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학교 - 삶의 한복판에서 마주한 인생수업
송태인.최진학 지음 / 미디어숲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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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고전을 따분한 책으로 생각하는 것은 고전을 오늘의 삶에 제대로 연결시켜 적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전을 삶에 적용하지 못하는 것은 고전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동서양의 여덟 권의 대표고전을 살아있게 만드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대표고전으로 뽑은 것은 플라톤의 <국가>, 장자의 <남화진경>, 맹자의 <맹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공자의 <논어>, 석가모니의 <금강삼매경>, 노자의 <도덕경>이다. 모두 굵직굵직한 대표고전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 엄청난 고전들을 어떻게 한권으로 묶었을까 궁금해진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읽기가 쉽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와 마을 주민, 공자와 학생, 장자와 학자, 아리스토텔레스와 직장인, 맹자와 정치인, 아우구스티누스와 종교인, 석가모니와 주부, 노자와 과학자의 대화를 가상으로 설정하였다. 참신한 시도다. 그리고 각 책의 대표적인 사상을 쉬운 말로 잘 설명했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와 마을 주민의 대화 속에 ‘나눔경제론’이 언급되었는데, 이는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핵심 사상 중 하나다.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직장인의 대화에서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나오는 품성의 덕과 자제력 없음, 중용의 가치 등을 잘 설명하고 있다. 우주 자연의 진리를 깨닫고자 했던 노자와 과학자를 연결시킨 것도 훌륭하다.

 

