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법정
마이클 S. 리프.H. 미첼 콜드웰 지음, 금태섭 옮김 / 궁리 / 200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안락사에 관한 논의, 노예제도의 철폐, 냉전과 매카시즘, 여성의 투표권, 언론의 자유와 통제, 음란물에 대한 사회적 규제, 생명을 담보로 한 의료보험 회사의 횡포, 정신박약자의 불임시술"(p631)등, "미국은 물론 서구 사회의 근현대사에 있어서 작지만 중요한1 변화의 계기를 가져온 재판"(p631)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안락사에 관한 논의'나 '언론의 자유와 통제' 등은 현재까지도 논쟁의 대상으로 남아있습니다만 --- '노예제도의 철폐'나 '여성의 투표권', '출산의 자유'등은 더 이상 찬반의 의제조차 되지 못하는, 이미 엄연히 '반박불가한 당위'로서의 지위를 누구에게서나 인정받고 있지요. 하지만! 


"내가 세계사에서 가장 재미있게 여기는 점은 그 모든 사건이 실제로 발생했다는 것이다. 기이하기 짝이 없는 그 모든 일이 당신과 내가 살아 있는 것처럼 엄연한 현실로 존재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신기하다는 생각마저 든다."2

"지금 우리가 당연하다라 믿고 있는 것들이,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는 결코/전혀 당연하지 않은/당연할 수 없는 일이었었으며, 그처럼 '당연히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이 결국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당연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가는 과정"으로서 '역사'를 바라본다면/볼 때에라야만!3 --- 흑인은 노예로 삼아도 된다라거나, 여성에겐 투표권을 줄 수 없다라는, 심지어!!!


"사회 전체의 이익 때문에 가장 우수한 시민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일도 적지 않다. 사회가 무능력자로 차고 넘치는 것을 막고자 이미 사회에 부담이 되는 사람들에게 그보다 적은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금지된다고 할 수는 없다. 사회에 적응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자손이 범죄를 저질러 처형되거나 혹은 저능으로 말미암아 굶어죽을 때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그들의 출산을 금지하는 것이 사회에 이익이 된다.삼대가 저능으로 판명되었다면 출산을 금지할 이유는 충분하다."(pp620-621)

와 같은, 사뭇 경악스런 판결이, 지금으로부터 고작 90년여 전인 1924년,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에 의해 선고되었었다라는 (곰브리치의 표현을 빌자면, '기이하기 짝이 없는') 사실을, 오로지/그저 그 시대 사람들의 무지로 탓하기 보다는 --- '과정으로서의 역사'에 반드시 허용되어야하는, 과거의 상황과 현재의 상황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차이에 대한 '인식의 보정(補正)'이 적용되었을 때에서라야 비로소 합당한/온전한 이해가 가능해진다라는 걸 알 수 있게됩니다. 누군가는 이러한 표현으로부터, '정치는 생물'이라는 정치가들의 궤변을 떠올릴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소수의견을 판결로 이끌어내기 위한 실질적 조건은 세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지요. 국민의 법감정에 기반한 강력한 여론의 지지, 유능한 변호사, 그리고 시대의 변화. … 시대가 바뀐 거예요. 이제 소수의견이 자기 자리를 찾을 때가 된 겁니다."4

​'현재 당연한 것인, 하지만 과거의 어느 시점에선 당연히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 그러니까! 1920년이 되어서야 미국에서 여성에게도 (독립된 한 명의 개인5/국민6으로서 인정됨을 의미하는 바의) 참정권이 부여되었다거나, 2002년이 되어서야 1924년 정신박약여성에게 불임시술을 강제하는 법률에 대한 사과가 이루어졌다라는 것들과 같은 '(역사 속 일 과정으로서의) 보정7'이 가능할 수 있었던 근원인 '(과정 중 출현되었던) 변곡점8'격의 판례들을 통해 --- 사법(司法) 체계에 의한 인식의 보정9"민주주의 전통의 근본 원칙과 우리 사회의 미래"(p12)를 만들어 온 것이라, 이 책의 저자들은 주장하고/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

