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교수의 정신없는 하루 - 칸트 편 철학그리다 시리즈 2
장 폴 몽쟁 지음, 박아르마 옮김, 로랑 모로 그림, 서정욱 해제 / 함께읽는책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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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트 교수의 정신없는 하루」, 이 책 참 마음에 듭니다. 칸트를 독자 곁으로 친절하게 데려다주기 위한 아이디어가 넘칩니다. 표지에 별 모양으로 구멍을 뚫어 칸트의 생각하는 얼굴을 살짝 보게 했네요. “내 마음을 늘 새롭게, 더 한층 감탄과 경외심으로 가득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내 머리 위에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이고, 다른 하나는 내 가슴 속에 있는 도덕법칙이다.”(pp. 66~67).

  칸트하면, 대학 철학 시간에 배운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이 생각납니다. 시험 보려고 외웠던 문장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순수이성비판은 인간에게는 각각 ‘순수한 이성(理性)’이 있어 진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고, 실천이성비판은 이성으로부터 얻은 진리를 행하려 하는 ‘도덕적 실천의지’를 가진다는 것이다.” 아직도 나의 말로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이 책을 인용해 설명할 수는 있습니다. “칸트는 형이상학이라는 기관총으로 무장한 채 하늘로 올라가 초자연적인 것을 신봉하는 군대를 몰살시키고 … 자유를 부숴 버렸고, 불멸의 영혼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p. 32) 갔습니다. 하지만 자유, 신, 영혼의 불멸, 이런 문제들은 순수 학문의 영역에서는 답을 찾지 못한다 할지라도, 도덕적 관점에서는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

  이 책 재미있네요. 각 페이지에 글보다 그림이 훨씬 크게 자리하고 있어서, 그림을 넘겨보며 칸트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충직한 하인 람페가 매일 아침 다섯 시 오 분 전에 칸트 교수를 깨우는군요(pp. 10~11). 그는 일어나 편지를 쓰고, 때로는 천문관측기구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깁니다(pp. 16~17). 카트의 집에서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으로 가는 길에 있는 7개의 다리 그림이 나옵니다(pp. 24~25). 칸트는 과연 이 다리를 한 번씩만 모두 지나 대학가지 갈 수 있었을까요? 그를 사랑했던 여인 마리아 샤를로타에 대해서도 처음 접합니다. 칸트가 스웨덴 심령술사 스베덴보리를 반박하는 글을 쓰는군요(pp. 12~15). 항구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사람들과 항상 식사를 같이하며 철학과 도덕을 논하는 칸트의 모습도 정겹게 그려져 있습니다(pp. 46~49).

  그림을 다 보고 칸트에 대해 이런 저런 것들을 연결하여 생각해 본 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글들을 읽어냈습니다. 칸트가 가깝게 다가오네요. 특히 철학자 서정욱 교수의 <해제>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성의 힘을 믿은 철학자’ 칸트는 유럽의 합리적인 생각과 영국의 경험적인 생각을 모두 받아들였답니다(p. 71). 그는 인간은 선을 행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선의지’를 주장하고, ‘선의지’를 실천할 수 있는 교육과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의무에서 우러나오는 행위를 실천할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이 칸트의 ‘정언적 명령’입니다.

  칸트가 깨달았듯, 내 머리 위에는 순수이성(理性)의 별이 빛나고, 내 마음에는 도덕법칙의 별이 반짝이고 있나요? 칸트의 <도덕 형이상학 원론>을 쉽게 해설한 책을 한 권 찾아 읽어봐야겠네요.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보니, 나는 이성의 힘을 믿고 도덕법칙의 지배를 받고 있나 봅니다. 아주 재미있고 유쾌한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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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의 시대 - 강준만이 전하는 대한민국 멘토들의 이야기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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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은 때로 안개가 덮인 듯 한치 앞도 예측하기 힘들 때가 있는 법, 그 때 나의 고민을 듣고 위로나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분들이 있다는 것은 인생의 큰 축복입니다. 한편 사회적 멘토가 많다는 것은 그 사회가 그만큼 한 치 앞도 예측하기 힘든 격동의 시기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요즘 뜨고 있는 멘토들이 너무 많아 오히려 혼란스럽습니다. 멘토들의 쏟아내는 말들에 숨쉬기조차 힘들다고 해야 하나요? 이 책의 제목이 이런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멘토의 시대」!

