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희생 - 개인의 희생 없는 국가와 사회는 존재하는가?
다카하시 데쓰야 지음, 이목 옮김 / 책과함께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김희진이 18일 국가대표팀에서의 책무를 마치고 귀국했다. …… 사실 김희진은 대표팀에 소집되기 어려운 몸 상태였다. 팔꿈치근육 일부가 파열된 상태였다. 통증은 어깨까지 올라갈 위험성이 있었다. 그럼에도 IBK기업은행과 김희진은 대표팀 차출을 고사하지 않았다. …… IBK기업은행은 주사까지 맞히고, 김희진을 월드그랑프리 대표팀으로 보냈다. …… ​선수 차출에 따른 후유증은 IBK기업은행이 떠안아야 할 판이다. KOVO컵은 물론하고, V리그도 초반 라운드까지는 마음을 비워야 할 형편이다. 가장 속이 쓰릴 이 감독이겠지만 “국가가 필요하다는데 어떡하겠느냐”라고 말할 뿐이다. 


- "대표팀 위해 팔꿈치 근육 희생한 IBK 김희진의 헌신" 중, <스포츠 동아> 2017.8.19. Internet copy

​뭐, 흔해도 너무나 흔한, 국가의 '부름'에 응한 결과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선수 개인과 사기업에게로 전가되는 전형적인 일례입니다. '사명감'이라는, 참으로 애매모호한 개념으로 독려되었고 결과지어진 이러한 피해에 대한 보상으로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어디가서 돈으로 바꿀 수도 없는 '자부심' 같은 것들이 거론되지요. 물론! --- 그 개인과 사기업이 진심 자발적으로 그러한 자신들의 희생을 치뤄서라도 그 '사명감의 완수'와 '자부심의 만땅!'을 원한다면야, 그것에 대해 타인이 왈가왈부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근데 그게, (고사하고 싶었으나, 또는 고사할 수 없었기에) '고사하지 못했다'가 아닌 (고사해야 맞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사하지 않았다'가 진심인, 진짜 그렇게 자발적이냐라는 거지요.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은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태극마크를 달고 경기장에 나선다는 자부심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도 갖고 있다. …… 바뀐 시대에도 태극마크를 다는 국가대표라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 선수 선발에서도 기량과 함께 정신적인 면도 볼 생각이다. …… 또 이제는 도덕적인 부분도 고려할 생각이다." 

- <태극전사에게 사명감은 필수 … 실력·정신력 겸비해야> 중, 세계일보, 2017.8.22. Internet copy

​(위의 인터뷰를 한 선동열 감독 개인에 대한 언급이 결코 아님을 미리 밝혀두며) '너'도 알고, '나'는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게 그렇게 진짜 자발적이 아니라는 걸 말이죠. "국가가 필요하다는데 어떡하겠느냐"란 IBK 배구단 감독의 탄식이, 그 어느 지도자에겐 없겠습니까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 감독 역시 어쩔 수 없이, 자신은 그러한 희생하나의 '당위'로 받아들여져야된다라 생각한다는 선수(先手)를 쳐놓을 수밖엔 없는 겁니다. 그리하여 (이것이 우리나라에만 해당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국가대표 선수의 선출에 운동 실력만이 아닌, (짊어져야 할 '무거운 책임감'에 대한 대책으로서의) '정신적인 면'과 '도덕적인 부분'까지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다카하시 데쓰야는 이 책, 「국가와 희생」에서, 국가1가 국민에게 요구하는 (주로 '전쟁에서의 죽음'을 의미하는) '희생'이란 게, "(국민의) 희생없는 국가와 사회는 가능한가?"(p255)란 의문까지 가져올만큼 (굳이 전쟁의 상황이 아니더라도) 너무도 일반적/당연한 것이고 일상적이기까지 하다라 보고 있습니다. ​국가란 도대체 어떤 이유로 이렇게까지 당당할 수 있는 것일까요? 설마 이것도 홉스의 '국가론'2에 따른 당연한 결과인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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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다른 집단과 개인들의 현재 또는 미래의 행동을 지시하거나 막을 수 있는 능력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권력은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여 그들이 하려던 것이 아닌 방식으로 행동하게 하는 것이다.

- 모이제스 나임, 「권력의 종말」중 p50, 책읽는수요일, 2015.

저자 다카하시 데쓰야는, 위와 같은 의미로서의 '국가'라는 조직의 존재를, '주어진 것'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즉 '국가라는 조직의 필요성이 어디에서부터 대체 왜 생겨났었었는지'등에 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고, 일단 존재하고 있다라는 지점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라는 것이죠.

