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허벅지 다나베 세이코 에세이 선집 1
다나베 세이코 지음, 조찬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가이노이드 지방에 주목하라! …… 여자의 가슴과 엉덩이, 허벅지를 구성하는 가이노이드 지방은 여자들만의 것이며, 욕망에 불타는 수컷들로서는 그것에 안달할 수밖에 없다."

- 아베 가즈시게 · 이사카 고타로 共著 「캡틴 선더볼트 1권」 중 p7.

가끔은 싱글몰트 한 잔 곁들인 맥주 마시며, 책 읽고, 감상문 쓰다가, 잔디가 듬성 나있는 흙위에서 담배 한 대 피우고, 그러다 한번씩 책들이 잔뜩 꽂혀 있는 서가들을 둘러볼 수 있다,라는 것이야말로 서점 <미스터 버티고>만이 가지고 있는 황홀한 매력이지요. 그러하기에, 그 곳에서 첨 알게된 책은 반드시 그 서점에서 산다,라 결심했었고 그렇게 해왔었던 저이거늘 --- "요즘 읽고 있는 책 제목이 뭐죠?"라, 어떠한 관계의 누군가가 물어도 선뜻 답변이 나오지 않을 제목 (게다가 표지마저!)의 이 책, 하지만! 제목을 보는 순간, 예의 '여자의 허벅지'에 안달할 수밖에 없는 수컷의 꼴릿!한 본능으로 인해 무조건 읽어보고싶어!,란 욕망어린 생각이 들었던 이 책 「여자는 허벅지」를 들고 차마! <미스터 버티고>의 사장님 앞에 설 용기가 나지 않더군요. (저... '가오대 수석졸업생'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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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생인 일본인 여성 작가"

이 책의 저자에 대한  위 한 줄의 소개는, 한국의 수컷! 독자인 저에게 --- 간간이 (굳이 한 단어로 표현해보자면) '놀라움'을 주었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론 너무도 뚜렷하게 단점이 될 수 밖에 없는 이 책이 지닌 한계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희미하게나마) 놀라움


​"레스토랑에 갔을 때, 남자가 주문한 음식이 더 맛있어 보인다고 말하면 남자가 내 접시에 자신의 음식을 덜어 준다. 하지만 내가 주문한 건 남자에게 주지 않고 전부 내가 다 먹는다. 그럴 때가 좋다."(p62)

'그럴 때'를 좋아하는 여자를, 그렇게 좋아하는 여자의 모습을 보는 것을, 저 역시 좋아합니다.1 그럼에도 불구하고 --- 이 문장을 '공감'보다는 '놀라움'이라 표현하게 되는 건 바로, 이 문장을 써낸 그녀가 '1928년생'이기 때문이지요. 우리 나이로 치면, 대략 89세 정도 될 그녀가, 대한민국이 한창 새마을 운동과 반공 의식만을 외치고 있었던, 그녀의 나이 40대 중반이었을 1970년대 초중반에 "내가 주문한 건 남자에게 주지 않고 전부 내가 다 먹는다. 그럴 때가 좋다"라 말할 수 있었다라는 게, 그런 사고(思考)의 여유가 그저 놀라웠다라는 거죠. 이게 별 것 아닌 듯도 싶지만,


여자란 이 세상에 태어나 생을 마감할 때까지 연극하기를 좋아하는 동물이다.(p22) …… 그런 면에서 결혼식은 일생에 한 번뿐인 야심작이다. … 그녀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순간인 것이다.(p23) …… 비록 단칸방에서 시작했다 하더라도 여자는 신혼집 또한 연극 무대처럼 꾸미고 싶어 한다. 자신이 이 집의 공주인 것처럼 행동하고 싶은 것이다.(p25) … 이른 아침, 남자가 내 뺨을 가볍게 토닥이거나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이제 일어나야지"라고 말하며 다정하게 깨워 줄 때가 좋다.(p60)

(실제로!) 이 결혼생활의 시작을 4개월짜리 월세의 ('원룸'이라는 영어로 불리어졌던) 단칸방에서 시작했었던 저희의 신혼이었었기에 --- 그 작은 방 하나를 청소하는 데 하루 종일 걸렸었어!라 말했던 그때의 조교수가 떠오르기도 한데, 그렇게 그녀는 그곳을 자신의 '연극 무대'로 생각했었었거늘, 이 무심한 수컷이었던 전, 그녀를 그 원룸의 공주로 생각했었던 것이 아니라, '이 방의 왕자는 바로 나!'라 생각했었던 게 아니었나,싶은 (무지무지) 뒤늦은 후회가 이제서야 미안함으로 생겨나도록 만들어 준, 이런 생각들과 그것을 이처럼 문장으로 만들어, 저자 다나베 세이코가 40대 중반의 나이에 꺼내어 놓을 수 있었다라는 게, 그것이 1970년대의 일본이었었다라는 게, 저에겐 좀 놀랍게 느껴졌다는 겁니다. 하지만!



