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인간다움을 말하다 - 정의가 사라진 시대, 참된 인간다움을 다시 묻다
송용구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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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모든 행위는 결국 돈이라는 목표를 향하고 있다. 좀 더 편히, 좀 더 풍요롭게 살고 싶은 욕망이 넘실댄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우리나라는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 아래 나라가 부강해지는 일이라면 그 어떤 행위도 용납되었다. 그 결과 돈 앞에 인간의 생명도 하찮게 여겨지고 인간의 존엄성은 땅에 떨어졌다. 지금이야 말로 인문학을 통해 ‘인간답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저자 송용구는 이 시대에 필요한 인문학적 이상을 실현하려고 연구하는 교수다. 이 책의 구성, 즉 유명한 문학작품들은 특정 철학자의 시선으로 읽어보는 시도가 참신하다. 예를 들어, <도덕 형이상학을 위한 기초 놓기>의 저자 이마누엘 칸트와 <유토피아>의 저자 토머스 모어의 시선을 통해 이상의 <날개>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부각시킨다. <날개>의 주인공 ‘나’는 아내가 준 돈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돈보다 귀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는 인간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에 대해 경고하듯, 칸트는 ‘인간의 본성은 목적 그 자체로 존재’하다고 주장했고,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의 토대는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데 있다’고 설파했다. 송 교수는 이런 철학적인 내용들을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1967년의 한국 영화 <날개>, <쉰들러 리스트>를 언급하고, 마지막에 꼭 기억해야 할 문장들을 ‘인문학 조언’이라 이름 붙여 알려준다. 저자의 전개방식이 마음에 든다. 자칫 따분하고 지나치게 현학적이 되기 쉬운 인문학을 이렇게 흥미롭게 펼쳐나가니 저자의 인문학적 내공이 대단하다.

 

이 책에 소개된 철학자들의 사상과 문학 작품들 모두 마음에 든다. 문학작품으로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펄벅의 <대지>, 사뮈엘 베케트의 <도고를 기다리며>,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은 이전에 감명 깊게 읽은 작품이고, 헤르만 헤세의 <아벨의 죽음에 관한 노래>,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이 책에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라인홀드 니부어, 마르틴 부버, 하이데거와 야스퍼스, 알베르 카뮈, 아놀드 토인비, 바울과 요한은 익숙하지만, 머레이 북친은 생소하다. 이 책 덕분에 인문학의 바다에 깊이 잠겨 제대로 즐겼다. 이런 문학 작품과 철학자들의 저서를 통해 결국 인간답게 살려면 인간을 소중히 여기며 사랑해야 함을, 불의에 도전하고 자연을 소중히 여기며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함을 배운다.

 

이 책의 부록에 있는 ‘인간의 이해를 위한 교양 필독서’의 목록이 눈길을 끈다. 또 ‘세인트존스 대학교 선정도서 목록’이 도전적이다. 대학 4년간 100권의 인문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것이 이 학교의 커리큘럼이라니 부럽다. 대학이 취직을 위한 학원으로 전락한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이런 커리큘럼을 가진 대학이 있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까? 이런 대학이 생기면 나이와 상관없이 도전해 보고 싶다. 지금은 인문학적 소양과 성찰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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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논쟁! 철학 배틀
하타케야마 소우 지음, 이와모토 다쓰로 그림, 김경원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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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함’(Doing Philosophy)은 세상과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철학 공부는 철학자들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특정 주제에 관해 철학자들의 상반된 주장들을 들으며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논쟁! 철학 배틀>은 제대로 철학 공부를 시켜준다.

 

토론해야 할 주제에 따라 유명한 철학자들을 가상으로 등장시켜 배틀을 붙인다. 소크라테스는 “무지(無知)의 지(知)에서 시작하라”(True Knowledge exists in knowing that you know nothing, 자신의 무지를 아는 것이 곧 앎의 시작이다)고 도전했고, “검증하지 않는 인생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고 설파했으니, 이 배틀의 의장을 맡는 것은 합당하다.

