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신체의 소리와 힘)의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유익˝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수업시간(특별히 국어 시간)에는 그날 배울 본문을 한 사람씩 일으켜 세워서 `읽기`를 했다.

말하자면 `낭독`을 했다.
나는 읽기가 좋아서 내심 선생님께서 나를 불러 주기를 매 시간마다 기대하곤 했다.

또 학예회(발표회나 축제) 등을 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순서가 시나 고전의 문구들을 낭송하는 시간들이었다.

그 시절에는 많은 시를 암송하는 것도 예사였다.

그리고 일전에 몇 사람이 모여 함께 소리내어 책을 읽는 `강독` 모임에 참여했는데 이 또한 매우 신선한 재미와 즐거움을 선사했다.

간혹 성경을 읽을 때도 소리내어 읽기를 하면, 소리없는 묵독으로만 읽을 때 놓쳤던 이해와 감동을 새삼 발견하기도 한다.

`소리내어 읽기` 즉 `낭독`(낭송)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귀로 들어오면서 선명하게 이해되고 기억하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

흔히들 인간의 목소리보다 더 좋은 악기는 없다고 하는데, 나도 모르게 낭독(낭송)의 묘미를 어떤 이해나 논리보다 먼저 정서적으로 공감하고 즐겼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런 기쁨의 근원적인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늘 궁금했는데, 이 책의 저자는 이를 인간의 보편적인 소리 즉, `말`의 소리와 파동, 리듬에서 찾아 설명한다.

˝말은 로고스이다. 로고스는 지성, 진리로 번역되기도 한다. 말과 지성, 말과 진리의 직접적 관계를 보여주는 셈이다. 즉, 말은 진리를 표현하는 소리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요1:1)! 이것이 기독교의 창조론이다. 말씀이 곧 신이다. 말씀이 세상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신-말씀-창조, 이것이 로고스를 둘러싼 항목들이다.˝(p65)

태초의 말, 소리로부터 신과 인간의 교감이 이루어지며 곧 인간의 몸(목소리)은 언어의 도구이고, 언어는 인간의 몸을 공명시키는 노래다. 그러니 언어에서 길을 찾아야 하고, 진리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어를 통해 `언어 너머`의 세계로 가는 것, 그것이 진리의 길이자 인간의 길이다. 이 소리들을 문자적 형상으로 옮긴 것이 글이고 곧 책이다. 책이 로고스의 보고가 된 원천도 여기에 있다.˝(67)

이로써 천지만물은 문장이고 말로 소리내어 읽고 소리와 파동으로 리듬을 가지며 귀를 열게 하고 듣는 만큼 말하고 이해하고 깨닫게 된다.

˝듣기와 말하기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요, 거기에 따라 삶이 창조되기도 하고 파괴되기도 한다.˝(70)

더 자세하고 긴 이야기는 생략하고,

˝진리로 향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평범하면서도 고귀한 말--소리-로고스는 다시 대중적으로 복원되어야 한다.(74)

인간의 헛된 사상과 지독하고 탐욕스런 감정을 부추기는 요란한 비트의 음악이나, 입과 감정을 침묵시키는 스마트폰, 활자의 정기를 외면하는 이 시대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정리하면, 북(book)-소리는 원초적으로 찰떡궁합이라는 저자의 말이 와닿는다.

˝책은 로고스를 담은 것이고 로고스는 창조의 언어라고 했다. 말씀은 우주를 창조하고 생명을 탄생시켰다. 천지와 함께 생멸하면서 허공을 가득 메우고 있다.
ᆢ이 흐름을 `절단`, `채취`한 것이 인간의 언어다. 그 언어를 다시 옮긴 것이 `문장` 이고 `책` 이다. 언어가 신성한 활동이듯, 책도 그렇게 우리 앞에 출현 했다. 책에 대한 전 인류적 경외감은 여기서 비롯된다. 하여 세계의 모든 학교에선 책을 읽는다. 인종과 지역에 상관없이 배움의 한가운데는 언제나 책이 있다.˝(89)

인간의 활동 가운데 이것을 대체할 수 있는 일이 또 있을까.

˝로고스는 말씀이고 소리요 파동이다. 만들어진 수많은 소리와 파동의 결들이 있다. 때와 장소, 주체의 신체적 상태에 따라 의미를 생성한다. 그것이 곧 창조다. 하여, 책은 소리내어 읽어야 한다.˝(90)

지금 시대는 묵독만이 책읽기라는 편견에 빠져 있다. 낭독, 낭송이 사라져 버렸다. 예전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낭독이 대세였다. 책과 소리가 멀어지면서 책과 사람들과의 관계도 어색해졌다고 한다.

이제 개별적이고 고립적인 묵독의 한계에만 머물지 말고, 잃어버린 청각의 소리와 파동, 울림(에코)을 되찾아 보자.

