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이가든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 #1 : <남기한 엘리트 만들기>란 웹툰을 기억합니다. 어른의 정신과 경험, 지식 등을 그대로 가지고 초등학생의 몸으로 변하게 된다는 스토리였었죠. 검색해 보니, 지금은 유료로 전환되어 다시볼 수가 없는데, 암튼 --- 초딩 불량배들(?)에게 '눈알을 빼서 삶아먹고, 내장을 빼서 곱창 볶음 만들어버릴까~'란 류의 욕을 하는 남기한, 그리고 그런 욕을 처음 들어본 초딩 불량배들의 얼빠진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정신은 어른인 남기한에게 그런 류의 욕은 딱히 심한 것이 아니었었었건만, 그 시절의 초딩들에겐 무지막지한 충격이었던 거죠.

​■ #2 : 이번엔 현실 속 실제 이야기입니다. '박한상'이란 놈이 있었었지요. 돈 많은 집의 장남인데, 머리는 아주 꼴통이었나 봅니다. 암튼 이 자식 결국,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자기 차지가 될 부모님의 재산에 환장해 부모를 죽였었지요. 그렇게 그 녀석은 (이것 역시 정확한 건 아닌데) 제 기억에, '최초의 존속패륜 사건'의 주인공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게 됩니다. 당시, 대한민국의 충격을 실로 대단했던 것이었었죠. 세상 말조라는 둥의 탄식이 이어졌었었거늘, 다행히도(?) --- 아직도 세상의 종말을 실현되지 않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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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살아 있다거나 죽었다고 느끼는 건 어느 한 순간이야. 그냥 평범하게 살아 있거나 죽어 있다가, 어느 날 불현듯 아, 내가 살았구나, 아, 참, 내가 죽었지, 이런 생각이 든다구. (p110) - <문득,> 중

분명 시간은 연속적으로 흘러가고 있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 또한 100%에 가까운 '거의 모두'가 그렇게 연속적/점진적으로 진행되어가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제 밤, 잠자리에 들 때엔 분명 없었던 눈가의 주름이, 이마 위 앞쪽의 흰 머리가, 오늘 아침 눈을 떠 보니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라는 거지요. 허나! --- 몇 달만에 의식적으로 관찰(?)해본 내 아내의 눈가와 저의 이마 위 앞쪽엔 주름과 흰 머리가 보였을 때, 우리의 입에선, 너무도 자연스레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지?'란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바로 지금!


2017년 9월 14일 오후의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살아내고 있는 이 세상,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지금 이 모습도 또한, 그처럼, 우리가 의식적으로 관찰하지 않았/못했었을 뿐,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연속적/점진적으로 변화되어 온 결과인 겁니다. 박한상이란 꼴통 새끼의 패륜이 1994년엔 실로 놀라운 충격이었었으나, 그 이후 현재까지 이 땅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존속 살인은, 우리들로 하여금 이제 더 이상 그것을 이유로 '세상 말조'란 말을 하지는 않게 만들어 주었지요. 이 단어가 적합한지는 자신 없으나 암튼, --- 그렇게 우리는 이 세상이 변해가는 것이 '익숙'해져 온겁니다.


제 기억에, 일본의 사회 문제라는 '이지메'가 우리나라에 소개(?)되었고, 그로부터 '왕따'라는 현상이 카피되었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보니, 대한민국 부산이란 곳에서, 또한 강릉이란 곳에서 나타난, 그 (2017년 현재의 기준에서 보아) '극한'의 현시(顯示)는 우리로 하여금 기어이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란 표현을 끄집어내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허나! --- 1994년 박한상의 패륜이 2017년의 기준으로 보아 더 이상은 '세상 말조'의 징조가 될 수 없듯이, 앞으로 25년 여후, 어디선가 진짜로, '눈알을 빼서 삶아먹고, 내장을 빼서 곱창 볶음 만들어버릴까~'란 욕을 당당히! 현시(顯示)해 보이는 중삐리들이 나타날 수도 있다라는, '에이, 그래도 그건 절대 안그럴꺼야'란 말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다,가 정답이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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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을 참지 못하는 날이면 담뱃불을 가져다가 가슴팍에 댔다. 담뱃불이 타는 동안 신경의 통증을 잊을 수 있었다. … 노인이 생각해낸 치료는 통증이 오면 통증을 잊을 만큼 큰 자극을 주는 게 다였다. (p173) - <서쪽 숲> 중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있다 하여, 나의 불행이 덜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만, 더 불행한 경우를 들려줌으로써 나의 불행에 대한 자위(自慰)를 권면하는 수준인 것이 우리가 주고/받을 수 있는 위로 대부분의 수준인 것이 또한 현실입니다. - 예를 들어, 경제적 곤궁함에 대한 위로로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과 그의 가족들이 지금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류의 사뭇 어처구니 없는 비교가 거론된다거나, 조선시대 임금님도 못드셔본 음식을 드시고 계신 거라는, 시계열을 깡그리 무시한 단순무식의 사기(詐欺)성 위로 등이 그러하지요. - 같은,

타인과의 비교가 아닌, 자신 스스로의 아픔을 이겨내는 일 방편으로서 애용되는 --- 운전중 오른발의 발바닥이 간지럽다면, 입술을 깨문다라든가, 연인과의 헤어짐에 마음(심장)이 아려와, 진탕 마신 술로 또 다른 속(위장)을 괴롭힌다라든가 등의 닮은 꼴로,


​"소설은 위안을 줄 수 없다.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 함께 느끼고 있다고, 우리는 함께 존재하고 있다고 써서 보여줄 뿐."

- 성석제, 「투명인간」의 <작가의 말> p370, 창비, 2014.

마치, 이로부터 12년 후인 2017년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해, 미리 예방주사라도 맞으라는 듯, 2005년 써내었던 이 불편한 소설들, 뭐 권말의 <해설>에 말하듯, 2005년에는, 어쩌면 '아오지 탄광'의 말장난도 누군가는 했었을 법도 한, 그렇게 대략 "하드고어 원더랜드"였었을 꺼라 짐작되는 이 소설들은, 작가 편혜영의 예상(?)이 너무도 정확히도 들어맞은 것처럼, --- 2017년의 독자인 저에게는 딱히 '하드'하지도 않았고, '고어'스럽지도 않게 느껴졌다라는, 그저, 아주 가끔식, 분필과 칠판 간 매우 특별하며 특정한 각도에서만 들을 수 있었던 그 '끼이익' 소리처럼, 단지 '불편함'만이 느꼈졌었을 뿐이라는 느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감상만이 남습니다.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뭐랄까...

이 소설들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이제까지 살아왔었었거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2005년부터 2017년 지금까지 제가 경험해왔던 그 수많은 '현실'이란 게, 저를 이렇게 성숙(?)하게 해주었으며, 뭔가 이 현실에 대한 일종의 프리퀄인 듯, 이제서야 읽어보는 편혜영의 소설들로부터, 사뭇, 나가는 길을 완벽하게 외우고 있는 상태에서 미로의 입구에 들어섰을 때의 안도감같은 걸 느꼈었다라고나 할까요?  아, 참!


이 소설집에 담겨 있는 모든 소설들이,

후각을 매우 중요시하게 다룬다라는 점은 매우 매우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전, 

향기에 매우 매우 약한 남자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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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으로 보는 세계사 강의 - 화해와 배신, 강압과 화합이 만든 결정적 순간들
함규진 지음 / 제3의공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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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간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라는 말이 있다. … 부족한 생활 자원을 보충하기 위해 싸우고, 이미 넉넉하지만 더 넉넉해지기 위해 싸우고, 어떤 경우에는 그저 일상의 따분함을 달래기 위해, 또는 내부의 불화를 밖으로 돌리기 위해 싸웠다. … 그러나 전쟁의 역사 이면에는 다른 역사도 있다. 싸움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대화와 타협, 그리고 약속으로 해결했던 역사, 곧 조약의 역사다. (p7)

한 마디로 인간의 역사를 싸움과 화해의 과정으로 본다라는 것이며, 이 책의 부제인 "화해와 배신, 강압과 화합이 만든 결정적 순간들"이 의미하는 바, 그러한 싸움과 화해가 - 주로 '화해'의 경우이겠지만 - 어떠한 과정을 거쳐, 어떠한 결과로, 어떻게 합의되어 문서로 남게 되었는지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바로, 이 책 「조약으로 보는 세계사 강의」의 내용입니다.1

'조약(treaty)'2이란 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제일 간략하게 핵심만 말하자면 조약이란 결국 "국가 사이의 약속"(p461)이라 책은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이걸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자세하게 보자면 --- ① '국가'간에 이루어지는 약속이라는 점, ② 그 약속은 1:1 간의 약속뿐 아니라 다자간 약속일 수도 있다라는 점, 그리고 ③ 그 약속은 상충하는 이기심들이 낳은 결과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라는 점 등을, 이 책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주요한 포인트로 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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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가 뭔데? 】

