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
파울로 코엘료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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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새벽 거리에서」를 통해, '뭐라고 할까, 말하자면 어떤 흐름이라고 할까? ……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랐더니 어느새 그렇게 되어 있었어'1라며 주인공 와타나베의 불륜의 시작을 설명해주었었으며, 중국 작가 옌렌 커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에서, "그는 물이 흘러 도랑이 생기는 이치를 깨달았다. 물이 흐르는대로 자연스럽게 두지 않고 오히려 막아 역행시키려 했다가는 결과를 예측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나중에 메우기도 어렵다는 말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라는 (와타나베의 이유와 일맥상통하는 의미의) 구절로 주인공 우다왕의 불륜에 변명을 해주었더랬습니다. (반면! 한국 작가인 이문열은, 역시 불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소설 「레테의 연가」을 통해서는 이러한 점들 - 불륜의 이유, 변명 등 - 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그는 오로지 두 당사자의 '관계 설정'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지요.) --- (브라질 태생이라는)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스위스의 여성 린다를 통해, 불륜에 관해 과연 어떠한 말을 해주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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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린다 --- 대형 투자기금의 소유주이며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는 남편, 그와의 사이에 '삶의 이유'인 두 아이를 둔, 스위스의 유력 신문사의 인정받는 기자이며, '남자들에게는 욕망을, 여자들에게는 질시를 불러일으'2키는 서른한 살의 여성입니다. 예의 스스로를 '이렇다 할 문제도 없는 나는 좋은 아내이자 좋은 엄마이기도 하다'3라 말한다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지요. 그러던 어느 날!!! 인터뷰에서 어느 작가가 했던 다음의 한 마디에 그녀는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행복해지는 것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삶을 열정적으로 살고 싶어요."(p11)

​린다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4...만! 스스로의 이 질문에 들어있는 작은 틈5으로부터, 완벽하다라 생각해왔던 자신의 일상에, 그간 알아채지 못했던 두려움이 있었다라는 걸 깨닫게 해줍니다. --- 질투같은 걸로는 전혀 다투지 않았었던 남편과의 관계는 '​(예전에는 그래서 정말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질투가 없다는 건 양쪽 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뜻이 아닐까'6로 방향의 전이(轉移)를 일으켜 보여주게 되며, 단골식당에서 좋아하는 메뉴를 선택하는 자신의 일상은 '그런 부분에서조차 나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7로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이런 린다의 정신적 일탈은 '나는 … 평생 모든 것이 지금과 똑같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사이에 갇혀 있다'8의 단계를 거쳐, '중요한 것은 내가 그런 행복하고 완벽한 삶에 진절머리가 난다는 사실이다'9에 이르렀고, 결국! '감행하지 못한 모험에 대한 갈망'10을 그녀의 마음 속에 심어주고 맙니다. 뭐 여기까지의 설정단계를 읽노라면...

'불륜'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제목으로 차용해 놓고 있는, 사뭇 너무도 naive해보이기까지 하는 이 소설, 「불륜」은 이처럼 (이것이 동양과 서양의 정서적 차이에 기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딱히 '공감(共感)'이라는 정신적 몰입을 저에게 주지 못했더랬습니다. 심하게 말해보자면 한낱 '배부른 여성의 욕심'쯤으로 주인공 린다를 보았었지요. 헌데 말입니다! ---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이런, 공감되지 않는 설정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그 전개과정에서, 독자에게 조금씩 조금씩 린다를 이해시켜가고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독자가 린다를 진짜로 '이해'하게 되었으냐는 물론, 독자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오겠지요. 다만,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 1997년 당시 선풍적 인기를 끌었었던 <TOEFLer's TOEFL>이라는 기이한 제목의 시험대비서처럼 - 자신이 설명하고자하는 바에 정확히 부합되는 구절들을 인용해놓는 방식을 통해 그 '설득력' 자체에 대해서만큼은 딱히 비판을 가할 수 없도록 소설을 써놓았다라고는 생각합니다.)  

이러한 마음 속 갈등을 지니고 있던 린다는 어느 날, 고삐리 시절 잠시 사귀었었던, 지금은 유명정치인이 되어 있는 야코프를 인터뷰하게 됩니다.11 근데 말이죠!!! --- 인터뷰를 마친 후, 린다는 (그야말로) 느닷없이 야코프에게 달려듭니다. 그리곤 '학창시절부터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던 걸'12그에게 해주고는 이런 독백을 합니다. "마침내 나는 규칙들을 어기게 되었지만 그래도 세상이 무너지진 않았다. 이런 행복한 기분을 느껴보기는 정말 오랜만이다."13


하지만, 예의 그녀는 자신의 느닷없었던 행동에 두려움을 가지게 됩니다. 규칙을 어겼어도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그것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었으며, 그녀 스스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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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작가의 독자를 향한 '린다를 이해해해줘'의 설득이 시작됩니다. --- 「새벽 거리에서」의 감상문에도 썼었듯, '결혼'이란 제도는 남자와 여자에게, 이전까지 가지고 있었던 각자의 feasible set을 버릴 것을 요구합니다. 이것을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다음처럼 표현해놓고 있더군요.


토성은 이십구 년이 지나면 한 바퀴를 돌아 우리가 태어난 순간 있었던 하늘의 자리에 다시 돌아온다. 그전까지는 모든 것이 가능할 것처럼 보이고, 모든 꿈이 이루어지고, 우리를 가두는 모든 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 토성이 이 주기를 완성하고 나면 모든 낭만주의는 막을 내린다. 우리의 선택은 돌이킬 수 없고, 한번 정해진 방향을 바꾸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p51)

그날의 짧았던, 예정에도 없었었고 예상되지도 않았었던 순간(의 일탈)을 경험하고 난 후, 야코프는 인생이 다시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라 말했고, 린다는 '똑같은 장면을 끝없이 되풀이해 보여주는 영화'14같은 자신의 삶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라 말합니다. 드디어!!! --- 제가 찾고 있었던 '기혼-기혼간의 불륜'이 시작되는 거지요. 이미 이루어놓은 각자의 삶이 너무도 근사한 이 두 사람은 과연 각자의 feasible set을 깨뜨리지 않은 채, '다른 이성과의 새로운 사랑'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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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우리가 '안락'이라는 두 글자의 한 단어로 표현하곤하는 '좋은 남편, 사랑스러운 아이들, 부러울 것 없는 경제력, 자신이 니지고 있는 능력의 발휘와 그로부터의 성취감'등이 린다에게는 그저 따분하고 모험 없는 삶으로만 느껴집니다. 세상이 무너지지도 않거늘, 사람들은/도덕이라는 것은 '규칙을 어겨보고 싶다'라는 삽십대의 그녀에게 '성숙'이라는 또 다른 두 글자의 한 단어로 억누르라 했지요.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충분히 누려왔고, 현재에도 누리고 있는) '안락'이 아니라, '긴장에서 놓여나 인생을 즐기는 것'15이었으며, 야코프와의 (비록 섹스가 가장 커다란 부분이었으나16, 예의 그것뿐 아니라 정신적 교감을 통한 위로도 주요한 이유였다라 작가가 설정해놓고는 있는) 일탈을 통해 기어이 '나는 다시 내 생각과 행동의 주인이 되었다. …… 내가 소유하지 않은 것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 나는 내 영혼을 되찾았다.17라는, (지극히 고삐리스러운) 만족감/성취감/존재감 등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공원에서의 대화, 그 키스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후회는 없다. 나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행동을 했고, 그 행동 자체가 나를 가두고 있는 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 그와 함께 있을 때 나의 행동은 항상 놀랍다. 오럴섹스, 분별있는 충고, 공원에서의 키스. 내가 마치 다른 사람 같다. 야코프와 함께 있으면 나는 완전히 다른 여자가 된다. (pp 81-84)

똑같습니다. 부인과의 사이에서는 없어진 지 오래된 육체적 쾌감을 느낀 후, 와타나베가 했던 '이것도 모른 채 평생을 살아갈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소름이 끼쳤다'18란 고백과 말이죠. 이처럼 --- 불륜이란 건, 우리가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난 데가 있음'이라 살벌하게 정의해 놓고, 범죄로까지도 처벌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아야할 만큼 매력적인 유혹입니다. '새로움에 더욱 열광하게만 되는',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을 어지간한 최면으로는 지워낼 수 없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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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사랑을 내보일 수가 없어."19


불륜이 한창인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이 겪게 되는, 이겨낼 수 없는 명확한 한계이지요. 이 한계는 불륜의 시초부터 두 사람에게 알려져 있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우리 둘 다 이건 결국 끝나게 되어 있는 이야기란 걸 알고 있어. 하지만 지금은 상관없어."20


'상관없어'라는 지금을 결국 끝내게 되는, 혹은 이겨내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하는 동인(動因)은 다양합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에서는 '사상(思想)'이, 「새벽 거리에서」는 '현실'을, 「레테의 연가」는 (사뭇 지나칠정도로 관념적인) '도덕'이 그러한 역할을 담당했었었지요. 예의 '성공으로 끝맺음지어지는 불륜'은 아닌 이 작품에서는 뜻밖에도! --- 린다가 내내 이 불륜의 이유라 말해왔던 '외로움'의 근원인 그녀의 남편이 다시 이 불륜을 끝맺음 지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더군요.

누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겠어? 사회가 욕하는 모습으로 사는 거지. 부모가 선택해준 대로 사는 거고. 아무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애쓰잖아. 사랑받고 싶으니까. 그래서 자기 안에 있는 가장 훌륭한 것들을 억누르며 살아. 빛나던 꿈은 괴물 같은 악몽으로 바뀌고, 실현되지 않은 일들, 시도해보지 못한 가능성들로 남게 되는 거지.  …  나는 거의 모든 사람이 자기 안에 그런 괴물을 키우고 있다고 확신해.(pp191-192)


사랑을 하면 그 어떤 것도 받아들여야 해. 사랑은 우리가 어릴 때 갖고 놀던 만화경 같은 거니까. 똑같은 건 없고 항상 변하지. 그걸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 행복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 때문에 오히려 고통받게 되어버려.(p303)

와타나베의 부인 유미코가 남편의 불륜에 대처했던 방식관 180도 달리, (이 역시 동양과 서양의 정서 차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린다의 남편은 아내의 불륜을 이처럼 적극적으로 이해해줌으로써, 린다 스스로 그 불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고 있습니다.21 놀!!!랍죠. 헌데 말입니다...