진리는 말-소리-울림-에코로 현현되고 이런 접속을 통해 인간은 사유하고 상상하며 깨닫고 소통하며 생명있는 존재로 발전하는 것이겠다.

텍스트와 존재의 간극없는 일치(117)!

˝낭송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다.
온 몸의 세포와 뼈들을 진동시키고 영혼에 공명을 일으킬 것이다. 기질이 바뀌고 삶이 달라지는건 말할 나위도 없다.˝(116-117)

낭독의 추억을 되살려 보자~
낭송의 시간을 만들어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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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나이다 주께서 나를 죽게 하사 모든 생물을 위하여 정한 집으로 돌려보내시리이다˝(욥30:23)

`죽음`을 묵상함이 크나큰 유익이다.
지난 달부터 유난히 죽음을 묵상하던 터,

왜 진작부터, 더 일찍이 날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묵상하지 않았던가ᆢ

할 수만 있다면, 매일 잊지 않고 기억하며, 시간을 정하신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실 일을 바라보고 기도해야겠다.
..

˝모든 사람은 죽음에 의해 이 세상에서 물러난다. 반드시 죽는다.

사람의 인생은 죽음이라는 삼키는 심연으로 흘러가는 개울이다.

영원한 경륜을 세우신 주 하나님이 모든 자들에게 정하신 바다.

˝바람을 주장하여 바람을 움직이게 할 사람도 없고 죽는 날을 주장할 사람도 없다˝(전8:8)

인간의 몸은 닳아 없어지는 재료들로 되어 있다.

인생은 죽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아동일 때는 가련하고 하찮은 즐거움으로 시간을 보낸다.

젊을 때는 꽃이 만발하더니 신속히 떨어져 버리고 급하고 어리석고 생각이 짧아서 허무하고 자신을 즐겁게 하며 쾌락의 홍수를 뚫고 지나간다.

중년의 때, 많은 어려움과 고통의 가시들에 둘러싸여 염려하고, 일의 계획과 업적을 내려놓아야 할 때 더 큰 쓰라림을 발견한다.

노년이 오고 연약함과 수고와 슬픔이 이어진다. 어느새 무덤의 문턱에 선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다.

모든 사람들이 이때 또는 저때에 죽는다.˝(인간 본성의 4중 상태, p333-338)



세상을 아무리 강하게 잡으려 해도, 소유하려 해도 곧 없어질 것이요 빠져나갈 것들이다.

지나온 시절을 돌아봐도 이 세상에 있는 기간은 매우 짧다.

무엇에든 넘치게 지나치게 마음을 쏟던지 두지 말아야지~

임시적인 것들로부터 마음을 저지하고, 비교하지 말고 허무한 것에 주목하지 말아야지~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지나가는 외형이라고 주께서 거듭 강조하시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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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통의 시대`라고 한다.
다들 소통이 안된다고 아우성이다.

말로 충돌하고, 감정적으로 치달아 폭발하고, 비방과 폭언, 욕설이 난무한다.

말의 맥락이나 배후, 정황은 무시하고 현상과 자기 이해만 내세우니 오해만 쌓이고 등돌리면 그만이다.

책에서는 이와 같은 `불통의 원인`을, ˝남의 말을 듣지 못하면 자신이 내는 소리도 정확히 듣지 못하는 법˝(36)이라는 말에서 찾는다.

듣는 귀와 말하는 입이 서로 연결되면 타자와의 소통도 그리 어렵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서로 ˝다른 사람의 화법(내용)들이 교차할 때 소통이 시작된다˝(40)고 한다.

즉 ˝같은 어조로, 같은 견해를 가진 사람끼리 하는 건 소통이라기보다 동일성의 반복˝(40)일뿐이며, 서로 다르지만 뒤섞일 수 있는 것, 서로의 이해나 생각을 감지하고 상대방을 일깨워 줄 수 있어야 올바른 소통이 시작이다.

듣는 귀는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말하려는 입만 한껏 부풀려 있으니 그 입에서 쏟아지는 말들이 사람을 죽이는 독소에 불과할 뿐이겠다.

그러므로 듣지 않으려거든,

˝그 입 다물라~~˝


# 큐라스는 케어(care)의 라틴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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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서두만 읽었는데도 가슴 뛰게 하는 책이다.
폭풍 공감 내용이 마음을 냉큼 사로잡는다.

독학, 혼자 읽고 학습하는 것이 익숙한 나에게 최대의 학습동기 역시 소그룹모임이였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어설프고 부족해도 함께할 때,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무엇이 엉성해서 정리가 덜 되는지 알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보다 정교하게, 잘못 알았던 것은 열혈학습이다.

이와 같은 선순환은 다시 학습동기와 질문하는 힘으로 발휘된다.

찾아 보고 읽을 책들과, 질문하며 사유를 나눌 동료나 선생님(강의) 한 두 사람이면 족했다.

