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천국 (반양장) 문학과지성사 이청준 전집 11
이청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92년 어느 날의 저에겐, '3층짜리 햄버거'를 앞에 놓고 '난생 처음 마주친 이 괴물을 대체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라 고민했던 순간이 있었더랬습니다. 가능한 한 입을 크게 벌려 한 입에 한 번 넣어보지 뭐!란 청춘의 객기는 바~로 (추접했고 지저분의 극치였었던) 실패를 맛보아야 했었었지요. 하지만!!! --- 2015년의 청춘들은 아마도 눈앞의 '3층짜리 햄버거'를 그리 먹어보려는 생각을 아예 가져보지도 않을 겁니다. 그걸 '학습'이라 부르건, '발전'이라 부르건, 어쨌든 사람의 생각이란 그렇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되는 것이니까요.


·

·

·

그 내용을 알지 못한다해도, 「당신들의 천국」이란 이 작품의 제목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매우 상당한 정도의) 시니컬한 느낌을 제게 주어었더랬습니다.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니들끼리의 무엇'이라는 의미였었다고나 할까요? 그러했기에 --- (이 작품의 유명세를 익히 들어보기는 했었었던) 저로서는 (뿐만 아니라 아마도 이 책을 집어든 누구든) '당신들'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또한 '천국'이란 단어가 이 소설에서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인지에 대해 당연히 독서의 중점을 둔 채 읽기를 시작하게 되었더랬지요.

………………………………………………………………………

어느 한 소설 작품을 다 읽고나서, 그 줄거리를 되짚어보자라면 대부분 (언뜻 '이상하다'라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책의 분량과는 상관없이 매우 간단히 요약되곤 합니다. 이 작품 역시 줄거리 자체만을 따놓고 보자면 그리 특별하지도, 복잡하지도 않아요. 대략 --- "조백헌이라는 인물이 나환자들이 모여 있는 소록도의 병원 원장으로 취임해 왔으며, 섬사람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엔 그 결실을 보지 못하고 떠나게 된다"라는 것쯤일 뿐입니다. 헌데 말이죠!!!

시니컬한 느낌의 제목에서부터 시작해, 그야말로 너무도 많은 은유/상징과 그를 설명해주고 있는 직설화법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야기인 이 작품을 읽고 나니, '은유/상징'라는 것이, 이 작품에서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독자에게 어쩌면 '착각' 혹은 '오해'로까지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 문학에 관한 교육을 받지 않은 자로서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작품의 상당 분량을 옮겨적어가며, 그 부분부분들에 대한 '작가의 은유'에 대한 저의 해석을 함께 적어놓았었거늘,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다시 한 번 그 '해석들'을 처음부터 읽어 보니 절반 이상에 대해, 저 스스로 했었던 해석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고쳐쓰게, 심지어는 틀렸거나 그 반대의 해석을 하게도 되더군요. 그런 저의 오독(誤讀)은 심지어! 등장인물들의 '직설화법'에까지도 있지 뭡니까. --;;

·

·

·


"모든 독자는 자신의 일상적인 경험과 상상력에 기초해 문학작품을 읽는다. …… (또한) 모든 독자는 문학작품에서 자기가 일상에서 느껴온 것들을 찾고 싶어 한다. …… 만약 이 작품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였다면, 분명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어떤 생각과 감정을 일깨웠기 때문일 것이다."


- 「허삼관 매혈기」 한국어판 개정판 서문 중 작가 위화의 글

소설 작품을 읽을 때면 항상 제 머리속에 (굳이 떠올리려 하지 않아도) 떠올려져 있곤 하는 글귀입니다. 읽은 소설들에서/로부터 (공감이었건 반감이 되었건간에) 일종의 기시감(旣視感)같은 느낌을 받았을때면 예의 작가 위화가 말했던 바로 그 '자신의 일상적인 경험과 상상력'의 작용이 있었었음을 깨닫게 되었었기에, 저에게는  뭐랄까 하나의 '공리(公理)'처럼 각인되어 있는 구절이어 왔습니다만, 이 작품 「당시들의 천국」을 읽으면서는/읽고 난 지금에는, 작가 위화가 말하고자 했던 맥락이 단지 '개인적인' 경험과 상상력 뿐만이 아닌, '사회적인' 경험과 상상력에서까지도 확장될 수 있다는/여실히 작동하게 된다라는 걸 새롭게 깨닫게 됩니다. --- 그 단적인 일례로,


