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철학 소프트
김석 지음 / 박영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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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없이 살 수 있다란 생각은 … '사물이나 사실을 실제와 다르게 지각하거나 생각'하는 사전(事典)적 의미의 착각 바로 그것이며, 자전하는 지구 위에 살면서도 정지상태로 인식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 법은 공기와 같아서 우리가 의식하건 못하건 단 한 순간도 그것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p71)

"사인(私人)이고, 이윤을 추구하는 자"(p161)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는 변호사에게, 법(法)이란 것은 사적이윤 추구의 주요도구일 것이고 그러하기에 당연히 '법 없이 살 수 있다'란 말은 부인(否認)되어야 마땅하겠죠만!


'지식의 습득과 학점의 취득'이란, 오로지 수업의 대상으로만 접했었던 헌법, 민법, 상법 등이 여전히 '수업의 대상'으로만 남아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더랬습니다. 저자가 썼듯, 저의 의식 여부를 떠나 그들은 제 일상과 생업의 적잖은 부분을 지지·조정·제한하고 있으며, 생업과 휴식을 오가는 과정에서도 역시나 '도로교통법'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만큼 많은 법들로부터 저(와 당신)의 행동들은 지지·조정·제한받고 있지요. 여기서! --- '헌법'과 '도로교통법'이란 게 '법'이란 한 개의 단어로 묶여지기는 하나, 어딘가 또한 다른 차원이기도 한/하여야할 듯하다라는 느낌을 주기도 하거늘, 대체 '법'이란 것 무엇일까요?


"법철학은 법이란 무엇인가 하는 법의 개념 또는 법의 정의(定義)로부터 시작됩니다."(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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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①그 사회의 지배적인 힘에 의해 제정되고 ②그 힘으로 효력을 유지하며, ③지배세력의 가치가 일반화된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 시대의 지배적인 힘과 의지를 반영하여 제정되고 통용되는 것이 법입니다.(pp16-17)

뭔가, 우리가 기대/예상했던 것과는 좀 다른, 법에 대한 서술이지요. 그래서일까요? 이 책의 저자는 위의 두 문장에 대한 해설에 꽤나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① 법은 당위(當爲)를 정한 것 : "법은 '사회구성원이 마땅히 지키고 따라야 할 당위에 관한 규범', 이른바 '당위규범'입니다."(p12)

이 부분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습니다. "도덕의 최소한 - 옐리네크"(p12)"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삶의 규범과 규칙으로서 서로 승인한 모든 것 - 비어링"(p12)등과 같은 선학들의 정의(定義)를 거론하지 않아도, 심정적으로나 이성적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법'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니까요.


② 법은 강제규범 : "법규범은 그 규범의 준수가 권력에 의해 강제되는 규범"(p13)

당위로만 따지자면 종교규범이나 예절규범 등도 있습니다만, 전날의 숙취 때문에 주일 예배에 참석하지 못했다 하여,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지 않았다 하여 (신이 아닌) 제 3자가 나에게 제재를 가하지도 않으며, 가할 수도 없지요. 바로 이 점에서, 법이 지니고 있는 여타의 당위들과의 뚜렷한 차이가 등장합니다. --- "국가권력에 의해 준수가 강제되고 위반시에 제재(형벌, 강제집행)가 따른다'는 점에서 '강제규범'이며, 이것이 법과 그 밖의 타자를 구별하는 가장 본질적 징표이자 특징1입니다."(p13)


③ 법은 힘이자 의지 : "법은 힘이자 의지요, 그 시대의 지배적인 힘, 의지를 반영하여 생성된다""(pp78-79)

당위로서의 법이 지니는 목표가 "정의로운 질서의 추구, 정의로운 평화의 실현"(p35)이며, 이것이 당위적 성격을 띤다 할지라도. 정의(justice)의 개념2이 사람/집단마다 다를 수 있다라는 점3은, 게다가 준수하지 않음에 제재를 부과하려 한다면, 여기엔 복종과 제재를 이행받아낼 수 있는 물리력의 수반이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이 물리력의 탄생을 가져왔으며, 이후 그 집행의 정당성까지를 뒷받침하는 것은 바로 --- "이 당위는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는 누군가4의 의지에 다름 아닙니다. 힘 있는 세력의 의지5 이른바 지배적 의지가 일반의지로 간주6되며, 법은 이러한 '일반의지의 표현'입니다."(p16)


'법철학'에 관한 책이고, 운전자가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것에 부과되는 범칙금의 정당성에 대한 궁금증이 '법의 기저에 깔려 있는 법철학이란 것'에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기에 펼치게 된, '소프트'란 말랑말랑한 단어가 '법철학'이란 개념의 딱딱함/할 것 같음을 상쇄시켜주는 제목의 책, 「법철학 소프트」을 고른 이유였기에, 법에 관한 "존재와 당위, 인식과 실천"(p84)등에는 딱히 근본적 의문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으며, 이러한 의문이 해결되는 걸 바라지도 않았더랬습니다. (만약 고삐리가 이 책을 읽는다면, 그/그녀에게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이 되고싶다란 욕망을 안겨줄 수는 있을 꺼라 생각합니다만, 저는 더 이상 고삐리가 될 수 없음7을 알기에) 그저! ---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 그 목적이 완성되며 어떻게 존재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은 법규, 어떻게 결정해도 좋지만8 어떻게든 통일적으로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규범, 이른바 방향규범의 존재는 법과 도덕이 구별된다고 하는 뚜렷한 징표"(p23)의 수준에서의 '법의 정의(definition)에 대한 이해'를 얻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시작은 충분히 만족스럽습니다. 물론!

이런 단순한 기대와 이해를 뛰어 넘어, (그 어떠한 '학문'도 다 그러하듯) 현실에서 접하게 되는 측면의 이면에 내재되어 있는 논리적 아름다움은 예의 법학에도 존재하고 있음을 각인시켜 주는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법학도가 아닌, 순전히 저 개인의 관심사에 따라 이 책의 내용을 (중구난방식으로) 정리해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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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규자(受規者) 논쟁 】

헌법, 민법, 상법 등 법대과목의 시험을 준비할 때면 내용보다는 한자공부를 더 많이 했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합니다만, 예의 '법학'이란 학문은 한자어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없나봅니다. 한글로만 쓰여져서는 그 의미를 알아낼 수 없을 '수규자(受規者)'란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법이 누구에게 명령 또는 금지하는 것이냐"(p14)라는 것이지요​. 이 '수규자'에 대해 제가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바로,

「세상을 바꾼 법정」9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었었던 부분인 <카렌 앤 퀸란과 인간답게 죽을 권리>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카렌 앤 퀸란이라는 젊은 여성이 영구적 식물인간 상태라는 진단을 받게되자, 기나긴 고심 끝에 그녀의 부모가 카렌 앤의 육체적 생명을 유지해주고 있던 인공호흡기의 제거를 의사에게 요청하면서 시작됩니다. 이 요청에 대해 카렌 앤의 주치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10를 이유로 거부의 의사를 명백히 밝히지요. 매우 흥미롭고 날카로운 공방의 과정을 거쳐, "무의미한 치료 행위를 중단하고 환자가 자연스러운 상태에 있도록 허용해 달라"11는 카렌 앤의 부모의 의사를, 그들의 변호사는 --- 소송의 대상을 "법원이 의사에게 의료 장치를 제거해 달라는 의뢰인의 요구에 따를 것을 명하는 것"12 즉, "의사의 신념에 반하는 일을 하도록 판결할 것을 요청하는 것"13이 아닌, 단지 "원고(카렌 앤의 부모)의 요구를 들어줄 다른 의사에게 간섭하지 말아 달라는 것"14으로 이전시켜놓음으로써, 결국 "의사들이 치료를 중단하고 이 때문에 카렌 앤이 사망한다고 하더라도 의사들이나 가족들에게 아무런 법적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는 확인"15으로서의 최종판결을 받아내는 데 성공합니다. 이처럼,

법조문이 명시하고 있는 제재의 명령이 과연 누구를 대상으로 하고 있느냐란 점은 판결의 향방마저 바꾸어 놓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법조문의 수규자가 누군인가의 예를 들자면, --- 우리나라 형법 제250조가 효력을 발휘하게 되는 이유는 "법집행자(공무원)에게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 ,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라는 명령이며, 법집행자가 위 법에 따라 살인자를 처벌하기 때문"(p14)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법의 예방적 성격16으로 인해 법조문이 법집행자만을 수범자(受範者 : 법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자)로 한정할 수는 없게 됩니다. 결국은 일반적으로 --- "법은 일차적으로 일반인을 위하(威嚇 : 위협함)하고17, 2차적18으로 법집행자에게 제재를 명함으로써 규범력을 유지하는 것"(p14)이 되어야 한다라 저자는 설명해줍니다.


【 법이 지켜지는 이유, 법을 지켜야 하는 이유 】

운전자가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은 것은, 심지어 사고가 났다 하더라도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행위인데 대체 왜 법의 제재를 가하는가란 의문에 대해, 경제학의 시선으로 생각해 낸 저의 답안은 "국가가 일 개인의 안위를 걱정해 안전벨트 착용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본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두에게 안전벨트 착용을 강제한다"19라는 것이었지요. 여기에서 더 나아가! --- '특정 행위에 왜 법의 제재가 가해지는가?'란 의문을 넘어, '법의 제재를 왜 따라야 하는가?'란 질문까지를 이 책은 다루고 있습니다.


법이 무엇이냐가 아닌, 법이란 것이 대체 왜 존재하(여야만 하)느냐란 질문에 대해 저자는 "질서의 유지 또는 평화의 확립 … 정의 구현20"(p30)이라는 대답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누구나 동의하고 존중하는 대의(大義)인 위 세 가지는 하지만! --- "이성과 본능, 신과 동물의 양 극단 사이에서 방황하는 존재"(p58)라는 인간의 근본적 한계로 말미암아, 수범자들의 법준수 의무가 국가21에 의해 물리적으로 강제22되게 됩니다. "전적으로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법이 필요 없을 것이고 전적으로 본능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법이 불가능하기 때문"(p58)이지요. 이처럼, 나름 정당한 이유로 강제되고 있는 법임에도 불구하고!