이러한 주변부의 설정에 더해지는 린다의 자기반성을 통해 느닷없는 방식으로 하지마라, 불륜!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물론 작가의 다음 메세지에 대해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의 동의를 하는 분도 많겠지만, 왠지 전... 먼가 고등학교 국민윤리교과서스럽다란 생각만 들더군요.

 

 

 

 

 


한 사람을 만났다. …… 그것은 마약중독자가 마약을 할 때 느끼는 행복같은 것이다. 조만간 그 효과는 사라지고 전보다 더한 절망이 찾아든다. (pp308-309)


십 년간의 결혼생활에서 …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사랑'을 미약하게나마 모방할 수 있었던 순간은 아주 적었을뿐더러 매우 짧았다.  …… 하지만 그런 얼마 안 되는 순간들이 나의 존재를 정당화한다. 그런 순간들은 내게 삶을 지속할 힘을 주고 살아가는 나날에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삶이 아무리 슬픔을 끌어들이더라도 사라지지 않는 기쁨이다.(p356)

이런 식의 결말에 적지않은 아쉬움이 생겨났습니다. 불륜을 마약에 비유하여, 새로움으로부터의 쾌락/행복이 주는 효과가 조만간 사라질 수 밖에 없다라면 --- 또다른 새로운 마약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공무원이 공무원에게 하는 접대'가 서로 들킬 염려로부터 벗어나 있기에 판이 커지게 되는 것처럼, 서로에게서 느끼는 새로움의 유효기간이 만료되면 그냥 쿨하게 바이!하며 또 다른 새로움을 찾아가는 식으로 이어지는 (그리고! 이건 정말 힘들겠지만, "사랑이 개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호동의하에 일어지는 섹스라면 난 자유로운 관계를 지향하는 쪽이에요"22라 말해주는 배우자까지 더해지는) 불륜은 정말 소설에서조차 성립되고 그려질 수 없는 의문이 만들어낸 아쉬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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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상황의 은근한 묘사를 통해 야하다!라는 느낌을 안겨주었다라면, (이 역시 동양과 서양의 차이라 생각되는) 이 작품은 대놓고 섹스에 관한 묘사를 해놓음으로써 그런 느낌을 선사해줍니다. pp315-318에 등장하는, 야코프의 사무실에서의 섹스장면은 상당!히 야하더군요. 원래는 다음의 독서로 한국의 불륜이라 추천받은 「아내가 결혼했다」를 읽을 계획이었더랬습니다만 --- '①글로 읽는 야함'이 주는 상상력의 발현, 그리고 ②외갓남자와의 섹스 이후 남편과의 섹스도 즐거워졌다라는 린다의 고백으로 인해, 아마도 이 둘을 모두 지니고 있어보이는 작품을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 作, 「열쇠」


읽어보신 분들... 어떠셨었는지요. ^^;;


덧>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이것이 이 작가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으나 --- 스위스 출생이 아니면서도 스위스를 배경으로 이 소설을 쓴 이유가 혹시, 스위스에 대해, 스위스 사람들의 특징에 대해 나 이만큼 많이 안다구!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싶을 정도로 그런 묘사가 짧게 자주 등장합니다. 처음으로 제대로 알게되었던 '에로스와 프시케의 신화'이야기는 매우 매우 재미있었고,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를 읽었었다라는 것에는 자부심을, 사놓은지 오래된 「프랑켄슈타인」은 어여 빨리 읽어봐야겠다란 생각을 갖게 해주는, 곳곳에의 인용들도 '나 좀 알지?'의 뉘앙스가 적지않게 느껴지기도 하더군요. 마지막 부분만 빼고는 술술 잘 읽히는 소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 짧은 한두 마디 : 불륜 극복에의, 다소 현실적이지 못한 듯한 또다른 방법. 아쉬움은... 큼. --;;


※ 읽어본, '불륜'에 관한 소설

- 이문열 作, 「레테의 연가

- 옌렌 커 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 히가시노 게이고 作, 새벽 거리에서

 

 

 

 

 

 

 

 

 


 

 

 

 

 

 



 

  1. 히가시노 게이고 作,「새벽 거리에서」p293, 재인.
  2. 본문 p10.
  3. 본문 p11.
  4. '대체,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일상과 권태가 뭐가 문제라는 거지?' - 본문 p12.
  5. '솔직히, 아무 문제 없다. 다만……' - 본문 p12.
  6. 본문 p13.
  7. 본문 p29.
  8. 본문 p14.
  9. 본문 p27.
  10. 본문 p23.
  11. '만남은… 언제나 평범한 일상의 한가운데에 툭, 던져진다. 한참이 지나야 비로소 그 만남은 반짝반짝 빛을 내기 시작한다.'(「새벽 거리에서」, p8.)라는 구절은 이처럼 이 소설에서도 예의 정확하게 작동되고 있지요.
  12. '나는 칫솔과 치약을 산다' - 본문 p42
  13. 본문 p40.
  14. 본문 p69.
  15. 본문 p85.
  16. 혼외의 관계로 만난 남녀에게 섹스란 반드시 거칠 수 밖에 없는 과정인가에 대해, 파울로 코엘료와 이문열은 서로 다른 견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당연(?)히 파울로 코엘료의 주장에 손을. ^^;;
    ● '누군가를 사랑하면 우리는 그 사람의 영혼에 대해 아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그 사람의 몸까지 이해하고 싶어한다. …… 본능이 우리를 그쪽으로 이끈다.' - 본문 p172.
    ●'사람의 사랑이 동물의 성애(性愛)와 구별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도덕성(이다). …… 사랑은 본질적으로 도덕적인 것이다. 부도덕하고 추악한 세상의 사랑은 사랑과 성을 혼동한 결과이다.' - 이문열 作, 「레테의 연가」중.
  17. 본문 pp78-79.
  18. 「새벽 거리에서」, p90.
  19. 본문 p219.
  20. 본문 p234.
  21. 표지 사진 속 세 개의 앵두 꼭지가 놓여져있는 방향이 이런 부분에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을 수도.
  22. 야코프의 부인 마리안의 말. - 본문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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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거리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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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무엇 때문에!란 이유를 댈 순 없지만, 암튼 꽤나 오래전부터 꼭 읽어보고 싶었던 주제인 '불륜'에 관한 소설입니다. 국어사전은 이 '불륜(不倫)'의 의미를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난 데가 있음"1이라 적고 있으며, 이 작품 속에서도 예의 '인륜에 어긋나는 일,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저버리는 짓'2이라 말해지고 있습니다만, 이처럼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라는 추상적 설정은 자칫, 이 세상에 '불륜'이라 칭해질 수 있는 걸 정말 널리고 널리게 만들어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  제가 관심(응?)이 있었던 (또한 여러분들 중 많은 분들도 어떠한 각도에서건, '관심' 혹은 '경멸어린 호기심'이건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되는) '불륜'이란 바로, (소설 「롤리타」에서 보여지는 '아청법' 위반스런 설정은 당연히 제외하고!) 통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연결되어서는 안 되는 관계의 남녀간의 무언가'가 였었습니다. 물론! 저의 관심은 '연결되어서는 안 되는'에 집중되어 있었죠. 그러하기에,

(청춘이건 중년이건 노년이건) 미혼의 남녀간의 관계는 당연히! '불륜'이라 불리어질 수 없는 것이 됩니다. 이건 심지어 (「롤리타」적 설정을 제외한다 하였으니) 60대 남성과 20대 여성 사이에 사랑이 싹트였다해도, 그리하여 그것이 타인의 관점에서 보아 '이상한 관계'로 여겨질 수는 있어도 우리는 그 둘의 관계를 '불륜'이라 말할 수는 없다,가 되어야 한다는 거지요. 따라서 --- '불륜'이란 건 (단순하게 표현해보자면) '기혼-미혼''기혼-기혼'의 남녀 관계에 한정되어서만 끄집어내질 수 있는 개념이 될 것이고, 이 구도 속에 '남'과 '여'를 어느 쪽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총 3개의 '불륜 관계'가 현실에서 '문제가 된다'라 할 수 있을겁니다. (아! 동성간의 연애감정 역시 제외해야겠군요. '성소수자 인권' 어쩌구해도, 하물며 '그들'의 '감정' 자체에 시비를 걸 생각이 제게 없다해도, 여전히 그런 '감정'에 대해 이야기조차 하고 싶지 않은 것 역시 '그들'로부터 존중받아야할 저의 가치관이니까요.) 암튼!

'불륜'이란 관계에 제가 무슨 로망같은 걸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그 대상을 누구로 설정해야 할지도 모르겠으나) 물어볼 수 있다면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고, (들어줄 사람이 있다고만 하면) 하고 싶은 말 또한 적지 않은 게 사실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관심의 발로는 흡사, 이 작품에 등장하는 두 인물이 각기 털어놓고 있는 불륜에 빠진 이유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 불륜을 저지르는 놈만큼 멍청이는 없다. …… 다만, 다음과 같은 한마디를 덧붙여서.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는 거야.'(p8) - 남자 주인공 와타나베

● "불륜을 경험해 보고 싶기도 했어. 어떤 기분인지 알고 싶었지."(p393) - 여자 주인공 아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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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불륜'에 관한 이야기를 적고 있는 소설입니다. --- '기혼 남성 - 미혼 여성'간의 '사람으로서 지켜야할 도리를 벗어난'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니까요. 와타나베와 아키하간 (이루어져서는 안될 뿐 아니라, 생겨나는 것조차 안된다라 말해지는) 만남의 시작은 예의 이러했더랬습니다.