​'조약'에 관한 협약이라는 <빈 협약>에 따르면, 조약은 "국가 간에 맺는 것이다. … 국가로서 승인받지 못한 국제법상의 '교전단체'도 조약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p109)라 합니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대한민국 사람에겐 공통적으로 딱~하고 떠오르는 게 있지요. 바로 '북한'! --- "대한민국은 북한을 국가로 공식 인정하지 않으며, 북한 역시 마찬가지"(pp464~465)인 상황이 지속되는 한, 남과 북 사이의 그 어떠한 형태의 '약속'은, 말이 약속이지 그 어떤 (국제)법적 구속력을 가질 수 없는 겁니다.3  따라서,

지난 2,000년 체결된 <남북한 경제협력 합의서>는 '조약'이 아닌 (명칭에서부터도 이미 단지) '합의서'일 뿐입니다만,  당시 남과 북은 이 '합의서'를 지킬 의사가 매우 강력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양측에서 모두 (굳이 필요한 절차가 아니었던) 국회의 비준 절차까지를 모두 거쳤었지요. 그렇게 해 탄생했던 개성공단은, 그럭저럭, 암튼 어찌해서든 계속 유지는 되어왔었습니다만, 북한의 4차 핵실험을 계기(?)로 2016년 2월, 당시의 대통령이었던 박근혜에 의한 '대통령령'의 발효와 함께 전격적으로 폐쇄됩니다. 여기에 어떤 재미있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느냐 하면,

(다시 한 번, 빈 협약에 따르면) "조약과 맞지 않는 국내법으로 그 조약의 이행을 부정할 수 없다"(p110)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국내법보다도 하위법인 '대통령령'으로 <남북한 경제협력 합의서>를 가볍게(?) 어길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약속'이 '조약'이 아닌, 엄밀하게 말해, "어느 한쪽에서 이를 어긴다해도 정치적 부담을 질지언정 국제법적 배상 부담은 없는"(p465) 단순한 '합의서'였다라는 점을 남한 정부가 이용하였다라는 점이지요. 게다가,

 

제 아무리 박근혜가 개판을 치고 사라졌다 해도, 그리하여 일각에서 다시 개성공단을 재개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해도, 그러한 주장 역시 현실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주장일 수밖에 없는 이유란 게 --- 당시 박근혜 정부의 "외교적 노력의 결실"4(p467)로 이루어졌던 UN 안보리 2321 결의안이 '납득할 만한 개선이 있기 이전의 대북 경제협력 금지'를 명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UN 안보리 결의안은 국제법적 효력을 갖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이 결의안은 대한민국에서는 <남북한 경제협력 합의서>보다 상위법으로 인정되며, 북한이 '납득할 만한 개선', 즉 북핵 포기나 인권 상화을 대폭 개선하기 전에는 대한민국 정부의 의지만으로 대북 경협을 재개하기에는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p467)   

정리해 보자면, <합의서>는 조약이 아니기 때문에 '대통령령'으로도 간단히 어길 수 있는 것이고, <UN 안보리 결의안>은 국내법보다 상위인 국제법이기 때문에 어길 수가 없다5라는 것이죠.6 이처럼 --- '조약'이란 건, '약속'의 상대가 누구냐인지에 따라 그 이행과 파기가 정당화될 수도 있는, 아주 요상한(?) 약속이다라는 첫 번째 배움입니다.



【 나도 끼워주면 안되겠니? 】

대체적으로, '뭉치면 살 수 있다'라는 정신은 국제 사회에서도 통용되고 있는 듯 보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항에 대한 약속의 요구인지라 거부의 의사를 밝혔으나, 그 약속에 한두 나라가 아닌 은근 많은 나라들이 뜻을 모으게 되면 뭔가 나도 모르게, 그 조약에 참가하지 않는다라는 게 좀 불안하기도 하고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겠죠. 1875년에 체결되었던 <미터 조약(Convention of Meter)>이 규정한 미터법에 여전히 동참하고 있지 않는 나라인 미국도, 차마 미터법을 법제화하지는 않았지만 '합법화'는 해주었다라는 게 그 일례가 될 수 있겠죠.7 이와는 반대로,


나를 끼워주지 않은, 그런데 꼭 끼고 싶은 조약도 있을 수 있을 겁니다. <북대서양조약(NATO : The North Atlantic Treaty)>은, 한 마디로 '우리끼리 뭉쳐서, 우리들 중 누구 하나한테 덤비는 놈이 있으면 다 같이 패준다'라는 약속이지요. 몸이 허약하고 싸움을 못하는 국가에겐 정말 가입하고 싶은 조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NATO는, 조약의 이름에도 나와 있듯, 소련을 제외한 유럽의 국가들이 맺은 조약임에도, 이상하게 그 주동자이자 대장은 또 미국이었습니다. 소련이라는 힘 센 국가를 상대하려면, 우리 쪽에서 힘 센 대장이 있어야 하는 이유에서였지요. 암튼!


NATO가 결성되고 난 후, 북대서양에서 한참이나 먼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납니다. 소련이 그 전쟁에 개입하고 있는 것이 거의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NATO가 한국 전쟁에 나설 명분은 없지요. 바로 이 때! --- 한국 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도와주었던 터키를 일컬어 '형제 국가'였던가 하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에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최소한) 반대는 하지 않습니다.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까요. 헌데 말입니다, 그러한 고마움을 베풀어 주었던 이유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


터키가 1만 5천 명, 그리스가 1만여 명의 병력을 한국에 파병해 미국, 영국, 캐나다에 뒤이은 대규모 파병 국가가 된 저변에는 나토 회원국이 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 그 대가였는지 한국전쟁에서 수백 명의 전사자를 낸 두 나라는 1952년에 마침내 첫 추가 나토 회원국이 되었다. (p268) 

물론, 좋은 건 좋은 것이지만, 또한 좋은 것이라 해서 다 좋기만한 건 아니라는, 사뭇 냉정/치열/잔인한 국제 사회의 역학 관계의 현실이, 이 책이 제게 준 두 번째 배움이었습니다. 뭐 이런 냉정/치열/잔인함이란 게 비단 국가간에만 존재하는 건 아니겠지요?



【 티격태격 】

'발목 지뢰'는 일부러 밟은 사람의 발목만 날려 버리도록 폭발력이 억제되어 있는데, 그것은 부상당한 전우를 두 사람 이상이 옮기느라 그만큼 가용 전력을 줄어들게 만들려는 의도다.(pp220~221)

이걸 두고, 인간에 대한 인간의 최소한의 예의라 표현해야 할까요, 아님 극한의 잔인함이라 해야 할까요? 국가간 전쟁이 발발하게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어떠한 이유도, 전쟁에서의 승패를 떠나 그것이 낳는 참담한 결과에 대한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겠거늘, 그 전쟁을 차마 끊을 수 없겠는 인류는 기어이 "전쟁 자체를 없애려는 게 아니라, 전쟁을 최대한 덜 비참하게 만들려는 협약"(p206)까지 맺어가며 전쟁을 할 수도 있다라는 의지를 거둬들이지 않고 있지요.


언제 나의 적(enemy)이 될지 모르는 누군가와 '약속'을 맺는다라는 건, 그러하기에 이기적인 둘 또는 여럿의 밀고 당기기라는 지난한 과정을 겪고 나서야 탄생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너의 이기심과 나의 이기심'이 한데 뭉쳐, '우리의 이기심'이 되기도 하지요. 요즘 들어, 우리나라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핵확산금지조약>도 그런 이기심의 한 예입니다.8 그 조약은 바로,


기존의 모든 무기를 '재래식'으로 만들어버린 이 놀라운 무기를 어떻게든 우리 손에 넣어야 한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이 갖는 일은 막아야 한다! 우리의 안보 우위가 무너질뿐더러 세계가 위험에 처하게 되기 때문에. (p299)

이 좋은(!) 건, 걍 우리만 가지고 있자,라는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겠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기 때문이지요. <핵확산금지조약>의 골자란 게 결국엔 "기존 핵보유국의 핵 보유는 인정하되 더 이상의 핵 확산은 금지하고, 핵보유국은 순차적으로 핵군축을 (위해 노력)한다"(p301)라는, 이 살벌한 국제 사회에서의 이기심이, 새삼스럽지 않은 세 번째 배움이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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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을 놓고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기독교 문명국이 할 짓이 아니라는 주장과 영국인과 영국의 재산이 위협을 당하고 있는데 두고만 볼 수 없다는 주장이 맞섰다. 결국 1840년 4월 10일에 의회는 271대 262로 파병을 승인했다. 이로써 1840년 5월, 16척의 군함(보조함까지 총 44척)과 4,000명의 병력이 중국으로 출발했다. (p150)

