의 뜻을 재빨리 수락하고 그것에 봉사해나갈 수밖에 없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 (그리하여 결국) 원생들은 자기 천국의 진정한 주인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받들고 복종하는 그 천국의 종으로서 괴로운 봉사만을 강요당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pp466-467)

소설을 읽어가면서는 사실 이상욱이라는 인물의 언행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었기에, 소설의 말미에 이처럼 '통치체제의 한계'에 대한 기가 막힌 통찰을 그가 내뱉어내고 있다라는 설정이 여전히 뜬금없다라 받아들여지기는 합니다. 어쨌든!!! 이제 남은 건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간극은 어떻게 봉합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 뿐입니다. 이에 대해 작가 이청준은 --- 2015년 현재엔 당연한 것이 되어있는, 허나 이 작품이 발표되었던 당시의 대한민국에선 위험천만하기만 했을 해답을 제시하지요.  

(작품 속에서는 각각 '자유'와 '사랑'으로 표현되고 있는) 피지배계층과 지배권력의 행동 동기가 다르고, 그 두 계층의 운명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기에 양 계층 사이엔 진정한 믿음이 성립되기 매우 힘들다는 겁니다. 하지만 소설 속 조백헌 원장은 끝내 그러한 믿음을 이루어냈거늘 그 시점의 그에겐 (이미 원장의 직위에서 물러났기에) 더 이상 그 믿음을 실천해낼 수 있는 '힘'이 없었었지요.19

 

자유나 사랑을 행함에는 절대로 힘이라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힘이 없는 자유나 사랑은 듣기 좋은 허사에 불과할 뿐입니다. …… 사랑이나 자유의 원리가 바로 힘이 아니더라도 그것들이 행해지고 그것들이 이룩해나가는 실현성이나 실천성의 근거는 그 힘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지요.(p480)

이러한 조백헌 원장의 결론을 따른다면 마치 작가가, 비록 '선한'이라는 강력한 전제 하에서이기는 하나 얼핏! '독재하는 권력'까지도 용인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보여주고 있는 듯 하나20 --- "원장이나 원장의 권능은 섬사람들 자신의 의사에 의해 그들 가운데서 선택되어져야 한다."(p482)라는 것이 결국 작가가 내놓고 있는 통치체제의 해답이지요. 1972년 공표되었던 '유신헌법'하에서 과연... 이러한 주장을 할 수 있었던 인물이 몇이나 되었었을까를 생각해본다면 왜! (이처럼 광범위하고 복잡한 '은유'를 통해, 하지만 동시에 등장인물들의 직설적 화법으로도 표현되어지고 있는) 이 작품에 그 어떠한 찬사도 충분하지 않다라 말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겁니다.  

 


………………………………………………………………………

 

못내 아쉬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조금씩 끊어읽을 수 밖에 없었다라는 게 너무도 아쉬웠으며, 이 감상문마저도 이렇게나 오랜 시간에 걸쳐 쓸 수 밖에 없었다라는 건 더더욱 아쉽기만 합니다. 문득문득 떠올랐던 생각들을 미처 다 담아내지 못했기도 하네요. 하지만!!! --- '3층짜리 햄버거'를 감히 한 입에 먹어보려는 시도를 했었었던 1992년의 그 때를 떠올려본다면, 현재의 청춘들은 그러한 선택은 차마 하지 않게 되어있는 것처럼, 이 작품 역시 언젠가, 하지만 반드시 다시 한 번 더 읽고난 후엔 분명! (예의 사람의 생각이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과거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변화'되는 것이므로) 이 글과는 다른 감상문이 쓰여질 것이라는 (예상이 아닌) 확신을 갖게도 됩니다.


일명 '고전classic '이라 불리울 수 있는 책들은, 그 명칭이 가지고 있는 뜻 때문에, 반드시! 오랜 시간 전에 쓰여졌어야 한다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만 --- 이 때의 classic 이란​ 단어는 '오래된'이라기보다는 '본연의'라는 의미로 이해되어져야라 생각하기에, 발표 당시 뿐 아니라, 참으로 불행하게도... 이 소설 속의 '은유'들이 여전히! 현재의 대한민국에도, 그리고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에서도 (각자의 정치적 스탠스에 따라) 의미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라는 사실이야말로, 참 슬프지만, 이 작품에도 당연히 이 시대의 '고전classic'이라는 찬사를 마땅히 보내어야 한다라 생각하게 되네요. 한 마디로... 읽기에도, 이해하기에도, 또한 정리해기에도 모두 숨이 가쁘기만 한 소설이었었다라는.