 

"혁명이 있고 나서 병원은 한동안 원장이 없이 운영되어오고 있었다."(p9)


(1974년 - 1975년에 연재되었었으며) 1976년 (단행본으로) 발간되었던 이 작품 속에 실려 있는 이 한 문장은 --- 비록 그 시기에 태어나는 있었으나, '사회적으로도/까지 살고 있었다'라고는 말할 수 없을 저에게조차, 이 작품 속 사건들과 등장인물들의 언행을 이해해감에 있어 (직접적 경험이 아닌, 공식적·비공식적 교육을 통해 얻어진) 예의 그 '사회적인' 간접 경험과 상상력을 작동시키게만 되었다라는 걸 들 수 있지요.

그다지 깊지도 넓지도 못한, 저의 역사에 대한 지식과 그로부터의 깨달음은, 소설 속의 '주정수 원장'이라는 인물을 어쩔 수 없이 '박정희 대통령'과 연결짓게만 해줍니다.1 그 뿐만이 아니에요. 간호부장 '사토' 역시 예의 '사회적인 경험과 상상력'의 힘을 기어이 빌리도록 하여 특정 인물을 떠올려 주기도 합니다. 심지어! 이 소설에의 독해에 약간의 오바를 허(許)해주기만 한다면 '반공의식 고취2'와 '새마을 운동3'에까지도 연결시킬 수 있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 (단지) 이러한 설정의 절묘함들로 인하여 이 작품이 소위 말해지는 유명세라는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일까요? 

(예의 결코 전문적일 수 없는, 오로지 저 개인만의 '해석'일 수도, 혹은! '오해/착각'일 수도 있음을 미리 밝히며) 이 소설에서 보여지고 있는 수많은 '은유'들이, 발표된 지 어느덧 40여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게다가 '사회적으로는 당시를 살고 있지 못했었던' 저에게까지도 공식적·비공식적 가르침으로부터의 기억을 끝내 끄집어내게 해준 결정적 힘! 그것이 바로 --- 이 소설이야말로, 지나치게/별 고민 없이 선정되고 남발되고 있(다고 확신하게만 되)는 수많은 '반드시 읽어야 하는'류의 타이틀을 지닐만한 진정한 자격이 있는, 흔치 않은 소설이라 단정짓게까지되는 점이라고 생각되어지는 겁니다. 


·

·

·


플라톤 옹께서 제창하셨다는 '철인'이라는 개념 역시, 지금의 기준에서 하나하나 뜯어보자면 예의 '독재자'라는 개념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을진데, 그러한 '독재자'라는 단어 앞에 아무리 '최상(最上)4'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한들, 독재자는 여전히 '독재자'라는 개념을 벗어날 수가 없는겁니다. 백 번을 양보하여, 상대적 평가라는 미명하에 독재자를 이처럼 '상-중-하'로 나눌 수 있다 한들 --- 그 어느 독재자라도 '국민을 위하여!'라는 구호를 부르짖지 않는 독재자는 없습니다. 김일성이나 김정일 마저도 '고깃국에 쌀밥!'이라는 (지금 우리의 기준에서 보자면 너무도 단순하고 소박하기만 한) 애민(愛民)의 명분을 갖고 있었잖습니까.


이 소설에 기술되고 있는 '주정수 원장'이라는 인물을 통해 작가 이청준은 그러한 독재를, '신랄'이라는 단어가 지닐 수 있는 극한의 지점까지를 독자가 느낄 수 있도록 비판하고 있습니다. '풍자'가 아닌 '은유'로써5, 그리고 종국에 가서는 예의 직설화법으로 표현되고 있음은 물론이고 말이죠.


