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공부 좀 한다/했다는 사람들의 모임'쯤 되나 봅니다. 'Edge'라는 이름의 온라인 커뮤니티란 게 말이죠. 이 책의 엮은이이자, 웹사이트 포럼인 '엣지'의 설립자인 존 브록만에 따르면, "'엣지'에 소개되는 개념들은 사변적인 것으로, 진화생물학, 유전학, 컴퓨터과학, 신경생리학, 심리학, 우주론, 물리학 같은 분야들의 최전선에서 일어난 발견들을 대표"(p15)한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 문과생은 저리 좀 가시고~, 쯤 되는 동네란 거죠. 암튼!!!
이 온라인 포럼은 매년 "평소에는 생각하지 않을 것을 생각하도록 자극하는 질문"(p16)의 의미를 지니는 '엣지 질문(Edge Question)'이란 걸 선정하는데, 2012년의 '엣지 질문'이었던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심오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설명은 무엇인가?"(p17)에 대한, 방구 좀 낀다하는 148명 지식인들의 답안을 한데 엮어 놓은 것이 바로, 자부심 만땅의 제목을 지닌 이 책 「이것이 모든 것을 설명할 것이다 This Explains Everything」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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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란 접미어를 지니는 모든 학문 분야, 그러니까 (순수과학 전공자들의 동의 여부를 떠나) 소위 '사회과학'이란 명칭으로 불리우는 그 어떤 학문까지를 다 포함했을 때조차,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용어들 중 하나가 바로 '오컴의 면도날'이지요.
"어떤 사실 또는 현상에 대한 설명들 가운데 논리적으로 가장 단순한 것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원칙을 의미한다. … 동일한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개의 주장 가운데 가정이 많은 쪽을 피하라는 것이다. 가정 하나하나는 실현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는 확률을 내재하므로 가정의 수가 많아질수록 어떤 현상의 인과관계에 대한 추론이 진실일 가능성은 낮아지기 때문이다." - <네이버 지식백과>
"가장 좋아하는 심오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설명(deep, elegant, or beautiful explanation)"이란 질문 자체부터가, 과학사(史)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친,이라든가 현재 과학계의 가장 논쟁적인,과 같은 일말의 객관성이라도 부여받을 수 있는 내용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여주는 주관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이 책의 내용을 이루는, 여러 과학 분야 전문가들의 답변이란 게 크게 보아 각자 분야에 관한, 중구난방/다종다양한 것들이라 예상되어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148개의 답변들을 일반화시켜본다면 가장 넓은 분포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 이 '오컴의 면도날'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비둘기집 원리(piegonhole principle)'가 수학의 집합론에 적용되는 방식이라든가, "이성과 과학이 결정적인 답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신을 믿는 것이 좋을까 믿지 않는 것이 좋을까"(p346)를 묻는 '파스칼의 내기' 등은, 한 마디로 "단순하게 만들라"(p399)라 권유하는 '오컴의 면도날' 원칙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지요. 이런 각론들 중에서도 단연!!!
