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삶을 찾아서 - 거대한 도시에서 잃어버린 나를 찾는 자립과 연대의 기록
윌리엄 제임스 도슨 지음, 오수민 옮김 / 빈티지하우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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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가짜 욕망에 시달리는 삶에서 벗어나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단순한 삶을 추구하고 싶습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읽고 지나치게 극단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묘한 매력에 이끌렸는데, 윌리엄 제임스 도슨의 <단순한 삶을 찾아서>는 좀 더 현실적 대안을 제시합니다.

 

런던에서의 생활을 묘사하는 첫 장부터 몰입하게 됩니다. 저자는 도시의 매력과 그 속에서 먹고살기 위해 분투하며 느끼는 두려움과 긴장을 묘사합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성찰하면서 시대와 사회가 만들어 내고 부추기는 인위적 욕망이 우리를 노예로 만든다고 일갈합니다. 그는 시골에서의 소박한 삶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시골에서 가족과 함께 살 집과 땅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집을 얻고 힘겨운 노동을 하면서 그는 몸의 활력을 느낍니다. 도심에서의 삶이란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깨어나는 것 같았는데, 그러한 감정은 정신적 문제라기보다 육체적 문제였음을 깨닫습니다. 시골 생활에서 누리는 단순하고 평범한 즐거움이야 말로 가장 손쉽게 얻을 수 있고, 가장 오래 지속되는 것입니다. 그는 시골에서 살면서 무엇인가에 몰두하며 살아야 할 필요를 강렬하게 느꼈습니다. 그는 시골 생활에서 필요한 것을 스스로 해결하는 독립성의 가치를 배우면서 삶의 권태에서도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또 자연 속에서 모든 존재와 이웃으로 살면서 관계의 폭이 확장되는 기쁨도 누리고, 죽음조차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각이 열렸다고 고백합니다.

 

이 책을 마무리하면서 저자는 11장에서 ‘아픈 충고가 담긴 친구의 편지’를 소개합니다. 골자는 ‘시골살이가 도시가 요구하는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것’이라는 비판입니다. 친구의 비판에 따르면, 시골로 가서 사는 것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의 삶을 향한 그 어떤 용기 있는 시도도 없는 것입니다. 저자는 12장에서 이 비판에 대해 답합니다. 그는 ‘진보는 집단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위대한 개인이 앞서가고 그 뒤를 집단이 따르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기질에 걸맞은 방식으로 살아가면서 세상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인위적 생존 대신 ‘단순한 삶’을 선택하고 ‘정직한 노동’과 ‘온전한 만족’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이 진정 이 사회에 큰 유익을 주는 것이라고 저자는 생각합니다.

 

저자는 ‘자연을 사랑’하고 몸을 움직이는 ‘노동의 기쁨’을 알고 ‘문학에 대한 깊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기질이 저자가 시골에서 스스로를 지탱할 자원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책을 읽고 나의 삶을 돌아봅니다. 미국에서의 짧은 유학 생활을 빼고, 평생 서울에서만 살았습니다. 도시의 매력도 알고 있지만, 저자처럼 자연과 문학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평생 책상머리에 앉아서 산 사람으로 ‘몸을 움직이는 노동’에 대한 로망이 있습니다. 이 책이 ‘단순한 삶을 찾으라’고 나를 재촉합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그렇게 살아보라고 부추깁니다. 쉽진 않겠지만, 소박하게 살 각오가 되어 있다면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할 것입니다. 가슴이 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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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 기술 - 나는 지금 정말 나의 생각을 하고 있는가?
차새벽 지음 / 이비락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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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앨런 제이콥스의 <당신이 생각만큼 생각을 잘하지 못하는 이유>(2018, Kora.com)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쉽게 ‘확증편향적’ 사고와 판단을 내리기 쉬운지 알게 되었습니다. 차새벽의 <판단 기술>은 ‘우리는 정말로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우리는 모두 각자 최선을 다해 ‘합리적으로 판단’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정반대의 판단을 하고, 나와 다른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과는 대화조차 힘들어지는 것일까요? 이에 답하려면, 우리가 무엇인가를 판단할 때 그 토대가 되는 것에 무엇인지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을 내린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감정이 앞섭니다. 앨런 제이콥스는 이를 직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인간의 뇌는 기본적으로 감정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뇌는 감정적으로 이미 판단한 것이 옳음을 밝히기 위해 사후적으로 논리를 만들어 냅니다. 이 감정은 자신이 속한 사회 집단의 ‘아비투스’(habitus)에 위해 형성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온전히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입니다.