만남은 늘 그다지 극적이지(는)3 않다. …… 그것은 언제나 평범한 일상의 한가운데에 툭, 던져진다. 한참이 지나야 비로소 그 만남은 반짝반짝 빛을 내기 시작한다.(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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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륜의 정의

와타나베 --- 결혼 생활이 10년 쯤 되고보니, '마누라와 딸은 여자가 아닌 존재'로 여겨지게 되었듯, 그 자신 역시 스스로를 '남자가 아니라고, 남편, 아버지, 아저씨 그런 걸로 변해 버린'4존재만으로 생각하고 있는, 삼십 대 중후반 즈음의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 자신의 회사에 계약직 사원으로 입사한, 삼십 대 초반의 아키하와 의도치 않았던 일로 인해 회사 밖에서 만남을 가지게 되지요. 예의 역사는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그렇게 '평범한 일상의 한 가운데에 툭, 던져'지게 되는 겁니다. 이제 남은 건 그 만남이 과연 '반짝빤짝 빛을 내'게 될 것이냐 뿐이겠죠. 


커피숍 정도는 가게 될지 모르지만 그게 전부일 것이다. …… 그걸 잘 알면서도 오랜만에 젊은 여성과 개인적으로 만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나는 업무 시간이 끝나기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남자란 참으로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동물이다.(p24)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동물인 남자, 와타나베는 '또 만나고 싶은데, 안될까?'5라 보낸 문자에 돌아온 아키하의 답장, '안 될 거라고 생각하시나요?'6에 크게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헌데, 이게 말이죠. --- '불륜에의 변명'으로 들릴 수도, 그러하기에 이런 말을 하는 제게 분명! '불륜에의 로망'같은 것이 있을꺼다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라는 걸 감수하고라도, (뭔가 후폭풍같은 게 있지는 않을거라 스스로를 안심시켜보며) '사십대 중반이 되어 있는, 사회생활 16-7년의 대한민국 남성'인 제게도 (앞서 인용해놓았던) "불륜을 경험해 보고 싶기도 했어. 어떤 기분인지 알고 싶었지."란 생각이 단 한 번도 있어보지 않았었노라 말할 수는 없기에, 와타나베의 다음과 같은 갈등에, 상당한 강도로 공감을 하게만 되는겁니다. ('독자의 공감' - 그것이 독자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여부를 떠나 - 을 이끌어내는 것이 작가의 역량이라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분명! '추리소설만 잘 쓰는 작가'로 과소평가될 작가는 아닌 겁니다. 현실적으로 100% 불가능한 설정을 들이밀고 있는 그의 작품 「비밀」이 제게서 이끌어 내었던 '감정 이입'은 '사십대 중반'의 저 스스로조차 매우 놀랄 만큼이었었었죠.)


내 본심을 털어놓자면, 어안이 벙벙해 꼼짝 않고 서 있는 가운데 가슴속에서 뭔지 모를 뜨거운 것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쉽게 표현하자면 '울렁거리는' 느낌이랄까.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 없는 무언가가, 내 자신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밀려왔다.(p36) … (VS) … 너무 들뜨고 좋아해서는 안 돼. 난 결혼한 몸이고 자식도 있잖아. 아키하에게 연애 감정을 느끼는 건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마음 속에서만의 일이야. 이건 일종의 게임이야. 현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p56)

'욕망'과 '이성(理性)'간의 싸움에서 '욕망'이 이기는 건 여전히 예외적일 뿐​입니다. (그러하기에 그런 경우에는 '타락'이나 '범죄' 등과 같은 부정적인 단어가 뒷따르곤 하지요.) '인륜(人倫)'이란 것이 누적된 '이성의 승리'의 산물이기에, '욕망의 패배'인 (이 감상문에서 다루고자하는, 현실에서의 의미로서인) '불륜'은 여전히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난 데가 있음"​의 지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기에, (불륜을 비난하는 쪽은 말할 것도 없고) 불륜을 행하고 있는 자 스스로조차도 불륜을 정의함에 있어, 뭔가 매우 조심스럽거나 위축될 수 밖엔 없지요. 그리하여 결국 도출되는 결론이란 게 :

 "불륜에 대한 정의는 사람에 따라 제각각이다."7


① 보수적 정의 : 배우자 이외의 이성과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 자체가 불륜이다. 데이트는 말할 것도 없다. …… 배우자에게 상처를 준 이상 그것은 불륜이다.(p60)

② 개방적 정의 : 결혼을 하더라도 남자와 여자라는 본성 자체는 변하지 않으므로 다른 이성에게 연애 감정조차 품지 말라는 것은 무리이다. 아내나 남편에게 들키지 않고 데이트하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그 정도의 두근거림이 있는 편이 인생을 즐겁게 하고, …… 키스까지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역시 섹스를 하느냐의 여부가 불륜이냐 아니냐를 결정한다.(p60)


【 불륜을 위한 변명

우리는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다. 넘기 전에는 그 경계선에 높은 벽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단 넘어 버리자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고, 벽은 스스로 만들어 낸 환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 이날 밤의 일이 한때의 기분에 휩쓸린 결과라고 하자. 그렇다고 그것으로 끝날 수 있을까. 경계선 너머에 눈알이 핑핑 돌 만큼 감미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서도 영원히 그것을 넘지 않을 수 있을까. 경계선 위에 벽 따위는 없고 한 걸음만 가볍게 내디디면 된다는 것을 알아 버린 지금, 그것은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pp80-81) …… 불륜은 쾌락만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일단 시작돼 버리면 그렇게 미적지근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지옥이다. 감미로운 지옥. 여기서 도망치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속의 악마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pp87-88)

이것이, 불륜 당사자의 수사(修辭)적 변명임을 저 역시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만! --- 이성의 논리를 떠나8 감정적으로만 글을 따라가다보면 문득!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게 되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직접 이런 상황에 놓여보았던 건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는) 장면이라고 말하게만 됩니다. '뭐라고 할까, 말하자면 어떤 흐름이라고 할까? ……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랐더니 어느새 그렇게 되어 있었어'9란 와타나베의 고백이 그야말로 진심이었다라는 걸, 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었거든요.


<십계명>은 다섯 가지의 '해야 할 것'과 다섯 가지의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담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명한 다섯 가지의 '하지 말아라!' 중 무려 두 가지 - 간음하지 말라. / 내 이웃의 아내나, 여종을 탐내지 말라. - 가 바로 이 '불륜'과 관계지워질 수 있는 것만 보더라도, 인간에게 (이 감상문에서 다루고 있는 방향의) '불륜'이라는 것이 얼마나 이겨내기 힘들고 오래된, 어쩌면 인간의 내재적 본성이라 말해질만도 한 유혹인가를 알 수 있지요. 그러하기에 ---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랐더니 어느새 그렇게 되어 있었어'란 말이, 미혼 남성이 미혼 여성에게 고백하는 프로포즈로서가 아닌, 현실의 기혼 남성에게도! (물론, 기혼 여성에게도)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는, 비록 이것이 기혼 남성의 (흔한) 변명이란 건 알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수긍을 하게만 되는, 왠지 수긍해주어야 할 것 같고, 심지어 수긍해주고 싶어!라는 억지까지도 부려보고 싶은 부분 또한 분명 들어있는 감정의 변화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라는 겁니다.   



【 불륜으로의 초대

흡사! '불륜'을 경험해보지 못한/않은 독자들을 위한 친절한 유혹이라도 하듯,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불륜의 감미로움'을 다음처럼, 차마 어디에서라도 뭔가 부인(否認)할 포인트를 찾아내지 못할만큼 (이 단어가 이 상황에 적합한지는 자신없지만) 매력적으로 표현해 놓고 있습니다. 게다가! --- 와타나베가 말하고 있는 '눈알이 핑핑 돌 만큼 감미로운 세계'를 읽어가다보면, 뭔가 제 고등학교 시절의 연애도 떠오르고, 살아오면서 이래저래 들었었던, 심지어 저 스스로 느껴보기도 했었던 그런 소소한 감정들마저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겁니다. 이거 참... --;;


(나는) 마치 처음으로 연인이 생긴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처럼 아키하의 몸을 만지고 싶어 어쩔 줄 몰라 한다. (아내인) 유미코와는 벌써 몇 년째 해 본 일 없는 열정적인 키스를 수도 없이 나눈다. 내가 아키하의 방에 머무는 것은 고작 두 시간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그사이 우리는 몇 번이나 섹스를 한다. 나 자신, 그런 사실이 무척 놀랍다.(p89) …… 이렇게 타오르는 느낌이 내 속에 남아 있었다는 게 놀라웠고, 그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게 기뻤다. 이것도 모른 채 평생을 살아갈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소름이 끼쳤다.(p90) …… 몸이 두 개라면 얼마나 좋을까.(p99) …… 아키하와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회사에 가는 일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 전에는 우울하기만 했던 월요일 아침마저 기운이 넘쳐났다. 아니 월요일 아침이니까 더 힘이 난다고 하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주말에는 아키하를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p100)

 

【 성공적 불륜을 위하여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형태(인 '일부일처제')의 '결혼'은 두 당사자들에게 이전까지 가지고 있었던 각자의 feasible set(실현가능한 모든 것)의 일정 부분을 완전히 포기하(고 훨씬 좁아진 범위의 새로운 feasible set을 받아들이)라 요구10합니다. '다른 이성과의 새로운 사랑' 이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라는 게 그 중 대표적인 것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결심했던 당시의 상대방인) '지금 행복하고, 미래에도 행복할 것 같은 현재의 배우자'를 기어이 이겨내는, '왜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났니'의 상대가 생겨났다면 대체 어찌해야 하는 걸까요? 인생 한 번 밖엔 못하는 거잖아요!


