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준비만으로도 전투에서 반은 이긴 거라고 말씀하신다."(p14)
신의 재림(再臨)에 의한 세상의 종말에서건, 메르스와 같은 전염병의 창궐을 염려해서였건, 아님 핵전쟁으로부터의 도피였었건! --- 준비만으로도 반은 이긴 것이라 생각하는, "생존에 목숨을 건 부자들"(p19)은 "핵전쟁에 대한 히스테리가 극에 달했던 80년대에 착공해서 반쯤 완성하고는 공사를 중단시킨 곳"(p62)을 개조해 만든, <성소 The Sanctum>란 이름의 지하 벙커를 은밀하게 분양받아 놓았고, 예의 세상엔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퍼져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하염없이 죽어가는 상황의 발생은 그들을 <성소>로 불러들입니다. 그리곤! 결국 (비록 전부는 아니지만) 그들은 세상 밖 상황이 종료된 후 그 <성소>를 벗어날 수 있게 되지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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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 Closed Circle Mystery"라는 역자(譯者)의 표현은 더함과 덜함이 전혀 없이 옳은 분류입니다. --- 외부와의 연결이 완전히 차단된 상황 하에서 일원들 중 일부가 연속으로 살해된다면, 범인은 분명! 그 일원들 중의 누군가가 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겠죠. 그 당연함으로 인해 독자는 예의 소설을 읽어감에 있어 범인이 누군가일까를 나름 추리해보게 될 것이고, 작가는 마지막에 가서 독자들의 추리에 대한 정답을 내놓는 것이 또한 당연시되는 결말일겁니다. 여기에 더해!
스티븐 스필버그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질 것이라는 이 소설은 마치! 영화로 만들어지기로 약속되어진 채 쓰여진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만큼 딱! 헐리웃 영화의 스토리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기도 합니다. 즉! ---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위험 속에서 등장 인물들이 사투를 벌이고,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가기만 하다가는, 뭔가 마법처럼 뜬금없는 우연과 행운들이 마구 쏟아지면서 결국엔 "인간이 승리한다!"라는 엔딩을 보여주고 있지요. (예의 이 작품 속엔 등장인물들의 초인간적인 유머감각도 있으며, 남녀간의 사랑, 가족애 등 있어야할 것들 역시 다 들어있기도 합니다.) 이처럼!!!
추리소설의 전형을 그때로 따르고 있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장면 전개가 이어지는, 펼치고 덮는 데 무려! 일주일씩이나 걸렸다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만큼, 빠르게 읽히는, 그러니까 꽤 흥미로운, 그리고 무겁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다음 두 개의 질문들을 은밀하게 묻고 있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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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질문 】
의문의 죽음이 처음으로 발생했을 당시만 해도 그들은 "그건 나중에 경찰이 다룰 문제였다"(p147)라 생각합니다. 즉! 그들은 지금의 이 현실은 지극히 예외적 상황일 뿐이며, 자신들의 일상은 계획대로 다시 되찾아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던 거지요. 그러나 --- 점점 악화되어가기만 하는 상황은 결국 그들에게 "이제는 지금 이게 진짜로 일어난 일인지 판단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p376)란 인식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의 전개 속에서 작가는 '당신의 일상(日常)은 당신을 올바르게 특징지어주고 있는가'란 질문을 독자 스스로 해보라 은밀하게 요구하고 있지요.
뭐 이런 질문이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너무도 유명한 작품 「눈먼 자들의 도시」가 던져주고 있는 질문들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었으니까요. 단지! --- 「눈먼 자들의 도시」가 "국가는 사회 내부의 무질서와 범좌, 외부 침략의 위협에서 인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정당하게 행사하는 '세속의 신'이다"라는 거시적인 차원까지 확장된 질문을 펼쳐놓고있었다라면, 이 작품 「언더 그라운드」는 개인들의 일상이라는 미시적인 수준에 한해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라는 차이가 있을 뿐.
"분산투자로 위험을 줄이는 방법을 잘"(p347)아는 증권 중매인은 이 절박한 상황 하에서 선악의 구분을 과감히 버린 채, 권력자와 손을 잡는 것으로 자신의 '나중'을 도모합니다. 반면, 세련되고 돈 많은 누군가는 물이 없어 며칠 동안 씻지도, 양치질도 못한 상황이 되자 예전 자신의 일상에서 자신의 외모를 위해 신경을 썼던 시간들에 대해 '낭비'라는 생각을 갖게 되지요. 이처럼! --- '나의 일상이 나 자신을 특징지어낼 수 있는가'란 질문에 대해, 두 개의 상반된 변화를 보여줌으로써 작가는 '당신의 일상은 과연?'란 질문을 던져주고 있는 겁니다.
【 두 번째 질문 】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고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 한강 作, 「소년이 온다」중 p134. 창비 刊, 2014.
작가 한강이 던졌던 이 질문은 정말로 '근본적인 질문'이지요. 일본 작가 구사카베 요는 좀 더 좁은 범위에서 똑같은 질문을 던졌더랬습니다.
"'필요없는 동물을 죽여도 괜찮다'라는 생각. …… 이것이 '필요 없는 인간은 죽여도 괜찮다'라는 식으로 발전하면 이른바 노숙자 살상이나 노인 학대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마비된 팔다리는 잘라낸다는 발상은, 이것에 가까운 뭔가를 느끼게 하는군요."
- 구사카베 요 作, 「A케어」중. 민음사 刊, 2013.
이 작품 「언더 그라운드」의 작가는, 작품의 결말에서 "이건 폭력이 아니었다. … 이건 생존이었다. …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을 한다"(p441)이란 범인(犯人)의 고백을 통해 똑같은 질문을 독자에게 안겨주고 있습니다. --- 정녕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을 한다'라는 어쩔 수 없는 외부의 동인(動因)이 작동되면,'필요 없는 인간은 죽여도 괜찮다'라 생각하게 될 것이며, 이것이 인간의 역사가 되어 결국 '존엄하다고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존재'일 뿐인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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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단순한 추리소설이려니,하고 펼쳐든 이 소설은 꽤 흥미롭게 전개되는 이야기를 보여주었으나 --- 헐리웃 영화에서 흔히 보여지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식의 실마리는, 등장인물들이 그 전에 겪어야 했던 험난한 고생의 해결책으로는 사뭇 허망하기도 했습니다. 사뭇! 놀이터가 아닌, '무료 와이파이'가 터지는 곳에서 만나 노는 요즘의 중삐리들이 뭔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비법(秘法)'을 알고 있는 거야,란 결론을 내려야 할 것 같다고나 할까요? 암튼!
뭔가 의미 있을 뿐 아니라, 재미도 분명 있는 작품입니다만! --- "폐소공포증을 겪게 할 정도로 실감 난다. 마지막 반전이 독자를 얼어붙게 할 것이다"란 <인디펜던트>紙의 멘트는 아무리 좋게 보려해도 좀 심한 뻥인 듯. ^^;;
※ 함께 읽어보면 좋을 작품들
- 한강 作, 「소년이 온다」
- 프리모 레비 著, 「이것이 인간인가」
- 주제 사라마구 作, 「눈먼 자들의 도시」
- 구사카베 요 作, 「A케어」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