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보수적 정의 : 배우자 이외의 이성과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 자체가 불륜이다. 데이트는 말할 것도 없다. …… 배우자에게 상처를 준 이상 그것은 불륜이다.(p60)
② 개방적 정의 : 결혼을 하더라도 남자와 여자라는 본성 자체는 변하지 않으므로 다른 이성에게 연애 감정조차 품지 말라는 것은 무리이다. 아내나 남편에게 들키지 않고 데이트하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그 정도의 두근거림이 있는 편이 인생을 즐겁게 하고, …… 키스까지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역시 섹스를 하느냐의 여부가 불륜이냐 아니냐를 결정한다.(p60)
【 불륜을 위한 변명 】
우리는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다. 넘기 전에는 그 경계선에 높은 벽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단 넘어 버리자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고, 벽은 스스로 만들어 낸 환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 이날 밤의 일이 한때의 기분에 휩쓸린 결과라고 하자. 그렇다고 그것으로 끝날 수 있을까. 경계선 너머에 눈알이 핑핑 돌 만큼 감미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서도 영원히 그것을 넘지 않을 수 있을까. 경계선 위에 벽 따위는 없고 한 걸음만 가볍게 내디디면 된다는 것을 알아 버린 지금, 그것은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pp80-81) …… 불륜은 쾌락만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일단 시작돼 버리면 그렇게 미적지근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지옥이다. 감미로운 지옥. 여기서 도망치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속의 악마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pp87-88)
이것이, 불륜 당사자의 수사(修辭)적 변명임을 저 역시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만! --- 이성의 논리를 떠나 감정적으로만 글을 따라가다보면 문득!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게 되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직접 이런 상황에 놓여보았던 건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는) 장면이라고 말하게만 됩니다. '뭐라고 할까, 말하자면 어떤 흐름이라고 할까? ……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랐더니 어느새 그렇게 되어 있었어'란 와타나베의 고백이 그야말로 진심이었다라는 걸, 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었거든요.
<십계명>은 다섯 가지의 '해야 할 것'과 다섯 가지의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담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명한 다섯 가지의 '하지 말아라!' 중 무려 두 가지 - 간음하지 말라. / 내 이웃의 아내나, 여종을 탐내지 말라. - 가 바로 이 '불륜'과 관계지워질 수 있는 것만 보더라도, 인간에게 (이 감상문에서 다루고 있는 방향의) '불륜'이라는 것이 얼마나 이겨내기 힘들고 오래된, 어쩌면 인간의 내재적 본성이라 말해질만도 한 유혹인가를 알 수 있지요. 그러하기에 ---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랐더니 어느새 그렇게 되어 있었어'란 말이, 미혼 남성이 미혼 여성에게 고백하는 프로포즈로서가 아닌, 현실의 기혼 남성에게도! (물론, 기혼 여성에게도)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는, 비록 이것이 기혼 남성의 (흔한) 변명이란 건 알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수긍을 하게만 되는, 왠지 수긍해주어야 할 것 같고, 심지어 수긍해주고 싶어!라는 억지까지도 부려보고 싶은 부분 또한 분명 들어있는 감정의 변화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라는 겁니다.
【 불륜으로의 초대 】
흡사! '불륜'을 경험해보지 못한/않은 독자들을 위한 친절한 유혹이라도 하듯,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불륜의 감미로움'을 다음처럼, 차마 어디에서라도 뭔가 부인(否認)할 포인트를 찾아내지 못할만큼 (이 단어가 이 상황에 적합한지는 자신없지만) 매력적으로 표현해 놓고 있습니다. 게다가! --- 와타나베가 말하고 있는 '눈알이 핑핑 돌 만큼 감미로운 세계'를 읽어가다보면, 뭔가 제 고등학교 시절의 연애도 떠오르고, 살아오면서 이래저래 들었었던, 심지어 저 스스로 느껴보기도 했었던 그런 소소한 감정들마저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겁니다. 이거 참... --;;
(나는) 마치 처음으로 연인이 생긴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처럼 아키하의 몸을 만지고 싶어 어쩔 줄 몰라 한다. (아내인) 유미코와는 벌써 몇 년째 해 본 일 없는 열정적인 키스를 수도 없이 나눈다. 내가 아키하의 방에 머무는 것은 고작 두 시간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그사이 우리는 몇 번이나 섹스를 한다. 나 자신, 그런 사실이 무척 놀랍다.(p89) …… 이렇게 타오르는 느낌이 내 속에 남아 있었다는 게 놀라웠고, 그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게 기뻤다. 이것도 모른 채 평생을 살아갈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소름이 끼쳤다.(p90) …… 몸이 두 개라면 얼마나 좋을까.(p99) …… 아키하와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회사에 가는 일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 전에는 우울하기만 했던 월요일 아침마저 기운이 넘쳐났다. 아니 월요일 아침이니까 더 힘이 난다고 하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주말에는 아키하를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p100)
【 성공적 불륜을 위하여 】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형태(인 '일부일처제')의 '결혼'은 두 당사자들에게 이전까지 가지고 있었던 각자의 feasible set(실현가능한 모든 것)의 일정 부분을 완전히 포기하(고 훨씬 좁아진 범위의 새로운 feasible set을 받아들이)라 요구합니다. '다른 이성과의 새로운 사랑' 이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라는 게 그 중 대표적인 것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결심했던 당시의 상대방인) '지금 행복하고, 미래에도 행복할 것 같은 현재의 배우자'를 기어이 이겨내는, '왜 이제야 내 앞에 나타났니'의 상대가 생겨났다면 대체 어찌해야 하는 걸까요? 인생 한 번 밖엔 못하는 거잖아요!
