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에 미래는 있는가 - 잃어버린 희망을 찾아가는 인문학 여정
로제 폴 드루아.모니크 아틀랑 지음, 김세은 옮김 / 미래의창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처음에 책 제목 <희망에 미래는 있는가>을 보고 <미래에 희망은 있는가>를 잘못 표기한 것이 아닌지 의아했다. 소제목과 목차를 보니, ‘희망’에 관한 인문학적 고찰임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을 비롯한 많은 철학자들이 왜 ‘희망’을 부정적으로 보았는지, 기독교에서의 희망과 오늘날 세속화된 희망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지금도 우리는 희망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지 무척 흥미로운 주제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 이야기부터 해석이 남달랐다. 본래 신화에서 판도라가 연 것은 상자가 아니라 '피토스'라 불렀던 항아리였단다. 거기에 남아 있던 ‘엘피스’는 미래에 닥칠 일을 정확히 예지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엘피스’가 항아리에 남아있는 것은 인간에게 다행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질병이나 죽음이 언제 일어날지 안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이렇게 희망이라 번역되는 ‘엘피스’는 앎과 모름이 양립하는 단어다. 한편, 플라톤에게 지상에서의 희망은 “인간이 숙명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악이 누그러지기를 바라는 마음”(p. 63)이다. 따라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철학자들에게 희망은 부담스러운 대상임이 분명하다. 희망은 이성과 비이성, 위안과 불안, 이로움과 해로움을 동시에 의미하는 양면성이 있다. 그런가 하면 기독교에서 희망은 믿음, 사랑과 함께 하나님을 대한 세 가지 덕 중 하나다. 그런가 하면 유대교에서 희망은 이유가 필요 없는 ‘희망을 위한 희망’이다. 따라서 “희망을 지키기 위해서는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하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야 한다.”(p. 103). 결론적으로 이 책의 저자는 희망하는 일은 포기해야 할 것이 아니라 더욱 키워나가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희망은 각자 마음속에 싹을 틔워 끈질기게 버티는 은밀한 감정이다. 인간만이 희망한다. 따라서 희망을 포기하는 행위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p. 303).

 

그렇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참되게 희망하는 것이다. 오늘날 희망이 얼마나 오용되고 있는가? 희망은 단순한 낙관론이나 긍정적 사고방식이 아니다. 참된 희망은 인간에게 자유와 존엄성을 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 희망은 위험하다. 인간은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할 수밖에 없고 불확실한 미래는 두려움과 희망을 함께 일으킨다. 이 때 희망을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생각하기에 희망은 어린 묘목과 같아서 관심을 가지고 물을 주고 돌보아야 한다. 우리는 희망하는 법을 배우고 익힘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자유와 존엄성을 지켜 나가야 할 것이다. 지금 이 땅은 엄청난 불의로 인해 평화가 깨지고 국민들은 분노하고 좌절한다. 이럴 때 희망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연약하다. 하지만 성숙한 시민들은 이 사회에 대해 희망을 놓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며 자유를 붙잡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말로 희망을 붙잡아야 할 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흐 씨, 시 읽어 줄까요 - 내 마음을 알아주는 시와 그림의 만남
이운진 지음 / 사계절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럴 때 시와 그림은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창문이 되기도 하고, 큰 힘과 위로를 주기도 한다. 이운진은 시와 그림을 통해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나는 작가의 이야기에서 ‘나의 이야기’도 발견한다. 이 책은 세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1전시실에서는 일상의 따뜻함과 사랑의 감정 등을 보여주는 시와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여성의 따뜻한 감성이 잘 드러난다. 2전시실은 우리네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감정들, 절망, 슬픔, 질투, 미움과 용서, 눈물, 외로움, 희망 등을 이야기한다. 3전실은 자화상, 맨발, 거울, 지도, 사과 등, 어떤 사물에 대한 기억 혹은 삶에서 마주하게 되는 역사의 한 단편을 이야기 한다.

 

나에게는 2전시실에서 가장 많은 즐거움을 얻었다.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와 정호승의 시 <용서의 의자>를 연결해서 아버지에 대한 작가 자신의 추억을 엮어 놓은 것이 마음에 와 닿았다. 미움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은 사랑과 행복 같은 좋은 감정보다 훨씬 우리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용서를 경험하면 눈 녹듯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 미움이라는 감정 아니겠는가. 시인의 말처럼, “못이 툭 튀어나와 살짝 엉덩이를 들고 앉아야 하는, 앉을 때마다 삐걱삐걱 눈물의 소리가 나는 작은 의자 하나”(p. 117), 그 의자가 있기에 우리의 삶은 살만한 것일 게다. 나도 용서해야 하는 일보다 용서받아야 할 일이 더 많은 삶았으니, 그 고통스러운 용서의 의자에 앉아 누군가로부터 용서를 받아야겠지. 그리고 누군가가 나의 용서의 의자에 앉는다면 기꺼이 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일으켜 세워야겠지. 삶은 그렇게 이어져 가는 것이다.