​영국과 청나라 간 '아편전쟁'이란 게, 왕/여왕이 '가서 아작내고 돈 좀 뜯어내라!'라 명령을 내려 시작되었던 건 아니더군요. 엄연히 법에 규정되어 있는 절차를 거친 결정이었던 겁니다. 암튼, 그때 딱 4명의 선택만 바뀌었더라도, 세계의 역사는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수 있었었던, 이처럼 어떤 '약속'을 도출해내기 위한 협상 과정에서의 티격태격은 국가 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그 중요성은 국내/국가 간을 가리지 않는다라는 걸 또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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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이 책에서 설명해주고 있는 <한중 어업협정>의 불완전성을 알고 나면, 서해 중국 어선들의 불법 어획을 그저 '짜장들의 무식함'이라고만 욕할 수도 없지 않나,하는 생각을 해보게도 됩니다. 또한, 개인 간뿐만이 아니라 국가 간의 신의는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에 "조약이란 일시적 약속이고 임시적 방편일 뿐이며, 각자의 이익에 따라 끊임없이 싸우고 속이고 빼앗는 것이야말로 불변하는 국제사회의 현실"(p9)이라는 지적은 참으로 옳은 것이다라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 당신이 2015년의 <한일 위안부 협정>은 파기되어야 한다라 주장하고 싶다라면, 이 책을 통해 어떠어떠한 근거로 그 파기를 주장할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기도 합니다.

특정 분야를 통해 역사를 바라보는, 제가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 구조의 책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 일단 이 책은 재미있습니다. 무엇보다 그 내용이 그러하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저자의 서술 또한 '물 흐르듯하다'라는 표현의 전형적 예로 추천하고 싶을만큼 자연스럽고 쉽게, 인류의 지난 시절들을 설명해 주고 있지요. 다만, 담고 있는 내용의 방대함이 부담감을 준다라는 아쉬움이, 「조약으로 보는 세계사 강의」라는 제목이 좀 이상한, '보는'과 '강의'라는 단어 간의 매칭이 심히 어색하지 않나란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 역사를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전공할 사람은 더더욱 못되며, 전문가적 지식을 독학으로라도 쌓겠다라는 의지마저 없는 저에겐, 이렇게 한 번 배워놓고, 앞으로 관련된 내용이 화제거리가 될 때마다 펼쳐 다시 보게 될 것이 틀림 없는 책이기는 합니다. 사놓은지 오래된, 이와 비슷한 구조의 역사책을 조만간 펼치게 하는 계기가 되어줄 듯도...


...금연 144일째 




 

 



 

  1. "이 책에는 모두 68개의 조약 이야기가 실려 있다."(p11)
  2. "조약은 전통적으로 agreement, convention, covenant, pact 등으로 불렸으며 이는 다시 협약, 협정, 합의 등으로 번역되면서 의미상의 혼란을 주기도 했다. … 빈 협약 이후로는 그 명칭에 상관없이 모두 조약(treaty)으로 동일한 국제법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p10)
  3. "남북한이 서로를 국가로 정식 승인하지 않고 있는 한, 남북한 사이의 '기본 합의서'나 '불가침 협정'은 원칙적으로 조약의 구속력을 가질 수 없다."(p109)
  4. 이 책의 저자는 이 구절에 작은 따옴표 표시를 해놓고 있습니다.
  5. 여차저차하면 어찌해서든 개성공단을 재개할 수도 있겠으나, 아무래도 그건 좀 무리다,라 저자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6.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 문제에 있어 이러한 법적인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의 정치 수준이라 저자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 기조가 바뀜은 물론이고 과거에 자신들이 추진했던 정책조차 여야 입장이 바뀌면 거부 대상으로 삼는 일까지 벌어졌다. 꾸준하고 내실 있는 대북 정책이 자리 잡기 어려웠던 이유다."(p328)
  7. "미국은 1866년에 미터법을 법제화한 것이 아니라 '합법화'하는 데 그쳤다. 야드-파운드를 미터-킬로그램으로 대체하지는 않되 미터법을 개인적으로 쓰는 일을 법으로 막지는 않겠다는 뜻이었다."(p170)
  8. <핵확산금지조약> 뿐만 아니라, 이후의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 또한 이기심의 극명한 예이지요. pp311~31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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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서 길어 올린 한식 이야기 식사 食史
황광해 지음 / 하빌리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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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까지만 해도, 이 블로그는 식당에서 찍은 음식사진들로 가득했었답니다. 외식이 잦다보니 그렇게 사진을 찍을 기회도 따라 많았었기에 시작했었었거늘, 어느 순간부턴 사진을 찍기 위해 외식을 하게되더군요. 그게 싫었고, 때마침 카메라도 맛탱이가 가고 하는 시점이 겹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블로그에 올리는 글의 내용이 바뀌게 되었었죠. 그때에도 그랬으며, 지금은 더더욱, 음식을 만들줄 모르는 사람인 건 변함이 없고, 음식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것도 여전하며, 딱히 그런 지식을 알고 싶어하는 마음도 없어왔습니다만, --- 이 책에 대한 소개의 글을 보는 순간, '술자리에서 안주에 대한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정도의 장착에는 도움이 되겠다싶어 받아 펼쳐 읽었었고, 그 속엔,  


당면(唐麵)은 녹말가루로 만든 국수다. 우리는 중국을 '호' 혹은 '당'으로 불렀다. '호'는 청나라, 오랑캐 등 부정적인 면이 강하고 '당'은 긍정적인 냄새가 강하다. 호빵, 호떡은 오랑캐, 청나라 산이라는 느낌이 강하고 당면은 긍정적인 '중국산'이라는 느낌을 준다. 당면은 1910년대 중국에서 건너왔다. (p169) …… 당면은 일본인들이 만든 공장 대량 생산 간장과 더불어 잡채에 스며든다. '당면잡채'다. 궁중음식도, 우리 음식도 아니다. 나라가 망하고 난 후에 들어온 식재료, 당면이 주인 노릇을 하는 당면잡채는 한식의 아름다움을 살린 음식이 아니다. 채소 맛으로 먹어야 할 잡채가 당면과 조미료, 감미료 범벅의 간장 맛으로 먹는 음식이 되었다. (p170) …… '궁중잡채'는 코미디다. 당면은 국권침탈 후 한반도에 등장한다. (p285)

​술자리에서 아는 척 한두 번 정도 할 수 있는 지식 뿐만이 아닌, 술자리에서의 이야기 정도로 그칠 수는 없겠는 내용들도 또한 들어 있더군요. 이 책의 저자인 황광해의 이러한 주장을 딱히 반박할 만한 지식이 없는 저로서는 이것을 사실이라 받아들일 수 밖에 없고, 그러다보면 소위 말하는 '비싼 한정식집'에선 당면잡채를 내놓으면 안되는 것일텐데~하는 생각을 해보게도 됩니다. 그러니까 --- 제목부터가 '식사(食事)가 아닌 '식사(食史)'인 이 책엔, 음식에 관심이 좀 있는 분들 뿐 아니라, 음식을 업()으로 하는 분들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좁고 깊은' 지식도 들어 있다는 것이죠.  


"'당면잡채'는 1910~1930년대 시작된 음식이다. 조선의 궁중에는 있었을 리 없다."(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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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에, 저자 황광해의 초점은,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몰랐던 것을 새로이 알게 되는 것보다는, 잘못 알고 있어왔던 것들을 제대로 알게되는 것에 맞추어져 있어 보입니다. 예를 들어 김치를 '우리 고유의 음식'이라 말하는 것은 틀렸다라는 저자의 주장이 그러하지요.1 "김치의 주요 요소인 배주, 무, 고추는 모두 외부에서 전래한 것"(p164)인데 김치가 우리 '고유'의 음식일 수가 없다라는 겁니다. 저자는 --- 김치는 우리의 '전통적'인 음식이고, 같은 발효음식인 자차이나 쯔께모노와 차별되는 점은 다름아닌 "끊임없는 변화, 발전"(p164)이라는 의견을 개진합니다.