갑자기 저자가 궁금해졌다. 이 책 날개에 수록된 프로필에 따르면, 저자 송태인과 최진학은 ‘국제자연치유대학’과 관련이 있는 분들이다. ‘국제자연치유대학원’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대한불교승인으로 출연된 비영리 단체란다. 대학원은 생긴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았다. 어쨌거나 인간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 교육과 내적치유능력을 구축하고자 세운 단체이며, 이 책은 이런 목적에 맞추어 출간된 듯하다. 고전들을 통해 잃어버린 진정한 ‘나’를 찾아보고, 나를 찾음으로 ‘너’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고, 나아가 ‘우리’에 대한 인식을 가져 보자는 시도인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장점이 곧 약점이기도 하다. 한 권을 오래 연구해도 다 이해할 수없는 위대한 고전 여덟 권을 한 책에 담으려니 깊이 다룰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을 입문서로 삼아 여덟 권의 고전을 하나씩 섭렵해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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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미술관 - 잠든 사유를 깨우는 한 폭의 울림
박홍순 지음 / 웨일북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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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모든 철학은 한 때 미술의 연인이었다고 주장하며, 철학과 미술의 만남을 모색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미술책들은 작품 자체에 대한 해석과 감상에 치중하는 반면, 이 책에서 미술 작품은 사유를 자극하는 하나의 촉매제 역할을 한다. 작가 박홍순은 마그리트의 작품을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마그리트의 <헤라클레이토스의 다리>를 통해 모든 만물이 변한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한다. 그리고 동일성과 반복의 개념을 날카롭게 구분하는 질 들뢰즈의 철학의 소개한다. 그리고 변화와 차이를 인정할 때 철학적 사고는 출발선에 서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마그리트의 <금지된 재현>을 소개한다. 한 남자가 거울을 보고 있는데 거울에는 남자의 앞모습이 아니라 뒷모습이 비추어진다. 마그리트는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표현함으로써 우리에게 충격을 준다. 거울로 뒷모습을 보는 일은 불가능하기에 이 그림의 제목이 <금지된 재현>이다. 한편, 일상적으로 접하는 현실을 재현하는 것도 사실의 일부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보고 안다고 하는 것, 실상은 얼마나 확실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저자는 로비스 코린트의 작품까지 말하며 철학자 디오게네스, 데카르트, 소크라테스를 거론하고 이들의 주장까지도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식이다. 마그리트의 작품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골콘다>, <빛의 재현>, <개인의 가치>, <음울한 미래>, <새를 먹는 소녀>, <붉은 모델>, <꿰뚫린 시간> 등을 통해, 다양한 철학적 주제들, 기호, 관계, 모순, 개별성, 욕망, 정상과 비정상, 예술 등을 생각한다. 마그리트의 작품들에 다양한 화가들과 철학자들을 연결할 수 있는 박홍순 작가의 박학다식과 그 철저한 사유방식이 독자의 흥미를 유발시키고 글에 몰입하게 만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내가 지금 철학책을 읽는 것인지 미술책을 읽는 것인지 헷갈렸다. 그런데 책을 중반 이상 넘어가면서 마그리트의 작품을 새로운 시각에서 보고 작가의 의도를 다양하게 해석해 보게 되었다. 말하자면 미술 작품을 감상하며 철학적 사유를 즐기고 있었다. 철학과 미술은 연인 관계에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수긍이 간다. 저자의 또 다른 책, <미술관 옆 인문학>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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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나를 위한 지식 플러스 - 커피가 궁금해? 올리에게 물어봐! ㅣ 나를 위한 지식 플러스
졸라(Zola) 지음, 김미선 옮김 / 넥서스BOOKS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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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라(Zola)라는 이름이 필명인 줄 알았는데 실제 이름(佐拉, Zuola)다. 저자 프로필을 보니, 중국의 인기 디자이너이며 일러스트레이터다. 지속적으로 부엉이 올리(Olly)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단다. 나는 커피 매니아다. 가족 중 한 명은 작은 카페도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커피에 관한 책을 한 열권은 읽었다. <커피, 나를 위한 지식플러스>는 커피에 관해 내가 읽은 책 중에 가장 재미있고 유익했다. 부엉이 올리(Olly)라는 녀석 귀엽고 차밍하며 때로는 발칙하고 음흉(?)하기까지 하다. 정말 마음에 드는 친구다. 커피의 유래와 커피콩에 대한 이야기는 익숙하다. 그래도 보는 재미가 있다. 커피의 양대 가문이 아라비카와 로부스타인 줄 알고 있었는데, 정확히는 ‘아라비카’와 ‘카네포라’란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세계각지의 커피 문화를 소개한 Part Two다. 미국, 이탈리아, 프랑스, 터키, 동남아시아의 커피문화를 알려준다. 지인이 얼마 전 터키에 다녀오면서 터키커피를 가져왔다. KURUKAHVECi MRHMET EFENDi라고 쓰여있는데, 어떻게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드립으로 내려 마셨는데, 영 ‘아니올시다’였다. 그러다 이 책에서 터키 커피에 대한 흥미로운 설명을 읽었고, 주전자를 준비해 미세한 커피 가루를 넣고 팍팍 끓였다. 상당히 걸쭉한 커피가 만들어졌다. 바디감이 묵직하다. 나는 설탕은 넣지 않고 먹는데, 이 커피는 넣어야 할 것 같다. 이 책에 설명된 대로 얼음물로 입을 가셔 미각을 예민하게 하고 후루룩 마셔본다. ‘후루룩’ 소리를 내고 마시는 것이 터키커피 문화란다. 향초도 피어 놓았다. 분위기는 나는데 내 취향은 아니다. 터키에 가서 여인이 내오는 커피를 마셔야 터키커피의 진가를 제대로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 덕에 동남아시아 커피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커피는 맛없고 싸구려라고 생각했는데, 나름의 독특한 커피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내가 한참 이 책을 읽고 있는데, 지인이 또 이 책을 선물했다. 두 권 모두 카페 테이블에 놓아두어야겠다. 나도 가끔 가서 들추어 보고, 손님들도 보았으면 좋겠다. 커피에 대한 상식이 풍부해지면 커피를 더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주장대로, ‘가장 맛있는 커피’란 없다. 단지 자기 입맛에 맞는 커피가 있을 뿐이다. 카페의 모든 종류의 커피를 마셔보면서 슬쩍 슬쩍 이 책을 통해 확인해 보고 싶다. 이건 어느 나라 식 커피인가? 자, 이 책을 들고 카페로 Go,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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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이와 같으니 - 성경이 말하는 천국에 관한 모든 것
칩 잉그램.랜드 위트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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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독교인이라 자처하면서도 천국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못했다. 이 책을 통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천국은 무엇이며 또 어떤 곳인지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이 책의 저자는 천국은 결코 막연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는 천국과 관련된 성경구절들을 소개하면서 천국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독자에게 심어주려고 한다. 천국에 대해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으면 삶에 해롭기 때문이다.

 

저자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다. 주일 아침에 목사가 성도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고 하자. “만약 오늘 천국에 갈 수도 십년 뒤에 갈수도 있다면 십년 뒤를 선택하실 분들은 손을 들어 보십시오.”(p. 75). 그러면 아마도 대부분은 십년 뒤를 선택할 것이다. 이유는 천국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천국에 대한 확신을 가진 사도 바울은 정반대의 고백을 했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고후5:8).

