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 그라운드
S.L. 그레이 지음, 배지은 옮김 / 검은숲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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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준비만으로도 전투에서 반은 이긴 거라고 말씀하신다."(p14)

신의 재림(再臨)에 의한 세상의 종말에서건, 메르스와 같은 전염병의 창궐을 염려해서였건, 아님 핵전쟁으로부터의 도피였었건! --- 준비만으로도 반은 이긴 것이라 생각하는, "생존에 목숨을 건 부자들1"(p19)은 "핵전쟁에 대한 히스테리가 극에 달했던 80년대에 착공해서 반쯤 완성하고는 공사를 중단시킨 곳"(p62)을 개조해 만든, <성소 The Sanctum>란 이름의 지하 벙커를 은밀하게 분양받아 놓았고, 예의 세상엔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퍼져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하염없이 죽어가는 상황의 발생은 그들을 <성소>로 불러들입니다. 그리곤! 결국 (비록 전부는 아니지만) 그들은 세상 밖 상황이 종료된 후 그 <성소>를 벗어날 수 있게 되지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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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 Closed Circle Mystery"라는 역자(譯者)의 표현은 더함과 덜함이 전혀 없이 옳은 분류입니다.2 --- 외부와의 연결이 완전히 차단된 상황 하에서 일원들 중 일부가 연속으로 살해된다면, 범인은 분명! 그 일원들 중의 누군가가 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겠죠. 그 당연함으로 인해 독자는 예의 소설을 읽어감에 있어 범인이 누군가일까를 나름 추리해보게 될 것이고, 작가는 마지막에 가서 독자들의 추리에 대한 정답을 내놓는 것이 또한 당연시되는 결말일겁니다. 여기에 더해!

스티븐 스필버그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질 것이라는 이 소설은 마치! 영화로 만들어지기로 약속되어진 채 쓰여진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만큼 딱! 헐리웃 영화의 스토리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기도 합니다. 즉! ---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위험 속에서 등장 인물들이 사투를 벌이고,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가기만 하다가는, 뭔가 마법처럼 뜬금없는 우연과 행운들이 마구 쏟아지면서 결국엔 "인간이3 승리한다!"라는 엔딩을 보여주고 있지요. (예의 이 작품 속엔 등장인물들의 초인간적인 유머감각도 있으며, 남녀간의 사랑, 가족애 등 있어야할 것들 역시 다 들어있기도 합니다.) 이처럼!!!

추리소설의 전형을 그때로 따르고 있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장면 전개가 이어지는, 펼치고 덮는 데 무려! 일주일씩이나 걸렸다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만큼, 빠르게 읽히는, 그러니까 꽤 흥미로운, 그리고 무겁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다음 두 개의 질문들을 은밀하게 묻고 있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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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질문 】


​의문의 죽음이 처음으로 발생했을 당시만 해도 그들은 "그건 나중에 경찰이 다룰 문제였다"(p147)라 생각합니다. 즉! 그들은 지금의 이 현실은 지극히 예외적 상황일 뿐이며, 자신들의 일상은 계획대로 다시 되찾아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던 거지요. 그러나 --- 점점 악화되어가기만 하는 상황은 결국 그들에게 "이제는 지금 이게 진짜로 일어난 일인지 판단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p376)란 인식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의 전개 속에서 작가는 '당신의 일상(日常)은 당신을 올바르게 특징지어주고 있는가'란 질문을 독자 스스로 해보라 은밀하게 요구하고 있지요.

뭐 이런 질문이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너무도 유명한 작품 「눈먼 자들의 도시」가 던져주고 있는 질문들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었으니까요. 단지! --- 「눈먼 자들의 도시」가 "국가는 사회 내부의 무질서와 범좌, 외부 침략의 위협에서 인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정당하게 행사하는 '세속의 신'이다4"라는 거시적인 차원까지 확장된 질문을 펼쳐놓고있었다라면, 이 작품 「언더 그라운드」는  개인들의 일상이라는 미시적인 수준에 한해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라는 차이가 있을 뿐.


"분산투자로 위험을 줄이는 방법을 잘"(p347)아는 증권 중매인은 이 절박한 상황 하에서 선악의 구분을 과감히 버린 채, 권력자와 손을 잡는 것으로 자신의 '나중'을 도모합니다.  반면, 세련되고 돈 많은 누군가는 물이 없어 며칠 동안 씻지도, 양치질도 못한 상황이 되자 예전 자신의 일상에서 자신의 외모를 위해 신경을 썼던 시간들에 대해 '낭비'라는 생각을 갖게 되지요.5 이처럼! --- '나의 일상이 나 자신을 특징지어낼 수 있는가'란 질문에 대해, 두 개의 상반된 변화를 보여줌으로써 작가는 '당신의 일상은 과연?'란 질문을 던져주고 있는 겁니다.  

【 두 번째 질문 】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고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 한강 作, 「소년이 온다」중 p134. 창비 刊, 2014.

작가 한강이 던졌던 이 질문은 정말로 '근본적인 질문'이지요. 일본 작가 구사카베 요는 좀 더 좁은 범위에서 똑같은 질문을 던졌더랬습니다.


"'필요없는 동물을 죽여도 괜찮다'라는 생각. …… 이것이 '필요 없는 인간은 죽여도 괜찮다'라는 식으로 발전하면 이른바 노숙자 살상이나 노인 학대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마비된 팔다리는 잘라낸다는 발상은, 이것에 가까운 뭔가를 느끼게 하는군요."

- 구사카베 요 作, 「A케어」중. 민음사 刊, 2013.

​이 작품 「언더 그라운드」의 작가는, 작품의 결말에서 "이건 폭력이 아니었다. … 이건 생존이었다. …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을 한다"(p441)이란 범인(犯人)의 고백을 통해 똑같은 질문을 독자에게 안겨주고 있습니다. --- 정녕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을 한다'라는 어쩔 수 없는 외부의 동인(動因)이 작동되면,'필요 없는 인간은 죽여도 괜찮다'라 생각하게 될 것이며, 이것이 인간의 역사가 되어 결국 '존엄하다고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존재'일 뿐인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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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단순한 추리소설이려니,하고 펼쳐든 이 소설은 꽤 흥미롭게 전개되는 이야기를 보여주었으나 --- 헐리웃 영화에서 흔히 보여지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식의 실마리는, 등장인물들이 그 전에 겪어야 했던 험난한 고생의 해결책으로는 사뭇 허망하기도 했습니다. 사뭇! 놀이터가 아닌, '무료 와이파이'가 터지는 곳에서 만나 노는 요즘의 중삐리들이 뭔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비법(秘法)'을 알고 있는 거야,란 결론을 내려야 할 것 같다고나 할까요? 암튼!


뭔가 의미 있을 뿐 아니라, 재미도 분명 있는 작품입니다만! --- "폐소공포증을 겪게 할 정도로 실감 난다. 마지막 반전이 독자를 얼어붙게 할 것이다"란 <인디펜던트>紙의 멘트는 아무리 좋게 보려해도 좀 심한 뻥인 듯. ^^;;


