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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만나서 참 좋았다 - 20년간 생명의 목소리를 들어온 의사가 전하는 진료실 에세이
김남규 지음 / 이지북 / 2016년 5월
평점 :
박사과정 1년차를 마치고 돌아와 가족을 만난 기쁜 마음은 공항에서 목동 집으로 향하는 한 시간여 밖에는 지속될 수 없었더랬습니다. 유난히 수척해져 계신 아버지의 모습으로부터 받았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은 예의 아버지께서 간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으며 일주일 쯤 후에 수술을 받기로 하셨다는 소식으로 이어졌었기 때문이죠.
가로와 세로 모두 12cm가 넘는 암덩어리라 하셨습니다. 병원에서 말하길 일반적으로 이 정도 크기의 암은 수술이 불가하며, 수술을 하더라도 성공가능성이 매우 낮다 했다더군요. --- 모 대학병원에 계셨던 아버지의 친한 친구분이 이 정도의 수술을 할 수 있는 외과의사는 몇 안되는데, 다행히 내가 그 세 명을 모두 잘 알고 있으니 원하는 곳을 말하면 연결해 주겠다 하셨고, 아버지는 이왕이면 당신의 친구분이 계셨던 그 병원에서 수술을 받겠노라 하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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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위로하는 따듯한 말 한마디를 고마워하는 표정이 역력하다(p16)
매일 아침과 저녁에 병실에 들러 수술 잘 되었다고, 이제 맘 굳게 먹고 몸 간수 잘하면 금새 완치될 수 있다 하셨던 아버지 친구분의 말을, 비록 그 분이 아버지의 수술을 담당했던 외과의사도 아니었고, 간을 전문으로 하는 소화기내과 의사도 아니었지만, 제 아버지는, 그리고 저희 가족은 모두 굳게 믿었었습니다. 그건 --- 그렇다라고 믿고 싶어 믿으려 했던 것이 아닌, 진심으로 그렇다라 이야기해주셨던 그 친구분의 한마디가, 그리하여 믿고 싶은 바가 정말 믿음이 되고 결국엔 현실이 될 꺼라는 확신의 단계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이었었죠.
만약 당신이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무 말없이 그의 옆에 서서 함께 있음을 느껴보라. 그 함께 있음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축복인지 맛보라.(p69)
수술 후, 별 문제없이 회복되셨던 아버지는 하지만 1년 후, 암이 폐로 전이되었고 항암치료를 받으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 2002년 10월 11일. 출근길에 받은 다급한 목소리의 어머니 전화에 본가로 갔던 전,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주차장까지의 다섯 계단을 내려가며 '우리 아빠가 이 다섯 계단을 다시 올라오실 수 있으실까?'하는 불길한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정말... 다시 이 집 대문으로 들어가실 수 있으실까?
아무리 온 힘을 다해 노력하고 치료를 잘 계획해도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부분이 존재한다. 그렇게 환자는 신께서 예정한 시간에 따라 운명하고 말았다.(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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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했던 제 예감대로, 아버지는 그 날 저녁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와 두 분만의 말씀을 나누신 후, 저와 제 아내, 그리고 제 동생에게 한 마디씩을 남겨주시고 눈을 감으셨더랬지요. 함께 자리해주셨던 아버지의 친구분도 눈물을 흘리십니다.
자연의 섭리라고는 하지만 생명이 죽어가는 과정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란 참 어렵습니다. 죽음을 목격하는 일은 아무리 경력이 오래된 의사라도 여전히 괴롭습니다.(p6)
주치의의 여러 마디보다, 아버지 친구분의 한 마디에 더 의지하게 됩니다. 암덩어리가 폐를 눌렀고, 결국엔 폐가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아진 것이 아버지의 최종 사인(死因)이라고, 이는 숨이 차오다 숨을 쉴 수 없게 되어 사망한 것이므로 아버지의 최후가 많이 고통스러웠던 건 아니었을꺼라는 그 분의 한마디에, 그 상황에서 왜 우리 가족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했었던 걸까요.
인간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시련과 고통을 겪는다. 다만 우리에게 주어지는 고통이 너무 가혹한 고통은 아니기를, 인간의 존엄성만큼은 유지시킬 수 있는 고통이기를 기도해본다.(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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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우리 모두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단지 일찍 가고 늦게 가는 시간의 차이와 자신의 남은 생이 얼마인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차이이다.(p71)
기피와 공포의 대상이기만 해왔던, 혹은 종종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안 된다'라는 어처구니 없는 위협의 무기가 되기도 했던 '죽음'이란 것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삶과 죽음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큰 차이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러니 환자에게 단 몇 달일지라도 그 삶은 얼마나 소중할 것인가!"(p59)라는 저자의 고백처럼 한 사람의 죽음은 망자(亡者)의 남겨진 가족들에게도 예의, 더할 나위 없이 많은 아쉬움과 후회만을 남겨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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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는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추억하며 많은 것을 배운다.(p204) …… 옛날 사진을 보며 조금 더 사랑할걸, 조금 더 잘해줄걸, 조금 더 관심을 보이고 따뜻한 말을 해줄걸, 조금 더 열심히 할 걸, 조금 더 부모님 말을 들을걸 하며 후회하지 않았으면 한다.(p233)
돌아가시기 두달 여 전쯤의 여름 저녁으로 기억됩니다. 목동의 파리 공원으로 아버지와 둘이 산책을 나갔다가, 벤치에 앉아 말없이 한참을 사람들 바라보시던 아버지께서 느닷없이 말씀하셨었지요. --- "요즘 제일로 다시 한번만 해보고 싶은 게, 맥주 한 잔 시원하게 마시는 거야." "가서 사올까요? 저도 마시고 싶네요." …… "됐다. 의사가 이제 술은 마시지 말라 했잖냐."
두달 후에 돌아가실 걸 알았더라면, 그날 저녁 그때... 부리나케 공원매점으로 달려가 맥주 두 캔을 사올 껄하는 후회가, 아버지 돌아가신 후 한참을, 정말로 한참동안 저에게 남아있었었고, 작년 어느 봄날. 혼자 아버지의 산소를 찾아가 맥주 한 캔 올려드리곤, 뒤돌아 다른 한 캔의 맥주를 따 마시는 것으로 더 이상은 그때 아버지의 소원을 들어드리지 못했음에 대한 아쉬움을 덜어놓기로 했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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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읽었던, 서양 의사들이 쓴 책들 - 「어떻게 죽을 것인가」, 「참 괜찮은 죽음」 - 과는 확연히 다른 문체의 책이었습니다. 아마! 제가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경험이 없었더라면,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었을, 펼쳤더라도 오래지 않아 덮어버렸었을 법한 - 의사로서 바라보는 인간의 삶과 생활에 대한 잔잔한 수필이라 이 책을 소개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네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된 읽기, 그리고 잠시나마 '그 때의 내 아버지'를 떠올려보며 그 때를 써볼 수 있었다라는, (다시 한 번 더) 예의 '개인적일 수밖에 없는', 그러하기에 책을 읽고 쓴 감상문이 될 수 없는, 한 때를 되돌아보는 이 하루의 일기라 생각해 주시길 바래어 봅니다.
※ '죽음'을 다시 바라보게 해주는 책들.
- 아툴 가완디 著, 「어떻게 죽을 것인가」, 부키 刊, 2015.
- 유시민 著, 「어떻게 살 것인가」, 아포리아 刊, 2013.
- 헨리 마시 著, 「참 괜찮은 죽음」, 더퀘스트 刊,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