주정수 시대에도 명분이나 동기에 잘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 문제는 오히려 그 명분의 지나친 완벽성6, 명분이 너무도 훌륭했기 때문이 아무도 그 명분엔 입을 열어 말을 할 수 없었던 명분의 독점성이었다. 게다가 명분이라는 건 언제가 힘있는 자의 차지였다. 주정수는 최고최선의 명분을 그 혼자 독차지해버리고 있었다. 그 주정수의 명분 앞에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자신을 주장할 자신의 명분을 따로 지닐 수가 없었다.(p175)

이승만이 끝내 반쪽짜리 한반도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도, 합법적이지 않는 방식으로 탈취한 권력으로 결국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박정희가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그 권력의 정점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분의 (정황상으로는 '비극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수도 있는) 죽음에 '대다수'라 표현해도 무방할 숫자의 국민들의 진심으로 오열을 했었던 것도 모두 따지고 보면 --- 그들이 내세웠던 '최고최선의 명분7'에 오랫동안 길들여진 피지배층들이 어느덧! '자신들만의 명분'이라는 것을 아예 잊었고 또한 잃어버렸기 때문에, 심지어 다시 그것을 가지려는 의지마저도 사라져버렸었기에 생겨날 수 있었던, 그야말로 '기이한'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얼마든지 설명 가능한' 현상들임을 작가 이청준은 이처럼 절묘!한 은유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이처럼 (선의의 독재자건 악만이 가득차 있는 독재자건) 자신이 내세운 명분만이 최고이고 최선이라는 사상 주입에 일단 성공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굳이 더 이상 엑셀레이터를 밟지 않아도 차는 거침없이 전진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 이 소설에 '너무도 많은 은유'가 있다 앞서 적었었는데, 여기서 '많은'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그 '은유'의 숫자가 많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뭇 이 작품에 '무섭다'라는 표현을 쓰게도 될만큼) 넓은 범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을 표현하고 있기도 합니다.

주정수는 그의 낙원이 자랑스러웠다. 자신이 이룩한 섬을 보고 감동하는 사람들을 보자 그는 다시 한 번 벅찬 보람을 느꼈다. 그는 이제 이 낙원 건설 사업에 마지막 마무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원이 있어야 했다. 가엾은 환자들이 남은 여생을 편히 쉬다갈 공원을 만들어야 했다. 그는 곧 계획을 세우고 일을 시작했다. 이젠 설득이고 뭐고 필요가 없었다. 모두가 원생들을 위한 일이었다. 그들을 위한 일에 일일이 구차스런 설득을 벌일 필요가 없었다 . 지금까지 이룩해놓은 모든 작업 결과가 주정수 자신뿐 아니라 섬을 다녀갔거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을 한결같이 감동시키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옳았다는 생각이었다.(pp176-177)

​'힘'으로 뒷받침되는 권력을 지닌 독재자가, 일단 자신의 명분을 피지배계층에게 '최고최선'으로 주입시키는 데 성공했다면 --- 그 명분을 앞세운 그 어떤 일도 모두 다 '피지배계층'을 위한 것이 되며, 그러하기에 그것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게 된다는 겁니다. 독재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 마디로 죽여주는 거죠. 하지만, 이에 대해 작가는 --- 권력을 가진 자만을 비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단순하게 표현해 보자면) '선의의 권력자'가 '명분을 독점한 독재자'로 변화되는 과정이 오로지! 그 권력자 개인의 탓만이 아닌, 어쩌면! 그의 지배를 받고 있는 피지배계층에게도 묻지 않을 수 없는 잘못이 있다라는 포인트를 빼놓지 않고 있습니다.8 --- (독재자가 만들어 놓은 상황인) 더 이상 밟지 않아도 전진하는 자동차에, 그 자동차에 맞서 세우려하는 노력 대신 어느덧... (그의 지배를 받는 피지배층의 일부9가) 알아서 연료까지도 끊임없이 채워넣는다라는 거지요.10 

​"배반과 굴종을 익히다 못해, 이번에는 그들 스스로가 먼저 배반의 음모를 꾸미고, 마침내는 그것이 함부로 감행되던 또 하나의 배반의 현장이 그곳이었다."(p119)