※ 함께 읽어보면 좋을 작품들

- 한강 作, 소년이 온다

- 프리모 레비 著, 이것이 인간인가

- 주제 사라마구 作, 눈먼 자들의 도시

- 구사카베 요 作, A케어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1. '돈 많은'이란 수식어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출판사의 광고문구인 "상위 1%"정도로 돈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에 등장하는 건 아닙니다. (출판사의 광고문구는 문득 "대한민국 1%" 운운했던 쌍용자동차의 헛소리를 떠올려주기도 했. --;;)
  2. 엄밀하게 따져보자면, 거의 모든 추리소설은 'closed circle mystery'일 수밖에 없지않나,란 허망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쨌든 작품 속에 등장하는 누군가 (또는 무언가)에 의해 사건이 발생되었다,라는 구조는 피해갈 수 없으니까요.
  3. 엄밀하게 말하자면, "미국인이". ​
  4. 유시민 著 「국가란 무엇인가」에서 저자 유시민이 홉스의 「국가론」을 한 마디로 요약해낸 구절입니다.
  5. "내가 왜 씻어야 한단 말인가? 그러면 내게 도움이라도 된다는 건가? 내가 누구의 마음에 더 들게 되기라도 한다는 건가? 하루, 아니 한 시간이라도 더 오래 살 수 있단 말인가? 아니, 그 반대다. 오히려 수명이 더 짧아질 것이다. 씻는 일도 노동이고 에너지와 칼로리의 낭비니까. …… 이런 생활환경에서 얼굴을 씻는다는 것은 어리석고 심지어 무례하기조차 한 것 같다. 이것은 기계적인 습관일 뿐이다. …… 기상과 노동 사이에 여유 시간이 10분밖에 없다면, 나는 그 시간을 다른 데 쓰고 싶다. …… 이것이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하늘이나 바라보고 싶다. 아니면 아주 잠시나마 한가로움이라는 사치를 즐기도록, 그냥 그렇게 살아 있도록 내버려두고 싶다." - 프리모 레비 著, 「이것이 인간인가」중 pp56-57. 돌베게 刊,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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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천 개의 유혹 - 욕망이 만든 뜻밖의 세계사
에이자 레이든 지음, 이가영 옮김 / 다른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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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원론>을 배우는 경제학과 1학년생이 감히 의심의 여지조차 가져볼 수 없는, 심지어 의심의 여지를 가지고 있어서도 안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라는 명제입니다. 정말로 인간의 욕망은 무한한 걸까요? 

2015년 "올해의 딱 한 권"으로 꼽았을만큼 저를 감동시켜주었던 책, 「고로지 영감의 뒷마무리」이라 해도, ('무한'은 고사하고!) 그 책을 1,000권 씩이나 갖고 싶다란 욕망을 가지고 있진 않습니다.1 물론! 1,000권의 (각기 다른) 책을 (마음대로 선택하여) 갖고 싶다란 욕망이 실제로 제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심지어 훨씬 더 많은 책들을 갖고 싶다란 욕망이 제 마음 속에 실재(實在)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란 명제의 실례(實例)가 될 수 없다라는 것 역시 인정할 수 밖엔 없습니다. 그럼 뭔거죠?

"인간이 갖는 구체적인 욕망은 그 양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2"라는 주장에 더해, 결국 '무한'이란 단어는 '욕망의 다양성'을 수식하는 단어일 수 밖에 없으며, 그리하여! 그 욕망의 다양성을 모두, 또한 거의 완벽하게 해결해낼 수 있는 유일한 재화인 '화폐'에 대한 욕망만이 '무한'한 것이다란 결론이 도출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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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모습과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재난도 이주도 전쟁도 제국도 왕도 예언자도 아닌 ①아름다움을 향한 욕망이다. 개개인을 움직이는 이 욕망은 나아가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 ②세계사는 욕망의 역사다.(p17) …… 이 책은 욕망과 소유, 갈망과 탐욕에 대한 이야기다. … 욕망이라는 창을 통해 역사를 들여다보고 ③수요와 희소성의 경제가 만들어 낸 놀라운 결과물을 살펴보려는 시도다(p19) ……이 책은 욕망의 역사를 기술한 보고서다. 또한 욕망과 세계사를 바꾼 능력에 관한 이야기다.(p21)

당연히! 인류의 역사 전체를 '욕망의 역사'라고만은 한정지을 수 없다라 생각합니다...만, 이 책은 예의 (시험을 코앞에 두고 있는 수험생들에게 초단기 찍기 강의를 위해 만들어진 교재마냥) '세계사는 욕망의 역사다'란 저자의 주장에만​ 걸맞는 역사 속 8개의 장면들을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특정 렌즈를 통해서만 세상을 기술하는 것이 매우 위험한 시도라 생각하고, 실제 매우 꺼려하는 타입의 책이기도 합니디만, 이 책에만큼은 그 모든 이전의 생각들을 전부 버려버리게 됩니다. 누군가 만약 (타인과의 지적대화를 위해서건, 스스로의 지적소양을 기르고 싶어서건) '넓고 얕은 지식'을 얻고자 한다면, 지금 당장 서점으로 가 「보석 천 개의 유혹」을 집어들고 계산대에 올려놓으라고, 그리고 다 읽고나면 '넓고 얕은 지식'이란 것이 과연 어떤 것이며, 얼마나 유쾌한 독서를 통해 그것을 내 안에 쌓아갈 수 있는가를 알게 될꺼라 말할 수 있을만큼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암튼!

위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대상은 ① 보석(아름다움), ②역사, 그리고 ③경제(학)으로 나뉠 수 있습니다. 시카고 대학에서 고대사와 물리학을 공부했으며, 현재 보석 회사의 수석 디자이너이고, 한 때 경매회사의 부서장을 지내기도 했었다라는 저자의 이력을 한 치의 오차 없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지요. 그러하기에/이처럼 이 책은 위의 세 측면 모두를 아울러 읽어내어도, 혹은 특정 분야 - 제 경우엔 (배운 게 도둑질 뿐인지라) 유난스레 '경제(학)'이 등장하는 부분 - 에 더 집중해 읽어낸다 하여도 모두 만족하게 될꺼라 확신합니다. 그리고/그렇게 --- 경제(학)이란 측면에 유난스레 집중하여 읽어낸 이의 감상문은 이러...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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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의 가격을 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아름다움이나 크기, 품질이 아니라 희소성이다. … ①보석의 가치는 우리에게 소수만 가지고 있거나 아무도 가지지 못한 물건을 (나는) 가지고 있다는 도취감을 준다는 데 있다.(p28) …… 희소성 효과의 흥미로운 점은 ②실제로 물건이 부족하지 않아도 그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p38) …… (이러한 희소성 효과로 인해) 단순히 어떤 물건을 못 가질 수도 있다는 생각보다 ③내가 못 가진 물건을 다른 사람은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우리의 이성을 더 마비시키는 듯하다.(p39)


 ​【 가상(假像)가치 】

경제학에서의 '가치(價値, value)'는 핵심정리하듯 단순하게 정의해낼 수 없는 개념입니다. 단순하게만 봐도 마르크스 경제학의 '노동가치설'과 신고전파 경제학의 '효용가치설'는 각기 객관적 가치와 주관적 가치라는 면에서 극명하게 대비되고 있지요.3 이 책은 기존 경제학 교과서 - 노동가치, 효용가치 등 - 에서완 다른 시각에선 배울 수 없었던, '가상가치'라는 새로운 시선의 가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비싼 보석은 일반적으로, 옷장 깊은 곳의 보석함에 담겨져 매우 중요한/기념할만한/차려입어야하는 날 등에만 주인의 몸에 걸쳐지지요.4 반면 그리 비싸지 않은 손목시계는 시계줄에 땀이 베는 여름에도 여전히 주인의 손목에 차여질 뿐 아니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주인의 시선을 받습니다. 손목시계는 소중히 간직되어지고 있는 보석을 부러워하지만, 보석 역시 손목시계를 부러워하지요. 1년에 열 번이 채 되지않는 횟수로만 주인에게 사랑을 받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말입니다. 그런데! --- 보석의 객관적 가치(가격)는 물론, 주관적 가치(소중하게 생각하는 주인의 마음)는 손목시계완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높습니다. 이건 노동가치의 측면에서나 효용가치의 시각에서나 모두 동일하지요. 일견 당연한 부등식으로 보여질 수 있으나, 생각해보면 이상할 수도 있습니다. 대체 보석은 왜? 손목시계보다 비교할 수 없을만큼 높은 가치를 부여받는 것일까요?5 