 

철학 배틀의 15가지의 주제들은 참으로 시의적절하고 흥미롭다. 빈부격차, 살인, 소년 범죄, 인간의 본성, 전쟁, 세계화와 애국심, 역사의 동력, 인간의 행동 결정론, 쾌락과 행복, 진정한 자유,, 경험과 이성, 이원론과 일원론, 신의 존재 진리, 삶의 의미 등. 이런 문제들은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인 토론보다 현재의 우리네 삶에서 자주 대하게 되는 토론이다. 오! 이 책 한권만이라도 제대로 붙잡으면 37인분의 철학적 주장을 이해하는 것이니, 어떤 삶의 문제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가치판단 속에 대화하고 나만의 주장을 펼칠 수 있겠다 싶다.

 

이 책의 저자 하타케야마 소가 일본 입시학원 유명 강사여서 그런지, 정리가 무척이나 잘 되어 있다. 먼저 한 눈에 보는 사상의 지도에서 연대순으로 철학자들과 철학 사상의 계보를 연결시켜 놓았다. 또 대립되는 사상들도 비교할 수 있게 쌍방향 화살표로 표시해 두었다. 예를 들어, 영국의 경험론과 대륙의 합리론, 영국의 공리주의와 독일의 관념론 그리고 변증법적 유물론, 구조주의와 실존주의,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동양의 노장사상과 유학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연결시켜 놓았다. 각 라운드 타이틀에 토론해야 할 주제를 질문형식으로 제시하고, 각 배틀 참가 철학자들을 출신, 생몰년, 좌우명과 함께 간략히 소개한다. 그리고 배틀의 시작, 토론이 정말 생생하다. 철학자들의 패널토의 한 가운데 있는 듯하다. 한 라운드가 끝나면 마지막에 토론자들의 주장을 정리해 놓았다. 지금 이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철저하게 생각하는 일반인들과 특히 수능 <윤리와 사상> 과목을 시험 보는 대입준비생들에게 크게 도움이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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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어의 스스로 판단하라 Bridge Book 시리즈 1
쇠얀 키에르케고어 지음, 이창우 옮김 / 샘솟는기쁨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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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어하면 <죽음에 이르는 병>이 생각난다. 실존적 도약을 통해 믿음에 이른다는 그의 철학적 명제와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 서야 한다는 주장은 신앙에 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의 이런 사상은 베드로전서47절과 마태복음624절에 관한 강화집 <스스로 판단하라>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기독교세계(christendom, 기독교를 믿는 자들이 보편화된 나라)에서 신앙은 하나의 합리적 상식, 교양에 불과하다. 그 세계에 사는 사람은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파스칼의 <팡세>에 나오는 글이 생각났다. 파스칼은 신앙을 가질 합리적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확률적으로 지혜로운 일이다. 하나님을 믿었는데 하나님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어도 손해 볼 것은 없다. 하지만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이 존재해서 우리의 불신을 심판하신다면, 믿음을 갖지 않은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 되고 마는가?’ 파스칼은 이런 식의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통해 신앙을 가지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때 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런 인간의 합리적 사고방식을 통해 선택한 믿음은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믿음인가?

 

그런데 이번에 키에르케고어의 글을 읽으면서 확신하게 되었다. 키에르케고어에 따르면, 확률에 의지해 모험하는 것은 진짜 신앙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합리적인 이성의 술에 취한 것이다. 키에르케고어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오순절 사건을 말한다. 사람들은 성령 충만하여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이 술 취했다고 말했다. 반면 사도들은 사람들에게 너희들이 술 취했으니 깨어나야 한다고 설교했다는 것이다. 키에르케고어는 확률에 기대어 합리적 사고만을 하는 기독교세계의 사람들에게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야만 술에서 깨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왜 이런 말을 하는가? 기독교세계 안에서 설교자들은 인간의 이성에 입각해 말씀을 설명하고 선포한다. 설교를 듣는 회중은 거기에 감동하고 열광하며 지식을 즐긴다. 하지만 설교자와 청중 모두 정작 스스로 하나님 앞에 단독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잊고 있다. 이런 모습에서 벗어나 실존적으로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서 술 깬 자가 되어야 함을 키에르케고어는 설파한 것이다