"정의(justice)는 또한 정의롭게 추구되어야 합니다. 목적으로서의 정의는 수단으로서의 정의23를 요구합니다."(p165)


예를 들어, '다들 신호위반하는데 왜 나만 잡느냐'란 운전자의 항변에 "어부가 세상 물고기 다잡느냐, 잡힌 놈만 잡지"(p210)라는 경찰관의 대답은 '수단으로서의 정의'를 위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 교통흐름에 명백히 방해가 되는 신호체계가 설정되어 있는 상황이어, (그 방해로 인한 체증을 감내해야 하는 고통은 운전자로 하여금) "불의의 법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법을 준수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그 법을 개정하려고 노력하면서 개정에 성공할 때까지는 그 법을 준수할 것인가. 아니면 당장이라도 그 법을 어길 것인가"24(p94)와 같은 고민이 모든/대다수의 수범자에게 생겨난다면, 이 때의 법규정은 분명 '목적으로서의 정의' 구현마저 실패한 것이 되고 맙니다. 이처럼,

'질서의 유지, 평화의 확립, 정의 구현'을 목적으로 하는 법이, 그 목적의 실현을 위해 정작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게 된다라는 역설은 이제 현실적 각종 법규정들에 대한 우리의 의문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 (제가 법적으로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운전자의 안전벨트 강제규정에 대한 저자의 견해25나,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 대마초 피우며 작곡을 한 것이 대체 왜 범죄가 되어야하느냐는 가수 전인권의 항변에 대한 이 책의 설명26에는 동의여부에 대한 각자의 견해가 얼마든지 다를 수 있을 꺼라 생각됩니다만) "타인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는 한, 즉 타인에 대한 해악방지를 위한 것이 아닌 한 법적 강제는 정당화되지 않는다"(p118)라는 J.S. 밀의 주장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나의 자유가 부당하게 제한되고 침해"(p117)되게 만드는, '수단으로서의 정의 구현'에 실패한 잘못된 법규/불필요한 법규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라는 문제 말입니다. 이같은 '악법도 법인가'란 의문에 대해,

저자는 존재론적 의미와 실천론적 의미를 소개하며, "오늘날 우리는 불의의 법을 마냥 참고 인내하지 않아도 되며, 또 그렇게 하는 것이 개인의 권리를 구제할 뿐 아니라 좋은 법과 좋은 세상을 만드는 길"(pp95-96)이란 교과서적 답변을 내놓고 있습니다만, 의외의 논점에서 뜻밖의 흐름을 만들어 내기도 하더군요.


'선량한 성풍속'이라는 사회적 법익은 개인의 생명·자유·재산의 보호과 직·간접적 연관성이 희박합니다. 성매매를 처벌한다고 해서 궁극적으로 개인의 생명이나 자유, 재산이 지켜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27(에) 성매매의 처벌은 법률의 도덕화, 도덕의 법률화의 대표적 사례이고, 타인에게 해악을 끼치거나 그럴 위험이 있는 행위만 범죄로 규율해야 한다는 해악의 원칙에 따르더라도 정당성이 의문시되며, 법적 안정성(규범의 실효성과 처벌의 확실성·일관성)이 의심받는 범죄이기도 합니다.(pp 211-212)

뿐만 아니라, "법이 어떻게 오해되든 법의 목적은 자유를 폐지하거나 제약하는 것이 아니라 보존하고 확장하는것"(p75)이란 존 로크의 견해를 들어, 저자는 우리나라에서의 간통죄 폐지28와 '오바마케어'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대의견29을 설명해주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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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국가가 입법(立法)국가에서 사법(司法)국가로 그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법원국가화, 법관국가화되고 있는 경향"(p6)을 전적으로 인정함과 동시에, 저자는 사법부가 불신의 대상이 되어 있는 현상에 대한 일견 안타까움 담긴 해명을 내놓고 있기도 합니다. --- "재판은 전지전능한 절대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 직접 사건을 목격한 증인이 아니라 사건을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법관이 하는 것"(p130)이란 사뭇 감성적 억울함을 거론하기도, 현실적으로는 "법관의 자의(恣意)30를 방지하고 영구미제를 막기 위해 채택한 증거재판주의31, 입증책임32이라는 원칙"(p130)의 영향 때문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기도 합니다. 여기에 더해,


법의 정의(definition)이 일반상식이나 사전적 정의(definition)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법률용어로서의 '악의(惡意)'가 상식적 해석인 '나쁜 마음'이나 '해의(害意)'보다는 오히려 '어떤 것을 알고 있는 상태' '고의(故意)33'로 쓰이는 것이 그 예입니다.(p214)

와 같은, "법이 일반인의 상식이나 용어의 정의와 배치되고 불신과 괴리를 초래하는 지점"(p214) 또한 지적하고 있기도 합니다. ​저자가 언급한 위의 요소들이 분명 (법조인이 아니라는 의미에서의) 일반 국민들이 사법부에 불신을 지니게 된 원인이기도 하겠습니다만, 무엇보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며, 무엇보다 법제정자와 집행자가 그 법에 따른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34 유효합니다. 법(recht)의 반대는 실은 불법(unrecht)이 아니라 초법, 특권(vorrecht)입니다.(p141)

라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라는 면에서 --- 그저 '하지 말라하니 하지 않음'의 무조건적 복종이 더 이상 민중의 의무일 수 없는, 좋은 정치, 좋은 국가를 고민하며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개·돼지일 수 없는 민중의 자발적 의무라 여기는 이들에게, 꽤 많은 생각해볼 꺼리를 안겨주는, 참으로 유익한 교양서라 생각됩니다. 넓고 얉게 아는 것도 어떤 면에선 중요할 수 있겠으나, 최소한 이 정도 깊이까지의 고민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지 않나 싶네요.

※ 함께 읽으면 유익할 책들 :