저자는 이를 '가상가치'라는 개념을 통해 명쾌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이 '가상가치'를 이해하기 위해 저자는 우선 '지위적 재화 positional goods'라는 개념을 선보여 줍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지위적 재화… 공급량과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이 얼마나 가지고 싶어 하느냐에 따라 일부 또는 전체 가치가 결정되는 상품이다.(p67) …… 흔히 '지위적 성격 positionality'을 가졌다고 일컬어지는 지위적 재화는 꼭 필요하거나 특별한 기능이 있다기보다는 단순히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싶어 하기 때문에 가치 있는 물건으로 여겨진다. 즉 지위적 재화는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상대적인' 기준으로 가치가 평가되는 상품이다. 보석은 대부분 지위적 재화에 속한다.(p71) ……  다이아몬드는 수가 적어서 '더' 가치 있는 것이 아니다. 수로만 따지면 다이아몬드는 너무 많아서 '아무 가치가 없어야 한다6'. 다이아몬드 반지는 지위적 재화의 전형이다. 다이아몬드 반지가 가진 기능은 남이 가진 다이아몬드와 비교해 자신의 더 우월한 지위를 보여주는 것 외에는 전혀 없다. 다이아몬드의 가치는 그 자체의 가치나 객관적인 기준이 아닌 소유자가 속한 그룹의 다른 사람들이 가진 다이아몬드와 비교했을 때 얼마나 큰지, 얼마나 더 비싼지에 따라서만 결정된다.(p72)  … 우리는 친구가 가진 2캐럿짜리 다이아몬드를 보기 전까지만 내가 가진 1캐럿짜리 다이아몬드에 만족한다. 친구의 다이아몬드를 보는 순간 내가 가진 다이아몬드의 가치는 폭락한다. 지위적 재화의 신기한 작용 가운데 하나는 우리로 하여금 동료집단이나 더 높은 지위의 사람이 가진 물건이 '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것이다.(p179)

결국! (소유자/사용자가) 보석에 대해 평가하는 '가치'란 대부분 (효용가치에서의 주관성보다 훨씬 더 강한) 주관적인 관념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7인데,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독점 회사"(p70)의 신화를 써낸 <드비어스 De Beers >의 창립자 세실 로즈와 2대 경영자 오펜하이머가 어떤 방식으로 이 "보석의 실제 가치는 곧 우리가 상상해낸 가상 가치"(p29)란 점을 이용했었는가를 읽고나면 이내 --- 이 책의 원제(原題)가 왜 "stoned8"인가를 알 수 있게 되며, 그로부터 이 책에 대한 유일한 아쉬움9을 느껴보게 됩니다.  


 ​【 환상 혹은 착각 】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일정의 배냥 여행중 "들렀던") 로마에서 기어코 '진실의 입'이라 불리우는 사자의 입구멍 속에 손을 넣고 찍은 24년 전 제 모습의 사진을 생각해보면, 드라마 속 여배우가 좋아했었다라는 지극히 단순한 이유때문에 6천 명이 떼로 몰려와 한 자리에서 치킨과 맥주를 마시며 "내가 전지현이 된 것 같아요!'라 환호하는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다'라 차마 말할 수 없게 됩니다. (그나마 그들은 전지현이 나온 드라마라도 봤다지만, 전 '진실의 입'이 유명해진 영화조차 못 보고 손을 넣었었으니 말이죠. --;;)  이렇게 --- '추억'이란 것이 단순히 '기억'라 불리는 것과 다른 점은 바로 '기억'에 '특정한 스토리가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듯, 단순히 치맥을 즐긴다라는 행위와 '내가 좋아하는 여배우 전지현이 드라마 속에서 자주 먹었다'라는 특정 스토리가 곁들여져 있을 때의 치맥은 그로부터 느끼게 되는 만족감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달라지게 되지요. 바로 이 사실!을, 지금 2016년이 아닌 1888년에 이용해 낸 사람이 바로 세실 로즈였었던 겁니다.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행복을 돈으로 살 방법이 적어도 두 가지는 있다. 물건을 사면 짧은 시간 동안 행복해질 수 있지만, 이 행복은 빠르게 시들해진다. 반면 '경험'을 사면 조금 더 오래가는 행복을 살 수 있다. …… 단순히 비싼 물건은 금전적인 행복을 잠시 느끼게 해 줄 뿐이다. 하지만 무형의 경험을 유형으로 만들어주는 물건인 기념품은 계속 되새길 수 있는 행복한 감정을 만들어낸다.(pp304-305)

네! 평생 몇 번 펼치지도 않는 결혼식 사진이 그 후회의 반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상품으로 팔리고 있는 이유는, 중국에서도 즐길 수 있는 한국 브랜드의 치킨이 굳이 한국에서의 경험에 넣어져야 하는 것 역시 그것들이 바로 '무형의 경험을 유형으로 만들어주는 기념품'이기 때문인 것이겠지요. 이는 바로! --- 노동가치설이나 효용가치설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의 가치창출을 이야기해주고 있는 겁니다.

만일 한 사람이 어떤 물건을 가지고 싶어 하도록 만들었다면, 그 물건은 그 사람에게 가치 있는 물건이 된 것이다. 그러니 '모든 사람'이 어떤 물건을 가지고 싶어하도록 만들 수 있다면, 모든 사람이 가치를 인정하는 실제로 가치 있는 물건을 만들 수 있다. …… 드비어스는 '욕망'을 만들었다. … (그리고) 이 욕망은 실제로 가치를 만들어냈다.(p103) 

경제학은 (욕망의 다양함이 만들어내는) '수요'와 (욕망의 무한함과 대비되는 '자원의 희소성'이 만들어내는) '공급'이 재화의 시장가치를 결정한다라 말해줍니다. 이 때 만약! --- 특정 재화에 더 이상 '희소성'이 적용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였다면, 즉 다이아몬드의 공급이 (그 수요에 비해) 너무나 많아졌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드비어스의 창립자인) 세실 로즈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이아몬드를 희귀하다고 착각하게 하는"(p73) 방법으로, 2대 경영자인 오펜하이머는 한 발 더 나아가 사람들에게 "다이아몬드가 꼭 '필요하다'는 환상"(p76)을 가지게 함으로써, 다이아몬드를 "가치가 영원히 떨어지지 않는 상품"(p75)로 만들어내었습니다. 이처럼 --- "사실 엄청나게 압축된 석탄의 한 종류일 뿐"(p77)인 다이아몬드에 일종의 '환상' (예를 들어, "A Diamond is Forever!'10라는 문구가 새겨진 케이스에 담겨 있는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는 약혼반지)을 결부시킴으로써, 드비어스는 다이아몬드라는 보석을 "다이아몬드라는 개념"(p79)으로 변형시켜 변치않는 가치를 창출해 내었다라 저자는 설명해주고 있습니다.11 

    

​다이아몬드 반지는 모든 사람이 언젠가 사거나 받기를 '고대하는' 단 하나의 보석이다. …… 이런 사고는 누군가 우리에게 '심은' 것일 뿐 우리가 스스로 해낸 생각은 아니다. …… 사실 다이아몬드가 약혼반지라는 개념은 드비어스가 … 지난 80년 동안 신중하게 가꿔온 의도적인 마케팅 전략에 불과하다. …… 드비어스는 바로 '우리'를 조종했다.(p81) …… 세계에서 가장 단단한 것은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우리의 생각이다.(p100)

​그렇다면 정녕!우리는 이처럼 '조종'당하고 '심어진' 가치만을 좇고 있는, 말하자면 '수동적인 욕망'만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과연? 



【 배고픔 그리고 배아픔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이렇지 않나. 자기 행복을 아끼다 못해 어디 깊은 곳에 꽁꽁 싸 놓지. 그리고 자기 행복이 아닌 남의 불행을 원동력 삼아 하루하루를 버티는 거야." - 장강명 著, 「한국이 싫어서」중  pp185-186.