지금은 많이 바뀐 듯도 싶지만, '결혼 배우자의 선택'이 (한 번 뿐인 삶의) 평생에 있어 '단 한 번뿐의 선택'이어야 한다는 암묵적 전제, 그리하여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순간, (이전까지 누렸던 넓은 범위의) feasible set이 다시는 복구될 수 없다라는 현실을 받아들인 이에게 남아있는 가능한 선택은 다름 아닌 --- 어쩌겠습니까. 작아진 feasible set 내에서만 반응을 보일 수 밖에요.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하나 더! 현재의 feasible set을 절대 깨뜨려서도 안 된다라는 점.


● 남녀 사이에 무리는 금물이죠. 서로가 가능한 범위 안에서 상대를 사랑하면 되는 거예요. 가능하지도 않은 일을 하려고 하거나 서둘러 결과를 얻으려 하다 보면 반드시 파탄에 이르게 되죠.(pp129-130)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말 것, 그것은 불륜의 첫째 원칙이다.(p134)

그것(이혼)만은 절대 안 된다는 전제하에 성립하는 게 불륜이야.(p139)

'역사'로부터 미래의 '실패하지 않음'을 배운다라는 건 이처럼 '성공적 불륜'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원칙인 겁니다. (실패의 원인들을 모두 제거해 낸 후 나오는 결론은) 한 마디로, 실현 가능한 범위 이내에서의 불륜이라면 성공할 수 있다라는 거지요. 그러나!!! --- '0.999…… = 1'이라는 등식이 수학적 논리의 모순은 없을지라도, 직관적으로는 여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듯, 성공적 불륜을 위한 위의 조건들, 특히 '서로가 가능한 범위 안에서'라는 부분은 '기혼-미혼'이라는 비대칭성 하에서는 (아마도) 절대!로 지켜낼 수 없다라는 데에 문제(?)의 불씨가 자리잡고 있다라 생각합니다. (이 소설에 나타나는 예를 보자면, 서로가 지니고 있는 feasible set의 크기 차이가 기혼에게는 미혼이 질척거린다라고, 미혼에게는 기혼이 미적거린다11라 받아들여지는 식이죠. 특히, 미혼의 '질척거림'이 그 극단까지 치닫게 되면 --- 이문열의 소설 「레테의 연가」의 여주인공 희원의 다음 독백은 좀 많이 오싹하죠. : '배가 난파했을 때, 꼭 한 사람만이 의지할 수 있는 통나무에 두 사람이 헤엄쳐 간 경우... 그때 둘 중 하나가 자기의 생명을 건지기 위해 다른 한 사람을 밀쳐 결국 그가 죽게 되더라도 그 행위는 정당 방위가 된다는 거야. …… 누가 먼저 그 통나무를 잡았는가는 문제가 되지 않았어.')

 



【 불륜의 필연적 종착점


나는 여자의 그 무엇을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유미코는 좋은 엄마다. …… 그렇지만 이제 그녀는 나의 연인은 아니다. …… 지금 함께 사는 이 여자는 예전에 내가 사랑한 여성과는 다른 누군가이다. 아마도 세상의 많은 남자들, 결혼한 대부분의 남자들은 나와 같은 처지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더는 옛날과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평생 그대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사람들이다. 그것이 아마도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가 되는 길이리라. (p274)

그야말로, '치사한' 변명이 느닷없이 와타나베의 입에서 나옵니다. '세상의 많은 남자들'을 끌어들임으로써, 자신의 '불륜'이 그다지 특별한 것은 아니라 말하는, 너무도 전형적인 '나만 그러냐?'식의 물타기를 하고 있지요. 이러면서도! 아내 유미코와의 이혼을 결심했고, 그 결심을 아키하에게도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와타나베의 마음 속에는 '나, 진짜 이래도 되는 걸까?'라는 망설임이 끊이질 않습니다. 여기서 잠깐! --- 아직은 와타나베를 위한 변명이 남아 있기는 해요. 


갈망하던 것을 손에 넣게 직전에 몸을 돌려 돌아가고 싶은 이 마음. 어떤 사람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몸을 돌려버린다. 나도 그런 부류가 될까 두렵다.

- 실뱅 테송 저, 「희망의 발견 : 시베리아의 숲에서」 중 pp16-17. 

자신 스스로에게 '교활하고 비열한'이란 판정을 내리면서까지, 와타나베는 '지금까지 해 온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가능성'12을 남겨두고 싶다는 속내를 버리지 못합니다. 물론! 이 갈등은, 아키하와의 불륜 관계를 청산하는 걸 전제로 하고 있지요. 이 갈등의 근원은 바로 --- '섹스에는 연애 감정이 필요하다. 섹스는 남자와 여자가 하는 것이다'라는 자신의 생각, 그리고 자신이 현실이라 생각하고 있는 '우리 부부는 이미 남녀 사이가 아니다'라는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바로!


아키하라면 영원히 남자와 여자로 있을 수 있을까 자문해 보았다. 언제까지 가슴 두근거리는 섹스를 할 수 있을까.(p108)

​'부부(夫婦)'라는 관계를 단순히 '서로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의 결합'만으로 이해하고 있는 한, 그리하여 그 결합의 목적과 유지에 '섹스'라는 것이 가장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라 생각하고 있는 한, '불륜에의 유혹'은 절대로 이겨낼 수 없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 그러한 이유로 '불륜'에 빠졌다라면, 그 '불륜의 관계' 역시 똑같은  이유로 인해 작살나게 되기 마련이며, 차라리! 와타나베처럼 미리 그러한 염려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것이 '부부 관계'와 '불륜 관계'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의 유지를 위한, 그나마 현명한 처신이라 변명해주고 싶다라는 거지요. 결국 불륜은 ① 어지간해서는 진행될 수 없으며, ② 진행되었다 해도 필연적으로 좋지 않는 끝맺음이 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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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불륜이 필연적으로 불행한 결말로 끝날 수 밖엔 없다는 것이 곧 '그러므로 불륜은 도덕적으로 비난 받아야 한다'를 의미하는 건 결코 아닙니다. 그저 '다만 그렇다'라는 것 일뿐이죠. 그렇다면, ('사람의 도리' 같은 추상적 이유 말고) 현실적으로 대체 왜 불륜이 비난받아야 하는 행위가 되는걸까요?


오로지 내 행복의 증가를 위해 누군가의 행복을 감소시킬 수 있는 권리는 그 누구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내 행복의 증가가 반드시 누군가의 불행해짐을 필요로 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행복의 증가를 추구할 권리가 있다'라는 말은 더 이상 성립되지 못하는 것이지요. 바로 이 점!!! 내 삶에 새로운 기쁨을 누리기 위해, 내 배우자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는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는 겁니다. --- '영원한 비밀'이란 존재하지 않듯이, 갖가지 임시방편으로 (기혼인) 자신에게 허용된 행동 범위를 넘어섰던 와타나베의 불륜 역시, 그의 아내 유미코는 알고 있었었지요. 남편의 불륜을 알면서도 그것을 홀로 참아냈던 그녀의 모습, 전 이 장면만으로도 '불륜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한다'가 충분히, 그리도 당연히 성립될 수 있다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항상 늦는다. 시간은 두 번째 기회를 주지 않는다. 삶은 단 한 번으로 결정된다. 그런데 나는 삶은 팽개치고, 이 숲에 들어와서 박혀 있다. …… 나는 내 인생의 배에 구멍을 뚫었고, 뱃전의 윗부분까지 물이 차올랐을 때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 실뱅 테송 著, 「희망의 발견 : 시베리아의 숲에서」 중 pp257-258. 

…………………………………………………………………………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란 걸 잊지말라하듯, 이 소설 속엔 예의 살인 사건을 둘러싼 추리가 작품 후반부를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만!!! 이 추리를 '히가시노 게이고의 것'이라 말하기엔 뭔가 부족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소설엔 세 커플의 불륜이 등장합니다. 그 중, 한 커플의 불륜이 그 살인 사건과 관계가 있는데 그 불륜 커플의 관계라는 게 그야말로 <사랑과 전쟁> 이더군요.) 게다가!!! --- 마지막에 실려 있는 또 하나의 불륜 이야기는, "결혼한 이상 연애 따위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런 거에 말려들면 결국 자신만 너덜너덜해질 뿐이다. …… 불륜은 불륜으로 끝내야 한다."13라는, 뭔가 당연히 들어 있어야하는 것이기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밖에는 느껴지지 않는, 진부한 교훈적 메시지라는 점에서 사뭇 아쉽기도 하더군요. 그냥... 화끈한, 그리고 성공하는 불륜만으로 되어있는 소설은 정녕 찾을 수 없는 걸까요?  


덧> '기혼-기혼'간의, 가정의 파탄까지는 양쪽 다 생각하고 있지 않는, 오로지 '새로운 삶의 기쁨'만을 부가적으로 누리고자 하는 불륜에 관해선, 이 소설이 보여주고 있는 해법으론 ​답이 나오질 않습니다. 이건 마치 공무원이 공무원을 접대하는 것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접대'라 불리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나 할까요? 이러한 이유로 --- 제가 읽어보고 싶어하는, '화끈한, 그리고 성공하는 불륜의 이야기'를 찾게 된다면 아.마.도. '기혼-기혼'간의 불륜에 관한 것이리라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이게 뭐라고, 추측까지 해본단 말입니까... --;;) 


▶ 짧은 한두 마디 : '애인'은 소모품일 수 있으나, 결혼제도를 통해 획득된 '남편'과 '아내'라는 지위는 결코 소모되어서는 안 되는 것임! 