지금은 많이 바뀐 듯도 싶지만, '결혼 배우자의 선택'이 (한 번 뿐인 삶의) 평생에 있어 '단 한 번뿐의 선택'이어야 한다는 암묵적 전제, 그리하여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순간, (이전까지 누렸던 넓은 범위의) feasible set이 다시는 복구될 수 없다라는 현실을 받아들인 이에게 남아있는 가능한 선택은 다름 아닌 --- 어쩌겠습니까. 작아진 feasible set 내에서만 반응을 보일 수 밖에요.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하나 더! 현재의 feasible set을 절대 깨뜨려서도 안 된다라는 점.
● 남녀 사이에 무리는 금물이죠. 서로가 가능한 범위 안에서 상대를 사랑하면 되는 거예요. 가능하지도 않은 일을 하려고 하거나 서둘러 결과를 얻으려 하다 보면 반드시 파탄에 이르게 되죠.(pp129-130)
●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말 것, 그것은 불륜의 첫째 원칙이다.(p134)
● 그것(이혼)만은 절대 안 된다는 전제하에 성립하는 게 불륜이야.(p139)
'역사'로부터 미래의 '실패하지 않음'을 배운다라는 건 이처럼 '성공적 불륜'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원칙인 겁니다. (실패의 원인들을 모두 제거해 낸 후 나오는 결론은) 한 마디로, 실현 가능한 범위 이내에서의 불륜이라면 성공할 수 있다라는 거지요. 그러나!!! --- '0.999…… = 1'이라는 등식이 수학적 논리의 모순은 없을지라도, 직관적으로는 여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듯, 성공적 불륜을 위한 위의 조건들, 특히 '서로가 가능한 범위 안에서'라는 부분은 '기혼-미혼'이라는 비대칭성 하에서는 (아마도) 절대!로 지켜낼 수 없다라는 데에 문제(?)의 불씨가 자리잡고 있다라 생각합니다. (이 소설에 나타나는 예를 보자면, 서로가 지니고 있는 feasible set의 크기 차이가 기혼에게는 미혼이 질척거린다라고, 미혼에게는 기혼이 미적거린다라 받아들여지는 식이죠. 특히, 미혼의 '질척거림'이 그 극단까지 치닫게 되면 --- 이문열의 소설 「레테의 연가」의 여주인공 희원의 다음 독백은 좀 많이 오싹하죠. : '배가 난파했을 때, 꼭 한 사람만이 의지할 수 있는 통나무에 두 사람이 헤엄쳐 간 경우... 그때 둘 중 하나가 자기의 생명을 건지기 위해 다른 한 사람을 밀쳐 결국 그가 죽게 되더라도 그 행위는 정당 방위가 된다는 거야. …… 누가 먼저 그 통나무를 잡았는가는 문제가 되지 않았어.')
【 불륜의 필연적 종착점 】
나는 여자의 그 무엇을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유미코는 좋은 엄마다. …… 그렇지만 이제 그녀는 나의 연인은 아니다. …… 지금 함께 사는 이 여자는 예전에 내가 사랑한 여성과는 다른 누군가이다. 아마도 세상의 많은 남자들, 결혼한 대부분의 남자들은 나와 같은 처지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더는 옛날과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평생 그대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사람들이다. 그것이 아마도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가 되는 길이리라. (p274)
그야말로, '치사한' 변명이 느닷없이 와타나베의 입에서 나옵니다. '세상의 많은 남자들'을 끌어들임으로써, 자신의 '불륜'이 그다지 특별한 것은 아니라 말하는, 너무도 전형적인 '나만 그러냐?'식의 물타기를 하고 있지요. 이러면서도! 아내 유미코와의 이혼을 결심했고, 그 결심을 아키하에게도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와타나베의 마음 속에는 '나, 진짜 이래도 되는 걸까?'라는 망설임이 끊이질 않습니다. 여기서 잠깐! --- 아직은 와타나베를 위한 변명이 남아 있기는 해요.
갈망하던 것을 손에 넣게 직전에 몸을 돌려 돌아가고 싶은 이 마음. 어떤 사람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몸을 돌려버린다. 나도 그런 부류가 될까 두렵다.
- 실뱅 테송 저, 「희망의 발견 : 시베리아의 숲에서」 중 pp16-17.
자신 스스로에게 '교활하고 비열한'이란 판정을 내리면서까지, 와타나베는 '지금까지 해 온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겨두고 싶다는 속내를 버리지 못합니다. 물론! 이 갈등은, 아키하와의 불륜 관계를 청산하는 걸 전제로 하고 있지요. 이 갈등의 근원은 바로 --- '섹스에는 연애 감정이 필요하다. 섹스는 남자와 여자가 하는 것이다'라는 자신의 생각, 그리고 자신이 현실이라 생각하고 있는 '우리 부부는 이미 남녀 사이가 아니다'라는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바로!