작가 장강명은 분명 오해하고 있는 겁니다. 이건 한국 사람만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며, 근자에 나타난 현대적 특성도 아닌 그냥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선천적으로 지니고 태어난 저울을 이용해 세상을 판단한다. 이 저울의 균형이 흐트러지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지나치게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히 신기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잘못됐다는 인상을 준다.(p211)

무언가가 도덕적으로 잘못되었다라는 판단은 단순히 판단의 차원에서만 멈추지 않습니다. (저자는 '프랑스 혁명'의 발발 원인을 이것으로 설명하고 있기도 합니다.12'배고픔'이 해결되고 나니 '배아픔'을 느낀다라 말할 수도 있겠으나, 분명! 배고픔과 배아픔이 순차적이기만 한 감정이 아닌, 그 반대의 순서로 발생되어질 수도 있는 감정이라는 것이지요.13 그리고 그 결과는 바로 --- "언제나 그렇듯 사람들의 인식이 모든 것을 결정했다."(p302)14


이처럼 '배고픔'과 '배아픔'을 이야기하다보면 자연스레 그리고 당연히 마르크스 경제학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 책에서 보여지는 마르크스 경제학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최소한 저자가 이 책에서 내내 보여내고 있는 관점에서 보자면 지극히 합리적이며 날카롭기도 하지요. --- "더 공평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이론을 연구했"(p317)던 마르크스의 경제학은 이론의 구조적인 면에서도 일단, "'어떻게'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을지보다, '왜' 그런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는지에 더 관심이 많았다"(p317)라는 점에서 근본적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라고,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점은 바로!

 

마르스크 이론의 핵심 주장은  가난이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옳은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은 다이아몬드 같은 지위적 사치재에만 들어맞을 뿐, 난방 같은 비지위적 필수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없으면, 즉 옆 사람보다 가난한 사람이 없으면 모두 행복할 거라고 믿었다. 아무도 상대적인 가난을 겪지 않으려면, 즉 아무도 '가난하지 느끼지 않으려면' 다른 사람들보다 돈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없어야 했다. 즉 모두가 완전히 같은 양의 재산을 가져야만 했다. 마르크스는 이런 사회를 단일 계급 사회라고 불렀다. 그리고 단일계급사회를 달성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유재산의 철폐라고 믿었다. 마르크스의 유토피아에 사는 사람들은 사유재산을 소유할 수 없었다. …… 사업체를 운영하고 노동 생산물을 만들어낼 사람은 필요했지만, 일단 노동이 끝나고 나면 생산물을 모두 정부가 소유한 다음 똑같이 분배해야 했다. 이 이론은 부(富)가 한 명이 얻으면 한 명이 잃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는 것을 간과했다. 가치는 증가할 수 있다. 일부 지식재산권처럼 아무런 물리적인 투입이 없어도 가치가 생겨나는 경우도 있고 나무 조각으로 의자를 만들 때처럼 노동을 통해 가치가 증가할 때도 있다. 이는 자본주의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사실이다. 불행하게도 마르크스는 상대적 빈곤 이론을 펴면서 너무 적게 가진 사람이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옆 사람이 '너무 많이' 가진 것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의 이론은 결국 악의적 부러움을 '합리화'하는 것이었다. 악의적 부러움의 결과는 당연히 파괴적일 수밖게 없었다.(p318)

저자의 이 주장을 평가하거나 반박할 만한 마르크스 경제학에 대한 지식이 저에게는 없기에, 단정적인 무언가를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각주3>에서 보여지고 있는 '현실적이지 않은'의 의미에서) 현 세기를 설명해내는 데 있어서 '노동가치설'이 지닐 수 밖게 없는 한계만큼은 명확하게 설명해주고 있다라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 '보석'으로 대변되고 있는 '지위적 재화'의 가치가 창출되는 과정은 분명, '노동가치설'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며15, "악의 없는 부러움과 악의적 부러움이 함께 피운 독이 든 꽃"(p325)인 공산주의 체제가 '실패'라는 현실적 평가를 받게 된 근본적 원인이 "지위적 가치의 기능이 결여됐기 때문"(p328)이라는 저자의 결론에는 (최소한 이 책을 줄줄 읽어가다보면) 반박할 수 없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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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공언'(?)했듯, 오로지 경제학의 관점에서만 써본 이 책에 대한 감상문이었습니다만, 당연히! 이 책은 나머지 두 개의 측면에서도 충분히 유쾌하고 유익한 지식을 선사해주고 있습니다. "유럽인이 본질적으로 더 우월하므로 남북 아메리카 원주민 같은 열등한 인종을 지배하고 노예로 삼을 수 있는 '자연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p127)던 콜롬버스가 아메리카에서 기념되어지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과정도, 마리 앙투아네트를 "보호자 없이 신용카드만 손에 쥔 불행한 십대 소녀"(p170)로 표현하며, 그녀에 대한 기존의 잘못된 인식들을 알려주는 부분도, 또한 대영제국(Great Britain)의 기원이 "자매 사이에 벌어진 평범한 집안싸움에서 시작됐다"(p225)라는 걸 알아가는 과정은 그저 '유쾌하고 유익하다'라는 표현만으로는 분명 모든 것을 담아내지 못한다라 생각합니다.

​내가 세계사에서 가장 재미있게 여기는 점은 그 모든 사건이 실제로 발생했다는 것이다. 기이하기 짝이 없는 그 모든 일이 당신과 내가 살아 있는 것처럼 엄연한 현실로 존재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신기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렇게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은 꾸며 낸 이야기보다 더 흥미로워서 절로 경탄을 자아낸다.

- 에른스트 H. 곰브리치 著, 「곰브리치 세계사」중. 비룡소 刊, 2010. 

이 책을 검색해보니, 의외로 이에 대한 감상문이 거의 없더군요. 이토록 '흥미로워서 절로 경탄을 자아'내는 책이 그토록 읽혀지지 않았다라는 점에 외려 '절로 경탄을 자아'내게 됩니다.  이 책은 진심! (서점 <미스터 버티고> 사장님의 표현을 빌어)  "이런 책은 정말로 잘 팔려야 한다"라 말하고 싶고,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세종대왕님스런 표현을 써보자면) "이런 책은 정말로 널리 읽혀야 한다"라 권하고 싶네요. 머지않아 꼭! 저와는 다른 시선에서 읽어내고 쓴 다른 분의 감상문을 읽어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내가 아는' 모든 이들에게 반드시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지금 이 블로그에 와있는 당신에게도 여하한 구실로라도 '나를 아는' 이란 형용사를 붙여 꼭 한번 읽어보시라 말하고 싶은 책들의 제목 앞에 ★표시를 붙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표시이겠지만 가끔은... 타인의 주관을 한번쯤 믿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더군요.  


 