'주정수 원장'이라는 과거의 인물을 통해 작가가 '독재자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 했다라면, (책을 읽어가며 내내 가졌었던 의문, '조백헌 원장의 본심은 과연 어떤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알게 된 지금 시점에서 보아) '조백헌 원장'이라는 현재의 인물을 통해선, '독재자'라는 개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결국엔) '통치체제의 정당성'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려했었다라는 생각을 하게만 됩니다. 그렇게!!! --- (현실적으로 이러한 통치자가 정녕 존재할 수 있겠느냐의 여부를 떠나) 그의 명분과 진의(眞意)가 일치할 뿐 아니라, 그 둘이 정녕 지선(至善)이기까지 한 통치자가 등장하여 '독재자의 타락'이라는 문제가 해결되었다 할 때, 그 '타락하지 않은' 통치자는 과연 여하의 '통치체제'하에서도 자신의 명분과 진의를 왜곡없이 피지배계층에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그 반대의 방향으로) 피지배계층은 자신들을 다스리고 있는 '선의의 독재자'의 명분과 진의를 역시나 왜곡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를 작가 이청준은 작품의 후반부에 대두시켜 놓습니다.


주정수는 공원 시설을 훼손할 염려가 있다 하여 원생들 마음대로 공원 지역을 출입하는 것을 금지했다. 공원을 언제가 깨끗히 단장시켜놓고, 섬을 찾아오는 손님만 있으면 어김없이 그곳으로 데리고 가서 이 섬에 건설한 그 자랑스런 원생들의 낙원을 증거해 보였다. 도대체 모든 것이 배반의 연속이었다. 자신들의 낙원을 꾸미기 싫어 목숨을 내걸고 바다고 뛰어드는 사람들의 행적으로부터, 원생들의 휴식과 위안을 위해 만들어진 공원이 오히려 그것을 누릴 사람들에게 모셔지고 있는 데게 이르기까지 어느 한 가지도 배반 아닌 일이 없었다. …… 공원은 원생들을 위해 원생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정수와 섬을 다녀간 엉뚱한 구경꾼들의 것이었다. …… 그들의 이기적인 소문 속에만 소록도의 천국은 존재하고 있었다.(p179)

소록도의 나환자들이 조백헌 원장의 취임 일성(一聲)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은, 이미 그들에겐 그들의 오랫동안의 과거를 통해 쌓여져 온 위와 같은 유형의 원장들이, 그 중에서도 '주정수'라는 원장의 기억이, 그리고 자신들의 과오에 대한 아픔11이 너무도 강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던 겁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조백헌 원장은 소록도 어떡해서든 주민들을 설득해내려 노력합니다만...

명분은 믿을 것이 못 되었다. 섬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 문제는 명분이 아니라 그것을 갖게 되는 과정이었다. 명분이 과정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명분이 제물을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 천국이 무엇인가. 천국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마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스스로 구하고, 즐겁게 봉사하며, 그 천국을 위한 봉사를 추회하지 말아야 진짜 천국을 얻을 수 있었다. …… 명분만으로 그를 믿을 수가 있을까.(p180)

………………………………………………………………………

이제 소설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선의의) 명분을 주민들에게 어떡해서든 이해시키려는 주정수 원장과, 나름의 이유로 여전히 주정수 원장을 믿지 못하는 소록도 주민들간의 간극이 --- 보통의 소설이라면 이 간극의 봉합을 결말로 삼으며 끝맺음을 하게 될 듯 하거늘, 진심! 대단한 이 작품은 그 간극이 결국엔 봉합되지 못하는 것으로, 하지만! ①왜 그처럼 봉합되지 못했으며, 봉합될 수 있는 단초마저 존재할 수 없었는가,12 ②그렇다면 어떻게하면 봉합될 수 있을 것인가13에 대한, 예의 대한민국의 정치·사회적인 시대상을 아니떠올릴 수 없게 해주며 이야기의 마무리를 짓고 있지요. 이에 대해서는 각기, 소설 속 이상욱 과장의 편지 중 일부를 발췌하여 옮겨놓는 것으로 대신할까 합니다. (제 감상문이 원래 그렇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이건) 지나치게 긴 인용이란 염려가 있기는 합니다만, 이 글을 읽고 가지게 된 저의 생각을 이 글보다 더 잘 정리해낼 능력이 없기에, 이것이 가장 좋은 그리고 옳바른 설명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솔직하게 말해 머리가 잘 안돌기도 합... --;;)


