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발견 : 시베리아의 숲에서
실뱅 테송 지음, 임호경 옮김 / 까치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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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는 산들을 기어오르고, 내려오고, 새로운 길을 찾고, 표고차(標高差)를 가늠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산들을 쳐다본 적은 아직 한번도 없었다.(p115)

어느 한 '여행작가이자 에세이스트'가 털어내놓고 있는 고백으로만 받아들이기엔 사뭇 너무도 무거운 구절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 무려! '15가지 종류의 케첩'1들이 진열대 위에 올려져 ('능동적인'이라 말해질 수 있는) 나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으나, 그러한 풍요로운 선택지를 내 앞에 가져다 놓을 수 있기 위해선 '그대는 모든 것에 대해서 의견을 가져야 하노라! 그대는 전화를 받아야 하노라! 그대는 분개해야 하노라! 그대는 항상 연락할 수 있어야 하노라!'2라는, 지금의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일종의 '정언 명령(定言命令)3'스런 규율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라는 전제가 반드시 작동되어야 한다라는 것에 대해 '꼭 그렇지만은 않노라!'라는 대답을 선뜻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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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떠나온 세계에서는 타인들의 존재가 우리의 행동을 통제한다. 그것은 우리를 규범 속에 묶어둔다. …… 우리의 동류, 다른 인간들은 세계의 현실을 확인해준다. 도시에서는 눈을 감아도 현실이 없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눈을 감고 있더라도 타인이 현실을 지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안도감4을 주는지! (pp108-109)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에서 '로빈슨 크루소'가 느꼈던 공포가 다름 아닌 바로 이 타인의 '부재(不在)로부터의 공포'라는 것이었음을 다시금 떠올려 주는 이 구절은 역설적!으로 --- 이 책의 저자 실뱅 테송에게 그 타인의 '부재(不在)로 인한 자유'를 갈망하게끔 만들어 준 가장 커다란 원인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2010년 2월부터 7월까지의 6개월 간을 바이칼 호숫가의 한 오두막에서 살(아보)기로 하지요.


   
 

"나는 책과 시가와 보드카를 가져갔다.

나머지 - 공간과 침묵과 고독 - 는 이미 거기에 있었다." (p11) 

 

 

 

 


그 어떤 하나의 행위조차도 '다른 무수한 행위들의 희생 위에 펼쳐'5져야만 하는 도시와는 달리, 그곳 호숫가의 오두막에서 그는 (결국 그가 원했던 '부재로 인한 자유'를 누리며) '많이 읽고, 산에 오르며, 창가에서 보드카를 마시며 하루가 흘러가는 것을 그저 지켜보는' 간단하고도 아름다운6방식의 일상을 누릴 수 있었더랬습니다. --- 이 친구(?)도 책읽기를 심하게 좋아하더군요. 자신이 그곳 바이칼 호숫가의 오두막에서의 (비록 '유한'한 기간만이었지만) 삶을 원했던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두 번에 걸쳐 강조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죠.7


왜 이곳에 파묻힐 생각을 했느냐고 내게 묻는다면, 읽어야 할 책들이 밀려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리라.(p28)

사실, 내가 숲속에 파묻힌 이유 중 하나는 나를 항상 주눅들게 했던 책들을 돌파하기 위해서였다.(p87) 

정말... 부럽기 짝이 없는 삶 아닌가요? --- 저자 스스로 이러한 은둔의 삶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오직 "나 자신을 견뎌낼 수 있을까?"8라는 것 뿐이었었노라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엔 '하나의 완전한 삶으로서의 여섯 달'9동안 (예기치 않게 찾아왔던 '가장 슬픈 시간들'도 있었었으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들'10을 보냈었었죠. 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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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명의 출판사 대표들이 뽑은 (1위로 선정된 책이 와타나베 이타루의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점에서 이 리스트가 제겐 그다지 신뢰감을 주지는 못합니다만 어쨌든) <숨어 있는 최고의 책> 2위로 선정되었다는 이 책은 바로 그 '부럽기 짝이 없는 삶'이라는 점이 오히려! --- 독자에 따라서는 사뭇 '커다란'이란 표현을 쓰게도 될만한 거부감을 가지게 될 수도 있게 작용할 수도, 제 경우엔 '거부감'이라고까지 표현되지는 않으나 '적잖은' 불만은 실제로 안겨 주었더랬습니다. 이유인 즉슨!


​나는 움직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고, 드넓은 공간이라는 마약에 중독되어 있었다. 나는 시간을 쫒아 달렸다. 그것이 지평선 저 끝에 숨어 있다고 믿었다. "시간이 너무도 급히 흘러가는 것을 그것의 강렬한 사용으로 보상할 것 (몽테뉴, 「수상록(Essais) 제3권)」)". 이것이 내가 달아나는 시간에 대응하는 방식이었다.(p75)

그리하여 그가 선택했던 이 한정된 시간11동안의 은둔자로서의 '움직이지 않는 삶'이 결국엔 '여행이 더 이상 주지 못했던 것'12을 자신에게 선사해 주었다라는 이 책의 결말은 그가 미리 설정해놓은 시간만큼이나 한정된 것일 수밖에 없다라고, 더 넓게 본다면 오로지 실뱅 테송이라는 인물에게만 국한된 결론이라고 밖에는 받아들여지지가 않았기 때문입니다. 