 

2부에서 키에르케고어는 산상설교 중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라는 말씀에 집중한다. 그는 산상설교가 인간이 지킬 수 있는 윤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윤리라고 말한다. 산상설교의 가르침은 인간이 실천할 수 없는 것이기에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가 필요한 것이고, 이것이 바로 복음인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세계에서는 인간이 복음의 요구조건을 지킬 수 있는 것으로 바꾸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는 또 다시 인본주의의 술에 취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한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지 않는 것이다. 복음의 진리 앞에 진지하게 서야 한다. 그의 강화집을 읽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해 본다. 나는 참 복음을 알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서 주님을 바라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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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으로 읽는 세계종교 - 인간과 세계와 종교 이야기
류상태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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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목사였지만 이제는 종교 작가의 길을 가고 있는 저자의 이력을 익히 알고 있다. 그의 행적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책을 통해 조금 더 열린 시각으로 세계 모든 종교를 살펴 볼 수 있겠다 싶었다. 특히 6장과 7장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종교와 종교의 대화, 종교와 사회의 대화에 관심을 갖고 책을 펼쳤다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다종교국가이다. 불교, 유교, 기독교 순으로 종교가 들어와 때론 갈등했지만, 오랜 세월 함께 공존하고 있다. 아직 이슬람교도 교세가 약하지만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익숙한 종교를 넘어 유대교, 힌두교, 자이나교와 시크교, 도교, 신도, 그리고 한국의 신흥종교인 천도교, 원불교, 증산교까지 소개한다. 내용은 그렇게 깊지 않지만 상당히 균형 잡혀 있다.

 

인간은 나그네 인생길을 걸으며 우리의 본향은 어디일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물음에 답은 과학이 줄 수 없다. 질문 자체가 과학의 영역을 뛰어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종교가 필요한 것 아닐까? 물론 과학도 필요하다. 저자에 따르면 과학이 없는 종교는 공허하고, 종교가 없는 과학은 인류를 파멸로 몰아갈 수 도 있다”(p. 35). 어쨌든 모든 종교는 궁극적인 질문에 나름대로의 답을 가지고 있다. 모든 종교는 삶의 이유를 찾고 있다. 그런데 세계 역사를 보면 이렇게 사람을 살리기 위해 존재하는 종교가 자신의 종교 이름으로 타종교의 사람들을 죽였다. 20세기 말의 보스니아 전쟁도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갈등이 자리잡고 있고, 21세기 9.11테러와 그 이후의 많은 전쟁들도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갈등 때문이다. 한국 사회도 종교간의 갈등이 종종 벌어진다. 특히 근본주의 기독교가 이슬람교에 대해 취하는 태도를 보면 우려되는 바가 많다. 비교종교학자 막스 뮐러의 말을 새겨들어야 할 것 같다. “하나만 아는 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다.”(p. 234).

 

종교마다 교리와 종교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타종교에서 자신들의 잣대로 평가할 것이 아니다. 자신의 교리와 전통을 소중히 여긴다면, 다종교의 교리와 전통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종교의 근본정신은 진리, 사랑, 정의, 평화, 자유 같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교황 바오로 2세가 가톨릭교회의 과거 잘못을 공식인정한 것을 높이 산다. 교황은 진리를 구한다는 이름으로 치러진 폭력과 다른 종교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보였던 불신과 적의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p. 253)고 말했다. 그리고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카를 라너는 이름없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개념을 선보였다. 이는 가톨릭 밖에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이다.