원장님께서는 … 저들에게 그냥 인간의 천국을 지어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문둥이의 천국을 지으려 하고 계십니다.(p450) …… 원장님의 천국 계획은 처음부터 이 나라의 나환자를 한데 모으려는 것이었습니다.(p454) …… 울타리가 둘러쳐진 천국이 진짜 천국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문둥이를 위한 문둥이만의 천국을 꾸미시려는 원장님의 의지 바로 그것 속에 이미 그 보이지 않는 철조망은 마련되고 있습니다.(p455)

원생들은 참으로 환자다운 환자가 되어갈수록, 그리고 그들의 천국이 자랑스러워지면 자랑스러워질수록 아무도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뛰어넘으려 하지 않는 울타리보다도 더 높고 안전한 울타리는 없을 것입니다.14 하지만 그렇게 해서 원장님께서 이 섬 위에 세우고 계신 천국이란 어떤 것입니까. 환자다운 환자들에게만 천국일 수 있는 천국, 환자로서의 불행을 수락하는 체념 위에서라야 비로소 천국일 수 있는 천국, 오직 그런 뜻의 천국일 뿐이었습니다.15 원장님의 천국이 섬사람들에게도 천국일 수 있는 것은 원장님의 천국의 윤리에 섬사람들의 생각이나 욕망이 스스로 한정당하고 익숙해지기 시작할 때뿐이었습니다.16 다스리고 다스림을 받는 일이 짐승의 굴레처럼 다스림이 편할 때 다스림을 받는 것도 편해지는 이치의 비밀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족할 수만 있는 일이라면 하루빨리 섬사람들은 …… 원장님의 천국에 익숙해져야 할는지도 모릅니다.(pp463-464) …… 다스리는 자의 선의나 정의와는 상관없이 그의 지배권이 어디에서 연유했든 그것만은 끝끝내 절대 전제가 되어 있는 한17, 다스림을 받는 쪽은 항상 감당해낼 수 없는 상황 자체의 압력 때문에 스스로가 무력해져버리기 때입니다.18(pp465-466) …… 지배자가 최초에는 아무리 성실한 인간성과 선의의 명분을 지닌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그 갇힌 인간의 무리가 아무리 그들의 지배자를 바로 경계한다 하더라도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가 다 함께 그들을 가두고 있는 울타리에 대한 깊은 각성에 도달하지 못하는 한, 다스리는 자는 결국 그의 무리를 일방적으로 조작해나가게 마련이며, 다스림을 당하는 자들 또한 다스리는 자의 뜻을 재빨리 수락하고 그것에 봉사해나갈 수밖에 없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 (그리하여 결국) 원생들은 자기 천국의 진정한 주인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받들고 복종하는 그 천국의 종으로서 괴로운 봉사만을 강요당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pp466-467)

소설을 읽어가면서는 사실 이상욱이라는 인물의 언행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었기에, 소설의 말미에 이처럼 '통치체제의 한계'에 대한 기가 막힌 통찰을 그가 내뱉어내고 있다라는 설정이 여전히 뜬금없다라 받아들여지기는 합니다. 어쨌든!!! 이제 남은 건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간극은 어떻게 봉합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 뿐입니다. 이에 대해 작가 이청준은 --- 2015년 현재엔 당연한 것이 되어있는, 허나 이 작품이 발표되었던 당시의 대한민국에선 위험천만하기만 했을 해답을 제시하지요.  