- 에티엔 드 라보에시 著자발적 복종

- 김두식 著헌법의 풍경

- 유시민 著 후불제 민주주의

- 마이클 리프·미첼 콜드웰 共著 세상을 바꾼 법정

- 손아람 作소수의견

- 모이제스 나임 著권력의 종말


  1. 심지어 저자는 "법에서 거추장한 외피를 다 벗기고 나면 최후에 남는 알멩이가 바로 강제규범이라는 성질"(p15)이라 말하고 있기도 하며, 켈젠(이란 분)은 법을 '규범적 강제질서'라 간단하게 정의하기도 하였다 합니다.
  2. 이 책을 통해 일관되게 이어지는 저자가 보는 정의(justice)는 "그 시대의 상황과 조건에서 사회구성원의 행복과 자유를 최대한 실현하는 것"(p229)입니다.
  3. "정의는 존재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영역이어서 재현(再現)이나 입증이 불가능하고, 사람마다 또 시대와 상황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기 때문"(p35)
  4. 이 때의 '누군가'에 대해 --- "다만 최강자의 힘과 권리 - 고리기아스"(p11)와 같은 조소적 표현도 있으며, "누대(累代)의 집성(集成)된 이성 - 버크"(p12)와 같은 적극적 해석도 있더군요.
  5. 이런 특성을 들어, 법은 "본질적으로 다수파와 권력친화적"(p79)일 수밖게 없고, 이는 예의 권력관계 측면에 법이 보수성을 띠게 되는 이유가 된다라 저자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뿐 아니라, "법이 사회 변화에 추수(追隨 : 뒤쫒아 따름)적이고, 지배적 질서가 형성된 후 이를 최후적으로 선언한다는 점"(p79)에서도 역시 생성적 보수성을 지니고 있다 합니다.
  6. 전문서적이 아니기에, 전문지식을 얻기 위한 독서가 아니었기에 그냥 그러려니하고 넘겼습니다만, "일반의지는 개별의사의 총합이나 다수의 의사가 아니라 전체의 의사(=구성원 공동의 이익)로 간주되는 의사이며, 그에 따르는 규범력과 힘, 정당성을 갖춘 의사"(p215)라는, 좀 다른 듯 보이는 저자의 설명이 있는 건 좀 의아합니다.
  7. "한마디로 본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바꿀 수 없는 것"(p204)
  8. "보행자와 차마의 우측통행규정은 도덕과 관련이 없고, 그 반대인 좌측통행 규정보다 결코 정의롭지도 우월하지도 않습니다."(p23)
  9. 마이클 리프 · 미첼 콜드웰 共著, 궁리 刊, 2006.
  10. "누구라도 나에게 죽음을 가져올 약품이나 방법을 청한다면, 나는 이를 거절할 것이다." - 위의 책, p24.
  11. 위의 책 p72.
  12. 위의 책 p73.
  13. 위의 책 p73.
  14. 위의 책 p73.
  15. 위의 책 p75.
  16. "죄를 짓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벌을 준다는 것"(p100)
  17. 이와 같은 법의 예방적 성격에 대해 저자는 "인간은 그 자체가 목적이며,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고 형벌 또한 다른 목적을 지향해서는 안 된다 … 형벌을 일반예방(위하)과 특별예방(재범방지)을 위한 수단으로 보게 되면 범죄자는 일벌백계를 위한 도구나 다른 사람에게 겁을 주기 위한 수단, 본보기로 전락"(p103)하게 된다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18. 사족같은 언급이긴 합니다만, 앞서에는 '일차적'이라 표기하고, 바로 뒤이어는 '2차적'이라 표기하는 등, 이 책의 편집은 전반적으로 좀 투박합니다.
  19. 데이비드 핸드 著,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더퀘스트 刊, 2016.의 감상문 중.
  20. '정의 구현'이 법을 단순한 폭력과 구별짓는 근본적 차이점이 된다라 저자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21. "국가의 본질은 무엇보다 폭력기구, 폭력의 독점체라는 데 있습니다. … 국가는 모든 사인, 단체의 폭력을 금지하는 대신 스스로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폭력을 행사합니다."(pp54-55)
  22. 법이 통용되는 학문적 근거로는 "강제설(실력설), 승인설(동의설), 정의설(정당성설)" 등이 있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본 책 pp40-44 참조.
  23. 전두환의 '정의 구현'이 일종의 사기였었던 건 바로 수단으로서의 정의가 존재하지도 않았었거니와, 이를 아예 상정조차 하도 않았었기 때문이지요.
  24.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에서 인용된 글.
  25. "이러한 법 규정은 개인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잘못된 것일까요?… 문제는 타인에게 해악을 끼치는 행위와 순전히 자신의 행복을 위한 행위를 명백히 구별하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안전띠를 미착용하는 행위는 언뜻 보면 타인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운전자 자신에게만 관련된 행위로 보이지만 안전띠 미착용으로 인해 운전자 자신이 사망하거나 더 큰 피해를 입는다면 그의 가족과 친척, 동료들이 겪을 고통과 손해는 더 커질 수밖에 없고, 각종 보험제도를 운영하는 국가 및 기업의 경제적 부담도 증가하며 결국 이는 국민과 일반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밖게 없습니다."(p119) --- 저자의 이러한 답변이, 법철학에 근거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 역시 예의 '자본주의적' 설명일 뿐이지요.
  26. "동성애, 성매매, 마약, 대마초, 도박 등 일견 피해자가 없고 달리 타인에게 해악을 끼칠 위험이 없어 보이는 행위들을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것은 이처럼 순전히 자신을 향한 행위와 타인에게 해악을 끼칠 행위의 구별이 어렵고, 두 행위가 상호 연관되어 있으며, 개인이 온전히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 어렵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입니다."(pp119-120)라 설명해주면서도, 또한 저자는 "우리 형법은 자해행위를 처벌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스스로 자기 신체를 훼손할 자유를 인정하는 마당에 … 자기 정신을 몽롱케 할 자유는 왜 인정될 수 없는지 되묻게 함으로써 자유의 소중한 가치를 새삼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p120)와 같은 애매한 견해도 함께 밝히고 있지요.
  27. "사회적·국가적 법익을 보호하기 위한 범죄는 궁극적으로 개인의 생명·자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국가공동체의 안녕·질서가 보장되지 않으면 개인의 생명·자유·재산이라는 법익도 보호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개인의 생명·자유·재산·의 보호와 직·간접적인 연관성을 가지지 못하는 사회적·국가적 범죄는 그 정당성에 상당한 의문이 제기될 수밖게 없습니다."(pp 211-212)
  28. "간통죄가 폐지된 결정적 이유는 이 법 규정이 다름 아닌 '성적 자기결정권의 자유','사생활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것이었습니다."(p224)
  29. "별 반대가 없을 것 같은 '오바마케어'에 반대하는 주된 이유도 '왜 국가가 보험계약체결의 자유를 강제하느냐','브로콜리가 몸에 좋다고 그 섭취까지 국가가 강제할 것이냐'는 것이었고"(p224)
  30. 제멋대로 하는 생각 - <네이버 국어사전>
  31.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거해야 한다는 것으로, 증거가 없으면 그러한 사실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p130)
  32. "어떤 사실의 존부가 십중팔구 확실하다는 판단이 서지 않으면 그 사실이 없었던 것으로 취급되는 불이익"(p130)
  33. 자기의 행위에 의하여 일정한 결과가 생길 것을 인식하면서 그 행위를 하는 경우의 심리 상태. - <네이버 국어사전>
  34. "위장전입으로 주민등록법을 위반했던 (물론 처벌받지는 않았음) 어느 검찰총장 후보자가 '그러고도 위장전입자를 처벌할 수 있겠느냐'는 어느 의원의 질문에 '처벌하겠다'고 답변하여 실소를 자아낸 일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법치주의는 피치자를 향한 것일 뿐, 치자(治者)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입니다."(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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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모든 것을 설명할 것이다 - 세계 최고의 지성 148명에게 물었다
존 브록만 엮음, 이충호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소위 '공부 좀 한다/했다는 사람들의 모임'쯤 되나 봅니다.1 'Edge'라는 이름의 온라인 커뮤니티란 게 말이죠. 이 책의 엮은이이자, 웹사이트 포럼인 '엣지'2의 설립자인 존 브록만에 따르면, "'엣지'에 소개되는 개념들은 사변적3인 것으로, 진화생물학, 유전학, 컴퓨터과학, 신경생리학, 심리학, 우주론, 물리학 같은 분야들의 최전선에서 일어난 발견들을 대표"(p15)한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 문과생은 저리 좀 가시고~, 쯤 되는 동네란 거죠. 암튼!!!


이 온라인 포럼은 매년 "평소에는 생각하지 않을 것을 생각하도록 자극하는 질문"(p16)의 의미를 지니는 '엣지 질문(Edge Question)'4이란 걸 선정하는데, 2012년의 '엣지 질문'이었던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심오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설명은 무엇인가?5"(p17)에 대한, 방구 좀 낀다하는 148명 지식인들의 답안을 한데 엮어 놓은 것이 바로, 자부심 만땅의 제목을 지닌 이 책 「이것이 모든 것을 설명할 것이다 ​This Explains Everything」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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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란 접미어를 지니는 모든 학문 분야, 그러니까 (순수과학 전공자들의 동의 여부를 떠나) 소위 '사회과학'이란 명칭으로 불리우는 그 어떤 학문까지를 다 포함했을 때6조차,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용어들 중 하나가 바로 '오컴의 면도날'이지요.


"어떤 사실 또는 현상에 대한 설명들 가운데 논리적으로 가장 단순한 것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원칙을 의미한다. … 동일한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개의 주장 가운데 가정이 많은 쪽을 피하라는 것이다. 가정 하나하나는 실현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는 확률을 내재하므로 가정의 수가 많아질수록 어떤 현상의 인과관계에 대한 추론이 진실일 가능성은 낮아지기 때문이다."7 - <네이버 지식백과>

"가장 좋아하는 심오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설명(deep, elegant, or beautiful explanation)"이란 질문 자체부터가, 과학사(史)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친,이라든가 현재 과학계의 가장 논쟁적인,과 같은 일말의 객관성이라도 부여받을 수 있는 내용과는 현격한 차이8를 보여주는 주관성9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이 책의 내용을 이루는, 여러 과학 분야 전문가들의 답변이란 게 크게 보아 각자 분야에 관한, 중구난방/다종다양한 것들이라 예상되어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148개의 답변들을 일반화시켜본다면 가장 넓은 분포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 이 '오컴의 면도날'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비둘기집 원리(piegonhole principle)10'가 수학의 집합론에 적용되는 방식11이라든가, "이성과 과학이 결정적인 답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신을 믿는 것이 좋을까 믿지 않는 것이 좋을까"(p346)를 묻는 '파스칼의 내기'12 등은, 한 마디로 "단순하게 만들라"(p399)라 권유하는 '오컴의 면도날' 원칙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지요. 이런 각론들 중에서도 단연!!! 

"Simple is beautiful/best"류의 흔한 경구 수준을 뛰어넘는, "<엣지>의 다른 응답자들이 자연 선택을 자신이 선호하는 심오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설명(자연 선택은 광범위한 설명 능력뿐만 아니라, 이 세 가지 속성을 다 가지고 있다)으로 꼽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p151)란 이유로 차선의 답변을 하는 수학자가 있었을 만큼, 제가 생각했던 바 이상의 '위대함'이란 위상을 지니고 있는 것은 바로 --- (한 때 꽤나 열광적 독서를 했었던, 여전히 아직 많이 남은 배움의 대상인) 다윈의 '자연 선택설'이었습니다. : "그야 당연히 다윈이다"(p29), "그야 물론 두말할 것도 없이 다윈이다"(p34) 등과 같은, 단순명료한 답변으로부터 시작되어,


"이론(theory)을 우아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는 최소한의 가정으로 많은 것을 설명하는 힘이다. 이 점에서 다윈의 자연 선택설을 다른 무엇보다 우위에 있다. … 인간이 쌓아온 지식 중에서 이렇게 적은 가정으로 그토록 많은 사실을 설명한 이론은 일찍이 없었다."(p24)

란, 진화론자인 리처드 도킨스 교수의 당연한! 설명 뿐만 아니라 --- "자연 선택은 단순하지만, 그것이 빚어내는 계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p412)란 심리학자의 선택, 그리고 "다윈의 진화론은 물리학에서 최고의 설명을 지닌 요소를 갖추고 있다. 바로 일종의 수학적 필연성이다"(p41)이란 이론물리학자의 설명을 거쳐 궁극적으로! : "다윈은 목적인13의 지배를 받는 거처럼 보이는 현상을 작용인14이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설명할 수 있는 놀랍도록 단순한 메커니즘을 발견했다."(p35)란, 극상의 찬사를 받고 있더군요. ('진화론'을 받아들이는가의 여부를 떠나, 이와 같은 '자연 선택설'에 대한 압도적인 과학계의 지지/찬사를, 기독교는 더 이상 외면/무시해서는 안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듭니다. '창조'와 '진화'는 반드시 배타적이어야만 하는 개념들이 결코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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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 분야는 물론 (전통적 의미에서의) '과학 분야'를 관통하고 있는, 현재의 시계(視界)를 보여주고 있는 책입니다. 그러하기에, 이 책 속 글들은 전반적으로 너무도 전문적이어, 148명의 저자들이 내놓은 "deep, elegant or beautibul explanation"이란 것이 과연 독자의 이해(understanding)을 관심사로 가지고 있기는 한가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는, 이건 어쩌면, 그저 식자(識者)들끼리나 나누는 일종의 "inside joke"(p411)로 오해될 수 있는 측면을 다분히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단 상호작용은 사람들의 초기 성향을 증폭시키는 경향이 있다"(p84)란 내용의 '집단 극화(Group Polarization)'를 통해, 테러리즘 현상을 설명하는 부분15이나,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 인터넷 기사 등의 본문에 달리는 첫 댓글이 지닌 방향 - 찬성조나 반대조냐 - 에 따라, 이후에 달리는 댓글들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결정되기도 하는 현상까지도 설명이 가능하다는 점이나, '대한민국의 중삐리들은 도대체 왜 검정색 삼선 zipup에 열광하는가'와 같은 문화현상까지도 포함할 수 있겠는)  ② "계층적 조직에서 모든 피고용자는 자신의 무능을 드러내는 수준까지 승진하는 경향이 있다"(p535)란 내용의 '피터의 원리'를 일반화시켜, "진화에서 계들은 적응 능력의 한계에 이를 때까지 발달하는 경향이 있다"(p536)란 주장을 펼침으로, 일견 암울하기도 한 "모든 것은 좌초하는 지점에 이를 때까지 발달한다"(p536)와  같은, 일종의 인류 미래의 종말에 관한 묵시록적 예견을 내놓는 것 등의 시사적·(엮은이의 표현대로) 사변적 내용들은, 이 책 속 내용들이 그저 뜬구름이기만한 것이 아닌, 얼마든지 우리 일상 속 대화의 주제로 올려질 수 있는 흥미로움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여기에 더불어, 일종의 보너스 격으로다가!