(너무도 뚜렷한) 한계

​"시대적 배경 탓에 한국 독자에게는 다소 낯설게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p313)

이 책의 옮긴이도 솔직하게, 그리고 매우 조심스럽게 써놓고 있듯, 이 책은 1928년 생인, 그것도 일본인 작가가 썼다라는 점에서, 그것도 주제가 '여자의 성(性), 남자의 성(性)'에 관한 이야기란 점에서 예의 '2016년 40대 중반이 되어 있는 대한민국의 수컷'인 저에게 "재미나게" 읽었다란 감상을 도저히 만들어내지 못하는 결정적 한계가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여자는 성에 대해 보수적이고 불완전하며 진취적 기상이 부족하고 개척자적 정신이 결여되어 있다. 설령 성적 호기심이 왕성한 여자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녀 본연의 것이 아니라 그녀를 그렇게 만든 과거 남자들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pp54-55)

위와 같은 주장이야 그저, (물론 이것도 큰 한계이지만) 우리 할머니들 시대의 일반적 정서려니하고 넘어갈 수 있다해도, 사뭇 짜증까지도 불러내었던 단점은 바로 --- "어떤 여자가 관능적입니까?"란 여자의 질문에 나온 남자의 대답, 그러니까 당시 일본의 여배우들의 이름을 대며 자신은 그런 타입의 여자들을 관능적이라 느낀다,라는 부분은 대체 내가 이 책을 읽어야 뭔 소용이 있을까란 회의까지 들게 해주었었죠. 이처럼!


'성(性)'이라는 인간의 본능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이, 역설적으로 본능적으로 넘어가주질 않는/넘어가질 수 없는 부분들을 가지고 있다라는 점 --- '시대'와 '국가'의 차이가 지닌 한계가 너무도 뚜렷하기에, 제 아무리 2016년 대한민국의 수컷인 저에게 이 책을 읽고 싶다란 욕망을 불러일으켜 준 '안달할 수밖에 없는' 제목을 달고 나왔었거늘, 다 읽고나니 '괜히 읽었네'란 생각만을 남겨 준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다시 떠올려 보는 그 분 


 애초에 '야하다'라는 것은 사람을 현혹시키는 일종의 기백을 말한다.(p94)

이제 더 이상은 여자에게 '당신 정말 sexy하다'란 말이 성적 희롱이 아닌, 심지어 최고의 칭찬으로까지 들린다라는 시대가 되었지만 또한! --- 지렁이가 하늘 향해 올라가려 애쓰는 듯한 요상한 몸짓이 'sexy dance'로 불리우며, 초딩들에게마저도 인기가 있는 이 시대의 '성적 가치의 기준'은 분명 뭔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되었다라 생각하는 저에게, '야하다'를 '사람을 현혹시키는 일종의 기백'으로 표현해 놓은 이 책은 오래 전 그 분을 떠올려 줍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입으로 어쩌구, 남자의 정액이 내 입 속으로 어쩌구'하는 구절들이 나왔었던, 당시 여자친구와 손만 잡아도 가슴이 벌렁대던 저에게, 그 분의 소설 ​「즐거운 사라」는, 예의 그 시대의 일반적 비난과 다르지 않은, '명문대학 교수란 사람이, 이런 게 뭐 소설이라고'의 반응을 줄 뿐이었죠.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란 에세이에 이어, 「즐거운 사라」의 작가를 결국엔 법정으로 가게 했던 1990년대 중후반의 대한민국이, 「여자는 허벅지」가 발표되고 읽혀졌던 1970년대의 일본과도 또한 비교가 됩니다. 만약!

('나는야 여자가 좋다'라든가, 혹은 '나는 야(野)한 여자가 좋다' 등으로 해석되기도 했었던 책)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속 마광수 교수의 주장이 혹! '사람을 현혹시키는 일종의 기백​'으로서의 '야한' 여자를 말하는 것이었다면 --- (비록 개연성이 충분한 연결이었다 할지라도) 그의 주장 전부를 단지/오로지 '장미여관'과 결부시켜 해석하기만 했었던 1990년대 중후반의 대한민국은 (물론 저 역시) 너무도 (물론! 이 단어의 사용이 지극히 2016년의 관점에서라는 걸 부인할 수는 없으나) 편협했었노라라 말할 수 밖엔 없다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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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생의 일본 작가가 1970년대에 썼던 글들을 모은 이 책은, 2016년을 대한민국의 40대 중반으로 살아가고 있는 저에게, 1990년대 중후반의 대한민국을 떠올려 주었다, 그리고 다시 읽어보기 위해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알라딘의 장바구니에 넣게 되었다,라는 정도로 이 책이 제게 남겨준 의미를 정리할 수 있겠네요. 상대 대강당 연단에서, 담배를 피우며 수업 하셨던 그 분도 많이 늙으셨더군요. 당시 독수리 대학 학생들의 필독서라고까지 불리었던, 예의 20대 초반의 제가 읽었었던 책,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40대 중반이 되어 다시 읽고 나면 왠지...

"아, 세월 참 많이 흘렀네..."

그저 이 한 마디, 차마 나의 입에서 나올까 했던, 나의 손으로 타이핑하는 날이 있을까, 싶었던 이 한 마디를 말하고 타이핑하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뭔가 되게 아니 어울리는, 심지어 슬프기까지 한 마무리이지 않나요? 「여자는 허벅지」란 야릇한 제목의 책을 읽고 쓴 감상문의 마지막이 "세월 참 많이 흘렀네"라는 거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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