(작품 속에서는 각각 '자유'와 '사랑'으로 표현되고 있는) 피지배계층과 지배권력의 행동 동기가 다르고, 그 두 계층의 운명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기에 양 계층 사이엔 진정한 믿음이 성립되기 매우 힘들다는 겁니다. 하지만 소설 속 조백헌 원장은 끝내 그러한 믿음을 이루어냈거늘 그 시점의 그에겐 (이미 원장의 직위에서 물러났기에) 더 이상 그 믿음을 실천해낼 수 있는 '힘'이 없었었지요.19

 

자유나 사랑을 행함에는 절대로 힘이라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힘이 없는 자유나 사랑은 듣기 좋은 허사에 불과할 뿐입니다. …… 사랑이나 자유의 원리가 바로 힘이 아니더라도 그것들이 행해지고 그것들이 이룩해나가는 실현성이나 실천성의 근거는 그 힘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지요.(p480)

이러한 조백헌 원장의 결론을 따른다면 마치 작가가, 비록 '선한'이라는 강력한 전제 하에서이기는 하나 얼핏! '독재하는 권력'까지도 용인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보여주고 있는 듯 하나20 --- "원장이나 원장의 권능은 섬사람들 자신의 의사에 의해 그들 가운데서 선택되어져야 한다."(p482)라는 것이 결국 작가가 내놓고 있는 통치체제의 해답이지요. 1972년 공표되었던 '유신헌법'하에서 과연... 이러한 주장을 할 수 있었던 인물이 몇이나 되었었을까를 생각해본다면 왜! (이처럼 광범위하고 복잡한 '은유'를 통해, 하지만 동시에 등장인물들의 직설적 화법으로도 표현되어지고 있는) 이 작품에 그 어떠한 찬사도 충분하지 않다라 말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겁니다.  

 


………………………………………………………………………

 

못내 아쉬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조금씩 끊어읽을 수 밖에 없었다라는 게 너무도 아쉬웠으며, 이 감상문마저도 이렇게나 오랜 시간에 걸쳐 쓸 수 밖에 없었다라는 건 더더욱 아쉽기만 합니다. 문득문득 떠올랐던 생각들을 미처 다 담아내지 못했기도 하네요. 하지만!!! --- '3층짜리 햄버거'를 감히 한 입에 먹어보려는 시도를 했었었던 1992년의 그 때를 떠올려본다면, 현재의 청춘들은 그러한 선택은 차마 하지 않게 되어있는 것처럼, 이 작품 역시 언젠가, 하지만 반드시 다시 한 번 더 읽고난 후엔 분명! (예의 사람의 생각이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과거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변화'되는 것이므로) 이 글과는 다른 감상문이 쓰여질 것이라는 (예상이 아닌) 확신을 갖게도 됩니다.


일명 '고전classic '이라 불리울 수 있는 책들은, 그 명칭이 가지고 있는 뜻 때문에, 반드시! 오랜 시간 전에 쓰여졌어야 한다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만 --- 이 때의 classic 이란​ 단어는 '오래된'이라기보다는 '본연의'라는 의미로 이해되어져야라 생각하기에, 발표 당시 뿐 아니라, 참으로 불행하게도... 이 소설 속의 '은유'들이 여전히! 현재의 대한민국에도, 그리고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에서도 (각자의 정치적 스탠스에 따라) 의미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라는 사실이야말로, 참 슬프지만, 이 작품에도 당연히 이 시대의 '고전classic'이라는 찬사를 마땅히 보내어야 한다라 생각하게 되네요. 한 마디로... 읽기에도, 이해하기에도, 또한 정리해기에도 모두 숨이 가쁘기만 한 소설이었었다라는.




 

 

 

 

 



 

