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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서 길어 올린 한식 이야기 식사 食史
황광해 지음 / 하빌리스 / 2017년 9월
평점 :
몇년 전 까지만 해도, 이 블로그는 식당에서 찍은 음식사진들로 가득했었답니다. 외식이 잦다보니 그렇게 사진을 찍을 기회도 따라 많았었기에 시작했었었거늘, 어느 순간부턴 사진을 찍기 위해 외식을 하게되더군요. 그게 싫었고, 때마침 카메라도 맛탱이가 가고 하는 시점이 겹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블로그에 올리는 글의 내용이 바뀌게 되었었죠. 그때에도 그랬으며, 지금은 더더욱, 음식을 만들줄 모르는 사람인 건 변함이 없고, 음식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것도 여전하며, 딱히 그런 지식을 알고 싶어하는 마음도 없어왔습니다만, --- 이 책에 대한 소개의 글을 보는 순간, '술자리에서 안주에 대한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정도의 장착에는 도움이 되겠다싶어 받아 펼쳐 읽었었고, 그 속엔,
당면(唐麵)은 녹말가루로 만든 국수다. 우리는 중국을 '호胡' 혹은 '당唐'으로 불렀다. '호'는 청나라, 오랑캐 등 부정적인 면이 강하고 '당'은 긍정적인 냄새가 강하다. 호빵, 호떡은 오랑캐, 청나라 산이라는 느낌이 강하고 당면은 긍정적인 '중국산'이라는 느낌을 준다. 당면은 1910년대 중국에서 건너왔다. (p169) …… 당면은 일본인들이 만든 공장 대량 생산 간장과 더불어 잡채에 스며든다. '당면잡채'다. 궁중음식도, 우리 음식도 아니다. 나라가 망하고 난 후에 들어온 식재료, 당면이 주인 노릇을 하는 당면잡채는 한식의 아름다움을 살린 음식이 아니다. 채소 맛으로 먹어야 할 잡채가 당면과 조미료, 감미료 범벅의 간장 맛으로 먹는 음식이 되었다. (p170) …… '궁중잡채'는 코미디다. 당면은 국권침탈 후 한반도에 등장한다. (p285)
술자리에서 아는 척 한두 번 정도 할 수 있는 지식 뿐만이 아닌, 술자리에서의 이야기 정도로 그칠 수는 없겠는 내용들도 또한 들어 있더군요. 이 책의 저자인 황광해의 이러한 주장을 딱히 반박할 만한 지식이 없는 저로서는 이것을 사실이라 받아들일 수 밖에 없고, 그러다보면 소위 말하는 '비싼 한정식집'에선 당면잡채를 내놓으면 안되는 것일텐데~하는 생각을 해보게도 됩니다. 그러니까 --- 제목부터가 '식사(食事)가 아닌 '식사(食史)'인 이 책엔, 음식에 관심이 좀 있는 분들 뿐 아니라, 음식을 업(業)으로 하는 분들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좁고 깊은' 지식도 들어 있다는 것이죠.
"'당면잡채'는 1910~1930년대 시작된 음식이다. 조선의 궁중에는 있었을 리 없다."(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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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에, 저자 황광해의 초점은,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몰랐던 것을 새로이 알게 되는 것보다는, 잘못 알고 있어왔던 것들을 제대로 알게되는 것에 맞추어져 있어 보입니다. 예를 들어 김치를 '우리 고유의 음식'이라 말하는 것은 틀렸다라는 저자의 주장이 그러하지요. "김치의 주요 요소인 배주, 무, 고추는 모두 외부에서 전래한 것"(p164)인데 김치가 우리 '고유'의 음식일 수가 없다라는 겁니다. 저자는 --- 김치는 우리의 '전통적'인 음식이고, 같은 발효음식인 자차이나 쯔께모노와 차별되는 점은 다름아닌 "끊임없는 변화, 발전"(p164)이라는 의견을 개진합니다.