  1. 경제학은 이에 대해 '한계 효용은 체감한다'라는 이론으로 친절히 설명해주고 있지요.
  2. 홍기빈 著,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책세상 刊, 2001.
  3. 마르크스 경제학자인 류동민 교수조차 '군대 훈련 중에 피는 한 개비 담배'의 가치를 과연 노동가치설이 온전히 설명해낼 수 있을까,란 의구심을 한때 가졌었다 말하기도 했듯, '노동가치설'이 (2016년에서의) 현실적이지 않은 면이 분명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 '노동가치설'은 반드시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또 다른 의미의) '현실적 필요성'을 가지고 있다라 생각합니다.
  4. "보석의 가장 본질적인 기능은 빛나고 눈에 띄는 외양으로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끌고 이를 오랫동안 붙잡아두는 데 있다. 보석은 아름다움을 더해주기도 하고 부와 권력을 내보이기도 한다."(pp408-409)
  5. 물론, 경제학 교과서에서도 '물과 다이아몬드의 역설'이란 제목으로 이에 대해 설명해주고는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그 원인은 '희소성의 차이'때문이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 "1872년부터 남아프리카에서 '매년' 백만 캐럿의 다이몬드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 다이아몬드는 흔해졌다."(pp72-73)
  6. 여기서 유의할 점은, 저자가 이 책에서 오로지 소유자/사용자의 관점만을 고려하는 '가상가치'의 측면에서만 '가치'를 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 다이아몬드를 생산하는 데 있어, 아동 노동이라든가 여타 비인간적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라는 점 등은 고려하고 있지 않지요. 그런 점을 들어 이 책을 비난하는 의견에 전 동의할 수 없습니다. 아이폰을 만지작 거리고, 호텔 일식당에서 근사한 저녁을 먹을 때마다 그 기저에 깔려 있는 '(폭스콘과 어부들의) 노동'을 매번 떠올려야 한다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백과사전도 아니며, 인권보고서는 더더욱 아니니까요.
  7. "가치는 물론 변치 않는 수요공급 법칙에 따라 정해지지만, 어떤 물건이 희소하다는 믿음에 의해 일그러진 우리의 가치 관념에도 크게 영향받는다."(p64) …… "예나 지금이나 보석이 가진 가치의 90퍼센트는 사람이 만들어낸 가상 가치다."(p90)
  8. "If someone is stoned, ①they are very drunk. ② heavily affected by drugs." - 「Collins Cobuild English Language Dictionary」
  9.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과 비교해, 「보석 천 개의 유혹」이란 국문 제목은 단지 '아쉽다'라 표현하는 것조차 아쉬울 정도로 잘못 붙여졌다라 생각합니다.
  10. 최근엔 까르띠에 역시 'Diamonds are a girl's best friend'란 문구를 사용해 광고를 하고 있더군요.
  11. 사실 이게 막 새롭고 한 설명은 아니지요. 우리가 'Starbucks'에서 마시는 것이 단순한 커피가 아닌 '스타벅스 커피'이 듯. 허나 무서운 건 드비어스가 이러한 마케팅을 펼치기 시작했던 것이 1888년이었다라는 사실.
  12. "내가 '따라잡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 때, 사람들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흉내 내던 귀족들처럼 행동한다. … 하지만 상대방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 확실치 않거나 아예 경쟁할 수 없을 만큼 격차가 벌어지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더 악랄한 방법을 써서 수준을 맞추고자 한다. 다른 사람이 가진 유리한 위치를 빼앗고자 하는 악의적 부러움이 생기는 것이다. 내가 갖는 것만큼 좋진 않겠지만, 어쨌든 수준이 같아지는 건 맞다."(p205)
  13. 저자는 이 책에서 '배고픔'을 자신에게는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있는 것을 순수하게 가지고 싶어하는 마음인 '악의 없는 부러움'으로, '배아픔'을 자기도 가지고 싶다기보다는 상대방이 잃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마음인 '악의적 부러움'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pp203-204)
  14. "도둑질과 보석을 가지려는 욕망, 그에 따른 저주에 대한 이야기가 흔한 이유는 과도하게 집중된 부를 볼 때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반영해주기 때문이다. 한 손에 쥘 수 있는 큰 재산인 보석이야말로 과도하게 쏠린 부의 상징이다. 저주받은 다이아몬드에 대한 이야기는 권선징악을 다루기 때문에 모두 비슷한 전개를 따를 수밖ㅇ에 없다. 사람들은 그토록 아름답고 값진 물건을 한 사람이 배타적으로 소유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증거는 없지만, 엄청난 부를 소유한 대가로 불가사의한 위험이 따라올 거라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이아몬드에 얽힌 저주를 지어내서라도 불공평한 부의 분배를 설명하고자 한다."(pp218-219)
  15. '효용가치설' 역시 한계가 있긴 하나, 해석에 따라선 일정 부분을 설명해낼 수도 있다라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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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05-23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에서 이끌려서 읽고 싶은 책으로 찜하였다가 좋은 리뷰를 만나게 되어 횡재한 기분이 드는군요. 암튼. 매력적인 책인가 봐요! ^^

가살가죽 2016-05-24 19:12   좋아요 0 | URL
누구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
 
당신을 만나서 참 좋았다 - 20년간 생명의 목소리를 들어온 의사가 전하는 진료실 에세이
김남규 지음 / 이지북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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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과정 1년차를 마치고 돌아와 가족을 만난 기쁜 마음은 공항에서 목동 집으로 향하는 한 시간여 밖에는 지속될 수 없었더랬습니다. 유난히 수척해져 계신 아버지의 모습으로부터 받았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은 예의 아버지께서 간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으며 일주일 쯤 후에 수술을 받기로 하셨다는 소식으로 이어졌었기 때문이죠.

​가로와 세로 모두 12cm가 넘는 암덩어리라 하셨습니다. 병원에서 말하길 일반적으로 이 정도 크기의 암은 수술이 불가하며, 수술을 하더라도 성공가능성이 매우 낮다 했다더군요. --- 모 대학병원에 계셨던 아버지의 친한 친구분이 이 정도의 수술을 할 수 있는 외과의사는 몇 안되는데, 다행히 내가 그 세 명을 모두 잘 알고 있으니 원하는 곳을 말하면 연결해 주겠다 하셨고, 아버지는 이왕이면 당신의 친구분이 계셨던 그 병원에서 수술을 받겠노라 하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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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위로하는 따듯한 말 한마디를 고마워하는 표정이 역력하다(p16)

​매일 아침과 저녁에 병실에 들러 수술 잘 되었다고, 이제 맘 굳게 먹고 몸 간수 잘하면 금새 완치될 수 있다 하셨던 아버지 친구분의 말을, 비록 그 분이 아버지의 수술을 담당했던 외과의사도 아니었고, 간을 전문으로 하는 소화기내과 의사도 아니었지만, 제 아버지는, 그리고 저희 가족은 모두 굳게 믿었었습니다. 그건 --- 그렇다라고 믿고 싶어 믿으려 했던 것이 아닌, 진심으로 그렇다라 이야기해주셨던 그 친구분의 한마디가, 그리하여 믿고 싶은 바가 정말 믿음이 되고 결국엔 현실이 될 꺼라는 확신의 단계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이었었죠.


만약 당신이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무 말없이 그의 옆에 서서 함께 있음을 느껴보라. 그 함께 있음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축복인지 맛보라.(p69)

수술 후, 별 문제없이 회복되셨던 아버지는 하지만 1년 후, 암이 폐로 전이되었고 항암치료를 받으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 2002년 10월 11일. 출근길에 받은 다급한 목소리의 어머니 전화에 본가로 갔던 전,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주차장까지의 다섯 계단을 내려가며 '우리 아빠가 이 다섯 계단을 다시 올라오실 수 있으실까?'하는 불길한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정말... 다시 이 집 대문으로 들어가실 수 있으실까?


아무리 온 힘을 다해 노력하고 치료를 잘 계획해도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부분이 존재한다. 그렇게 환자는 신께서 예정한 시간에 따라 운명하고 말았다.(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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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했던 제 예감대로, 아버지는 그 날 저녁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와 두 분만의 말씀을 나누신 후, 저와 제 아내, 그리고 제 동생에게 한 마디씩을 남겨주시고 눈을 감으셨더랬지요. 함께 자리해주셨던 아버지의 친구분도 눈물을 흘리십니다. 


자연의 섭리라고는 하지만 생명이 죽어가는 과정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란 참 어렵습니다. 죽음을 목격하는 일은 아무리 경력이 오래된 의사라도 여전히 괴롭습니다.(p6)

주치의의 여러 마디보다, 아버지 친구분의 한 마디에 더 의지하게 됩니다. 암덩어리가 폐를 눌렀고, 결국엔 폐가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아진 것이 아버지의 최종 사인(死因)이라고, 이는 숨이 차오다 숨을 쉴 수 없게 되어 사망한 것이므로 아버지의 최후가 많이 고통스러웠던 건 아니었을꺼라는 그 분의 한마디에, 그 상황에서 왜 우리 가족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했었던 걸까요.