 

저자는 ‘우리의 감정과 태도는 언어와 역사 그리고 종교에 의해 길들여진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종교 권력, 정치와 사회 권력, 온라인 권력 등에 무비판적으로 판단을 맡길 때, 우리가 심각하게 잘못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비판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때로는 잠시 멈추는 법도 연습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이 쉽게 끌리는 유튜브 영상을 클릭하기를 멈추고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에게 흥미로웠던 챕터는 ‘4장. AI 시대, 판단을 통찰하라’와 ‘5장. 좋은 판단을 위한 윤리 감각’입니다. 에이전트 시대(Agentic Era, 주체로서의 인공지능기)가 열렸습니다. ‘알파고’가 인간 지식을 기반으로 학습하는 인공지능이라면, ‘알파고제로’는 인간 지식을 배제하고 규칙만을 제공했을 때 스스로 규칙을 이해하고 탐색하는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입니다. 이제 ‘알파제로’는 목적 달성을 위해 최적화된 인공지능입니다. 이제는 AI 스스로 사고 체계를 구성하는 단계로 이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인공지능은 악의 없이도 인간을 멸망시킬 수도 있습니다. 즉,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구를 멸망시키는 해로운 존재로 인식하면 얼마든지 비윤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먼저 ‘좋은 판단’을 하는 존재가 되어 ‘좋은 명령’이 무엇인지 AI에게 인식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인간이 먼저 윤리적 품격을 갖춘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좋은 판단’은 ‘옳은 것을 아는 것’에서 나오지 않고, ‘좋은 사람’에게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생각과 판단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깊이 있는 독서였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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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읽는 오디세이아
호메로스 지음, 최희성 편역 / 아이템하우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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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아이템하우스 출판사는 ‘스토리’에 그림을 담아 영화처럼 볼 수 있는 책을 만들곤 합니다. 이번에 펴낸 <하룻밤에 읽는 오디세이아>를 기꺼이 손에 잡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조금은 실망했습니다. 이 책에 실린 그림들은 거의 AI로 생성한 것들이어서 오히려 어색했습니다. <오디세이아>의 내용을 담은 명화들을 실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서사시를 ‘스토리’ 형식으로 풀어내는 솜씨가 돋보이는 책입니다.

 

이전에는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중심으로 읽었다면, 이번에는 텔레마코스의 각성이 오디세이아 전체 이야기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후에 텔레마코스와 오디세우스와의 만남과 복수 장면을 생각해 보면, 1~4권은 전체 이야기를 치밀하게 구성하는 역할을 합니다. 아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 오디세우스를 찾는 여정을 통해 실상은 자신이 누구인지 정체성을 형성하면서 용기, 명예와 같은 덕목을 쌓아갑니다.

 

물론 오디세우스는 험난한 항해를 통해 탐욕에 대한 절제, 안락의 유혹을 이기는 의지력, 위기에서 탈출하는 지혜를 발휘합니다. 폴리페모스는 ‘너는 누구냐’고 묻고는 대답하는 자를 잡아먹는 외눈박이 괴물입니다. 오디세우스는 괴물에게 “내 이름은 우티스(아무도 아니다)”라고 대답하고는 괴물의 눈을 찔렀습니다. 그 괴물은 동굴에 사는 키클로페스들에게 “우티스(아무도 아닌 것)가 나를 찔렀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아무도 그대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그것은 제우스가 한 일이니, 참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결국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이름을 ‘우티스’라고 한 계략은 멋지게 성공한 셈입니다. 그는 힘보다 지혜로 난관을 헤쳐나갑니다. 그는 미녀 키르케(쾌락 상징)에서 벗어나 하데스 궁(명계)에 가서 자신의 운명을 듣습니다. 그리고 사이렌의 유혹(중독 상징)을 이기기 위해 자신은 돛대에 묶습니다. 이 험난한 여정을 통해 그는 드디어 이타카로 돌아옵니다. 오디세우스의 항해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운명의 불가피성’ 사이의 끊임없는 긴장을 팽팽하게 드러냅니다.