"Simple is beautiful/best"류의 흔한 경구 수준을 뛰어넘는, "<엣지>의 다른 응답자들이 자연 선택을 자신이 선호하는 심오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설명(자연 선택은 광범위한 설명 능력뿐만 아니라, 이 세 가지 속성을 다 가지고 있다)으로 꼽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p151)란 이유로 차선의 답변을 하는 수학자가 있었을 만큼, 제가 생각했던 바 이상의 '위대함'이란 위상을 지니고 있는 것은 바로 --- (한 때 꽤나 열광적 독서를 했었던, 여전히 아직 많이 남은 배움의 대상인) 다윈의 '자연 선택설'이었습니다. : "그야 당연히 다윈이다"(p29), "그야 물론 두말할 것도 없이 다윈이다"(p34) 등과 같은, 단순명료한 답변으로부터 시작되어,
"이론(theory)을 우아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는 최소한의 가정으로 많은 것을 설명하는 힘이다. 이 점에서 다윈의 자연 선택설을 다른 무엇보다 우위에 있다. … 인간이 쌓아온 지식 중에서 이렇게 적은 가정으로 그토록 많은 사실을 설명한 이론은 일찍이 없었다."(p24)
란, 진화론자인 리처드 도킨스 교수의 당연한! 설명 뿐만 아니라 --- "자연 선택은 단순하지만, 그것이 빚어내는 계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p412)란 심리학자의 선택, 그리고 "다윈의 진화론은 물리학에서 최고의 설명을 지닌 요소를 갖추고 있다. 바로 일종의 수학적 필연성이다"(p41)이란 이론물리학자의 설명을 거쳐 궁극적으로! : "다윈은 목적인의 지배를 받는 거처럼 보이는 현상을 작용인이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설명할 수 있는 놀랍도록 단순한 메커니즘을 발견했다."(p35)란, 극상의 찬사를 받고 있더군요. ('진화론'을 받아들이는가의 여부를 떠나, 이와 같은 '자연 선택설'에 대한 압도적인 과학계의 지지/찬사를, 기독교는 더 이상 외면/무시해서는 안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듭니다. '창조'와 '진화'는 반드시 배타적이어야만 하는 개념들이 결코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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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 분야는 물론 (전통적 의미에서의) '과학 분야'를 관통하고 있는, 현재의 시계(視界)를 보여주고 있는 책입니다. 그러하기에, 이 책 속 글들은 전반적으로 너무도 전문적이어, 148명의 저자들이 내놓은 "deep, elegant or beautibul explanation"이란 것이 과연 독자의 이해(understanding)을 관심사로 가지고 있기는 한가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는, 이건 어쩌면, 그저 식자(識者)들끼리나 나누는 일종의 "inside joke"(p411)로 오해될 수 있는 측면을 다분히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① "집단 상호작용은 사람들의 초기 성향을 증폭시키는 경향이 있다"(p84)란 내용의 '집단 극화(Group Polarization)'를 통해, 테러리즘 현상을 설명하는 부분이나,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 인터넷 기사 등의 본문에 달리는 첫 댓글이 지닌 방향 - 찬성조나 반대조냐 - 에 따라, 이후에 달리는 댓글들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결정되기도 하는 현상까지도 설명이 가능하다는 점이나, '대한민국의 중삐리들은 도대체 왜 검정색 삼선 zipup에 열광하는가'와 같은 문화현상까지도 포함할 수 있겠는) ② "계층적 조직에서 모든 피고용자는 자신의 무능을 드러내는 수준까지 승진하는 경향이 있다"(p535)란 내용의 '피터의 원리'를 일반화시켜, "진화에서 계들은 적응 능력의 한계에 이를 때까지 발달하는 경향이 있다"(p536)란 주장을 펼침으로, 일견 암울하기도 한 "모든 것은 좌초하는 지점에 이를 때까지 발달한다"(p536)와 같은, 일종의 인류 미래의 종말에 관한 묵시록적 예견을 내놓는 것 등의 시사적·(엮은이의 표현대로) 사변적 내용들은, 이 책 속 내용들이 그저 뜬구름이기만한 것이 아닌, 얼마든지 우리 일상 속 대화의 주제로 올려질 수 있는 흥미로움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여기에 더불어, 일종의 보너스 격으로다가!
오로지 한자어로만 알고 있었던 '일석이조(一石二鳥)'가, 'killing two birds with one stone'란 영어 문구로도 있었다란 사실을, 그리고 --- 그 진화형으로는 "killing two pigs with one bird"(p171)가 있다란 상식까지 알려주는, 일종의 서구 버젼 '지대넓얇'스런 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저같은 문과출신에게는 가장 적합한 이해일 듯 합니다. 바꿔 말해, 당신이 만약 생물학이나 물리학을 전공했거나 관심이 많다면, must-read book일 수도 있겠노란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