인간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시련과 고통을 겪는다. 다만 우리에게 주어지는 고통이 너무 가혹한 고통은 아니기를, 인간의 존엄성만큼은 유지시킬 수 있는 고통이기를 기도해본다.(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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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우리 모두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단지 일찍 가고 늦게 가는 시간의 차이와 자신의 남은 생이 얼마인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차이이다.(p71)

기피와 공포의 대상이기만 해왔던, 혹은 종종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안 된다'라는 어처구니 없는 위협의 무기가 되기도 했던 '죽음'이란 것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삶과 죽음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큰 차이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러니 환자에게 단 몇 달일지라도 그 삶은 얼마나 소중할 것인가!"(p59)라는 저자의 고백처럼 한 사람의 죽음은 망자(亡者)의 남겨진 가족들에게도 예의, 더할 나위 없이 많은 아쉬움과 후회만을 남겨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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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는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추억하며 많은 것을 배운다.(p204) …… 옛날 사진을 보며 조금 더 사랑할걸, 조금 더 잘해줄걸, 조금 더 관심을 보이고 따뜻한 말을 해줄걸, 조금 더 열심히 할 걸, 조금 더 부모님 말을 들을걸 하며 후회하지 않았으면 한다.(p233)   

돌아가시기 두달 여 전쯤의 여름 저녁으로 기억됩니다. 목동의 파리 공원으로 아버지와 둘이 산책을 나갔다가, 벤치에 앉아 말없이 한참을 사람들 바라보시던 아버지께서 느닷없이 말씀하셨었지요. --- "요즘 제일로 다시 한번만 해보고 싶은 게, 맥주 한 잔 시원하게 마시는 거야." "가서 사올까요? 저도 마시고 싶네요." …… "됐다. 의사가 이제 술은 마시지 말라 했잖냐."


두달 후에 돌아가실 걸 알았더라면, 그날 저녁 그때... 부리나케 공원매점으로 달려가 맥주 두 캔을 사올 껄하는 후회가, 아버지 돌아가신 후 한참을, 정말로 한참동안 저에게 남아있었었고, 작년 어느 봄날. 혼자 아버지의 산소를 찾아가 맥주 한 캔 올려드리곤, 뒤돌아 다른 한 캔의 맥주를 따 마시는 것으로 더 이상은 그때 아버지의 소원을 들어드리지 못했음에 대한 아쉬움을 덜어놓기로 했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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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읽었던, 서양 의사들이 쓴 책들 - 「어떻게 죽을 것인가」, 「참 괜찮은 죽음」 - 과는 확연히 다른 문체의 책이었습니다. 아마! 제가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경험이 없었더라면,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었을, 펼쳤더라도 오래지 않아 덮어버렸었을 법한 - 의사로서 바라보는 인간의 삶과 생활에 대한 잔잔한 수필이라 이 책을 소개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네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된 읽기, 그리고 잠시나마 '그 때의 내 아버지'를 떠올려보며 그 때를 써볼 수 있었다라는, (다시 한 번 더) 예의 '개인적일 수밖에 없는', 그러하기에 책을 읽고 쓴 감상문이 될 수 없는, 한 때를 되돌아보는 이 하루의 일기라 생각해 주시길 바래어 봅니다.


※ '죽음'을 다시 바라보게 해주는 책들.

- 아툴 가완디 著, 「어떻게 죽을 것인가」, 부키 刊, 2015. 

- 유시민 著, 「어떻게 살 것인가」, 아포리아 刊, 2013.   

- 헨리 마시 著, 「참 괜찮은 죽음」, 더퀘스트 刊,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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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죽음 - 어떻게 받아들이고 준비할 것인가
헨리 마시 지음, 김미선 옮김 / 더퀘스트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① 「어떻게 살 것인가1라는 책을 통해 저자 유시민이 던져주었던 질문,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그 문구의 생경함만큼이나 놀라운 것이었더랬습니다. 그 책에서 유시민이 말하고자 했던 바는 결국 "삶은 준비 없이 맞았지만, 죽음만큼은 잘 준비해서 임하고 싶다"2였었지요. ② 미국인 의사 아툴 가완디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3에서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좋은 죽음'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삶'을 사는 것"4이라 말하고 있어, 자칫 유시민의 주장과 반대되는 것으로 이해될 소지가 있을 수도 있으나, 그 진짜 의미를 "인간다운 죽음"5을 강조하는 데 있다라는 것으로 이해한 전, 이 역시 유시민의 주장과 일치한다라 생각합니다. 이처럼!

"자신들의 취향이 거세된 것을 인지하는 사람들이 드물"6 어지고, "내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보수적"7이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이 언젠가부터 점차 '삶'이 아닌 '죽음'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라는 건 어쩌면 거세된 취향이 되살아났다라는, 그리하여 이제는 --- '내일을 생각할 여유'라는 것이 더 이상은 '극소수만의 사고(思考)'가 아닌 그냥인 '우리들'에게도 feasible set 속의 하나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라는, 무척이나 긍정적인 하나의 신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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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스스로 밝히고 있듯, 이 책은 "외과 의사의 시도와 실패에 대한"(p9)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무미건조함의 극치로 '수필 형식의 수술 일지'라 표현될 수도 있겠을, 하지만! --- 의사라는 직업의 본분을 스스로 "내가 하는 일의 가치는 오로지 환자의 인생이 가진 가치로 측정되지 않는가"(p66)라 고백하는, 단순한 기술자(technician)로서의 의사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의사를 만나볼 수 있는 책이라 소개하는 것이 온전히 합당하다라 생각합니다. 이 때 의미되는 '인간적임' 역시,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아툴 가완디가 의사로서 제안해주었던 '인간다운 죽음'의 전형(典刑)을 그대로 따르고 있지요. 이 책의 저자 헨리 마시의 다음 말은


심폐소생의 현실은 TV에서 보여주는 것과 매우 다르다. 생명을 살리는 영웅적인 행동이라기보다 비참한 폭행에 가까울 때가 많으며, 평화롭게 죽도록 내버려두는 편이 나을 노인 환자들에게 쓸데없이 갈비뼈만 부러뜨리는 경우가 될 수 있다.(p119)

곧,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국 멈출 수 없는 상황이 올 때까지 오랜 의학적 투쟁을 벌인 끝에 죽음을 맞는다"8라는 아툴 가완디의 견해와 전혀 다를 바 없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 "할 수 있는 만큼 노력을 다하지 않는 실수를 가장 두려워"9라는 현대 의학은 어쩔 수 없이 "결국 죽음은 오고야 마는데도 어느 시점에 치료를 멈춰야 할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10는 현재의 상황을 초래하고 되었다라는 아툴 가완디의 주장에, 같은 의사인 헨리 마시는 예의 너무나도 '인간적인 의사'로서의 반성/고백을 더해주고 있지요. 


내가 굳이 수술을 집도하려는 이유는 … 이제 그녀가 죽을 시간이 됐다고 말할 용기를 못 낼 것 같기 때문이다. 암 전문가들이 값비싼 최신 신약이 환자를 몇 개월만 더 살려도 큰 성공이라고 하는 마당에 의사로서 '고작 몇 개월'이라는 말로 가족들에게 수술을 하지 말자고 말할 용기가 내겐 없다.(pp192-193)11

이처럼! 이 책의 저자 헨리 마시 역시, "삶이 아니라 죽음을 연장하는"(p212) 것으로서의 의학적 처치에 분명한 반대의 의사12를 피력하고 있습니다. 그냥 모든 환자를 수술해 버리면, (기술자적 의미에서) 의사로서의 역할은 온전히 끝낼 수 있으나 이는 명백히! --- "환자들의 인생이 망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p175)이며, 그러하기에 그는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진 삶을 살 바에는 평화롭게 죽는 게 더 나을 수 있다"(p174)는 견해13를 보여주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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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어떻게 죽을 것인가」란 책과 거의 다를 바 없는 내용을 담고 있는 따뜻한 이 책은, 여기에! --- '오로지 환자의 인생이 가진 가치로 측정되는 외과 의사의 시도와 실패'에 대한 솔직한 고백을 더해놓음으로써 더더욱 온기를 발하고 있습니다.