상당히 많은 분량의 인용문구들을 적어놓고, 그에 대해 해설을 하는 형식을 지니고 있는 이 책에서 저자 다카하시 데쓰야가 결국 전하고팠던 핵심이란 건, 제 생각에, 조지 모세 George Lachmann Mosse 라는 독일 출신 유대인 역사가의 저술 「영령 Fallen Soldiers」라는 책 속 내용3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다음이라고 보여집니다. 요약된 부분을 인용해 보자면, 

국가가 국민을 전쟁에 동원하여 대량의 전사자를 낼 경우, 국가는 그 전사자를 위한 - 국가를 수호하기 위한, 그리고 국가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 숭고한 희생이었다는 식으로 성별하고 이들을 성스러운 존재로 추모하며 찬미하는 논리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깊은 정신적 타격을 입은 유족들을 위로하고 감사하고, 위무한다. 유족이 가슴에 품은 전사의 비애와 공허감, 애절한 심정을 국가는 그 같은 '국가의 이야기'로 메워주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국민들이 유족이나 전사자들에게 공감함으로써 그들을 모범으로 삼아 '우리 역시 그들을 계승해야만 한다'는 '자기희생의 논리'를 만들어낸다. 그러면 전쟁을 거듭 반복할 수 있다는 전망이 선다.(p117) …… (이처럼) 전쟁기념사업을 통하여 위로의 기능이 작동하고 '명예로운 전사였기에 슬퍼하지 않는다'는 상황으로 변한다.(p167)

그러니까, 국가가 말하는/추모하는 '희생'이라는 건 알고보면 '훗날의 또 다른 희생을 요구하기 위한 사전적 립서비스' 일 뿐, 딱히 대단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뭐, 이런 주장을 할 수도 있겠고, 이 주장이 딱히 억지스럽다라 보여지는 것도 아니긴 합니다만, 문제는! --- 다카하시 데쓰야가 위의 메시지가 '야스쿠니 신사'의 문제에도 동일하고 적용되고 있다라 주장하며, 다음과 같은 매우 교묘한 전개의 논리를 독자에게 설파하려 든다는 점이지요.


'야스쿠니의 논리'를 창출해낸 국가의 의도, 그리고 '야스쿠니의 논리'를 '활용하는' 측에서는 '새로운 전쟁 속으로 국민을 동원하기 위하여 전쟁터에서 죽는 것이 행복하다고 유족들과 그 유족을 바라보는 국민 모두가 느끼도록 만드는' 의도가 있었다는 점이 가장 큰 핵심이다. … 이렇게 생각할 때 '희생의 논리'4는 전쟁에 국민을 동원할 것이며, 또 그 전사자들과 유족들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 것인가 하는 물음에 직면했던 국가가 창출해낸 하나의 프로세스(장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p111) 

​이게, 그러니까, --- 야스쿠니 신사라는 게, 일본만의 것도 아니고, 일본의 큰 잘못마저 아니라는 속내를 서서히 풀어놓고 있다라, 저에게는 그렇게 읽혀지는 겁니다. 어찌해서든 '적용되고 있다'가 아닌, '적용되어야 한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저자는, 이 새롭지도 않은 결론을 뽑아내기 위해 그 많은 인용문을 가져다 놓고는 고작 "희생논리의 편재성(omnipresence)"(p255) 운운하는, 흡사 '위 아 더 월드'스런 마무리를 기어이 만들어 내고 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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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 속 내용의 일반화를 위해, 저자는 키르케고르와 자크 데리다를 소환합니다. 그 소환의 핵심은

 "어떤 타자에게 충실하려면 다른 타자를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p258)

​이 한 마디를 인용하기 위함이었고, 여기서 '어떤 타자'는 국가이며, '다른 타자'는 (내가 아닌 다른) 국민/군인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이 인용문을 해설하겠다며 저자는 --- "예를 들면, 나는 지금 이 책의 원고 집필을 통하여 편집자와 출판사, 미래의 독자 등 어떤 타자에 대한 내 책임을 다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또 다른 많은 타자들의 부름에 응답하지 못하고, 그런 의미에서 무책임한 사람이 되고 있는 것"(p258)이란 예시를 드는 무식을 드러내고 맙니다. 저자는 자신의 선택에 따른 '집필'이라는 활동과 '무책임'이라는 단어를 연결시키고 있지만, 사실 이건 '희생' 운운할 꺼리가 아닌, '기회비용'의 차원에서 이해하여야 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경제활동일 뿐인 것이죠. 어쨌든! 뭐 이 정도의 오류/무식은 있을 수 있다라 넘어가준다 하더라도!