 

조지 프레더릭 와츠의 <희망>과 천양희의 <희망이 완창이다>는 강렬하게 다가왔다. 이운진은 안네 프랑크의 <안네의 일기>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자전거를 타고, 춤을 추고, 휘파람을 불고 … 나는 이런 걸 동경해요.”(p. 144), 겨우 열여섯의 어린 소녀의 보잘 것 없는 희망은 안네 프랑크가 살았던 시절이 얼마나 절망적인 상황이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와츠의 그림은 또 어떤가? 작가는 이 그림이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크게 감동받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가 감옥의 독방에 걸어놓았으며,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에도 등장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와츠는 이 그림을 예순아홉 살에 그렸다고 덧붙인다. “절망만한 희망이 어디 있으랴”(p. 149)라는 천양희의 시 첫 구절 덕분에 와츠의 그림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게 된다. 희망이란 본래 절망스러울 때 꿈꾸는 것이니, 절망만한 희망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 “절망도 절창하면 희망이 된다”

 

마음 팍팍하고 힘들 때, 이운진이 들려주고 보여주는 시와 그림 이야기는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굳이 작가의 이야기를 집중하지 않아도 이 책에 나와 있는 그림과 시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나지막하게 읊조려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힘든 하루를 보낸 이들이 저녁에 펼쳐들면 좋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서는 정의로운가 KAP 정의와 평화 실천 시리즈 10
크리스 마셜 지음, 정원범 옮김 / KAP(Korea Anabaptist Press)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우리나라는 최순실 게이트로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일개 아줌마가 대통령을 조정하여 국정을 농단하고 재벌들에 압력을 행사해 엄청난 부를 축적한 것이다. 이 엄청난 불의에 국민이 분노하고 좌절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크리스 마셜은 <성서는 정의로운가> ‘1장.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정의는 “분배, 공정, 권력, 권리”라는 개념적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한다(pp. 16~18).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사회의 상충되는 요구들을 조정하는 합법적인 권력이 행사되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정당하게 받아야 할 것을 빼앗기 위해 권력이 남용되면 불의가 발생한다. 지금 대통령과 그 측근들에 의해 저질러진 한국사회의 불의를 정확하게 지적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히브리 노예들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율법 아래 언약공동체를 형성한 사건과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야 말로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정의’야 말로 성서에서 가장 자주 반복되는 주제라고 말한다. 특히 정의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에 속한다는 가르침은 매우 강력하게 마음에 다가왔다. “정의는 하나님의 보좌의 ‘기초’이고, 우주의 기초다(시편89:14, 97:2)”(p. 37). 세상에서 악이 명백히 승리하고 있음에도 성서의 선지자들은 하나님 자신의 정의와 신실하심의 실재를 의심하지 않았단다. 미국의 흑인 민권 운동의 지도자 마틴 루터 킹도 “세상은 정의의 편에 서 있다”라고 선언함으로써 성서 전통을 반향하고 있다. 이 책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정의는 전부 관계에 대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건강한 관계, 행복한 관계를 위해서 반드시 정의가 실행되어야 한다.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는 사회에서 불의의 희생자들,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의 편에 서야 한다. 성서의 하나님이 그렇게 편애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편애는 궁극적으로 사회를 샬롬의 상태로 회복하기 위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회적 삶은 네 가지 면이 뚜렷이 드러난다(pp. 77~88). 첫째, 그는 사회적 차별에 대해 거부하며 종교인들의 독선과 오만을 비판했다. 둘째, 그는 경제적 불의에 대해 비판하며 당시의 탐욕스러운 자들을 공공연하게 공격했다. 셋째, 그는 제도권 권력에 불신을 드러내며 궁극적인 주권은 정의의 하나님께 있음을 분명히 했다. 넷째, 그는 전쟁과 폭력에 대해 거절하였다. 말하자면 그는 열심당의 혁명적 선택, 에세네파의 은둔적 선택, 성전 통치자들의 권력 체제의 선택을 모두 거부하고 제 4의 길을 선택했다. 그 길은 비폭력적이고 희생적이고 평화를 만드는 사랑의 길이다. 이는 예수를 따르는 모든 자에게 동일하게 요구되는 것이다.

 

도대체 이 땅의 크리스천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보수 집단은 정치와 종교의 분립을 주장하며 오히려 권력가들에게 아부하고 있다. 전 세계는 이기적인 욕망으로 춤추고 있다.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 이에 대한 증거다.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추구할 때, 세상은 인종차별, 성차별,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들에 대한 착취, 등으로 정의와 샬롬이 사라질 것이다. 이러할 때에 정의의 하나님과 정의에 대해 수없이 말하는 성서를 믿는 자들은 정의와 샬롬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 지금 광화문 광장이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품, 성도의 품격 - 성품의 변화가 삶의 변화로 이어지는 길
김병삼 지음 / 교회성장연구소 / 201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 사람, 믿음은 좋은데 성품은 형편없어라고 누군가를 평가하는 말을 들으면, 이런 질문이 생긴다. 성품이 따라가지 않는 믿음이 진짜 믿음인가? 얼마 전 김병삼 목사의 <웰컴 투 광야>를 읽고, 큰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그리스도인에 걸맞은 품격을 갖추고 싶어, 이 책 <성품, 성도의 품격>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집어 들었다