신경외과에 관한 아픈 진실 가운데 하나는, 정말로 어려운 수술을 잘하게 되는 유일한 조건이란 수술하면서 실수를 많이 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평생의 상처를 입은 환자를 내 뒤에 줄줄이 남긴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p288) …… 의사들은 일이 잘못되었을 때 깨달음은 나중에 오는 법이라고 서로를 위로하곤 한다.(pp320-321)

(그것이 자신의 욕망이건 혹은 부모의 욕망이건) 명예와 금전만을 위해 의사가 되길 원하는, 현재 대한민국의 의과대학 지망생들이 과연 이러한 고백과 깨달음을 가질 수 있을까하는 강한 의구심, "모든 외과 의사는 마음 한구석에 공동묘지를 지니고 살게 된다"(p16)란 부채(負債)의식이 과연 그들 마음 속에서 싹트여 자라나게 될 수나 있을까,하는 의문이 --- 의구심과 의문이 아닌, 엄연한 현실이라는 저의 판단은 과연 잘못된 인식인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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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제인 "Do No Harm"에 어울리는 내용을 담고 있는, 다시 말해 "참 괜찮은 죽음"이란 한국어판 제목14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기는 합니다... 만! --- 예의 <참 괜찮은 죽음>이란 장(章)은,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한 저에게 유난한 감정으로 읽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죽음이란 결코 쉽지 않은 순간이다. 우리의 몸은 발버둥치지 않고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도록 내러벼두지 않는다. 눈물을 흘리는 가족에게 몇 마디 의미 있는 마지막 말을 남긴 다음 시간 맞춰 숨을 거두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질식하거나 기침을 하면서 격렬하게 죽거나 또는 혼수상태에서 죽지 않느다면 서서히 닳아 없어지면서 죽는 게 전부다.(p272)

"눈물을 흘리는 가족에게 몇 마디 의미 있는 마지막 말을 남긴 다음 숨을 거두는" ​모습으로 당신 생(生)의 마지막을 그려내셨던 아버지의 삶이었으나, 과연 그 분 스스로는 당신의 일생을 "멋진 삶이었어"(p275)라 생각하셨는지 알 수 없었기에, 하나 뿐인 아들로서 그 분에게 당신 스스로 "할 일을 다했어"(p275)란 안도를 느끼시게 하지 못했다라 생각하기에 역시나 --- 「어떻게 죽을 것인가」와 더불어 이 책, 「참 괜찮은 죽음」은 저에게 아픈 마음으로 읽혀질 수 밖엔 없었죠. 허나!

 

   
 

​"마지막 순간 자신의 인생을 기꺼이 긍정할 수 있는 죽음,

이런 것이 좋은 죽음이라고 믿는다"


- 유시민 著, 「어떻게 살 것인가」중 p339. 

 

 

 

 

 

가신 분은 가신 분이고, 되돌릴 수 없는 건 되돌릴 수 없기에 저라도! --- '어떻게 살 것인가'를 넘어 이제, '어떻게 죽을 것인가'까지를 고민해보게도 되는, 이제부터, 이제까지의 삶을 차마 긍정할 수는 없으나 이제부터의 삶은 부디 '긍정할 수 있는 죽음'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그리하여 끝내 타인으로부터도, 그리고 스스로에게서도 '좋은 죽음'이라 말해질 수 있는 생의 마무리를 맞이할 수 있는, 그런 (부디!) 기나긴 'new chapter로서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강렬한/애절한/진심 가득한 욕망을 가지기로 합니다. 자... 힘내자!!!

※  (당연히!) 함께 읽어보길 권하여보는 책들

- 아툴 가완디 著, 「어떻게 죽을 것인가」, 부키 刊, 2015. : 이렇게 죽을 수 있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 유시민 著, 「어떻게 살 것인가」, 아포리아 刊, 2013. :  결국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관하 이야기하고 있는 책.

- 구사카베 요 作, 「A 케어」, 민음사 刊, 2013. : 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이러한 모습이 되어도 될까? 

 


 

 

 

 

 


 




 

  1. 아포리아 刊, 2013.
  2. 「어떻게 살 것인가」중 p339.
  3. 부키 刊, 2015.
  4. 「어떻게 죽을 것인가」중 p373.
  5.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국 멈출 수 없는 상황이 올 때까지 오랜 의학적 투쟁을 벌인 끝에 죽음을 맞는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중 p242.
  6. 목수정 著, 「뼛속까지 자유롭거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레디앙 刊, 2008. 중 p212.
  7. 유시민 著, 「국가란 무엇인가」, 돌베개 刊, 2011. 중 p191.
  8. 「어떻게 죽을 것인가」중 p242.
  9. 「어떻게 죽을 것인가」중 p335.
  10. 「어떻게 죽을 것인가」중 p238.
  11. 이러한 헨리 마시의 고백은, '너무 깊이 개입해서 손보고, 고치고, 제어하려는 욕구'(「어떻게 죽을 것인가」중 p232)와는 엄연히 다른 것이지요.
  12. "때때로 나는 신경외과 동료들과 함께 악성 뇌종양 진단을 받는다면 우린 어떻게 하겠는지 이야기를 나눈다. 신경외과 의사로서 치료 결과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이토록 잘 아는 상황에서 말이다. 그럴 때 나는 보통 자살할 거라고 이야기한다."(p85)
  13. "죽음은 실패가 아니다. 죽음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죽음이 비록 우리의 적일른지는 모르지만, 사물의 자연스러운 질서이기도 한 것이다." - 「어떻게 죽을 것인가」중 p18.
  14. 책 속 여러 장(章)들 중 한 제목을 그대로 차용했더군요. 저자가 이 책에 담아내고 있는 전체적인 메시지가 자칫 오독(誤讀)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사뭇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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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허벅지 다나베 세이코 에세이 선집 1
다나베 세이코 지음, 조찬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가이노이드 지방에 주목하라! …… 여자의 가슴과 엉덩이, 허벅지를 구성하는 가이노이드 지방은 여자들만의 것이며, 욕망에 불타는 수컷들로서는 그것에 안달할 수밖에 없다."

- 아베 가즈시게 · 이사카 고타로 共著 「캡틴 선더볼트 1권」 중 p7.

가끔은 싱글몰트 한 잔 곁들인 맥주 마시며, 책 읽고, 감상문 쓰다가, 잔디가 듬성 나있는 흙위에서 담배 한 대 피우고, 그러다 한번씩 책들이 잔뜩 꽂혀 있는 서가들을 둘러볼 수 있다,라는 것이야말로 서점 <미스터 버티고>만이 가지고 있는 황홀한 매력이지요. 그러하기에, 그 곳에서 첨 알게된 책은 반드시 그 서점에서 산다,라 결심했었고 그렇게 해왔었던 저이거늘 --- "요즘 읽고 있는 책 제목이 뭐죠?"라, 어떠한 관계의 누군가가 물어도 선뜻 답변이 나오지 않을 제목 (게다가 표지마저!)의 이 책, 하지만! 제목을 보는 순간, 예의 '여자의 허벅지'에 안달할 수밖에 없는 수컷의 꼴릿!한 본능으로 인해 무조건 읽어보고싶어!,란 욕망어린 생각이 들었던 이 책 「여자는 허벅지」를 들고 차마! <미스터 버티고>의 사장님 앞에 설 용기가 나지 않더군요. (저... '가오대 수석졸업생'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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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생인 일본인 여성 작가"

이 책의 저자에 대한  위 한 줄의 소개는, 한국의 수컷! 독자인 저에게 --- 간간이 (굳이 한 단어로 표현해보자면) '놀라움'을 주었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론 너무도 뚜렷하게 단점이 될 수 밖에 없는 이 책이 지닌 한계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희미하게나마) 놀라움


​"레스토랑에 갔을 때, 남자가 주문한 음식이 더 맛있어 보인다고 말하면 남자가 내 접시에 자신의 음식을 덜어 준다. 하지만 내가 주문한 건 남자에게 주지 않고 전부 내가 다 먹는다. 그럴 때가 좋다."(p62)