(2) A의 과거 행동에 대해 '그건 잘못인 것 같아'라는 이야기를 내내 해오다가, '어! 근데 알고보니 너네 B나 C도 그런 행동을 했었었네~'라며, 'A만 잘못한 게 아니다'를 거쳐, 은근슬쩍 'A에게는 잘못이 없다' 뿐 아니라, 우리 모두 그런 행동을 다 했었었으니 아예 '그 행동 자체가 잘못은 아니거다'라는 식으로 결론지으려는, 정말로 역겨운 논리가 이 책 속에서 읽혀집니다. 그러니까, 아예 이런 결론을 위해, 책의 초반부에 의도적으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 그건 좀 잘못인 것 같아'란 연막을 쳤다라는 것이죠. 우리나라 국립 현충원에 적혀져 있다는 글을 인용해놓고는,

야스쿠니신사처럼 식민지 제국의 확립과 유지를 위한 '숭고한 희생'이 아니라, 반대로 식민지 제국으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되찾기 위한 '고귀한 희생'인 셈인데, 동시에 이들은 국가가 '국가적 차원에서' 그 사망자들을 추모하는 레토릭으로서는 (전혀 구분이 안 되는) 완전한 판박이이다. (pp248-249)  

​겉으로는, 전쟁으로 인해 사망한 군인/국민들에 대한 레토릭으로서의 '희생에 대한 추모'가 똑같다라 말하면서, 속으로는, 그러니까 같은 말의 계속된 반복을 통해 사실은, 현충원은 되고, 야스쿠니는 안 되는 이유가 뭐냐라는 항변을 늘어놓고 있는 겁니다. 헌데 말이죠!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라는 (상황에 따라선 정말 되도 않는 말인) 이런 식의 채근에 또, 

이 땅의 독자들과 이 책을 함께 나누고 싶은 심정은 간절해졌다. 그 바탕에는, 한일 양국의 근현대사를 둘러싼 현안들을 본=가해자, 조선=피해자라는 일국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더 큰 보편적 시각에서 들여다보고 해석하고 해결 방향을 모색하는 혜안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 두 나라가 걸어온 유구한 역사 현장에서 펼쳐지고 거둔 값진 역사의 경험들은 자국의 우월성을 주장하고 자랑하기 위한 근거이기보다는 공생을 위한 밝은 미래를 열기 위한 자양분으로 걸러내고 독해해 체질하고 더 큰 지혜로 키워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p269)

- <옮긴이 후기> 중  

옮긴이란 자는 아예 대놓고 '나무는 보지말고 숲만 보자'로 가자라고 장단까지 맞춰주고 있기도 합니다. 때린 놈이, 생각해 보니 나도 더 센 놈한테 엄청 맞았었으니까, 너도 내가 너 때렸던 거 다 잊어먹어라,라 말하는 것 말고는 다른 뜻으로는 이해를 해낼 수 없거늘, 이런 글을 쓴 저자를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p267)으로 거론한 옮긴이의 혜안과 수준에 도저히 따라갈 수 없겠는 전, 대체 뭘 '걸러내고 독해해 체질'해야 하는 건지 끝내, 이 책을 읽어선 알아낼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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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특정한 질서를 신뢰하는 것은 그것이 객관적인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믿으면 더 효과적으로 협력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 상상의 질서(imagined order)는 언제나 붕괴의 위험을 안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화에 기반하고 있고, 신화는 사람들이 신봉하지 않으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상상의 질서를 보호하려면 지속적이고 활발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이런 노력 중 일부는 폭력과 강요의 형태를 띤다. … 하지만 상상의 질서는 폭력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중 pp165~167, 민음사, 2015.

​'국가'란 집단의 유지가, 폭력과 강요의 형태를 띤 '희생의 요청' 뿐만이 아닌, 일부 '진정으로 믿는 성원'의 존재 또한 반드시 필요로 한다라는 유발 하라리의 의견은, 별 특별한 거부감의 생성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이해할 수 있겠지만, 


"어떤 문화적 자원이 한 사회에서 주요한 상징이 되는 것은 지배적 집단 혹은 유력한 소수집단이 그 자원을 유지하며 성장시킬 때이고, 한 문화가 제도로서 확립되는 것은 그것을 지지하는 사회기반이 존재할 때이다."

- 이케가미 에이코, 「사무라이의 나라」중 p93, 지식노마드, 2008.

'사무라이'라는 문화적 자원이, 폭력과 강요의 시기를 거쳐, 끊임없는 교육/세뇌를 통하여, 이제는 되돌이켜지지 않는, 그러니까 그것이 '일부'가 아닌 '적어도 꽤 되는 portion의' 사람들이 존재하는 일본 사회에, 그 발전된 형태인 '야스쿠니 정신'5이라는 것으로 확립되어있다라는 것엔, 아니 낯설어 할 수가 없습니다. 낯설어... 해서도 안되겠지요. 개인으로서의 일본인은 친절하고 공중도덕 잘 지키는 등, 매우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으나, 집단으로서의 일본이 보여주는 정치·역사적 관점은 결코 매력적이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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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사회를 지배하는 핵심적인 것이 제도라고 보고 가장 중요한 것을 '국익'으로 파악한다. 국가주의는 공적인 이익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가르치며 단결과 화합을 강조한다. 애국가과 국기에 대한 경례 같은 의례는 이런 국가주의를 자극하고 국가와 나를 일치시키는 역할을 한다."

