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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씨, 시 읽어 줄까요 - 내 마음을 알아주는 시와 그림의 만남
이운진 지음 / 사계절 / 2016년 10월
평점 :
요즘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럴 때 시와 그림은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창문이 되기도 하고, 큰 힘과 위로를 주기도
한다. 이운진은 시와 그림을 통해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나는 작가의 이야기에서 ‘나의 이야기’도 발견한다. 이 책은 세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1전시실에서는 일상의 따뜻함과 사랑의 감정 등을 보여주는 시와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여성의 따뜻한 감성이 잘
드러난다. 2전시실은 우리네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감정들, 절망, 슬픔, 질투, 미움과 용서, 눈물, 외로움, 희망 등을 이야기한다.
3전실은 자화상, 맨발, 거울, 지도, 사과 등, 어떤 사물에 대한 기억 혹은 삶에서 마주하게 되는 역사의 한 단편을 이야기
한다.
나에게는
2전시실에서 가장 많은 즐거움을 얻었다.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와 정호승의 시 <용서의 의자>를 연결해서 아버지에 대한
작가 자신의 추억을 엮어 놓은 것이 마음에 와 닿았다. 미움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은 사랑과 행복 같은 좋은 감정보다 훨씬 우리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용서를 경험하면 눈 녹듯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 미움이라는 감정 아니겠는가. 시인의 말처럼, “못이 툭 튀어나와 살짝
엉덩이를 들고 앉아야 하는, 앉을 때마다 삐걱삐걱 눈물의 소리가 나는 작은 의자 하나”(p. 117), 그 의자가 있기에 우리의 삶은 살만한
것일 게다. 나도 용서해야 하는 일보다 용서받아야 할 일이 더 많은 삶았으니, 그 고통스러운 용서의 의자에 앉아 누군가로부터 용서를 받아야겠지.
그리고 누군가가 나의 용서의 의자에 앉는다면 기꺼이 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일으켜 세워야겠지. 삶은 그렇게 이어져 가는 것이다.
조지
프레더릭 와츠의 <희망>과 천양희의 <희망이 완창이다>는 강렬하게 다가왔다. 이운진은 안네 프랑크의 <안네의
일기>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자전거를 타고, 춤을 추고, 휘파람을 불고 … 나는 이런 걸 동경해요.”(p. 144), 겨우 열여섯의 어린
소녀의 보잘 것 없는 희망은 안네 프랑크가 살았던 시절이 얼마나 절망적인 상황이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와츠의 그림은 또 어떤가?
작가는 이 그림이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크게 감동받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가 감옥의 독방에 걸어놓았으며,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에도 등장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와츠는 이 그림을 예순아홉 살에 그렸다고 덧붙인다. “절망만한 희망이 어디
있으랴”(p. 149)라는 천양희의 시 첫 구절 덕분에 와츠의 그림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게 된다. 희망이란 본래 절망스러울 때 꿈꾸는
것이니, 절망만한 희망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 “절망도 절창하면 희망이 된다”
마음
팍팍하고 힘들 때, 이운진이 들려주고 보여주는 시와 그림 이야기는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굳이 작가의 이야기를 집중하지 않아도 이 책에
나와 있는 그림과 시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나지막하게 읊조려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힘든 하루를 보낸 이들이 저녁에 펼쳐들면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