여름철 회자되곤 하는 "보양식으로 민어가 일품, 닭이 이품, 개가 삼품이라는 말도 엉터리다. 근거가 없다"(p78)라 단언하는 저자는, 또한 "개고기는 일상적으로 먹는 상식(尙食)"(p78)이었으며, 한식에는 딱히 보양식 같은 게 없다고 알려줍니다. '밴댕에 속알딱지'란 표현으로, '속이 좁은 것'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밴댕이에 대해서도, 그 작은 생선이 속이 좁고 자시고할 게 뭐가 있느냐며, 밴댕이는 단지 "속이 약한 것"(p136)이어, 내장이 빠르게 상하고 따라서 산지로부터 멀리 운반되지 못하고, 그러니 고급 음식인 횟감이 되지 못하여 사람들로부터 괄시받게 된 것이라는, 술자리 안주에서 나누어질 수 있는 넒고 얕은 지식들도 이 책 속엔 들어 있습니다. 또한,

조선 시대엔 소의 도축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었다라는 점2도, 저는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었으며, 그러한 엄격한 제한으로 인해 --- "조선 후기, '명절이 되면 갑자기 절름발이 소가 늘어난다'는 풍자가 떠돈다. 농사 못 짓는 소는 도축해도 괜찮으니 갑자기 절뚝거리는 소가 늘어난 것이다"(p72)와 같은 '선조의 지혜'엔 뭔가 애잔한 웃음이 지어지기도 하지요. 이 책 속엔 뭐 이처럼, 지식의 수정(correction)과 전달(delivery)만 있는 건 아닙니다.


'영계백숙'의 한자어가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영계'란 단어가 '어린 닭'을 의미한다해도 설마 이 때의 '영'이 영어의 'young'에서? 정도의, 해결할 의지 없는 의문만 가지고 있었더랬죠. --- "닭고기를 부드럽게 쪄낸 것"(p67)을 의미하는 '연계백숙(軟鷄白熟)'에서 온 것이며, 따라서 닭의 연령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합니다. '연계'가 '영계'로 발음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삼계탕이 '어린 닭'을 재료로 하는 음식이란 현실에 대하여, 저자 황광해는 다음과 같이 비판합니다.


삼계탕 사업은 치밀하다. 닭 한 마리는 반드시 550g이고 뚝배기는 그 치수에 꼭 맞다. 별맛은 없다. 그저 '닭 한 마리를 나 혼자서 다 먹어치운다'는 욕심만 남았을 뿐이다. 맛이 없으니 조미료 범벅에 각종 정체불명의 견과류를 넣는다. 닭고기 국물은 달다. 왜 또 조미료를 더하는지도 아리송하다.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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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재료와 음식에 대한 꼼꼼한 기록"(p5)이란 추천사와는 약간 어긋나는 부분들이, 예를 들어, 저자가 꽤나 자세하게, 반복하여 서술하고 있는 음식인 '신선로'와 관련하여선 두 가지나 발견됩니다.


신선로는 신선 神仙과는 관계가 없다. 중국에서 건너온 '새로운 형태의 그릇(新設爐)'에서 비롯된 표현이라는 주장이 정확하다. 쇠고기 먹는 일이 잦아지면서 중국에서 새롭게 받아들인 그릇이 바로 신선로 그릇이다. (p48)

……

일부 주장에는 신선로라는 이름을, 조선 후기 중국에서 건너온 새로 전래한 그릇이라는 표현에서 찾는 경우도 있다. '신설로(新設爐)'가 신선로로 변했다는 주장이다. 일견 타당성이 있지만 이미 조선 초, 중기 신선로라는 표현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그 주장도 허점이 있다. (p262)

에서 보이듯, 한 사람의 설명이라고는 이해되지 않는, '정확하다'와 '허점이 있다' 사이의 꽤나 큰 차이가 보여지고 있지요. 또한 신선로와 비슷한 일본의 음식인 '스기야키'를 설명하는 부분에선,


(신선로와) 비슷한 음식으로 일본에서 건너온 "승기악탕 勝技樂湯"도 있다. "기생보다 더 즐거움이 큰 음식"이라는 뜻이다. (p49)

…… 

'승기악탕' 등을 두고 "기생의 즐거움을 이기는 음식"이라고 강변하는 것도 어색하다. 승가기, 승기악은 모두 스기야키를 나타내기 위한 차음일 뿐이다. (p90) 

오랜 기간에 걸쳐 신문에 연재한 글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내었다보니 발생한 듯한, 위와 같은 서술의 충돌은, 음식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저같은 독자에겐 좀 당황스러울 수 밖엔 없지요. 어쨌든, '승기악탕'이 '스기야키'의 차음이라 해도, 그 표현을 '승기악탕 勝技樂湯'으로 구성하여, '기생의 즐거움을 이기는 음식'이란 뜻을 만들어낸 우리 선조들의 해학에는 Two thumbs-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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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로는 한식으로 여기기 어렵다. 한국의 어느 가정에서도 신선로를 먹지 않는다. '궁중'의 이름을 뒤집어씌워 몇몇 음식점에서 내놓을 뿐이다. 일반적인 가정에서 먹지 않는 한식은 없다. (p260) …… '요리'는 일상의 음식이 아니다. 술집 안주다. 화려한 술안주를 '조선음식, 한식'이라고 우기면 곤란하다. (286)

민중의 삶과 유리된 음식에, '우리 고유의 음식'이란 단어를 붙일 수 없다는 저자의 믿음은 확고합니다. 일상의 '음식'일 수 없는 '요리'가 '한식'을 대표하게 된 현재의 잘못된 인식의 기원을 저자는 "조선 최초의 요릿집"(p284)이라 불리우는 '명월관'이라 주장합니다. '조선왕실의 마지막 대령숙수(待令熟手)'였다라 알려져 있는 안순환은 그저 친일파인 술집 주인이었을 뿐이며, 그저 "조선궁중의 잔치음식이란 미명 아래 기생들의 춤과 노래가 범벅된 비싼 술안주를 팔았"(pp286~287)던 장사꾼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거죠. 뭐 이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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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에 지은 죄가 커 금생에 두부를 만든다"는 말이 있다. 두부를 만들기 힘들다는 뜻이다." (p24)

지금이야, 김밥천국에서 5-6천원이면 순두부찌개를 먹을 수 있고, 어지간한 술집에서 1만5천원 정도면 따끈따끈한 두부김치를 먹을 수 있는 세상이지만, --- 우리의 조상님네들은, 전생에 지은 죄까지 들먹여질만큼, 두부를 만드는 것이 힘들었던 시절을 사셨어야 했나봅니다. 공장에서 어렵지 않게 찍어내는 두부의 맛에도, 종종 감탄을 하곤 하거늘, 그렇게 노고를 들여 제대로 만들어낸 두부는 얼마나 맛있었을까요? 반면, 어제 저녁 저희 세 식구의 배를 가득 채워주었던 생선회가, 조선시대엔 임금님조차 쉽게 드실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3란 생각을 해보면 뭔가, '나중 태어난 자의 행복'같은 게 새삼 감사스럽고 막, 그렇기도 합니다. 암튼!


이 책에 대한 추천사를 쓴 요리사이자 음식칼럼니스트마저 "음식 칼럼이라는 얄팍한 동네"(p4)라 표현하는, 블로그를 비롯한 각종 SNS에 올리는 글에의 젤 만만한 소재가 음식 사진 찍는 거라는 요즈음, 그런 소재인 음식을 색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라, 그저 가볍게로는 누군가가 '죽과 미음의 정확한 차이가 뭘까?'라 궁금해 할 때, 이 책의 43페이지가 문득 떠올라 그에 대한 답을 알려줄 있을, 뭐 그런 정도의 재미도 얻을 수 있는, 그렇게 책꽂이에서 종종 뽑아 뒤져보게 될 듯 싶은 그런 책... 이 아닐까 싶네요. 


...금연 137일째 



 

  1. "중국에는 '중국 김치'라고 부르는 '자차이'가 있다. 일본인들은 지금도 여러 중류의 '츠케모노'를 먹는다. 모두 채소 발효식품으로 김치와 비슷하다."(p164)
  2. '조선은 '3금 禁'의 나라다. 금속, 금육, 금주다. 소나무 베지 마라, 쇠고기 먹지 마라, 술 마시지 말라는 뜻이다. 모두 농사를 잘 짓게 하고 곡식을 아끼기 위해서 만든 원칙이었다. 먹고 사는 것은 농사에 달려 있다. 소는 농사에 필수적이다. 식용 대상이 아니다. 개인의 도축은 원칙적으로 금했다. 궁중 제사나 외국 사신 접대 등에만 제한적으로 쇠고기를 사용했다. 소의 밀도살은 중죄였따. 초범이라도 곤장 100대에 징역 3년의 벌을 받았따. 밀도살로 발각되면 온 가족이 천민이 되어 역참에 노비로 배속되었다."(p46)
  3. "'임금님 진상품일 정도로 귀한 생선'이라는 표현은 틀렸다. 위어가 대단한 맛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다. 바다 생선 중에는 별맛이 없는 축에 속한다. … 위어를 궁중에서 횟감으로 사용한 이유는 간단하다. 구하기 쉽고 궁궐까지 운반하기가 그나마 쉬웠기 때문이다. 조선시에데는 양천(행주대교 언저리), 교하 등에서 위어를 잡을 수 있었다. … 밴댕이는 위어보다 더 빨리 상한다. 결국 횟감용 생선은 위어다. 서빙고의 얼음을 양천 등으로 옮긴다. 잡은 위어를 얼음에 재워 궁궐로 운반한다. 운반은 말로 했을 것이다. 양천은 도성에서 먼 곳이다. 횟감용 생선을 위한 절차가 참 복잡했다."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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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의 원가 - 세계 No.1 이익을 창출하는 비밀!
호리키리 도시오 지음, 현대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 옮김, 구자옥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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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이 단순히 제품만을 파는 산업이라는 생각은 애진작에 버렸어야 했나 봅니다. "'예판1'도 판다"란 (찬사 아닌) 찬사까지 들었던 Sony의 경우를 넘어, 팀 쿡의 아이폰이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과 아예 다른 제품으로 느껴진다라는 것2이 그러하며, 또한