오로지 한자어로만 알고 있었던 '일석이조(一石二鳥)'가, 'killing two birds with one stone'란 영어 문구로도 있었다란 사실을, 그리고 --- 그 진화형으로는 "killing two pigs with one bird"16(p171)가 있다란 상식까지 알려주는, 일종의 서구 버젼 '지대넓얇'스런 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저같은 문과출신에게는 가장 적합한 이해일 듯 합니다. 바꿔 말해, 당신이 만약 생물학이나 물리학을 전공했거나 관심이 많다면, must-read book일 수도 있겠노란 거죠!





 

  1. 출판사의 설명은 --- "오늘날 세계를 움직이는 최고의 석학들이 학문적 견해와 성과를 토론하기 위해 모여드는 엣지재단(Edge Foundation Inc.)"이라 기술되어 있습니다.
  2. www.edge.org
  3. "경험에 의하지 않고 순수한 이성에 의하여 인식하고 설명하는. 또는 그런 것." - 네이버 국어사전
  4. "엣지의 올해의 질문 이벤트는 '지식의 끝에 도달하기 위해' 해마다 '올해의 질문'을 선정, 세계 최고의 지성들이 대답하고 토론하는 지식 대통합 프로젝트다." - 책 앞 안쪽 표지 중.
  5. "What is your favorite deep, elegant, or beautiful explanation?"
  6. 이 '오컴의 면도날'을 들어, 부과되는 가정의 현실성을 떠나, 그로부터 추론된 결론이 현실을 설명하고 있다면 그 가정들의 현실성 여부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란 주장을 하는 경제학자들도 있죠. 바로 이 지점에, 경제학은 '과학'이 될 수 없다란 비판이 쏟아지기도 합니다.
  7. 이 책은 '오컴의 면도날'을 "실체가 필요 이상으로 늘어나서는 안 된다. … 나머지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존재론적 가정을 적게 한 이론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pp66-67)이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8. ​"과학적 설명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사고의 경제성과 같은 일반적인 요소도 한몫을 하지만, 모든 미학적 질문과 마찬가지로 기묘한 개인적 취향이 큰 몫을 차지한다."(p81)
  9. "'우아함'은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다르다."(p127)
  10. "비둘기집 원리는 단순히 수를 세는 논증이다. 이 원리는 만약 n마리의 비둘기를 n개보다 수가 적은 상자에 집어넣으려고 한다면, 적어도 한 상자 안에는 비둘기가 2마리 이상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도 명백해 보이는 원리이지만, 아주 강력한 도구로 쓰인다."(pp326-327)
  11. "독일 수학자 게오르크 칸토어는 일종의 역비둘기집 원리를 사용해 정수의 수가 무한대인데도 불구하고 실수 전체를 정수 상자들에 모두 담는 것은 불가능함을 증명했다. 여기서 상상하기 어려운 결과가 나왔다. 바로 무한에도 여러 단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정수의 무한집합은 실수의 무한집합보다 작고, 실수의 무한집합은 또 다른 무한집합보다 작으면, 그 위에는 다시 더 큰 무한집합이 있는 식으로 우리가 그것을 세는 방법을 알 때까지 탐구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무한집합이 무한히 많이 이어진다."(p328)
  12. "기후 변화는 정말로 현대적 버전의 파스칼의 내기라 할 수 있다. 한 길을 선택할 경우, 최악의 결과는 경제를 훨씬 튼튼하게 만드는 데 그칠 것이다. 하지만 다른 길을 선택할 경우, 최악의 결과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지옥이 될 것이다. 요컨데, 기후 변화를 믿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행동할 경우, 설사 우리가 틀린 것으로 드러난다 하더라도 우리는 잘 살아갈 수 있다. … 파스칼의 내기는 단지 수학자만을 위한 것도 아니고 종교적 믿음이 강한 사람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이것은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유용한 도구이다."(p349)
  13. "많은 현상이 어떤 '목표'나 '목적' 때문에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 … 우리에게 입이 있는 것은 '먹기'위해서이다."(pp34-35)
  14. "어떤 결과를 빚어낸 과거의 현상"(p34)
  15. "테러리즘은 집단 극화가 극명하게 표출된 결과이다. 테러 행위가 개인적인 단독 행동으로 갑자기 분출되는 경우는 사실상 거의 없다. 그보다는 불만을 공유하는 단결된 사람들 사이에서 테러리스트의 충동이 높아진다. 중화시키는 영향들로부터 격리된 채 살아가다 보면, 집단 상호작용은 사회적 증폭기가 된다."(pp85-86)
  16. '앵그리 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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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법정
마이클 S. 리프.H. 미첼 콜드웰 지음, 금태섭 옮김 / 궁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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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에 관한 논의, 노예제도의 철폐, 냉전과 매카시즘, 여성의 투표권, 언론의 자유와 통제, 음란물에 대한 사회적 규제, 생명을 담보로 한 의료보험 회사의 횡포, 정신박약자의 불임시술"(p631)등, "미국은 물론 서구 사회의 근현대사에 있어서 작지만 중요한1 변화의 계기를 가져온 재판"(p631)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안락사에 관한 논의'나 '언론의 자유와 통제' 등은 현재까지도 논쟁의 대상으로 남아있습니다만 --- '노예제도의 철폐'나 '여성의 투표권', '출산의 자유'등은 더 이상 찬반의 의제조차 되지 못하는, 이미 엄연히 '반박불가한 당위'로서의 지위를 누구에게서나 인정받고 있지요. 하지만! 


"내가 세계사에서 가장 재미있게 여기는 점은 그 모든 사건이 실제로 발생했다는 것이다. 기이하기 짝이 없는 그 모든 일이 당신과 내가 살아 있는 것처럼 엄연한 현실로 존재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신기하다는 생각마저 든다."2

"지금 우리가 당연하다라 믿고 있는 것들이,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는 결코/전혀 당연하지 않은/당연할 수 없는 일이었었으며, 그처럼 '당연히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이 결국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당연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가는 과정"으로서 '역사'를 바라본다면/볼 때에라야만!3 --- 흑인은 노예로 삼아도 된다라거나, 여성에겐 투표권을 줄 수 없다라는, 심지어!!!


"사회 전체의 이익 때문에 가장 우수한 시민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일도 적지 않다. 사회가 무능력자로 차고 넘치는 것을 막고자 이미 사회에 부담이 되는 사람들에게 그보다 적은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금지된다고 할 수는 없다. 사회에 적응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자손이 범죄를 저질러 처형되거나 혹은 저능으로 말미암아 굶어죽을 때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그들의 출산을 금지하는 것이 사회에 이익이 된다.삼대가 저능으로 판명되었다면 출산을 금지할 이유는 충분하다."(pp620-621)

와 같은, 사뭇 경악스런 판결이, 지금으로부터 고작 90년여 전인 1924년,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에 의해 선고되었었다라는 (곰브리치의 표현을 빌자면, '기이하기 짝이 없는') 사실을, 오로지/그저 그 시대 사람들의 무지로 탓하기 보다는 --- '과정으로서의 역사'에 반드시 허용되어야하는, 과거의 상황과 현재의 상황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차이에 대한 '인식의 보정(補正)'이 적용되었을 때에서라야 비로소 합당한/온전한 이해가 가능해진다라는 걸 알 수 있게됩니다. 누군가는 이러한 표현으로부터, '정치는 생물'이라는 정치가들의 궤변을 떠올릴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소수의견을 판결로 이끌어내기 위한 실질적 조건은 세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지요. 국민의 법감정에 기반한 강력한 여론의 지지, 유능한 변호사, 그리고 시대의 변화. … 시대가 바뀐 거예요. 이제 소수의견이 자기 자리를 찾을 때가 된 겁니다."4