 

저자는 지금까지 기독교가 이웃종교에 대해 세 가지 태도를 보였다고 설명한다. 첫째는 배타주의, 둘째는 포괄주의, 셋째는 다원주의다. 그는 배타주의 끝없는 갈등만 양산할 뿐이며, 우리는 포용주의를 넘어 다원주의로 나아가지 않으면 사회의 갈등과 싸움은 해결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p. 256). 나는 기독교인으로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돌아본다. 저자의 주장처럼 다원주의자가 되어야 하는가? 다원주의자가 되려면 사실 자신의 신념과 종교적 전통을 상당히 많이 포기해야 한다. 이것은 옳지 않다. 포용주의가 답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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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사유의 시선 - 우리가 꿈꾸는 시대를 위한 철학의 힘
최진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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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삶에 대한 깊은 사유가 필요한 이유다. 지금 우리 한국 사람은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시대에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재 모습을 정직히 들여다보면 천박한 자본주의와 성숙하지 못한 민주주의 사회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최진석 교수의 지적에 따르면, 그것은 철학이 없어서 제대로 된 자본가와 성숙한 시민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철학이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우리는 서양 철학을 수입해서 내면화하기에 급급했다. 이것은 진정한 철학이 아니다. “철학은 그 ‘내용’ 자체로 규정된다기보다는, ‘사유’ 즉 살아있는 ‘활동’이기 때문이다”(p. 23).

 

최진석 교수는 건명원(建明苑)의 원장이다. ‘건명원’은 문화예술 분야의 창의적 리더 육성을 위해 설립된 재단이다. 여기서 ‘명(明)’은 해와 달이라는 대립된 두 존재가 하나가 되는 것을, ‘원(苑)’은 테두리 없는 야성적 들판을 상징한다. 건명원은 과거와 외부의 것만 답습하는 훈고적 사고방식과 이 사회의 오랜 정체적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철학 지성적, 문화 예술적 차원의 상승을 꾀한다. 최 교수는 철학과 사상과 문화적 상승만이 “민족을 구하는 유일한 길”(p. 64)이라고 확신한다. 윤리(철학, 문학, 사상)를 통해 삶의 전략이 부재한 상황을 돌파하여 선도적이고 독립적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류역사는 소수가 다수를 전복하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간파한다. 어떤 소수가 다수를 전복하는가? 바로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소수다. 그에 따르면, 앞으로는 인간의 생각하는 힘이 주도하는 세계가 더 활짝 열릴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망 속에서 개인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참된 자신(眞人)을 찾아야 한다. 훈고적 방식으로는 기존 가치관을 벗어날 수 없고 참된 자신을 찾을 수 없다. 창의적 기풍으로 생각의 주도권을 가질 때, 참된 지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장자의 말을 인용한다. “참된 사람이 있고 나서야 참된 지식이 있다(有眞人而後有眞知)”(p. 241). 여기서 참된 지식은 덕(德)과 다르지 않는데, ‘덕’은 자기를 자기이게 하는 근본의 힘이다. 최 교수는 다시 <장자, 달생(達生)>편에 나오는 목계(木鷄)를 소개한다. 즉, 태연자약(泰然自若)>의 경지에 올라야 한다는 것이다. 삶과 사회의 혁명이 완수되려면, 혁명하려는 사람이 먼저 혁명되어야 한다. 그렇게 바뀌고 성숙된 존재는 더 이상 그냥 ‘개인’이 아니다. 그는 사회를 변혁시키는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德不孤 必有隣’(인격적으로 상당한 성숙에 이른 사람은 혼자가 아니고, 반드시 동조하는 사람이 생긴다)이다.

 

저자가 마지막에 인용한 <순자, 勸學>편에 나오는 글은 매우 도전적이다.

 

“흙을 쌓아 산을 이루면(積土成山), 거기에 바람과 비가 일어나고(風雨興焉)

물을 쌓아 연못을 이루면(積水成淵), 거기에 물고기들이 생겨나고(蛟龍生焉)

선을 쌓고 덕을 이루면(積善成德), 신명이 저절로 얻어져서(而神明自得)

성인의 마음이 거기에 갖춰진다(聖心備焉)”(p. 309)

 

중국에서 오랜 시간 철학한 사람답게 장자, 노자, 순자, 공자의 글을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과 자신의 사상을 드러낸다. 그는 이런 철학자들의 사상을 그저 학습하고 내면화하기보다 이런 사상들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자신을 찾고 드러내려 한다. 최진석 교수는 이 책의 제목처럼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가지고 독자에게 큰 도전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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