  이 책의 저자 강준만 교수는 탁월한 인물사회 비평가입니다. 나는 그의 「한국 현대사 산책」 전23권을 다 읽으면서 사회를 꿰뚫어 보는 그의 안목에 감탄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책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저자는 12명의 멘토들을 비평하기보다는 이들을 소개하며, 지금은 정치 정당들이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먼저, ‘1장. 멘토 현상의 사회심리학’은 한국 사회에 멘토 붐이 휩쓸고 있는 사회심리학적 이유들을 매우 명쾌하게 지적합니다. 만인이 만인에 대해 투쟁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우리에게 ‘위로’ 혹은 ‘힐링(healing)’이 필요한데, 지금 뜨고 있는 사회적 멘토들이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88만원 세대의 ‘자기 연민’과 ‘청춘’이라는 코드가 SNS(관계 테크놀로지)가 폭발적으로 발전한 디지털 시대의 하이터치 욕구와 맞물려 사회적 멘토링이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게 된 것입니다. 한편 SNS 등을 통한 사회적 멘토링에는 몇 가지 함정이 있음을 지적합니다. 예를 들어 “무오류성의 함정”입니다. SNS의 약점은 역설적이게도 ‘대중성의 부족’입니다. SNS상에서는 서로 같은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소통하기 때문에 자신의 견해는 항상 옳고 지지받는다고 느낍니다. 동종교배의 폐쇄성이죠. 또한 “합성의 오류”에 빠지기 쉽습니다. 개별적 차원에서 참인 언명들을 합성했을 때도 언제나 참이 된다는 착각입니다. 사회적 멘토링이 위로나 원론적 방향제시의 수준에 머물러 있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 뜨고 있는 사회적 멘토들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직접 정치나 사회적 정책 결정에 나서면, 문제는 그렇게 녹록하지만을 않을 것입니다.

  어쨌든 2장부터 13장까지 안철수, 문재인, 박원순 등 12명 유명한 멘토들을 비평합니다. 비평했다기 보다는 소개했다고 보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아마도 거론된 멘토들이 아직은 위로와 원론적 방향제시의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소개 수준으로는 제격입니다. 제목만 봐도 딱 들어옵니다. ‘비전 선망형 멘토 안철수’ ‘인격 풍위형 멘토 문재인’ 등.

  마지막 ‘맺는말’에서 강 교수는 “멘토의 제도화를 위하여” 의견을 제시합니다. 잘못된 이분법적 생각으로 내편 네편 가르고 사람을 갈아치우는 데 힘쓰는 대신,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 그러기 위해서는 마치 한국교회가 “생활공동체”를 추구하여 성공했듯, 정치 정당이 사회적 멘토링 서비스를 제공해 대중들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저자가 소개한 펄 벅의 말이 오래 가슴에 남습니다. “희망이 사라지면 곧 도덕적 타락이 뒤 따른다.”(When hope is taken away from the people, moral degeneration follows swiftly after). 이 시대의 정치 정당들은 지금 뜨고 있는 멘토들처럼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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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여자집 2012-06-11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봤습니다.^^
 