"우리는 공장에서 제품을 만든다. 하지만 매장에서는 희망을 판다." (화장품 회사 레브론의 창업자 찰스 레브슨)

- 강민호,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중 p222, 와이비, 2017.​

'화장품'이라는, 단지 화학적 합성품에 지나지 않는 제품으로 여성의 욕망을 이끌어 내는, 뭔가 마케팅의 끝판왕스런 문구에서도 보여지듯, 이젠 '굴뚝'으로 상징되었는 제조업 또한 기업의 문화 또는 제품의 아이덴티티 자체마저도, 무형의 제품으로 함께 판매하고 있지 않나 싶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관점에서 보아 --- 이 책 「도요타의 원가」는, 단지 자동차를 제조·판매하는 기업으로만 알고 있던 도요타(Toyota)가 (그들의 생산·경영 방식 중 일부인) '원가 산정 방식'까지도 세계를 향해 세일즈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예가 아닐까 싶습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도요타'를 검색하니, 수많은 책들이 살벌하게 쏟아지더군요. 도대체, 사람들이 그리고 기업들이 '기업 도요타'에서 배우고/알아 내고 싶은 것은 무엇인걸까요? 크게 보아 이 책은, 다음의 두 가지 측면을 소개하고 있다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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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가 그리고 원가의 절감 】


경제학은 '한계수입(marginal revenue)과 한계비용(marinal cost)이 같아지는 생산량'을 생산할 때, 기업의 '(총)이윤 극대화'가 달성된다라 가르칩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봐도, 그래프로 그려봐도, 수학으로 계산해봐도, 이 명제는 말 그대로 '반박 불가(irrefutable argument)' 이지요. 이토록 아름다운 아담 스미스의 세상에 살던 제게 --- 원하는 수준의 이윤을 미리 결정하고, 그 이윤을 달성해주는 생산량을 계산한다라는 '손익분기점(BEP)' 분석3은, 그러니까 논리 전개의 전후를 아예 바꿔버렸다라는 점에서 정말로 놀라운 개념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 책 역시,


시장 가격은 도요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 즉, 고객이 결정하는 것이다. (p36) 

라는, 경제원론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4의 뒤에, "기업은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원가 절감을 한다"(p39)라는, 즉 <판매 가격 ≡ 원가 + 이익>이 아닌, <이익 ≡ 판매 가격 - 원가>라는, 우리의 상식에 경종을 울리는 상수(constant)와 변수(variable)의 도치(倒置)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책이 소개하고 있는 원가의 개념 설정은 (제조업에 몸담고 있는 저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매우 정확하며, 그렇게 설정한 개념의 '원가'를 절감하기 위한 도요타의 실제 노력은 예의 무지하게 살벌합니다. 우선 --- (서비스업이나 금융업의 경우에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제조업에서 '회계상의 원가'와 '실제의 원가'는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저자의 설명5은, 현실에서 '(제조) 가'를 계산하려 할 때 부딪히게 되는 장벽을 정확하게 지적해주고 있지요. 예를 들어 '감가 상각'의 경우,


금형의 실제 평균 수명은 4년이므로, 2년이 아니라 4년에 걸쳐 계산하는 것이 맞지만, 기업 회계상에서 2년차까지는 금형과 치구 비용이 포함되어 실제보다 높아진다. 반대로 3년차가 되면 금형과 치구 비용이 기업 회계상에서 한 번에 제로가 된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원가가 절감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때마침 한창 원가 절감을 추진하던 중이었다면, '절감 효과가 나타났다!'라고 착각하여 잘못된 판단으로 연결될 수 있다. (p65)

(약간의, '의도된 통계적 착시'를 가미한) 분식 회계란 건 이처럼, 외부적으로 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오용/악용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허나 현실에서는, 그러려는 의도가 정말로 전혀 없다해도 어쩔 수 없이! 다양한 종류의 '수치 왜곡'을 용인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왕왕 발생합니다. '영업 이익'의 산출 같은 경우가 그렇죠. 각종 비용의 정확한 산출을 해내지 못하니, '안분(按分)'이라는, 스스로 공정하다라 위로해낼 수 있는 방식으로 처리하긴 하나 이건 분명, 각 부서별 실적의 왜곡을 초래하게 되니까요.


원가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예외를 두어서는 안 된다. 작업자별, 라인별로 소모되는 비용 등을 끝까지 철저하게 파악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회사에서는 자잘한 비용은 '비용 배분'이라는 처리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주먹구구식 계산이다. 즉, 재료비는 생산라인의 생산량에 비례해서 부담하고, 전기료는 라인의 인원수에 따라 배분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상품별 원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p54) ​

이걸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죠. '현실적으로~'라는 문구가 지닌 엄청난 장벽이 이를 막고 있는 것이거늘, --- 도요타는 이 장벽을 무너뜨려냈으며, 바로 "이런 것이 타사는 흉내낼 수 없는 도요타만의 가장 큰 저력"(p51)이라 저자는 소개하고 있습니다.


5월 9일, '이 상품의 작업에는 장갑 8개, 수건 13개를 사용했다'라고 기록했을 때 비로소 상품별 원가를 계산할 수 있다. 어느 상품의 작업에 사용했는지 일일이 기록하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이것을 습관화하지 않으면 상품별 원가를 계산할 수 없다. 도요타 공장의 원가 관리는 반드시 '상품별, 부품별, 조별'로, 무엇을 얼마나 사용했는지 일일이 기록하고 분류하고 있다. (p52)​

정말 정말 놀랍고, 정말 정말 부러운 부분이지요. 이같은 원가의 개념 설정과 그 설정된 개념의 원가를 절감해나가는 도요타의 '시스템'을 배울 수 있다라는 게, 이 책 「도요타의 원가」가 지닌 장점의 모든 것이라 해도 심한 과장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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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주영 회장의 그 유명한 '해봤어?'라는 인용구를 저는 참 싫어합니다. 이 문구 자체가 싫다라는 게 아닌, --- "서구의 근대화는 … 토론과 대화로 정신을 설득하는 관념론적 과정이 아니라, 감시와 처벌의 채찍으로 신체를 길들이는 유물론적 과정이었다"란 미셸 푸코의 설명을, 앞뒤 다 잘라낸 뒤, "서구의 근대화도 어차피 감시와 처벌, 군대식 훈육의 결과였다"라는 오역으로 치환시켜, 박정희로 상징되는 '근대화의 폭력성'을 옹호하는 논리를 만들어 내었던 한국의 보수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이게 뭔 소리냐하면,

본인의 직관력이 정주영 회장의 그것에 훨씬 미치지 못하기에 해보면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나름의 계산조차 하지 못한 채, 또한 직원들의 수준이 '해보면 해낼 수 있는' 당시 현대그룹의 직원들 수준과도 많은 차이가 있다라는 것마저 고의로 무시한 채, '해봤어?'란 질문을 너무도 당연하게 '까라면 까!'의 대용으로 삼고 있는 (저보다 15~20년쯤 위의) 세대들의 무지함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진 코치는 '일본에서 포수 수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며 '일본 포수들은 한 번 실수하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집착하고 파고든다. 결국, 비슷한 실수를 줄이는 효과가 있더라'고 떠올렸다."


- 연합뉴스 '진갑용 국가대표 코치 감개무량 … 좋은 포수 찾아야죠' 중, 2017.08.29. Internet copy.

대한민국 기업의 문화가 과연 직원의 실수에 대해 그것을 거울 삼아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기회로 용인하여 주는가, 위와 같은 철저한 원가 분석이 가능하게 해주는 현실적 지원 등을 갖추고는 있는가 등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지 않은, 그저 '도요타식 원가 절감을 도입하라!'라는 지시만으로 그것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라는 것 또한 반드시 인식되어야 한다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자면, 이 책을 읽은 경영자가 직원들에게 이 책 속 도요타의 원가 절감 방식을 우리 회사에 도입하는 방안을 강구하여 제출하라,라 지시할 것이 아니라, 회사가 직원들에게 이러한 원가 절감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교육과 지원 및 환경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해주어야 한다라는 것이죠. (뭐, 걍 제 생각입니다... --;;)


암튼! 여기까지는, 이 책이 지니고 있는, 뭐랄까, 신입 사원일지라해도 읽고 배울 수 있는 무언가가 담겨져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허나 --- 이후의 내용은, 좀 심각합니다.