아키하라면 영원히 남자와 여자로 있을 수 있을까 자문해 보았다. 언제까지 가슴 두근거리는 섹스를 할 수 있을까.(p108)
'부부(夫婦)'라는 관계를 단순히 '서로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의 결합'만으로 이해하고 있는 한, 그리하여 그 결합의 목적과 유지에 '섹스'라는 것이 가장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라 생각하고 있는 한, '불륜에의 유혹'은 절대로 이겨낼 수 없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 그러한 이유로 '불륜'에 빠졌다라면, 그 '불륜의 관계' 역시 똑같은 이유로 인해 작살나게 되기 마련이며, 차라리! 와타나베처럼 미리 그러한 염려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것이 '부부 관계'와 '불륜 관계'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의 유지를 위한, 그나마 현명한 처신이라 변명해주고 싶다라는 거지요. 결국 불륜은 ① 어지간해서는 진행될 수 없으며, ② 진행되었다 해도 필연적으로 좋지 않는 끝맺음이 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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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불륜이 필연적으로 불행한 결말로 끝날 수 밖엔 없다는 것이 곧 '그러므로 불륜은 도덕적으로 비난 받아야 한다'를 의미하는 건 결코 아닙니다. 그저 '다만 그렇다'라는 것 일뿐이죠. 그렇다면, ('사람의 도리' 같은 추상적 이유 말고) 현실적으로 대체 왜 불륜이 비난받아야 하는 행위가 되는걸까요?
오로지 내 행복의 증가를 위해 누군가의 행복을 감소시킬 수 있는 권리는 그 누구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내 행복의 증가가 반드시 누군가의 불행해짐을 필요로 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행복의 증가를 추구할 권리가 있다'라는 말은 더 이상 성립되지 못하는 것이지요. 바로 이 점!!! 내 삶에 새로운 기쁨을 누리기 위해, 내 배우자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는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는 겁니다. --- '영원한 비밀'이란 존재하지 않듯이, 갖가지 임시방편으로 (기혼인) 자신에게 허용된 행동 범위를 넘어섰던 와타나베의 불륜 역시, 그의 아내 유미코는 알고 있었었지요. 남편의 불륜을 알면서도 그것을 홀로 참아냈던 그녀의 모습, 전 이 장면만으로도 '불륜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한다'가 충분히, 그리도 당연히 성립될 수 있다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항상 늦는다. 시간은 두 번째 기회를 주지 않는다. 삶은 단 한 번으로 결정된다. 그런데 나는 삶은 팽개치고, 이 숲에 들어와서 박혀 있다. …… 나는 내 인생의 배에 구멍을 뚫었고, 뱃전의 윗부분까지 물이 차올랐을 때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 실뱅 테송 著, 「희망의 발견 : 시베리아의 숲에서」 중 pp257-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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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란 걸 잊지말라하듯, 이 소설 속엔 예의 살인 사건을 둘러싼 추리가 작품 후반부를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만!!! 이 추리를 '히가시노 게이고의 것'이라 말하기엔 뭔가 부족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소설엔 세 커플의 불륜이 등장합니다. 그 중, 한 커플의 불륜이 그 살인 사건과 관계가 있는데 그 불륜 커플의 관계라는 게 그야말로 <사랑과 전쟁> 이더군요.) 게다가!!! --- 마지막에 실려 있는 또 하나의 불륜 이야기는, "결혼한 이상 연애 따위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런 거에 말려들면 결국 자신만 너덜너덜해질 뿐이다. …… 불륜은 불륜으로 끝내야 한다."라는, 뭔가 당연히 들어 있어야하는 것이기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밖에는 느껴지지 않는, 진부한 교훈적 메시지라는 점에서 사뭇 아쉽기도 하더군요. 그냥... 화끈한, 그리고 성공하는 불륜만으로 되어있는 소설은 정녕 찾을 수 없는 걸까요?
덧> '기혼-기혼'간의, 가정의 파탄까지는 양쪽 다 생각하고 있지 않는, 오로지 '새로운 삶의 기쁨'만을 부가적으로 누리고자 하는 불륜에 관해선, 이 소설이 보여주고 있는 해법으론 답이 나오질 않습니다. 이건 마치 공무원이 공무원을 접대하는 것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접대'라 불리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나 할까요? 이러한 이유로 --- 제가 읽어보고 싶어하는, '화끈한, 그리고 성공하는 불륜의 이야기'를 찾게 된다면 아.마.도. '기혼-기혼'간의 불륜에 관한 것이리라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이게 뭐라고, 추측까지 해본단 말입니까... --;;)
▶ 짧은 한두 마디 : '애인'은 소모품일 수 있으나, 결혼제도를 통해 획득된 '남편'과 '아내'라는 지위는 결코 소모되어서는 안 되는 것임!
※ 읽어본, '불륜'에 관한 소설 : 이문열 作, 「레테의 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