※ 읽어본, '불륜'에 관한 소설 : 이문열 作, 「레테의 연가

 

 

 

 

 

 

 

 

 

 

 





 

  1. 네이버 사전.
  2. 본문 p86.
  3. 본문에는 (는)이 없으나, 전체적 의미상 (는)이 드러가는 것이 더 정확하게 이 구절의 의미를 확정지어주지 않을까 싶네요.
  4. 본문 p16.
  5. 본문 p55.
  6. 본문 p55.
  7. 본문 p60.
  8. 이 소설을 읽어가다보니 자연스레 이성에의 끈을 놓아버리게도 되더군요. --;;
  9. 본문 p283.
  10. 물론, 그러한 요구가 있음을 당사자들은 알고 있으며, 그에 동의했기에 서로 부부가 된 것이지요.
  11. '자기는 아무것도 잃지 않고 상처받지도 않으면서 상대에게만 부담을 지우는 행위'(p359)
  12. 본문 p340.
  13. 본문 pp419-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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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발견 : 시베리아의 숲에서
실뱅 테송 지음, 임호경 옮김 / 까치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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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는 산들을 기어오르고, 내려오고, 새로운 길을 찾고, 표고차(標高差)를 가늠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산들을 쳐다본 적은 아직 한번도 없었다.(p115)

어느 한 '여행작가이자 에세이스트'가 털어내놓고 있는 고백으로만 받아들이기엔 사뭇 너무도 무거운 구절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 무려! '15가지 종류의 케첩'1들이 진열대 위에 올려져 ('능동적인'이라 말해질 수 있는) 나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으나, 그러한 풍요로운 선택지를 내 앞에 가져다 놓을 수 있기 위해선 '그대는 모든 것에 대해서 의견을 가져야 하노라! 그대는 전화를 받아야 하노라! 그대는 분개해야 하노라! 그대는 항상 연락할 수 있어야 하노라!'2라는, 지금의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일종의 '정언 명령(定言命令)3'스런 규율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라는 전제가 반드시 작동되어야 한다라는 것에 대해 '꼭 그렇지만은 않노라!'라는 대답을 선뜻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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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떠나온 세계에서는 타인들의 존재가 우리의 행동을 통제한다. 그것은 우리를 규범 속에 묶어둔다. …… 우리의 동류, 다른 인간들은 세계의 현실을 확인해준다. 도시에서는 눈을 감아도 현실이 없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눈을 감고 있더라도 타인이 현실을 지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안도감4을 주는지! (pp108-109)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에서 '로빈슨 크루소'가 느꼈던 공포가 다름 아닌 바로 이 타인의 '부재(不在)로부터의 공포'라는 것이었음을 다시금 떠올려 주는 이 구절은 역설적!으로 --- 이 책의 저자 실뱅 테송에게 그 타인의 '부재(不在)로 인한 자유'를 갈망하게끔 만들어 준 가장 커다란 원인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2010년 2월부터 7월까지의 6개월 간을 바이칼 호숫가의 한 오두막에서 살(아보)기로 하지요.


   
 

"나는 책과 시가와 보드카를 가져갔다.

나머지 - 공간과 침묵과 고독 - 는 이미 거기에 있었다." (p11) 

 

 

 

 


그 어떤 하나의 행위조차도 '다른 무수한 행위들의 희생 위에 펼쳐'5져야만 하는 도시와는 달리, 그곳 호숫가의 오두막에서 그는 (결국 그가 원했던 '부재로 인한 자유'를 누리며) '많이 읽고, 산에 오르며, 창가에서 보드카를 마시며 하루가 흘러가는 것을 그저 지켜보는' 간단하고도 아름다운6방식의 일상을 누릴 수 있었더랬습니다. --- 이 친구(?)도 책읽기를 심하게 좋아하더군요. 자신이 그곳 바이칼 호숫가의 오두막에서의 (비록 '유한'한 기간만이었지만) 삶을 원했던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두 번에 걸쳐 강조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죠.7


왜 이곳에 파묻힐 생각을 했느냐고 내게 묻는다면, 읽어야 할 책들이 밀려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리라.(p28)

사실, 내가 숲속에 파묻힌 이유 중 하나는 나를 항상 주눅들게 했던 책들을 돌파하기 위해서였다.(p87) 

정말... 부럽기 짝이 없는 삶 아닌가요? --- 저자 스스로 이러한 은둔의 삶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오직 "나 자신을 견뎌낼 수 있을까?"8라는 것 뿐이었었노라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엔 '하나의 완전한 삶으로서의 여섯 달'9동안 (예기치 않게 찾아왔던 '가장 슬픈 시간들'도 있었었으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들'10을 보냈었었죠. 허나!!!

……………………………………………………………………………

30명의 출판사 대표들이 뽑은 (1위로 선정된 책이 와타나베 이타루의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점에서 이 리스트가 제겐 그다지 신뢰감을 주지는 못합니다만 어쨌든) <숨어 있는 최고의 책> 2위로 선정되었다는 이 책은 바로 그 '부럽기 짝이 없는 삶'이라는 점이 오히려! --- 독자에 따라서는 사뭇 '커다란'이란 표현을 쓰게도 될만한 거부감을 가지게 될 수도 있게 작용할 수도, 제 경우엔 '거부감'이라고까지 표현되지는 않으나 '적잖은' 불만은 실제로 안겨 주었더랬습니다. 이유인 즉슨!


​나는 움직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고, 드넓은 공간이라는 마약에 중독되어 있었다. 나는 시간을 쫒아 달렸다. 그것이 지평선 저 끝에 숨어 있다고 믿었다. "시간이 너무도 급히 흘러가는 것을 그것의 강렬한 사용으로 보상할 것 (몽테뉴, 「수상록(Essais) 제3권)」)". 이것이 내가 달아나는 시간에 대응하는 방식이었다.(p75)

그리하여 그가 선택했던 이 한정된 시간11동안의 은둔자로서의 '움직이지 않는 삶'이 결국엔 '여행이 더 이상 주지 못했던 것'12을 자신에게 선사해 주었다라는 이 책의 결말은 그가 미리 설정해놓은 시간만큼이나 한정된 것일 수밖에 없다라고, 더 넓게 본다면 오로지 실뱅 테송이라는 인물에게만 국한된 결론이라고 밖에는 받아들여지지가 않았기 때문입니다. 

'로빈슨 크루소를 시샘'13했기 때문에라는 것이 이 책에 나와 있는 바이칼 호수에서의 6개월간에 걸친 은둔 생활을 원하게 된 이유라 저자 스스로 밝히고 있습니다만, '원하는 시간만큼만, 원하는 것들(책과 시가와 보드카14)'을 지니고 하는 은둔 생활이라는 건 --- 그가 원했던 시간이란 것이 행여 '로빈슨 크루소'가 섬에서 보냈던 28년 2개월 19일간이었었다라 할지라도, 그가 원했던 것이 '성경책'뿐이었었다 하더라도 결코 '같은 것'이 될 수는 없다라는, 이건 결국 "'안(일상)으로의 복귀'가 보장되어 있는 자(者)가 단지 경험으로서만 누려보는 '바깥(일탈)으로의 소풍'"​이라는 한계를 애초부터 스스로 지니고 있는 것이기에   


● 고독이란 우리에게 사물들을 다시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것, 우리가 정복해야 할 귀중한 것이다.(p33)

● 난파자는 절대적인, 그러나 섬의 한계에 의해서 제한되는 자유를 누린다. … (그러나) … 이런 제한이 오히려 행복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pp150-151)

●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삶을 꾸리면, 조금도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p199)

● 시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그냥 지나가게 두는 것이다.15 창문을 한 번 바라본 뒤에 다시 바라볼 때까지, 한 잔을 마시고 또 한 잔을 마실 때까지, 책장을 넘기는 사이에서, 그리고 눈꺼풀을 잠깐 내리는 사이에서 가장 현명한 선택은 시간이 저 혼자서 지나가도록 길을 비켜주는 것이다.(p202)

(단순히 위의 구절들만을 놓고 본다면 사뭇 동의할 수 있게되는) 철학적인 심오함, 심지어는 시적(詩的)인 아름다움까지도 느끼게 해주는 실뱅 테송의 이러한 글들은 끝내 --- '밥벌이의 쾌락'만을 즐겨온 자가 '밥벌이의 고난/고통스러움'을 백분 이.해.한.다.라 말하지만 그럼에도 고작 '밥벌이의 지겨움'16으로 밖에는 표현해내지 못한다라 평가받을 수 있는, 어쩌면! 그렇게만 평가되어야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저에게 주었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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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언제나 존재한다. 그 대가를 치르기만 하면 된다."

- 앙리 드 몽테를랑, 「작가수첩」, 1957.

 

 

 

 

 

 

 

 

위의 문구를 이 책의 맨 앞에 인용해 놓은, '자유는 언제나 존재한다'에 강조점이 찍혀 있을, 저자의 뜻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만, 역설적으로! --- '그 대가를 치르기만 하면 된다'라는 조건문을 더 커다랗게 바라보는, 이 책의 저자 실뱅 테송이 말한 '유일한 미덕'17을 끝내 이행해내지 못하는 저같은 (삐딱한?) 독자에게 이 책의 제목인 '희망의 발견'이 지니고 있어야 할 각각의 실체를 전혀 알 수 없었다라는 아쉬움을 주기도 했네요. 어쨌든!!! 자신의 주변을 세심하게 관찰하며 이토록 길게, 여러가지에 대해 써낼 수 있는 것도 능력은 능력이란 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각인받을 수 있는 책이었다라는. ^^;; 



▶ 짧은 한두 마디 : "곳간에서 인심난다"라는 우리 속담의 시·공간을 뛰어넘는 유효성을 깨달았다랄까?


