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새벽 거리에서」를 통해, '뭐라고 할까, 말하자면 어떤 흐름이라고 할까? ……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랐더니 어느새 그렇게 되어 있었어'라며 주인공 와타나베의 불륜의 시작을 설명해주었었으며, 중국 작가 옌렌 커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에서, "그는 물이 흘러 도랑이 생기는 이치를 깨달았다. 물이 흐르는대로 자연스럽게 두지 않고 오히려 막아 역행시키려 했다가는 결과를 예측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나중에 메우기도 어렵다는 말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라는 (와타나베의 이유와 일맥상통하는 의미의) 구절로 주인공 우다왕의 불륜에 변명을 해주었더랬습니다. (반면! 한국 작가인 이문열은, 역시 불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소설 「레테의 연가」을 통해서는 이러한 점들 - 불륜의 이유, 변명 등 - 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그는 오로지 두 당사자의 '관계 설정'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지요.) --- (브라질 태생이라는)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스위스의 여성 린다를 통해, 불륜에 관해 과연 어떠한 말을 해주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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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린다 --- 대형 투자기금의 소유주이며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는 남편, 그와의 사이에 '삶의 이유'인 두 아이를 둔, 스위스의 유력 신문사의 인정받는 기자이며, '남자들에게는 욕망을, 여자들에게는 질시를 불러일으'키는 서른한 살의 여성입니다. 예의 스스로를 '이렇다 할 문제도 없는 나는 좋은 아내이자 좋은 엄마이기도 하다'라 말한다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지요. 그러던 어느 날!!! 인터뷰에서 어느 작가가 했던 다음의 한 마디에 그녀는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행복해지는 것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삶을 열정적으로 살고 싶어요."(p11)
린다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만! 스스로의 이 질문에 들어있는 작은 틈으로부터, 완벽하다라 생각해왔던 자신의 일상에, 그간 알아채지 못했던 두려움이 있었다라는 걸 깨닫게 해줍니다. --- 질투같은 걸로는 전혀 다투지 않았었던 남편과의 관계는 '(예전에는 그래서 정말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질투가 없다는 건 양쪽 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뜻이 아닐까'로 방향의 전이(轉移)를 일으켜 보여주게 되며, 단골식당에서 좋아하는 메뉴를 선택하는 자신의 일상은 '그런 부분에서조차 나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로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이런 린다의 정신적 일탈은 '나는 … 평생 모든 것이 지금과 똑같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사이에 갇혀 있다'의 단계를 거쳐, '중요한 것은 내가 그런 행복하고 완벽한 삶에 진절머리가 난다는 사실이다'에 이르렀고, 결국! '감행하지 못한 모험에 대한 갈망'을 그녀의 마음 속에 심어주고 맙니다. 뭐 여기까지의 설정단계를 읽노라면...
'불륜'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제목으로 차용해 놓고 있는, 사뭇 너무도 naive해보이기까지 하는 이 소설, 「불륜」은 이처럼 (이것이 동양과 서양의 정서적 차이에 기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딱히 '공감(共感)'이라는 정신적 몰입을 저에게 주지 못했더랬습니다. 심하게 말해보자면 한낱 '배부른 여성의 욕심'쯤으로 주인공 린다를 보았었지요. 헌데 말입니다! ---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이런, 공감되지 않는 설정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그 전개과정에서, 독자에게 조금씩 조금씩 린다를 이해시켜가고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독자가 린다를 진짜로 '이해'하게 되었으냐는 물론, 독자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오겠지요. 다만,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 1997년 당시 선풍적 인기를 끌었었던 <TOEFLer's TOEFL>이라는 기이한 제목의 시험대비서처럼 - 자신이 설명하고자하는 바에 정확히 부합되는 구절들을 인용해놓는 방식을 통해 그 '설득력' 자체에 대해서만큼은 딱히 비판을 가할 수 없도록 소설을 써놓았다라고는 생각합니다.)
이러한 마음 속 갈등을 지니고 있던 린다는 어느 날, 고삐리 시절 잠시 사귀었었던, 지금은 유명정치인이 되어 있는 야코프를 인터뷰하게 됩니다. 근데 말이죠!!! --- 인터뷰를 마친 후, 린다는 (그야말로) 느닷없이 야코프에게 달려듭니다. 그리곤 '학창시절부터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던 걸'그에게 해주고는 이런 독백을 합니다. "마침내 나는 규칙들을 어기게 되었지만 그래도 세상이 무너지진 않았다. 이런 행복한 기분을 느껴보기는 정말 오랜만이다."
하지만, 예의 그녀는 자신의 느닷없었던 행동에 두려움을 가지게 됩니다. 규칙을 어겼어도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그것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었으며, 그녀 스스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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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작가의 독자를 향한 '린다를 이해해해줘'의 설득이 시작됩니다. --- 「새벽 거리에서」의 감상문에도 썼었듯, '결혼'이란 제도는 남자와 여자에게, 이전까지 가지고 있었던 각자의 feasible set을 버릴 것을 요구합니다. 이것을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다음처럼 표현해놓고 있더군요.
