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ᆢ
잠깐 몇 마디 실없는 소리라도 좋으니, 머릿속에서 번역되지 않고 가슴에서 바로 나오는 이야기가 하고 싶네.(215)
동주는 떠오르는 시상을 붙잡고, 심장과 혈관 속에서만은 자유롭게 흘러 다니는 우리말을 찾아, 한 편의 노트에 옮겨 적는 시간이 좋았다.(229)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얼마나 멋지게 구원받고 있는 것인가!˝(233)
도서관의 책들을 보면 동주는, 양심적인 지성은 세계 곳곳에 존재하며, 사람들의 가슴에는 여전히 보편적인 선함, 정의감, 인류애 등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끔찍하고도 삭막한 이 시대를 버텨 갈 힘이 되기도 했다.(244)
말과 글이 다르고 지내는 곳이 달라도, 사람들이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며, 살아가는 모습이란ᆢ.
자신이 놓인 시대와 사회의 제약 속에서도 사람들은 삶이 던져주는 질문을 붙들고 열심히 해답을 차으며 살아간다.
어떻게 살 것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더불어 행복한 삶을 어떻게 누릴 것인가ᆢ. 생명마저 빼앗아 버리는 야만의 시대라 해도ᆢ.(245)
만 이십칠 년 이 개월이 채 못되는 삶.
동주가 태어날 때부터 조국은 남의 나라 식민지였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동경과 시와 어머니ᆢ
즐겨 외우고 즐겨 웃던 시와 친구들을 두고,
고요히 바람에 스치는 별들만이 동주의 칙칙한 감방을 지켜줄 때, 그의 심장도 천천히 멈추었다.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바람이 분다.
목이 메어 온다.
귀뚜라미가 운다.
마치 동주가 감방에 들었던 같은 울음소리처럼~
˝너의 귀뚜라미는 홀로 있는 내 감방에서도 울어 준다. 고마운 일이다.˝(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