여름철 회자되곤 하는 "보양식으로 민어가 일품, 닭이 이품, 개가 삼품이라는 말도 엉터리다. 근거가 없다"(p78)라 단언하는 저자는, 또한 "개고기는 일상적으로 먹는 상식(尙食)"(p78)이었으며, 한식에는 딱히 보양식 같은 게 없다고 알려줍니다. '밴댕에 속알딱지'란 표현으로, '속이 좁은 것'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밴댕이에 대해서도, 그 작은 생선이 속이 좁고 자시고할 게 뭐가 있느냐며, 밴댕이는 단지 "속이 약한 것"(p136)이어, 내장이 빠르게 상하고 따라서 산지로부터 멀리 운반되지 못하고, 그러니 고급 음식인 횟감이 되지 못하여 사람들로부터 괄시받게 된 것이라는, 술자리 안주에서 나누어질 수 있는 넒고 얕은 지식들도 이 책 속엔 들어 있습니다. 또한,
조선 시대엔 소의 도축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었다라는 점도, 저는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었으며, 그러한 엄격한 제한으로 인해 --- "조선 후기, '명절이 되면 갑자기 절름발이 소가 늘어난다'는 풍자가 떠돈다. 농사 못 짓는 소는 도축해도 괜찮으니 갑자기 절뚝거리는 소가 늘어난 것이다"(p72)와 같은 '선조의 지혜'엔 뭔가 애잔한 웃음이 지어지기도 하지요. 이 책 속엔 뭐 이처럼, 지식의 수정(correction)과 전달(delivery)만 있는 건 아닙니다.
'영계백숙'의 한자어가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영계'란 단어가 '어린 닭'을 의미한다해도 설마 이 때의 '영'이 영어의 'young'에서? 정도의, 해결할 의지 없는 의문만 가지고 있었더랬죠. --- "닭고기를 부드럽게 쪄낸 것"(p67)을 의미하는 '연계백숙(軟鷄白熟)'에서 온 것이며, 따라서 닭의 연령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합니다. '연계'가 '영계'로 발음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삼계탕이 '어린 닭'을 재료로 하는 음식이란 현실에 대하여, 저자 황광해는 다음과 같이 비판합니다.
삼계탕 사업은 치밀하다. 닭 한 마리는 반드시 550g이고 뚝배기는 그 치수에 꼭 맞다. 별맛은 없다. 그저 '닭 한 마리를 나 혼자서 다 먹어치운다'는 욕심만 남았을 뿐이다. 맛이 없으니 조미료 범벅에 각종 정체불명의 견과류를 넣는다. 닭고기 국물은 달다. 왜 또 조미료를 더하는지도 아리송하다.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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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재료와 음식에 대한 꼼꼼한 기록"(p5)이란 추천사와는 약간 어긋나는 부분들이, 예를 들어, 저자가 꽤나 자세하게, 반복하여 서술하고 있는 음식인 '신선로'와 관련하여선 두 가지나 발견됩니다.
신선로는 신선 神仙과는 관계가 없다. 중국에서 건너온 '새로운 형태의 그릇(新設爐)'에서 비롯된 표현이라는 주장이 정확하다. 쇠고기 먹는 일이 잦아지면서 중국에서 새롭게 받아들인 그릇이 바로 신선로 그릇이다.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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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주장에는 신선로라는 이름을, 조선 후기 중국에서 건너온 새로 전래한 그릇이라는 표현에서 찾는 경우도 있다. '신설로(新設爐)'가 신선로로 변했다는 주장이다. 일견 타당성이 있지만 이미 조선 초, 중기 신선로라는 표현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그 주장도 허점이 있다. (p262)
에서 보이듯, 한 사람의 설명이라고는 이해되지 않는, '정확하다'와 '허점이 있다' 사이의 꽤나 큰 차이가 보여지고 있지요. 또한 신선로와 비슷한 일본의 음식인 '스기야키'를 설명하는 부분에선,
(신선로와) 비슷한 음식으로 일본에서 건너온 "승기악탕 勝技樂湯"도 있다. "기생보다 더 즐거움이 큰 음식"이라는 뜻이다.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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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기악탕' 등을 두고 "기생의 즐거움을 이기는 음식"이라고 강변하는 것도 어색하다. 승가기, 승기악은 모두 스기야키를 나타내기 위한 차음일 뿐이다. (p90)