 

【 '일'의 개념 】


도요타는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행동은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p13) … ​'이익을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있는 행동' 이것이 도요타가 생각하는 '일'에 대한 개념이다.(p23)

학교에서 가르치는, 우리의 상식이 떠올려주는, 그런 '일'의 개념과는 다릅니다. 그 범위가 훨씬 좁지요. '일'이나 아니냐의 판단 기준이 오로지 이익창출여부6에 달려 있다보니, 예를 들어 사무직의 경우 "같은 메일이라도 사내 업무 처리를 위해 발송하는 것이라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일'이라고 할 수 없지만, 고객의 상품 문의에 대한 회신이라면 '이익을 창출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일로 판단해도 좋다"(p26)와 같은, 뭔가 우리 회사에 출근한 순간 이후는 다 전쟁이야~라 말하는 것 같은 빡빡함이 숨막혀 죽게 할 것 같기만 합니다. 뭐, 백 번을 양보하여 --- 아무리 학교라는 공간과 회사라는 공간이 다르고, 교과서가 말해주는 진리와 보고서가 말해주는 진리라는 게 얼마든지 차이날 수 있다라 생각한다 하여도, 그리하여! 


설계자가 말한 대로, 상사에게 지시받은 대로만 '일'하는 것은 '일을 처리하고 있는 것'일뿐 거기에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없다. '일' 하나하나에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진정한 '일'인 것이다. (p193) 

'자본'의 요구에 따라 위와 같은 내용으로 육체적 노동인 '일'이란 것이 정의(define)된 것에 맞추어 그 '일'을 한다 할지라도, 이게 뭐 '노력'에 '노력'까지를 더해야 한다라는 요구/지시임을 알고, 어쩔 수 없이 그 요구/지시에 따른다 할지라도, --- 기업 도요타는 "개개인이 '스스로 보람을 느끼면서 일을 해낸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사업장 곳곳에서 일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p24)라 생각한다라는, 고등학교 국민윤리 교과서로부터 배우고 외웠던 내용에 대해,   


매출 증가는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기대한 대로 실현되는 데 한계가 있지만, 원가 절감은 전 직원이 추진하고 노력과 개선 연구를 통해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p47)

​급기야 - '매출 증가'라는 외부적 요인은 통제가 불가능하므로 - '보람'이라는 정신적 부분에까지 특정 포인트로 한정되어야 한다라는 통제를 하고 있다는 자백, 다시 말해 도요타 직원의 '보람'은 자존감, 개인과 회사의 발전 등등으로부터 느끼는 것이 아닌, 단지 '원가의 절감'으로부터만 받아야 한다라는 설정이 존재한다라는 수준에까지 이르러 있다라는 걸, 이 책은 이처럼 자랑스럽게 설파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어쩌면 --- (이 책을 기획하고 출판한 곳의 성격이 말해주고 있듯) 그러한 설파를 대한민국의 자본도 또한 원하고 있는듯도 싶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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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의 원가 절감은 JIT system과 LEAN production으로 상징되는 재고 및 생산의 합리화에 주안점이 맞춰져 있다고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었거늘, 이 책은 설계 단계에서부터의 원가 절감 노력등을 소개함과 동시에, 현실적으로도 적용할 수 있겠는 적용 해보고 싶은 몇몇 유용한 정보 등도 담고 있는, 유용성의 측면에서는 꽤 좋은 평가를 줄 수 있습니다만, 반면 2010년 발생되었던 도요타의 대규모 리콜 사태에 대해 "과잉 생산에 의한 낭비 사례"(p199)라 간단히 돌려놓는 등, 원가 절감이 초래할 수 있는 문제점이라든가 원가 절감에 있어서 한계의 설정 등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려 했다라는 (뭐 어쩔 수 없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 아쉬움을 남겨 주기도 합니다. Plus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책이 철저하게 '자본'의 관점에서 쓰여졌을 뿐 아니라 또한 '갑'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책이라는 점입니다. 도요타의 원가 절감을 위한 협력업체들의 (글자 그대로) '협력'이란 것이,


 

협력업체에서 제조한 부품을 '부당하게 가격 인하'하는 것이 아니라 타사와 경쟁할 수 있는 만큼의 적정 가격으로 외주 부품을 구매해서 최종 상품이 적정한 금액으로 팔린다면 협력업체도, 도요타도 이익을 낼 수 있다. (p97) ​…… 비싼 가격의 외부 부품을 조합해 차량을 만들었더니 시장 가격보다 비싸서 팔리지 않으면 도요타뿐만 아니라, 협력업체까지 타격을 입게 된다. (p95)

도요타의 패배는 곧 협력업체의 도산을 의미한다 식의 당위로 연결되고 있는, 심지어 --- 도요타의 요구에 잘 따르지 않던 특정 부품 납품업체가 있었는데, 원가 절감의 일환으로 도요타가 아예 해당 부품 제작 회사를 설립해버렸다라는 (협박성) 사례는, 어쩌면 대한민국의 (설마 그런 이유로 이 책을 '현대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가 번역하지는 않았겠지만) 현대/기아 등 자동차 회사의 수많은 협력업체 사장님들의 간담을 오싹하게 만들어 버리는 메시지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란 생각을 갖게도 해줍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무엇보다,

​도요타의 철저한 원가 절감 노력을 보여줌으로써, 스티브 잡스의 철학이 안겨다 주는 애플의 막대한 이익 뒤에 그 철학의 물화(物化)를 위해 애플이 정해준 육체적 노동과 정신적 보람에 시달리는 중국의 노동자들이 있음(  "Inside One of the World’s Most Secretive iPhone Factories") 을, 레브론 공장에서 만들어진 화학 제품이 매장에서 '희망'으로 둔갑해 팔리기 위해 수많은 동물들이 실험실에서 죽었어야 한다라는 사실(​"A Bunny would never wear Mascara") 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다라는,그런 잔향을 남겨준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라는 점, 글쎄 이걸 뭐랄까, '인상적'이라 해야할지, 혹시 '고마움'이라 표현해도 될... 까요? --;; 


...금연 134일째 

 

 

 



 

  1. '예약 판매'.
  2. "스티브 잡스는 … 자신만의 확고한 기준과 철학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했던 대표적인 경영자입니다. 고객은 그가 추구하는 디자인과 철학에 공감하고 또 열광했습니다. 고객들은 단순히 아이폰과 맥북이라는 기계가 아니라, 스티브 잡스의 철학을 구매한 것입니다. 아이폰과 맥북은 그가 추구하는 철학의 부산물일 뿐입니다." - 강민호,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중 p24, 와이비, 2017.
  3. 저는 이런 과정으로 배웠습니다만, 이 책의 설명은 "손익분기점이라고 하면 문자 그대로 '손익이 분기하는 지점'이라고 이해하기 쉬운데, 원래는 '불황에 대한 강도·저항력'을 보는 지표로 사용하는 것"(p80)으로 조금 다르더군요.
  4. 즉, 소비자와 생산자(공급자)는 모두 price-taker라는 가정.
  5. "기업 회계의 원가 계산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이는 법인세를 정확히 내기 위한 원가 계산이다."(p70)
  6. "이익을 창출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가 있다. ①외부적으로 매출을 늘리고 이익을 창출하는 내용인가? ②내부적으로 원가 절감으로 연결되는 내용인가?"(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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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희생 - 개인의 희생 없는 국가와 사회는 존재하는가?
다카하시 데쓰야 지음, 이목 옮김 / 책과함께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김희진이 18일 국가대표팀에서의 책무를 마치고 귀국했다. …… 사실 김희진은 대표팀에 소집되기 어려운 몸 상태였다. 팔꿈치근육 일부가 파열된 상태였다. 통증은 어깨까지 올라갈 위험성이 있었다. 그럼에도 IBK기업은행과 김희진은 대표팀 차출을 고사하지 않았다. …… IBK기업은행은 주사까지 맞히고, 김희진을 월드그랑프리 대표팀으로 보냈다. …… ​선수 차출에 따른 후유증은 IBK기업은행이 떠안아야 할 판이다. KOVO컵은 물론하고, V리그도 초반 라운드까지는 마음을 비워야 할 형편이다. 가장 속이 쓰릴 이 감독이겠지만 “국가가 필요하다는데 어떡하겠느냐”라고 말할 뿐이다. 