- 하승우, 「아나키즘」중 p143, 책세상, 2008. ​ 

단 한 게임도 보지 않는 K리그이건만, 그래도 국가대표의 경기가 있다면 보게 되듯, 순전히 개인의 경기인 프로 골프에서 한국 선수가 우승했다라는 것이 우리에게 희열을 안겨 주는 이유를, 이것이 차마 우리 민족의 습성이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은, 하지만 언제인지 모르겠으나 꽤나 오래 전부터 우리들에게 전해져 온, 굳이 이것이 '국가주의'라는 명칭으로만 불리우는 것도 아닐 것 같은, "국가와 나의 일치"가 우리/나에게 너무도 자연스럽다라는 건, --- 그것이, 유발 하라리 버젼의 '상상의 질서(imagined order)'이건, 일본 '사무라이 정신'으로부터 지속되어 온 '야스쿠니 정신'이겠건, 혹은 우리 민족의 뭐, '단일민족으로서의 단결력'이 되었건, 어쩌면 이마저도 '자연스러움'보다는 '폭력과 강요'가 맺어놓은 과실이 아닐까,하는 좀 비참하기도 한, 그런 생각이 슬쩍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

우리 나라의 국가대표팀 감독도, 그가 어느 종목의 감독이건,

"누구나 애국자가 되기를 원하지만, 그렇다고 애국하기 위해서 무제한적 위험을 감수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도 잊으면 안 된다."

- 유시민, 「후불제 민주주의」중 pp101-102, 돌배게, 2009.

이 기본적 전제가 되어야 함을, 그리고 우리들도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주는 자세를 갖추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에 대한 국가의 강요가 옳지 않듯, 다수의 소수에 대한 강요, 혹은 권력있는 소수의 타인에 대한 강요 등도 또한 결코 옳을 수 없다라는 거, 이건 뭐, '최순실 - 박근혜 - 자본'의 연결에서 보았었듯, 너무나 정말로 간단한 거잖습니까. 국가의 부름에, 선수로서의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모험을 해야 하는 선택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 이것까지 '의무의 회피'라 불러서는 안 된다라는 걸 설마... 그들이 모르진 않겠죠.  



 

  1. 이 책 속 '국가'는 대체적으로 "군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항상 전쟁에 대비하고 있는 국가"(p16)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2. "홉스의 국가론을 한마디로 줄이면, 국가는 사회 내부의 무질서와 범죄, 외부 침략의 위협에서 인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정당하게 행사하는 '세속의 신'이다." - 유시민, 「국가란 무엇인가」중, 돌베개, 2011.
  3. "프랑스혁명에서 최초로 국민군이 생겨 국민들이 자신이 속한 국가를 자기 것(소유)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국민은 국가를 지키고자 자신의 생명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국가를 건설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에서 희생된 자들은 국가와 국민의 찬양을 받았다. 그렇게 전사자들이 찬양되면서부터 국민은 그 같은 명예를 찾아 자기 자신을 희생양으로 만들어나갔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근대 국민국가에서 영령 추모가 성립하고 일반화해갔다."(p177) …… "전시 중에 그리고 특히 전쟁이 끝난 뒤에는 국민국가의 최고 권력자들이 전사자들의 매장과 전쟁기념사업을 도맡았다. … 그러나 거기서 기념한 것은 전쟁의 공포가 아닌 영광이었고, 비극이 아닌 전쟁의 의의였다."(p167)
  4. "평범하게 죽어서는 동정 정도는 받겠지만, 결코 존경의 대상이 되거나 감사를 받을 수 없습니다. 유가족 여러분들은 군국에 자기 한 몸을 바친 내 자식 덕분에, 내 남편 덕분에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심심한 감사와 존경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p60)
  5. "야스쿠니의 정신은 전쟁터로 나서는 병사들만이 지닌 정신이 아니다. 그것은 전시나 평화로운 시기에도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한결같이 견지해야하만 할 일본 정신이다. 그렇다면 이 야스쿠니의 정신을 발휘하이 휘애서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 그것은 결국 다음과 같은 말로 집약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를 위해서라면 기쁜 마음으로 피를 흘려라. 사회를 위해서라면 기쁜 마음으로 눈물을 흘려라. 자신을 위해서라면 기쁜 마음으로 땀을 흘려라."(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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