※ 저자 실뱅 테송이 은둔지로 가져갔던 책들 중 읽어본 세 권의 책 : 

- 미시마 유키오 作, 「금각사(金閣寺)」

- 다니엘 디포 作, 「로빈슨 크루소

- 미셸 투르니에 作,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1. 본문 p15.
  2. 본문 p129.
  3. 행위의 결과에 구애됨이 없이 행위 그것 자체가 선(善)이기 때문이 무조건 그 수행이 요구되는 도덕적 명령. 정언적 명령은 '한 행위를 그 자체로서, 어떤 다른 목적과 관계없이, 객관적-필연적인 것으로 표상하는 그런 명령'이다. - 네이버 지식백과, '정언 명령' 중.
  4. 이것이 왜 '안도감'으로 표현되어야 하는가는 주제 사라마구 作, 「눈먼 자들의 도시」를 통해 극명하게 알 수 있지요.
  5. 본문 p41.
  6. 본문 p11.
  7. 무려! 67권의 책들을 오두막에서의 생활을 위해 들고갔더군요. 그들 중 제가 읽어본 작품은 고작 세 개 뿐이었. --;; (책들의 리스트는 본문 pp29-32.)
  8. 본문 p52.
  9. 본문 p306.
  10. 본문 p305.
  11. "나는 내가 원하는 시간만큼만 체류할 것이다."(p18)
  12. 본문 p12.
  13. 본문 p119.
  14. 이 책에 나와 있는 실뱅 테송의 모습은 독서광이자 애연가이며, 엄청난 애주가입니다. (독서의 깊이와 양만 빼면 대략 저랑 삐까삐까 할듯. --;;)
  15. 이 표현이 자칫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에게는 지나치도록 잔인할 수 있다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16. 이는 작가 김훈의 표현이며, 여기에서는 단지 비유적인 용도로만 사용되어, 원작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작가 김훈이 말하고자 했던 그 어떤 것과도 관계가 없습니다.
  17. ​"숲의 나라에서 의미가 있는 유일한 미덕은 '받아들임'이다." 본문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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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 스물여섯의 사람, 사물 그리고 풍경에 대한 인터뷰
최윤필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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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 뭔가 우리말 어법에 들어맞지 않는 듯한 느낌을 주는 제목입니다만, '큰 흐름의 바깥, 스포트라이트의 바깥, 주류 혹은 집단 가치의 울타리를 넘어서도자 하는 도전적 의미의 아웃사이더도, 세(勢)에 쫓겨 변두리로 밀려난 주변인'1 등의 의미로 사용된 '바깥'의 의미를 알게 되는 순간, 비로소 이 책에 담겨져 있는 저자의 의도가 오롯이 드러나게 되지요. 저자는 이 책 속 '바깥에서 만난 이들(때로는 공간 혹은 장소)'을 가리켜 '꿈을 꾸는 이들'이었고, 자신은 그 꿈을 엿보며 멋대로의 해몽을 해보았다라 적고 있습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공간이든 시간이든, 모든 밀려나고 사라지는 것들에는 사연이 있고 맥락이 있다. 사연이 안타깝고 논리가 부조리해도 거기에는 도덕과 당위의 맥락으로 치환되지 않는 시스템의 힘이 있다. 어떤 것을 밀어내고 사라지게 하는 데 앞장서는 것(혹은 사람 혹은 논리)들은 그 시스템의 내력벽(耐力壁) 뒤에 숨어 도덕적 부담을 덜고, 그러면서 시스템을 두껍게 한다. 시대의 조류(潮流)라고도 부르고, 지배적 가치라고도 부르는 그것들이 시대와 사회를 아우르는, 데카르트의 용어로 말하자면, 보편 이성에 닿아 있었던 때와 경우를, 서글프게도 우리의 역사책은 소개한 적이 없다. 그래서 인류는 부조리를 견디는 내성을 다윈의 비정한 가르침처럼 키워와야 했고, 그것이 때로는 맹목의 행복으로 보이기도 한다.(p28)

…………………………………………………………………………

(물론 정상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지 못하긴 하지만 그래도 타이틀은) 기자들조차 자극적이나, 기사 내용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제목들로 독자들의 시선을 끌어내려 안간힘을 쓰는, 그렇게나마 '억지로라도 1등 곁에 얼씬거려야 버틸 수 있는'2이라3, 이 책의 저자 최윤필에 의해 표현되고 있는 현실/현상을 「자발적 복종」의 역자 목수정은 다음과 같이 설명해주고 있었습니다. (「자발적 복종」을 읽으려 펼쳤던 때가 올 2월 17일이었더랬습니다만, 아래의 인용문이 담겨 있는 <역자 서문>을 읽고는 차마! 더 이상 읽어나갈 용기가 선뜻 못내어 그 책을 접었던 기억이 나네요.) 

영원한 을(乙)의 자리에 설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자본가들의 갑(甲)질을 성토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 익명의 네티즌으로서의 성토일 뿐, 막상 현실에서는 을이라도 되는 상황을 감지덕지 끌어안는다. 갑질을 당할 수 있는 을의 입장에 있다는 건 적어도 여전히 링크 안에 함께 서 있음을 의미하므로, 아예 그 링크에서 낙오되는 일이 있을까 경계한다. 이런 현상은 투표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가진 게 없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이해를 대변해 줄 사람에겐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그자에게선 내가 떠나온 비참한 출신 성분의 향기가 풍긴다. 중요한 건 누가 가장 힘이 센가,이다. 비밀투표일지언정, 내가 강자의 편이라고 느껴야 안심이 된다.


- 에티엔 드 라 보시에 著, 「자발적 복종」의 <역자 서문> 중 pp10-11. 생각정원刊

'바깥'에 속해 있는 어떤 부류들은 이처럼 '링크에서의 낙오'를 아쉬워할 수도, 혹은 그러한 현재의 상황을 심히 두려워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 아직까지는/여전히 링크에서 낙오되지는 않았다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인 전, 최소한 (저자가 구분지어 놓은 카테고리 중) '큰 흐름의 바깥, 스포트라이트의 바깥, 세(勢)에 쫓겨 변두리로 밀려난 주변인'의 경우에는 단지 (비록 그들은 자신들을 그렇게 바라보지 않아주었으면 한다해도 결국엔) '추억이나 향수의 오브제'4의 수준을 넘어설 수는 없다라 생각합니다. '안타깝다'라거나 '측은하다'라는 인간적 감정이 ('당위'가 아니라!) 있을 수는 있겠으나, 그저/단지 딱! 거기 뿐이라는 거지요.

누군가 말했듯, 존재한다는 것은 그저 <거기에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거기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거기에 속한다라는 것은 달리 말하면 거기 있는 다른 존재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 된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존재, 누구 또는 무엇과도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존재는 없다.(p294) …… 어떤 사람이 한 공동체에 편입된다는 것은 … 그 성원들로부터 특정의 기호(記號)로 인지되는데서 완성된다.(p32)

- 이문열 作, 「아가」 중. 민음사刊

헌데 말입니다!!! --- 저자는 느닷없이 '바깥'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을 지나치게 일반화시켜버려 결국엔 예의 '기-승-전-자본주의의 그늘/폐해'로 이끌어가는 무리수를 두고 있습니다. <손 모델 최현숙>의 장(章)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데,


세상에 나설 때는 그의 손이 아니라 이영애나 김연아의 손으로 등장한다. 그의 손은 이영애의 손보다 예쁘지만, 세상 사람들은 "이영애는 손도 저리 곱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비애란 거래의 다른 이름이어서 그가 느끼는 서운함은 공식화할 수 없는 서운함이다. 요컨데 육체의 미와 그 사용, 교환가치에 구현된 자본주의적 지배 - 종속의 메커니즘을 우리는 그와 그의 일에서 쉽사리 감지하게 된다. 사회적·경제적 과실에 대한 응당한 보상이나 권리, 지분 따위를 따지는 일이 자본주의적 정의이고 운영의 핵심 원리라지만 그것은 언제나, 아주 완곡하게 표현해서, 누군가의 서운함을 당당하게 전제하고 있다. (p227) 

'스포트라이트의 바깥'이라는 의미로 선택되어 있는 <손 모델 최현숙>편을 읽자라면, 이 인물의 '바깥일 수 밖에 없음'에 (안에 있건 바깥에 있건) 우리가 그 어떤 감정 - 예를 들어, 애잔함이라든가 안타까움이라든가 혹은 부러움이라든가 - 을 느껴야하는 건지에 대해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는 겁니다. 심지어 (<손 모델 최현숙>의 글을 읽고) 어떤 종류의 감정을 느껴/가져야한다라 은근히 강요하고 있는 저자의 의도가 불쾌하기까지도 하더군요. 이런 류의 글이--- '자본주의적 정의5와 운영 원리'란 것이 제 아무리 '누군가의 서운함을 당당하게 전제하고 있다'라 할지라도, 그 서운함이라는 감정의 주체가 결코! '얼굴을 드러낼 수 없는 손 모델'이 될 수는 없는것인, 저자가 끝내 자본주의에 내재되어 있는 '누군가의 서운함'을 말하고자 했다면, 자본주의의 본질 상 품어 안을 수 없는 다른 '바깥'을 선택했었어야 한다라는 겁니다. 게다가! 이로부터 '자본주의적 지배-종속의 메커니즘'을 이끌어낸 것은 그야말로 악수(惡水)중의 악수라 밖에는 생각되지 않지요. 암튼!


이처럼 잘못된6 설정의 '기-승-전-자본주의의 그늘/폐해'는 이 책의 꽤나 여러 곳에서 보여지고 있습니다. <막걸리>편에서 저자는 

경쟁의 논리란 본래의 의미와 달리 힘센 자들이 사후적으로 펼치는 패권의 논리인 경우가 많고, 그 논리는 문화의 본래적 의미에 비춰 비문화적이거나 반문화적이기 쉽기 때문이다. 가령 민족(국가) 문화의 경쟁력을 위해 지방 문화의 희생은 사소하다는 식의 발상이 그런 것일 텐데, 우리에게는 거대한 규모의 경쟁력에 눌려 질식해버린 것이 머무 많았고 그 중에는 한때 700여 종에 달했다는 빛나는 가양주(家釀酒 : 집에서 빚은 술) 문화도 포함될 것이다.(pp324-326)​

'자본주의(Capitalism)'를 채택하고 있는 한, 그 어떠한 사회의 구성요소에 대한 '자본(capital)'의 (사전적이건 사후적이건) 우위를 부인할 수는 없다라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그들 '자본들' 사이에서의 (사후적이건 사전적이건의 경쟁의 결과를 통해 보여지는) 우열 관계 역시 분명 존재하며, 아무리 그것이 꼴보기 싫다한들 그러한 역학관계 자체를 외면할 수는 없는 겁니다. --- '자본'이 선택해낸, 그리하여 '자본주의' 하에서 여전히 그 생명력을 유지 심지어 강화시켜나가고 있는 것들과, 이젠 겨우 '추억이나 향수의 오브제'로만 존재할 뿐인 것들이 각각 존재할 수밖에 없다라는 사실을, 우리가 '자본주의'하에서 일상을 영위해나가고 있다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라는 거지요.