​'현재 당연한 것인, 하지만 과거의 어느 시점에선 당연히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 그러니까! 1920년이 되어서야 미국에서 여성에게도 (독립된 한 명의 개인5/국민6으로서 인정됨을 의미하는 바의) 참정권이 부여되었다거나, 2002년이 되어서야 1924년 정신박약여성에게 불임시술을 강제하는 법률에 대한 사과가 이루어졌다라는 것들과 같은 '(역사 속 일 과정으로서의) 보정7'이 가능할 수 있었던 근원인 '(과정 중 출현되었던) 변곡점8'격의 판례들을 통해 --- 사법(司法) 체계에 의한 인식의 보정9"민주주의 전통의 근본 원칙과 우리 사회의 미래"(p12)를 만들어 온 것이라, 이 책의 저자들은 주장하고/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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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와 '소수'라는 상대적인 수적 개념을 결정의 근거로 삼는 '다수결/대의 민주주의'라는 것이 기실은, 스스로의 게으름을 포장하여 가리우는, 형식논리의 단순한 산물이라 저는 생각합니다.10 더 치열하고 더 신중한 (과정을 통한) 선택이 엄연히 가능함에도, '현실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그 치열함과 신중함을 포기해 버린 지점까지만 가능하다/애초부터 가능했다​라 결론짓기 때문이지요. 극단적11인 예를 들어보자면, --- (제도로서의) '다수결/대의 민주주의'는 매우 긴급한 용무의 한 사람이 운전하고 있는 승용차보다, 별 급할 것 없는 오십 명의 승객이 탄 버스가 통행 우선권을 지녀야 한다라는 주장12을 (내적 논리의 당연한 귀결로서) 옹호하게 됩니다.13 '다수결/대의 민주주의'가 각 개인이 결정하는/한 특정 선택의 이유나 배경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주지 않는 제도14이기 때문이지요. 바로 이 점, 그러니까 '다수결/대의 민주주의'가 지니고 있지 못한 '과정에서의 치열함과 신중함'을, 이 책에 들어있는 일곱 개15의 판례에서 보게 됩니다. 이들이 지니고 있는 '치열함과 신중함'을 찬찬히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차고 넘치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라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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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사법 체계가 지니고 있는, 아니! 어쩌면 자본주의를 모토로 삼고 있는 모든 사회/국가가 근본적으로 지니게 될 수밖에 없는, 더 근본적으로는 --- '자본주의'라는 제도가 지니고 있는 무시무시한 영향력에 대한 새삼스런 놀라움을 느껴볼 수 있었다라는 점은, 역설적으로 이 책 속 판례들에 대한 진한 아쉬움을 남겨주기도 했습니다.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자본주의적 해결방식'이란 것이 인간의 생명이나 존엄성 등에 대한 판결에서조차 예외 없이 (비록 그것이 단순히 자신이 요구하는 판결을 이끌어내는 과정/도구로 이용되었다 하더라도!) 가장 핵심적 역할요구받고 있다라는 사실이, 경제학을 공부한 저에게도 여전히 아쉽고 안타까왔다라는 거죠. 예를 들어,    

안전벨트 미착용으로 3만원의 범칙금을 부과받은 것에 대한 소송을 걸었다 할 때, 안전벨트를 왜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 제기가 아닌, 범칙금의 부과가 부당하다라는 식의 변론을 펼치고, 끝내 받아낸 판결이란 게 ---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는 것은 위반/죄가 아니다16'가 아닌,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아도 범칙금을 부과할 수 없다'라는 식이라면, 이건 결국 범칙금을 내지 않게 되었다라는 결론은 동일하나, 근본적인 해결에서는 분명한 차이를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범칙금 부과가 사라졌다는 것이 곧! 안전벨트 착용이 강제사항이 아니다라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철학적/인도주의적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동일하게 철학적/인도주의적 관점을 적용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예 다른 차원인 자본주의적 해결방식을 차용해 문제를 마무리 지어버린다라는 건, 분명 --- 해당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았다라는 숙제를 여전히 우리에게 남겨준다라는 겁니다. 자본주의 이후의 또 다른 제도를 채택할 수도 있는 우리 이후의 세대들에게, 그러하기에 똑같은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예전 세대인 지금 우리들의 해결책을 보며, 예의 우리가 과거의 사람들을 향해 가지고 있는 시선인 "기이하기 짝이 없는 그 모든 일이 당신과 내가 살아 있는 것처럼 엄연한 현실로 존재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신기하다는 생각마저 든다"라는 사고(思考)를 동일하게 하게 만드는 여지를 남겨놓는다라는 점에서, 이 책 속 판례들이 스스로의 완결성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라는 점이 아쉽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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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엄청나게 긴/자세한 감상문을 작성했었습니다만, 그 마무리를 어찌해야할지란 난감함에 결국엔 이처럼 간략(--;;)한 글로 갈음하는 걸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읽고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정리하여 타인에게 읽혀지는 문장으로 이 책의 내용을 정리해내지 못하는 제 능력의 부족함은,

법에 대한 관심을 떠나,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현재'를 이해하고, 우리의 다음 세대가 살아내야 할 '미래'의 기반을 다져놓는 것을 기꺼이 '의무'로 받아들일 수 있을, 여기에 더해,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권리를 보장하려는 영속적인 의지"(p143)로서의 정의(justice)가 반드시 언젠가는 이루어져야 한다라는 것에 당신이 동의해줄 수 있다라면 --- 그대의 독서로 부디 메꾸어 달라,라는 부탁을 하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뭐 어쨌든! 대한민국의 법관들에게도 정녕, 이러한 의지를 지니고 있으리란 기대를 가지고 있어도 되는거겠죠? 







 

  1. '작지만'과 '중요한'이란 두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다분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기에, 이 책에 담겨 있는 판례들에의 평가에는 '작지만 중요한'이 아닌, 좀 더 세심한/의미 있는 문구가 선택되었어야한다라 생각합니다.
  2. 애른스트 H. 곰브리치 著, 「곰브리치 세계사」중, 비룡소 刊, 2010.
  3. 역사에 문외한이긴 하나, 역사에 관한 그간의 독서로부터 제가 가지게 된 '역사'에의 정의(definition)입니다.
  4. 손아람 作, 「소수의견」 중 p105, 들녘 刊, 2010.
  5. "남편과 아내는 한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은 남편이다."(p265) … "결혼 기간 중에는 법적으로 여성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남편에게 귀속된다. 여자들은 남편의 보호와 권위 아래에서만 활동할 수 있다."(p267) … "결혼한 부부의 대표는 남편이 될 수밖게 없었다. 재산과 가장의 권위는 남편에게만 속하는 것이었고 여성은 남편에게 종속적인 지위만을 가질 뿐이었다."(p276)
  6. "법은 항상 남성과 여성의 활동 영역과 운명을 다르게 다루어 왔다. 남성은 여성의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 여성은 그 천성과 허약함 때문에 특정한 직업에는 맞지 않는다. … 아내가 남편과 구별되는 독립된 직업과 경력을 갖는 것은 가족제도와 양립하기 어렵다. … 여성의 궁극적인 운명과 임무는 어머니와 아내로서 고귀한 임무를 충실히 다하는 것이다. 이것이 창조주의 뜻이다. … 입법부는 어떤 직업이나 직위를 남성에게만 허용하는 법률을 제정할 권한이 있다."(pp283-284)
  7. 역사를 바라보는 '인식의 보정'은 절대로 예측될 수 없는 것이지요.
  8. "the Walls came tumbling down"이란 책의 제목도 '변곡점'의 의미를 담고 있지요. - tumble down : to fall suddenly to the ground in a dramatic way.
  9. "사회가 안락사와 같이 복잡하게 얽힌 문제에 직면했을 때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방식은 종종 무력함을 드러내곤 한다. 그때마다 문제 해결을 떠맡은 사람들은 법률가였다. 의회가 나설 수 없거나 혹은 나서려고 하지 않을 때 미국인은 사법에 의지했다. 그리하여 변호사와 판사들이 국가가 당면한 가장 복잡한 딜레마를 해결하는 역할을 맡았다."(p12)
  10. 물론, '다수결/대의 민주주의' 이외의 방식은 무엇이 있느냐에 대답하는 것은 저의 능력 밖입니다.
  11. '과정'을 생략한 채, 결과만을 말했다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12. 여기에 더해, 대한민국의 '다수결/민주주의'는 --- 수적 개념에서의 효율성을 이유로 버스전용차선을 만들어 놓고 단속하면서도, 정작 한 명의 '누군가'를 위해 올림픽대로의 통행을 통제하는 것에선 '질적 효율성'을 언급하지요.
  13. 이런 식의 논리에, '양보의 미덕'이란 것까지 강요되면 --- 택시나 버스 등, 영업용 차량들은 끼어들기 좀 해도 괜찮다, 더 나아가 당연히 끼워줘야 한다라는 류의 얼토당토않는 주장들이 탄생되어버리는 겁니다.
  14. '다수결/대의 민주주의'가 견지하는 효율성은 단지/오로지 '절차적 효율성'일 뿐, '최적의 결론을 도출해는 결과면에서의 효율성'은 결코 아니지요.
  15. 마지막 장의 판례는 저자들 스스로 밝히고 있듯, 앞선 일곱 개의 치열한 판례의 반례(counter-example) 자격으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16. 다시 말해, '안전벨트 착용은 강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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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견
손아람 지음 / 들녘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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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아람의 소설 「소수의견」은 용산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소설은 용산을 떠오르게 한다. 이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다."(p440)


작가가 용산참사1를 거론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말>을 통해 그 사건의 간략한 개요2('주관성을 배제시킨 채'란 표현은 차마 쓸 수 없는) 서술을 해놓고 있기만 할 뿐. 저 역시 이 소설이 '용산'을 이야기하고 있다 알고 있었었으며, 그러한 연유로 --- 국가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한, 박근혜 정권의 답변을 '세월호'를 통해 볼 수 있었다라면, MB 정권의 답변은 다름아닌 '용산참사'일 수 밖에 없다란 생각에, 이 책을 「거짓말이다」 다음으로 펼쳐들었던 겁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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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개인은 내 관심사가 아니다. 종(種)으로서의 인간에 대해 쓴다"란 작가 스스로의 자기 소개처럼, 특정 사건에 대한 (반론적) 고찰로 보기보다는 --- "법학은 정의의 학문이다. 법률은 정의를 담고 있다"3란 문장에 대한 반론, 그리고 그 반론의 시작점이 되어야 할 그렇다면 '정의(justice)'란 과연 무엇인가란 질문에 상대되는 독자의 사고(思考)를 요구하고 있는 작품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수많은 정의(正義)에 대한 정의(定義)들 중, "정의는 각자에게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4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5이 아마도 ('용산참사'로 대표되고 있으며, 이 작품의 소재로도 다루어지고 있는) 지역 재개발과 이로 인한 철거에 적용되는 가장 적합한 정의가 되겠지요. 하지면 이 경우에도 역시나 --- 받아야 하는 편과, 주어야 하는 측의 상이한/할 수밖에 없는 '정의(justice)'는 예의 '마땅히 받아야 할 것'에 대한 계량에서의 차이6를 나타냅니다. 그 차이를 다투는 과정7에서 발생되었던 것이 '용산참사'였었으며, 또한 이 작품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아현동 재개발사업8이지요. 