토성은 이십구 년이 지나면 한 바퀴를 돌아 우리가 태어난 순간 있었던 하늘의 자리에 다시 돌아온다. 그전까지는 모든 것이 가능할 것처럼 보이고, 모든 꿈이 이루어지고, 우리를 가두는 모든 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 토성이 이 주기를 완성하고 나면 모든 낭만주의는 막을 내린다. 우리의 선택은 돌이킬 수 없고, 한번 정해진 방향을 바꾸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p51)
그날의 짧았던, 예정에도 없었었고 예상되지도 않았었던 순간(의 일탈)을 경험하고 난 후, 야코프는 인생이 다시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라 말했고, 린다는 '똑같은 장면을 끝없이 되풀이해 보여주는 영화'같은 자신의 삶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라 말합니다. 드디어!!! --- 제가 찾고 있었던 '기혼-기혼간의 불륜'이 시작되는 거지요. 이미 이루어놓은 각자의 삶이 너무도 근사한 이 두 사람은 과연 각자의 feasible set을 깨뜨리지 않은 채, '다른 이성과의 새로운 사랑'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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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우리가 '안락'이라는 두 글자의 한 단어로 표현하곤하는 '좋은 남편, 사랑스러운 아이들, 부러울 것 없는 경제력, 자신이 니지고 있는 능력의 발휘와 그로부터의 성취감'등이 린다에게는 그저 따분하고 모험 없는 삶으로만 느껴집니다. 세상이 무너지지도 않거늘, 사람들은/도덕이라는 것은 '규칙을 어겨보고 싶다'라는 삽십대의 그녀에게 '성숙'이라는 또 다른 두 글자의 한 단어로 억누르라 했지요.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충분히 누려왔고, 현재에도 누리고 있는) '안락'이 아니라, '긴장에서 놓여나 인생을 즐기는 것'이었으며, 야코프와의 (비록 섹스가 가장 커다란 부분이었으나, 예의 그것뿐 아니라 정신적 교감을 통한 위로도 주요한 이유였다라 작가가 설정해놓고는 있는) 일탈을 통해 기어이 '나는 다시 내 생각과 행동의 주인이 되었다. …… 내가 소유하지 않은 것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 나는 내 영혼을 되찾았다.라는, (지극히 고삐리스러운) 만족감/성취감/존재감 등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공원에서의 대화, 그 키스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후회는 없다. 나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행동을 했고, 그 행동 자체가 나를 가두고 있는 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 그와 함께 있을 때 나의 행동은 항상 놀랍다. 오럴섹스, 분별있는 충고, 공원에서의 키스. 내가 마치 다른 사람 같다. 야코프와 함께 있으면 나는 완전히 다른 여자가 된다. (pp 81-84)
똑같습니다. 부인과의 사이에서는 없어진 지 오래된 육체적 쾌감을 느낀 후, 와타나베가 했던 '이것도 모른 채 평생을 살아갈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소름이 끼쳤다'란 고백과 말이죠. 이처럼 --- 불륜이란 건, 우리가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난 데가 있음'이라 살벌하게 정의해 놓고, 범죄로까지도 처벌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아야할 만큼 매력적인 유혹입니다. '새로움에 더욱 열광하게만 되는',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을 어지간한 최면으로는 지워낼 수 없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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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사랑을 내보일 수가 없어."
불륜이 한창인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이 겪게 되는, 이겨낼 수 없는 명확한 한계이지요. 이 한계는 불륜의 시초부터 두 사람에게 알려져 있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우리 둘 다 이건 결국 끝나게 되어 있는 이야기란 걸 알고 있어. 하지만 지금은 상관없어."
'상관없어'라는 지금을 결국 끝내게 되는, 혹은 이겨내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하는 동인(動因)은 다양합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에서는 '사상(思想)'이, 「새벽 거리에서」는 '현실'을, 「레테의 연가」는 (사뭇 지나칠정도로 관념적인) '도덕'이 그러한 역할을 담당했었었지요. 예의 '성공으로 끝맺음지어지는 불륜'은 아닌 이 작품에서는 뜻밖에도! --- 린다가 내내 이 불륜의 이유라 말해왔던 '외로움'의 근원인 그녀의 남편이 다시 이 불륜을 끝맺음 지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더군요.