'그럴 때'를 좋아하는 여자를, 그렇게 좋아하는 여자의 모습을 보는 것을, 저 역시 좋아합니다.1 그럼에도 불구하고 --- 이 문장을 '공감'보다는 '놀라움'이라 표현하게 되는 건 바로, 이 문장을 써낸 그녀가 '1928년생'이기 때문이지요. 우리 나이로 치면, 대략 89세 정도 될 그녀가, 대한민국이 한창 새마을 운동과 반공 의식만을 외치고 있었던, 그녀의 나이 40대 중반이었을 1970년대 초중반에 "내가 주문한 건 남자에게 주지 않고 전부 내가 다 먹는다. 그럴 때가 좋다"라 말할 수 있었다라는 게, 그런 사고(思考)의 여유가 그저 놀라웠다라는 거죠. 이게 별 것 아닌 듯도 싶지만,


여자란 이 세상에 태어나 생을 마감할 때까지 연극하기를 좋아하는 동물이다.(p22) …… 그런 면에서 결혼식은 일생에 한 번뿐인 야심작이다. … 그녀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순간인 것이다.(p23) …… 비록 단칸방에서 시작했다 하더라도 여자는 신혼집 또한 연극 무대처럼 꾸미고 싶어 한다. 자신이 이 집의 공주인 것처럼 행동하고 싶은 것이다.(p25) … 이른 아침, 남자가 내 뺨을 가볍게 토닥이거나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이제 일어나야지"라고 말하며 다정하게 깨워 줄 때가 좋다.(p60)

(실제로!) 이 결혼생활의 시작을 4개월짜리 월세의 ('원룸'이라는 영어로 불리어졌던) 단칸방에서 시작했었던 저희의 신혼이었었기에 --- 그 작은 방 하나를 청소하는 데 하루 종일 걸렸었어!라 말했던 그때의 조교수가 떠오르기도 한데, 그렇게 그녀는 그곳을 자신의 '연극 무대'로 생각했었었거늘, 이 무심한 수컷이었던 전, 그녀를 그 원룸의 공주로 생각했었던 것이 아니라, '이 방의 왕자는 바로 나!'라 생각했었던 게 아니었나,싶은 (무지무지) 뒤늦은 후회가 이제서야 미안함으로 생겨나도록 만들어 준, 이런 생각들과 그것을 이처럼 문장으로 만들어, 저자 다나베 세이코가 40대 중반의 나이에 꺼내어 놓을 수 있었다라는 게, 그것이 1970년대의 일본이었었다라는 게, 저에겐 좀 놀랍게 느껴졌다는 겁니다. 하지만!



(너무도 뚜렷한) 한계

​"시대적 배경 탓에 한국 독자에게는 다소 낯설게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p313)

이 책의 옮긴이도 솔직하게, 그리고 매우 조심스럽게 써놓고 있듯, 이 책은 1928년 생인, 그것도 일본인 작가가 썼다라는 점에서, 그것도 주제가 '여자의 성(性), 남자의 성(性)'에 관한 이야기란 점에서 예의 '2016년 40대 중반이 되어 있는 대한민국의 수컷'인 저에게 "재미나게" 읽었다란 감상을 도저히 만들어내지 못하는 결정적 한계가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여자는 성에 대해 보수적이고 불완전하며 진취적 기상이 부족하고 개척자적 정신이 결여되어 있다. 설령 성적 호기심이 왕성한 여자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녀 본연의 것이 아니라 그녀를 그렇게 만든 과거 남자들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pp54-55)

위와 같은 주장이야 그저, (물론 이것도 큰 한계이지만) 우리 할머니들 시대의 일반적 정서려니하고 넘어갈 수 있다해도, 사뭇 짜증까지도 불러내었던 단점은 바로 --- "어떤 여자가 관능적입니까?"란 여자의 질문에 나온 남자의 대답, 그러니까 당시 일본의 여배우들의 이름을 대며 자신은 그런 타입의 여자들을 관능적이라 느낀다,라는 부분은 대체 내가 이 책을 읽어야 뭔 소용이 있을까란 회의까지 들게 해주었었죠. 이처럼!


'성(性)'이라는 인간의 본능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이, 역설적으로 본능적으로 넘어가주질 않는/넘어가질 수 없는 부분들을 가지고 있다라는 점 --- '시대'와 '국가'의 차이가 지닌 한계가 너무도 뚜렷하기에, 제 아무리 2016년 대한민국의 수컷인 저에게 이 책을 읽고 싶다란 욕망을 불러일으켜 준 '안달할 수밖에 없는' 제목을 달고 나왔었거늘, 다 읽고나니 '괜히 읽었네'란 생각만을 남겨 준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다시 떠올려 보는 그 분 


 애초에 '야하다'라는 것은 사람을 현혹시키는 일종의 기백을 말한다.(p94)

이제 더 이상은 여자에게 '당신 정말 sexy하다'란 말이 성적 희롱이 아닌, 심지어 최고의 칭찬으로까지 들린다라는 시대가 되었지만 또한! --- 지렁이가 하늘 향해 올라가려 애쓰는 듯한 요상한 몸짓이 'sexy dance'로 불리우며, 초딩들에게마저도 인기가 있는 이 시대의 '성적 가치의 기준'은 분명 뭔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되었다라 생각하는 저에게, '야하다'를 '사람을 현혹시키는 일종의 기백'으로 표현해 놓은 이 책은 오래 전 그 분을 떠올려 줍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입으로 어쩌구, 남자의 정액이 내 입 속으로 어쩌구'하는 구절들이 나왔었던, 당시 여자친구와 손만 잡아도 가슴이 벌렁대던 저에게, 그 분의 소설 ​「즐거운 사라」는, 예의 그 시대의 일반적 비난과 다르지 않은, '명문대학 교수란 사람이, 이런 게 뭐 소설이라고'의 반응을 줄 뿐이었죠.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란 에세이에 이어, 「즐거운 사라」의 작가를 결국엔 법정으로 가게 했던 1990년대 중후반의 대한민국이, 「여자는 허벅지」가 발표되고 읽혀졌던 1970년대의 일본과도 또한 비교가 됩니다. 만약!

('나는야 여자가 좋다'라든가, 혹은 '나는 야(野)한 여자가 좋다' 등으로 해석되기도 했었던 책)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속 마광수 교수의 주장이 혹! '사람을 현혹시키는 일종의 기백​'으로서의 '야한' 여자를 말하는 것이었다면 --- (비록 개연성이 충분한 연결이었다 할지라도) 그의 주장 전부를 단지/오로지 '장미여관'과 결부시켜 해석하기만 했었던 1990년대 중후반의 대한민국은 (물론 저 역시) 너무도 (물론! 이 단어의 사용이 지극히 2016년의 관점에서라는 걸 부인할 수는 없으나) 편협했었노라라 말할 수 밖엔 없다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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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생의 일본 작가가 1970년대에 썼던 글들을 모은 이 책은, 2016년을 대한민국의 40대 중반으로 살아가고 있는 저에게, 1990년대 중후반의 대한민국을 떠올려 주었다, 그리고 다시 읽어보기 위해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알라딘의 장바구니에 넣게 되었다,라는 정도로 이 책이 제게 남겨준 의미를 정리할 수 있겠네요. 상대 대강당 연단에서, 담배를 피우며 수업 하셨던 그 분도 많이 늙으셨더군요. 당시 독수리 대학 학생들의 필독서라고까지 불리었던, 예의 20대 초반의 제가 읽었었던 책,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40대 중반이 되어 다시 읽고 나면 왠지...

"아, 세월 참 많이 흘렀네..."

그저 이 한 마디, 차마 나의 입에서 나올까 했던, 나의 손으로 타이핑하는 날이 있을까, 싶었던 이 한 마디를 말하고 타이핑하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뭔가 되게 아니 어울리는, 심지어 슬프기까지 한 마무리이지 않나요? 「여자는 허벅지」란 야릇한 제목의 책을 읽고 쓴 감상문의 마지막이 "세월 참 많이 흘렀네"라는 거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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