 

후반부에서 오디세우스가 그의 아내 페넬로페의 구혼자들에게 복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거지로 변장한 오디세우스는 활 시합을 통해 자기 정체를 드러내고, 아들 텔레마코스와 함께 구혼자들을 모두 처단합니다. 너무 잔인한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만, 작가 호메로스는 무너진 가정과 왕권의 회복에 그 가치를 둔 것 같습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읽으면서 떠오르는 한 문장은 ‘삶은 모험의 여정이다’라는 것입니다. 삶에 닥치는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삶의 중요한 덕목들을 배웁니다. 삶의 여정에서 만나는 수많은 유혹과 어려움은 지혜, 용기, 인내, 사랑, 등과 같은 덕목을 쌓을 기회임이 분명합니다. 뜻깊은 고전 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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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안나이트
니시오 테츠오 지음, 문성호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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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읽었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은 아직도 그 내용이 생생하게 기억날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주문, “열려라. 참깨!”는 친구들과 놀 때 자주 외쳤죠. 또 TV에서 <신드바드의 모험>을 시리즈로 보았고, 디즈니랜드에서 나온 영화 <알라딘>을 통해 <알라딘과 요술램프>를 즐겼습니다. 시공간상 저 먼 중세 이슬람의 세계에서 펼쳐진 이야기가 극동의 어린이들에게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이 마냥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는 <아라비안나이트> 혹은 <천일야화>를 접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문학가들이 이 이야기 모음집의 문학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어쨌거나 <아라비안나이트>에는 내가 아는 저 유명한 이야기 외에 어떤 이야기가 나오는지 궁금했고, 옛 추억도 떠올릴 겸 AK 시리즈에서 나온 니시오 테츠오의 <아라비안나이트>를 집어 들었습니다. 표지도 매력적이고 많은 사진과 그림들이 흥미를 돋우었습니다. 무엇보다 <아라비안나이트>가 어떻게 형성되고 유럽에까지 알려졌는지 저자가 친절히 설명하고 있어서 유용했습니다. 동양학자 앙투안 갈랑이 <아라비안나이트>를 유럽에 처음 소개했다네요. 그 후 여러 번역본이 나왔고, 1811년에 조너선 스콧이 갈랑 판을 영어로 번역했다고 합니다. 이 책 곳곳에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인물들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이슬람 세계와 문화를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이런 설명은 <아라비안나이트>의 분위기와 특징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됩니다. 이 백여 페이지의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매우 알찹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저 유명한 책 <오리엔탈리즘>에서 유럽이 중동 세계를 일방적이고 차별적으로 이해하여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했다고 일갈했습니다.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으로 중동의 문화를 바라보는데, ‘리처드 버턴’ 판 <아라비안나이트>가 한몫한 것이 사실인 듯합니다. 실제로 버턴은 대영제국이 품고 있는 인도와 아프리카의 무슬림을 이해하려면 아라비안나이트만 한 것이 없다고까지 말했답니다. 그는 무슬림을 지배하는 데 아라비안나이트가 훌륭한 도구가 된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아랍어 연구가 전공인 니시오 테츠오의 <아라비안나이트>는 단순히 <아라비안나이트>의 내용을 들려주는 책이 아닙니다. <아라비안나이트>를 문명사 관점에서 연구하고 풀어낸 책입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학문적인 느낌이 있지만, 덕분에 <아라비안나이트>가 어떤 책인지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셰헤라자드가 샤흐리야르 왕에게 밤마다 이야기를 들려주며 목숨을 이어가는 큰 틀 안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속에서 이슬람 세계의 생활상과 풍습 등을 배우게 됩니다. 이 책으로 아라비안나이트의 전체 이야기를 다 알 수는 없지만, <아라비안나이트>의 전체 틀과 흐름을 붙잡는 데는 매우 유용합니다. 즐겁게 읽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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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혁명의 시대, 사피엔스의 마지막 항해