 

천국에 관해 우리가 그리 자세히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확실히 아는 것들도 꽤 있다. 천국에서는 웅장한 예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원히 예배만 드리는 곳이 아니다. 그 곳에서 우리는 왕노릇 할 것이다(계5:10). 또한 천국에서는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이들과 상봉한다. 천국에 대해 확신하게 되면 오늘의 삶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기 때문이다(고후5:10). 그 심판대 앞에서 성도들이 받는 심판은 천국과 지옥 중 어디를 갈지 판결 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각각 ‘선악 간에 행한’ 일에 대해 보상받는 것이다. 여기서 ‘악한 일’이란 ‘무가치한, 지속적인 가치가 없는’이란 뜻이다. 그렇다. 천국과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믿는 자들은 오늘을 가치 있는 일들을 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묵묵히 선한 일을 하며 살았던 무명인들은 천국에서 유명해질 것이다. ‘불심판’에도 타지 않는 공적에 대해 반드시 상급이 주어질 것이다(고전3:10~15).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말이 매우 인상적이다. ‘나의 달력에는 오늘과 그날 이렇게 두 개의 날밖에 없다“(p. 115).

 

기독교인들은 삶의 달음질을 멈추고 천국을 깊이 생각하며 다음 세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pp. 184~196). 첫째, 나는 천국에 갈 수 있는가? 둘째, 나는 영원한 시각을 품고 있는가? 셋째, 내가 사랑하는 자 중에 천국의 존재와 천국에 가는 방법을 모르는 자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기 전과 읽고 난 후, 나는 얼마나 달라졌나? 천국에 대해 새롭게 배운 것들은 많지 않다. 그러나 천국에 대해 생각하면서 천국의 존재에 대해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천국 백성으로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천국 백성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며 살고자 할 때 천국의 소망은 더욱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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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예술 - 소음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침묵을 배우다
알랭 코르뱅 지음, 문신원 옮김 / 북라이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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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으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인간은 방향을 잃고 방황한다. 신의 소리 혹은 내면의 소리를 들으려면 침묵의 언어를 배워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침묵에 관한 깊은 인문학적 통찰이 담겨있다. 조용히 곱씹어 읽으며 침묵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 때 비로소 나는 나 자신이 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저자는 침묵이 배어 있는 집과 문가에 침묵이 앉아 있는 방의 완벽한 침묵을 말한다. 그 방 안에 있는 사물들이 묵묵히 영혼에게 말을 걸어온다. 침묵을 마주할 수 있는 자연은 무엇일까? 밤, 사막, 산, 바다, 숲에서만 침묵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기를 잃은 도시 속에서도 침묵은 자리 잡고 있다. 그 침묵은 폐허가 된 유적에서도 만날 수 있다. 빅토르 위고는 <내면의 목소리>에서 3천년 후 파괴된 파리 풍경이 어떨지 꿈꾸며 침묵의 속성을 상상하려 애썼단다(p. 71).

 

나는 어둑한 예배당에 널리 퍼져있는 침묵을 떠올린다. 대학 졸업반 시절 어느 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도 모르게 집 앞 예배당으로 발길이 옮겨졌다. 나는 적막한 예배당에 앉아 있었다. 기도를 한 것도 아니다. 그냥 앉아있었다. 간혹 멀리서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공간에는 분명 침묵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때 한참을 침묵과 마주하였고 나는 내가 어느 길로 가야할지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다. 침묵과 마주하는 일은 나를 찾는 일이며, 동시에 종교적 체험이라 할 수도 있다. 저자는 “침묵은 기도 조건이어서 신의 말씀을 들을 준비를 하게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성서에 나오는 예수의 양아버지 요셉은 침묵의 사람이다. 침묵으로 모든 것에 응답한다. “요셉의 침묵은 귀를 기울이는 마음, 절대적 내면이다. 이 사람은 평생 마리아와 예수를 바라보았고, 침묵은 말의 자기 초월이다”(p. 114). 예수의 침묵이 무엇보다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간음한 여인을 끌고 온 군중 앞에서 예수는 침묵한다. 그 예수가 감람산에서 기도할 때, 신은 침묵한다. 신의 침묵은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가!

 

삶의 깊이를 발견하려면 침묵의 언어를 배울 필요가 있다. 내 삶이 더 성숙하려면 침묵에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잡다하고 무의미한 소리들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더욱 침묵을 사모하게 된다. 오래 전에 읽었던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를 다시 꺼내들었다. 더 깊이 침묵의 세계에 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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