계량에서의 다툼이 끝내 죽음을 가져왔다라는 것, 그리고 그 죽음이 다툼의 양 쪽에서 공히 모두 발생되었다라는 건 이제 (법적으로 보자면 '민사'의 영역일) 계량을 둘러싼 논쟁이 아닌 ('형사'의 관할일) 처벌을 둘러싼 다툼으로 영역을 이동시켜놓습니다. 이 소설 「소수의견」이 다루고 있는 부분 역시 '죽음9을 초래한 자/기관에 대한 처벌'이지요. 헌데 말입니다! --- (원래 '법'이란 게 그렇다라 할 수도 있겠으나, 무지의 영역인 법을 차치한다해도 최소한) 이 작품 속에서 보여지는 '법'이란 것이 '인간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지극히 냉정합니다. 예를 들어, 살인을 했다 하더라도 그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지나버리면, 검사는 그 살인자를 기소할 수 없게 되고, 검찰의 기소가 없기에 국가 기관에 의한 공적인 처벌은 애초부터의 존재 근거를 가질 수 없다란 식으로 말이죠. 


법전이 죽음의 경건함에 대해서는 말하거나 가르쳐주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그저 공소시효의 성립을 두고 추상적인 논리와 숫자를 다퉜다. 그게 법률가의 직무였으므로 우리에게는 거리낌이 없었다.(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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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주어진 하루마다 많은 생물들이, 많은 사람들이, 많은 사상들이, 많은 문화들이 도태된다. 그것은 멸종이고 멸종은 적자생존의 법이다. 연민은 자연의 법을 거스르는 허위인가. 나는 진화론자에게 묻는다. 그렇다면 연민은 왜 진화했는가. 그렇다면 연민은 왜 도태되지 않았는가.(p256)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한, '소수(小數)에 대한 로망'은 버려져야 하는 것이 정상적이라 생각합니다. 다수가 항상 옳다라 주장하는 건 물론 아니지만, 그렇다고 소수가 옳을 수도 있는 확률이 더 높다라 보는 것은 확실히 비합리적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이러하기에 --- '다수가 틀렸고, 소수가 옳았다'라는 상황은 뭔가 드라마틱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곤 합니다. 여기에 더해, 틀린 다수가 만약 권력을 쥐고 있는 측이었으며, 권력을 지니지 못한 소수가 옳은 것으로 밝혀지는 상황은 사뭇 희열같은 것 마저 자아내곤 하며, 예의 바로 그 점이 영화나 소설 같은 픽션이 주목하곤 하는 포인트가 되어주기도 하지요. 이 작품 「소수의견」 역시10 크게 보자면,

실재(實在)하는 권력으로서의 국가, 권력을 쥐고 있는 다수11에 맞서는 소수집단과, 기확립된 판결들로 인해 무시되어왔던 소수의견들이 이야기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쉽게 말해 --- 검사, 경찰, 건설사, 대형 로펌 등은 다 음흉하기만 하나, 무명의 변호사와 일간지 사회부 여기자 등은 모두 정의를 최우선 가치로 삼아 행동한다, 뭐 이런 설정이란 거지요. 그리고/그러나 그 설정을 전개시키는 원동력은 '연민'이외의 그 어떤 것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① "변호사의 비극은 법정에서 벌어지는 자질구레한 일들과는 상관이 없다. 어떤 가치판단도 하지 말고 한쪽의 입장을 대변해야 한다는 것. 그거야말로 법정에서 일어나는 비극의 전부다. … 나는 바라는가. 그건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나는 해야 했다"(p218)


② "나는 왜 국선변호인을 그만두지 못하는가. 국가가 나에게 월급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내가 국선변호인인 한 국가는 나에게 돈을 준다. 그건 의지와 생계 사이의 문제였다. 사람들은 그런 기로에 봉착하면 양자택일을 하는 대신, 그냥 현재를 택한다. 나머지 문제는 미래라는 관성에 내맡긴 채 삶을 굴려 내보내는 것이다."(p82)

조직 폭력단 두목의 수임 요청에 ①번처럼 고민했던 주인공이, 그리하여 결국 그 의뢰인의 무죄를 이끌어내었던12 주인공이, ②번에서처럼 스스로 '양자택일 대신 현재를 선택'한다는 다수를 따라, 자신도 (의지 대신 생계인) 현재를 선택하겠노라던 주인공이, (이 작품 속 핵심쟁점인 철거대상자 박재호씨의 살인죄 재판의 정식 변호사가 되기 위해13) 국선변호인 사직서를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이란 게 --- "나는 변호사였던 대통령의 죽음을 생각한다. 그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대통령의 죽음을 슬퍼했고 변호사의 죽음을 기억하지 못했다"(p98)이외의 이유를 보여주고 있지 못합니다.14 


소수가 다수에 저항하게 되는 이유가 명확히 적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 이외에도 --- 작가가 설정해 놓은 '다수'와 '소수'의 포지션이라는 것조차 지극히 상투적이기만 합니다. 주인공은 스스로를 "법조계의 소수자임을 주장"(p71)하지요. 학벌과 실력이 그러하고, 그러하기에 현재 국선변호사나 하고 있다란 의미15입니다. 물론 주인공의 이러한 가치관은 이내 비난16에 직면합니다만, 주인공이 그 비난에 동의했다는 것이 '소수자임'을 지워버렸다고는 보여지지 않습니다. 바로 이 점이 이 작품에 벗어내지 못한 한계이지요. 여기에 더해, 대법관 임명이 유력한 서울 법대의 중견 교수(염만섭 교수)와, 그의 제자인 역시나 엄청난 실력과 명성의 소유자인 신진 교수(이주민 교수)가 그 '소수자들'의 편에 서서 행동한다17라는 점 역시, 정녕 이 작품이 '소수의견'이라는 단어를 자신의 제목으로 삼을 수 있겠느냐라는 의문을 안겨주기에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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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어차피 과거의 사례집에 지나지 않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쌓아나가야 하는 건 과거 어느 시점에도 존재하지 않는 미래죠. 전례가 없다면 우리가 만들면 됩니다."18

결국, 이 작품은 "법학은 정의의 학문이다. 법률은 정의를 담고 있다"(법학 교과서 속) 문장에 대한 부동의(不同意)를 표하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법률이 정의를 담고 있지 못하다,란 주장의 한 예로, 작가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들고 있지요. ---  "형사절차에서 피의자나 피고인은 자신이 무죄임을 입증할 필요가 없다. 심지어 거짓말을 해도 처벌되지 않는다. 유죄의 입증책임은 오직 검사에게 있다"19 …… "심지어 피고인이 실제로 어떤 죄를 저질렀다 해도, 검사가 합리적 의심이 없을 만큼 입증을 못했다고 여겨진다면 피고인은 여전히 무죄입니다."(p397)란, 법률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이들에겐 딱히 반박할 구석을 지니지 않고 있는 듯 보여지는 이 법 구절이 소설 속 이야기에서 적용되어지는 과정을 통해 작가는 결국,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서 사실(fact)은 다르게 보이지 않는가. 중요한 것은 무엇이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보여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우리가 딛고 사는 세계에서 해석은 늘 강자들의 몫이었다. 진실의 상대성은 법률과 국가의 이름으로 오용되어왔다.(p439)

- 문학평론가 이정현이 쓴 <작품해설> 중

와 같은 해석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라 밖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 정의의 실현을 위해 분투하고 있는 자신(을 포함한 여러 인물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해 온 재개발 조합을 향해 "정의의 진짜 적은 불의가 아니라 무지와 무능이다. 역사를 통틀어 그래 왔다"(p383)란 식의 재단(裁斷)20을 해버리는 주인공의 시각은 예의, '소수'라 스스로를 지칭하는 이들이 크게는 대한민국 사회 전체, 작게는 법조계의 경계선 바깥 쪽의 이들을 향해 지니고 있는 선민의식을 은연중에 보여주는 것  이외에는 (적어도 저는) 설명해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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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아들을 폭행하는 상황에서, 경찰 한 명을 둔기로 폭행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죄로 기소된 박재호는, 자신이 폭행한 경찰 역시 사망하에 되자 '특수공무방해치사죄'로 국가에 의해 기소됩니다. 이런 상황 자체 - 자신의 아들이 죽었고, 자신 역시 살인죄로 기소되어 수감된 상황 - 를 이해하지 못하고 분노하는 박재호를 향한 주인공의 애초 시각은 "피고인들의 검사에 대한 분노를 직면한 게 처음은 아니다. 나는 그게 두려움이라는 감정의 양가적 형상이라고 생각해왔다. 그 분노는 꼭 검사를 항한 게 아닌지도 모른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만이 모든 책임을 지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p40)이었더랬습니다. 그러다 나중엔,


저라면 몇 년이고 매달릴 겁니다. 이 사건은 판결까지 가야 해요. 1심에서 안 되면 고등법원, 대법원, 헌법재판소까지 두드려야 합니다. 이 사건의 판결이 법대 교과서에 실려서, 100년 동안 국가과 그 대리인의 오명이 낙인찍히도록 해야 돼요. 만일 패소한다면 판사의 이름까지도 말입니다. 그들의 자식들이 법을 공부할 때는 아버지처럼 살지 말라고 배우게 될 겁니다. 그게 박재호 씨가 그 사람들에게 내릴 수 있는 유일한 징벌입니다. 멈추지 마세요. 누군가 박살이 날 때 까지.(p244)

와 같은, 역사적 의의까지를 박재호에게 요구하는 것으로 변화하지요. --- "그 어떤 창조적인 상상력으로도 현실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유감이다"(pp437-438)란 작가의 <말>이, 이 작품을 통해 어떠한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를 작가가 원하고 있는가를 알아채는 건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아주 당연한 결론으로의 이해이어야 하니까 말이죠. 하지만!!!