'다수'와 '소수'라는 상대적인 수적 개념을 결정의 근거로 삼는 '다수결/대의 민주주의'라는 것이 기실은, 스스로의 게으름을 포장하여 가리우는, 형식논리의 단순한 산물이라 저는 생각합니다.10 더 치열하고 더 신중한 (과정을 통한) 선택이 엄연히 가능함에도, '현실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그 치열함과 신중함을 포기해 버린 지점까지만 가능하다/애초부터 가능했다​라 결론짓기 때문이지요. 극단적11인 예를 들어보자면, --- (제도로서의) '다수결/대의 민주주의'는 매우 긴급한 용무의 한 사람이 운전하고 있는 승용차보다, 별 급할 것 없는 오십 명의 승객이 탄 버스가 통행 우선권을 지녀야 한다라는 주장12을 (내적 논리의 당연한 귀결로서) 옹호하게 됩니다.13 '다수결/대의 민주주의'가 각 개인이 결정하는/한 특정 선택의 이유나 배경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주지 않는 제도14이기 때문이지요. 바로 이 점, 그러니까 '다수결/대의 민주주의'가 지니고 있지 못한 '과정에서의 치열함과 신중함'을, 이 책에 들어있는 일곱 개15의 판례에서 보게 됩니다. 이들이 지니고 있는 '치열함과 신중함'을 찬찬히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차고 넘치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라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

·

·

미국의 사법 체계가 지니고 있는, 아니! 어쩌면 자본주의를 모토로 삼고 있는 모든 사회/국가가 근본적으로 지니게 될 수밖에 없는, 더 근본적으로는 --- '자본주의'라는 제도가 지니고 있는 무시무시한 영향력에 대한 새삼스런 놀라움을 느껴볼 수 있었다라는 점은, 역설적으로 이 책 속 판례들에 대한 진한 아쉬움을 남겨주기도 했습니다.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자본주의적 해결방식'이란 것이 인간의 생명이나 존엄성 등에 대한 판결에서조차 예외 없이 (비록 그것이 단순히 자신이 요구하는 판결을 이끌어내는 과정/도구로 이용되었다 하더라도!) 가장 핵심적 역할요구받고 있다라는 사실이, 경제학을 공부한 저에게도 여전히 아쉽고 안타까왔다라는 거죠. 예를 들어,    

안전벨트 미착용으로 3만원의 범칙금을 부과받은 것에 대한 소송을 걸었다 할 때, 안전벨트를 왜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 제기가 아닌, 범칙금의 부과가 부당하다라는 식의 변론을 펼치고, 끝내 받아낸 판결이란 게 ---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는 것은 위반/죄가 아니다16'가 아닌,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아도 범칙금을 부과할 수 없다'라는 식이라면, 이건 결국 범칙금을 내지 않게 되었다라는 결론은 동일하나, 근본적인 해결에서는 분명한 차이를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범칙금 부과가 사라졌다는 것이 곧! 안전벨트 착용이 강제사항이 아니다라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철학적/인도주의적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동일하게 철학적/인도주의적 관점을 적용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예 다른 차원인 자본주의적 해결방식을 차용해 문제를 마무리 지어버린다라는 건, 분명 --- 해당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았다라는 숙제를 여전히 우리에게 남겨준다라는 겁니다. 자본주의 이후의 또 다른 제도를 채택할 수도 있는 우리 이후의 세대들에게, 그러하기에 똑같은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예전 세대인 지금 우리들의 해결책을 보며, 예의 우리가 과거의 사람들을 향해 가지고 있는 시선인 "기이하기 짝이 없는 그 모든 일이 당신과 내가 살아 있는 것처럼 엄연한 현실로 존재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신기하다는 생각마저 든다"라는 사고(思考)를 동일하게 하게 만드는 여지를 남겨놓는다라는 점에서, 이 책 속 판례들이 스스로의 완결성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라는 점이 아쉽다는 것이지요.

…………………………………………………………………………



사실! 엄청나게 긴/자세한 감상문을 작성했었습니다만, 그 마무리를 어찌해야할지란 난감함에 결국엔 이처럼 간략(--;;)한 글로 갈음하는 걸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읽고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정리하여 타인에게 읽혀지는 문장으로 이 책의 내용을 정리해내지 못하는 제 능력의 부족함은,

법에 대한 관심을 떠나,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현재'를 이해하고, 우리의 다음 세대가 살아내야 할 '미래'의 기반을 다져놓는 것을 기꺼이 '의무'로 받아들일 수 있을, 여기에 더해,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권리를 보장하려는 영속적인 의지"(p143)로서의 정의(justice)가 반드시 언젠가는 이루어져야 한다라는 것에 당신이 동의해줄 수 있다라면 --- 그대의 독서로 부디 메꾸어 달라,라는 부탁을 하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뭐 어쨌든! 대한민국의 법관들에게도 정녕, 이러한 의지를 지니고 있으리란 기대를 가지고 있어도 되는거겠죠? 