- "대표팀 위해 팔꿈치 근육 희생한 IBK 김희진의 헌신" 중, <스포츠 동아> 2017.8.19. Internet copy

​뭐, 흔해도 너무나 흔한, 국가의 '부름'에 응한 결과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선수 개인과 사기업에게로 전가되는 전형적인 일례입니다. '사명감'이라는, 참으로 애매모호한 개념으로 독려되었고 결과지어진 이러한 피해에 대한 보상으로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어디가서 돈으로 바꿀 수도 없는 '자부심' 같은 것들이 거론되지요. 물론! --- 그 개인과 사기업이 진심 자발적으로 그러한 자신들의 희생을 치뤄서라도 그 '사명감의 완수'와 '자부심의 만땅!'을 원한다면야, 그것에 대해 타인이 왈가왈부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근데 그게, (고사하고 싶었으나, 또는 고사할 수 없었기에) '고사하지 못했다'가 아닌 (고사해야 맞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사하지 않았다'가 진심인, 진짜 그렇게 자발적이냐라는 거지요.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은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태극마크를 달고 경기장에 나선다는 자부심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도 갖고 있다. …… 바뀐 시대에도 태극마크를 다는 국가대표라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 선수 선발에서도 기량과 함께 정신적인 면도 볼 생각이다. …… 또 이제는 도덕적인 부분도 고려할 생각이다." 

- <태극전사에게 사명감은 필수 … 실력·정신력 겸비해야> 중, 세계일보, 2017.8.22. Internet copy

​(위의 인터뷰를 한 선동열 감독 개인에 대한 언급이 결코 아님을 미리 밝혀두며) '너'도 알고, '나'는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게 그렇게 진짜 자발적이 아니라는 걸 말이죠. "국가가 필요하다는데 어떡하겠느냐"란 IBK 배구단 감독의 탄식이, 그 어느 지도자에겐 없겠습니까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 감독 역시 어쩔 수 없이, 자신은 그러한 희생하나의 '당위'로 받아들여져야된다라 생각한다는 선수(先手)를 쳐놓을 수밖엔 없는 겁니다. 그리하여 (이것이 우리나라에만 해당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국가대표 선수의 선출에 운동 실력만이 아닌, (짊어져야 할 '무거운 책임감'에 대한 대책으로서의) '정신적인 면'과 '도덕적인 부분'까지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다카하시 데쓰야는 이 책, 「국가와 희생」에서, 국가1가 국민에게 요구하는 (주로 '전쟁에서의 죽음'을 의미하는) '희생'이란 게, "(국민의) 희생없는 국가와 사회는 가능한가?"(p255)란 의문까지 가져올만큼 (굳이 전쟁의 상황이 아니더라도) 너무도 일반적/당연한 것이고 일상적이기까지 하다라 보고 있습니다. ​국가란 도대체 어떤 이유로 이렇게까지 당당할 수 있는 것일까요? 설마 이것도 홉스의 '국가론'2에 따른 당연한 결과인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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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다른 집단과 개인들의 현재 또는 미래의 행동을 지시하거나 막을 수 있는 능력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권력은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여 그들이 하려던 것이 아닌 방식으로 행동하게 하는 것이다.

- 모이제스 나임, 「권력의 종말」중 p50, 책읽는수요일, 2015.

저자 다카하시 데쓰야는, 위와 같은 의미로서의 '국가'라는 조직의 존재를, '주어진 것'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즉 '국가라는 조직의 필요성이 어디에서부터 대체 왜 생겨났었었는지'등에 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고, 일단 존재하고 있다라는 지점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라는 것이죠.

상당히 많은 분량의 인용문구들을 적어놓고, 그에 대해 해설을 하는 형식을 지니고 있는 이 책에서 저자 다카하시 데쓰야가 결국 전하고팠던 핵심이란 건, 제 생각에, 조지 모세 George Lachmann Mosse 라는 독일 출신 유대인 역사가의 저술 「영령 Fallen Soldiers」라는 책 속 내용3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다음이라고 보여집니다. 요약된 부분을 인용해 보자면, 

국가가 국민을 전쟁에 동원하여 대량의 전사자를 낼 경우, 국가는 그 전사자를 위한 - 국가를 수호하기 위한, 그리고 국가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 숭고한 희생이었다는 식으로 성별하고 이들을 성스러운 존재로 추모하며 찬미하는 논리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깊은 정신적 타격을 입은 유족들을 위로하고 감사하고, 위무한다. 유족이 가슴에 품은 전사의 비애와 공허감, 애절한 심정을 국가는 그 같은 '국가의 이야기'로 메워주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국민들이 유족이나 전사자들에게 공감함으로써 그들을 모범으로 삼아 '우리 역시 그들을 계승해야만 한다'는 '자기희생의 논리'를 만들어낸다. 그러면 전쟁을 거듭 반복할 수 있다는 전망이 선다.(p117) …… (이처럼) 전쟁기념사업을 통하여 위로의 기능이 작동하고 '명예로운 전사였기에 슬퍼하지 않는다'는 상황으로 변한다.(p167)

그러니까, 국가가 말하는/추모하는 '희생'이라는 건 알고보면 '훗날의 또 다른 희생을 요구하기 위한 사전적 립서비스' 일 뿐, 딱히 대단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뭐, 이런 주장을 할 수도 있겠고, 이 주장이 딱히 억지스럽다라 보여지는 것도 아니긴 합니다만, 문제는! --- 다카하시 데쓰야가 위의 메시지가 '야스쿠니 신사'의 문제에도 동일하고 적용되고 있다라 주장하며, 다음과 같은 매우 교묘한 전개의 논리를 독자에게 설파하려 든다는 점이지요.


'야스쿠니의 논리'를 창출해낸 국가의 의도, 그리고 '야스쿠니의 논리'를 '활용하는' 측에서는 '새로운 전쟁 속으로 국민을 동원하기 위하여 전쟁터에서 죽는 것이 행복하다고 유족들과 그 유족을 바라보는 국민 모두가 느끼도록 만드는' 의도가 있었다는 점이 가장 큰 핵심이다. … 이렇게 생각할 때 '희생의 논리'4는 전쟁에 국민을 동원할 것이며, 또 그 전사자들과 유족들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 것인가 하는 물음에 직면했던 국가가 창출해낸 하나의 프로세스(장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p111) 

​이게, 그러니까, --- 야스쿠니 신사라는 게, 일본만의 것도 아니고, 일본의 큰 잘못마저 아니라는 속내를 서서히 풀어놓고 있다라, 저에게는 그렇게 읽혀지는 겁니다. 어찌해서든 '적용되고 있다'가 아닌, '적용되어야 한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저자는, 이 새롭지도 않은 결론을 뽑아내기 위해 그 많은 인용문을 가져다 놓고는 고작 "희생논리의 편재성(omnipresence)"(p255) 운운하는, 흡사 '위 아 더 월드'스런 마무리를 기어이 만들어 내고 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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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 속 내용의 일반화를 위해, 저자는 키르케고르와 자크 데리다를 소환합니다. 그 소환의 핵심은

 "어떤 타자에게 충실하려면 다른 타자를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p258)

​이 한 마디를 인용하기 위함이었고, 여기서 '어떤 타자'는 국가이며, '다른 타자'는 (내가 아닌 다른) 국민/군인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이 인용문을 해설하겠다며 저자는 --- "예를 들면, 나는 지금 이 책의 원고 집필을 통하여 편집자와 출판사, 미래의 독자 등 어떤 타자에 대한 내 책임을 다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또 다른 많은 타자들의 부름에 응답하지 못하고, 그런 의미에서 무책임한 사람이 되고 있는 것"(p258)이란 예시를 드는 무식을 드러내고 맙니다. 저자는 자신의 선택에 따른 '집필'이라는 활동과 '무책임'이라는 단어를 연결시키고 있지만, 사실 이건 '희생' 운운할 꺼리가 아닌, '기회비용'의 차원에서 이해하여야 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경제활동일 뿐인 것이죠. 어쨌든! 뭐 이 정도의 오류/무식은 있을 수 있다라 넘어가준다 하더라도!