 

 

 

 

 



 

  1. 게다가 '주정수 원장'이 일본인이라는 설정은 뭔가 야릇하게 그러한 1:1의 대응을 의도적으로 꼬득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구심도 들지요.
  2. '축구시합'
  3. '간척사업'
  4. 예를 들어, 싱가폴의 이광효 총리같은 인물.
  5. 풍자엔 '희화적 이미지'가 강하게 덧쓰여 있다면, '은유'는 그보다는 훨씬 더 무겁다랄까? 하는 지극히 저만의 개인적인 느낌이 주는 구분입니다.
  6. 예를 들자면, 박정희 시대를 내내 지배했었던 '반공'이 그러했지요. 너무도 완벽했었었기에, 지금도 여전히 그 '명분의 완벽성'을 맹신하고 있는 세대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구요. (아니!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
  7. 그래봐야 고작 '반공' 딱 하나였죠.
  8. 하지만 작가는 피지배계층의 잘못 역시 어쩔 수 없는 '힘의 근본적 불평등'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라 적고 있기는 합니다. --- "지배하는 원장과 지배를 받는 원생들 사이에 극단한 이해 상충이 일어나고 보면 물러서야 할 쪽은 처음부터 자명했다. …… 원장이 아무리 원생의 이익을 배반하려 한다 해도 평의회에선 그 원장까지 갈아치울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따. …… 평의회는 당연히 원장과의 극단적인 대치를 스스로 삼갈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원장의 아량과 관용의 한계 안에서 스스로 그와 맞서기를 꺼려 하는 것 또한 당연한 힘의 이치인 것이다. 그리고 한동안 그런 시기가 지나고 나자 그들은 차츰 다스림을 받는 자보다 다스리는 자의 힘 쪽에 가까이 있는 것이 자신을 위해 유리하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힘의 철학을 배우게 된다.(pp108-109) :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 시절, 충실한 거수기 노릇을 했던 정치권력들에 대한 일종의 시혜적 변명이랄까요?
  9. 지배층과 피지배계층의 단순한 구분이 아닌, 피지배계층 내에조차 존재하는 '지배-피지배'의 권력구조에서의 '지배층'을 의미합니다.
  10. TV에서 소개되는 현실의 범죄를 따라하는 '모방범죄'라는 게 있죠. 이 작품 속엔 --- '박통'의 뒤를 이었던 '전통' 이 소설을 읽고 많은 면에서 참고를 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문득문득 들게만드는 지점들이 여럿 있더군요.
  11. "아마 그 사람들 배반이 생길 것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 저 사람들의 두려움은 아마 직접적으로 원장님께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들 자신들의 배반에 관한 것일지도 모릅니다."(pp106-107) --- 보건과장 이상욱의 말
  12. 이 부분은 작품의 제목 중 '당신들의'에 해당하는 부분이 되겠지요.
  13. 이 부분은 작품의 제목 중 '천국'에 해당하는 부분이 되겠지요.
  14. 김일성이야말로 이러한 의미의 '천국'을 건설했던 독재자가 아닐까도 싶지요.
  15. 이를 바꾸어 말하면 --- 제아무리 비합리적인 지배라할지라도 피지배계층이 그것을 '스스로 수락하는 체념 위에서' 받아들인다면, 비록 제한적 의미를 가지기는 하나 어쨌든 '천국'으로서의 성립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며, 그 이후엔 자연스럽게 독재자의 그 '비합리적인 지배'는 어쨌든 천국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내었으므로, 당당히 '비합리적'의 이름을 벗어버릴 수 있게 된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6.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 사놓은지 좀 된, 「자발적 복종」과 「시민의 불복종」을 어여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언제 읽게될지는 여전히... --;;)
  17. 바로 이 점이 '독재'의 기본적 성격이겠지요.
  18. 이러한 '감당해낼 수 없는 상황 자체의 압력'을 기어코 이겨낸 것이 바로 1987년의 '6월 민주항쟁'이었겠죠.
  19.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 서로가 만날 수 있으리나는 믿음은 어렵사리, 하지만 굳게 형성이 되었으나, 조백헌 원장의 믿음은 섬주민들이 동쪽 바다로 올 것이다라는 것이었었고, 섬주민들의 믿음은 원장이 서쪽에 가 있을 것이었다라는 거지요. 그러한 불일치를 해결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힘'이라는 것이구요.
  20. 얼핏 --- 비록 권력을 획득한 과정은 스스로도 불법적이고 폭력적이었다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권력을 획득한 이후의 전두환은 자신의 '힘'으로 '사랑과 자유'의 실현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 그리고 그렇게만 된다면 권력 획득과정에서의 잘못들도 지워질 수 있으리라, 그리하여 사후적으로나마 '선한'이라는 전제를 획득한 독재자가 될 수 있으리라 오판했었을지도 모르겠다... 란 생각도 해보게 되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