어머니전 -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소설이다
강제윤 지음, 박진강 그림 / 호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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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는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내 살아온 삶을 다 말하면, 소설 한권은 충분히 쓸게다.” 이 책 「어머니전」에 나오는 모든 어머니들은 소설 그 자체입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어머니는 일제강점기에 결혼하셔서 만주로 이주해 사셨답니다. 해방 후 우여곡절을 거쳐 남한으로 돌아오셨고, 아버지는 군에 복무하셨죠. 그런데 육이오 전쟁이 터져서, 어머니는 어린 두 딸을 데리고 군인가족이라 거제도로 피난을 나오실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자고 일어나니 어머니의 앞니 한 개가 어긋나 있더랍니다.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했는데, 어버지가 전투에서 부상을 당해 부산국군통합병원으로 이송되셨다는 통지를 받으셨던 거죠. 그렇게 두 딸을 데리고 병원생활 2년을 견디어내셨고, 서울로 올라오셔서 아버지와 함께 장사를 시작하셨습니다. 그 사이 자식은 6남매로 늘었고, 오직 자식들을 위해 몸이 불편하신 아버지와 참으로 열심히 사셨습니다. 자식들 다 출가시키고 막내 아들 마흔 다섯 살에 어머니는 몸져누우셨습니다. 무거운 것들을 너무 많이 짊어지셔서 척추뼈 몇 마디가 다 녹아내리신 것입니다. 침상에서 3년을 지내셨죠. 평생 누구의 신세도 지지 않으시려 하셨던 어머니로서는 자식의 수발을 받는 것조차 무척이나 힘들어 하셨습니다. “내가 왜 이 지경이 되었노” 하실 때는 자식들의 마음도 아팠습니다. 어머니! 살갑고 다정하지는 않으셨지만, 자식을 위해선 무엇이든지 감당하셨던 분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어머니들도 나의 어머니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 책의 저자 강제윤 작가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작가지만 민주화 운동으로 옥고를 치루고, 보길도 귀향시절에는 단식투쟁으로 숲과 하천의 파괴를 막아냈습니다. 그 후 여러 섬을 여행하면서 섬들의 모습을 기록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 작업의 결과가 이 책입니다. 우리네 어머니들과 만나 대화한 내용을 꾸밈없이 날 것으로 담아낸 생생한 기록들! 정말이지 그가 만난 섬들의 어머니들은 모두 우리네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박진강 화가의 그림도 인상적입니다. 투박한 듯 정감 넘치는 그림들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어도 우리네 어머니를 만날 수 있습니다. 표지의 어머니 그림이 강렬합니다. 통영시 연화도에 사시는 어머니, “할머니 성함은 어떻게 되세요?” 라는 질문에 “성도 이름도 없어요. 누구 즈그 어메라고 부르고. 아무 것이네 하고. 성도 이름도 없이 살아요.”라고 대답하셨답니다. 아! 그래도 작가가 떠날 때, 할머니는 말씀하셨다죠. “나 이름은 윤필순이요.”

  그럴 것입니다. 남편과 자식들만을 위해 살아오신 어머니들, 이름도 성도 없이 살아오셨지만, 그것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셨지요. 고난과 슬픔도 해학과 가락으로 실어 보낼 줄 아는 어머니들은 분명 삶의 달인들이십니다. 삶이 팍팍하고 힘들 때, 어머니를 떠올리면 힘이 납니다. 삶이 지난(至難)하게 느껴질 때 어머니를 떠올리는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이 책을 통해 당신의 어머니를 만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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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너머 그대에게 - 세상 속 당신을 위한 이주향의 마음 갤러리
이주향 지음 / 예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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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향 교수의 글들을 좋아합니다. 한 일간지에 연재했던 글들을 꼬박꼬박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 「그림 너머 그대에게」를 접했을 때, 강하게 끌렸습니다. 저자가 가지고 있는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과 깊은 철학적 사고가 명화 속에 나타난 이야기와 만나, 어떻게 멋진 글로 표현될지 궁금했습니다. 이 책은 철학적 통찰력으로 그림을, 아니 실상은 우리 자신과 우리네 인생을 이야기합니다. 글과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나는 내면을 향하고, 치열하게 삶의 의미를 찾고 있습니다.

  에드워드 번 존스의 <코페투아왕과 거지 소녀>에 대해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림은 낭만적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초라한 거지 소녀를 사랑해서 세상에서 제일 화려한 왕관을 내려놓고 있는 왕을 그리고 있으니까요”(p. 035). 그런데 이어지는 글이 내 생각을 붙잡습니다. “저런 상황이라면 왕으로 사는 것은 괴롭고, 왕관을 내려놓는 것은 외롭겠습니다.”(p. 36). 나는 어느새 나 자신에 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분야에서 20년 가까이 몸담고 있어서, 어느새 기득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와 있습니다. 하지만 답답함과 지루함을 느끼고 이 자리를 떠나야 할 때가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왕관, 즉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이뤄낸 업적과 명성,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것들! 이것을 내려놓는 것은 외롭고, 쓰고 있어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내가 왕관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오히려 나의 덫이 되고, 나를 나답게 살지 못하게 만드는 겉치레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왕관에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라 왕관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p.38)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주저하고 있습니다.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 이 그림의 미술사적 의의에 대해 이전에 미술책을 읽으며 배웠습니다. 그러나 이주향 교수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림 그 자체를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여인의 표정은 단정하지도 않지만 도발적이지도 않습니다. 차라리 천연덕스럽지요.”(p. 73). 그러다 보니 그림속의 인물들은 모두 편안하지 않으면 취할 수 없는 자세들을 하고 있군요. 비록 이 그림의 신사들은 단정히 양복을 입고 있지만 나체로 있는 여인과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함께 앉아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자들입니다. 나는 자연스럽게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 여인>으로 책장을 넘기고, 글을 읽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이 그림은 살면서 잃어버린 것들을 돌이켜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달빛 한 줌, 이슬을 모으는 물 병, 만돌린 소리와 내 속의 사자, …”(p. 121) 이 모든 것은 집시의 삶의 동반자들입니다. 우리는 편리함과 안락함을 추구하면서, 삶의 소중한 동반자들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지요?