 

  1. '작지만'과 '중요한'이란 두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다분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기에, 이 책에 담겨 있는 판례들에의 평가에는 '작지만 중요한'이 아닌, 좀 더 세심한/의미 있는 문구가 선택되었어야한다라 생각합니다.
  2. 애른스트 H. 곰브리치 著, 「곰브리치 세계사」중, 비룡소 刊, 2010.
  3. 역사에 문외한이긴 하나, 역사에 관한 그간의 독서로부터 제가 가지게 된 '역사'에의 정의(definition)입니다.
  4. 손아람 作, 「소수의견」 중 p105, 들녘 刊, 2010.
  5. "남편과 아내는 한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은 남편이다."(p265) … "결혼 기간 중에는 법적으로 여성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남편에게 귀속된다. 여자들은 남편의 보호와 권위 아래에서만 활동할 수 있다."(p267) … "결혼한 부부의 대표는 남편이 될 수밖게 없었다. 재산과 가장의 권위는 남편에게만 속하는 것이었고 여성은 남편에게 종속적인 지위만을 가질 뿐이었다."(p276)
  6. "법은 항상 남성과 여성의 활동 영역과 운명을 다르게 다루어 왔다. 남성은 여성의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 여성은 그 천성과 허약함 때문에 특정한 직업에는 맞지 않는다. … 아내가 남편과 구별되는 독립된 직업과 경력을 갖는 것은 가족제도와 양립하기 어렵다. … 여성의 궁극적인 운명과 임무는 어머니와 아내로서 고귀한 임무를 충실히 다하는 것이다. 이것이 창조주의 뜻이다. … 입법부는 어떤 직업이나 직위를 남성에게만 허용하는 법률을 제정할 권한이 있다."(pp283-284)
  7. 역사를 바라보는 '인식의 보정'은 절대로 예측될 수 없는 것이지요.
  8. "the Walls came tumbling down"이란 책의 제목도 '변곡점'의 의미를 담고 있지요. - tumble down : to fall suddenly to the ground in a dramatic way.
  9. "사회가 안락사와 같이 복잡하게 얽힌 문제에 직면했을 때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방식은 종종 무력함을 드러내곤 한다. 그때마다 문제 해결을 떠맡은 사람들은 법률가였다. 의회가 나설 수 없거나 혹은 나서려고 하지 않을 때 미국인은 사법에 의지했다. 그리하여 변호사와 판사들이 국가가 당면한 가장 복잡한 딜레마를 해결하는 역할을 맡았다."(p12)
  10. 물론, '다수결/대의 민주주의' 이외의 방식은 무엇이 있느냐에 대답하는 것은 저의 능력 밖입니다.
  11. '과정'을 생략한 채, 결과만을 말했다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12. 여기에 더해, 대한민국의 '다수결/민주주의'는 --- 수적 개념에서의 효율성을 이유로 버스전용차선을 만들어 놓고 단속하면서도, 정작 한 명의 '누군가'를 위해 올림픽대로의 통행을 통제하는 것에선 '질적 효율성'을 언급하지요.
  13. 이런 식의 논리에, '양보의 미덕'이란 것까지 강요되면 --- 택시나 버스 등, 영업용 차량들은 끼어들기 좀 해도 괜찮다, 더 나아가 당연히 끼워줘야 한다라는 류의 얼토당토않는 주장들이 탄생되어버리는 겁니다.
  14. '다수결/대의 민주주의'가 견지하는 효율성은 단지/오로지 '절차적 효율성'일 뿐, '최적의 결론을 도출해는 결과면에서의 효율성'은 결코 아니지요.
  15. 마지막 장의 판례는 저자들 스스로 밝히고 있듯, 앞선 일곱 개의 치열한 판례의 반례(counter-example) 자격으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16. 다시 말해, '안전벨트 착용은 강제할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