오랜 기간에 걸쳐 신문에 연재한 글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내었다보니 발생한 듯한, 위와 같은 서술의 충돌은, 음식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저같은 독자에겐 좀 당황스러울 수 밖엔 없지요. 어쨌든, '승기악탕'이 '스기야키'의 차음이라 해도, 그 표현을 '승기악탕 勝技樂湯'으로 구성하여, '기생의 즐거움을 이기는 음식'이란 뜻을 만들어낸 우리 선조들의 해학에는 Two thumbs-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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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로는 한식으로 여기기 어렵다. 한국의 어느 가정에서도 신선로를 먹지 않는다. '궁중'의 이름을 뒤집어씌워 몇몇 음식점에서 내놓을 뿐이다. 일반적인 가정에서 먹지 않는 한식은 없다. (p260) …… '요리'는 일상의 음식이 아니다. 술집 안주다. 화려한 술안주를 '조선음식, 한식'이라고 우기면 곤란하다. (286)
민중의 삶과 유리된 음식에, '우리 고유의 음식'이란 단어를 붙일 수 없다는 저자의 믿음은 확고합니다. 일상의 '음식'일 수 없는 '요리'가 '한식'을 대표하게 된 현재의 잘못된 인식의 기원을 저자는 "조선 최초의 요릿집"(p284)이라 불리우는 '명월관'이라 주장합니다. '조선왕실의 마지막 대령숙수(待令熟手)'였다라 알려져 있는 안순환은 그저 친일파인 술집 주인이었을 뿐이며, 그저 "조선궁중의 잔치음식이란 미명 아래 기생들의 춤과 노래가 범벅된 비싼 술안주를 팔았"(pp286~287)던 장사꾼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거죠. 뭐 이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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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에 지은 죄가 커 금생에 두부를 만든다"는 말이 있다. 두부를 만들기 힘들다는 뜻이다." (p24)
지금이야, 김밥천국에서 5-6천원이면 순두부찌개를 먹을 수 있고, 어지간한 술집에서 1만5천원 정도면 따끈따끈한 두부김치를 먹을 수 있는 세상이지만, --- 우리의 조상님네들은, 전생에 지은 죄까지 들먹여질만큼, 두부를 만드는 것이 힘들었던 시절을 사셨어야 했나봅니다. 공장에서 어렵지 않게 찍어내는 두부의 맛에도, 종종 감탄을 하곤 하거늘, 그렇게 노고를 들여 제대로 만들어낸 두부는 얼마나 맛있었을까요? 반면, 어제 저녁 저희 세 식구의 배를 가득 채워주었던 생선회가, 조선시대엔 임금님조차 쉽게 드실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란 생각을 해보면 뭔가, '나중 태어난 자의 행복'같은 게 새삼 감사스럽고 막, 그렇기도 합니다. 암튼!
이 책에 대한 추천사를 쓴 요리사이자 음식칼럼니스트마저 "음식 칼럼이라는 얄팍한 동네"(p4)라 표현하는, 블로그를 비롯한 각종 SNS에 올리는 글에의 젤 만만한 소재가 음식 사진 찍는 거라는 요즈음, 그런 소재인 음식을 색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라, 그저 가볍게로는 누군가가 '죽과 미음의 정확한 차이가 뭘까?'라 궁금해 할 때, 이 책의 43페이지가 문득 떠올라 그에 대한 답을 알려줄 있을, 뭐 그런 정도의 재미도 얻을 수 있는, 그렇게 책꽂이에서 종종 뽑아 뒤져보게 될 듯 싶은 그런 책... 이 아닐까 싶네요.
...금연 137일째
- "중국에는 '중국 김치'라고 부르는 '자차이'가 있다. 일본인들은 지금도 여러 중류의 '츠케모노'를 먹는다. 모두 채소 발효식품으로 김치와 비슷하다."(p164)
- '조선은 '3금 禁'의 나라다. 금속, 금육, 금주다. 소나무 베지 마라, 쇠고기 먹지 마라, 술 마시지 말라는 뜻이다. 모두 농사를 잘 짓게 하고 곡식을 아끼기 위해서 만든 원칙이었다. 먹고 사는 것은 농사에 달려 있다. 소는 농사에 필수적이다. 식용 대상이 아니다. 개인의 도축은 원칙적으로 금했다. 궁중 제사나 외국 사신 접대 등에만 제한적으로 쇠고기를 사용했다. 소의 밀도살은 중죄였따. 초범이라도 곤장 100대에 징역 3년의 벌을 받았따. 밀도살로 발각되면 온 가족이 천민이 되어 역참에 노비로 배속되었다."(p46)
- "'임금님 진상품일 정도로 귀한 생선'이라는 표현은 틀렸다. 위어가 대단한 맛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다. 바다 생선 중에는 별맛이 없는 축에 속한다. … 위어를 궁중에서 횟감으로 사용한 이유는 간단하다. 구하기 쉽고 궁궐까지 운반하기가 그나마 쉬웠기 때문이다. 조선시에데는 양천(행주대교 언저리), 교하 등에서 위어를 잡을 수 있었다. … 밴댕이는 위어보다 더 빨리 상한다. 결국 횟감용 생선은 위어다. 서빙고의 얼음을 양천 등으로 옮긴다. 잡은 위어를 얼음에 재워 궁궐로 운반한다. 운반은 말로 했을 것이다. 양천은 도성에서 먼 곳이다. 횟감용 생선을 위한 절차가 참 복잡했다." (p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