 

   
 

"진공상태이던 우주를 불법들이 가득 채워버렸다면

사소한 불법 하나를 이 세계에 보태봐야

불법의 총량에는 거의 변화가 없을 것이다."(p68)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위와 같은 (주인공의) 인식이, 소설의 비교적 초반부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이 작품에 대한 저의 기대치가 급격하게 떨어졌었으며 끝내 회복되지 않았었기에 --- "그 어떤 창조적인 상상력으로도 현실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유감이다"란 작가의 <말>에, 작가의 창조적인 상상력이 아직 따라잡지 못하는 것은 (대상으로서는 애매하기만 한 개념인) '현실'이 아니라, (명확한 적대적 대상으로서의) 권력/다수의 창조적 상상력이란 반박을 답변으로 내놓게 됩니다. 


당신은 대한민국이 마음에 드는가? … 대한민국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둘 있다. 하나는 다른 국적을 취득하는 것이다. … 다른 하나는 내 마음에 들도록 국가를 바꾸는 길이다. 다른 국적을 취득한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한국인이 이 길을 걸었다.21

자신의 작은 불법엔 선뜻 면죄부를 안겨 주는 주인공에게 과연, 정의(justice)를 위한 타인의 투쟁을 독려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인지에서부터, 작가와 저의 생각은 달랐었다라 생각합니다. 정의의 적이 무지와 무능이기도 하겠으나, 역시 정의의 진짜 적은 '정의를 해치는 것'으로 정의(定義)되는 불의 그 자체가 맞지 않을까요? 무지와 무능을 제거한 자들은 '국적을 바꾸는 길'을 선택하겠으나, 불의를 없애려는 자들은 예의 '국가를 바꾸는 길'을 선택하게 될 테이까요. 



 

  1. "사람들은 이 사건을 '용산참사'라고 불렀다" - 유시민 著, 「국가란 무엇인가」중 p20, 돌베개 刊, 2011.
  2. "2009년, 경찰은 서울시 용산구의 재개발사업 부지를 점거한 지역 세입자들을 진압했다. 화재가 일어났다. 여섯 명이 사망했다. 검찰은 현장을 살아남아 빠져나온 세입자들을 기소했다. 화재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죽은 자들의 몸은 부검되었고, 산 자들의 몸은 철창에 던져졌다. 산 자들은 실형을 선고받았다."(p437)
  3. 이상수 著, 「교양법학 강의」 중 p17, 필맥 刊, 2010.
  4. 유시민, 위의 책 p223.
  5. "정의에 관한 법철학자들의 논란이 많이 있었지만, 그 큰 줄기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서의 정의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 이상수, 위의 책 중 p21.
  6. "이주 보상금은 턱이 없었죠. 거기엔 권리금이 포함되지 않았소."(p64)
  7. 사실 '철거에 따른 적절한 보상'이란 것이 화폐로 환산된 계량의 문제로 이해하는 것에도 전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일정 반경 이내에서 동일한 거주/상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주는 보상'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정의(justice)를 적용시킨다면 이것이 죽음까지 불러와야하는 문제가 될 수는 없으니까요. 허나! 이러한 정의(justice)가 '용산참사'에서 적용되어질 수 없었던 건 '권리금'이라는, 법이 포용해낼 수 없는 부분이 존재했었기 때문이라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양 쪽 중 어느 한 쪽에만 비난을 퍼부을 수 없는 참 애매한 결과가 초래되었다 생각합니다.
  8. 작가는 "사건은 실화가 아니다"라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9. 철거대상자의 죽음과 경찰의 죽음.
  10. "나에게 박재호 사건은 음모가 도사리는 것이 아니라 음모가 도사여야만 하는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p132) …… "검찰은 이제 처벌 이상을 원했다. 그들은 처단을 원하고 있었다."(p206) --- 이런 상황과 서술을 이끌어내는 것 역시, 이 작품을 향해 '이건 정말 소설!'이란, 문학적 규정의 의미로서가 아닌 '소설임'을 말할 수밖에 없도록 만듭니다.
  11. '권력을 쥐고 있는 다수'와 '다수이기에 권력을 쥐고 있는 집단'이라는 개념은 엄연히 다른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 이 작품 속에서 그러하며, 현실에서도 그러한, '서울 법대 출신의 판사, 검사, 변호사'가 대한민국 법조계의 다수와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라는 특정 상황에 대해서는 '권력을 쥐고 있는 다수'와 '다수이기에 권력을 쥐고 있는 집단'이란 수식어는, 굳이 그 둘을 구분하지 않아도 될만큼 공히 적용될 수 있겠지요.
  12. "나는 거짓말을 요구했다. 추악한 계략을 짰다. 그러면 이길 수 있었다. 나는 배웠다. 내 스승은 검찰이다."(p224)
  13. 주인공은 국선변호인이고, 국선변호인의 고용주는 국가입니다. 국선변호인은 국가가 지정해주는 사건만을 담당할 수 있다고 소설 속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14. 작가는 책의 말미에 있는 <부록>의 표지에 "우리는 개인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시대와 역사를 사는 것이다"란 '전 대한민국 대통령이자 변호사였던 노무현'의 한 마디를 적어놓고 있습니다만, 이는 예의 뒷수습과도 같은 합리화일 뿐, 이야기의 전개 와중에서는 주인공의 선택/변화를 충분히 설득력있게 설명해 주고 있는 부분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전적으로 제 독해력의 부족함으로부터 기인될 수 있음을 미리 고백합니다.
  15. "내가 어쩌다 이 법정까지 흘러왔는가. 그건 신념이라기보다는, 한발 뒤쳐진 능력과 경력과 학력의 복잡한 상호작용 속에서 탄생한 예상치 못한 우연이었다. 모든 위대한 역사가 그렇게 탄생한다고 해도, 나는 생을 통해 체화시킨 뿌리 깊은 겸손과 열등감을 쉽게 버릴 수가 없었다."(pp260-261)
  16. 자신을 '법조계의 소수자'라 주장하는 주인공에게, 이준형 기자는 사회 전체적으로 보아 당신은 결코 소수자일 수 없다라 반박합니다.
  17. 경찰의 무차별적 긴급체포권 발동으로 이주민 교수가 철거현장에서 체포됩니다. 이에 이주민 교수의 스승인 염만섭 교수가 직접 법무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를 하자, 곧 이주민 교수를 비롯한 연행 전원이 훈방되지요. 이에 대해 이주민 교수는 "사법체계란 게 이렇게 움직이네요. 천 명의 군중도 움직이지 못한 바위가 그렇게 전화 한 통으로 굴러가더군요. 법이 졌습니다. 절망적인 밤이군요."(p155)라 탄식하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법무부 장관에서 전화 한 통으로 항의하고 상황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에게 '소수의 편'이란 수식어를 가져다 놓는 것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18. 야먀다 무네키 作, 「백년법」 하권 중 p350, 애플북스 刊, 2014.
  19. 이상수, 위의 책 p379.
  20. "나는 적어도 이들이 가진 피해의식의 진정성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이들은 단지 한 세기 전의 사고방식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자신들의 지지정당이 자신들의 이권을 대변하지 않느다는 사실을 판단할 능력도 안 되는 사람들. 자기 아들이, 또 자기 손자가 희생되지 않는 한 현존하는 세계의 실제 모습을 회의해보지도 못하고 눈을 감을 사람들. 그들을 탓할 수는 없다. 그들 역시 피해자였다."(p247)
  21. 유시민, 위의 책 p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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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다
김탁환 지음 / 북스피어 / 201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세월호 침몰에 관한 소설입니다. --- ① 세월호의 침몰에 대한 여러가지의 음모론들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지요. '침몰 이전'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고의로 침몰했다느니, 국정원이 어찌어찌 관련되어 있다느니 등 말이죠. 하지만! 이 소설은 오로지 '침몰 이후'에 대하여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1 작가 스스로 "조금이라도 의문스러운 점들은 모두 배제하고 썼다"2라 밝혔을 만큼, '침몰 이후'의 정황들에 대한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실제들이 담겨 있는 이야기란 거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② 이 작품의 저자는 작가이고, 그러하기에 이 것은 소설이며, 기자가 작성한 기사가 아닙니다. 이 점은 세월호 사건을 이해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되기도 하며, 또한 명확한 한계를 스스로 지니고 있다3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제목 「거짓말이다」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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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와 소문 】

세월호가 침몰된 4월 16일 이후, 4월 18일까지 선내로 진입하여 구조를 하려는 시도는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이론과 실제가 항상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의 예상 준거로서의 이론은 "정조(停潮)가 유지되는 1시간 정도는 잠수가 가능 … 72시간이면 열두 번의 정조기가 있으니, 계산상으로는 12시간 잠수하여 선내 진입을 시도할 수 있"( p20)다라 보여짐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의 시도도 없었다4는 거지요.

500여 명의 잠수사가 동원된 "사상 최대의 구조 작전'(p41)이 펼쳐지고 있다는 언론의 기사는, 그 중 심해 잠수가 가능한 잠수사가 고작 8명 뿐이었다라는 사실은 말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런 언론에게 "5월 6일까지 바지선엔 의사가 없었습니다. … 바디팩5은 제가 바지선에서 철수한 7월 10일까지도 잠수사들에게 제공되지 않았습니다."(pp132-133)라는 말도 안 되는 현실까지를 보도해주길 바라는 것은 허황된 기대일 뿐이었겠지요.

4월 21일, 처음으로 맹골수도에 투입된 민간 잠수사들의 임무는 당연히 구조가 아닌 수습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 "우리나라 잠수사 중에서 시신 수습에 익숙한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린 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산업 잠수사니까요"(p22)에서도 알 수 있듯, 그들 역시 "들어가서 실종자들과 맞닥뜨렸을 때, 제 마음이 어떨지 가늠이 되지 않았습니다"(p49)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었거늘, 의사도 채임버도 바디팩도 없는 현장은 그러한 그들의 두려움을 보다듬어 주지 못했던 겁니다.