  1. 게다가 '주정수 원장'이 일본인이라는 설정은 뭔가 야릇하게 그러한 1:1의 대응을 의도적으로 꼬득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구심도 들지요.
  2. '축구시합'
  3. '간척사업'
  4. 예를 들어, 싱가폴의 이광효 총리같은 인물.
  5. 풍자엔 '희화적 이미지'가 강하게 덧쓰여 있다면, '은유'는 그보다는 훨씬 더 무겁다랄까? 하는 지극히 저만의 개인적인 느낌이 주는 구분입니다.
  6. 예를 들자면, 박정희 시대를 내내 지배했었던 '반공'이 그러했지요. 너무도 완벽했었었기에, 지금도 여전히 그 '명분의 완벽성'을 맹신하고 있는 세대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구요. (아니!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
  7. 그래봐야 고작 '반공' 딱 하나였죠.
  8. 하지만 작가는 피지배계층의 잘못 역시 어쩔 수 없는 '힘의 근본적 불평등'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라 적고 있기는 합니다. --- "지배하는 원장과 지배를 받는 원생들 사이에 극단한 이해 상충이 일어나고 보면 물러서야 할 쪽은 처음부터 자명했다. …… 원장이 아무리 원생의 이익을 배반하려 한다 해도 평의회에선 그 원장까지 갈아치울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따. …… 평의회는 당연히 원장과의 극단적인 대치를 스스로 삼갈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원장의 아량과 관용의 한계 안에서 스스로 그와 맞서기를 꺼려 하는 것 또한 당연한 힘의 이치인 것이다. 그리고 한동안 그런 시기가 지나고 나자 그들은 차츰 다스림을 받는 자보다 다스리는 자의 힘 쪽에 가까이 있는 것이 자신을 위해 유리하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힘의 철학을 배우게 된다.(pp108-109) :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 시절, 충실한 거수기 노릇을 했던 정치권력들에 대한 일종의 시혜적 변명이랄까요?
  9. 지배층과 피지배계층의 단순한 구분이 아닌, 피지배계층 내에조차 존재하는 '지배-피지배'의 권력구조에서의 '지배층'을 의미합니다.
  10. TV에서 소개되는 현실의 범죄를 따라하는 '모방범죄'라는 게 있죠. 이 작품 속엔 --- '박통'의 뒤를 이었던 '전통' 이 소설을 읽고 많은 면에서 참고를 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문득문득 들게만드는 지점들이 여럿 있더군요.
  11. "아마 그 사람들 배반이 생길 것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 저 사람들의 두려움은 아마 직접적으로 원장님께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들 자신들의 배반에 관한 것일지도 모릅니다."(pp106-107) --- 보건과장 이상욱의 말
  12. 이 부분은 작품의 제목 중 '당신들의'에 해당하는 부분이 되겠지요.
  13. 이 부분은 작품의 제목 중 '천국'에 해당하는 부분이 되겠지요.
  14. 김일성이야말로 이러한 의미의 '천국'을 건설했던 독재자가 아닐까도 싶지요.
  15. 이를 바꾸어 말하면 --- 제아무리 비합리적인 지배라할지라도 피지배계층이 그것을 '스스로 수락하는 체념 위에서' 받아들인다면, 비록 제한적 의미를 가지기는 하나 어쨌든 '천국'으로서의 성립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며, 그 이후엔 자연스럽게 독재자의 그 '비합리적인 지배'는 어쨌든 천국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내었으므로, 당당히 '비합리적'의 이름을 벗어버릴 수 있게 된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6.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 사놓은지 좀 된, 「자발적 복종」과 「시민의 불복종」을 어여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언제 읽게될지는 여전히... --;;)
  17. 바로 이 점이 '독재'의 기본적 성격이겠지요.
  18. 이러한 '감당해낼 수 없는 상황 자체의 압력'을 기어코 이겨낸 것이 바로 1987년의 '6월 민주항쟁'이었겠죠.
  19.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 서로가 만날 수 있으리나는 믿음은 어렵사리, 하지만 굳게 형성이 되었으나, 조백헌 원장의 믿음은 섬주민들이 동쪽 바다로 올 것이다라는 것이었었고, 섬주민들의 믿음은 원장이 서쪽에 가 있을 것이었다라는 거지요. 그러한 불일치를 해결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힘'이라는 것이구요.
  20. 얼핏 --- 비록 권력을 획득한 과정은 스스로도 불법적이고 폭력적이었다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권력을 획득한 이후의 전두환은 자신의 '힘'으로 '사랑과 자유'의 실현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 그리고 그렇게만 된다면 권력 획득과정에서의 잘못들도 지워질 수 있으리라, 그리하여 사후적으로나마 '선한'이라는 전제를 획득한 독재자가 될 수 있으리라 오판했었을지도 모르겠다... 란 생각도 해보게 되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