김도열 지음 / 청년서관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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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AI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기대가 큽니다. AI가 정밀하고 복잡한 수술을 하거나, 인간이 작업하기 위험한 일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AI의 빠른 정보처리 능력 덕분에 과학, 교육, 산업계 전반에 가져올 혁신은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이제 인간은 자질구레하거나 긴 시간 감당해야 할 일에서 해방되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으리라 상상도 해 봅니다. 반면 우려의 목소리도 큽니다. 아마도 가장 큰 염려는 일자리의 변화일 것입니다. 지금 인기 있는 직업들 대부분은 AI가 감당할 것이니,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염려입니다. 그러면 AI에 적응한 사람들과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수입과 교육 등의 간극은 더 커져서 사회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모든 정보를 다 습득한 AI가 인간을 통제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유토피아를 꿈꾸다가 그야말로 디스토피아에서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중견 IT 기업에서 첨단 기술과 관련된 이야기를 대중하게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AI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측면을 더 많이 강조할 것이라 생각하고 이 책을 펼쳤습니다. 글이 아주 쉽고 재미있습니다. 1부에서는 처음 증기기관차, 방직기계, 자동차, 지하철, 전화기, 타자기 등이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이 어떤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어떤 식으로 대응했는지 알려줍니다. 지금으로서는 농담처럼 여겨지지만, 당시에는 엄청 진지했을 것입니다. 2부는 인공지능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1958년 퍼셉트론, 1999sus 슈퍼컴퓨터와 인간 체스 플레이어와의 대결, 내비게이션이 바꾼 이동방식, 브리테니커를 몰락시킨 집단 지성, 번역기의 탄생과 사고 방식의 변화, 등을 알려줍니다. 특히 인공지능 ‘딥마인드’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딥마인드’에게 ‘벽돌 깨기(Breakout)’ 게임의 규칙에 관한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고, ‘픽셀 데이터’와 점수가 올라갈 때 주어지는 숫자의 신호만 알려주었는데, 학습이 시작된지 2시간 만에 숙련된 게이머가 되었답니다. 기계는 인간의 손을 떠나 스스로의 본능에 따라 달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는 피지컬 AI(로봇)이 일상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3부를 가장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이제는 원본보다 더 원본 같은 복제(copy)가 판치는 세상, 복제 불가능한 ‘나’만의 관점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딥페이크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진짜를 판별해 낼 수 있을까요? 이전에는 예술의 세계만큼은 인간의 영역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인공지능도 너끈히 예술작품들을 만들어 냅니다. 글쓰기는 말할 것도 없고요. 또한 알고리즘에 의해 우리 인간은 더욱 편향된 욕망을 추구하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입니다. 4부는 더욱 완벽해지는 기계 앞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자율주행차가 사고를 냈을 때 우리는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뇌에 칩을 심어 사이보그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되면 인간은 점점 더 고민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더 정직해져야 할 것입니다. 39장에서 제시한 저자의 관점에 깊이 공감합니다. 앞으로는 인간이 인공지능보다 잘하는 능력에 대해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AI와 비교할 때 인간의 자리는 더 ‘우수함’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결핍과 불완전함이 오히려 AI가 따라 할 수 없는 최고의 강점이 되지 않을까요? 특히 인간만이 느끼는 감정적 맥락에서의 대화는 AI가 완전히 습득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AI혁명의 시대, 우리는 더 인간다움을 꿈꾸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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