누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겠어? 사회가 욕하는 모습으로 사는 거지. 부모가 선택해준 대로 사는 거고. 아무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애쓰잖아. 사랑받고 싶으니까. 그래서 자기 안에 있는 가장 훌륭한 것들을 억누르며 살아. 빛나던 꿈은 괴물 같은 악몽으로 바뀌고, 실현되지 않은 일들, 시도해보지 못한 가능성들로 남게 되는 거지. … 나는 거의 모든 사람이 자기 안에 그런 괴물을 키우고 있다고 확신해.(pp191-192)
사랑을 하면 그 어떤 것도 받아들여야 해. 사랑은 우리가 어릴 때 갖고 놀던 만화경 같은 거니까. 똑같은 건 없고 항상 변하지. 그걸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 행복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 때문에 오히려 고통받게 되어버려.(p303)
와타나베의 부인 유미코가 남편의 불륜에 대처했던 방식관 180도 달리, (이 역시 동양과 서양의 정서 차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린다의 남편은 아내의 불륜을 이처럼 적극적으로 이해해줌으로써, 린다 스스로 그 불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고 있습니다. 놀!!!랍죠. 헌데 말입니다...
이러한 주변부의 설정에 더해지는 린다의 자기반성을 통해 느닷없는 방식으로 하지마라, 불륜!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물론 작가의 다음 메세지에 대해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의 동의를 하는 분도 많겠지만, 왠지 전... 먼가 고등학교 국민윤리교과서스럽다란 생각만 들더군요.
한 사람을 만났다. …… 그것은 마약중독자가 마약을 할 때 느끼는 행복같은 것이다. 조만간 그 효과는 사라지고 전보다 더한 절망이 찾아든다. (pp308-309)
십 년간의 결혼생활에서 …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사랑'을 미약하게나마 모방할 수 있었던 순간은 아주 적었을뿐더러 매우 짧았다. …… 하지만 그런 얼마 안 되는 순간들이 나의 존재를 정당화한다. 그런 순간들은 내게 삶을 지속할 힘을 주고 살아가는 나날에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삶이 아무리 슬픔을 끌어들이더라도 사라지지 않는 기쁨이다.(p356)
이런 식의 결말에 적지않은 아쉬움이 생겨났습니다. 불륜을 마약에 비유하여, 새로움으로부터의 쾌락/행복이 주는 효과가 조만간 사라질 수 밖에 없다라면 --- 또다른 새로운 마약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공무원이 공무원에게 하는 접대'가 서로 들킬 염려로부터 벗어나 있기에 판이 커지게 되는 것처럼, 서로에게서 느끼는 새로움의 유효기간이 만료되면 그냥 쿨하게 바이!하며 또 다른 새로움을 찾아가는 식으로 이어지는 (그리고! 이건 정말 힘들겠지만, "사랑이 개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호동의하에 일어지는 섹스라면 난 자유로운 관계를 지향하는 쪽이에요"라 말해주는 배우자까지 더해지는) 불륜은 정말 소설에서조차 성립되고 그려질 수 없는 의문이 만들어낸 아쉬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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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상황의 은근한 묘사를 통해 야하다!라는 느낌을 안겨주었다라면, (이 역시 동양과 서양의 차이라 생각되는) 이 작품은 대놓고 섹스에 관한 묘사를 해놓음으로써 그런 느낌을 선사해줍니다. pp315-318에 등장하는, 야코프의 사무실에서의 섹스장면은 상당!히 야하더군요. 원래는 다음의 독서로 한국의 불륜이라 추천받은 「아내가 결혼했다」를 읽을 계획이었더랬습니다만 --- '①글로 읽는 야함'이 주는 상상력의 발현, 그리고 ②외갓남자와의 섹스 이후 남편과의 섹스도 즐거워졌다라는 린다의 고백으로 인해, 아마도 이 둘을 모두 지니고 있어보이는 작품을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 作, 「열쇠」
읽어보신 분들... 어떠셨었는지요. ^^;;
덧>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이것이 이 작가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으나 --- 스위스 출생이 아니면서도 스위스를 배경으로 이 소설을 쓴 이유가 혹시, 스위스에 대해, 스위스 사람들의 특징에 대해 나 이만큼 많이 안다구!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싶을 정도로 그런 묘사가 짧게 자주 등장합니다. 처음으로 제대로 알게되었던 '에로스와 프시케의 신화'이야기는 매우 매우 재미있었고,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를 읽었었다라는 것에는 자부심을, 사놓은지 오래된 「프랑켄슈타인」은 어여 빨리 읽어봐야겠다란 생각을 갖게 해주는, 곳곳에의 인용들도 '나 좀 알지?'의 뉘앙스가 적지않게 느껴지기도 하더군요. 마지막 부분만 빼고는 술술 잘 읽히는 소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 짧은 한두 마디 : 불륜 극복에의, 다소 현실적이지 못한 듯한 또다른 방법. 아쉬움은... 큼. --;;
※ 읽어본, '불륜'에 관한 소설
- 이문열 作, 「레테의 연가」
- 옌렌 커 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 히가시노 게이고 作, 「새벽 거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