'로빈슨 크루소를 시샘'13했기 때문에라는 것이 이 책에 나와 있는 바이칼 호수에서의 6개월간에 걸친 은둔 생활을 원하게 된 이유라 저자 스스로 밝히고 있습니다만, '원하는 시간만큼만, 원하는 것들(책과 시가와 보드카14)'을 지니고 하는 은둔 생활이라는 건 --- 그가 원했던 시간이란 것이 행여 '로빈슨 크루소'가 섬에서 보냈던 28년 2개월 19일간이었었다라 할지라도, 그가 원했던 것이 '성경책'뿐이었었다 하더라도 결코 '같은 것'이 될 수는 없다라는, 이건 결국 "'안(일상)으로의 복귀'가 보장되어 있는 자(者)가 단지 경험으로서만 누려보는 '바깥(일탈)으로의 소풍'"​이라는 한계를 애초부터 스스로 지니고 있는 것이기에   


● 고독이란 우리에게 사물들을 다시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것, 우리가 정복해야 할 귀중한 것이다.(p33)

● 난파자는 절대적인, 그러나 섬의 한계에 의해서 제한되는 자유를 누린다. … (그러나) … 이런 제한이 오히려 행복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pp150-151)

●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삶을 꾸리면, 조금도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p199)

● 시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그냥 지나가게 두는 것이다.15 창문을 한 번 바라본 뒤에 다시 바라볼 때까지, 한 잔을 마시고 또 한 잔을 마실 때까지, 책장을 넘기는 사이에서, 그리고 눈꺼풀을 잠깐 내리는 사이에서 가장 현명한 선택은 시간이 저 혼자서 지나가도록 길을 비켜주는 것이다.(p202)

(단순히 위의 구절들만을 놓고 본다면 사뭇 동의할 수 있게되는) 철학적인 심오함, 심지어는 시적(詩的)인 아름다움까지도 느끼게 해주는 실뱅 테송의 이러한 글들은 끝내 --- '밥벌이의 쾌락'만을 즐겨온 자가 '밥벌이의 고난/고통스러움'을 백분 이.해.한.다.라 말하지만 그럼에도 고작 '밥벌이의 지겨움'16으로 밖에는 표현해내지 못한다라 평가받을 수 있는, 어쩌면! 그렇게만 평가되어야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저에게 주었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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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언제나 존재한다. 그 대가를 치르기만 하면 된다."

- 앙리 드 몽테를랑, 「작가수첩」, 1957.

 

 

 

 

 

 

 

 

위의 문구를 이 책의 맨 앞에 인용해 놓은, '자유는 언제나 존재한다'에 강조점이 찍혀 있을, 저자의 뜻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만, 역설적으로! --- '그 대가를 치르기만 하면 된다'라는 조건문을 더 커다랗게 바라보는, 이 책의 저자 실뱅 테송이 말한 '유일한 미덕'17을 끝내 이행해내지 못하는 저같은 (삐딱한?) 독자에게 이 책의 제목인 '희망의 발견'이 지니고 있어야 할 각각의 실체를 전혀 알 수 없었다라는 아쉬움을 주기도 했네요. 어쨌든!!! 자신의 주변을 세심하게 관찰하며 이토록 길게, 여러가지에 대해 써낼 수 있는 것도 능력은 능력이란 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각인받을 수 있는 책이었다라는. ^^;; 



▶ 짧은 한두 마디 : "곳간에서 인심난다"라는 우리 속담의 시·공간을 뛰어넘는 유효성을 깨달았다랄까?


※ 저자 실뱅 테송이 은둔지로 가져갔던 책들 중 읽어본 세 권의 책 : 

- 미시마 유키오 作, 「금각사(金閣寺)」

- 다니엘 디포 作, 「로빈슨 크루소

- 미셸 투르니에 作,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1. 본문 p15.
  2. 본문 p129.
  3. 행위의 결과에 구애됨이 없이 행위 그것 자체가 선(善)이기 때문이 무조건 그 수행이 요구되는 도덕적 명령. 정언적 명령은 '한 행위를 그 자체로서, 어떤 다른 목적과 관계없이, 객관적-필연적인 것으로 표상하는 그런 명령'이다. - 네이버 지식백과, '정언 명령' 중.
  4. 이것이 왜 '안도감'으로 표현되어야 하는가는 주제 사라마구 作, 「눈먼 자들의 도시」를 통해 극명하게 알 수 있지요.
  5. 본문 p41.
  6. 본문 p11.
  7. 무려! 67권의 책들을 오두막에서의 생활을 위해 들고갔더군요. 그들 중 제가 읽어본 작품은 고작 세 개 뿐이었. --;; (책들의 리스트는 본문 pp29-32.)
  8. 본문 p52.
  9. 본문 p306.
  10. 본문 p305.
  11. "나는 내가 원하는 시간만큼만 체류할 것이다."(p18)
  12. 본문 p12.
  13. 본문 p119.
  14. 이 책에 나와 있는 실뱅 테송의 모습은 독서광이자 애연가이며, 엄청난 애주가입니다. (독서의 깊이와 양만 빼면 대략 저랑 삐까삐까 할듯. --;;)
  15. 이 표현이 자칫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에게는 지나치도록 잔인할 수 있다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16. 이는 작가 김훈의 표현이며, 여기에서는 단지 비유적인 용도로만 사용되어, 원작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작가 김훈이 말하고자 했던 그 어떤 것과도 관계가 없습니다.
  17. ​"숲의 나라에서 의미가 있는 유일한 미덕은 '받아들임'이다." 본문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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