  이 책, 이런 식입니다. 그림을 좋아하는 분들, 아니 그림과 철학을 좋아하는 분들, 분주한 삶 속에서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산다는 생각이 드는 분들, 자신의 내면을 살며시 들여다보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꼭 순서대로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책을 넘기다가 마음에 와 닿는 그림, 문장 한 줄을 붙잡고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저자가 친절히 다가와 질문을 던집니다. 어느새 저자와 깊게 대화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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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아찔한 경성 - 여섯 가지 풍경에서 찾아낸 근대 조선인들의 욕망과 사생활
김병희 외 지음, 한성환 외 엮음 / 꿈결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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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지상파방송 OBS가 2년 동안 방송했던 프로그램, <세상을 움직이는 역사>의 내용을 PD 환성환 씨가 엮은 것입니다. 광고, 대중음악, 사법제도, 문화재, 미디어, 철도, 이렇게 여섯 가지의 키워드로 근대 조선인들의 일상생활과 그들의 욕망을 파헤쳤습니다. 말하자면, 역사를 거시사가 아니라 미시사로 파악한 것입니다. 이런 시각 덕분에 근대 조선, 일제 강점기의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생생하고 정감 있게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광고, 대중음악, 미디어 부분을 읽으면서 많은 흥미를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서민의 삶 속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변천과정을 겪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의 어린 시절 보고 들었던 많은 것들이 일제 강점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은 덕분에 다양한 역사 상식도 늘었네요.

  광고에 관해, 최초의 신문 광고는 1886년 <한성주보>에 처음 나온 세창양행 광고라는 것, 당시 광고는 ‘고백’(告白)이라고 표현했다는 것, 광고라는 표현은 <독립신문> 창간호에 처음 나왔다는 것, 등 많은 상식을 얻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 공터나 담벼락에 붙어 있던 경고문 끝에는 언제나 “주인장 백”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서 “백”은 고백의 백(白)이랍니다. 쌀로 만든 술을 정종이라고 하는데, 우리 나라말로 청주라고 해야 맞습니다. 정종(正宗)은 일본 청주의 상표명(마사무네)이랍니다. 또 1899년 나온 전차에도 “오루도 히이로”(Old Hero)라는 담배 브랜드가 광고되었군요. 일제시대 국가 간의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일상생활은 계속되고, 사람들의 욕망은 결코 사그라지지 않음을 광고 이야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트로트에 관해, 나는 학생시절 트로트는 촌스럽고 천박하다는 생각이 들어 거들떠보지도 않죠. 주로 팝송을 들으며 고상한 척 했습니다. 그런데 트로트가 일제시대에 신교육을 받고 일본어도 꽤 하는 대도시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던 노래였답니다. 나 어릴 적에 <동백 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등이 왜색이라는 이유로 금지되었는데, 참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낍니다. 그리고 트로트만을 왜색이라고 문제 삼으면서 우리는 은근히 일본 것은 무조건 나쁘고 촌스러운 것이라고 세뇌당한 것은 아닌지 자문해 봅니다.

  신문에 관한 것도 많이 유익했습니다. <한성순보>, 최초의 한글신문 <독립신문>, <한성주보>, <한성신문>, <제국신문>, 장지연 선생의 사설, ‘시일야방성대곡’을 기재한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이런 신문들은 언제 창간되고, 어떤 우여곡절을 거치며 폐간되거나 오늘날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주제를 대화체로 전개하고, 한 꼭지 끝에 대담식 ‘역사토크’를 적어 놓았다는 점입니다. 덕분에 오늘날의 광고나 대중음악, 신문 등을 어떤 관점에서 비평하며 대해야 하는지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래 전 「모던뽀이 京城을 거닐다」를 읽고 시대는 변해도 사람의 욕망은 변하지 않음을 느꼈는데, 이 책을 읽고 동일한 생각을 해 봅니다. 즐겁고 유익한 독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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