"포옹이란 단어가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 하나의 공간, 그곳으로 가서 여러분은 사망한 실종자를 안고 나오는 거지. … 앞으로도 가장 단순한 이 방법이 바뀔 가능성은 없다."(pp33-34) …… "포옹을 준비하고 포옹을 하고 포옹을 마친 뒤, 떠오르는 상념을 해결하는 것 역시 고스란히 잠수사의 몫입니다. 누가 이 듣도 보도 못한 포옹으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를 함께 나누겠습니까."(p34)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 그들은 '모르는 편이 낫다'는 소문들6에 휩싸이게 됩니다. 수습한 시신을 물 밑에 모아두었다가 범대위의 요청이 있을 때 모시고 나온다라든가, 시신 한 구당 5백만원의 수당이 걸려있다라든가, 수당 지급이 미뤄지고 있어 잠수사들이 선내 진입을 거부하고 있다7라든가, 심지어는 "돈 벌려고 간 겁니다. 간단해요"(p23)과 같은 그야말로 '간단한 재단(裁斷)'을 당하고 말지요. 작가 김탁환은 언론의 기사가, 시중의 소문들에 대해 우선 "거짓말이다"라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허나, 작가 김탁환이 말하고자 하는 더 큰 '거짓말'은 바로 :

​【 2014년의 대한민국은 국가로서 작동하였던가 】

"누구가 애국자가 되기를 원하지만, 그렇다고 애국하기 위해서 무제한적 위험을 감수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도 잊으면 안 된다."

- 유시민 著, 「후불제 민주주의」중 pp101-102, 돌배게 刊, 2009.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로 시작되는 대한민국 헌법 제 10조는, 적어도 당시 맹골수도의 민간 잠수사들에겐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소설 속 나경수 잠수사의 "선내 진입을 민간 잠수사와 해경 잠수사가 번갈아 맡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민간 잠수사가 전담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잠수할 때마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숙지했더라면, 민간 잠수사들이 과연 맹골수도로 모일 수 있었을까요?"(pp100-101)라는 물음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국하기 위해 무제한적 위험을 감수하는 건 아니다'란 우리의 일반적 생각은, 그것이 애국인지 아닌지 가늠해볼 겨를조차 허락되지 않는 급박한 상황 하의 그들에겐 작동되지 않았더랬습니다.

"우리 마음은 하나였습니다. 비상 상황이니 지금은 무리를 해서라도 작업하자."(p101)

​물론, 위와 같은 민간 잠수사의 증언이란 것이, 흔히 보여지는 소설 속 선의(善意)의 장치일 수도 있습니다. 결과론적으로 지어내어진 과거의 미화일 여지도 얼마든지 가지고 있다란 거지요. 실제로도 그러할 수 있다라는 것까지 반박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설정이 --- 그들이 그러한 각오를 가질 수 있었던 믿음인 "혹시 몸과 마음에 문제가 생기면 나라에서 치료해 주겠지!"(p101)라는 전제 조건의 불이행을 이야기하기 위함이라면, 민간 잠수사들의 선의 여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되지 못합니다.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라는 국가의 의무란 게 특정 전제 조건 하에서만 성립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잠수사도 인간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에요. 그들을 존중했다면, 잠수병이 얼마나 무서운지 안다면, 절대로 그딴 식으로 맹골수도에 내려가라곤 못 합니다. 우선 말리고, 금지 명령을 내리고, 그래도 말 안 들으면 바지선에서 쫒아 버리든가 가두기라도 했어야 합니다."(pp203-240)

한 개인이, 혹은 일군의 개인들이 급박한 위기 상황하에서, 무제한적 위험8을 감수하고서라도 국가에 대한 의무/인간에 대한 사랑을 발현하겠노라9, 심지어 그것이 이성을 잃은 행동으로 나타나려 할 때, 이를 제지하고 말려야 할 기관인 국가의 역할도 없었으며 심지어 --- "이 나라에선 2014년 12월 31일에 치료비 지원을 중단"(p206)해버리지요. (이와 관련하여, 작품 속의 공무원은 관련법이 바뀌어 일어난 일이라 해명하고 있기는 합니다.)

"급할 땐 데려다 위험한 일 다 시켜 먹고 그 와중에 병들거나 다치면​ 나 몰라라 하니, 어느 누가 이 나라를 위해 나서겠습니까?(pp207-208) …… "잠수사들이 마음으로 한 일을 정부는 법으로 판단10한 겁니다. 이 나라는 마음이 없습니까."(pp224-225)

"장관은 장관답지 못했고 해경은 해경답지 못했고 기자는 기자답지 못했"(p281)던 대한민국, 민간 잠수사들을 "아무렇게나 쓰고 버려도 무방한 존재"(p328)로 취급했던 대한민국은 끝내 --- "이 나라를 믿고 침몰한 배에서 실종자를 수습한 것이 정말 잘못이었을까요"(p317)란 자조 섞인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민간 잠수사들을 향해 이 대한민국은 "국가를 위해 봉사한 국민을 버리지 않는다는 현 정부의 원칙은 확고합니다"(p274)라 스스럼 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작가 김탁환은 이 소설을 통해 대답하지요.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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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고급스런 WHY 시리즈"로 읽혀졌었던 조정래 작가의 「정글만리」는, 예의 이 소설 「거짓말이다」를 펼치는 순간 저에게 동일한 주의를 떠올려주었더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이 책은 소설이며, 오로지 소설로만 읽여햐 한다"란 작가 김훈의 '일러두기'11는, 기자가 아닌 작가가 써 낸, 그러하기에 어찌되었든 '한 편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이 작품, 「거짓말이다」를 읽고 쓰는 감상문에는 적용해낼 수가 없었음을 털어놓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세우고 모든 종류의 위험에서 시민을 보호하며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게 행동하는 국가가 훌륭한 국가라고 생각"12한다는 유시민의 국가관은, 2014년 그 시점 이후의 대한민국을 향해 "뜨겁게 읽고 차갑게 분노하라"(p389)라는 김탁환의 조언 앞에선 결국 할 말을 잃고말 뿐.

※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단상들 :

- 유시민 著 「국가란 무엇인가」

- 유시민 著 「후불제 민주주의

- 김훈 作 「남한산성

- 김훈 作 「칼의 노래

- 권여선 作 「레가토

- 한강 作 「소년이 온다

- 류전원 作 「1942년을 돌아보다

  1. 작가는 소설 속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세월호 참사에 관한 세 가지의 조사, 즉 '침몰원인, 구조 방기, 진상 은폐'(p309)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구조 방기'와 그 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요.
  2. 2016.09.07. 일산의 서점 <미스터 버티고>에서 있었던 김탁환 작가의 강연회 중.
  3. 담고 있는 주제를 떼어버린다면 과연 오로지 문학작품으로서의 평가가 어떠할 것인가란 의문이 바로 그러한 한계이자, 또한 그 한계를 이겨내는 독특한 역할을 하고 있다라 생각합니다.
  4. "16일 배가 침몰한 뒤부터 18일까지 잠수사가 선내에 진입하여 구조 작전을 편 적은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p41)
  5. "선내에거 실종자를 발견한 후 함정까지 옮겨 모시는 과정을 그려 보십시오. 민간 잠수사가 실종자를 꽉 끌어안은 채 좁고 혼탁한 객실과 복도와 계단을 지나 선체 밖으로 나옵니다. … 이렇게 실종자를 품고 들고 밀며 옮기기 때문에, 이 과정에 참여한 이들은 실종자의 참혹한 모습을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 맡고 귀로 듣고 살갗을 만질 수밖에 없습니다. … 정신적 충격 또한 엄청납니다. 실종자를 수습한 날엔 민간 잠수사도 해경 잠수사도, 단정으로 시신을 올린 해경까지 모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 바디팩만 있다면, 민간 잠수사가 선내에서 실종자를 발견하자마자 그 안에 모실 수 있습니다. … 여러 번 건의했지만 바디팩은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바디팩 삼백 개도 주지 못할 만큼 이 나라가 가난한가 그런 생각도 솔직히 했습니다."(pp133-134)
  6. "정말 소문들을 알고 싶습니까? 때론 모르는 편이 낫기도 합니다."(p159)
  7. "선내 진입을 못 하는 상황을 사실대로 전한 이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말들은 들끓고 글들은 흘러 넘쳤죠."(p61)​
  8. "맹골수도의 조류가 빠르다는 건 잠수사의 몸이 날린다는 뜻입니다.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듯 수평으로 흔들리는 것이죠. 줄을 쥐지 않으면 그대로 조류에 쓸려 버릴 정도입니다. 안간힘을 쓰며 버티다 보면, 어깨 근육이 찢어지거나 척추를 상할 위험이 큽니다."(p103)
  9. "우리는 징집 대상이 아닙니다. 법 때문이 아니라 돕겠다는 마음으로 간 겁니다. 그 차가운 바닷속에서 숨진 이들을, 시신이라도 찾아 가족 품에 돌려주고 싶다는 마음, 그 작업을 마침 내가 할 수 있으니 돕겠다는 마음, 내 몸이 힘들더라도 조금 더 빨리 실종자를 찾겠다는 마음!"(pp224-225)
  10. "다른 사건들의 치료 기간과 비용을 이번 참사의 경우와 비교, 검토했습니다."(p273) … "잠수사는 특별법에서 정한 '피해자'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각종 지원을 받지 못한 겁니다. '피해자'에서 잠수사가 빠진 이유는 제 소관 업무가 아니라서 모르겠습니다."(p276) … "치료중인 환자인 것은 맞지만 과연 잠수사들이 장애인인가 하는 건 따로 검토할 문제입니다.(pp276-277) … "모든 잠수사가 완치될 때까지 정부가 치료비 전액을 부담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상론을 펴면 안 된다는 겁니다. 나쁜 선례를 만드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치료비 지원은 앞서 말씀드린 '형평성'과 '적절성'을 고려하여 결정될 겁니다."(p277) … "맹골수도에서 심신을 다쳐 가며 실종자 수색과 스습을 위해 노력한 민간 잠수사들을 저도 개인적으로 존경합니다만, 치료비 지원은 개인의 존경심과는 별도로 법에 따라 엄격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습니다."(p279) - 작품 속 등장하는 관련 공무원의 발언들.
  11. 김훈 作, 「남한산성」의 '일러두기' 1번. 학고재 刊, 2007.
  12. 유시민 著, 「국가란 무엇인가」중 p9, 돌베개 刊,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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