그런 점에서, '자본의 힘'이 '가양주7'들을 질식시켜 버렸다라는 저자의 논리는, 최소한 저에게는 전혀 설득력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가양주의 사라짐이 무언가(자본)에 의해 초래되었다라 지적하기 앞서, 그렇게 사라질 수 밖에 없었던 가양주 스스로의 원인에 대해 먼저 살펴보았어야하는 것이 순서 아니었을까요? (이 단계를 생략한 채, '무언가'(자본)을 먼저 비난한다면 그건 단지 궁색한 면피에 지나지 않다라 생각합니다.) 좀 극단적으로 말해, 

'자본의 힘이 교육의 영역(예를 들어, 대학교의 인수)에도 손을 뻗치고 있다, 그리하여 대학 본연의 기능마저 자본의 힘이 굴복하고 있다'라는 주장이 당당하게 보편적 설득력을 가지려면 --- '자본의 힘'이 더해져 대학 순위가 급부상한 모 대학의 존재, 즉! '자본의 힘'이 초래한 '소비자들의 선호 증가'라는 현상을 (비판하기에 앞서) 먼저! 논리적으로 설명/해명해 낼 수 있어야 한다라는 겁니다. '선악에의 판단'을 말하기에 앞서,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에 대한 분석과 그 분석에의 근거를 먼저! 밝혀놓는 것이 제대로 된 순서이니까요. 물론!!!


소비자의 선택이라는 것이 항상 '옳다'라 말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상황하에서만큼은 최소한 특정한 '소비자의 선택'에 대해 '자본주의의 그늘/폐해'로(만) 몰아갈 수는 없다라는 것 역시 자명하다라는 걸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이는 이 책의 저자 역시 동의하고 있어 보이기도 하기에, 독자로서는 헷... 갈릴 수 밖엔 없기도 하지요.


마패나 봉화가 그러했듯, 우표라는 소통의 얼굴도 늙고 잊히고 사라질 수 있다. …… 어쩌면 지금 우리는 우리 시대의 소통의 얼굴이 바뀌어가는 순간의 역사를 경험하는 중인지 모른다. …… 한마디로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자는 이야기다.(<우표> 중. p299)

 ……………………………………………………………………………………

예의 '안'과 '바깥'은 상대가 존재함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는 지극히 상대적인 개념이지요. 그러한 상대성은 다시 특정 '바깥'에조차 또다시 '안'과 '바깥'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라는 기준에서는 손 모델이 '바깥'이 될 수 있겠으나, 다른 기준, 예를 들어 '부분 모델'의 영역에서는 '손 모델'이 엄연한 '안'의 자리를 움켜쥐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요. 이처럼!!! --- 특정 관점에서 바라 본 '바깥'에 대해 호의적 시선을 반드시 가져야 할 당위는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그 시선이 무관심을 넘어 '냉소적'일 수도 있으며, 경우에 따라선 냉소적이어야 한다가 될 수도 있다라 생각합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소설이며, 오로지 소설로만 읽혀야 한다'8라는 작가 김훈의 당당함에 비교해, '이것은 역사적 가정이 아니라 사실일 수 있다'9라는 호언이 역설적으로 그 작가와 그의 작품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어주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 '안'이 존재하는 한, '바깥'의 존재 역시, '2등'의 자리가 반드시 '1등'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듯이, 일종의 필요충분조건으로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결코 '안'과 '바깥'의 존재함이 서로를 향한 적대적 감정을 필요조건으로 삼고 있지는 않다라는 수준에서의, 그저 한 신문사 기자의 '바깥'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을 담은 잡문(雜文)으로서 스스로의 성격을 한정지었더라면 훨씬 더 잔잔하나 깊은 울림을 독자들에게 안겨주지 않았었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더랬습니다. 온전히!!!

<직업혁명가 이일재>편만이, 저자가 이 책에서 정의하고 있는 '큰 흐름의 바깥, 스포트라이트의 바깥, 주류 혹은 집단 가치의 울타리를 넘어서도자 하는 도전적 의미의 아웃사이더도, 세(勢)에 쫓겨 변두리로 밀려난 주변인'이란 의미의 '바깥', 그 모든 카테고리 속에 들어맞는 글이었다라 생각되네요. 그 글 속에 있는, <후손들에게>10라는 한 편의 시는 정녕 --- 시점을 고정해 놓은 채 사회의 '안과 바깥'을 바라보는 횡단면적 시선이 아닌, 시간의 흐름에 따른 시계열의 시선만이 현재의 '안과 바깥'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헤아릴 수 있게 해주지 않나하는 생각을 갖게 해줍니다. 때로는 '관대한 마음으로'으로도, 허나 대부분에선 '복잡할 수 밖에 없는 마음인 채' 말이죠.  

​.

우리가 스러지며 흘린

피 속에서 떠오른 그대들은

우리의 허물을 말하지 전에

모쪼록 기억하라

우리가 헤쳐 나온

그 어두운 시대를

(…)

우리는 부드러움의 바탕을 마련하고 싶었으나

스스로는 부드러울 수 없었다


그러나 그대들이여, 사람이 사람을 돕는

그런 때가 도래할 때

우리를 기억해다오

관대한 마음으로

- 브레히트 作, <후손들에게>


▶ 짧은 몇 마디 : '바깥'이 항상 선한/옳은/아름다운 것은 아니며11, 그러하기에 '안'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역시 분명 경계해야할 편견일 뿐.


※ 진정한 의미에서의 '바깥'을 (시계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라 생각되는 책들 :

- 김형민 著, 「그들이 살았던 오늘

- 조은 著, 「사당동 25시

 

 

 

 

 

 



 

  1. 본문 p5.
  2. 본문 p6.
  3. 이 표현이 암묵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1등에의 부정적 시선'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4. 본문 p296.
  5. 본문에서는 이 '정의'에의 한자가 따로 병기되고 있지 않아 그 정확한 의미를 알 수는 없으나, 아마도 --- '정의(正義, justice)'라기보다는, '정의(定義, definition)'이리라 생각합니다.
  6. 논리구조 자체 뿐 아니라, 대상의 선택마저도 잘못된.
  7. 실제 이야기하고 있는 막걸리는 '가양주'가 아닌 '국순당'입니다. 이쯤되면 '안'과 '바깥'의 구분이, 최소한 이러한 주제하에서는 그야말로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지요.
  8. 김훈 作, 「남한산성」 중 '일러두기 1번'. 학고재刊
  9. 이상훈 作, 「한복 입은 남자」중, p516. 박하刊.
  10. 본문 p36, p40.
  11. '재야(在野)'라는 단어가 우리 정치에서 독점적으로 누리고 있는 호의적 시선을 떠올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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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회사를 해고한다 - 선택의 기로에 선 직장인을 위한 커리어 성공 법칙
한준기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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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이 책을 검색해보면, 이제껏 (최소한 현재의 기억으론) 제가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던 분야인 '성공학/자기계발'의 분야에 속해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게다가 지난 15년 간 이어져왔던 제 사회생활이란 게, '일반적'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는, 제 이름 석자 뒤에 '사장님'이란 타이틀을 붙여놓은 채 시작되었었기에 더더욱, 「나는 회사를 해고한다」라는 사뭇 뭔가 강성노조스런 뉘앙스마저 풍기는 이 책을 이제와 제 의지로 찾아내 읽어볼 이유는 전혀!라 말해도 될만큼 딱히 찾아볼 수 없었었지요. 그러한 이유들에도 불구하고 --- 이 책은 '읽고싶다/읽어봐야겠다'란 생각이 들더군요. 대체 왜?


………………………………………………………………………………


【 회사를 해고한다? 】

사실, 이 책의 제목을 딱 보고 '이건 저자가 아닌 출판사 마케팅 부서에서 지어낸 제목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 현재 한 다국적 기업의 시니어 임원으로서, 저자의 직무는 '해고 전문가(Corporate Hatchet-man)'입니다. 그의 커리어 역시 대부분 이처럼 인사(人事)업무였었었지요. 이처럼 그 분야에서는 뛰어난 전문가일 수는 있겠으나, (저자 스스로의 표현처럼) 작가로서는 무명일 뿐인 저자가 쓴 책을 대중에게 어필시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자극적인 제목을 취할 수 밖엔 없는 게 보통이니까요. 헌데 이러한 저의 예상은, (최소한 책의 내용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면) 틀린 것이었더군요. <머리말>을 통해 저자는 '회사를 해고한다'라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해고의 주체가 회사가 아닌 내가 될 수는 없을까? 언제 잘릴까 전전긍긍하며 회사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닌, 오히려 회사가 나라는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상황을 연출할 수는 없는 걸까?(p5) …… 피고용주인 내 입장에서 보자면 회사나 직무를 내 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며, 고용주인 회사 입장에서는 나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나 시스템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결국 '실질적인' 고용주는 회사가 아닌 내가 되는 셈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나는 언제든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다. 도망가듯 떠나는 것이 아니라 만인의 박수를 받으며 떠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꿈꾸는 '회사를 해고한다'는 개념이다.(pp8-9)

또 한 권의... '아프니까 청춘'이고 '멈추어야 비로소 보인다'류의 그렇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책일 것이라는, 그리하여 얼마전 그러했었듯 '읽기 전'과 '읽기 시작한 순간'에 가지게 된 책의 내용이 너무도 달라, 책을 보내주었던 출판사에 책값을 송금해드리고 이 책은 받지 않고 읽지 않는 것으로 하고싶다라 정중한 사과의 메일을 보내야 하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강렬하게 저를 사로잡았던 구절이었습니다. '아! 추석 연휴에 고른 책이 하필... --;;'