기억의 저편이 다시 떠오르면서 안주했던 내 정신에 불을 당겨주는 듯 하다. 확~~

˝현재 자신의 지식 정도가 얼마나 얕고 불완전한지를 고통스러울 만큼 깊이 깨달아야 한다˝(아이작 와츠)

저자가 경험한, 나도 알 것 같은ᆢ,

˝굶주린 정신에 선사하는 평화˝를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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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2-15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뵈뵈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뵈뵈 2016-02-15 18:33   좋아요 0 | URL
늘 먼저 인사 건네 주셔서 감사해요ᆢㅎㅎ
 

처음에 사람의 본성 안에는 악한 것이 전혀 없었는데, 지금은 선한 것이 전혀 없다.

아담은 자기의 모양대로 자녀를 낳아, 죄와 사망이 모든 자에게 전달되었다.

더러운 부모로부터 나오는 자녀는 더러운 자녀일 수밖에 없다.
죄악된 자녀를 낳는다.
부정한 자녀를 낳는다.

인간의 자연적인 본성을 자녀들에게 전달해 주지만 자신의 은혜를 전달해 줄 수는 없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니라˝
연약함이 아니라, 부패하고 죄악되다.
본성적으로 그렇다.
육이기 때문에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
매우 비천한 상태까지 내려가 있다.
짐승들과 비기는 상태에 있다.

지금 사람은 땅의 일만 생각하고 있다.
짐승들이 어떤 면에서 천박해진 인간들보다 낫다.
사람은 소와 당나귀보다 더 어리석다.

피조물들의 가장 열악하고 못된 특성을 다 합쳐 놓은 것과 같은 존재임을 드러낸다.

인간 안에는 사자의 사나움, 여우의 간교함, 들나귀의 완고함, 개와 돼지의 더러움, 뱀의 독 등이 합쳐져 있다.

비록 아이라도 그들의 행동으로 그들의 마음의 편향이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이 세상에 발생하는 수많은 끔찍한 죄를 보라.
사람의 죄악이 여전히 이 땅에 크고 음탕하고 부정하고 비열하고 불경하다.

온갖 정욕과 교만과 야망, 고집과 허망함과 죄악된 호기심의 홍수 때문에 이 세상이 처해 있는 끔찍한 난리를 보라!

사람은 사자와 늑대로 변해 서로 물고 삼킨다.

얼마나 사소한 일로 서로에게 칼을 차는지를 보라!

모든 사람들이 혀나 칼로 공격하는 요동치는 세상을 볼 때, 이런 폭력의 불길은 모든 머리가 병들었으며 모든 사람이 온전하지 못함을 보여 준다.

결국 기괴망측한 인간의 본성과 의도는 자기 법을 만들고 자기 멋대로 행하고 무모하며 정욕에 굴복 당하고 본성은 더욱 극악해져서 새로운 범죄만이 발생한다.

환자의 침상에서 많은 신음 소리는 들어도 결코 무덤으로부터 들려오는 신음 소리는 듣지를 못한다.
사망이 철저하게 지배하기 때문이다.

마땅히 절제해야 할 것들에 자신을 방치하고, 부패한 본성이 넘지 말아야 할 울타리를 뛰어넘는 데서 즐거움을 취한다.

미혹의 소리에 얼마나 신속하게 교섭하는가
감각을 즐겁게 하는 눈이 얼마나 밝은가
양심을 황폐케 하고, 죄를 변명하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예사로다.

지금은 무질서와 혼돈의 덩어리요, 악한 일을 하면서 늘 분주하다.

영적인 것들에 대한 구원의 지식도 무시하고 영적인 실체를 아는 데 있어서 깨닫는 마음도 듣는 귀, 보는 눈도 사라질 지경이다.

설령 진리에 대한 개념은 있어도 진리의 말씀에 담긴 그 진리들을 깨닫지는 못한다.

진리를 믿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고백과 삶이 불일치하고 자신의 영혼의 상태에 대해서 그렇게 무관심할 수 있는가?

거짓과 허위에 치우치는 본성만으로 포장하고 위장된, 중생하지 않은 자들이 자신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꼴이라니~!

병들었지만 치료받기를 거부한다.
오히려 병을 너무나 사랑하여 의사를 혐오한다.

얼마나 선을 싫어하는지,
얼마나 경건의 의무에 쏟는 것을 힘들고 괴로워하는지,
전파된 그리스도의 말씀을 얼마나 멸시하는지~!

경건한 신자는 부패한 옛 본성을 죽이려고 안간힘을 써야 한다.
대항하고 저항해야 한다.
하찮게 여기지 마라~

영혼을 파멸시키는 괴팍하고 기형적인 사고들과 행태들에서 돌이키고 울타리를 치라

오직 모든 것을 이기는 은혜만이 어그러진 생각을 붙들어 진리를 믿고 따르도록 인도하심을 기억하라~~

p54-101, 내맘대로(순서, 일부 표현?) 요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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