 

성품이란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곳에서 그 진정성이 드러나는 것이데, 삶의 위기 가운데서 명확히 드러난다. 성품은 누군가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 끊임없이 하나님의 마음을 가질 때 변화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성품은 평생을 써 내려가야 하는 서술형 문제”(p. 23)이다. 따라서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자신을 연단”(딤전4:7)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교제해야 한다. 교회에 다니면서 예수님, 예배, 교회 생활에 익숙하고 편안해졌고 그것은 곧 무덤덤으로 이어졌다. ‘무덤덤은 무덤에다 덤을 하나 얹진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 무감각한 믿음생활은 나를 변화시키지도 못하고 행복과 기쁨을 주지 못한다. 익숙함을 넘어 친밀함으로 나아가야 한다.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15:5)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친밀한 교제의 삶을 살면, 예수님의 성품이라는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그럼, 대표적인 성도의 성품은 무엇인가? 저자는 겸손을 제일 앞에 놓는다. 그리고 성경에서 겸손한 자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제시한다. 첫째,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존귀하게 하신다(벧전5:6). 둘째,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지혜를 주신다(11:2). 셋째,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부흥의 특권을 주신다(대하7:14).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분으로(11:29) 본래 하나님과 본체시지만 자기를 낮추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까지 내려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다(2:5~8). 성도는 예수님의 인격처럼 온유하고 겸손해야 한다. 저자는 다니엘 이야기를 통해 겸손 다음으로 용기를 성도의 품격으로 제시한다. 그 다음, 비전도 성품이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의 사람은 모두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다고 가르친다. 이 책 곳곳에 재미있는 예화와 탁월한 적용이 가득하다. 또 각 장 마지막에 있는 [소그룹 나눔]생각열기’, ‘배워보기’, ‘내 삶에 적용하기’, ‘묵상&기도순으로 되어 있어 앞에 배운 것을 정리하고 기도까지 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안내한다.

 

책을 다 읽고 겸손, 용기, 온유, 비전, 기쁨, 감사 중에 나에게 가장 부족한 성품은 무엇인지 점검해 본다. 다 부족하다. 그것도 너무 부족해서 부끄럽다. 하지만 성품은 평생을 써 내려가야 하는 서술형 문제라는 말씀 때문에 좌절하지 않고, 다시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고자 다짐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웰컴 투 광야 - 광야 여정에서 이끄시는 하나님의 메시지
김병삼 지음 / 교회성장연구소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현재 나의 삶은 이스라엘이 광야 길을 걷는 것처럼 팍팍하고 힘들다. 이스라엘 백성처럼 왜 이런 곳으로 나를 인도하셨냐고 불평과 원망이 나오기도 한다. 이런 나에게 김병삼 목사는 <웰컴 투 광야>에서 현재의 어려운 길이 오히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게 해주는 축복의 길이라고 설교한다. 저자의 서문에 있는 제안이 마음에 든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부르시는 곳이 광야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억지로 걷기보다는 기대를 갖고 광야로 들어서면 어떨까요?”(p. 8). 이왕 광야 길에 들어섰고 이 길을 걸어야 한다면 하나님을 향해 기대하는 마음을 갖자! 그렇다. 순조로운 길보다 위험하고 황량한 길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기회가 훨씬 많을 것이다.

 

저자는 고센 땅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간다. 우리는 늘 원하는 자리에 있을 수는 없지만, 원하지 않는 곳에서 고생을 해도 그 고생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된다. 홍해를 건넌 것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자신감이 생기는 사건이라고 설명한다. 광야 생활 초입 마라와 엘림 사이에서 여정은 은혜가 떨어질 때이며 계속 순종하며 걸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 점검하는 때이다. 하나님의 산, 시내산에 오른 것은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언약을 지키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탐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기브롯 핫다아와, 탐욕 때문에 불만과 불평이 가득한 곳이었다. 드디어 느보 산이다. 느보 산이 보여주는 교훈 중 하나는 “The best is yet to come(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p. 186)이다. 이 문장이 마음에 와 닿는다. 이는 단순히 긍정적 사고방식이 안라 신앙적 사고방식이다. 하나님께 시선을 두고 ”The best is yet to come“이라고 자주 외쳐야겠다. 이 책은 고센에서 시작해 약속의 땅에 들어가 여리고 성 앞에 서는 장면까지 이어진다. 침묵과 순종!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다.

 

이 책, 재미있는 예화와 쉬운 설명, 삶의 탁월한 적용이 돋보인다. 설교 한 편이 끝나면 ‘소그룹 나눔’으로 정리하고 묵상하고 적용할 수 있게 해 놓았다. 단순한 설교집으로 끝나지 않고 소그룹 교재로 사용하거나 혼자 묵상하며 적용할 수 있도록 아주 주의깊게 기획되어 있다. 덕분에 많은 도움을 얻었고, 믿음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 앞날에 대한 기대가 생겼다.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