【 뉴욕 거리 위의 두 부류 】

​그저 '큰 조직에서, 나와 비슷한 사회화 과정을 겪은 사람들과 함께 일해보고 싶다'라는 이유만으로 대기업에 취직한 친구들을 부러워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생맥주집을 찾던 대학원생이었던 저완 달리, 선뜻 병맥주 파는 곳에서 술값을 계산하는 그들의 신용카드도 그 부러움의 커다란 이유었었죠.) 그랬던 저였기에 --- 대기업의 재무부서에서 일했던 한 친구는 상상도 못해보던 액수의 현찰을 눈으로 보는 재미와 곧바로 떠오르는 이 중 내 연봉은 고작 여기부터 요기!까지 일 뿐이라는 박탈감이 떠오르더라는,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을 받던 장기신용은행에 취직했던 친구로부턴 (우스갯 소리가 아니라 진짜로!) '신장을 팔고 싶은데 얼마쯤 받을 수 있느냐'란 전화를 종종 받는다는 기막힘을, 종합상사의 조선관련부서의 친구로부터는 '아랍계' 선주들이 오면 모시고 가야할 술집에 미리 가 '아랍계 남성'과 하룻밤을 보내줄 수 있는 아가씨를 미리 섭외해놓아야 한다라는 자책감을 들었었음에도 - 물론, 이 세 명의 친구들 모두 현재는, 적어도 타인인 저의 시선에는, 당시를 발판으로 하여 성공적인 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 뉴욕 시내의 어느 빌딩에 자신의 직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바라보는 (더 이상 특별한 것이 될 수 없는) 거리의 화려한 광고판들과, 그 광고판들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의 시선이 지니는 차이만큼이나 커다란 간극이 있었었지요. 그리고! 그 간극은 어쩔 수 없이 이 책을 읽고 써내는 이 감상문에도 들어있을 수 밖엔 없을 겁니다. (이 간극이 바로 제게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고 싶다'란 생각을 가지게 해준 결정적 이유였었었지요.)


​우리는 이제 겨우 커리어 여정의 전반전을 끝냈을 뿐이다. 우리 각자의 커리어 스토리를 미완성으로 끝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 커리어의 본질을 묻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야 한다. 그 해답을 스스로 내리고 또 다른 출발선에 서야만 아직 길게 남은 후반전과 연장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다.(p62)

<40대 직장인이 자신에게 던져야할 12가지 질문>을 통해 저자가 던지고 있는 '고민의 본질'은 저에게 사뭇 '폐부를 찌를만큼'이란 표현을 쓰게되었을 만큼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보이겠지만) '감동적'이었더랬습니다. 이것이 '뉴욕의 직장인'에게는 평범하고 고리타분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면서도, 이 책을 읽는/읽어낸 '뉴욕의 관광객'인 저에게만큼은 분명 그러했었었다고, 그러하기에 --- 사실은 '뉴욕의 직장인'들을 타겟으로 쓰여진 이 책이 정작 '뉴욕의 직장인'들에게는 어떻게 읽혀질지가 사뭇 궁금하기도 한 겁니다.



 

【 현실적인, 다분히 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날카로운 독설과 따뜻한 조언 】

욕을 하셔도 어쩔 수 없지만 --- 사실 전 「아프니까 청춘이다」도,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적잖은 빈도로 그 두 책들을 폄하하곤 하지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그 책들을 쓴 두 분이 최소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현실로부터의 고통'을 치유해주는 조언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라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이런 제 생각이 욕을 받는다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보통 능력이 아니고서야 회사를 55세 이후까지 다닌다는 것은 너무나도 풀기 힘든 과제이고, 정년퇴직은 문자 그대로 꿈같은 이야기가 아닌가.(p38)

'현실'이란 건... 이러하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저자는 '해고'라는 것에 너무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지는 말자라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그저 '갑자기 찾아든 감기처럼 전혀 준비 없는 차에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작은 해프닝 정도'1로만 받아들이자라 말해주고 있지요. 헌데! 그냥 '아프니까 청춘이고, 멈추면 보일거야'란 뜬구름만을 잡아주는 게 아닌, '심한 감기를 앓고 있는 당신에게 주는, 하룻밤 자고 나면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는 독한 처방전'2을, 수없이 많은 감기 환자들을 지켜보고 치료해 주었던 자신의 경험을 담아 '행여라도 갑자기 불의의 일격을 당했을 때 KO패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3란 따뜻한 바램을 담아 '뉴욕의 직장인'들에게 건네어 주고 있는 겁니다.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우리가 성공이라 여겼던 것이 성공이 아니었듯, 우리가 실패라 여겼던 것이 실패만은 아니란 점이다.


- 이건범 著, 「파산」 중 이진순 희망제작소 부소장이 쓴 추천사 중. (p6)

 

 

【 self-employed 】

진짜 커리어의 위기는 해고 통보 자체가 아니라,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살다 보니 해고라는 작은(마치 독감 정도의) 변수에 전혀 대응책도, 나아갈 방법도 모른다는 점이다.(p32) …… 우리 대부분은 머슴같이 시키는 일을 하는 데 익숙하고, 주인(?)의 따뜻한 보호막 속에서만 있었기 때문에 위기 대처능력이 전무하다.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나갔다라는 혹한에 얼어 죽기 딱 좋다.(p42) 

흔히 'self-employed'를 '자영업자'로 번역해놓다보니, 으레 치킨집 사장님만을 떠올리게 됩니다만, 꼼꼼하게 따져 ('전문 경영인'이라 불리우는 '월급 사장'을 제외하면) 그룹의 회장들도 사실은 (영어 단어의 뜻을 따로따로 본다면, employer와 employee가 동일한) 'self-employed'의 상황인 거지요. 이 책의 저자 역시, 「나는 회사를 해고한다」라는 제목에서 보여지듯, 커리어의 칼자루, 즉 최종 의사 결정권을 자신 스스로가 쥔다라는 의미로 자신 인생의 'self-employed'가 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내가 지금 어떤 모습인가'가 아니라 '내가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가'다.(p50)

흡사 '고양 원더스의 성공 기적'이란 제목으로 도덕 교과서의 한 챕터 속에 소개될 법도 싶은 뻔한 이 구절을 '뉴욕의 직장인'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쓴 책이라, 「나는 회사를 해고한다」를 소개해도 될 듯 싶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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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과에서 '인사관리'를 배우고 회사에 취직하니 '인사관리' 당하는 데 조금은 유용하더라,란 친구의 말이 사실은 매우 슬픈 말이었다라는 걸, 비록 경영학과 졸업생도, 대기업의 직장인도 아닌 그러하기에 예의 '뉴욕의 관광객'일 수밖에 없는 저의 마음 속에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떠나질 않았더랬습니다. 그게, 최소한 이 책을 읽고 쓰는 이 감상문에서만큼은, 한때 현실 속 모든 악의 근원으로 흔히들 말해졌던 '신자유주의의 폐해'때문이라는 하고싶지 않으며, 그렇게 말한다라는 게 어쩌면 자신/우리들의 면피를 위한 애꿎은 희생양을 찾는 무책임한 무리수였을지도 모르겠다는, 마치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것으로 자본주의 속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라 류동민 교수님 스스로 고백했던 바로 그 모순이 아닐까하는 생각마저도 하게 됩니다. 왜... 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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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노예는, 스스로 노예의 옷을 입고 목에 굴욕의 끈을 휘감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랍게도, 현대의 노예는 스스로가 노예라는 자각이 없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노예인 것을 스스로의 유일한 자랑거리로 삼기까지 한다.

- by Leloi Jones, 1968년, NY할렘.

​'뉴욕의 직장인'이건 '뉴욕의 관광객'이건... 이제껏 제가 살아온/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대해 혹시!라도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건지, 정녕! 나는 내가 살아내고 있는 하루하루의 'self-employed'였었던 건지, 혹! '노예라는 자각'조차 없이 살아왔던 건 아니었는지 심각하게 반성해봐야겠다란 생각을 갖게 해주었던 독서였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 책의 내용을 현재로선 그저! '뉴욕의 관광객'의 입장에서만 읽어낼 수밖에 없었었지만, 세상의 그 어떤 작용이 혹은 저 스스로의 어떤 면모가 저를 원해서건 혹은 원치않음에도 불구하고 '뉴욕의 직장인'으로서 탈바꿈 시킬지도 모르겠기에, 그런 저를 포함한 우리들의 삶이 부디 진정한 의미의 'self-employed'를 경험조차 해보지 못하고 끝내어지지 않기를 바래어(願) 본다라는 의미로, 현재 '뉴욕의 직장인'을 상대로 쓴 이 책의 일독(一讀)을 '불특정 다수'일 수밖에 없는 당신에게조차 권해본다라 쓰게 됩니다.  '인생'이란 단어 앞에 '아쉬운'이란 말을 쓰게는 될지언정 최소한... '억울한'이란 형용사는 붙지 않게 해야할테니까 말이죠.


노예가 노예로서의 삶에 너무 익숙해지면
놀랍게도 자신의 다리를 묶여있는 쇠사슬을 서로 자랑하기 시작한다.
어느 쪽의 쇠사슬이 빛나는가, 더 무거운가 등.

그리고 쇠사슬에 묶여있지 않은 자유인을 비웃기까지 한다.
하지만 노예들을 묶고 있는 것은 사실 한 줄의 쇠사슬에 불과하다.
그리고 노예는 어디까지나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

- by Leloi Jones, 1968년, NY할렘.


▶ 짧은 몇 마디 : 뻔해보이는 말이지만 꼭 기억하기! "The whole world steps aside for the man who knows where he is giong.(세상은 갈 길을 알고 전진하는 자에게 길을 비켜준다.)"4


함께 읽으면 좋을 책 :  이건범 著, ​파산

 

 

 

 

 


 

  1. 본문 p32.
  2. 본문 p27.
  3. 본문 p27.
  4. 본문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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