(2) A의 과거 행동에 대해 '그건 잘못인 것 같아'라는 이야기를 내내 해오다가, '어! 근데 알고보니 너네 B나 C도 그런 행동을 했었었네~'라며, 'A만 잘못한 게 아니다'를 거쳐, 은근슬쩍 'A에게는 잘못이 없다' 뿐 아니라, 우리 모두 그런 행동을 다 했었었으니 아예 '그 행동 자체가 잘못은 아니거다'라는 식으로 결론지으려는, 정말로 역겨운 논리가 이 책 속에서 읽혀집니다. 그러니까, 아예 이런 결론을 위해, 책의 초반부에 의도적으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 그건 좀 잘못인 것 같아'란 연막을 쳤다라는 것이죠. 우리나라 국립 현충원에 적혀져 있다는 글을 인용해놓고는,

야스쿠니신사처럼 식민지 제국의 확립과 유지를 위한 '숭고한 희생'이 아니라, 반대로 식민지 제국으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되찾기 위한 '고귀한 희생'인 셈인데, 동시에 이들은 국가가 '국가적 차원에서' 그 사망자들을 추모하는 레토릭으로서는 (전혀 구분이 안 되는) 완전한 판박이이다. (pp248-249)  

​겉으로는, 전쟁으로 인해 사망한 군인/국민들에 대한 레토릭으로서의 '희생에 대한 추모'가 똑같다라 말하면서, 속으로는, 그러니까 같은 말의 계속된 반복을 통해 사실은, 현충원은 되고, 야스쿠니는 안 되는 이유가 뭐냐라는 항변을 늘어놓고 있는 겁니다. 헌데 말이죠!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라는 (상황에 따라선 정말 되도 않는 말인) 이런 식의 채근에 또, 

이 땅의 독자들과 이 책을 함께 나누고 싶은 심정은 간절해졌다. 그 바탕에는, 한일 양국의 근현대사를 둘러싼 현안들을 본=가해자, 조선=피해자라는 일국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더 큰 보편적 시각에서 들여다보고 해석하고 해결 방향을 모색하는 혜안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 두 나라가 걸어온 유구한 역사 현장에서 펼쳐지고 거둔 값진 역사의 경험들은 자국의 우월성을 주장하고 자랑하기 위한 근거이기보다는 공생을 위한 밝은 미래를 열기 위한 자양분으로 걸러내고 독해해 체질하고 더 큰 지혜로 키워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p269)

- <옮긴이 후기> 중  

옮긴이란 자는 아예 대놓고 '나무는 보지말고 숲만 보자'로 가자라고 장단까지 맞춰주고 있기도 합니다. 때린 놈이, 생각해 보니 나도 더 센 놈한테 엄청 맞았었으니까, 너도 내가 너 때렸던 거 다 잊어먹어라,라 말하는 것 말고는 다른 뜻으로는 이해를 해낼 수 없거늘, 이런 글을 쓴 저자를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p267)으로 거론한 옮긴이의 혜안과 수준에 도저히 따라갈 수 없겠는 전, 대체 뭘 '걸러내고 독해해 체질'해야 하는 건지 끝내, 이 책을 읽어선 알아낼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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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특정한 질서를 신뢰하는 것은 그것이 객관적인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믿으면 더 효과적으로 협력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 상상의 질서(imagined order)는 언제나 붕괴의 위험을 안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화에 기반하고 있고, 신화는 사람들이 신봉하지 않으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상상의 질서를 보호하려면 지속적이고 활발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이런 노력 중 일부는 폭력과 강요의 형태를 띤다. … 하지만 상상의 질서는 폭력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중 pp165~167, 민음사, 2015.

​'국가'란 집단의 유지가, 폭력과 강요의 형태를 띤 '희생의 요청' 뿐만이 아닌, 일부 '진정으로 믿는 성원'의 존재 또한 반드시 필요로 한다라는 유발 하라리의 의견은, 별 특별한 거부감의 생성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이해할 수 있겠지만, 


"어떤 문화적 자원이 한 사회에서 주요한 상징이 되는 것은 지배적 집단 혹은 유력한 소수집단이 그 자원을 유지하며 성장시킬 때이고, 한 문화가 제도로서 확립되는 것은 그것을 지지하는 사회기반이 존재할 때이다."

- 이케가미 에이코, 「사무라이의 나라」중 p93, 지식노마드, 2008.

'사무라이'라는 문화적 자원이, 폭력과 강요의 시기를 거쳐, 끊임없는 교육/세뇌를 통하여, 이제는 되돌이켜지지 않는, 그러니까 그것이 '일부'가 아닌 '적어도 꽤 되는 portion의' 사람들이 존재하는 일본 사회에, 그 발전된 형태인 '야스쿠니 정신'5이라는 것으로 확립되어있다라는 것엔, 아니 낯설어 할 수가 없습니다. 낯설어... 해서도 안되겠지요. 개인으로서의 일본인은 친절하고 공중도덕 잘 지키는 등, 매우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으나, 집단으로서의 일본이 보여주는 정치·역사적 관점은 결코 매력적이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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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사회를 지배하는 핵심적인 것이 제도라고 보고 가장 중요한 것을 '국익'으로 파악한다. 국가주의는 공적인 이익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가르치며 단결과 화합을 강조한다. 애국가과 국기에 대한 경례 같은 의례는 이런 국가주의를 자극하고 국가와 나를 일치시키는 역할을 한다."

- 하승우, 「아나키즘」중 p143, 책세상, 2008. ​ 

단 한 게임도 보지 않는 K리그이건만, 그래도 국가대표의 경기가 있다면 보게 되듯, 순전히 개인의 경기인 프로 골프에서 한국 선수가 우승했다라는 것이 우리에게 희열을 안겨 주는 이유를, 이것이 차마 우리 민족의 습성이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은, 하지만 언제인지 모르겠으나 꽤나 오래 전부터 우리들에게 전해져 온, 굳이 이것이 '국가주의'라는 명칭으로만 불리우는 것도 아닐 것 같은, "국가와 나의 일치"가 우리/나에게 너무도 자연스럽다라는 건, --- 그것이, 유발 하라리 버젼의 '상상의 질서(imagined order)'이건, 일본 '사무라이 정신'으로부터 지속되어 온 '야스쿠니 정신'이겠건, 혹은 우리 민족의 뭐, '단일민족으로서의 단결력'이 되었건, 어쩌면 이마저도 '자연스러움'보다는 '폭력과 강요'가 맺어놓은 과실이 아닐까,하는 좀 비참하기도 한, 그런 생각이 슬쩍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

우리 나라의 국가대표팀 감독도, 그가 어느 종목의 감독이건,

"누구나 애국자가 되기를 원하지만, 그렇다고 애국하기 위해서 무제한적 위험을 감수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도 잊으면 안 된다."

- 유시민, 「후불제 민주주의」중 pp101-102, 돌배게, 2009.

이 기본적 전제가 되어야 함을, 그리고 우리들도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주는 자세를 갖추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에 대한 국가의 강요가 옳지 않듯, 다수의 소수에 대한 강요, 혹은 권력있는 소수의 타인에 대한 강요 등도 또한 결코 옳을 수 없다라는 거, 이건 뭐, '최순실 - 박근혜 - 자본'의 연결에서 보았었듯, 너무나 정말로 간단한 거잖습니까. 국가의 부름에, 선수로서의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모험을 해야 하는 선택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 이것까지 '의무의 회피'라 불러서는 안 된다라는 걸 설마... 그들이 모르진 않겠죠.  



 

  1. 이 책 속 '국가'는 대체적으로 "군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항상 전쟁에 대비하고 있는 국가"(p16)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2. "홉스의 국가론을 한마디로 줄이면, 국가는 사회 내부의 무질서와 범죄, 외부 침략의 위협에서 인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정당하게 행사하는 '세속의 신'이다." - 유시민, 「국가란 무엇인가」중, 돌베개, 2011.
  3. "프랑스혁명에서 최초로 국민군이 생겨 국민들이 자신이 속한 국가를 자기 것(소유)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국민은 국가를 지키고자 자신의 생명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국가를 건설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에서 희생된 자들은 국가와 국민의 찬양을 받았다. 그렇게 전사자들이 찬양되면서부터 국민은 그 같은 명예를 찾아 자기 자신을 희생양으로 만들어나갔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근대 국민국가에서 영령 추모가 성립하고 일반화해갔다."(p177) …… "전시 중에 그리고 특히 전쟁이 끝난 뒤에는 국민국가의 최고 권력자들이 전사자들의 매장과 전쟁기념사업을 도맡았다. … 그러나 거기서 기념한 것은 전쟁의 공포가 아닌 영광이었고, 비극이 아닌 전쟁의 의의였다."(p167)
  4. "평범하게 죽어서는 동정 정도는 받겠지만, 결코 존경의 대상이 되거나 감사를 받을 수 없습니다. 유가족 여러분들은 군국에 자기 한 몸을 바친 내 자식 덕분에, 내 남편 덕분에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심심한 감사와 존경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p60)
  5. "야스쿠니의 정신은 전쟁터로 나서는 병사들만이 지닌 정신이 아니다. 그것은 전시나 평화로운 시기에도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한결같이 견지해야하만 할 일본 정신이다. 그렇다면 이 야스쿠니의 정신을 발휘하이 휘애서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 그것은 결국 다음과 같은 말로 집약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를 위해서라면 기쁜 마음으로 피를 흘려라. 사회를 위해서라면 기쁜 마음으로 눈물을 흘려라. 자신을 위해서라면 기쁜 마음으로 땀을 흘려라."(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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